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해바라기 죽이기

눈을 감고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눈을 뜨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해바라기가 그대로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순간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바보 같은 해바라기. 고개를 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오늘 또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약을 손으로 집었다.

약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쳐다보았다. 붉은 색의 약이 핏덩어리처럼 보였다. 암 덩어리 마냥 끈적하게 손바닥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사실 정확히 나도 이게 무슨 약인지 모른다. 의사가 이게 힘든 걸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었다. 말로는 우울한 걸 줄여주고 답답한 머릿속을 풀어줄 것이라고 애기했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약을 먹으면 확실히 멍하면서 약간 이상해지기는 한다. 그만큼 생각이 줄어들기도 하고 가끔 아무 생각이 안들어서 좋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더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저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약을 먹을 뿐이다.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 찰랑. 입안에 맴도는 차가운 물에 몸이 움찔거린다. 손바닥을 향해 입을 벌려본다. 아아. 크게 열린 입을 향해 약을 던졌다. 약이 입에 닿자 쓰디쓴 감각이 혀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약을 넣고 삼켰다. 꿀꺽. 약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가자 눈을 슬며시 감았다. 묵직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크게 숨을 내뱉었다.

“오늘도 약을 먹는구만.”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해바라기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해바라기가 혀를 찼다.

“쯧쯧. 역시 달라지지 않는구만.”

“그렇지.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니까.”

고개를 숙였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였다. 무언가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늘 어김없이 상실감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나는 슬며시 해바라기를 바라보았다. 태양이 떠난 뒤 하늘을 쓸쓸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있잖아. 너는 이 밤하늘을 볼 때면 어때?”

“그게 무슨 소리야?”

“쓸쓸하지 않아? 태양이 없다는 건.”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해바라기가 길게 혀를 찼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건가보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본래 외로움이란 것은 인간만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식물인 해바라기가 그런 걸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그런 게 중요한가? 것보다 오늘은 밖으로 나가봤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야?”

해바라기가 내게 목소리를 높였다. 순간 미간사이가 좁아지면서 해바라기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해바라기에게 다가갔다.

“나도 노력했어. 하지만 안되는 걸 어떡하라고? 애초에 나라고 좋아서 이런 짓을 하는 거 같아?”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해바라기. 녀석이라면 날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항상 나를 꾸짖을 뿐이었다. 단 한 번도 내게 따뜻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다. 애초에 이 해바라기를 준 그 사람도 내게 그랬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이런다고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 아니 애초에 돌아올 놈이었다면 널 떠나지 않았겠지.”

해바라기의 말이 날카로운 말뚝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 빌어먹을 놈. 자기도 매일 태양을 바라보는 주제에 말이 많다. 나와 같은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놈은 말을 아끼지 않았다. 늘 내게 상처 되는 말을 내뱉었다. 쉽게 내뱉고 쉽게 상처를 주었다. 그런 해바라기를 보면 늘 그 사람이 떠올랐다. 쉽게 떠나가고 쉽게 나를 망가뜨린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너라면 날 이해하지 않니? 아니 이해해 줄 수 없니?”

“이해라니? 이별한 것 가지고 언제까지 이럴 거야?”

해바라기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날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저 정신병자 취급하느라 바빴다. 내게 찾아온 이별을 그저 ‘그런 일’이라며 나를 무시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사랑했고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그러니 그렇게 막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찾아온 이별은 그저 ‘그런 일’ 따위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나의 전부이자 나의 우주 그 자체였다. 내 세계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내가 아는 것은 그 사람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 내 우주가 영원하리라 믿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과 함께 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으레 세상일이 그렇듯이 영원한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도태되기 마련이고 그 사람과 나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세계는 아주 손쉽게 무너졌다. ‘헤어지자.’라는 짤막한 문자 한통과 함께 모든 것이 무너졌다. 처음에 모든 걸 부정했다. 어제와 같이 일하고 그저께와 같이 집에 돌아오면 그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매일 일을 나가고 난 뒤 집 문을 열 때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지만 언제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해바라기만 쓸쓸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그 뒤로 매일 잠을 자고 꿈을 꾸었다. 이것이 현실이라 믿지 못했다. 꿈속에서 그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내게 현실이었다. 그래서 매일 꿈에 취해 살았다. 한순간이라도 자보려고 수면제를 먹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점차 꿈속에서 조차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차츰 그렇게 비참하게 정신이 돌아올 때쯤에 그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영혼이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이 떠올라서 미칠 것 같았다. 집안에 갇혀 산지 며칠 되지 않아서 직장에서 해고 통보가 왔다. 그리고 더 며칠 지나자 부모님이 나를 정신병원으로 넣으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는 이렇게 약을 먹게 되었다.

“나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라고? 나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노력을 정말 하고 있는 거 맞아? 매일 약에 취해 해바라기랑 얘기하고 있잖아. 생각을 해봐. 이제 어디 정상이고 제정신이야?”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해바라기라면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같은 처지인줄 알았다. 해바라기가 하늘의 태양을 보듯이 나 또한 그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심정일 줄 알았다. 까만 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내 착각일 뿐이었다. 영원한 사랑이 있을 거라 믿었던 것처럼 내가 멋대로 착각한 것이다.

“애초에 말이야. 그냥 남들 다 하는 이별인데 뭐 그리 유난 떠는 거야? 정신병원을 가고 꼭 그래야겠어? 그냥 남들처럼 좀 울다 끝내면 되는 일 아니야?”

해바라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것이 가능했으면 진작 했을 것이다. 차라리 나도 그 편이 좋겠지. 하지만 되지 않는 것을 어찌 하라는 말인가?

“닥쳐. 닥치라고!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지껄이는 건데!”

해바라기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녀석은 끄떡없었다. 녀석의 고개는 하늘을 향해 뻣뻣하게 내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자식. 두 손을 뻗어 해바라기의 줄기를 잡았다. 힘을 주자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줄기가 꺾여나갔다.

“꼴좋네. 그러게 누가 함부로 말하라고 했어?”

해바라기가 줄기가 부러지고 그 고개가 땅을 향했다. 두 번 다시 태양을 보지 못하겠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크게 웃었다.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고개 숙인 해바라기를 보니 뭔가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곧 두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해바라기의 말이 맞았다. 차라리 내 목이 저렇게 꺾여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강제로 목을 꺾어버려서 그 사람을 쳐다볼 수 없게 된다면 지금보다 나아질까?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일도 나는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또 약을 먹고 또 눈물을 흘릴 것이다.

소리를 질렀다.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비명 소리인지 아니면 악에 받친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화분을 들고 땅을 향해 내리쳤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화분의 흙이 쏟아져 바닥을 채웠다. 그리고 깨진 화분 조각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저기요! 지금 몇 시인지 알아요!”

누군가 문을 세차게 두들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흩어진 흙 사이로 드러누웠다. 깨진 화분 조각이 손가락 끝에 닿아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눈을 감고 몸에 힘을 풀었다. 이대로 편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대로 편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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