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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자르는 밤(폭포, 가위, 희망)

“정씨는 오늘도 가는 거야”?

어두운 밤 둥그스런 달이 하늘을 채워나갈 때 정씨는 오늘도 산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던 이웃집 부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밤마다 산을 오르는 정씨의 모습을 봐온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정씨는 아직도 산을 타고 있었다. 잠은 자는 것인지 늦은 밤에 올라가 아침이 되면 파죽이 되어서 내려왔다.

“벌써 이주일동안 저렇게 가다니 참 대단해.”

“근데 왜 가위를 가지고 산에 가는 거야?”

“아내 때문이야.”

“아냐?”

그렇다 정씨가 야밤에 산을 타는 것도, 가위를 들고 숨을 헉헉거리면서 폭포를 찾아가는 것도 전부 정씨의 아내 때문이었다. 약 한달 전부터 정씨의 아내의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몸살인줄 알았다. 그래서 약을 건네주고 걱정을 해주는 정씨에게

“에이, 뭘 이런 걸 해줘요. 그냥 며칠 푹 쉬고 나면 다 나을 거에요.”

하고 정씨 아내가 웃으며 얘기했다. 하지만 아내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심해지며 아내의 몸을 잡아먹고 있었다. 심각함을 느낀 정씨는 마을에서 제일 용하다는 의원을 데려왔다. 의원은 아내 몸을 살펴보고 이곳저곳을 눌러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자네 아내는 어쩔 수 없다네. 나도 원인이 무어인지 모르겠어.”

“아니 선생님. 선생님이 그러면 제 아내는 어떻게 해요?”

“미안하네. 나도 이게 최선일세.”

의원은 정씨에게 진통제만 남겨주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절망 속에서 아내를 보살피던 중 한 남성이 정씨의 집에 찾아왔다.

“집안에서 나쁜 기운이 흘러나옵니다만. 혹시 집안에 병자가 있습니까?”

처음에는 미친놈인줄 알았다. 행색도 초라한 것이 정신병자인줄 알고 내쫓으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남자라면 아내를 도와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한줄기 희망이라도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하늘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정씨는 남자를 집안으로 안내한 뒤 아내 앞으로 데려왔다. 남자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보자기를 풀었다. 그리고는 풀 몇 개를 꺼내서 그 자리에서 작은 통에 빻아서 아내에게 먹였다. 그러자 아내의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뿐만 아니라 숨결 또한 부드러워졌다. 조금이지만 나아졌다는 사실에 정씨는 춤을 출 정도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제 아내는 괜찮은 건가요?”

정씨는 아내의 안색이 좋아지는 것을 보았다.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정씨와는 달리 남자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 남자가 정씨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는 담배 하나를 물더니 연기를 내뿜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당신 아내는 곧 죽을 겁니다.”

정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아내의 안색은 좋아지고 점점 더 좋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죽는다니?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저리 좋아졌는데요?”

“지금 당신 아내의 병은 귀신 때문입니다. 이런 약초로는 당분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오고 끝내 죽을 겁니다.”

정씨가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이럴수가. 결국 아무런 의미 없었다. 하늘의 계시건 작은 희망이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아내를 잃어야만 하는가? 하늘은 무심했다. 정씨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내와 도란도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씨 일생의 유일한 낙이건만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되는 걸까?

“하지만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이걸 보시죠.”

남성이 정씨 앞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작은 두루마기를 하나 꺼냈다. 두루마기에는 문자와 그림이 가득하였다. 특히 상단부에서 하단부로 갈수록 점점 난해해질 정도로 문자가 늘어났다. 정씨는 무슨 그림인지 무어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은 귀신을 정리한 두루마기입니다. 지금 당신 아내 몸 속에 살고 있는 놈은 이놈입니다.”

남성이 두루마기 가장 아래에 있는 한 그림을 손으로 가리켰다. 지랄 맞게 생긴 그림이었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도 그 그림에서 느껴지는 불쾌감 때문에 얼굴이 찡그려 질 정도였다.

“이 귀신이 어떤 귀신 인데요?”

“귀신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다고 알려진 귀신입니다. 이놈은 한번 사람에게 깃들면 그 사람의 정기를 죄다 빨아먹죠. 그 뿐만 아니라 일부러 천천히 죽여가며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의 절망을 먹고 삽니다. 절망을 먹고 살기에 이놈의 힘은 다른 귀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죠. 그래서 웬만한 힘으로는 놈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퇴마를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까 아내를 구할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요.”

“물론이죠.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 하나 산신령의 힘을 빌리면 가능합니다.”

“산신령……?”

“예. 마을 뒤쪽에 산이 하나 있죠? 그곳 폭포에 산신령이 살고 있을 겁니다.”

정씨가 고개를 돌려 산을 바라보았다. 마을 뒷편에 산신령이 살고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정씨의 할아버지가 줄곧 산신령 덕분에 이 마을이 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해주었다.

남자가 보자기에서 작은 가위를 하나 꺼냈다. 사람 손바닥 만한 가위였는데 평범한 가위와는 사뭇 달랐다. 겉표면에 이상한 문자가 써져 있었다. 어찌 보면 부적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금 녹슬었지만 날은 여전히 날카롭게 서있었다.

“이 가위를 가지고 산의 폭포를 자르면 산신령이 귀신을 쫓아낼 줄 겁니다.”

“그런 것이 가능한가요?”

가위로 폭포를 자르라고? 정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정씨가 아는 세상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아니 어느 세상인들 폭포를 가위로 자르라니. 무협의 고수라도 그건 불가능 할 것이다.

“그건 당신의 노력에 달려있습니다. 다만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앞으로 보름이 지나면 만월이 됩니다. 그날 귀신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데 그 전에 꼭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 분이 죽을 지도 모릅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남자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정씨는 매일매일 산을 탔다. 밤이면 밤마다 산으로 올라가 산신령에게 빌고 또 빌며 폭포를 자르려 했다. 그렇게 이 주일을 가위를 가지고 산에 올랐건만 정씨는 단 한번도 폭포를 자르지 못했다. 늘 폭포의 끝에서 가위질을 하지만 헛된 물길만 새어나갈 뿐이었다. 정씨는 그럴수록 자신을 다독였다. 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만 한다고.

다른 사람들은 정씨가 드디어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희망 자체였다. 매일 자신을 다독이고 폭포로 가면서 건강해질 아내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지나는데도 진척이 없다보니 정씨의 가슴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씨는 열흘이 되던 때부터 잠도 자지 않고 산에 올라갔다.

“시발 이게, 이게 왜 안되는 건데?”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제 하루만 가면 보름달이 뜬다. 그전에 폭포를 자르지 못하면 아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폭포는 잘릴 기미 따위 보이지 않았다. 오늘 밤도 그저 시간만 흘러가니 불안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폭포를 자르려는 미친 사람이에요?”

정씨가 폭포 물을 맞으며 고개를 숙이는데 한 어린아이가 다가왔다.

“얘야. 이런 시간에 여기서 뭐하니? 부모님께서 걱정하신다.”

정씨가 타이르듯이 얘기했다. 하지마 아이는 정씨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정씨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는 정말 폭포를 자를 생각이에요?”

“응.”
정씨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가위질을 시작했다. 가위는 물 위를 헛돌았다. 아무것도 잘리지 않았고 자를 수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물에 하염없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

정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가위질을 멈추었다.

“그런 가위로 해봤자 폭포를 자를 수 없을 거에요.”

“시끄러워!”

그 순간 정씨의 마음이 터져버렸다. 쿵하고 터져버린 마음은 그 안에 담고 있는 것들을 사정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동시에 정씨의 뺨을 타고 뜨거운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알아. 다 알고 있다고. 이딴 가위로 어떻게 폭포를 자르겠어? 그게 안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이게 아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어떻게 포기 하겠어?”

정씨가 가위를 집어던지고 오열했다. 폭포를 자른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도했지만 역시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아내를 위해서라며 자신을 다독이며 오늘까지 왔건만 이제 그것도 한계였다.

“그렇게나 아내가 소중해요?”

아이가 정씨에게 다가왔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조용히 정씨를 바라보며 그 작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래! 그 사람이 내 전부야!”

정씨는 아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미 눈물을 머금은 목은 소리를 내뱉지 못했고 울먹거리는 소리에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사실 그 동안 아저씨를 봐왔어요. 매일 같이 와서는 폭포를 자른다니. 처음에는 미친 사람인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매일 같이 와주었기에 아저씨에게 아내 분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줄 알 수 있었어요. 원래는 아무나 도와주지 않는데 특별하게 이번만 도와줄게요.”

“그게 무슨?”

아이가 정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따스한 손길이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워줬다. 정씨가 눈물을 닦고 보니 아이는 온데 간데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데도 없었다. 단지 아득히 먼 곳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으로 돌아가요. 아내 분이 기다려요.”

정씨는 무어에 홀린 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아내가 웃으면서 자신을 맞이해줄 것만 같았다. 쉬지 않고 뛰어갔다. 도중에 다리가 욱신거리며 아파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뛰고 뛰고 또 뛰었다.

“여보!”

정씨가 문을 열자 아내가 일어나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정씨에게 달려왔다. 부부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누구보다도 따스하게 꽉 끌어안았다. 정씨가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온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아내가 살아있음 사실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정씨가 눈물을 닦을 무렵 눈 앞에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미소를 띤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었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정씨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행복하게 살아요.”

아이는 손을 흔들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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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두부의 칭찬 댓글
작가 프로필사진 두부두부 2016. 07/18

해피엔딩이네요!!! 반전이 있을 줄 알았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