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선자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멸망. 그 동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끝을 궁금해왔다. 그래서 오랫동안 인류 멸망에 관한 영화나 소설이 흥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상기후로, 누군가는 기계의 반란으로, 또 누군가는 소행성의 충돌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을까? 하루? 한달? 일년? 백년? 전부 틀렸다. 단 일초면 충분했다.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편의점이 보이기는 했지만 섣불리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들어가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K가 몸을 내밀었다. 천천히 K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머리를 한대 쥐어 박았다. 도대체 얘는 얼마나 가르쳐도 똑같은지. K가 머리를 움켜쥐더니 나를 째려보았다.

“왜 그래요? 이대로 굶어 죽고 싶어요? 이대로가면 식량도 다 떨어진다고요.”

“나도 알아. 하지만 저길 봐봐.”

편의점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통조림. 상당한 양이 보였다. K와 내가 둘이서 먹는 다면 앞으로 몇 개월은 거뜬해 보였다. 물론 미치도록 아껴 먹어야 하지만 적어도 한동안 식량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 저도 알고 있거든요. 눈이 있어서 다 보인다고요. 그러니까 빨리 가져와야죠. 이러다 남이 가져가면 어쩌려고요?”

“아직도 모르겠어?”

K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녀석은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이상하다. 이상해. 어째서 편의점에 통조림이 남아있을까? 상한 음식이 남아있다면 이해라도 할 수 있다. 어차피 정신 나간 놈이 아니라면 상한 것은 먹을 수 없으니. 하지만 저건 통조림이다. 유통기한도 최소 수개월에서 최대 몇 년까지 먹을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저 통조림일 것이다. 누군들 저 통조림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저것이 저기에 남아있을까?

“아이씨. 저놈들이.”

K가 발을 탁탁 떨며 편의점 쪽을 바라보았다. 남성 2인조가 나타났다. 녀석들도 통조림을 노리는 모양이다. 야구 방망이 하나씩 들고는 천천히 편의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 진짜. 이러다 뺏긴다니까요? 얼른 가요.”

K가 내 손을 붙잡고 난리 치기 시작했다. 손을 뿌리치고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K의 머리를 잡고 담장 아래로 푹 낮췄다. 눈만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고개를 내밀고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남성 2인조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뭔가 이상해.”

“뭐가요?”

K가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맘이 상한 모양이다.

“왜 저게 저기에 있지? 저렇게 눈에 띄는 곳에 있을 순 없어.”

“무슨 소리에요? 편의점에 통조림이 있다는 게 이상하다니 정신 나갔어요?”

“그건 예전 얘기고. 생각해봐. 너라면 저런 통조림을 놔두고 갔겠어? 어디 산골짜기에 숨겨진 편의점도 아니고 이렇게 길가에 대놓고 있는 곳인데 단 한 사람이라도 들어가서 챙기지 않았을까?”

“어? 확실히……”

K가 턱을 괴고는 고개를 숙였다. 누군들 저 통조림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 저 남성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대로 가에 있는 편의점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들어갈 볼 것이다. 그럼 문제는 왜 남아있는 가이다. 먹지 못하는 건가? 아니다.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챙겨갔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통조림의 겉만 봐서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실수로 두고 갔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요즘 세상에 먹을 거 하나에 서로 죽이는 마당에 실수?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설령 정말 정신이 나가서 놔두고 갔다 치더라도 금방 다시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이다.

“으아아아악.”

편의점에 들어간 남성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한 명만 편의점 바깥으로 뛰어 나왔다. 한 손이 잘린 채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남성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자 그에 맞춰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어디서 나온 지 알 수 없었다. 하나, 둘, 셋…… 총 여섯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무기를 쥐고는 남성에게 다가가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피가 튀기는 와중에 보이는 해골 문신에 소름이 확 끼쳤다.

“이런 젠장.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K의 손을 잡고 뒤로 내뺐다. 다행히 놈들은 우리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담장을 뒤로 한 채 달려나갔다.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서는 집을 향해 냅다 뛰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가슴을 쥐어 잡았다.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호흡이 가빠지고 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우웁.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았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토를 하지는 않았지만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한참이나 그 짓거리를 한 뒤 화장실을 나와 소파에 주저 앉았다.

“괜찮아요? 아까 그 사람들은 누구에요?”

K가 물병 하나를 건넸다. 뚜껑을 따고 딱 한 모금만 마셨다. 목이 타 들어갔지만 더 이상은 마실 수 없었다. 이제 남은 물도 거의 없었다.

“해골 문신 너도 봤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팔과 다리에 새겨진 해골들. 가뜩이나 문신 자체도 꺼림칙하게 생겼는데 그 의미를 알고 있으니 더 소름 끼쳤다.

“네. 사람들 다들 했었죠. 그게 무슨 의미라도 있어요?”

“그 놈들 인육 먹는 놈들이야.”

“인육이요?”

“그래. 고기나 음식이 귀해지니까 사람을 먹기 시작하는 거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람을 먹은 만큼 몸에 표시를 해둔다고 하더군. 그래서 자기들끼리는 알아봐서 다른 놈을 잡아 먹는다 하더라.”

“그럼 아까 그 남자는요?”

“아마 지금쯤 구워져서 식탁으로 올라갔겠지.”

순간 마지막으로 보인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을 마주친 순간의 표정. 잊지 못할 것이다. 공포에 떠는 눈빛. 하마터면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었다.

“알았지. 그러니까 뭐든 조심해. 지금 세상은 옛날과는 다르니까.”

K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는 어땠어요?”

“무슨 옛날?”

“인류가 이렇게 되기 전에 말이에요.”

어두운 밤 침대에 누워있는데 K가 내게 다가왔다. 어쩌면 낮의 일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나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근래에 이만큼 소름 끼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시체나 보는 정도였는데 눈 앞에는 인육주의자들을 만나다니.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몸이 떨려왔다. K를 침대에 앉히고는 그 옆에 앉았다.

“뭐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지. 지금처럼 무법지대는 아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똑같아. 사람새끼가 어디 다르겠니? 힘 있는 놈이 살아가고, 힘 없는 놈은 죽어갔지.”

“그렇군요. 그런데 인류는 왜 멸망한 거에요?”

“혹시 자기장이라고 아니?”

“예, 뭐 대충은 알아요. 전에 책에서 읽었거든요.”

“그걸 읽고 이해했다고? 역시 똑똑하구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 인류가 멸망하던 날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날은 평소와 같았다. 평화로웠던 나날이었다. 모두가 평소처럼 먹고 놀고 일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을 때 사건이 터졌다. 하긴 재앙이라 것은 소리 소문 없이 오는 것이니까.

“오늘 우주에서 발생된 전자기파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으니 모두 각별한 관심 바랍니다.”

집을 나오기 전 뉴스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때까지는 전자기파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간단하게 게임에서 emp탄이라 불리는 것이 전자기파를 이용해서 기계를 못 쓰게 만드는 것 정도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인류를 멸망시키다니.

단 1초였다. 단 1초 만에 인류는 멸망했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식은 전자기파가 온다는 얘기였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처음에 꺼진 것은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이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핸드폰이 모두 꺼져버리고는 하얀 화면만 둥둥 떠다녔다.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자 하나 둘씩 다른 것들도 먹통이 되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쾅!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신호등은 먹통이 되어있었다. 차들은 도로에서 미쳐날뛰고 있었고 빌딩 위에 있던 전광판들은 반짝반짝 거리다 하나 둘씩 펑펑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혼란. 말 그대로 대 혼란이었다. 사람들이 하늘을 보더니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하늘을 가르던 비행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멀쩡히 날아가다고 갑자기 땅으로 내리꽂기 시작했다. 저 멀리 하늘을 가르던 비행기는 바닥으로 내리 꽂아졌다. 빌딩에 꽂혀서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피하는 지는 몰랐다. 그저 그 자리를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리를 계속 움직였다.

 

“그럼 그때 그 전자기파 하나 때문에 이 모양이 된 거에요?”

“뭐 그런 셈이지. 사실 난 잘 몰라. 그냥 마지막으로 들은 게 전자기파 때문에 기계들이 오작동이 났다는 것 정도야. 그 이외에는 소문이 좀 많았어. 기계들이 오작동해서 핵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얘기도 있고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는 얘기도 있었어. 근데 한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계란 기계는 다 고장 났어. 하다 못해 라디오마저 고장 났어.”

“그 뒤로는 어떻게 됐어요?”

“너도 알잖아? 지금처럼 됐지. 혼란은 계속 됐어. 서로 약탈하고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어.”

“그렇군요.”

K가 침대 옆에 놓인 사진을 들고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부부가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엄마랑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아저씨는 알고 있어요?”

“응. 좋으신 분이었어. 거리에 뒹굴던 나를 받아주셨거든.”

 

멸망 후 모두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면 K의 부모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들은 선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 전에 사람은 맞았을까? 사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하나 둘 사람들을 도왔다. 스스로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이건만 자기들이 가진 음식을 나눠주곤 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만 두지 못했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랬다. 길거리에서 굶주려 쓰러졌는데 정신을 차리니 이 집이었다.

“정신이 드니? 나이도 어린데 고생이 많구나.”

수프를 건네는 그 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따스한 수프는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맛있었다. 그날 수프는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엄마랑 아빠는 왜 죽은 거에요?”

“……”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았다. 바보 같은 사람들.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저씨, 아줌마 생각에 목이 메워오기 시작했다.

“이만 자자. 시간이 늦었다.”

“아, 네. 알았어요.”

K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춘 후 방을 나왔다. 양초에 불을 붙이고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아줌마……’

좋은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바보였다.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었을 것이다. 노숙자에게 음식을 나눠주곤 했었는데 결국 남에게 온정만 베풀다 배신당하고 약탈당해 죽었다. 그나마 K는 내가 빼돌려서 살아남았다. 정신 없이 도망간 뒤 집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는 차가운 시체만 남아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길거리를 나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음식도 물도 모두 한계였다. 어디선가 구하지 않는다면 며칠도 못 버텨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왔다. 언제까지 초콜릿 몇 개만 쪼개 먹는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

“오늘은 장비 제대로 챙겨가자. 조금 깊숙이 가야겠어.”

칼을 챙겼다. 투척용으로 쓰기 위한 작은 칼부터 내 오른팔만한 칼까지 총 네 자루를 챙겼다. 그리고 가방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 K에게 쥐어주었다.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써. 명심해. 칼로 찌르는 게 끝이 아니라 찌르고 돌려야지 끝을 내는 거야.”

K가 조용히 끄덕였다. 칼을 손에 쥐고는 천천히 움직여보았다. 아직 칼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라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칼을 익혀야 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아저씨 오늘은 어디 갈 거에요? 이 근방은 다 돌아본 거 같은데?”

“그래. 그래서 오늘은 저기 저 산 쪽으로 가보려고.”

손가락으로 뒷산을 가리켰다. 음산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는 것 께름칙했다. 분명 해가 뜬 낮이건만 저 부근만 어두운 것처럼 보였다. 께름칙해도 할 수 없다. K 말대로 이미 이 주위는 여러 번 둘러봤다. 이제는 슬슬 새로운 곳도 가봐야만 한다.

“근데 왜 이 산이에요? 여기 뭐라도 있어요?”

산을 오르며 K가 숨을 내뱉었다.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숨이 차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체력 단련을 시켜야겠다.

“이 산 중턱 즈음에 가게 하나가 있거든.”

“가게요?”

“예전에 산 타던 사람들 요깃거리 하라고 연 가게인데 어쩌면 거기 먹을 게 있을 지도 몰라. 산 속에 있는 거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거든.”

“그래요? 근데 왜 이런 데 가게를 한 거래요?”

“글쎄다? 돈이 벌린다고 생각했나보지.”

가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애초에 쉬어가며 사 먹으라고 만든 가게라 그런지 산 중턱 보다도 한참 아래에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은 무슨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K의 손을 붙잡고 조심스레 가게 안을 살펴보았다. 저번과 같은 괴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끼익

문이 낡은 탓에 소리가 났다. 가게 안을 살펴보았다. 선반에 먼지가 가득한 것이 사람의 손길 따윈 끊긴지 오래인 모양이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 아저씨 이거 통조림 아니에요?”

K가 구석진 방으로 들어가 상자를 뒤지더니 소리쳤다. 아마도 창고로 쓰던 방이었나보다. 그 외에도 과자나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유통기한이 적어도 5년은 지난 터라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맨날 참치 통조림만 먹었는데 이번에는 참치는 기본이고 장조림이나 햄 통조림도 있었다. 그 외에 조금 위험해 보이지만 과일 통조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구석에는 K가 먹을지 모르겠지만 꽁치 통조림도 있었다.

“좋아. 얼른 챙기고 여길 나가자.”

가방에 통조림을 잔뜩 넣고는 가게를 빠져나갔다. 딸그락딸그락 하는 소리가 가방에서 새어나왔다. 별로 좋지 않다. 만일 누군가 이 소리를 들으면 달려들지도 모른다. 하이에나 같은 거지 놈들이 달려든다면 답도 없을 텐데……

산을 내려와 집을 향했다. 일단 집에 놔둬야 할 듯싶다. 집도 마냥 안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달그락거리면서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K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가는데 문득 K가 내 손을 꾹꾹 눌렀다.

“왜? 무슨 일 있어?”

K의 눈길에 향한 곳을 보자 한 남성이 쓰러져있었다. 벌써 며칠을 못 먹었는지 살은 커녕 뼈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K가 지긋이 나를 쳐다보았다.

“안돼. 그만 가자.”

K가 있는 힘껏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과연 K는 당신들의 자식이었다. 당신들과 똑같이 착한 아이였다.

“하아…… 알았어. 대신에 하나만 주는 거다.”

“네!”

가방에서 통조림을 하나 꺼내 남성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통조림을 내밀자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남성은 천천히 통조림을 받았다. 말할 기운도 없었는지 고맙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가자.”

K의 손을 이끌고 뒤를 돌았다. 그 순간 갑자기 K의 손이 쑥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얼른 뒤돌자 K가 소리쳤다.

“아저씨!”

남성이 K의 목을 팔로 붙잡고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거 뭐 좋은 거 많더만 애 살라고 싶으면 넘기시지.”

개자식! 죽어가는 것마냥 기어 다니고 있었는데 어디서 힘이 났는지 있는 힘껏 나를 노려보았다. 젠장 어쩌지. K를 바라보았다. K가 천천히 남성 몰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순간 멕가이버 칼이 떠올랐다. 고개를 끄덕였다. K도 내 눈을 보더니 끄덕였다.

“진정해. 지금 줄 테니 애는 풀어줘.”

가방을 남성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한 손으로 가방을 채가고는 천천히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그리 좋은 지 낄낄거렸다.

“킥킥. 너무 나쁘게 생각마. 세상이 요지경이라 살아가기 힘들거든.”

그 순간 K가 멕가이버 칼을 꺼내 남성의 허벅지를 찔렀다. 그리고는 곧장 팔을 깨물고는 몸을 비틀었다.

“끄악!”

남성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균형을 잃고 철푸덕 쓰러졌다. 칼이 박힌 허벅지를 움켜쥐고는 계속 소리 질렀다. K는 곧장 내게 달려왔다. 내 뒤에서 숨어서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천천히 남성에게 다가갔다.

“이 애새끼가 감히! 죽고 싶어?”

남성은 K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놈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남성에게 다가가 허벅지를 지긋이 밟아주었다. 박혀있던 칼이 더욱 더 깊숙하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망할! 그만해. 다 줄 테니 그만하라고!”

남자가 가방을 던졌다. 가방을 줍고 K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빠르게 허벅지에 박힌 칼을 돌렸다. 박힌 칼이 살갗을 파고들어 한바퀴 돌아가자 구멍이라도 난 듯이 피가 줄줄 새어나왔다.

“전에 알려줬지? 찌르는 것이 끝이 아니라 돌려야 해.”

그리고 주머니에서 내 칼을 꺼냈다. 과도 만한 작은 칼을 꺼내고 남성에게 다가갔다. 남성은 빌빌 바닥을 기어다녔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지 바닥을 팔로 쓸면서 나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하지만 다 부질없다.

“미, 미안.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 살려줘. 제발!”

남성의 머리채를 쥐어 잡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칼을 목젖 근처에 갖다 대고는 남성의 귀에 속삭였다.

“너무 나쁘게 생각마. 세상이 이 모양인데 어쩌겠어?”

“잠깐……”

그리고는 목을 뒤로 젖히고는 스윽하고 칼을 움직였다. 그러자 남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머리를 놓자 털썩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시끄러운 남성의 목소리 대신에 붉은 피가 나왔다.

K에게 다가갔다. 피를 옷에 닦고는 K를 쳐다보았다. 머뭇머뭇거리며 내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천천히 K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K가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이제 알았지? 선자는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어. 살아남으려면 이것보다도 악해져야해.”

“네. 죄송해요.”

K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아직도 우리에게 선한 본능이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이 요지경이라도 아줌마, 아저씨 같은 선자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는 살아남지 못한다. 더 이상 선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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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소,희 2016. 08/10

정말재미있어오!!시간가는줄모르고읽었네요! 따봉^~^b

블로우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블로우 2016. 08/10

재미있네요 짧은데 임팩트 있어요 ㅋ

소리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소리 2016. 08/12

스토리가 눈에 그려져서 참담하네요.....

연우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연우 2016. 12/29

뭔가 참담한 느낌입니다. 생각하고 싶지않은 현실이네요 ㅠ

니나노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니나노 2016. 08/09

짧은 영화 같은 소설이네요.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