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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위하여(수영복, 비, 핫도그)

김씨가 창 밖을 보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쿵쾅거리는 천둥번개에 눈을 깜빡였다. 장마라 그런 것인지 빗줄기도 상당히 거센 것이 오늘 할 일은 다 한 모양이다. 몸을 이끌고 뒤의 소파에 누워 tv를 켰다. 오늘 같은 날에는 김씨가 할 일이 없었다. 이런 날에 누가 공동묘지를 찾아오겠는가? 빌어먹을 날씨 덕에 오려고 하던 사람들도 안 올 것이다.

김씨가 하염없이 tv를 보고 있었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떠든 것도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그것도 잠시 지루하여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지개를 피며 김씨가 달력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오늘은 그날이었다.

“아저씨 계세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이씨가 문을 두드렸다. 김씨가 얼른 달려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이씨가 보였다. 김씨가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었다.

“어휴, 날씨도 이런데 내일 오지 그랬어.”

“아니에요. 그래도 오늘 와야죠.”

이씨는 웃으며 김씨의 손을 마주 잡았다. 비에 홀딱 젖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무슨 쥐새끼마냥 젖어가지고는 심지어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신발과 양말은 이미 다 젖은 상태였다. 그 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다 젖었는지 물이 계속 뚝뚝 떨어졌다. 용케도 이 날씨에 이곳까지 찾아왔다. 김씨 같았으면 절대로 오지 않았을 텐데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내였다.

“혹시 제가 부탁 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

이씨가 쭈뻣쭈뻣 김씨에게 다가왔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서 긴장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하긴 며칠이나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탁을 저버릴 김씨가 아니었다.

“잠깐만 금방 가져올게.”

김씨가 뒤돌아 냉장고로 갔다. 냉장고를 열고는 핫도그 하나를 꺼냈다. 빵 사이에 햄과 소시지소 가득한 것이 침샘을 마구 자극했다.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리고 보니 절로 모르게 꼬르륵 소리가 났다. 과연 이 지역 명물 핫도그였다. 벌써 몇 년을 봐왔건만 여전히 먹음직스러웠다. 김씨가 이씨에게 핫도그를 건넸다. 그러자 이씨가 한번 보고는 방끗 웃었다. 그 후 천천히 봉투에 핫도그를 담고는 가방에서 음료를 꺼내서 김씨에게 건넸다.

“정말 고마워요. 요새 장마라 가게 문을 열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어요.”

“아녀. 내가 벌써 자네 봐온 게 몇 년인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이씨는 봉투를 잡고서는 문을 열었다. 벌써 가느냐는 김씨에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에는 우산을 붙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 아래로 핫도그를 넣은 비닐봉지를 소중하게 감사며 걸어갔다. 자신은 다 맞으면서도 어떻게든 핫도그는 지켜내고 있었다. 그런 이씨를 보니 문득 김씨는 이씨와 처음으로 만난 날이 떠올랐다.

 

이씨를 만난 것은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었다. 이렇게 많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울적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날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처음으로 이씨를 봤다.

“젊은이, 여기서 이러면 안되네.”

이씨는 당시 여성용 수영복, 정확히 말하자면 비키니를 착용하고 있었다. 맨 살이 아닌 옷 위에 입었지만 보기에 상당히 추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씨가 향하고 있었던 곳은 유가족이 있었던 곳이었다. 당시 장례가 끝나고 안장을 기다리는 중인데 유가족이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그 누군가가 비키니를 입은 변태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씨를 못 가게 붙잡았다.

“놔줘요. 저기 내 친구가 기다린다고요.”

이씨는 그날도 오늘처럼 비를 흠뻑 맞았다. 하지만 오늘처럼 비를 맞을 필요는 없었다. 우산만 쓰더라도 충분히 피할 만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씨는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괜찮아요. 우리 아들 친구에요. 들여보내주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유가족들이 찾아왔다. 김씨는 떨떠름하면서도 이씨를 보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이씨가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늦게 사연을 접하고 나서야 김씨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고인의 친구였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단짝이었던 죽마고우였다. 언제나 둘이었고 하나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친형제와 같았다. 두 사람은 훗날 같이 파병을 가게 되었다. 분쟁지역으로 가는 거라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약속을 했다. 하나는 먼저 죽은 사람의 장례식장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가는 것. 나머지 하나는 둘이서 유명한 핫도그 가게에 가서 맘껏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약속을 다 지킬 수는 없었다. 고인은 전쟁터에서 가루가 되었고 이시는 홀로 남아 그날 고인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그날 이씨가 흘렸던 눈물을 김씨는 아직도 기억한다. 빗물에도 지워지지 않던 거센 눈물은 아직도 김씨의 가슴을 두드리곤 했다.

 

“정말 매번 고마워요. 아저씨 없었으면 큰일이었을 거에요.”

온 몸이 흠뻑 젖어서는 이씨가 다시 돌아왔다. 김씨가 문을 열어주고는 수건을 건넸다. 김씨가 이씨를 쳐다보았다. 이토록 순수한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김씨가 알기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간 김씨가 일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죽음이란 서럽고 잔인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 육체가 기능을 다 할 때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주변인들에게 잊혀질 때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처음에는 다들 슬퍼하다가도 천천히 잊혀지기 마련이다. 시간이 없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등 핑계를 대면서 발길이 끊어지고 하나 둘씩 떠난다.

하지만 이씨는 달랐다. 그간 어떤 사람과는 다르게 매년 이곳을 찾아왔다. 매년 찾아오기 전 핫도그를 준비해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김씨에게 핫도그를 받아 친구를 찾아갔다.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뭐가요?”

“가족도 아닌 데 십 년도 넘게 매년 오는 건 자네가 처음이야. 아마 다른 곳을 가더라도 그럴거야. 자네는 대단한 사람이야.”

이씨는 고개를 저었다.

“별거 아니에요. 친구가 있는데 당연히 와야죠. 녀석이 핫도그를 먹고 싶어할 텐데 이렇게라도 챙겨줘야죠.”

김씨가 이씨의 등을 두드렸다. 미소를 짓고는 이씨를 바라보았다.

“분명 자네 친구는 자네의 마음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을 걸세.”

“고마워요. 역시 아저씨 밖에 없네요.”

이씨가 미소를 짓고는 관리실을 나갔다. 내년에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이씨가 떠났다. 김씨가 음료 하나를 상자에서 꺼냈다. 멀어져 가는 이씨를 바라보며 음료를 마셨다. 목을 넘어가는 달달함에 김씨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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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로필사진
연우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연우 2016. 12/29

친구의 진한 우정이 보입니다. 어디선가 친구 장례식장에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왔던 사람을 찍은 외국 사진이 떠오르네요. 글 속 주인공들처럼 약속을 했답니다. 자신들이 죽게 되면 장례식장에 우스꽝스럽고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오기로...

두부두부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두부두부 2016. 07/18

단어를 엮어 가면서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 것도 재능 인 것 같아요!! 글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