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나'가 없는 '나'의 일생은

눈알을 굴리다 희번득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가득했다. 수 많은 다리들 사이로 또 다른 다리들이 보였다. 이쯤 되면 커다란 지네 한 마리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언제나 그랬듯이 서로 부대끼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밀쳐내고 사이에 낑겨서는 다리에 힘을 주는 모습이 마치 무에 알이 잔뜩 올라온 것 마냥 우스꽝스러웠다. 바닥에서부터 열기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온 탓에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동시에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악취에 미간이 좁혀졌다.

‘이번 역은……’

아침 지하철은 항상 어두웠다. 그나마 밝은 거라고는 형광등과 전광판정도? 전동차 안에 있는 그 누구도 빛을 띠고 있지 않았다. 아니 블랙홀처럼 주위를 잡아먹고 있었다. 예외는 없다. 앉아 있는 사람이건, 서 있는 사람이건, 성별 나이에 상관 없이 다들 퀭한 눈빛을 지니고 있다. 얼굴에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눈동자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이곳 저곳 떠돌아다녔고 그마저도 스마트폰에 박혀서는 가여운 흰자만 둥둥 떠다녔다. 저들은 알고 있을까? 지금 자신이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인지, 혹은 무어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말이다. 사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쉽게 나온다. 생각이라고는 단 1도 없는 얼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욕하지는 않는다. 나 또한 저들과 같기 때문이다.

전광판을 보자 슬슬 내려야 한다. 몸에 힘을 주어 일어나려 하는데 털썩하고 주저 앉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만으로 몸이 비명을 질렀다. 팔과 다리에 납덩이라도 달아놓은 것 마냥 무거웠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삐그덕 삐그덕.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가는데 관절이 쑤셔왔다. 무슨 녹슨 기계처럼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천천히 올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멍하니 핸드폰을 보거나 자기 발을 보고 있었다. 멍청하게 기계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그 끝에 무어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돼지만도 못한 것 같다. 도살장으로 가는 돼지 조차도 자신의 운명을 깨달아 저항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가만히 올라가는 우리는 돼지만도 못하다.

지하철 출구를 나와 회사로 향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쓸데 없이 맑았다. 회사로 가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밝고 화창했다. 고개를 돌려 출근 하는 직원들을 보았다. 하나 같이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제대로 걸어가고는 있지만 얼핏 보면 발을 질질 끄는 것처럼 보인다. 죽을 듯한 표정을 하고는 무슨 시체처럼 걸어가고 있다. 눈에는 생기가 돌지 않았으며 허망한 눈에서 영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보니 문득 회사가 달라 보였다. 무식하게 크기만 큰 건물인줄 알았더니 시체나 담는 관처럼 보였다. 개중에는 정말로 시체가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과 마음이 사라진 몸뚱아리가 회사에서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우, 월요일은 회사 오기 정말 싫다니까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어느 세월에 주말이 또 온데요?”

아침에 모인 직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마냥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딱히 누가 나서서 모이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잘들 모였다. 커피나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이 사람들이 아침에 매일 하는 짓이었다. 어느 수다나 그렇듯이 이 모임도 그다지 의미는 없었다. 이따금씩 주말에 자신들이 무어를 했는지 얘기하곤 하지만 그 끝은 항상 회사를 온다는 것에 대한 한탄이었다.

조금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그 안에 있었다. 출근을 하면 자연스레 커피 한잔을 타서 모여가지고는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 월요일이 왔다는 것에 한탄을 하며 ‘헬요일’ 같은 우스갯소리나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탄이나 하고 생각 없이 웃는 모습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 사건이 있는지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깨달은 바가 없는 모양이다.

죽음! 일주일 전 나는 죽음에 대해 깨달았다. 타인의 죽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 관한 것이다. 나는 죽어있다.

“여러분 저는 죽어있어요.”

물론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저들 앞에 가서 이런 얘기를 한다면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혹은 미친 것 아니냐며 뒤에서 수군수군거릴 것이다. 그렇다. 분명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다. 매 순간 숨을 쉬고 오감의 자극을 받으며 뇌세포가 작동하고 있었다. 장기나 근육은 언제든지 일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어디 하나 아픈 곳이 없었다. 아니 살아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풍족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때로는 여자를 꼬셔 섹스도 하며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어있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정신을 차리니 나에게서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풍족하게 살아가도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아침마다 출근을 하려고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거울 속에 보이는 남자에게서 낯섦이 느껴졌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 같은 어색함이 줄곧 자리잡았다. 나는 나의 모습에서조차도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딴 사람처럼 늘 낯설고 어려웠다. 가끔은 정말로 내가 맞는지 거울에 손을 가져다 대기도 했었다. 손가락 끝이 거울에 닿으면 소름이 확 끼치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다. 숨을 쉬어도 ‘나’의 숨결을 느낄 수 없었다. 텅 빈 방안에 홀로 있을 때면 ‘나’가 어디에 있는지, ‘나’가 무어를 원하는지, ‘나’는 대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나’가 존재하는지 조차 의심스러워 공포에 떨기도 했다.

고개를 돌려 과자님의 책상을 보았다. 아직 남아있는 서류와 필기구 몇 개가 책상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과장님이 내게 말을 걸어 오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나처럼 내게 다가와서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다. 과장님, 아니 이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커다란 진실을 안겨주고 사라졌다. 아직도 그날의 섬뜩한 감각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이형의 서글픈 눈빛과 나에 대한 진실은 심장 한 구석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일주일 전 점심시간, 모두가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남아서 잔업을 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기한이 그날까지인데 뒤늦게 수정사항이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밥도 먹지 못하고 불평이나 하며 머리를 감싸고 있었는데 이형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었다.

‘너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섬뜩한 문자였다. 불길했다. 문자 속 단어 하나하나가 화면을 뚫고 눈을 뚫고 들어오고는 심장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형의 문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얼른 이형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한참 회사를 뒤지는 도중 큰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데 없는 소란에 얼른 창가로 달려갔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모두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았다. 개판이었다. 우왕좌왕하면서도 사람들은 한자리에 몰려 있었다. 웅성거리면서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곳을 향해 눈을 돌리니

“이형……?”

이형이 바닥에 누워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들러붙어있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머리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셔갔고 팔과 다리는 이상하게 휘어져 있었다.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고, 누군가는 핸드폰에 무언가를 얘기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다. 하지만 나는 이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싸늘한 얼굴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등골 사이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 얼굴은 언젠가 내가 거울 속에서 봐왔던 낯선 남자와 똑같았다.

 

“자네는 과장이 왜 자살했는지 아나?”

그 다음 날 부장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장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면 회사 전체가 난리가 났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였지만 그 사람이 이형이라는 건 더 큰 문제였다. 회사에 이형만한 사람은 없었다. 이형만큼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 덕에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며 승진행진을 했었다. 그만큼 이형은 뛰어난 인재이기도 했었고 유능한 동료, 존경 받는 상사였다. 그런 이형이 자살이라니. 당연히 다들 수군거렸다.

“어머 얘 그거 알아? 이과장님 사실 애인이 있었는데 바람이 나서 그랬대.”

“아니야. 얘는 뭣도 모르고, 사실 도박 빚이 그렇게 많았다네. 거의 수 억은 됐었대. 그래서 매일 사체업자한테 시달리다가 자살한 거래.”

“정말? 이과장님 그런 사정이 있었어?”

문득 지나가는 길에 이런 소문들이 들릴 정도였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다 헛소문에 불과했다. 이형에게 숨겨둔 애인도, 도박 빚도 없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틀린 얘기였다. 그들은 이형이 왜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무어가 이형을 절망 속에 가둬놓았는지,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잘 생각해봐. 그래도 가장 친한 사람이 자네 아닌가? 혹시 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거야?”

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장도 다른 사람과 같았다. 그러겠지. 한참 잘나가는 젊은 과장에게 죽을 이유가 어디 있다 생각이나 할까? 오히려 정신병이 도져서 미쳤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건 저도……”

“알겠네. 이제 사무실로 가봐.”

사무실로 가기 전 뒤돌아 부장을 쳐다보았다.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부장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형은 절대 정신병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생각이 깊고, 냉철하고, 맨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명했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게 이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형은 자신에 대해 깨달을수록 고통에 사무쳤다. ‘나’가 없는 삶에 대해 알아갈수록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고민할수록 고통만 잉태됐을 것이다.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피폐해지는 얼굴과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다크서클 사이로 이형은 점점 멀어져만 갔던 것이다.

 

언젠가 이형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나누던 시절,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었건만 이형이 커피 한모금을 마시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사람이 왜 사람인지 알아?”

“네?”

이형은 언제나처럼 질문을 던졌다.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글쎄요? 이성? 이성 때문이겠죠. 그 왜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고릴라의 털을 다 밀고 옷을 입혀도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요. 이성이 있어서 사람답게 사는 거 아닌가요?”

머릿속에서 나오는 말을 그냥 내뱉었다. 솔직히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 시작인가 싶었다. 우리는 줄곧 이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성격도 비슷하고 취향도 통하는 구석이 많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서슴지 않고 했었다. 때로는 우주의 기원에 관한 얘기를, 또 때로는 어젯밤에 본 야한 영화 속 여배우의 가슴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답은 아니야.”

“그래요? 그럼 정답이 뭔데요?”

이형이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커피를 내려놓고는 아래를 쳐다보았다. 난간 아래를 쳐다보는 모습이 위태로워 순간 가슴이 철렁거렸다. 오랫동안 이형을 봐왔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허무함…… 이형에게서 거친 파도처럼 흘러나와 주변을 잡아먹었다. 이상했다. 분명 이형은 내 앞에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었고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자꾸 이형이 멀게 느껴졌다.

“그건 바로 자유의지야.”

“자유의지? 그게 뭔데요?”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에 관한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 자신의 의지와 신념대로 사람답게 살아가는거지.”

“듣고 보니 그렇네요. 심오하네요.”

담담하게 얘기하는 이형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어두웠다. 얼굴에 짙게 내려온 그림자는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과장님?”

이형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한참이나 아래를 쳐다보던 이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살아있는 걸까?”

이형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무실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언젠가 이형과 같이 했던 옥상. 그 난간에 올라가 아래를 쳐다보았다. 그때는 이형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몰랐다. ‘나는 살아있을까?’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것이 담고 있는 비참함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지 못했다. 자유의지가 살아가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물어볼 만큼 멍청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뚜렷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그날의 이형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형이 무어를 느끼고, 무어에 절망했는지.

건물과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밥을 먹고 돌아오는 사람, 회사에 남아 잔업을 하는 사람,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사람, 그들 틈으로 내 모습이 보였다. 일을 하는 모습, 상사에게 깨지는 모습, 야근하는 모습, 피로에 젖어 고개를 숙인 모습, 지친 몸을 질질 끌면서 퇴근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살아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분명 내가 보였는데 ‘나’는 없었다. 내게 의지라고는 단 1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일을 할 뿐이었다.

일을 한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맡은 바를 하면서 그렇게만 살고 있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보람도 성취감도 없었다. 그저 숨을 쉬며 살아갈 뿐. 영혼이 없는 기계 마냥 덜컹거리면서도 일을 해왔던 것이다.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 존재가 불확실할 정도로 아주 긴 세월 동안 이 사실을 모른 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왔으면 계속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지만 깨달음이란 무서운 것이다. 이형의 죽음으로 한번 깨어난 의식은 잠들지 않았다. 전처럼 살지 못했고 끊임없이 의문들을 낳았다. ‘식자우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의문들은 고통을 잉태했다. 전에는 몰랐던 ‘나’와 자유의지에 가슴이 철렁거리고 머리가 아파왔다. 놈들은 나에게 고통을 준 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내 삶을 뿌리 채 바꿔놓았다.

“자네 요즘 왜 그래? 보기 안좋아.”

이형이 죽고 난 뒤 내 일상은 엉망이 되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부장에게 대판 깨지고 말았다. 하루하루 묵묵히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게 내 전부였는데 이제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퇴근을 하는 시간이 독처럼 느껴졌다. 내 피부를 타고 들어와 온 몸을 녹여나갔다. 그 덕에 일하는 시간이면 목을 졸라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면 두통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작은 일에도 고슴도치 마냥 가시를 잔뜩 내세웠다.

내가 점점 미쳐가는 걸까? 의문들은 계속 나를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고통을 받으면서 내가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면 ‘나’가 없는 곳은 비다 회사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지하철에서도, 음식점에서도, 심지어 내 방 침대에서도 ‘나’는 없었다.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좋은 학교를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했는데도 아무런 보람이 없었다. 무어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일상. 그런 일상에 잡아 먹혔다.

이형은 내게 자유의지가 있기에 사람답게 살아간다고 말했다. 즉 ‘나’가 있기에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가 없는 나의 삶은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한쪽 발을 들어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갔다. 살짝 몸을 흔들어 앞을 내다보았다. 죽음. 완벽한 죽음이라면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 육체가 으스러지고 가루가 된다면 내 영혼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고통도 내 목을 조르는 답답함도 해소될 것이다. 이제 편해지고 싶다.

‘너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몸을 던지기 직전 이형의 문자가 떠올랐다. 핸드폰을 꺼내 이형을 문자를 바라보았다. 이형은 과연 이곳에서 ‘나’를 찾았던 걸까? 그렇다면 이형의 문자는 무어를 의미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형은 나와 같지 않았을까? 완벽한 죽음. 그렇다면 이것은 이형이 내게 보내는 경고 같은 것인가? 천천히 난간에서 내려와 벽에 몸을 기대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등골 사이로 식은 땀이 흘러내렷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실감이 났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새하얀 구름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늘은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화창하고 아름다웠다. 아아. 죽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보다. 구름 몇 조각이 하늘을 몽실몽실 떠다니는 광경에 탄성을 불렀다.

‘뭐지. 이 느낌?’

문득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하늘이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희미한 향수를 따라 뇌를 파헤쳤다.

‘아!’

문득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오늘 같은 하늘을 찍은 사진. 사진. 사진이었다. 사진이라는 단어에서 옛 향수가 물씬 흘러나왔다. 그러자 머리를 얻어맞은 것 마냥 쿵하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싸구려 카메라 하나를 들고서 이것저것 사진을 찍고 다녔는데. 항상 미소를 짓던 그 시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미세하지만 ‘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회사를 뒤로 한 채 집으로 달려갔다. 길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미친놈처럼 두발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비명을 질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히며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야만 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방으로 들어갔다. 무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그런 얘기 들을 여유 따윈 없었다. 당장이라도 확인해야만 했다. 희미하게나마 떠오르고 있는 ‘나’의 흔적을 따라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 또한 이형과 같을 것이다.

침대 밑에 있는 상자 하나를 꺼냈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먼지가 수두룩하였다. 입구를 틀어막은 테이프는 접착력이 떨어져 너덜너덜거렸다. 휴우,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입구에 손을 올렸다. 얼마 만에 여는 것인가? 기억나지 않았다. 상자에 무어가 들어있는지도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이 안에 ‘나’의 흔적들이 있다는 것만 느껴지고 있었다. 가슴이 떨렸다. 수능 보는 날도, 회사에 면접을 보는 날도 지금처럼 떨리지 않았는데.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가볍게 기침을 하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십년? 아니 십오년쯤은 더 되지 않았나? 상자를 열어보니 낡은 카메라와 수 십장의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산, 강, 아스팔트 길 같은 풍경사진부터 친구, 가족, 한때 사귀었던 연인 사진까지 꽤나 다양한 사진들이었다. 사진들은 엉성하지만 정겨웠다. 서투른 만큼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액자에 담긴 사진 한장이 눈에 띄엇다. 오늘 옥상에서 떠올린 사진이었다. 하늘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뒷면에 ‘대회 일등!’이라는 글씨가 작게 써져 있었다.

손을 뻗어 카메라를 만져보았다. 딱딱하고 거친 표면이 감탄을 자아냈다. 오래된 카메라였다. 디지털이 아닌 필름 카메라였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녀석이 작동을 한다는 것이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녀석은 기특하게 살아있었다. 전원 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손맛에 자세를 취하고 셔터버튼을 눌러보았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화려하게 터졌다.

“뭐하고 있니?”

고개를 돌려보니 어머니가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바라보더니 점점 시선이 상자와 카메라 쪽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미간 사이가 좁혀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여서 나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카메라 아니니?”

유독 ‘카메라’라는 단어만 강조했다. 어머니의 버릇이었다. 또 무어가 마음에 안드는 것인지 말 속에 가시가 가득했다. 살짝 스치기라도 한다면 피가 철철 흘러나와 바닥을 적실 것이다.

“그러게요. 옛날에 쓰던 건데 아직도 있었네요?”

“그런걸 왜 가지고 있니? 얼른 버려.”

어머니가 싸늘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보았다. 오물이라도 보는 것 같다.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째려보았다. 냉담한 어머니의 반응에 머리가 굳어갔다. 왜지? 왜 어째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것 일까? 그래봐야 오래된 카메라 하나 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유난 떨 필요가 있을까?

“아직도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헛소리를 할 생각이니?”

그 순간 어머니의 한마디가 머리를 때렸다. 망치로 세개 후리듯이 쿵하고 내리쳤다. 머리가 띵하고 아찔했다. 그래. 바로 사진작가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고 다녔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먼지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던 ‘나’의 숨결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상자 속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다양한 사진 속에는 ‘나’가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나’는 분명히 살아있었다. ‘나’의 모습을 지닌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나’의 미소, ‘나’의 생각, ‘나’의 의미가 담긴 사진들을 보니 그제야 내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카메라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고 ‘나’의 온기가 전해졌다.

“그래. 그랬었지. 나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지.”

한번 흘러 넘치기 시작한 기억은 머릿속에서 빠져 나와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려 가슴으로 들어갔다. 봇물이 터지듯이 거세게 내 심장 한구석으로 흘러 들어갔다. ‘나’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부르짖었다. 그래. 나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에 틀어박혀서는 퇴근만 바라보고, 회사 갈 생각에 우울한 일요일 밤 따위는 내가 바란 것이 아니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이다.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느낀 것을, 보는 것을. 그런데 지금 나는 무어를 하고 있는 거지?

“얘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니? 어릴 때 하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린거니?”

어머니의 말은 싸늘한 비수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심장 한 구석에 꽂히는 동시에 내 쓰라린 어린 날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정확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던 시절. 나는 어머니에게 당당히 뛰어갔다. 대상을 따낸 사진을 품 속에 꼬옥 안고는 집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어머니의 미소를 떠올렸다. 비록 사진을 보면 싫어하는 어머니라도 상장을 보면 웃어주리라 믿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어리석었다. 대상을 보여주면 인정 받을 거라 믿었다. 이제와서 보면 순수하다 못해 멍청했다.

“이런걸 뭐하러 한거니? 그보다 학원은 안가니?”

그날도 어머니는 잔뜩 찡그린 채 나를 쳐다봤다. 눈빛에는 냉소가 가득했었고 미소를 지으리라 생각했던 입은 굳게 닫혀있었다. 처참했다. 아니 처참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날 어머니는 내 심장을 도려냇다. 내 어린 심장을 바닥에 패대기 치고는 잔인하게 짓밟았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심장이 부셔지고 가루가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럴 시간에 공부나 하렴. 이제 고등학교도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이럴래? 나중에 좋은 대학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해야지.”

그 자리에서 방으로 달려갔었다. 문을 잠그고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천천히 흘러내리는 눈물에 숨죽여 흐느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로 카메라를 잡아본 적은 없었다. 아니 카메라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아예 없었다. 나는 작은 상자 속에 카메라와 사진들을 넣엇다. 그 안에 ‘나’를 가둬 놓은 채 홀로 쓸쓸하게 내버려두었다. 그리고는 기억 속에서 천천히 지워나갔다.

그 이후 카메라 대신 펜을 붙잡았다. 사진 대신에 문제집을 보고, 햇살 대신에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경시 대회 같은 곳에 나가 상장도 받고 높은 성적을 받았다. 그러면 어머니가 내게 미소를 보여주곤 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분명 그렇게 보고 싶었던 어머니의 미소였지만 아무 감흥이 없었다.

 

“어머니였군요. ‘나’를 죽인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이곳에 있었다. 상처 받고 눈물을 흘린 채 이곳에 버려졌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가엽게도 소리를 지르다가 끝내는 이곳에서 쓰러졌을 것이다. 아아. 어째서 빨리 알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나’에게 솔직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무슨 소리니. 얼른 카메라 같은 건 버리고 회사나 다시 가렴. 설마 그것 때문에 집에 온 건 아니지?”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카메라를 꼭 쥐고 천천히 일어났다. 아직 늦지 않았다. 미세하지만 ‘나’가 남아있었다. 이 카메라 속에 살아남아 내게 손을 뻗어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을 마주보았다. ‘나’를 죽인 눈빛. 내게는 절대적이었다. 그 모든 것에 마주했다.

“싫어요. 이건 제 거에요. 어머니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어요.”

신기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이라면 어머니의 한마디에 벌벌 떨었을 터인데 말이다. 어머니의 눈이 조금씩 커져갔다.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대항했다. 이제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의 눈빛보다도 두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죽인 것은 비단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나’를 죽였다. 어머니를 핑계 대며 비겁하게 ‘나’에게서 눈을 돌렸다. ‘나’를 외면했던 것이다.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면서도 이 손으로 ‘나’를 밀어버렸다. 저 아래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멋대로 잊어버렸다.

“제가 되고 싶었던 건 회사원이 아니에요. 그건 어머니가 바랬던 거죠.”

“얘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옆집 김씨 봐라. 아들이 대기업 다닌다니까 어찌나 부러워하는지. 그걸 알고나 하는 소리니? 그리고 요즘에 대기업 취직하는 게 소원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고 있니?”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건 그 사람들과 어머니의 행복이겠죠. 전 아니에요. 어머니 덕분에 대기업에 들어갔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행복하지는 않아요.”

늘 그랬다. 공부를 하고 좋은 학교를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 이후 일을 하고 남들에게 지지 않을 실적을 쌓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어머니는 입이 귀에 걸려서 주변에 자랑을 했었고 동창생들은 대기업이니 뭐니하면서 시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중심에 있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고요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들판처럼 조용했었던 것이다. ‘그렇구나.’라는 생각만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다. ‘나’가 없는데 무어가 느껴지겠는가? 정작 내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당연한 걸 이제야 깨닫다니.

“제 삶은 제가 살아가는 거에요. 더 이상 제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한다 해도 더 이상 듣지 않을 거에요. 전 저를 위해 살거에요. 어머니의 행복이 제 행복이 될 수는 없어요.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거에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를 피해버렸다. 방을 나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다. 그 어린 날 상자에 ‘나’를 가둘 것이 아니라 지켜야만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서 말이다.

어머니가 떠난 후 카메라를 쥐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봐왔던 내 모습이 보였다. 거울 속 카메라를 든 내 모습이 반갑게 느껴졌다. 천천히 카메라의 온기를 느꼈다. 거울을 바라보면서 셔터 버튼을 눌렀다.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토록 찾았던 ‘나’는 이곳에 있었다. 오래된 카메라에, 별볼일 없는 상장에 담겨있었다. 아무도 없는 이곳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곁에 있을 것이다. 내가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튿날 출근 하기 전 거울을 바라보았다. 활기찬 얼굴에는 생기가 나돌고 있었고 초롱초롱한 눈동자에는 힘이 넘쳤다. 이전에 봤던 낯섦 따윈 없었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이다.

이른 아침이라 회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책상 위에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사무실을 떠나기 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아무도 없지만 곧 있으면 다들 이곳에 올 것이다. 또 삼삼오오 모여서 시간이나 죽일 것이다. 아침이 왔다는 사실에 한탄을 하고 퇴근을 바라보며 일을 할 것이다. 하루가 끝나는 것에 한숨을 내쉬고 다가오는 아침에 머리가 아파올 것이다.

사무실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제처럼 난간에 기대에 아래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죽을 듯이 걸어오고 있었다. 영혼과 마음은 사라진 채 껍데기가 되었다. 그들에게서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불쌍하게도 무어가 결여됐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겠지. 얼마 전까지 나 또한 그랬다. 하루하루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시간만 흘러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하늘을 장식하며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카메라를 들었다. 어린 날 대회 때처럼 설렘을 가득 안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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