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기도

기도

 

찬바람이 불어보는 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한다. 집안의 허전함을 느끼며 팔을 휘휘 저어본다. 역시나 손에 걸리는 것이 없다. 고개를 살짝 돌려본다. 나를 제외한 아무도 없었다. 쓴 웃음을 지어본다. 언제는 좁아터진 집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넓은 집인 줄은 몰랐다.

창문을 연다. 뺨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숨을 들이마신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고 몸 안을 맴돌았다. 슬며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만 하늘에 달이 작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드러내기 수줍은지 구름에 살짝 몸을 가린 채 세상을 어둡게 비췄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했다. 도시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다. 도로 위를 자동차가 다니고 신호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을까? 핸드폰을 세게 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내지 말걸 그랬나보다. 하지만 이내 슬며시 고개를 저어본다. 아니. 그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야.

메시지 창을 열고 메시지를 보낸다. 언제나 그랬듯이 손끝으로 느껴지는 화면이 기분 좋았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보내졌다. 화면을 잠그고 핸드폰을 내렸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너가 보고 있는 하늘은 어떨까? 분명 이곳과는 다르리라 생각된다. 시간차가 대략 12시간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곳의 날씨는 어떨까? 비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 도착 했을 때 비부터 내린다면 분명 기운이 빠질 테니까.

참으로 신기했다. 하늘은 하나였다. 지구는 하나였고 그 지구는 무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은, 즉 너가 보고 있는 하늘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까만 밤을 보고 있지만 너는 푸른 하늘을 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띠리리링.

벨소리가 울리며 핸드폰이 흔들렸다. 얼른 손을 들어 화면을 보았다. 너의 얼굴이 보였다. 너의 사진이 보였고 그 사이로 너의 이름이 보였다. 손가락을 들어 수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핸드폰을 귀를 향해 옮겼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여보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건넨 첫마디. 사실 묻고 싶은 것은 여러 가지 있었다. 잘 도착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비행기는 불편하지 않았는지, 날씨는 어떤지, 그리고 나는 보고 싶은지......

“응. 나야. 메시지 보내려고 했는데 안자는 것 같아서 전화했어. 혹시 자는데 방해가 된 건 아니지?”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마. 그것보다 잘 도착했어?”

“응. 비행기가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더라. 생각보다 견딜만 했어.”

“그랬어? 다행이네.”

평소와 같은 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나만 그런 걸까? 나만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을 걸까? 너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걸까? 괜히 이상한 생각들이 몰려온다. 아아. 이런 거 싫은데 말이지.

검은 생각들이 나에게 달라붙었다. 텅빈 집안 구석구석에서 새어나온 잡념들이 내 다리를 타고 내 몸을 감쌌다. 내 눈을 가리고 점차 짙은 어둠 속으로 나를 끌고 갔다. 생각들이 내 귀를 막으려는 그 순간 핸드폰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잖아. 고마워.”

“뭐가?”

뜬금없는 감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어가 고맙다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생각해보면 그렇잖아. 내가 멋대로 여기로 온 건 아닐까 싶어서. 장거리 연애가 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야.”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구나. 그 순간 몸을 감싸던 검은 생각들이 떨쳐나갔다. 언제 사라졌는지 눈앞이 훤하게 보였다.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너무해. 혼자 내버려두고 외국으로 가고 말이야. 게다가 어? 시간차가 열두시간이라고? 솔직히 완전 다른 곳에 있는 거랑 다를 바 없잖아.”

“그, 그렇네...... 미안.”

짖궃게 말하자 너는 아이처럼 작게 말했다. 머뭇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푸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나를 붙잡던 우울감이 단숨에 날아가버렸다.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 잠도 못 이룰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저 편안하다. 편안함이 내 몸을 감쌌다.

“장난이야. 사실 방금 전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같은 하늘 아래 있는데도 다른 것을 보니까 말이야. 뭐랄까 다른 세상에 가버린 것은 아닐까 싶었어. 뭔가 굉장히 멀어진 것 같은 느낌에 잠도 안 오고 말이야.”

“응.”

“그런데 말이야. 결국 그런 건 아무 상관없는 것 같아.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 냐가 중요한 거 아닐까?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슬며시 가슴을 움켜쥐었다. 살짝 쿵 떨려오는 심장소리에 주먹을 쥐었다. 주먹 안으로 온기가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도 온기를 이길 수 없었다. 온기가 내 손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가슴에서 시작된 온기는 온 몸으로 펴져나갔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잘 배우고 와. 어찌됐건 꿈을 위해서 간 거잖아? 나는 나대로 잘 지낼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 열심히 하고 오라고. 그래야 나도 잘 보냈구나하고 생각하지.”

“응.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핸드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슬며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 하늘이 다른 하늘이든 같은 하늘이든 상관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어있다. 서로를 생각하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 거리 따위, 시간 따위 내 알바 아니었다. 이렇게 서로를 위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이제 슬슬 공항에서 나가봐야겠다. 나중에 또 연락할게.”

“응. 그래. 나도 이제 슬슬 자야겠다. 시간도 늦었으니 말이야.”

“그래. 잘자고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버튼을 누르자 전화가 끊겼다. 사랑한다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맴돌았다. 핸드폰을 내리고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달이 구름에서 나와 온 몸을 드러냈다. 하얀 달빛이 온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을 보다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 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있다고 말하기도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은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앞으로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타국에서 지내는 삶은 조국과 다를 것이다. 좋은 일도, 안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잠깐의 방황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악재에 휘둘리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두 손을 움켜쥐고 눈을 감았다.

길을 잃었을 때 빛으로 비춰주리,

어둠이 눈앞을 가릴 때 길을 밝혀주리,

바람에 흔들릴 때 버텨주길,

절망에 빠져 포기하지 않기를,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슬며시 눈을 뜨고 하늘을 보았다. 환하게 빛나는 달빛에 미소를 지었다.

 

칭찬하기

작가 프로필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