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나의 일생

눈을 뜨고 일어나 몸을 일으킨다. 텅 비어있는 침대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침대를 정리하고 짐을 챙긴다. 그리고 거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에 도착해서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여전히 냉장고에는 할멈의 손길이 가득했다. 손수 김장한 김치부터 내가 좋아한다고 자주 해줬던 무말랭이까지 그대로 냉장고에 남아있었다. 스윽 한번 쳐다보고는 냉장고를 닫았다. 그리고 라면 봉지를 뜯어 끓여 먹었다.

텅 비어버린 집은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봄이 다가오나 집안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방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자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들이 다가와 내게 지팡이를 건넸다.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 이럴 때면 큰 의지가 되었다.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나머지 한손으로 할멈을 들었다. 순간 비틀거리자 아들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제가 할까요? 괜찮겠어요?”

가볍게 아들의 손길을 미뤘다. 고맙기는 했지만 결국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아니다. 그래도 마지막인데 내가 해야지.”

손에 붙들린 할멈을 바라보았다. 보자기 속 상자 속에 있는 할멈은 어떤 모습일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할멈의 모습은 아닐 것임 분명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할멈을 떠올린다.

힘겹게 누워있으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강한 여자였다. 머리가 빠지고 살가죽이 늘어져도 예쁜 여자였다. 같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길 수 있었고 모든 즐겁고 행복하게 해준 여자였다. 슬며시 눈을 뜨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할멈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할멈을 볼 수 없겠지.

“이제 가자꾸나.”

“네. 가요. 강으로.”

아들을 따라 집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뒷자리에 앉아서 지팡이를 내려놓고 할멈을 끌어안았다.

 

강으로 가는 동안 내내 창문을 보았다. 넓게 보이는 강가의 풍경이 눈이 부셨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할멈과 이 광경을 보고 싶어졌다. 할멈. 분명 할멈이라면 이 풍경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할멈은 이 강가를 좋아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면 항상 할멈은 이 강가로 왔다. 아들이 군대에 들어갔을 때도, 결혼을 했을 때도, 남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강가로 와서 나와 함께 강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멈이 내게 얘기했다.

“나중에 내가 죽거든 이 강가에 뿌려줘요.”

그날도 우리는 강가에 와서 강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우리의 이별이라. 사실 그전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내 곁에는 할멈이 있었고, 할멈의 곁에는 내가 있었다. 그러니 할멈이 없는 나의 일생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두려웠다. 할멈이 없는 나의 일생이.

“아이고. 이 영감이 또 이러네. 그냥 얘기해본 거예요. 거참 무슨 말을 못하겠네요.”

우리는 손을 마주 잡고 강을 바라보았다. 그날 봤던 할멈의 얼굴은 아직도 선명했다. 가까이에 있지만 멀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그날 할멈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에게 이별이 찾아온다는 것을. 하지만 할멈은 그날도 웃고 있었다. 그랬다. 할멈은 강한 여자였다.

 

“아버지 도착했어요.”

아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지팡이를 짚고 차에서 내렸다.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내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천천히 강으로 다가갔다. 오늘은 나 혼자였다. 내 손을 붙잡던 할멈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대신에 내 손에 들린 상자 속에 고이 잠자고 있다.

보자기를 풀고 상자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하얀 가루가 보였다. 손을 뻗어 가루를 만져보았다. 곱디 고운 가루가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할멈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직도 내 곁에 할멈이 느껴졌다. 내 손을 붙잡는 할멈의 온기가 머릿속에서 날뛰었다. 하지만 결국 내 손은 허무하게 지팡이를 잡고 있었다.

“생전에 네 엄마랑 이곳에 자주 왔었지.”

“네. 어머니께 들었어요. 아버지랑 자주 오셨다고.”

“그래. 정말 자주 왔었지.”

아들이 곁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상자에 손을 넣어 할멈을 쥐고 꺼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들이 움찔움찔 움직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끄윽, 끄윽 하는 소리가 귓가를 스쳐갔다.

조용히 눈을 감고 손끝에 할멈을 느껴보았다. 그러자 할멈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슬퍼마요. 먼저 가서 기다릴테니 잘 살다 와요. 너무 울지 말고.”

마지막으로 할멈과 얘기한 날. 할멈은 그 순간까지도 강한 여자였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끼면서도 내게 눈물 한번 보이지 않았다. 호스에 숨을 맡기고 차가워지는 육체를 뒤로 하고 손을 뻗어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눈을 뜨자 손끝에서 할멈이 흩어졌다. 바람을 타고 천천히 사라졌다. 이윽고 상자 속 할멈은 강으로 사라졌다. 할멈이 사라지자 뜨거운 것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자 아들이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그래. 당신 말대로 잘 살다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줘요. 그때 우리 또 만나요.”

눈물을 닦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이 나를 맞이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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