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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엄마의 글씨

 

 

 

 

 

    그녀는 매일 밤 버릇처럼 도시락 통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뚜껑 위에 큼직하게 적혀 있던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것만 같아서였다. 혼자서 잠드는 게 무서워질 때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겨둔 손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빛은 썩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도시락 통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눈에 힘을 주고 있다가 찔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시간이 흐르면, 그만 긴장을 풀고 엄마의 글씨 위에다 손가락을 가져갔다. 검은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름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사진 대신 글씨를 보며 엄마를 느꼈다. 그녀의 글씨는 점점 엄마와 비슷해졌다. ‘김민경’이라는 글자는 낙엽이 떨어질 무렵 ‘사과’로, ‘병아리’로, 그리고 마침내 엄마의 이름인 ‘이혜순’으로 변했다. 기말 통지표에는 ‘이혜순’의 사인이 적혔다. 그녀가 아홉 살이었던 시절 사라진 엄마는 그렇게 오래오래 그녀 곁에 머물렀다.

 

 

 

 

 

※ 글씨를 잘 쓰던 친구가 있었습니다(글 속의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명조체처럼 또박또박, 꼭 어른 같은 글씨체를 가진 친구였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의 곁을 떠나고 난 뒤 물건 여기저기에 남아 있던 흔적을 교본 삼아 글씨 연습을 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유리병 편지>에는 '모든 서른의 이야기'가 담깁니다. 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제 친구나 지인, 가족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또 나아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읽으시다가 가끔 툭 튀어나오는 소재들에 놀라실 수도 있겠지만, 그 이야기 또한 '어떤 서른의 이야기'라고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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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먹어 봐야 아는 것들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 봐야 알아?"

 

  척 보면 딱 아는데, 왜 굳이 함정에 빠지고, 위기에 봉착하고, 어려움을 몸소 겪느냐는 말이다. 경험이라는 것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는 나는 이 말에 매번 반감을 표하는 편이다. 이 세상에는 분명 '꼭 먹어 봐야 아는'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는 그 안에 들어가보지 않고서는 결코 파악이 불가능하다. 인간이 하나의 소우주인 한, 어떤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 역시 그러하며, 사람들이 얽히고 섥혀 만들어내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시도나 도전의 결과값이 'Perfect'가 아닐 경우, 지나치게 날선 시선을 보내곤 한다. 그런 따갑고 차가운 세계에서, 내가 가진 재료들이 이 세계에 던져졌을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지를 매 순간 실험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움을 얻고,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 '충만한 나'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매우 위험한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삶이 보여주는 다양한 색채 중 겨우 한두 개의 것만 알아채고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