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키스

수업시간 A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턱을 괴고 멍하니 그 모습을 보자니 지난밤의 일이 떠올랐다. 내게 입을 맞추던 A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사건은 어젯밤이었다. 술자리가 있어서 갔었는데 간만이라 술에 취했던 것만 기억난다. 물론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것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A와 내가 입을 맞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내가 그리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어찌된 일인지 앞뒤 맥락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딱 그 부분, 말캉거리던 입술의 감촉과 터질 것 같은 심장소리만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교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셨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두가지이다. 우선 첫 번째는 나와 A가 키스를 했다는 것이다. 키스. 흔히들 연인 사이에서 하는 애정을 나누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나와 A는 연인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렇다면 A와 내가 아무에게나 키스를 하는 사람인가? 그에 대한 대답도 ‘아니다.’이다. 물론 나는 아무에게나 키스를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제대로 된 키스를 해본 적이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건 논외로 치자고 A 또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내 희망사항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A는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

두 번째는 인공호흡이다. 사실 이쪽이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술을 하도 마셔서 졸도라도 한 걸까? 실제로 난 비슷한 경험이 있기는 하다. 대학교 일학년 때였나? 신나서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는 토를 하고 기절을 하는 바람에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물론 입으로 계속 토를 줄줄 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인공호흡 쪽이 설득력이 높아보인다.

“무슨 생각 하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수업이 끝났다. 젠장. 오늘 중요한 부분이 많았을 텐데. 텅 비어있는 노트는 내 머릿속과 같았다. 어젯밤 그 일이 신경 쓰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잠깐만 나 일이 있어서. 조금만 기다려봐.”

B의 제안을 뒤로 한 채 A에게 다가갔다. 미묘한 어색함을 느끼며 A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평상시대로 A가 내게 인사를 했다.

“어제는 잘 들어갔어?”

그 순간 무언가 이상했다. A는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했다.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앞에 서 있던 내가 어색한 나머지 애꿎은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응. 근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어제 밤에 말이야.”

그때 A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가방을 챙기고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저 미안한데 내가 다음 수업 강의실이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은데.”

“어, 어. 그래. 먼저 가봐.”

A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강의실을 나갔다. 홀로 남겨지는 나는 A가 앉아있던 자리를 보았다.

“너네 무슨 일 있었냐?”

뒤에 있던 B가 내게 다가왔다. 어깨를 으쓱거리고 B를 보았다.

“야 어제 나 많이 취했냐?”

“약간? 아니 많이 취했었나? 아 맞다. 너 기억 안나?”

“뭐가?”

“그 너 집에 안 가겠다고 해서 A가 집까지 데려다줬잖아.”

“아 진짜?”

그리고 보니 희미하게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A와 입술을 맞춘 곳은 우리 집 앞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작은 가로등이 하나 있는데 그 아래였다.

“뭔일인데? 또 토라도 했냐?”

“아니야! 다만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경위로 입을 맞추게 된 걸까? 아니 그전에 그건 꿈이었나? 내 망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인가? 강의실을 나오자 멀리 A의 뒷모습이 보였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지난밤의 감촉이 떠올랐다.

 

결국은 알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해서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바닥에 누워 핸드폰을 들고 카카오톡을 열었다. A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조심스레 눌렀다. 대화하기를 누른 후 타자 위에 손가락을 올려보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타자기 위에서 손가락은 거짓말처럼 멈춰버렸다.

‘뭐라 해야 하나?’

어쩌면 내 단순한 망상일 수도 있다. 또 내 망상이 아니었더라도 A에게는 잊고 싶은 일이던가 잠깐의 실수였을 수도 있다. 하긴 생각해보면 술김에 같이 잠자리를 하는 사례도 있는데 입맞춤정도야.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오늘 그렇게 급하게 가지 않아도 시간은 충분했을 텐데. 역시 그 얘기는 피하는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새 밤이 되었다. 밥도 먹지 않은 채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멍하니 핸드폰을 쥐고 있던 순간 진동이 울렸다. 진동은 손을 타고 흘러 내 머리를 흔들어놓았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워서 핸드폰을 켜보았다. 조심스레 잠금을 해제하고 카카오톡을 열었다. A에게 메시지가 왔다.

-뭐해?

짧지만 강렬했다. 묘하게 손이 떨렸다. 심호흡을 하고 난 뒤 답장을 보냈다.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내 마음이 보일까 겁이 났다.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타자를 눌렀다.

-집에 있어. 오늘은 나갈 일이 없어서.

-그래? 그럼 같이 야식이나 먹을래?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밤 열한시. 이 시간에 열고 있는 가게라고는 술집뿐이다. 그렇다고 또 술집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어제 술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는 있는데 또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이 시간에? 가게도 문 안 열었잖아.

-그럼 너 자취방에서 먹으면 되지.

-우리 집?

처음은 아니다. 이전 여러 번 A가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같이 과제를 할 때가 있기도 했었고 강의가 비는 시간에 집에서 같이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오늘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치킨이라도 사갈게. 술도 사갈까?

-아니야. 어제 술은 많이 마셔서.

A는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는 답장이 없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대강 집 정리를 하고 밥상을 펼쳐놓았다. 조용히 앉아 A를 기다리다가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여전히 A에게 답장은 없었다. 대신 마지막으로 보냈던 카톡 중에서 ‘어제’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말이야 걔가......”

치킨을 먹는 동안 A는 쉴 새 없이 재갈거렸다. 학교생활이며 친구 얘기 등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 중에 어젯밤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사실 이쯤 되면 물어보는 게 실례이지 않을까 싶다. 일부러 얘기를 하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다. 물어봐서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 말 듣고 있어?”

정신을 차리니 A가 닭다리로 내 볼을 건드리며 얘기했다. 또 생각에 잠겼던 건가? 머리를 긁적이며 A를 바라보았다.

“아니 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신경 쓰이는 일? 뭔데?”

A를 바라보았다.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역시 그렇구나. 고개를 살짝 저었다.

“왜 너만 닭다리를 먹냐?”

그 순간 닭다리를 입에 물고 A의 손에서 뺐었다. 그러자 A가 분하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등짝을 향해 내리쳤다. 짝 소리와 함께 등이 화끈거렸다.

 

웬일로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차가운 밤바람 사이 우리는 그 거리를 걷고 있었다. 손이 닿을 듯 한 거리를 둘이서 나아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어깨가 부딪히면 손이 살짝 떨렸다.

밤거리는 조용했다. 취객도 돌아다니는 차도 없었다. 이렇게 보니 세상에 온전히 우리 둘만 있는 것 같다. 고개를 돌려 A를 쳐다보았다.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지만 미묘하게 불이 붉어 보였다. 조명 탓인지 그렇게 보였다. 아니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바로 고개를 돌렸다. A의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도 않고 그 침묵을 유지했다. 미묘한 침묵은 우리 사이에 어색한 기류를 만들어냈고 그 어색한 기류는 내 마음을 떨리게 만들었다.

“조심히 들어가.”

A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가려는 순간 A가 내 옷 끝을 잡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A가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평소에 당돌한 모습과는 상반됐다. 이런 A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넌 궁금하지 않아?”

“뭐가?”

“어젯밤 일.”

그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젯밤 일? 어젯밤 일이라면 입을 맞춘 것을 얘기하는 건가? A가 먼저 얘기를 꺼낼 줄이야.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이제와서 얘기를 하는 걸까? 충분히 말할 시간은 많았을 텐데.

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생겼지만 지금은 A에게 집중했다. 몸을 돌려 A를 바라보았다. 그 맑은 두 눈을 바라보았다.

“궁금하지 않은 거야......?”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침을 꿀꺽 삼켰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궁금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럼 지금 알려줄게.”

그 순간 A가 내게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살며시 다가와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차가운 밤바람 사이로 A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리고 뜨거운 숨결 사이로 A가 느껴졌다.

“이제 알겠지? 그럼 내일봐.”

A는 뒤돌아 아파트로 들어갔다. 멀어져가는 A의 모습을 보면 입술을 만져보았다. 입술에는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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