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 찾아왔다. 이건 단순히 나 한 사람의 궁금증이 아닐 것이다. 과장되게 말하면 전 인류의 의문점 아니 과장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한번쯤은 가졌을 의문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이 방에 있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방에는 테이블 하나와 그가 있었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편의상 ‘그’라고 지칭하나 사실 그라고 하는 것조차 의문이다. 아니 그전에 사람은 맞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 생명체는 맞는지 의문이었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정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투명했다가 빛이 났다가 알 수 없는 모양으로 변하기도 했다. 때때로 인간의 형태를 띠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알 수 없는 형체였다.

“그래서 당신이 신이라는 건가?”

신. 그는 자신을 신이라 설명했다. 인류는 언제나 신의 등장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표현이라기보다 상상이라는 말이 맞겠지. 지구가 물에 잠기고, 하늘이 갈라지고, 때로는 세상이 멸망하는 것도 상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처참했다. 아무리 그래도 ‘신’이라는 작자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 나타날지는 몰랐다.

“그렇지. 너희들의 표현으로 나타내면 ‘신’이라고 할 수 있지.”

그가 움직이자 옆에 작은 강아지가 생겨났다. 맙소사. 말로만 들었지만 정말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강아지는 허공에서 탄생했다. 처음에는 뿌연 무언가가 보이더니 뼈가 생기고 그 사이에 장기가 들어가며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피부가 장기를 뒤덮고 마침내 귀여운 강아지가 탄생했다. 놈은 처음에는 멍하니 있었다. 허공을 바라보다가 그가 한 번 더 움직이자 왈왈 짖으며 내게 다가왔다.

“맙소사. 이게, 이게 가능하다고?”

환상도 트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계도 아니었고 정말 살아있는 강아지였다. 강아지를 들어 올리자 ‘헥헥’ 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믿겠어?”

그가 내게 다가오자 강아지가 내 손을 벗어나 도망쳤다. 한걸음, 한걸음 그의 걸음 속에는 낯선 감각이 숨겨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이게 바로 경이로움인가? 신을 맞이하는 마리아도 이랬을까? 그의 앞에 서자 한 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왜? 왜 갑자기 나타난 겁니까? 그것도 길 한복판에.”

“아아 그거. 별다른 이유는 없어. 이제 이 세상을 끝내야 해서 말이야. 솔직히 아무 말 없이 지워도 상관없는데 내가 성격이 좋아서 그러지 못하거든.”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마치 아무 일이 아닌 마냥 해말게 얘기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을 끝낸다고?

“잠시 만요. 끝낸다니 종말을 얘기하는 건가요?”

종말. 언제나 인류는 종말을 두려워했다. 지구에 소행성이 부딪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알 수 없는 질병, 지구 온난화 등등 다양한 설이 나돌 정도니 말이다. 하다못해 고대 부족이 달력을 2012년까지 만들어놨다는 것 때문에 종말이 온다고 한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갑자기 허망하게 종말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이 뭘 종말이라는 표현까지 써? 그냥 끝내는 거야.”

그는 또 해맑게 얘기했다. 어쩌면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지 모를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손을 휘휘 저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끝낸다니요? 무슨 컴퓨터 끄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세상이 끝나요?”

“응? 그야 필요 없어졌으니까.”

“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너희는 이제 필요 없어졌으니까 그니까 지우는 거야.”

내 뒤에 있던 강아지가 그를 향해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그가 움직이자 강아지는 눈도 깜짝할 새 없이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 강아지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티끌하나 남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마냥 어떤 흔적도 느낄 수 없었다.

“아. 그거 참 시끄러운 녀석이네.”

그 순간 등골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공포. 그건 확실히 공포였다.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본능이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이 소리치고 있었다. 해맑게 웃고는 있지만 그가 하는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아 어디까지 얘기했지? 맞아. 그래. 필요 없어졌어.”

필요 없다는 그의 말이 내 심장을 조여 왔다. 가시가 가슴을 뚫듯 숨을 쉴 수 없었다.

“아니 그게 대체.”

“뭐부터 얘기해야할지. 우선 너희와 나에 대한 얘기를 해주지.”

그가 테이블 쪽으로 가 종이를 들었다. 그리고는 펜으로 찍찍 무언가를 그렸다.

“이게 이 세상이야.”

그는 종이에 직사각형을 그렸다. 정말 단순한 그림이었다. 세 살짜리 아이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이게 이 세상이라니......?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이 세상이라고요? 이 그림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종이자체가 이 세상과 같지.”

“그게 무슨?”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종이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잘 봐봐. 이 직사각형이 종이 위에서 살고 있다고 치자. 물론 지금은 생명이 없지만 있다고 생각을 해봐. 그러면 이 직사각형에게 이 종이는 그것이 속한 모든 세계라고 할 수 있지. 즉 이놈에게 이차원의 세계가 전부라는 거야. 그리고 이놈은 너희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는 그는 어디선가 사과를 가져와 사과의 아래를 펜으로 칠했다. 그 후 종이에 꾹 누르자 사과의 밑 부분의 일부가 종이에 찍혔다.

“이 사과가 나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해가 되냐니? 당연히 몰랐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그깟 종이가 지금 종말과 무슨 상관이 있는 지도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이 종이에 찍힌 흔적 보이지? 사과의 일부분이 찍혔잖아. 바로 이 사과는 나고 이 흔적이 지금의 모습이야. 아마도 너에게는 지금 내 모습이 계속 변하고 있을 거야. 그치?”

“네. 그렇기는 하다만.”

“바로 그거야. 이 사과의 모습을 종이에 담을 수는 없어. 왜냐면 이 종이는 이차원이거든. 하지만 사과는 삼차원에 있잖아. 그러니까 이차원의 종이에는 삼차원의 일부부만 표현된 거야. 물론 이차원의 방식으로 삼차원에 표현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건 결코 본모습이 아니지.”

“그렇다면 이 종이가 우리가 속한 세계고 당신이 저 사과라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보다 고차원의 존재라는 건가요?”

그가 웃었다. 호쾌하게 ‘하하’하고 웃었다.

“그래그래. 바로 그거야! 역시 너희는 이해가 빠르네. 하긴 내가 만들었는데 당연한 건가? 아무튼 난 너희가 속한 세상보다 고차원에 속해있어. 그래서 계속 모습이 변하는 거야. 너희 세계에서는 내 본모습을 표현할 수 없거든.”

그렇군.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계속 변해가는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변하는 모습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왜 세상이 종말을 맞이해야하는가?

“하지만 그게 종말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이 종이를 찢어볼래?”

그가 내게 종이를 건넸다. 군말 없이 종이를 찢었다. 천천히 찌이익 하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종이를 찢자 직사각형이 잘려나갔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직사각형은 이제 조각나버려 본래의 형태를 되찾을 수 없었다.

“어때? 이 종이 세상이 대단해보여?”

“아니요. 그저 종이일 뿐이죠.”

찢어진 종이가 방안을 뒹굴고 있었다. 종이는 이제 쓰레기가 되었다.

“바로 그거야.”

“네?”

“너희도 마찬가지야. 너희는 이 세상이 뭐 대단할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별 볼일 없어. 너희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야.”

“그게 무슨 말이죠? 이 세상이 종이와 같다니? 그럼 우리가 속한 이 세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인가요?”

“그렇지. ‘이데아’라는 개념을 알고 있어? 너희가 생각해낸 것 중 가장 감명 깊었는데 말이야.”

“이데아? 알고는 있는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죠?”

“바로 그 이데아가 내가 있는 곳이야. 이곳에서 보면 너희 세상은 저 종이와 다를 게 없어. 단순한 이데아를 흉내 낸 장난감에 불과하지. 결코 실재가 아니라는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살아있다고요. 장난감 따위가 아니에요.”

“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해? 천국이나 지옥? 환생? 그것도 아니라면 또 다른 사후 세계? 아니야. 사람은 죽으면 끝이야. 마치 컴퓨터 전원이 나가버리 듯이 그냥 끝나버리는거야.”

그가 내게 다가왔다. 내 얼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한없이 차갑고 무거웠다. 내 다리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숨결은 나를 흔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이 세상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나? 아까도 애기했지만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야. 단지 내 흥미를 위해 만들었을 뿐이야. 너희 인간들은 항상 그랬지. 자신들이 무슨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줄 알더군. 하지만 그렇지 않아. 내게 너희는 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지.”

온 몸이 떨렸다. 맙소사. 이게 이 세상의 진실이라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한 손으로는 십자가를, 나머지 한 손으로 총을 쥐었다.

“그리고 이제 그 흥미가 사라졌을 뿐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당신은 신이 아니야!”

품 안에서 총을 꺼냈다.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 두 발.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철컥, 철컥. 더 이상 방아쇠를 당겨도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태연하게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총알들이 멈춰있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총알들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던 상관없어.”

총알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의 몸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종말은 일 년 뒤야.”

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머니에서 십자가를 꺼내어 바닥에 집어던지자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찌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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