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쓰는 단편선

사랑이었다.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공기를 찢으며 내게 다가와서는 귀를 파고 들어 뇌를 흔든다. 어지럽다.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깨질 것 같았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그대로 꼬꾸라질 것만 같았다.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을 뻗어 몸을 지탱하려고 했으나 그만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쓰읍……”

멍든 무릎을 움켜쥐었다.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쩔뚝쩔뚝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데 온 세상이 비틀거렸다. 팽이가 돌 듯이 현관문이 돌고 있었다. 가까스로 문고리를 붙잡았다. 딸깍. 문을 열자마자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러운 햇살에 눈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쿵쾅거렸고 염산이라도 뿌렸는지 쓰라렸다.

“아침부터 누구야?”

눈을 찡그리며 앞을 보았다. 눈물이 흐른 탓에 실루엣 하나만 흐릿하게 보였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팔짱을 끼고 허리를 꼿꼿하게 핀 모습이 여느 때와 같이 당당해보였다.

“유나야?”

흐릿한 모습 속에서 유나가 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방을 뒤적였다. 한 손에 종이 두장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길다란 것이 마치 영화표 같았다. 어? 표?

“설마 이거 까먹은 건 아니죠? 선배가 어제 아침에 집으로 오라면서요. 그것도 기억 못해요?”

“아. 미안. 내 정신 좀 봐. 오늘 가기로 했지?”

그제서야 기억났다. 머리를 긁적이며 유나를 쳐다보았다. 코를 킁킁거리더니 잔뜩 찡그린 채 내 쪽을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뒤쪽에 쌓여있는 소주병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곤 미간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설마. 술 마신거에요? 으휴 술 냄새.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저렇게나 많이 마셨어요?”

유나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소주병들을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것도 한, 두병이 아닌 네, 다섯병이 뒹굴며 우리를 향해 누워있었다.

“아, 아냐. 일단 들어올래? 바로 준비할 테니까.”

유나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얼른 뒤로 달려가 소주병들을 베란다로 가져갔다. 한 구석에 대충 던지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몸을 움직이니 술기운이 올라왔다. 간만에 마신 탓일까? 어제 마신 술들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물 한잔을 떠 마시고 고개를 숙였다. 우웁. 헛구질에 침이 흘러나왔지만 다행히 내용물까지 내뱉지는 않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거울 좀 봐요.”

숙취보다 끔찍한 것은 내 상태였다. 도대체 어제 어떻게 한 것인지 마스카라며 온통 화장이 번졌다. 양 볼은 까맣게 물들었고 눈가에 눈물자국이 쳐량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어제 밤 흘린 눈물들이 아직도 내 뺨을 흐르는 것만 같았다. 엉망이다. 정말 엉망진창이다.

“무슨 일은. 별일 아니야.”

나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실은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다. 자리에 주저 앉고 싶었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오열을 하고 세상을 떠나가리 소리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하지 못했다.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럼 이건 뭐에요? 아까 보니 밤새 마신 것 같은데. 정말 괜찮아요?”

유나가 소주병을 들어올렸다. 아뿔싸…… 뒤에 있던 한 병을 깜빡한 모양이다. 먹다 남은 소주병에서 술 냄새가 흘러나왔다.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데 다시 역겨움이 올라왔다.

“응.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괜찮다. 이 말보다 슬픈 말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괜찮기는 무슨. 어제 밤새도록 미친놈마냥 울고 난리를 쳤는데 낯짝도 두껍지. 정말 타고난 거짓말쟁이였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내 곁에 승하가 없는데 언제나 연옥 속에 갇혀 고통 받고 있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

“됐어요. 그보다.”

유나가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데 솔직히 부담되었다. 엑스레이 위에 올라 발가벗은 느낌이다. 언젠가 공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 뭐하나 걸렸는데 검사관이 지금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길은 멈추지 않고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며 나를 붙잡았다.

“뭐에요? 전 남친 결혼식장이라도 가요? 뭘 그렇게 힘을 줬어요?”

유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순간 찔려서 몸을 움찔거렸다. 결혼식은 아니지만 힘을 준건 사실이다. 오늘 사고 한번도 한 입은 원피스를 입고 큰 맘 먹고 구입한 비싼 속옷도 챙겨 입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아까워서 들고 다니지도 못하는 핸드백이며 애지중지하는 목걸이를 줄줄이 착용했다. 그리고 그 옛날의 낡은 은반지를 약지에 꼈다. 결혼식장이 아니더라도 후줄근하게 가고 싶지 않았다. 승하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승하와 관련된 것에서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다.

“아니 내가 뭘. 얼른 가자.”

대충 얼버무리며 문을 닫고 계단으로 걸어갔다. 유나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분명 의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추리닝이나 입고 다니는 사람이 갑자기 이러니 이상할 만도 하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말하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선배 혹시 이번 화가에 대해 아는 거 있어요?”

“응? 왜? 설마 너 전혀 모르는 거야?”

표를 건네 받으며 유나를 보았다.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모르는 모양이다.

“이번 잡지에 기사까지 낼 텐데 어쩌자고 조사도 안했어?”

“그치만 이 사람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나와요. 다른 사람들은 별 이상한 것 까지 다 나오는데 아무것도 안나온다니까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승하라면 그럴 만도 했다. 분명 또 집안에서 그림만 그렸겠지. 누구 앞에서 모습을 보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유나가 모를 수 밖에. 창 밖을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는 건물 사이로 승하가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던 손길, 기대고 싶은 등, 열정적이던 눈길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떠올랐다.

“승하는 말이야. 그림을 좋아해.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야. 그림 밖에 모르는 바보야. 정말 웃긴 게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그림을 그린다니까.”

“진짜요? 그런 사람이에요?”

입에 모터라도 달아놓은 듯이 술술 나왔다. 오랫동안 숨겨둔 기억이 풀려나자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튀어나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내 숨결 속에 녹아 숨을 쉬듯이 나왔다.

“그리고 어른스러운 사람이었어. 그 사람 등을 보면 항상 기대고 싶었거든.”

“네? 그게 무슨?”

유나가 말을 더듬었다. 그럴 것이다. 유나가 물어본 건 이런 게 아닐 것이다.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그 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지, 지금 어디에 소속했는지 그런 것들을 물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승하는 그런 것과는 상관 없었다. 내가 아는 승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든든하고 기대고 싶은 사람이었다. 같이 있으면 행복하고 힘들어도 이를 꽉 물며 버티게 되었다. 행복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는 사람이었다.

“근데 웃긴 게 그렇게 어른스러운 사람이 생선을 못 먹는다? 그것도 어렸을 때 가시가 목에 걸려서 그렇대. 정말 웃기지 않냐?”

“아, 네. 선배 정말 잘 알고 있네요.”

문득 유나의 말에 눈을 감았다. 나는 승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까? 누구보다 승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세상 어떤 사람도 나만큼 승하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승하 자신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내 일방적인 믿음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믿으며 안주할 뿐이었다. 정말로 내가 승하를 잘 알고 있었다면 그런 이별을 맞이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나도 잘 몰라.”

승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만일 삶에 기적이 있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승하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막상 전시회에 도착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다리가 쇠사슬에 묶여 땅에 박힌 것 같았다. 도저히 발걸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 어디 아파요?”

유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토록 바랬던 승하의 소식이건만 나는 아직도 준비 되지 않았나 보다. 가슴이 뛰고 팔다리가 후들거린다. 얼마 만에 너의 그림을 보는 걸까? 얼마나 이런 날을 꿈꿔왔을까? 작은 소식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밤을 새곤 했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아니야. 좀만 기다려봐.”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가슴을 어루만지며 자신을 다독였다. 후우. 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그 동안 알고 싶었잖아. 많이 기다렸잖아.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천천히 발을 움직여보았다. 몸에 힘을 주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됐다. 가자.”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 없다. 가슴이 떨리고 무섭다. 하지만 그래도 너를 알고 싶다. 너의 소식, 어떻게 살아가는지,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무어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입구에 표를 내고 들어가는 데 승하의 사진이 보였다. 커다란 사진이었다. 사람 두, 세 배쯤은 되어 보이는 사진이었다.

“아, 저런 사람이구나.”

유나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정말로 처음 보는 모양이다. 천천히 승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피부는 창백했다. 어떻게 보면 아파보이기 했다. 다크서클은 짙게 내려왔고 얼굴에서 피로가 느껴졌다. 그래도 살은 좀 찐 것 같았다. 예전에는 팔과 다리를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았는데 이제는 제법 살이 붙어 튼실해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눈 끝이 간지러웠다. 이를 악물고 승하를 보았다. 그래도 잘 지내는 모양이라 다행이다.

사진을 보고 들어가 간략한 소개가 나와 있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무어를 했는지, 어떤 화가인지 친절하게 설명되어있었다. 유나가 열심히 읽고 잇는데 문득 그리운 옛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혔다. 하나 둘씩 설명을 읽어보니 옛 기억들이 떠올라 나를 끌어당겼다. 마음 속 깊숙이 숨겨놓았던 감정들이 내게 다가왔다.

“있잖아요. 이 사람 선배에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갑자기 그건 왜?”

“오늘 너무 이상해요. 아까 사진 보는 눈빛도 그렇고. 왜 그래요?”

조용히 유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가보다.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힘든가 보다. 어쩔 수 없지.

“예전에 사귀었어.”

“정말요?”

유나가 크게 소리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머쓱해졌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보았다. 조금 담담하면서도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 한참 승하가 신인으로 이름 알릴 때였어.”

오랜만에 본 그림이 화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울적한 이 기분이 원인일 수도 있다. 가슴 속에 묻어 놓으려고 했는데 얘기하고 싶어졌다. 승하와 나에 대한 것을 속 시원하게 얘기한다면 조금 나아질까?

“그때 그 사람은 이제 막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을 때였어. 그때는 이런 개인 전시회는 꿈도 못 꿨지.”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수록 기억은 깊어졌다. 추억은 늪처럼 나를 잡아 내렸고 천천히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갔다.

 

승하를 만난 것은 스물 다섯이 되는 해였다. 잡지사에 막 취직해 견습딱지도 못 뗀 나는 신인 화가들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미 유명한 사람은 선배들이 하고 있었고 나 같은 신입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거나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화가만 남아있었다. 당시 신인으로 이름이 조금씩 거론되고 있던 승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첫 인상은 암울한 사람이었다. 다크서클이 얼굴의 반절이상 내려왔고 누가봐도 피로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듯 비틀거렸고 앙상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살이 야위었다. 처음 만난 장소가 집이라 참 다행이었다. 혹시나 카페나 가게에서 쓰러진다면 답도 없었을 테니까.

“왜 그렇게까지 그림을 그리시나요?”

인터뷰가 마무리 될 쯤 승하에게 물었다. 미리 준비해온 질문지에는 없었다. 그냥 궁금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이렇게 그림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방안 한 구석에 잔뜩 쌓여있는 그림들을 보았다. 그림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일상생활을 버리고, 삶을 버리면서까지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을까?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냥 하는 거죠. 굳이 말하면 그림이 제 삶이기 때문이죠. 그림이 있어서 제가 있는 거죠.”

승하가 얘기하고는 멋쩍은지 고개를 돌렸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순수한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어딘지 모르게 끌렸다. 승하와 얘기하면 더 알고 싶고 알면 알수록 더 다가가고 싶었다. 마치 내 일부를 찾은 마냥 반가웠다.

 

발걸음을 돌려 그림들을 보았다. 여전히 승하의 그림은 압도감이 넘쳤다.

“이 사람 되게 암울한 사람인가 보네요. 그림이 하나 같이 왜 이래요?”

하나 같이 불편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늘 그랬다. 승하의 그림은 불편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승하는 우리에게 불편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쓰러져가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나, 핸드폰에 머리를 쳐 박고 죽은 사람이나. 달걀 귀신이 가면을 끼우는 장면 등 비관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그림들을 그렸다.

“그건 그렇지.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놀랐어. 근데 사람 자체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야.”

“그래요? 그림만 보면 세상에 온갖 불만 가진 사람 같은데.”

상냥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타인을 배려했고 그에 맞춰서 행동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먼저 사과해주었다. 그래서 이러며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응석을 부렸다. 언젠가는 고집을 부려 요리를 했는데 결과는 끔찍했다. 사람이 먹는 건가 싶기도 했었는데 승하는 웃어주었다.

“맛있네. 다음에 또 해줘.”

그렇게 말하고는 다음날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내 말에 가볍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 품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내리라 믿었다. 하지만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많이 좋아하는 거죠? 이 사람.”

“……”

대답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다. 사랑했다.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다. 내게 돌아와달라고 말한다면 지금이라도 모든 걸 내 던지고 갈 것이다. 내 목숨도 영혼도 바칠 수 있다. 하지만 인생과 같이 사랑 또한 비극적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가하는데 승하는 아닌가 보다. 이렇게 사랑하고 널 생각하는데 내게 연락 한번 주지 않았다.

“왜 헤어진 거에요? 그렇게 좋아하면서.”

“그림.”

“네?”

“그림 때문이야.”

유나가 멍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그림 때문에 헤어졌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림을 그리는 승하의 모습을 볼 때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는데 그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지자.”

여느 날과 같은 하루, 승하가 내게 얘기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담담한 말투에 소름이 끼쳤다. 승하를 쳐다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 그런 얼굴은 처음이었다. 마치 타인의 일을 말하는 줄 알았다.

“뭐? 왜? 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승하에게 달려들며 물어보려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가시를 잔뜩 머금은 것 같았다. 눈에 불을 켜놓고 승하를 노려보았다. 승하는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는 텅 빈 캔버스만을 쳐다보았다. 서글픈 눈빛, 그제야 조금씩 깨달았다.

“미안해. 너랑 함께 있으면 너무 행복해서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정말 미안해.”

캔버스 위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마지막으로 승하가 그림을 그린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었다. 몇 개월? 아니 일 년도 더 된 일인가? 그랬구나. 밤에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캔버스 앞을 서성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체 했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떨렸지만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놓고는 눈을 감았다.

“그림이 그렇게 중요해?”

“응. 그림은 내 삶과 같으니까.”

살짝 고개를 돌린 승하에게서 옛 향기를 맡았다. 언젠가 수줍게 고개를 돌리던 승하는 없어졌다. 이제는 내 눈길을 피해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쩌면 우리는 운명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었을 것이다.

 

“그럼 정말 그림을 못 그린다고 헤어진 거에요?” 미친 거 아니에요?”

“말 조심해. 승하에게 그림이 중요했으니 그렇지.”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게……”

유나와 함께 그림들을 둘러 보았다. 하나 같이 정성이 가득하였다. 전보다 그림 솜씨가 더 좋아진 것 같다. 아마도 한참을 집에서 그림을 그린 모양이다. 나는 매일 네 생각에 숨이 막히는 데도 너는 그림을 그린 모양이다. 핸드폰을 붙잡고 연락을 해볼까 고민을 하고 끝내 내치는 와중에 너는 붓을 잡았나 보구나. 내가 술을 마시고 널 생각할 때, 너는 그림 생각을 했나 보다.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을 확인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조금씩 눈시울이 붉어졌다. 숨이 거칠어 지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언젠가 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냐고. 사실은 그림만 생각한 것은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고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너의 그림을 보니 알겠다. 이제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만일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저 스쳐 지나가겠지.

“저기 저 사람……”

“그치? 저 사람이라니까?”

하나 둘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전시회의 출구 쪽에 모인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 중에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하나 같이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뭐죠? 갑자기 다들 왜 이런데요?”

“글쎄?”

이상했다. 이상했지만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보다 승하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 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걸까? 그런 내색조차 하지 않고 이렇게 그림을 그려갈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하나였다. 아프다. 가슴이 아팠다. 머리가 띵하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이대로 쓰러졌으면 좋겠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땅에 머리라도 박아 버린다면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을까?

“선배, 선배! 저기 저 그림 봐바요.”

유나가 소리쳤다. 고개를 들고 유나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액자가 보였다. 사람들에게 가려져서 그림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그림의 두 배쯤은 되는 것 같았다. 유나가 내 손을 붙잡고 그림을 향해 달려갔다. 질질 끌려가는데 사람들이 비키기 시작했다.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이 그 많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선배 이 그림……”

“어?”

나였다. 내 그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웃고 있는 그림이었다. 커다랗게 나를 그려놓았다. 특이한 것은 크기뿐만이 아니었다. 이 그림은 불쾌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밝은 색채에서 따스함을 느끼고 부드러운 선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에 다가가 나를 보았다. 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봐도 정말 아름다웠다. 눈길을 돌려 제목을 보는데

“아아. 그랬구나…….”

눈 앞이 흐려졌다.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들이 쳐다보던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흐느꼈다. 이 벅참에 몸을 맡기고 주체 못할 감정에 휘둘렀다. 천천히 제목을 다시 읽어보았다.

‘내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사람.’

그랬구나. 너도 그랬구나. 나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구나.

달렸다. 전시회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있다가는 주저앉아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눈물이 파도가 되어 나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발이 터질 것 같고 높은 힐에 다리가 걸려도 멈추지 않았다. 한참이나 달리고 나서야 그 자리에 주저 앉앗다.

“선배 괜찮아요?”

유나가 나를 따라와 부축해주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참았던 감정들이 터지면서 오열하지 시작했다. 내 눈물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져 땅을 적셔나갔다.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땅이 어느새 흑갈색으로 변했다.

“괜찮아.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마.”

땅을 짚고 일어났다. 손거울을 꺼내 보는데 엉망이었다. 아침보다 더 심했다. 화장이 번지고 얼굴에는 온통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하지만 미소가 나왔다. 너도 나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그 사실에 고마웠다.

유나에게 도움을 받아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어눌한 걸음걸이에 가느다란 팔과 다리를 보니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 어! 선배 저 사람!”

삶의 기적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저 멀리서 승하가 보였다. 우리 둘의 눈이 마주치자 시간이 멈추었다. 승하가 나를 바라본다. 내가 승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랑스럽고 듬직한 모습이다. 천천히 승하의 입술이 움직인다. 한글자, 한글자 승하의 입술에서 내 가슴으로 전해졌다.

‘보고싶었어.’

승하의 눈가가 반짝거렸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나도.’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궁금했다. 비참하지도, 그저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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