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사랑의 인식론

책장에 다가가 책 한권을 꺼내본다. 오래된 책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조심스레 책의 겉표지를 만져보았다. 거친 표면이 손가락으로 느껴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정말 책이 맞는 걸까? 다시 한번 손으로 책을 쓰다듬어보았다. 그러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거친 표면이 느껴졌다. 그리고 천천히 책을 들어 눈앞으로 가져갔다.

인식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책의 제목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게 내가 찾는 책이라고 하는 결정적인 되지 못했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지금 내 감각이 오작동을 일으켜 전혀 다른 책을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천천히 책 겉표지를 살펴보았다. 구석 진 곳에 새겨진 너의 이름이 보이자 그제야 책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책상으로 다가가 책을 내려놓았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책을 보았다. 인식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책 중 하나였다. 무어라 얘기하는 지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헷갈리고 머리만 아파오는 책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다. 난 그렇게 똑똑한 편도 아니었고 논리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그만큼 내게 낯설고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장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을 고르면 ‘인식론’을 고를 것이다. 딱히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책장 한 구석에 가장 헤진 책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인식론’일 것이다.

천천히 책을 펼치자 오랜 기억들이 함께 쏟아졌다. 문득 네가 생각났다. 책의 표지를 만지는 너의 모습이, 이 책을 건네주던 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너가 생각나는데 너는 내 옆에 존재하지 않았다.

인식론. 사실 나는 이렇게 어려운 말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나마 내가 이해하는 것이라고는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본질이 주는 관념은 알 수 있지만 결코 본질 그 자체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가령 내 눈앞에 있는 이 책. 책은 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이는 대로 존재하는 걸까? 우선 시각에 대해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시각이란 상당히 상대적인 것이다. 내 눈의 상태 혹은 주변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은 책이 흰색으로 보인다. 물론 완전한 흰색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만큼 색이 바란 것도 있지. 하지만 그 점은 논외로 치고 만일 여기서 불을 끈다면 책이 하얗게 보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불을 끈다며 어둠 속에서 보이는 책은 검게 보일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시각을 제외하더라도 우리의 오감은 상당히 상대적인 것이다. 누군가는 민트초코가 맛있다고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치약 맛이 난다면 싫어하기도 한다. 또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 냉탕에 들어가면 아무렇지도 않듯이 같은 현상을 느껴도 그것을 감지하는 사람, 주위 환경 등등에 의해서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책을 펼쳐보았다. 그 안에 담겨진 수많은 글씨들이 내 눈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알을 파고들어서 뇌로 흘러들어왔다. 뇌를 가로질러 너를 부르며 끊임없이 너를 불렀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었다. 그저 무기력하게 너를 떠올릴 뿐이다. 저항도 별다른 의미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보이는 대상에 대해서도 본질을 알 수 없는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때는 그렇게 믿었다. 원래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나 또한 그랬다. 단순히 너를 믿고 보이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한 굳은 믿음은 내게는 신앙과도 같았다. 나의 생각은 나를 사로잡는 족쇄였고 내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악마의 유혹이었다..

“넌 사랑이 무엇인 것 같아?”

너의 그 질문. 그때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사랑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사랑이 무엇이냐? 내가 믿는 것이 곧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어리석은 착각에 불과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관념으로 만들어져 있다. 단순한 관념이 모여서 복합적인 관념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서 사람을 이룬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너와의 모든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와 함께 밥을 먹는 순간이, 너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걸 사랑이락 부를 수 있을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전에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라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아끼고 귀중히 하는 것이 사랑일까? 그것은 아니다. 물건을 굉장히 아낀다면 그 물건을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 관계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저렇게 쉽게 정의될 만 한 것이 아니다.

책을 넘기며 너의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너가 썼던 글씨, 너가 접어놓았던 페이지, 너의 손길이 남아있는 문구들...... 무엇 하나도 빼놓지 않고 찾았다.

그렇다면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임의로 정의하기에 무리가 있는 복잡한 관념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형체도 없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다.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자신은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사랑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본질이 주는 관념을 느낄 뿐이다. 그 대상 자체에는 다가갈 수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고 그것은 사랑이 주는 관념이 있는 것이지 사랑 그 자체가 있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은 복잡적인 관념이다. 그것은 내가 너를 봤을 때 심장박동, 너와 함께 있을 때의 설렘과 같은 관념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관념들이 나타나 내 ‘지성’이라는 놈이 사랑이라는 복합적인 관념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너와 나 사이에서 만들어진 관념일까? 그것은 맞는 말이다. 정확히 따지자면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생긴 관념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너와 나에게 같은 의미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이러한 관념은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너를 보고 설렌다고, 기쁘다고 너 또한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너도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항상 같은 사랑은 느끼지 않았다.

책 속에 ‘사랑해’라고 적혀있는 그 단어를 살며시 만져보았다. 오래 전에 썼던지라 어느새 글씨가 흐릿해졌다. 손가락으로 그 단어를 몇 번이고 만져보았다. 하지만 종이의 촉감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이상했다. 너와 만날 때 몇 번이고 이 단어를 보았다. 너를 생각하면서 만지면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종이에서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사랑이 절대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어땠을까? 이렇게 혼자 책을 읽고 있지 않았겠지. 내 곁에 너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너도 나도 알다시피 절대적인 것은 어디에도 없다. 너가 내게 알려줬듯이 사랑 또한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없음을 이미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너 또한 나를 그리 사랑하는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마음만큼 너도 나를 사랑하는지 알았다. 그때는 우리가 ‘하나’라도 되는 줄 알았다. 사랑으로 이어져서 ‘너와 나’가 아닌 ‘우리’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너와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생물이었고 다른 존재였다. 아무리 사랑으로 이어졌다한들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 그러므로 너에게 그런 것을 바라면 안됐었다.

책을 덮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밀려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턱을 괴고 점점 생각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너는 지금쯤 무어를 하고 있을까? 너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너는 내 생각 따윈 전혀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지금 너는 무어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 내 곁에 너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너는 언제나 현명했으니까. 나와는 달리 생각도 깊고 내가 모르는 걸 많이 알고 있었으니까. ‘인식론’도 그렇다. 너가 내게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저런 것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영원히 너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니까. 내가 봐왔던 너만 기억나고 내가 알던 너만 떠올리니까. 그렇기에 내가 너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내가 너를 이해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기만에 불과할 것이다. 내 마음대로 너를 규정하고 너를 욕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너가 지금 이곳에 있다면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너의 생각을, 너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너가 내게 말을 해준다 한들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까. 우리는 이미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이별을 선택했다. 가능성이라는 것을 죽이고 현실을 택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떠올리곤 한다. 이렇게 시간이 남는 날이면 너를 생각한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저 생각만 하더라도 나는 좋다. 물론 이렇게 생가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너가 내 옆에 오는 거도 아니고 우리의 관계가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떠올릴 뿐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개소리에 불과하다. 내가 제대로 무어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또 내가 무언가를 추론할 정도로 머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뭐가 맞는지 뭐가 틀린지 내가 알바는 아니었다. 그저 나는 너를 생각하며 멋대로 또 생각을 할 뿐이니까. 책을 들고 일어나 책장으로 다가갔다. 원래 있던 자리에 책을 꽂아놓고는 쳐다보았다. 낡은 책은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방문을 열고 나오려다 책장을 보았다. 또 다시 너가 생각나면 이 책을 보러오겠지. 그리고 방문을 서서히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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