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영원한 사랑은 어디에 있는 건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들어본다. 지긋한 커피 냄새가 코끝을 지나갔다. 아메리카노……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느긋하게 커피나 마시고 있다니 옛날의 내가 안다면 뒤로 자빠질 일이다. 옛날에는 커피 따위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요즘은 식후에 아메리카노 한잔씩 마셔야 직성이 풀렸다. 누가 본다면 허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허세는 아니다. 허세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까웠다.

“역시 여기 커피는 좋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맛이 좋단 말이야.”

눈앞의 A를 바라보았다. 커피를 들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부드러워 보였다. 슬며시 손을 뻗어 손가락을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손을 내렸다. 커피를 마실 때는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 했으니까.

“있잖아. 넌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해?”

문득 A가 내게 질문을 했다. 뭐지? 멍하니 A를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적어도 내 생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니 그전에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아무 문제없이 탄탄대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침을 꼴깍 삼켰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상처라도 준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실례라도 범한 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심각한 내 표정과는 다르게 A는 부드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슬며시 나를 향해 그 작은 입을 열었다.

“응? 그런 게 아니라 저번에 친구가 남자친구랑 헤어졌거든. 근데 그러면서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얘기하는 거야. 문득 그게 떠올라서.”

아아.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한 것 같았다. 일단 숨을 내뱉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행히도 별일은 아니었구나.

“그래요? 영원한 사랑이라……”

“솔직히 나는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거든. 그 친구만 봐도 그때 분명 잘 사귀고 있었거든? 애들이 주위에서 결혼하라고 난리도 아니었어. 근데 또 어느 날 보니까 헤어지는 거야. 그런 거 보면 정말 남녀 간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커피를 자주 마셨지만 아직도 난 그 맛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내게는 쓴 맛이 나는 물이었다. 가격은 또 왜 그리 비싼지도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석유를 한잔 떠다 마시는 것이라 하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콩 갈아 만든 물이 이렇게 비싸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하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조용히 A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커다란 두 눈이 오직 나를 향하고 있었다. 사귄 것이 어느새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A의 눈도 내 마음도 그대로였다.

“글쎄요. 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음…… 정확히 말하자면 영원한 사랑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A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사실 나 또한 예전에는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것이 어찌 영원하리라. 처음의 설렘은 언젠가 사라지고 그 안에는 정이 차오르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 둘씩 사랑이 정으로 변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전부 A를 만나기 전 일이다. A를 만나고 나서는 모든 것이 변했다.

“예전에는 영원한 사랑이 어디에 있나 싶었어요.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게 제 신조였죠. 그런데 당신과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날 만나면서 바뀌었다고?”

“네. 영원한 사랑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어요. 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게 뭐야? 어느 쪽이라는 건데?”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믿음에 있다고 생각해요.”

“흐음…… 믿음이라. 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이네.:

여전히 아메리카노는 씁쓸했다. 그래도 나는 식후에 커피를 마셨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A와 식후에 커피를 마신 후에는 늘 카페를 찾았다. 커피 한잔이 주는 A와 함께하는 시간이 내게는 보물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영원한 사랑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쟁취하는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해지기 마련이죠. 그러다 보면 점점 마음도 느슨해지고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한 노력이 줄어들기 마련이죠. 그때 사람들은 둘로 나눠지죠. 이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

“그렇긴 하지. 근데 그게 믿음이랑 무슨 상관이야?”

“생각해봐요. 영원한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위해 노력을 할까요? 그냥 이번에도 끝이구나 하고 포기를 해버리겠죠. 반면에 그런 사랑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향해 노력하고 그 덕에 사랑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죠.”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늘 설레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A를 만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이런 편안함, 그리고 서로를 위하는 노력이 사랑이라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A를 만나고 이렇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다. 당신을 위한 이런 작은 하나하나가 사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물론 제가 생각하는 게 항상 옳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면 너는 어느 쪽을 믿어?”

A가 눈썹을 세우며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강아지 같은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올 뻔 했다. 그런 A를 바라보며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됐었다.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A를 바라보았다.

“그거 아세요? 전 사실 아메리카노 잘 못 마셔요. 뭔가 너무 쓰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이거 무슨 음료보다는 사약 같아요.”

“그랬어? 난 전혀 몰랐네. 그런 것 치고는 잘 마셨잖아.”

A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했다. 하긴 당신은 몰랐겠지. 언제나 군말 없이 당신과 같이 커피를 마셨으니까.

“그래도 당신이랑 마시니까 계속 마셨던 거죠. 당신이랑 마시는 커피는 좋아거든요.”

A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어요. 그렇기에 이렇게 당신 앞에서 노력하고 있고요.”

커피를 들어 홀짝 마셨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미소를 지었다. 쓴 커피 맛 속에서 달콤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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