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오늘도 하루는 가고

노을빛은 언제 봐도 허망하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가고 있었다. 지하철 창문 밖으로 태양이 지고 있다.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가고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몸에 힘을 주었다. 이리저리 치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팔에 힘을 잔뜩 주어야 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책을 보는 사람도 있었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개중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늘 똑같은 풍경이었다. 이렇게 노을빛을 보는 것도 지하철을 타는 것도 다 똑같았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가고 있었다. 어느새 또 겨울의 끝자락에 왔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꽃들이 세상을 알록달록하게 채우고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무채색처럼 늘 같은 모습만 반복될 뿐이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어갔다. 맥주 한 캔과 도시락을 들고 점원에게 다가갔다. 저번과 다른 점원이 있다. 저번에는 건장한 청년이었는데 오늘은 잔뜩 기운이 빠진 중년 남성이 물건을 받았다. 점원이 바코드를 찍고 가격을 얘기한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힘이 없었다. 비실비실한 것들이 공중에서 흩어져 나갔다. 나는 천천히 카드를 점원에게 건넸다. 점원이 카드를 받고 계산을 했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편의점을 나와 집으러 가려다 점원을 다시 쳐다보았다. 편의점에 홀로 남은 점원은 턱을 괴고 한숨을 내뱉었다. 어쩌면 점원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점원이 나와 같이 보였다. 언젠가 집에서 한숨 쉬는 내 모습이 딱 저렇게 보일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 입은 하얀 와이셔츠를 빨래 바구니에 던졌다. 가득 찬 바구니 옆으로 옷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바구니에 다가가 옷을 주워 다시 담았다. 그 순간 빨래 바구니의 옷들이 눈에 밟혔다. 하나 같이 오래 된 옷들이었다. 가장 최근에 산 옷도 벌써 몇 개월이 넘은 것이었다. 오래된 것은 몇 년이 지난 옷도 있었다.

와이셔츠를 잡고 펼쳐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예전에는 어떻게든 멋을 내려고 옷을 사곤 했다. 좋다고 옷을 사기도 했었고 유명한 옷을 찾아 지방에 있는 가게로 가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한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이렇게 뻔한 와이셔츠나 입고 있으니 말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옷이 더 이상 큰 의미 없었다. 그저 몸이나 가려주고 깔끔하게 보이면 됐다.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하지 않았다.

옷을 바구니에 넣고 거실로 갔다.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넣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리모컨을 들고 티비를 켰다.

삐이

전자레인지에서 소리가 나자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도시락을 꺼내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챙기고 다시 소파에 왔다. 미끄러지듯이 소파에 몸을 기대고 도시락의 밥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이런. 생각보다 시간이 짧았던 모양이다. 한입 밥을 집어먹자 입안에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하지만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맛있으려고 먹는 밥도 아니었다. 찬밥이든 뜨거운 밥이든 상관없다. 그저 허기만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티비 속 예능 프로그램은 오늘도 웃기 바빴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반면에 그걸 보는 내 얼굴에 미소 한 점 없었다. 그저 멍했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티비를 볼 때면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저렇게 환하게 웃고 있는 걸까? 저리도 인생이 즐거운 걸까? 어쩌면 내가 이상해졌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요즘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허망하다. 과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허망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무어 하나 흥미가 나지 않고 그저 그렇다. 옛날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빵빵 터졌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웃고,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몸짓에도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아무리 재미있는 걸 봐도 아무 소용없었다. 그전에 사실 재미라는 것도 없었다. 이쯤 되면 습관처럼 보는 것이었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무엇이 재미없는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나 때우기 위함이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도시락을 먹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까만 어둠이 찾아왔다. 봉투에서 맥주 캔을 꺼내 베란다로 향했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쳐지나갔다. 이제 봄이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은 겨울인가보다.

치익. 맥주 캔을 여는 소리는 언제나 들어도 경쾌했다. 캔을 잡고 벌컥벌컥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맥주에 슬며시 눈을 감는다. 캬아. 한번 환호를 하고 다시 눈을 뜬다.

맥주를 마실 때도 늘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딱 처음. 정확히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만 쾌락이 느껴졌다. 탄산들이 목구멍에서 춤을 추고 알싸한 맥주가 혀끝을 사로잡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환호를 지른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면 똑같다.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실 뿐 그 맛이 처음 같지 않다.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쳐다본다. 아직 늦은 시간이 아니라 제법 사람이 많았다.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학생, 길거리를 방황하는 백수, 회식을 했는지 비틀거리는 여성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저 중 몇이나 그걸 알고 있을까? 어쩌면 저기 걸어가는 작은 학생이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기 담배를 길게 피우는 청년이 알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성이 알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쩌면 다들 모를 수도 있다. 사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어디로 가고 있지만 어디를 가는지 알기는 힘들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지 않을 수 없다. 가고 있다는 것은 멈춰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고 가고 있는 것은 어딘가에 목적지가 있다는 얘기이다. 목적지가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멍하니 길을 걷는 다 하더라도 내가 아는 길을 걸어가고, 아예 모르는 것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마음 먹더라도 일부로 모르는 곳을 목적지로 정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네 인생의 목적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는 계속 달리기만 한다. 정자였던 시절부터 죽음 힘을 향해 달렸다. 난자를 만나 수정을 하고 그렇게 생명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계속 달리는 것의 연속이었다. 일어나기 위해 넘어지고 더 알기위해 언어를 배웠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닌다. 학생 시절 때는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며 성인이 돼서는 매일 일을 하며 삶을 보낸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것에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는 것일까?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왜 삶이라는 것을 선택했을까? 죽은 뒤의 세상이 어떻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숨을 쉬고 있다는 얘기는 결국 삶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삶을 선택한 것인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얘기였다. 설령 내가 선택했다한들 그때의 기억이 내게는 없으니 말이다.

달빛이 내게 다가온다. 맥주 캔을 비추고 반짝 거리는 불빛이 내 눈을 부시게 만든다. 이렇게 시간은 또 흘러가고 있다. 어느새 달이 하늘의 중앙에 올라갔다. 삶의 의미를 몰라도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내일이 되면 나는 출근을 할 것이다. 오늘과 같은 색의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을 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치일 것이다. 그리고 퇴근길에 석양을 바라보고 다시끔 맥주 한 캔을 사올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듯이 이렇게 창 밖을 쳐다볼 것이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알싸한 맥주 맛이 흘러들어온다. 올라오는 취기에 몸이 살짝 비틀거린다. 그렇다면 이렇게 의미를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의미를 몰라도 삶은 흘러간다. 지구가 그랬고 자연이 그렇듯이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사라지게 된다. 언젠가 나도 사라질 것이다. 지금 이렇게 움직이는 피와 살들은 언젠가 썩어 문드러지거나 죽거든 화장을 하여 가루가 되어 세상을 떠돌 것이다. 내 정신은 사라지고 영혼은 어디론가로 가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은 허무하지 않을까? 비록 내가 죽고 난 뒤 세상에 내가 없다고 한들 내가 있었다는 흔적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저 지나가는 무언가에 불과하지 않았다는 얘기일까?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일까? 지금은 이렇게 살아있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살아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내가 이때 지구에 살았고 나의 삶이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무런 흔적도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얘기이다.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늘 그랬다. 오늘도 결국 아무런 결론을 짓지 못했다. 맥주 캔을 들어 남은 맥주를 입안에 다 부어버렸다. 맥주캔을 찌그러트리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닫고 맥주캔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침대로 갔다.

침대에 털썩하고 몸을 던졌다. 손을 들어 눈을 가려보았다. 지금 내 상황과 같았다. 무언가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불 속에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삶의 의미. 그것은 과연 찾을 수 있는 걸까?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걸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눈을 감고 천천히 잠에 빠졌다. 내일이면 삶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일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날이 올까?

문득 편의점에 있던 점원이 떠올랐다. 깊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나와 닮았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점원처럼 숨을 내뱉는다. 하아. 길게 이어진 한숨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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