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닿을 수 있다면

숨을 크게 쉬어본다. 양쪽 폐로 차가운 공기가 차오른다. 쓰라린 바람에 몸을 웅크렸다. 조용히 난간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틈 사이로 차가운 강물이 보였다.
난간에 손을 가져갔다. 예상대로 차가웠다. 너무 차가워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래도 난간을 꼬옥 붙잡았다. 김형이 떠올랐다. 김형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김형이 어떤 생각으로 이곳에 온 걸까? 머릿속으로 김형을 떠올렸다.
퇴근 후 김형은 분명 혼자 이 다리 위로 왔을 것이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술에 취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형은 맨 정신으로 이곳에 왔다는 얘기다. 맨 정신으로 다리 위에 올라와 난간을 넘어 저 강물로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를 것이다. 강물로 사라지는 김형의 모습…… 김형이 떠난 뒤 매일 같이 김형 생각을 했다. 그렇게 결국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고개를 숙이자 강물이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물로 추정되는 것이 보였다. 늦은 밤이라 다리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출렁거리는 것이 마치 이리로 오라는 듯 손짓 하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을 기울이게 되었다. 점점 강물로 빨려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섬뜩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한 직감이었다. 논리적인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이곳에서 강물을 보며 김형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난간에 몸을 기대어 다시 김형을 떠올렸다. 김형이 생전 이런 얘기를 했다.
“너 혹시 그 강다리에 있는 난간에 대해 아냐?”
“난간? 아. 그 자살하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거?”
“그래. 그거 말이야.”
“근데 그게 왜?”
“이상하지 않냐?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지 않고 죽기 힘든 세상을 만드니까 말이야.”
어쩌면 그날 했던 얘기는 먼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고개를 젓고 난간을 잡았다. 그리고 그 위로 발을 올려보았다. 허리 위를 넘어가는 난간에 발을 올리려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 번 난간에 발을 올리려다 그만 또 넘어지고 말았다.
쓰라린 엉덩이를 붙잡으며 다시 일어나 난간을 붙잡았다. 이렇게 올라가기도 힘든데 김형이 무슨 재주로 이 난간을 넘어간 것일까? 이것도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이곳에 오면 무어라도 알게 될 것 같았는데…… 김형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김형이 자살을 하기 전날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말이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한다는 말은 위선에 불과하지. 내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단지 알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 이해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 뿐이야.”
“그럼 형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얘기야?”
“그래. 그렇기에 사람은 고독한 존재인거야. 또 그렇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고. 만일 정말로 이해하고 그 사람을 위했다면 그 사람이 죽게 내버려두며 안 되지.”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죽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야?”
“몰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다만 있다 해도 난 그 방법을 모르겠어.”
김형 또한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했다. 그 누구도 김형의 슬픔을 몰랐다. 심지어 나조차도 몰랐다. 몇 년을 일하고 친하게 지내던 나 또한 김형이 어째서 자살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다리에서 김형이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다리 밑으로 보이는 강물은 죽음이었다. 죽음 그 자체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었고 그것은 영원한 끝을 의미했다. 강물이 내게 언제든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분명 김형도 그랬을 것이다. 그 형 또한 나만큼 겁쟁이니 말이다. 그래도 김형은 나와 다르게 멈추지 않았다. 두려웠을 수도 있고 망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김형은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 자리에 온다면 김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김형이 있던 자리에 서서 김형이 봤던 것을 바라보면 김형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이렇게 보면 결국 김형의 말은 다 맞았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슬픔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다. 타인이 감히 나의 슬픔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이고 나라는 존재가 느끼는 슬픔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그렇다면 김형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었던 걸까? 만일 그때 내가 김형의 곁에 있었더라도 김형은 죽음을 택했을까?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그저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
그 순간 저 멀리 다리 끝 쪽에서 한 여자가 보였다.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없을 터인데 한 여자가 흐느적거리며 걸어왔다. 처음에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귀신을 보는 것 같았고 도저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가 난간을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난간에 올라갔다.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 보다 여자의 모습에서 김형이 보였다. 김형 또한 저렇게 난간을 올라갔을 것이다. 천천히 다리를 올리고 여자가 주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힘을 주어 난간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곧장 여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까 찧은 엉덩이가 쑤셔왔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계속 의문이 들었다. 과연 그날 나는 김형을 막을 수 없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 여자도 막을 수 없는 걸까?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발을 움직였다. 너무 늦기 전에 재빠르게 뛰어갔다.
“저기요.”
마침내 난간에 도착하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헉 거리며 숨을 내뱉었다. 힘겹게 말을 했지만 여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두 다리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난간을 잡은 손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가벼웠다.
“왜요? 나를 막을 생각인가요?”
여자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저 어두운 강물보다 시커멓고 무거웠다. 무거운 여자의 목소리가 내 귀를 짓눌렀다. 나는 여자를 향해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입을 떼려는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김형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이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그렇다. 나는 이 여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모르고 또 왜 목숨을 버리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느낀 절망과 슬픔은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슬픔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눈앞에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만일 이곳에서 그녀가 죽는 다면 그것은 김형의 죽음과 같을 것이다.
“전 당신이 누구인지 몰라요. 당신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자살을 하려는 지도 모르죠. 당신을 이해한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당신의 슬픔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니까요.”
여자가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 전. 이 다리에서 한 사람이 죽었어요. 그 사람은 저와 친한 사람이었죠. 전 아직도 생각해요. 어째서 그 사람이 자살을 한 것일까? 그래서 이 다리로 온 거에요.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요. 하지만 결국 알게 된 것은 없어요. 어째서 자살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 얘기를 왜 저에게 하는 거죠?”
“그때 그 사람을 막을 수 없었을까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을까요? 그 사람은 정녕 죽고 싶었던 걸까요? 사실은 누군가 자신을 말려주기를 원하지 않았을 까요?”
그러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난간을 잡고 있는 손도 떨렸다. 그 순간 가슴 한구석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김형도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겠구나.
나는 손을 내밀었다. 여자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어갔다.
“봐요. 저기 강물. 저 강물에 빠지면 정말로 끝이에요. 모든 게 끝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끝내고 싶은 건가요? 그래요. 나는 몰라요. 당신이 누구인지도 어떤 아픔이 있는 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말리고 싶어요. 그렇게 사라지기에는 당신이라는 존재가 너무 아까워요. 그러니 이리로 와요.”
여자가 내 손을 붙잡았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얼른 여자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고 난간을 넘을 수 있게 온 몸으로 여자를 지탱해주었다. 여자가 다시 난간을 넘어왔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소름 끼치던 담담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자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 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자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 번 김형을 떠올렸다. 김형의 말은 옳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타인의 죽음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날, 김형도 그랬을 것이다. 김형도 죽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고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잠깐의 잘못된 판단으로 김형은 이곳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김형 정신을 차렸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행동의 무서움을 깨닫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고개를 숙였다.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로는 이런 작은 손길이, 따스한 말 몇 마디가 사람의 목숨을 구해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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