심야 채팅

01.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익.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져나갔다. 훌쩍 맥주를 마시자 입안에서 탄산이 톡톡 터졌다. 순식간에 맥주 한 캔을 비우고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바탕화면 속 날짜를 보니 어느새 4월 20일이었다.

 

“걔 이십일에 한국 온다던데.”

 

지난 술자리에서 너의 소식을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간 곳이었는데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우연히 듣게 된 너의 소식에 가슴이 떨렸다. 핸드폰 바탕화면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빛나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는 언제나 빛이 나는 구나. 다시 한 번 너의 미소를 볼 수 있을까?

 

“기다리지 마. 연락도 하지 말고.”

 

외국으로 떠나는 날 너는 나에게 그렇게 얘기했었다. 얼굴을 마주한 것도 아니고, 전화를 했던 것도 아니었지. 차가운 문자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날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너는 과연 알고 있을까? 정말이지 웃기는 노릇이다. 그 문자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가슴이 찢어지고 내내 눈물만 흘렸는데도 그 문자는 내 핸드폰에 남아있다. 그래도 너에게서 온 마지막 연락이라 차마 지울 수 없더라.

 

마우스로 클릭해서 인터넷 창을 띄워 채팅사이트로 들어갔다. 연애상담. 지금이야말로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주소를 입력했다. 다행히 틀리지 않았다. 각종 다양한 채팅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연애 상담 해드림.’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방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다른 방과는 다르게 조용했다. 아무 표시도 없고 달랑 제목만 덩그러니 올라와있었다.

 

‘이 방인가?’

 

심호흡을 하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띠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채팅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정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글자도 올라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혼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참가 인원을 보니 2명이었다. 상담해주는 사람인가? 잠시 기지개라도 피면서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상담 안 해요?

 

한참을 기다려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결국 장난이었나? 생각해보면 지나가는 소문이 다 그렇지. 이런 것에 의존한다는 게 웃긴 일이다. 피식. 숨을 내뱉고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아 미안. 화장실 갔다 오느라.

 

채팅방을 종료하려는 순간 답장이 왔다. 불쾌했다. 반말을 찍찍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건방져 보였다. 언제 나를 봐왔다고 이리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짜증이 샘솟기 시작했다.

 

-상담 할 수는 있어요?

 

그래도 일단 참았다. 본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어차피 저쪽은 잃는 것이 없을 테니까. 내가 나가든, 화를 내든,그저 지나치면 되는 일이다. 내가 갔다고 다른 사람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분명 내 다음 차례에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반면 나는? 나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얘기하지 않으면 속이 터질지도 모른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려 소리를 지를 것이다.

 

-ㅇㅇ. 뭔데 얘기해봐.

 

-전 애인이 오늘 한국으로 돌아와요. 대충 이 년 정도 유학 갔거든요. 근데 다시 연락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저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꿈꾸던 너의 소식이었는데 막상 들으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당장이라도 너에게 달려가고 싶어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다시는 연락하지 마.’

 

차가운 너의 문자에 정신이 반짝 들었다.

 

-음. 글쎄? 너무 정보가 없어. 둘이 왜 헤어졌는데?

 

-사소한 이유에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다시 한 번 연락하면 받아줄까요? 가기 전에 기다리지도 연락하지도 말라는 얘기를 했거든요. 근데 이년이나 지났으면 저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 않았을까요?

 

2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강산이 바뀔 정도의 시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 대한 미움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사소한 건 내가 판단할거고. 왜 헤어졌는지 말해줘.

 

-정말 사소한 거예요. 그냥 싸우다 헤어졌거든요.

 

-싸워?

 

아아. 싫은 기억들이 샘솟기 시작했다. 매일 싸우던 우리의 모습이 눈앞에 보였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던 내 모습과 눈물을 흘리던 너의 모습이 겹쳐졌다. 싫다. 어째서 자꾸 이런 기억이 떠오르는 걸까?

 

그날 우리는 카페에서 헤어졌다. 참 어이가 없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리 쉽게 끊어지는 줄 몰랐다. 더욱이 사랑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는데도 종이 마냥 찢겨나갈 줄은 몰랐다.

 

그날. 약속 시간에 십분 정도 늦었었다. 많이 늦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했었다. 괜찮다는 너의 말에도 멈추지 않았다. 살짝 어두운 표정. 오늘도 싸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싸운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가서 음료를 주문했다. 그러면 같이 나오는 케이크가 있는 데 주문 한 것과는 달랐다.

 

“이거 바꿔올까?”

 

“아냐. 됐어.”

 

차가운 반응. 결국 자리에 앉아 너를 바라보았다. 사랑스러운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냉랭한 시선 속에서 침이 꼴깍하고 넘어갔다. 조금 지쳐 보이기도 했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했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 속에 비춰진 나를 보았었다. 나 또한 너와 같았다.

 

“그냥 이거 바꿔올게.”

 

“아니야. 됐다니까. 바꾸려면 진작 바꿨어야지. 지금 와서 뭐하러 바꿔?”

 

“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냥 넘길 걸 그랬다. 조금 화가 나도 속으로 삭힐 것을 어리석게도 뱉어냈다. 그것도 아니면 차근차근 너에게 얘기를 해볼 걸 그랬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말 어리석었다.

 

“야. 네가 바꾸지 말라면서. 근데 또 왜 이제 와서 난리야?”

 

소리를 질렀다. 불안했다. 아슬아슬한 너의 눈빛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금방이라도 나를 떠나는 것은 아닐까하고 무서웠다.목에 힘을 주고 얘기했지만 눈동자는 흔들렸다. 갈 곳 없는 눈동자는 허공만 바라본 채 이리저리 떨고 있었다.

 

“결국 또 이런 식이네.”

 

너는 침착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깥을 쳐다보았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으로 네가 멀게만 느껴졌다. 눈앞에 있어도 너라는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알던 네가 아니었다.

 

“우리 헤어지자.”

 

결국 가게를 나올 때 나온 말. 믿을 수 없었다. 왜 헤어져야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왜? 그깟 케이크 때문에 우리가 헤어졌어야 했던 걸까?

 

-그렇게 된 거에요.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연락 없다가 출국하기 전에 잠깐 문자한 게 전부에요.

 

-그래그래.

 

한동안 새 대화가 올라오지 않았다. 아마도 나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몇 번이고 말풍선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사라지는 것을 보면 상당히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글자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에 둘이 자주 싸웠어?

 

-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어?

 

-그 제가 화나면 언성이 좀 높아져요. 그렇다고 분노조절 장애처럼 막 부수고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좀 흥분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전 애인이 그걸 싫어해서 몇 번이고 고쳐달라고 얘기하다가 맨날 그거 때문에 싸우게 됐어요.

 

-역시 그랬구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무어가 역시라는 말인가?

 

-바보냐? 뭐가 사소한데? 하…… 일단 너희 커플이 헤어진 건 절대로 사소한 것 때문이 아니야. 설마 그깟 케이크 때문에 헤어졌다고 생각 하냐?

 

-네?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어지간히 멍청이구나. 지친거야.

 

-지쳐요?

 

-아직도 모르겠어? 매일 싸우고 화해하고 그러면 누가 안 지치겠어? 게다가 그것도 매번 같은 이유로 그런 거고 넌 뭐가 잘 못인지도 몰랐지. 전 애인이 몇 번이나 말했어? 흥분하는 것 좀 고쳐달라고. 아마 수십 번 아니 수 백번은 얘기했을지도 모르지. 매일 너랑 싸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어? 이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널 놓지 않았겠지. 계속 노력했겠지. 근데 그 결과는? 넌 달라지지 않았어. 그러니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는 거지. 내가 봤을 때는 이미 카페에서 싸우기 전에 정은 다 사라진지 오래야. 그냥 헤어질 구실을 찾고 있던 거지.

 

순간 소름이 끼쳤다. 똑같다. 언젠가 내 친구가 해 준 이야기와 똑같았다. 뭣도 모르는 놈이 지껄이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똑같다니. 결국 녀석이 맞았다. 고개를 숙였다. 순간 매번 싸우고 풀이 죽은 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매일 매일 그런 얼굴을 했었지…… 어쩌면 그 얼굴을 미소보다 더 많이 봤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잔인한 얘기지만 아마 힘들 거야.

 

-그래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텐데 어떻게 안 될까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야. 네 말대로 2년 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아. 그 사이에 너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을 수도 있어. 또 네가 바라는 대로 널 만나고 싶을지도 모르지. 다만 문제는 이미 한번 끝이 났다는 거야.

 

-끝이요?

 

-그래. 너랑 한번 지옥을 경험했는데 그걸 또 할 수 있을까? 트라우마처럼 계속 따라다닐 거야. 널 생각하다가도 그때 생각에 고개를 저어버리겠지. 설령 너가 그때랑 달라졌어도 조금이라도 옛 모습이 보이면 끝이 나는 거지.

 

그렇구나.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일리 있는 얘기였다. 조용히 타자 위에 손을 얹고는 눈을 감았다. 옛 기억들이 몰려왔다. 어째서 그때는 몰랐을까? 그런 행동, 말 하나하나가 너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까? 뒤늦은 후회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는 텅 빈 자리에서 목 놓아 울부짖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뿌연 화면 사이로 글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도 많이 사랑하지?

 

-네.

 

아직도 많이 사랑한다. 아니 한 순간도 잊지 못했다. 너의 얼굴, 숨결, 행복했던 나날들을 하나도 잊지 못했다. 남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독이었다. 내 정신과 마음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뚜렷해졌다.

 

-연락해봐.

 

-네? 그렇지만……

 

-그래. 확실히 가능성은 희박해. 아니 사실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 않을까? 그래도 한번 정도는 손을 내밀어봐. 그래도 지금까지 이러는 건 많이 사랑한다는 얘기잖아. 단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해. 만약 전 애인이 너에게 다시 돌아온다면 넌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야. 예전과는 다른 사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그러니 정말 노력해야해.

 

-만일 대답이 없으면요?

 

-그럼 거기서 멈춰야지. 사랑은 말이야. 강요하는 순간부터 사랑이 아니야. 만일 네 전 애인이 널 받아주지 않는다면 거기서 멈추고 받아들여야 해. 매달리고 애걸구걸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어. 서로 상처만 늘어갈 뿐이지. 정말로 사랑한다면 놓아주는 방법도 알아야 하는 법이야.

 

-오늘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천천히 타자를 쳤다. 사실 믿지 않았었다. 인터넷 상담이라니. 혹시 모를 희망에 부풀어서 헛된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얘기한들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어리석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고, 비겁한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려. 힘내고 잘 자라.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채팅방이 꺼졌다. 아마도 저쪽에서 방을 없앤 모양이다.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다시 한 번 핸드폰 바탕화면을 바라보았다. 너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있다.

 

핸드폰을 들고 너의 번호를 눌렀다. 연락처에는 없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 틈으로 너의 숨결이 느껴졌다.

 

-잘 지냈어? 보고 싶다.

 

전송을 누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몸을 웅크렸다. 너는 어떨까? 너도 나를 보고 싶을까?

 

띠링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울리는 핸드폰에 손을 뻗어 잠금을 풀었다. 어두운 방안 하얀 화면 빛 사이로 천천히 너의 문자가 보였다.

 

‘나도.’

 

문자는 눈을 타고 가슴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핸드폰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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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소녀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스웨덴소녀 2016. 08/08

내용이 참 잘넘어가는게 좋네요

소리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소리 2016. 08/12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ㅎㅎ

소리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소리 2016. 08/12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