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서른번째 길

시계를 바라본다. 째깍째깍 초침이 내는 소리에 귀가 쫑긋해진다. 지긋이 초침을 바라본다. 초침은 다급하게 발을 움직이지만 시침과 분침은 여유로웠다.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달팽이가 기어가듯이 느긋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아니 그전에 움직이기는 하는 걸까? 가만 보면 초침만 멍청하게 열심히 달리며 헛도는 것 같다. 느릿한 시간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딸깍.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죽은 듯이 얌전했던 사람들이 일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김씨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평생을 기다리는 줄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팔과 다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한 바퀴 돌리는데 뿌드득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온 몸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몸을 풀고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말에 좋은 점이 있다면 조기 퇴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나마 정 없는 회사의 마지막 자비랄까? 연말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라고 해주는 건데 웃기는 것이 그 실상은 달랐다. 술상이나 벌리고 밤새도록 달리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만 봐도 서로들 쳐다보면 낄낄거리는 모습이 안봐도 비디오였다.

“김씨! 오늘도 한잔 하러 가야지.”

동기인 이씨가 딸깍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한껏 상기된 얼굴이 이미 술을 마신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씨가 김씨에게 어깨동무를 해왔다.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함에 김씨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씨가 콧노래를 연달아 불렀다.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열심히 만지더니 김씨의 얼굴 앞으로 가져왔다.

“야, 또 이 형님이 좋은 데를 알아놨어. 말만 하라고 어디든 다 있으니까.”

술집. 어김없이 술집에 관한 것이었다.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적게 봐도 십 수 군데는 되어 보이는 사진들이 보였다. 김씨가 고개를 젓고는 이씨를 쳐다보았다. 무어가 그리 신나는 걸까? 헤벌쭉한 모습이 바보 같았다.

“아니야. 오늘은 그냥 집에 가려고.”

“에이, 뭘 또 빼고 그래? 어차피 집에 가도 할 거 없잖아? 여기 봐봐. 이런 게 요즘 얼마나 핫한데.”

이씨가 신나서는 술집에 관한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즘 애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니, 이런 곳은 놀기 좋다니, 색다른 곳이 좋으면 이런 곳도 있다. 정말이지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씨가 눈알을 굴리며 하품을 내쉬었다. 한 귀로 듣고는 그대로 흘려 보내는 중인데 언제 끝날지 감 조차 오지 않았다. 입이 귀에 걸린 얼굴을 보니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긴 한데. 오늘은 사양할게.”

결국 이씨의 손을 풀고는 천천히 걸어나갔다. 이씨가 풀려난 손을 어색하게 마주 잡았다. 이씨가 김씨를 바라보았다. 뒤돌아 손짓을 하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물에 빠진 휴지마냥 늘어져있었다. 힘 없는 발걸음이며 처진 등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졌다. 이씨가 김씨 옆자리 동료에게 다가갔다.

“김씨 왜 저래?”

“글쎄요? 요즘 기운이 없는 것 같던데요.”

“응? 왜 그런데?”

“저야 모르죠. 것보다 오늘은 어디 갈 거에요?”

이씨가 고개를 돌려 동료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김씨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리고는 신나게 동료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사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주위에서 웃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오늘은 어디에서 무어를 할까? 기본 3차까지 가야지. 이런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김씨가 엘리베이터에 비춰진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는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것이 가관이었다. 얼마 전이라면 김씨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쯤 이씨와 함께 떠들면서 술 마실 생각에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클럽을 가서 아무 여자 손이나 붙잡고 모텔로 향했을 것이다. 그렇게 짧은 인연과 쾌락에 만족하며 집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길거리로 나와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거리에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김씨가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12월 31일. 과연 연말은 연말이다. 아직 초저녁인데도 사람들이 넘쳐나고 가게들은 벌써부터 분주하게 밤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리에 불빛이 빛나며 친구, 연인, 가족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정하게 길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김씨가 스크린 도어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크린 도어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아까 보았던 동료들이나 길거리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사람들에게서 보였던 떨림, 설렘, 기쁨 무엇 하나 김씨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멍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지하철이 오자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하철에 올라타 자리에 앉았다. 등을 살짝 기대고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지하철이 역을 빠져나가자 창 밖의 하늘이 눈에 띄었다. 해가 지고 석양이 하늘을 채워가는 것이 붉게 나타났다. 김씨가 거북이처럼 고개를 쭉 내밀었다. 언젠가 봐왔던 석양. 실로 오랜만이었다. 언제 봤었지? 희미한 기억들 사이에서 향수가 흘러나왔다. 김씨의 코 끝을 간질거리고는 김씨를 기억 속으로 천천히 끌어당겼다. 김씨가 지긋이 석양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그 풍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때는 김씨가 이제 막 취직을 했을 때였다. 으레 어느 신입사원이건 그렇듯이 김씨 또한 그때 회사 일에 서툴렀다. 자주 실수를 했었고 그 탓에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의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힘겹게 들어온 회사라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제가 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김씨의 유행어처럼 회사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은 물론이고 남의 일까지 나서서 도와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한다고 다 보상 받는 건 아니었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냉대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악바리로 보였을 수도 있고, 혹은 쓸데 없이 나선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김씨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확실했던 것은 김씨가 노력한들 다 알아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부에서는 김씨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대부분은 그리 알아보지 못했다. 열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못하면 욕을 먹는 것이 회사였고 현실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니 말이다.

그날도 그랬다. 김씨가 상사의 일을 떠 맡아 했는데도 욕을 잔뜩 먹었었다. 실수를 한 것도, 일을 제대로 못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이유로 왕창 깨지고 만 것이었다. 깨진 것도 깨진 것이지만 그보다 비참한 것은 원래 상사가 해야 할 일을 김씨가 했다는 것이었다. 기껏 모자란 시간 틈에서 남의 일까지 해주면서 욕을 먹다니 김씨는 생각이 점점 많아졌다.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숨을 내쉬며 창가를 바라봤는데 석양이 눈에 들어왔다. 태양이 저 너머로 들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하. 이렇게 보민 아이러니 했었다. 며칠 전만해도 김씨에게 이런 여유 따윈 없었다. 집에서 백수로 지내며 초초함에 시달렸다. 무어라도 하나 더 하려고 이력서를 준비하고 자기 개발서를 읽어나갔다. 집안에만 틀어박혀서는 하늘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석양을 바라보며 일을 할 수 있다니. 문득 감사했다.

‘그래도 해보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석양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때는 그런 게 큰 힘이 되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석양을 바라봤다. 그날의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불끈 쥐었고 힘을 얻어가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붉은 석양 빛에 눈을 찌푸렸다. 예전에는 석양을 보며 내일을 다짐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어느새 석양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내일을 생각하며 힘내는 것은 사치이다. 그저 오늘 하루가 지나갔다는 것에 감사하며 눈을 감았다. 주먹을 불끈 쥐는 일 따위는 없다. 어떻게든 편하게 하려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이다.

환승을 하기 위해 일어나 승강장으로 나갔다. 승강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는 환승을 위해 김씨와 같이 걸어갔고, 누군가는 출구를 찾아 계단을 올라갔고, 또 누군가는 서서 핸드폰을 바라보며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가 멍하니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누군가 한 명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당신의 삶은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김씨가 고개를 숙였다. 열에 아홉은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물어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긴 다른 이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면 김씨 본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김씨 본인이 모르는 것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을까?

지하철이 오자 김씨가 일어나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몸을 부대끼며 지하철에 올라탔다. 다리에 힘을 주고는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한 남성이 보였다. 김씨 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성이었다. 머리가 잔뜩 벗겨진 중년 남성이었다. 김씨가 지긋이 남성을 바라보았다. 허무한 눈빛. 그 안에 무어가 담겼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생기 없는 남성의 얼굴을 보니 가슴 언저리가 저리고 답답했다. 순간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을 툭툭 때려보았지만 아무런 소용 없었다.

계단을 올라 출구로 나왔다.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폐 속에 자리 잡은 응어리들이 숨을 토해냈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마트를 향해 걸어갔다. 김씨가 마트 안으로 들어가 주류 코너에서 맥주 묶음과 육포를 집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축제라도 하는 줄 알았다. 형형색색의 불빛만으로는 모자랐는지 경쾌한 노랫소리까지 흘러나왔다.

계산대로 걸어가는 도중 아이들이 보였다. 부모가 사준 과자를 쥐고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방실방실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역시 애들이 좋지.’

씨익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한탄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어린 아이들이야말로 인생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새롭고 작은 일에 설레는 저 때야 말로 인생의 황금기이다. 내일을 기다리며 잠에 빠지고, 아침이 왔다는 것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를 것이다. 물론 저 아이들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면서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

비닐 봉지를 덜렁거리며 마트를 나왔다. 김씨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젊은 청년들 앞에서 멈추었다. 청년들은 길거리를 공연을 하려는 것 같았다. 악기를 만지작거리며 작은 스피커를 하나 꺼내왔다. 김씨가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몸을 들썩였다. 솔직히 그리 좋은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매력적이었다. 조금 엉성하였지만 오히려 그 점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연주를 하는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하나 같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열정적인 청년들의 모습에 김씨도 모르게 끌려갔다. 멍하니 가던 길 마저 멈추고 계속 음악을 들었다.

‘부럽다.’

문득 김씨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젊은 청년들은 하나 같이 생기가 돌았다. 악기를 다루는 모습에서 힘이 넘쳐났다. 얼굴 표정이며 손끝 행동 하나하나까지 살아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젊다라는 표현에 걸맞게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을 집중시켰다.

김씨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볼품 없고 기운이 쇠해진 것은 사실이다. 옛날에는 저들처럼 김씨도 기운이 넘쳤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던 시절. 김씨에게 두려운 일 따위는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았다. 어렸을 때 찍은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었다. 거리에서 노는 모습, 열심히 과제를 하는 모습, 밤새 죽어라 술을 마시는 모습, 등등 하나 같이 활기차고 힘이 넘쳐났다. 멍하니 친구들의 얼굴을 보았다. 익숙하지만 너무나도 낯선 얼굴들이다. 더 이상 저 시절의 얼굴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말이야. 요즘 회사 때문에 죽겠다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다 똑같았다. 한숨만 푹푹 내쉬고는 술을 들이 마셨다. 예전과는 다르게 기운이 쇠해진 것이 느껴졌다.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초라하고 가슴이 아팠다. 우리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도 그랬다. 결혼, 빚, 애들 교육 문제 등등 물에 젖은 종이마냥 축축 처져가지고는 갈수록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무어 하나 설레지 않았다. 그저 오가는 얘기에 지독한 현실이 가득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걸까? 매일 웃고 떠들던 우리였는데. 어쩌면 우리가 나이를 먹은 탓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일을 꿈꿀 나이는 아닌가 보다. 것보다는 오늘 하루 아무 일 없으면 감사하다는 얘기를 주고 받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러게. 나도 그래.”

친구들이 변했다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보다 소름 끼치는 것은 김씨 자신의 변화였다. 더 이상 김씨는 옛날의 김씨가 아니었다. 친구들의 한숨 소리에 반박할 수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무슨 한숨이냐고 구박했건만 지금은 조용히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 또한 친구들과 다를 거이 없었다. 공감한다면 더 공감했었지 반박 따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김씨에게 더 이상 일상의 의미는 없었다. 매일이 똑같은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씨는 철저히 오늘을 살아갔다. 밤에 꿈을 꾸기보다는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늘보다 찬란한 내일은 없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은 내일이 김씨를 기다렸다.

 

김씨가 조용히 악기 케이스에 돈을 넣었다. 그러자 청년들 중 하나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청년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이 사람도 늙어버릴까?’

순간 시체처럼 늙어버린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등골 사이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 맥주를 집어넣었다. 그 후에 전에 샀던 반찬들을 하나 둘 꺼내 쟁반에 올려놓았다. 즉석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놓고 뒤돌아 선 순간 후라이팬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가 가득 쌓인 채 처량하게 있는 놈이 김씨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김씨가 후라이팬을 살짝 만져보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채 먼지가 잔뜩 묻어 나왔다. 녀석을 써볼까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는 이것 저것 요리도 해 먹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저 밥이라도 먹으면 다행이었다. 배달 음식이나 즉석 식품이 아니라 이렇게라도 집 밥을 챙겨 먹는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야 했다.

티비를 켜놓고 밥상 앞에 앉았다. 한 숟갈, 두 숟갈 밥을 떠 먹는데 영 시원찮았다. 이상하게 밥맛이 없을뿐더러 먹고자 하는 의지 조차 나오지 않았다. 숟가락이 돌덩이마냥 무거워 움직이기 힘들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또 한숨을 쉬고 있다. 요즘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는 것 같다. 이러다 하늘이 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김씨가 고개를 저었다. 답답하다. 폐 속에 솜이 들은 것 마냥 먹먹하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동시에 가슴 속에서 이상한 감각들이 흘러나왔다. 가슴 언저리에 튀어나온 놈들은 김씨를 놓아주지 않았다. 목구멍을 타고 김씨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피부를 통해 들어가면서 온몸 구석구석으로 자리잡았다.

고개를 들어 티비를 보자 드라마 속 남녀가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록 연출된 모습이라지만 저거야말로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삶 말이다.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면 모든 것이 명확했을 것이다. 김씨가 느끼는 오묘한 감정 따위는 모른 채 계속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먹다 남은 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숨을 내 뱉고 싶어 끄윽거렸다. 입을 틀어막고 올라오는 기운들을 물로 삼켰다. 트림을 내 뱉고는 가슴을 두어번 치고는 반찬들을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그릇은 싱크대에 던져놓고는 냉장고에서 맥주와 육포를 꺼내와 소파에 앉았다.

치익.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언제나 그 소리는 경쾌했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금방이라도 목 넘김을 느끼고 싶어 혀가 미쳐 날뛰었고 입은 잔뜩 벌리고는 아기새 마냥 요동쳤다. 그렇게 환장하는 맥주이건만 오늘은 좀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멀뚱멀뚱 맥주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맥주의 겉에 물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하며 탄산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바라보고 나서야 천천히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맥주를 들었다. 어느새 미지근해졌다. 입으로 가져가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미 김이 빠진 맥주는 최악이었다. 맥주 맛도 그렇고 요즘 뭐 하나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 김씨였다. 김씨 본인 마음이라 하나 도저히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인지. 어쩌면 요즘 들어 느껴지는 답답함에 머리가 미쳐버린 것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맥주를 버리지는 않았다.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최악이지만 적어도 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오늘은 맥주 맛 따윈 뒷전이다. 취하는 것이 김씨에게 최우선이었다. 이 답답함을 날려준다면 맛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한 캔, 두 캔 그렇게 술을 마셔 나갔다. 답답한 속을 달래기 위해 술을 계속 들이부었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평소라면 이미 취했을 것이다. 술이 약한 김씨는 어디 갔는지 취할 정도를 넘었건만 정신이 말짱해졌다. 올라오는 맥주에 꺼헉하고 트림을 하고 눈을 깜빡였다. 오히려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정신이 또렷해지자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의문들이었다. 그간 쌓여있던 의문들이 머릿속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눈을 피하며 살아왔건만 지금 이 순간은 어쩔 수 없다. 눈을 돌리려고 해도 놈들이 따라왔다. 시퍼렇게 눈을 뜨고는 정면에서 나를 마주보았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이빨을 잔뜩 내세웠다.

‘아아,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밀려오는 의문에 창가에 다가가 밖을 바라보았다. 까만 밤하늘 아래 도시는 아직도 빛나고 있었다. 현란한 간판들 사이로 드문드문 하얀 전등 빛이 보였다. 높은 빌딩 속에는 하얀 전등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건만 아직도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정말 열심히들 살고 있구나. 멍하니 하얀 불빛을 따라보았다.

생각해보면 김씨도 저들처럼 열심히 살아왔다. 시골에서 올라와 힘겹게 취직하고 뼈 빠지게 일을 했다. 촌놈 소리 듣지 않으려고 하나라도 더 공부했고, 더 노력했다. 남들의 배는 일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더 무리하면 큰일날 수도 있어요. 자칫하면 올해가 끝일 수도 있어요.”

한때는 의사가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웃으며 넘겼지만 사무실에서 픽하고 쓰러질 때는 심각성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래도 그 덕에 인정을 받았다. 실적을 올리고 진급을 하며 동료, 상사에게 인정을 받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하나 둘씩 입사 동기들이 버티지 못해 잘려나가는 와중에 자리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눈을 돌려 거리를 보았다.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넘쳤다. 온갖 불빛들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역시 시골과는 달랐다. 시골이었다면 지금쯤 아무도 없었을뿐더러 허약한 가로등 하나만 덜렁 남아있었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과 간판 사이로 서울로 올라온 첫날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오는 날. 기차를 타고 떠나가는데 건너편 창문으로 부모님이 보였다. 김씨는 자리에 앉는 것도 잊은 채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저 멀리 부모님이 작아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고 나서야 김씨는 자리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았다.

‘너도 이제 네 생활을 하겠구나.’

기차에 올라타기 전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담담한 말 속에서 그제야 집을 나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어렴풋이 느껴질 뿐이었다. 집을 나가 혼자 산다는 것은 사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서울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김씨는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

덜컹덜컹. 기차가 달리자 창 밖의 풍경들이 하나 둘씩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 역을 나와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논과 밭이 전부였다. 드문드문 집이 보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풀과 나무였다. 눈을 뜨면 넓은 들판이 보이기도 했고 탁 트인 푸른 하늘이 보이기도 했다. 점점 기차가 달릴수록 논과 밭은 줄어들었다. 집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로 건물들이 줄지어 이어갔다. 빌딩의 높이는 점점 높아졌고 마침내 풀과 나무는 없어졌다. 초록 땅 대신에 검은 아스팔트가, 푸른 하늘 대신에 회색 건물들이 김씨를 반겼다.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두근거렸다. 월셋방으로 가는 길, 지하철을 타는데 몇 번이나 잘 못 타서 예상 시간보다 두 배는 오래 걸렸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역에서 월셋방으로 가는 길을 헷갈려 결국 저녁이 되어서나 집에 도착했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두근거렸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어도 입이 귀에 걸려서는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가슴이 계속 뛰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특히 집에 도착하고 짐을 풀 때는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나 둘씩 짐을 풀어나가며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도시에서의 삶, 두근거리는 삶을 갈망했다.

짐을 풀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밤이 되었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하나 사 먹은 후 쓰레기를 버릴 때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아직도 그날의 전화는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그래. 잘 도착했니?”

“네. 짐도 다 풀었어요.”

“방은 어떠니? 살만하니?”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작은 방이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리 좋은 방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형편 없는 방에 가까웠을 것이다. 천장 구석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있었고 군데군데 난 구멍들 틈으로 벌레가 새어나오기도 했었다. 창문을 열면 사람들의 다리가 훤히 보였는데 그마저도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이 새서 열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곳이든 이곳은 김씨에게는 오롯이 김씨를 위한 공간이었다. 그것도 김씨의 삶이 시작되는 첫 공간이었다. 남들이 뭐라하던간에 김씨 마음에는 쏙 들었다. 숨을 들이마셨다. 쾌쾌한 먼지 사이로 상쾌한 공기가 들어왔다.

“괜찮아요. 그럭저럭 지낼만해요. 걱정마세요.”

그 후 어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내 방에서 한동안 나오시지 않았다는 얘기부터 오늘도 옆집 김씨 가족은 시끌시끌하다, 동네 이장님은 오늘도 아내를 피해 도망다녔다는 얘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어머니는 담담했다. 평상시보다 조금 차분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야기가 끝나가고 전화를 끊을 때쯤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려. 마냥 어린아이인줄 알았는데 이제 너도 홀로 사는 구나.”

“그러네요. 너무 걱정마세요.”

“그래. 너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힘내렴.”

“네. 걱정마세요. 주무세요.”

전화를 끊고 이불 위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말했던 ‘네 생활’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두근두근. 심장은 멈출 줄 몰랐고 그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멀쩡해지고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결국 아무리 몸을 뒤척여도 잠을 잘 수 없기에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야경 좋네.”

탁 트인 풍경에 숨을 내뱉었다. 빛나는 도시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어두운 밤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는 마치 보석 같았다. 그 안에 무수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나도 저들 틈에서 저들처럼 살아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김씨의 머릿속을 채워나갔다.

‘앞으로 힘내렴’

어머니의 한마디에 김씨가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는 그날 빛나는 도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분명 같은 풍경이다. 똑 같은 집은 아니지만 풍경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빛나는 조명에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은 왜 이러는 것일까? 그때는 무어가 그리 좋았을까?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게 설렜는지. 눈앞의 야경도 별 볼일 없다. 아름답지도 설레지도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하나 둘씩 의미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눈을 뜨고 맞이하는 하루는 텅 비어있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새로움도 없었다. 어제와 똑 같은 하루, 그저 그런 하루의 연속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가슴이 먹먹했다. 거울 속 모습을 바라보면 초라하고 공허했다. 텅 비어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고 막막하기만 했다.

‘분명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근본적인 의문은 김씨는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이다. 분명 김씨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물론 요즘이야 전보다는 덜 할 수도 있다. 시간이 꽤나 흘러 요령이 붙어 꾀를 부리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도태되었다고 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만일 누군가 김씨에게 노력하냐고 물어본다면 당당히 말할 것이다.

“적어도 당신보다는 노력 하는 것 같은데?”

매일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몸 하나 챙기지 못했다. 남들 다 하는 연애도 하지 않았고 그 시간에 업무를 봐왔다. 그렇게나 일을 하는데도 이상하리만큼 김씨의 마음은 뿌듯하지 않았다. 보람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허망함이 가득하다. 왜 이리 허전한 것일까? 언제나 마음 구석에 자리 잡은 놈은 김씨를 잡아먹었다. 머리부터 삼키기 시작해서 발끝까지 쑤욱 집어 삼키고는 김씨를 놓아주지 않았다.

새 맥주캔을 깠다. 치익하는 소리에 눈을 감았다. 물론 그 동안 김씨가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전에 서울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일취월장이 따로 없다. 그때는 매일 컵라면을 먹고 추운 날 보일러 한번을 제대로 켜보지 못했다.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딱딱한 바닥에서 잠들기도 했다. 허나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코딱지 만한 월셋방에서 오래됐기는 하지만 어엿한 전셋방으로 옮겼다. 그 사이에 침대나 에어컨도 생겼다. 더 이상 딱딱한 바닥에서 자지 않아도 됐었고 더우면 에어컨을 키고 추우면 전기난로를 켜서 땀을 흘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풍족한 생활 따위가 아닌 더 깊은 곳에 있을 것이다. 맥주 캔을 입에다 가져갔다. 단번에 들이마시고는 트림을 했다. 한참 술을 마시는데 문득 김씨의 눈에 기차가 보였다. 덜컹덜컹 기차가 어둠 속을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막 역을 출발해서는 눈에 불을 켜놓고 달려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지만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다음 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

문제는 막막함이지 않을까? 김씨가 잘 가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만일 김씨가 저기 보이는 기차와 같았다면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선로에는 신호도 있고 표지판도 있지 않은가? 위험한 구간에서는 주의를 기울일 수 있고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렴풋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삶이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잘 가고는 있는지 수치화 할 수 없다. 기계가 삶을 추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이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 잘 달려가고 있다 한들 그 끝에는 무어가 기다리고 있는 지 모른다. 제대로 된 역이 있을 수도 있고 한없이 추락하는 절벽이 있을 지도 모른다. 애초에 잘 달리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어쩌면 작은 돌멩이 하나에 탈선 했을지도 모르는 법이고 바퀴가 헛돌아 같은 자리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잘 못 가고 있는 걸지도.’

매일매일 같은 날들을 살아가고 있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 매일 살아가지만 한치 앞도 예상이 불가능했다. 어떤 불행한 일이 터질지 알 수 없었고 매년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 같다. 때때로 잘 못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계속 가기에는 아득했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멀었다. 이미 지나온 세월이 있기에 멈출 수 없었다. 그저 해왔던 것을 계속하면서 불안해할 뿐이었다.

김씨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하늘을 뿌옇게 채워나갔다. 푸우. 숨을 내뱉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라도 본다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 성 싶었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까만 하늘뿐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인공위성이 외롭게 붉게 빛나고 있었다. 김씨가 고개를 숙였다.

티비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쓸쓸히 미소를 지었다. 또 다시 한 해가 지나갔다. 어느덧 새 해가 밝아온 것이다. 시간은 거침없이 흐르고 있다.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한 채 김씨를 버리고는 먼저 달려가고 있었다. 이대로 계절은 흐르고 다시 끔 해의 마지막 날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때 지금과 다를까?

푸우. 김씨가 연기를 내 뱉었다. 고개를 저었다. 연거푸 연기를 내 뱉고는 창문을 닫았다. 퀘퀘한 담배 냄새가 방안 가득했다. 쌓여있는 맥주 캔을 발로 차자 남아있던 맥주가 바닥에 흩날렸다. 바닥에 얼룩진 맥주를 보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김씨가 멍하니 바닥을 바라도가 침대에 가서 몸을 던졌다.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덮었다.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새해가 되어서도, 내일이 되어서도 달라질 것은 없다. 앞으로도 그러겠지. 김씨가 숨을 내뱉었다. 가슴 언저리가 저려왔다. 온 몸을 감싸는 기운에 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김씨가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자야 할 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다. 내일 아침 일도 있으니 그만 자야만 했다. 지금이라도 눈을 감고 자야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김씨는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이대로 계속 천장을 바라보고 싶었다. 이대로 잠에 빠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대로 잠을 자고 눈을 뜬다면 아침이 올 것이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 말이다. 김씨가 몸을 뒤척였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두통이 전해졌다. 김씨가 머리를 감쌌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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