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허세

째깍째깍. 초침이 움직이고 있다. 오늘도 초침은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 둘 움직이자 분침이 똑하고 움직였다. 분침 또한 초침처럼 움직이고 있었으며 시침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침은 하루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시계를 보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새로운 프라모델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카메라를 챙기고 옷을 갈아입었다. 지갑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는 데 문득 핸드폰을 들어보았다. 새까만 배경화면이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날씨가 화창했다.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따스한 봄날 그 자체였다. 올해는 생각보다 봄이 일찍 온 편이었다. 작년에는 꽃샘추위가 심해서 3월의 중순이 되어서도 옷을 두껍게 입고 다녔는데 올해는 가디건 하나만 걸쳐도 되는 날씨였다. 옷이 가벼워진만큼 발걸음도 가벼워야했으나 이상하리만큼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한 커플을 보았다. 이제 막 사귀었는지 손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연인들이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저렇게 하나하나가 새롭고 설레는 순간이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프라모델의 사진을 보았다. 신상이라 그런지 퀼리티가 역대급으로 좋았다. 조형도 괜찮고 색도 잘 나온 편이었다. 아직 리뷰가 없는 것을 보아 블로그에 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핸드폰을 잠그자 내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신이 났어야 했다. 신상 프라모델도 사고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올리는 날이다. 황금 같은 주말에 완벽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런데 생각만큼이나 신나 보이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자 아까 그 커플이 보였다. 내 앞자리에 둘이 앉아 어깨를 나란히 맞대었다.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흘끗 쳐다보았다. 텅 비어있는 어깨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자리에 등을 기대고 슬며시 눈을 감았다. 빨리 가게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리고 가게에 들어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프라모델 가게에 사람이 많았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있었고, 친구나 가족과 같이 온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개 중에는 연인과 같이 온 사람도 있었다. 가게 안에 들어가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전시 되어있는 신상품들 사진을 하나 둘씩 찍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자 찰칵 소리가 났다. 제대로 사진이 찍혔나 갤러리에 들어갔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는데 신상품 뒤로 마주 잡은 손이 보였다.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앞을 보니 커플이 있었다. 아까 봤던 커플과는 다르게 꽤나 능숙해 보이는 연인들이었다. 손을 마주 잡은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고 신상품을 집어보았다. 묵직한 것이 과연 역대급 신상품이었다. 박스 겉에 그려진 그림을 보았다.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조형이었다. 슬며시 지갑을 열어보았다. 다행히도 지갑에 돈이 두둑했다. 사실 따로 확인할 필요 없었다. 어차피 지갑에 돈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한 것은 순전히 습관 탓이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지갑을 열고나서 깨달았다. 더 이상 다른 곳에 돈을 쓰지 않는 다는 것을.
프라모델을 집고 계산대로 향했다.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만연하고 있었다. 누군가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모두 웃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에서 희망일 지도 모른다. 왜냐면 유일하게 나만 웃고 있지 않았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프라모델을 들고 있었다. 고개를 저었다.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여기서 내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나는 행복했었다. 주말에 일을 쉬며 취미를 한다. 이것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라도 꿈꿀 생활이었다. 내 시간을 갖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것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강제로 하지 않아도 됐었다. 억지로 취향을 맞출 필요도 없었고 온전히 나를 위하기만 했으면 됐다. 오늘 내가 사는 이 프라모델은 몇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퀼리티를 자랑하는 프라모델이다. 게다가 행사를 하고 있어서 사은품도 얻을 수 있었다.
점원에게 돈을 건네고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점원이 건네는 봉투를 양손으로 받았다. 사은품까지 들어있는 탓에 양손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가서 프라모델을 맞춰볼 생각에 손이 근질거렸다.
가게를 나와 정류장으로 간 순간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생각해보면 어느새 점심시간대가 다 되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근처에 음식점을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이 핸드폰 매장이던가 아니면 옷 가게였다. 그러던 중 골목 구석에서 작은 가게가 보였다. 처음에는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작은 가게였다.
발걸음을 옮겨 가게 앞으로 갔다. 우동 집이었다. 보통은 우동을 다른 메뉴와 같이 취급하기 마련인데 이곳은 정확히 우동만 파는 가게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메뉴판에는 우동 밖에 적혀있지 않았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다. 우동이라면 그럭저럭 괜찮은 메뉴였다.
가게 들어가서 일반적인 우동을 주문했다. 가장 기초적인 우동이 입에 제일 잘 맞았다. 김치 우동이니 어묵 우동이니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한때 그런 걸 먹기는 했으나 더 이상은 아니다.
주문을 하고 가게를 둘러보았다. 겉으로 봤을 때와는 달리 또 다른 멋이 있는 가게였다. 아담한 것이 뭔가 귀엽고 우동과 딱 들어맞는 분위기였다.
“우동 하나 여기 있습니다.”
주문한 우동이 나오자 젓가락을 집었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미소를 지었다. 입안에서 군침이 돋고 금방이라도 먹고 싶었다. 그전에 카메라를 꺼내 우동을 찍었다. 생각보다 좋은 가게 였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가격도 괜찮았고 가게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찰칵. 사진을 찍고 우동을 한 젓가락 집었다.
후루룩. 입으로 들어간 우동은 춤을 췄다. 면이 살아있었고 면 사이에 국물이 알차게 들어가 있었다. 잘 삶아진 우동면발은 목구멍을 타고 막힘없이 흘러 들어갔고 따스한 국물은 입안에 맴돌아 여운을 남겼다. 한 젓가락 먹고 저도 모르게 계속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렇게 우동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어버렸다.
우동을 다 먹고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블로그에 올릴 수준이었다. 가격, 맛, 서비스 삼박자가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이 시간대에 사람이 없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완벽한 가게였다. 가게 위치를 핸드폰 메모에 입력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도착해서 프라모델 상자를 열어보았다. 생각보다 부품이 많았다. 처음에는 3,4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양으로 보면 대강 5시간은 걸릴 듯 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남는 것이 시간이니까. 어차피 내일은 일요일이었다. 따로 할 일도 없었고 시간도 많았다. 천천히 맞추면 되는 일이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캔을 따자 치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맥주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시원한 목 넘김에 나도 모르게 환호를 내뱉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컴퓨터에 카메라를 연결하고 오늘 찍은 사진들은 전송했다. 딱 하나를 제외하고는 사진이 다 잘나왔다. 마주 잡은 손이 찍힌 사진은 유난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진 속 신상은 누가 봐도 잘 찍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진을 보니 미간이 좁아졌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블로그를 켜보았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스쳐갔다. 그간 달렸던 댓글들을 보고 답글을 달아주었다. 그리고는 오늘 갔던 프라모델 가게 사진을 올렸다. 그 뒤를 이어 우연히 찾은 우동집에 관한 포스트를 올렸다.
포스트를 올리고 기지개를 켰다. 이걸로 오늘 할 일이 끝났다. 이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사실 할 일이라는 것도 없었다. 그것조차도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주말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누군가와 공유할 필요도 없었고 불필요한 일을 해야 하지도 않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카메라를 들어 갤러리에 들어갔다. 아까 눈에 밟혔던 사진을 보았다. 마주 잡은 연인들의 손이 따뜻해보였다. 슬며시 내 손을 쥐어 잡았다. 맥주 탓에 차가운 냉기가 손을 타고 흘렀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후후.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웠다. 이렇게 고개를 돌려도 계속해서 찾아오는 허무함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행복한 척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슬며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화창한 하늘에는 햇빛이 따사롭게 내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너를 떠올렸다. 너는 지금 무어를 하고 있을까? 나는 이렇게 너를 생각하고 있는데 너는 어떨까?
마우스를 움직여 사람들의 반응을 본다. 달리는 댓글에 답글을 남겨본다. 참으로 보람찬 하루가 아닐 수 없다. 답글을 달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밀러오는 너를 목구멍으로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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