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나의 하루

밤 11시 59분. 여느 때와 같이 놈이 나를 찾아왔다. 가볍게 손 인사를 하고는 서류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봉투는 언제나처럼 2개였고 단조로운 갈색이었다. 천천히 서류 봉투를 받았다. 봉투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오늘은 누구로 할 거야? 기왕이면 빨리 정해줬으면 좋겠는데.”

서류를 꺼내 살펴보았다. 한명은 같은 학교의 동급생이었고 다른 한명은 수학 선생이었다. 양쪽 다 내게 친분이 있는 편은 아니다. 수학 선생은 수업시간에 간간히 눈이나 마주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제 간의 정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게 점수로 이어진 관계였다. 동급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말을 섞거나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다.

“기다려봐. 아무리 그래도 한 명이 사라지는 건데 나름 신중하게 해야 하지.”

“대충해. 어차피 너가 죽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아무나 골라.”

재촉하는 놈을 쳐다보았다. 얼핏 보면 사람처럼 보였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이며 여유로운 미소를 본다면 어디 잘 나가는 청년으로 보인다. 하지만 달빛에 비춰지는 염소처럼 투박한 뿔을 보면 놈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놈과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동자.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다시 서류를 보았다. 글쎄…… 두 사람 다 내게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지만 한 명은 유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선생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어떤 학생은 이 선생에게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소문난 양아치다. 그 소문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갖은 폭력사태를 일으키고 심지어 성범죄도 저지르려 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를 골라야 할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굳이 골머리를 썩여가며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쪽으로 하지.”

놈에게 동급생의 서류를 건넸다. 놈이 씨익 웃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소름끼치는 미소였다.

“알지? 한번 선택한 건 무를 수 없어.”

“알아. 그쯤은 이미 알고 있어.”

“그래. 훌륭하군. 그럼 이쪽으로 하지.”

서류를 받고는 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연기가 바람에 흩날리듯 희미해져가는 놈을 쳐다보았다. 이걸로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건가? 눈을 깜빡이자 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았다. 12시가 넘어 새로운 하루를 찾아왔다. 오늘은 어제가 되었고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 오늘…… 오늘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날일 것이다. 늘 찾아오는 하루에 불과할 수도 있고 지루한 나날의 연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하게 바라던 내일이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알고 있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내 얘기였으니 말이다. 눈을 감자 그날이 떠올랐다. 병실에서 누워 놈을 처음 만난 그날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친구가 암이라니 재수가 없군. 게다가 요양병원이라니 이건 뭐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군.”

놈을 처음 만났던 건 밤이었다. 한밤 중 누군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눈을 뜨니 놈이 곁에 있었다.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투박한 뿔을 보니 현실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오. 일어났군. 안 그래도 깨울려고 했는데 잘됐네.”

놈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정확히 말하자면 명함이었다.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종이 말이다.

“악마?”

놈의 명함은 간단했다. 이름도 직책도 아무것도 나와 있지 않았다. 단지 ‘죽어가는 당신을 위한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악마!’라는 문구만 있었다. 어리둥절한 나를 보고는 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믿기지 않아? 하긴 보통 너희들은 이런 거 쉽게 믿지 않더라. 그럼 일단 믿음을 줘 볼까?”

딱! 놈이 손가락을 튕기자 눈앞이 선명해졌다. 몸을 짓누르던 무거운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온 몸에 활력이 넘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소름 끼치도록 건강하다는 느낌.

“상당히 놀란 눈치구만. 하지만 벌써 놀라면 안 된다고. 난 말이야 너에게 매일 이런 생활을 너에게 줄 수 있어. 물론 공짜는 아니야. 대가는 치루지만 말이야.”

“대가? 영혼 같은 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맙소사. 믿을 수 없었다. 환상이나 사기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로 몸이 쾌유했었다. 매일 나를 괴롭히던 두통도 사려졌고 움직이지 않던 오른손도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날뛰고 싶었지만 조용히 놈을 쳐다보았다.

“뭐 반은 정답이고 반은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너의 영혼은 아니니 말이야.”

놈이 종이를 꺼내서 내게 들이밀었다. 상품안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쳐다보았다.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타인을 제물로 바치면 된다는 내용이다. 내가 누군가를 선택하면 그 사람의 영혼을 가져간다는 얘기였다. 무한정으로 제물을 바치는 것도 아니고 영혼의 순도에 따라 제물을 바치는 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간단한 내용이라 이해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 그건 바로 ‘굳이 이런 행동을 할 필요가 있나?’였다. 영혼을 바란다면 그냥 가져가면 될 것 아닌가? 아니 애초에 악마라는 놈이 이토록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흔히 말하듯이 사람을 죽이고 가져가면 되는 것 아닌가?

“어째서? 당연히 영혼을 얻기 위해서지.”

“그게 아니라 직접 얻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건 안 돼. 안타깝게도 우리라고 해서 중간계에 함부로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 그리고 애초에 중간계는 우리 영역이 아니잖아. 그래서 영혼을 가져가기 위한 매개체가 필요해.”

“매개체?”

“그래. 바로 너가 매개체가 되는 거야. 하지만 아무런 걱정할 거 없어. 안내서를 봐서 알겠지만 너에게 해가 되는 건 전혀 없어. 오히려 건강해지고 서로 좋은 거지.”

놈이 품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처음 보는 문자들로 가득한 종이였다. 정확히 말하면 종이라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붉은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고는 싱긋 웃었다.

“계약할거지?”

순간 손에 힘을 주고 놈을 쳐다보았다. 이건 기회였다. 놈의 말대로라면 나는 내일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갈 때부터 내게 희망 따위는 없다고. 회복될거라는 부모님의 말도, 같이 놀러다니자는 친구들의 말도 전부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살고 싶었다. 전에는 몰랐지만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왜 나는 이렇게 된 지 원망스러웠다. 누구는 하루를 낭비하는데 그 하루가 내게는 남지 않았다. 왜 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 붉은 종이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워 올랐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너에게 특별히 하나 알려주지. 여태까지 이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인간은 없었어. 하긴 애초에 살고 싶어서 날 부른 거지만 말이야.”

놈이 종이를 품 안에 넣고는 점점 흐릿해져갔다. 그러면서 놈은 한마디 더 했다.

“너희들은 역시 재미있어.”

그렇게 놈은 사라졌다.

 

다음날 학교는 동급색의 죽음으로 시끄러웠다. 오토바이를 타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죽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잘 작동하는 브레이크였지만 말이다.

 

밤 11시 59분. 놈이 나를 찾아왔다. 다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랐다. 이상한 서류 봉투를 가지고 왔다. 항상 갈색의 봉투를 가지고 왔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노란색 봉투를 가지고 왔다. 겉표면에 이상한 문양과 글자가 써져 있었는데 무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뭐야? 평소랑 다르네.”

“아무래도 병이라는 게 말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거잖아. 근데 그러면 내가 더 고생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젠 이전과 같은 대가로 하루를 살 수 없어. 하지만 안심해. 앞으로 지불해야 할 대가는 얼마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너가 직접 죽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대가를 더 치러야 한다는 거야?”

“뭐, 귀찮으니 자세한 건 직접 보도록 해.”

노란색 서류 봉투를 받았다. 그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다.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이질감에 침을 삼켰다. 뭐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낯선 감각들이 온 몸을 장악했다. 스멀스멀 기어노는 불안과 공포는 마침내 실체를 들어냈다. 봉투를 열고 서류를 살펴보는 동안 손에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숨이 거칠어졌다. 눈을 의심하고 다시 서류를 보았다. K와 P. 둘도 없는 내 절친들이었다.

“뭐야? 왜 얘네 사진이 여기서 나오는 거야? 지금 장난해?”

“장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개소리 하지 마. 여태까지 모르는 사람이었잖아. 안다고 해도 겨우 안면이 있는 정도였는데 어째서 내 친구들이 나오는 거야?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야.”

눈에 힘을 주고 놈을 노려보았다. 높아지는 목소리가 우리 둘 사이를 채웠다. 놈은 태연했다. 아니 오히려 실실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얘기했잖아. 이제부터는 대가를 더 치러야한다고.”

“설마?”

“맞아. 그 설마야. 언제까지 모르는 사람만 고를 줄 알았어?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이제부터는 골머리 좀 썩여야 할 거야. 하지만 좋은 점도 있어. 너와 직접 관계된 사람의 경우에는 영혼의 순도가 높을 가능성이 많거든. 그러니 잘 생각해야겠지?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지 말이야.”

“말도 안 돼! 그걸 어떻게 하라는 거야?”

“왜? 여태 다른 사람은 잘 골라놓고는 그래? 설마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무 이기적이네. 이야 악마인 나도 혀를 내밀겠다. 생각을 해봐. 그 사람들이라고 죽으면 슬퍼하는 사람 하나 없었겠니?”

그 순간 놈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가늘게 눈을 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너가 바란 오늘은 이정도로 대가를 치루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게 싫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려주지.”

딱! 놈이 손가락질하자 숨이 막혀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척추를 타고 통증들이 밀려들어왔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바닥에 쓰러져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우웩. 입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눈앞이 흐려지고 팔이 떨렸다. 몸이 차가워지고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필사적으로 오른손에 힘을 주어 놈의 다리에 매달렸다. 순식간이었다. 방금 전만 해도 멀쩡하게 서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손가락질 한번에,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이렇게 변해버렸다.

“무, 무슨 짓을 한거야……”

“응? 난 그냥 네 병을 돌려준 것뿐이야.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넌 병을 이겨낸 게 아니야. 정당한 대가를 치루고 내가 막아주는 것일 뿐이지.”

왼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숨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듯이 욱신거렸고 목구멍으로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도저히 진정을 할 수 없었다. 진정하기는커녕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이제 알겠어? 그러니 살고 싶으면 어서 골라. 물론 선택은 네 맘이고 네가 죽는 것도 아니니 안심하라고.”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서류 봉투가 보였다. 오른손을 뻗어 서류 봉투를 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서류 하나를 집었다.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서류의 차가운 감촉만이 전해졌다.

“그래그래.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나도 말이야. 악마라지만 굳이 남에게 고통을 주는 건 좋아하지 않아.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네.”

놈이 미소를 짓고 사라졌다. 천천히 몸이 돌아오고 통증들이 가라앉았다.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방금 토한 피가 얼굴에 묻고 그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며칠 뒤 나는 K의 모습을 멍하나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웃고 있는 K의 사진을 보았다. 향 연기에 머리가 뜨거워지고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이게 현실이 맞는 걸까? 사실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K 부모님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끔찍한 현실임을 깨달았다.

 

밤 11시 59분. 놈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붉은 봉투를 가지고는 내 앞에 나타났다. 놈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무어가 그리 좋은지 역겨웠다.

“친한 친구가 죽었다면서? 저런! 역시 겨울철 빙판길은 위험하다니까. 너도 조심해.”

주먹을 불끈 쥐고 놈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입 다물어. 너가 죽인 거잖아.”

“내가? 에이 설마. 내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그 순간 놈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온 몸의 체중을 실어 놈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았다. 놈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내 주먹을 한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 바닥에 내리쳐졌다. 등 뒤로 느껴지는 통증에 작게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곧 바로 일어나 놈을 노려보았다.

“워워. 진정하라고 진정.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그 친구를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웃기지마. 빌어먹을 자식.”

또 다시 놈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녀석의 품안으로 파고들어 명치를 향해 주먹을 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놈은 내 주먹을 태연하게 막았다. 그리고는 곧장 다른 손을 뻗어 내 목을 쥐었다.

“너도 알 텐데. 친구를 죽인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애초에 너가 선택해놓고 왜 이럴까? 알고 있었잖아? 고르면 죽는 다는 걸.”

“입 닥쳐! 고를 수밖에 없게 해놓고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넌 고르지 않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넌 누군가를 골랐지. 너가 살기 위해서 말이야.”

놈의 목소리가 천천히 귀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그 순간 온 몸에 힘이 풀리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놈이 내 눈을 보더니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K는 죽었다. 두 번 다시 그 얼굴을 볼 수 없다. 만날 수도 없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내가 죽였다. 내가 죽인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오직 나를 위해 친구의 죽음을 선택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버틸 수 없다. 입을 틀어막았지만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가 방안을 메워 나갔다.

“그래도 너무 자책하지는 마. 그간 내가 봐왔던 모든 인간들은 너랑 똑같으니까. 넌 당연한 선택을 한 거야.”

“당연한 선택……?”

고개를 들어 놈을 쳐다보았다. 두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을 적셔나갔다. 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간 봐왔던 어떤 미소보다도 순수하고 섬뜩한 미소였다.

“그래. 당연하지. 아니 당연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 생각을 해봐. 우정, 사랑, 이런 게 중요하다지만 과연 생명보다 중요할까?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말이야. 그 이후 세상은 나랑 눈곱만큼도 상관없지. 아니 오히려 이 세상은 내가 살아있기에 중요한 거야. 그러니 너의 선택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다운거야. 살아있다는 건 그만큼이나 중요한 거야. 그러니 그 정도 대가로는 싸고 넘치는 수준이지.”

놈이 키득거리며 내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바닥에 놓인 붉은 봉투를 보자 소름 끼치는 감각들이 등뒤를 훑고 지나갔다.

“이건……?”

“굉장히 놀랍고도 좋은 소식이야. 이게 마지막이야.”

“마지막?”

“그래. 저번에 그 친구가 상당히 순도가 높은 영혼을 갖고 있어서 말이지. 이번에만 선택하면 넌 자유의 몸이야. 뭐 정확히 말하자면 내 얼굴 보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얘기지. 왜? 더 대가를 치루고 싶은 거야?”

고개를 흔들고 서둘러 봉투를 열었다. 뿌연 시야 사이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잘 아는 모습이었다. 실루엣만 봤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개자식……”

“이번에는 특별히 하루라는 시간을 줄게. 당장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정도면 완전 천사 아니냐? 어디 가서 창피해서 악마 명함도 못 내밀겠네.”

놈이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한없이 가볍게 차가운 손이었다.

“물론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여태 그런 인간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야.”

그렇게 놈은 사라졌다. 서류 봉투를 찢고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온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부모님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냐며 내게 다가왔다.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잘 아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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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연우 2016. 12/29

'놈' 소름끼치게 절망을 주네요. 가슴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