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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2 - 10

583

 

 

 

사실상 방법이라면 미래에 대한 걸 알아버렸으니 과거로 돌아가서 바꾸는 것이 있다. 그러나, 멋대로 과거를 바꿔서 난장판이 된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과거를 바꾸지 않고 미래에서 해결만 하려는 선택지를 골랐다. 그런데 내가 미래에 오래 있어도 상황은 악화되고, 무분별하게 과거를 바꾸려고 시도하면 시간의 파수꾼들이 찾아오리라. 시간의 파수꾼 중 유랑극단과 손을 잡은 자가 존재한다면, 과거로 가든 미래에 있든 나에게 불리하다는 것만큼은 별만 다를 바가 없지. 잡화점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멤버들은 하나 같이 침묵을 유지할 뿐이다.

 

분명 내 앞에 있는 멤버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생각하는 거라면 정말 좋겠지만...

 

“그래서 주인. 언제쯤 촬영을 시작할 건가?”

 

난 분명 찍는다는 말도 없었는데 검은 고양이가 판을 깔아놓고 있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하지만 카일? 누나 생각으로는 백장미를 찍는 것도 중요해요오.”

 

파도가 치는듯한 금발의 여성은 레시아의 말에 동조했다.

 

“루니아 누나. 제 말을 다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기왕 이 세상이 언젠가 사라진다면, 어쩔 수 없이 카일의 귀여운 모습을 최대한 많이 남겨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오?”

 

“안 좋아요.”

 

찍히는 당사자가 안 좋아.

 

“그래도 어릿광대가 신이 되었다라아? 결국 미래에 오래 있어봤자 다른 평행차원의 설정들이 이곳까지 섞여 녹아 들고 누군가는 기괴한 설정에 오염된다는 소리군요오?”

 

기괴한 설정에 오염이 되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4차원을 뛰어넘은 대재앙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으리라. 만약 다른 세상의 설정이 오염된다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사각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나무젓가락과 공하나 올려놓는 듯한 모습으로 오염될지 모른다.

 

심지어 세계관까지 오염된다면 오메가버스인지 스쿨버스인지까지 되어버리면, 그 즉시 총채적 난국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 그리고 몇몇 평행차원은 “우린 멸망했어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곳을 오염시킨다면, 모든 평행차원 자체가 멸망 당하는 것뿐이다. 그 이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겠지.

 

따라서, 지금 가장 커다란 문제는 수 많은 평행차원 중. 분명 멸망하여 사라진 우주가 존재하리라 예상하고, 그걸 방지하면서도 유랑극단을 부셔야 하지만...

 

생각해보니 미래까지 유랑극단이 있다는 소리는,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유랑극단을 모조리 제거하는데 실패했다는 소리가 된다. 따라서, 미래에서 해결을 보고 과거로 돌아가서 유유자적하게 준비만 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머릿속은 매우 복잡하고 정리하려고 하니 너무 꼬여버렸다.

어쨌든...

 

지금은 생각하지도 못한 재앙을 통해 우리가 살아갈 길을 알아보도록 하자. 늘 계속 생각해왔던 거지만, 내가 잡화점을 처음 접하기 전부터 300년 뒤에 나는 이런 바보 같은 일을 꾸준하게 진행했다는 증거야말로, 이곳에는 존재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이 미래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 결국 과거의 나는 알지도 못하는 기괴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받아 치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게 되리라.

 

물론 그건 재앙이 아니다.

진짜 재앙은 아까 전에 말했듯이, 설정이나 세계관이 오염되는 경우일 뿐. 어쩌면 레이베리아의 진짜 목표라면, 평행차원이 융합되기 전에 일어나는 혼돈을 막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세계의 설정이 침범한다면, 꿈과 희망이 없는 이야기의 설정도 이곳에 찾아올 수도 있죠. 예를 들어 마법소녀가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이 부활해서 “매지컬~”이라는 기묘한 말과 함께 온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거요.”

 

“그럼 저도 매지컬 루니아로 활동할 수 있으니 좋은 거네요오?”

 

“매지컬에 대한 단어가 무조건 좋다는 게 아니잖아요! 아까 제가 뭐라고 했어요!”

 

“으음. 백장미 찍고 싶다고 했었죠오.”

 

“제멋대로 말하지마! 그런 단어는 단 한마디도 안 했어!”

 

아직까지도 백장미타령을 신나게 하고 있는 루니아 누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리친 것에 대해 뭐라 할 줄 알았더니. “귀여워라아~”라고 말하는 게 더 무서웠으니, 가급적이면 백장미를 찍자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도망가도록 하자.

 

검은 고양이는 내 다리 위에서 앞발을 핥았다.

 

“그렇군. 주인의 말대로 확실히 이 재앙은 성가신 것이니라. 마왕이라는 존재는 분명 대중적인 눈으로 볼 때, 대부분 다 악인이 틀림없노라. 그런 설정이 짐에게 오염되기라도 한다면, 그거야 말로 무시무시한 일이 되어버리니. 지금 당장이라도 과거로 돌아가서 평행차원이 합쳐지는 것을 막는 일 밖에 없다.”

 

“잡화점이 하나의 시공간에 2개가 되지 않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렇다.”

 

매우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이다.

본래 시간대로 되돌아가는 건 오래 전에도 했으니까.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요?”

 

“없다.”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요?”

 

“당연히 본래 시간대로 되돌아가서 ‘그것’을 하려고 할 뿐이다.”

 

“세상에~”

 

그것은 또 뭔데? 광대가 나와서 어린애들을 실종시키는 영화인가?

 

“마왕님도 대담하시군요. 그런 계획이라면 첩은 지금 당장 본래 시간대로 이동시킬 준비를...”

 

연한 초콜릿 피부를 지닌 마리아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체격은 어린애지만 검은 달의 여왕으로서, 저래 보여도 대재앙의 증거이며 새로운 시작의 알림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뭘 생각하는지 몰라도, 슬슬 아이니스에게 받아놨던 육포가 다 떨어졌으니 충전해야 한다.”

 

“결국 육포냐!”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길래 그래도 레시아만큼은 다르다고 생각을 했더니. 결국 육포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있어야 할 시간으로 돌아간다니. 육포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선 다음에 고찰하자.

 

“그래도 지금까지 들어본 바로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는 거죠?”

 

황혼을 담은 듯한 눈빛이 번뜩였다. 1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이 베어 나오고 있는 소녀는 은빛의 비단과 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푸른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앉아있는데, 조만간 길거리 싸움터에 나갈 준비라도 하는 걸까?

 

아무튼 나는 아리엘의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맞아. 지금 이대로라면 몽마의 설정도 막 바뀌기 시작해서, 네가 한쪽 손에 시퍼런 칼날이 손톱처럼 자라나있는 장갑을 끼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양호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일은 어느 시간대를 가든 다 똑같이 일어날 꺼야. 그 증거로 우리는 미래에 오기도 전에 알지도 못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고 농담과 태클에 써먹고 있지. 이건 마치 성경책을 펼치고 반야심경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과 똑같다는 거야.”

 

“예시마저 저희가 원래 몰라야 하는 거잖아요.”

 

허탈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리엘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그러면 나의 순수했던 과거부터 지금까지 평행차원들은 이쪽 차원으로 응집되고 있었다는 모양인데, 지금은 설정이 뒤틀려서 니알라토텝이 되어버린 어릿광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어릿광대가 뭘 하는지 중요한 이유라도 알 수 있습니까? 마스터?”

 

“그 무지막지한 혼종이 다른 곳에서 난리를 치면 안 되거든...”

 

하얀 올빼미가 내 어깨에 붙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상 갸웃이라기엔 기이하게 꺾여버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다음 내용을 덧붙였다.

 

“시나는 그나마 다른 평행차원에서 넘어온 케이스라서 면역이 되어있는 희망 가득한 캐릭터인가?”

 

“그건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희망이 가득한 캐릭터는 아닙니다. 마스터에게 예쁨과 사랑을 항시 받아야 하는 가련한 캐릭터죠.”

 

“비둘기가 가련하다는 말은...”

 

“올빼미입니다. 냥캣.”

 

“시끄럽다! 내려와라! 싸우자!”

 

또 서로 경쟁심에 불붙기 시작했구나. 사소한 싸움은 좋지 않다만 지금 이런 모습을 보니, 저 둘에게 기이한 세계의 설정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당연히 안도하고 있는 와중에 거대한 마력폭발에 휩쓸렸다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니다.

 

잠깐 정신을 잃는 동안에도 나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 정신을 잃었는데 생각을 어떻게 해?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살짝 검게 그을린 상태로 기침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 결계와 방어를 했는지 멀쩡히 일어서있을 뿐이었다. 물론 최고의 중심부에 맞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 나만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을 뿐.

 

“왜요? 또 뭐가 문제에요?”

 

“기괴하군. 평상시의 흐름이라면 주인은 마력폭발에 기절하고, 그 사이에 백장미를 찍을 옷을 입힌다는 정상적인 진행이 되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의 주인은 쓰러지지 않고 멀쩡하게 서 있지 않는가?”

 

“그게 왜 평상시의 흐름이고 정상적인 진행입니까? 그리고 중복된 말을 사용해서 강조하지 마시죠?”

 

평상시의 흐름은 잡화점에 사건이 들어오면 그걸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거다.

생각을 해보니 잡화점에서 사건을 받고 그걸 해결하는 것 또한 이상한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잡화점 안에 있는 위험한 물품이 2층과 3층에 있는데, 그걸 지키는 역할이 더 비중이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괴한 잡지를 찍기 위해 잡화점의 주인이 된 건 아니란 말이지.

 

“그러면 일단 투표를 하죠.”

 

“투표내용이라면 여기서 백장미를 찍는가? 아니면 본래 시간대로 돌아가서 찍는가에 대한 거죠?”

 

“아니에요. 루비아 씨.”

 

루니아 누나의 여동생인 루비아마저 기괴한 밧줄형태의 무언가를 손에 감싸며 입을 열었다.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의 부정하는 사람의 심정을 잘 모르는 거 같은데?

 

“그렇게 정색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만, 루비아 상처받았습니다. 에엥. 에엥.”

 

“영혼마저 없는 울음소리라니. 그보다 신사에서 입었던 그 무녀복장 말고 좀 더 편한 옷이 있잖아요?”

 

“이것마저 입지 못하면 저의 캐릭터를 지킬 수 없습니다.”

 

“왜 캐릭터를 지키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 제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네요.”

 

“그럼 제 개인의 자유로 지금 백장미 찍을 것을...”

 

“사람의 말을 듣고 멋대로 해석하지 내뱉지 말아주실래요?”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리제로트를 처리해야 할 건도 있으니. 본래 시간대로 돌아가는 건 잠깐 미루도록 하죠. 그나마 시간이 덜 걸리는 이유라면, 레인의 성격상 자기가 공격할 시간을 멋대로 골라서 통보할 성격이니까요.”

 

아직은 돌아갈 시간은 아니다.

 

“리제로트는 굳이 죽이지 않으시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거 같은데 말이죠?”

 

윈디는 내 옆에서 그리 말했다. 나는 분명 꼭 죽일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결국 레인을 돕는 건 나고, 죽일지 살릴지 결정하는 것에 대해 내 의견을 살짝 얹었을 뿐. 레인이 리제로트를 먼저 발견하여 죽인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레인의 선택일 뿐이다.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피를 흘려서 해결하는 방법은 옳지 못하지만, 레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사실상 나도 그 녀석만큼은 막지 못할 거야.”

 

솔직히 말하면 레인을 막기가 싫다.

어차피 레인은 또 다시 자기 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수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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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내내 일하면 죽어가는 것도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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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7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 깊은 어둠 속, 트리폴리 해안에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들은 빠르면서도 조심스럽게 해안 근처 마을로 들어가 집집마다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잠을 자다 놀란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때를 기다린듯이 해적들은 정신없이 나오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짓밟고 죽였다.
"해적이다! 해적이 나타났다!"
잠결에 들리는 시끄러운 바깥 소리에 발레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곧바로 칼을 들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병사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
"해적입니다! 급습이에요!"
발레트는 성벽 위로 단숨에 올라갔다. 이미 마을은 불에 타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고 짐승들이 시체 위를 날뛰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발레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사들은 두려움으로 가득차 주저앉아 있었다.
"각자 위치로!"
발레트는 중얼중얼거리는 병사를 일으켜 세웠다. 로메가스가 성벽 위로 뛰어 올라왔다.
"이미 마을은 초토화됐어요! 수비대는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물자 조달이 되지 않아 이미 창고에 화약은 동이 난 터였다. 병사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집결할 여력도 없었다. 연병장에는 수비대장 멘데스가 병사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요새를 사수해야 한다. 각자 자리로 돌아가라!"
"화승총이 부족합니다. 대포를 쏠 화약도 없습니다."
지휘관 한 명이 고개를 떨군 채 멘데스에게 보고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야 한다!"
멘데스는 칼을 뽑아 들며 단상에서 내려갔다. 성벽 위에서는 병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추락했다. 공포스러운 괴성과 함께 요새를 뚫을 듯한 총소리가 들렸다. 총탄은 빗발치듯 성벽에 난사되었다. 수비대는 하나 둘 쓰러졌다.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누군가 성문을 열어준 듯 합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알 수 없는 함성과 함께 터번을 두른 해적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수비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었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자들도 있었다.
"항복해라! 목숨은 살려주겠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해적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거만하게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항복해라!"
병사들이 부들부들 떨며 하나 둘 칼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버틸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항복! 항복이요!"
멘데스가 칼을 버리고 손을 들었다. 발레트와 로메가스도 칼을 버렸다.
"누가 책임자냐? 너냐?"
우두머리 해적의 칼끝이 멘데스의 목에 닿았다. 멘데스는 해적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적은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지으며 칼에 힘을 주었다.
"이슬람교로 개종을 할 건가?"
"그럴 일은 없소."
멘데스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뱉었다. 우두머리 해적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치켜 올라가더니 뒤를 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다른 해적이 배시시 웃으며 멘데스의 무릎을 꿇려 앉혔다. 멘데스의 눈이 질끈 감기는 것과 동시에 해적이 칼을 내리쳤다.
"살아남은 자들은 전부 배에 태워라!"
해적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사단의 십자가 망토를 벗겼다. 발레트의 손목에 굵은 밧줄이 동여졌다. 기사단원과 수비대, 마을 주민들은 모두 한데 묶여 해안으로 떠밀려갔다. 마을은 연기로 자욱해 눈을 뜰 수 없었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들만 흐릿하게 보였다. 평온했던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이곳은 죽은 자의 땅이었다. 뒤를 돌아보는 발레트의 등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앞만 보고 걸어."
해적은 꼬질꼬질한 얼굴을 들이밀며 비열하게 웃었다. 발레트는 이를 악 물었다. 트리폴리의 기나긴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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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6

피오르 신부는 할 일 없이 성당 안을 이리저리 걷고 있는 안드레아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앉았다 일어섰다 안절부절못하며 밖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언제 제노바로 돌아갈 생각이냐?"
"다음 주엔 가야 해요. 곧 바르셀로나로 이동할 것 같아요."
안드레아는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발을 떼며 대답했다.
"위험한 상황인거야?"
피오르 신부가 걱정이 담긴 말투로 물었다.
"아니에요, 삼촌. 마음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안드레아는 피오르 신부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신부는 이제 자신의 손보다 더 큰 조카의 손등을 두드렸다.
"그런데 아침 일찍 성당에는 무슨 일이냐? 기도하러 온 건 아닐테고."
안드레아는 대답 대신 멀뚱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넌 곧 떠날 사람이야, 안드레아."
"그렇지만 그녀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안드레아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피오르 신부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신부는 온화한 표정으로 괴로움을 머금은 조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성당 중앙에 빛이 한 줄기 비치더니 가벼운 발소리가 울렸다. 안드레아는 재빨리 몸을 숙였다. 나디아는 제단 앞으로 걸어와 성호를 긋고 초를 켰다.
광장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드레아는 성당 입구 기둥에 기대어 빛으로 휘감은 임디나를 바라보았다. 정문이 열리고 나디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소매가 넓은 푸른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짙은 갈색 머리는 어깨 아래로 길게 굽이쳐 흘렀고 오묘한 초록 눈은 세상을 다 담을 듯 깊었다.
"오늘도 날씨가 좋네요."
안드레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디아는 고개를 돌렸다. 깔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안드레아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같이 걸어도 될까요?"
나디아는 불쑥 자신 앞에 나타나는 안드레아의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앞섰다.
"매일 기도하러 오는 건가요?"
안드레아는 나디아의 걷는 속도에 걸음을 맞췄다.
"네, 매일마다."
나디아는 시선을 앞에 둔 채 짤막하게 대답했다.
"제 어머니도 그러셨죠."
과거형인 그의 말에 두 사람 가운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몰타는 처음인가요?"
"이번이 두 번째에요. 제노바도 바다를 끼고 있지만 몰타에서 바라보는 지중해와는 비교할 수가 없어요. 특히 포도주 맛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안드레아는 나디아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나디아는 어색함을 느끼고 화제를 돌렸다.
"피오르 신부님과 사이가 좋아 보여요."
"아버지가 엄하신 편인데 삼촌은 늘 제 얘기를 들어줘서 어릴 때부터 많이 따랐어요. 몰타로 가신 후엔 자주 볼 수 없지만.."
"신부님은 정말 너그러운 분이에요. 모두의 친구이기도 하고."
"앞으로 더 자주 몰타에 와야겠어요."
"신부님이 좋아하실 거에요."
나디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따뜻하게 말했다.
"다시 찾았을 때 오늘처럼 당신과 걸을 수 있을까요?"
나디아는 걸음을 멈추고 그때야 비로소 안드레아를 보았다. 조금 전의 천진한 표정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안드레아는 나디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디아의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거렸다. 광장의 분수대에서는 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들의 머리 위로 한 쌍의 새가 지저귀며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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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2 - 9

582

 

 

 

보통 사람이 칼에 찔리면 처음에는 고통이 없으나, 이후에는 천천히 고통이 느껴지고 조금만 더 있으면 고통이 커지는데, 이걸 매우 쉽게 말하면 “칼에 찔리면 마이아파.”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지금 내 몸 어딘가에 단검이 박혀있는지 눈으로 쫓고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심장부근에 박혀 빠지지 않는 상태였고, 칼에 찔린 것도 서러워죽겠는데 어릿광대의 조소가 내 귀로 들어와 정신적인 피해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에 이변이 생기고 있다는 건 붉은 피가 흘러나와 출혈로 인해 빈혈이 생기기보단, 오히려 아주 조금만 흘렸을 뿐. 안에는 이제 남아있지 않다는 듯이 피는 나오지도 않고, 마치 지점토에 칼을 찌른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지점토가 칼에 찔리면 이런 느낌이 강하겠지.

 

[인간...도대체 어찌 된 것이냐?]

 

사람은 피를 흘린다라는 공식이야 말로 이 세상의 법칙이자 변하면 안 된다. 히드라가 충격을 먹고 나에게 질문을 하는 동안, 주변 바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윈디가 동요하는 동안 어릿광대의 조소는 멈추지 않았다.

 

“역시나!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렸어! 피가 도중에 나지 않잖아!”

 

“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아마 지금 토마토소스를 섭취한다면 분명 더 나올 거 같으니까. 지금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토마토 좀 사줄래?”

 

당연히 직접 찔린 당사자 또한 매우 당황해야 정상이지. 게다가 통증도 이제 느껴지지 않았고, 곧바로 죽어야 하는 치명상임에도 불구하고 농담하나 제대로 던질 정도라면, 이제 물리적인 방법으로 내가 죽기엔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단 소리다.

 

나도 모르게 어릿광대가 쑤셔 넣은 단검을 빼냈다. 분명 피가 있었으니 검은 단검에도 보이는 선명한 핏자국이 보였지만, 내 몸을 살펴보니 그 자리에는 피가 흐르다 만 것 이외에 신성력과 마기, 마나가 합쳐져 있는 거대한 에너지가 상처부위를 막고 재빠르게 재생까지 했다.

 

“세상에...”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또 뭐가 되어버린 거지?

 

“이제 인간이 아니네. 완벽하게 인간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존재, 혹은 새로운 신으로 뻗어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뿌듯해. 너무 뿌듯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니까? 아 맞다. 지금은 가면을 쓰고 있으니 눈물을 흘릴 수가 없지. 그럼 소리라도 내도록 할게! 에엥! 에엥!”

 

단검을 들고 양손으로 하얀 가면을 가리면서 우는 척 하는 게, 어린 아이들의 생일파티보다 더 짜증이 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잡화점에서 쫓겨날 처지가 되긴 해도, 아직까지 루니아 누나가 잡화점 안에 남아있으니, 나 대신 잡화점의 후계자가 되어도 상관이 없으나, 지금은 실제로 내가 인간의 틀을 완벽하게 벗어났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은 프리스트들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신성력을 빌려 자신의 몸을 일시적으로 에너지화 시키는 경우도 있으니. 아직까지 나는 잡화점의 주인일 뿐이다.

 

“뭐, 이건 따로 생각하도록 하자. 이렇게 되면 염라대왕이 날 명계로 못 끌고 갈 테니, 내 명줄이 좀 더 늘어났다고 생각만 해보자.”

 

“명줄이 늘어난 게 아니라 특수한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영원하게 살 수 있겠네.”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입장에서는 내 개인적인 견해로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할 일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긍정적인 면을 좀 보고 살아봐야지.

 

“결국엔 나와 자기는 영원히 싸울 수 있다는 거야. 이렇게 되면 결혼식도 올리고 다른 여자들도 알아서 떨어져 나가겠지?”

 

아니. 그건 아니라고 보는데.

 

“다른 존재로 돌연변이가 되었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널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그래서 이제 도망갈 준비를 하는 거냐?”

 

조금씩 거리가 멀어지는 착각을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정말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

 

“그래도 지금은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왜 의문문을 의문문으로 대답하냐? 쓸 때 없이 고개를 갸웃거리지 마.”

 

“그럼 이렇게 180도로 돌려서...”

 

“180도로 고개를 어떻게 돌...으아악! 이 괴물 같은 녀석! 진짜로 돌리지 말고 제대로 갸웃거리기나 해!”

 

“괴물 같은 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도플갱어도 몬스터에 속하니까 괴물 맞아.”

 

“그런 거 수긍하지 말고! 목뼈 부러지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린다!”

 

아무리 도플갱어라도 목은 180도로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끝내볼까? 다음에 볼 때는 방해자가 없으면 좋겠는...”

 

-콰아앙!

 

어릿광대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폭발 하나. 굉음은 이곳까지 울리고 온 천하를 전율에 떨게 만드는 진동이 사방을 퍼져나갔다. 그 뒤에 아쉬운 듯 짧게 혀를 찬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다음 말을 이었다.

 

“칫! 도망 하나는 잽싸군. 뭐 어쨌든 다음에 만나면 제거하도록 해야지. 설령 다른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한들, 짐 앞에서는 약간 껄끄러운 제거대상일 뿐이니라.”

 

마왕이 외신을 제거할 수 있다는 말에 더욱 더 놀랐다.

 

“마스터. 상처는 없으신지요?”

 

“아아! 짐이 멋지게 주인을 구하며 등장하고 있는데, 새치기를 하다니! 비둘기...”

 

“올빼미입니다.”

 

“어쨌든 당장 주인의 어깨에서 내려오거라!”

 

하얀 올빼미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검은 고양이야 말로 300년전 당시의 최고의 마왕. 마계 역사상 문화와 사회자체를 뒤바꿔버린 타락의 마왕 레시아와 다른 차원을 창조한 빛의 여신 시나의 말 싸움은 끝날 줄 몰랐다. 옆에서 고양이와 올빼미가 앞발과 날개를 마치 사람의 손처럼 힘겨루기 하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가관이었다. 저러다 폭주하면 내 어깨에서 마법이 날아올 건 안 봐도 뻔하니까.

 

그리고 쓸쓸한 희생자가 되겠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제발 내 어깨 위에서 싸우지 마세요. 저를 구하러 왔다는 건 감사하지만, 오히려 암살자는 저와 가까운 레시아나 시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불안에 떨고 있으니 5초 이내로 둘 다 내려가지 않으면 아이언 클로가 출격할 거에요.”

 

내 말을 듣고 얌전하게 내려가는 레시아와 시나. 원하지 않는 스트레스와 피해는 재앙이 되니까 철저하게 관리를 하자. 그나저나...

 

“제가 위험한 건 어떻게 알고 온 거에요?”

 

잡화점의 멤버를 알리는 반지가 효력은 있어도 그리 뛰어나진 않을 텐데. 용케 잘 알고 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면...

 

“슬슬 백장미를 찍어야 한다고 루니아가 데려오라고 했노라.”

 

“맞습니다. 슬슬 모델활동을 하셔야 합니다. 마스터.”

 

뭐...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지. 이곳까지 와서 단검에 찔리고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에도, 내가 다쳤는지 다른 존재가 되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 체, 그저 저주받을 하얀 잡지를 찍어야 한다고 이곳까지 찾아온 거라니.

 

“안 찍어! 도대체 그 잡지가 뭐길래!”

 

“그 잡지는 예로부터 파이론에서부터 시작하여...”

 

“시끄러워요!”

레시아의 장황한 설명을 다 들어줄 인내심은 없었다. 검은 고양이는 내 다리를 붙잡더니...

 

“짐의 부탁이니라. 찍으러 가도록!”

 

“안 찍는다고요...”

 

이번엔 하얀 올빼미가 비어있던 왼쪽다리를 붙잡더니

 

“마스터. 저의 부탁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아 글쎄! 백장미 안 찍는다고!”

 

지쳐서 소리지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결국 소리지르게 만드는 듀오. 서로 싸울 때는 원수처럼 싸우더니, 지금처럼 서로 협동할 때는 죽이 너무 잘 맞는다. 이러다가 조만간 저 둘이 변신로봇을 불러서 합체를 하더니, 우주에 구멍을 뚫는 드릴로 적들을 분쇄하지 않을까?

 

가끔 이렇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쓸 때가 없다.

 

“결국엔 주인은 찍게 되어있다.”

 

“맞습니다.”

 

“그 운명론적인 대답은 또 뭐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에 무언가가 전개될 거 같은 기분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데?”

 

기분 나쁜 일이라고 한다면 억지로 때려서라도 데리고 간다는 선택지가 있지만, 지금 내 상태는 쉽게 제압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이번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천천히 생각해도 답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찍지 않는다면 주인이 명계로 떨어지고 우리들은 그대로 본래 시간대에 돌아가서, 명계에서 농락당하고 있는 주인을 열심히 구경하겠노라.”

 

“그건 대체 무슨 벌칙게임이죠?”

 

명계에서 염라대왕에게 심판을 받아야지. 왜 농락을 당해?

신개념 벌칙게임에 나도 놀래고 이걸 읽는 당사자도 놀랬을 거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하늘이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변질될지도 몰라. 그런데...

 

“이번엔 명계에 가서 할 일도 없잖아요? 저번에 천계에 한번 다녀온 걸로 느닷없이 저쪽에서 막무가내로 연락을 끊어버리고...”

 

“그건 전에 주인이 명계에서 백장미를 찍으라고 말한 걸 듣자마자, 수정구의 연락망을 끊어버린 것이 아닌가? 아무리 짐이 주인의 편이라고 한들, 기본적으로 뭐가 잘못이고 뭐가 나쁜 것인지는 알고 있노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장을 강요하는 상대의 통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는 게 잘못은 아니거든요!”

 

내가 여장을 한다는 것부터 잘못이 아닐지...

어쨌든 명계에 볼일도 없고, 직접 찾아가서 따질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지금은 내 앞에 있는 저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주인! 아무리 인간의 틀을 벗어나려고 해도 감정까지 벗어나려는 건가!”

 

“그 백장미가 뭐길래 절 인간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겁니까?”

 

가끔가다 생각하는데 그 바보 같은 하얀 잡지는 인생에 무엇일까?

 

“지금은 상황이 너무 안 좋으니 나중에 잡화점으로 먼저 돌아가고 이야기 하죠.”

 

“상황이 좋지 않다? 그 어릿광대가 무슨 일이라도 한 것인가?”

 

수그러지는 분위기를 토대로 이야기의 주제가 바뀌었다. 유랑극단의 일도 그렇지만 어릿광대가 뜬금없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다른 신화에서 나와야 하던 니알라토텝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다른 평행세계와 가까워졌다는 의미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릿광대뿐만이 아니라 우리마저도 다른 설정에 섞여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빨리 이곳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데, 가장 근본적으로 레이베리아 때문에 본래 시간대로 못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다른 계획으로 잡화점 2개에서 하나로 줄이는 방법이 있지만, 애석하게도 잡화점이란 것은 인격이 존재하기에, 솔직히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서 “당신이 살아있으면 크나큰 해가 되니까 죽어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빌어먹게도...

 

“어릿광대가 신으로 각성해버린 이상, 스스로 능력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잘 나타나진 않을 거에요. 그래도 니알라토텝이라는 건 신보단 우주적 존재에 가깝기는 해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주의하도록 하는 거죠. 그리고 이 상태로 본래 시간대에 돌아가버린다고 해도, 만약에 평행차원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니.”

 

또 다른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걸 되돌리거나. 모든 걸 바꿔버릴 수 밖에 없어요.”

 

지금 상황이라면 과거를 바꿔서 미래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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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회사일에 치중하니...

글을 쓸 시간이 거의 없네요.

짤리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 하는데.

글 쓸 시간마저 할애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좀 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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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5

릴라당은 시종에게서 서신을 전달받고 빠르게 읽어나갔다. 발신처는 트리폴리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무엇인가를 써 내려갔다. 그런 다음 인장이 봉해진 두 개의 편지를 시종에게 건넸다.
"하나는 에스퍄냐로, 다른 하나는 트리폴리로."
트리폴리의 사정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발레트는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맡은 임무를 잘 수행할 테지만 낯선 땅에서 해적을 상대로 요새를 방어하는 것은 필시 외로운 싸움일 것이었다.
릴라당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빌구와 생리아의 요새 보수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발레트를 트리폴리 요새로 보내자 보키아는 그 일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다. 보키아는 에스파냐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넘어서 에스파냐로 활동 무대를 넓히길 바랬다. 릴라당은 비밀히 비토 발티를 감시하게 했으나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기사단 숙소에 잠입했던 투르크인은 갤리선 노잡이로 보내졌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으나 미심쩍은 부분은 남아있었다. 투르크인이 찾으러 온 칼 그리고 새겨진 이름, 살람 메메드.
'살람 메메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인가?'
썩은 싹을 뿌리 채 뽑지 못한다면 몰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오스만이 훤히 알게 될 것이 뻔했다. 정찰병은 또 보내져 몰타에 숨어들 것이었다.
'말이 모이는 곳이 어딘가?'
동.서양을 오가는 상선의 중간 기착지로서 몰타의 항구는 온갖 소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들의 말은 서로 뒤엉켜 한곳에 모였다가 어딘가로 다시 흩어졌다. 말이 모이는 곳.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사람을 알아내야만 했다.

 


성당을 향해 걸어가던 안드레아는 검은 베일을 쓴 여인과 피오르 삼촌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에게 가까워지자 인기척을 느낀 여인이 신부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자신의 신분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 여인의 행동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안드레아, 어딜 다녀오는 거냐?"
피오르 신부는 앞으로 걸어나오며 안드레아를 맞았다.
"항구 주변을 산책하고 오는 길이에요."
"아름다운 곳이지?"
피오르 신부는 광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드레아는 대답없이 삼촌과 같은 곳을 보며 아이처럼 웃었다. 아침 햇살에 비친 임디나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평온했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현실과 상관없이 따로 떨어진 공간 같았다. 모래색의 오래된 건축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했다. 안드레아는 낯설면서도 신비한 임디나의 정취에 빠져들었다. 이곳은 이방인을 붙잡아 두는 어떠한 힘이 있었다.

 

 

안드레아를 지나쳐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오른 여인은 얼굴을 덮고 있던 베일을 걷어 올렸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자 잠자던 말의 눈이 떠지며 긴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는 임디나에서 가장 높은 성채의 성문을 지나 뜰에 멈춰섰다. 어린 하인이 문을 열자 검은색 소매자락과 함께 새하얀 손이 보였다.
"보키아 경께서 찾으십니다."
앞에 서 있던 비토가 보키아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보키아 부인은 어린 시녀에게 아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물어볼 뿐이었다. 그녀는 가브리엘을 방으로 데려오라고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가브리엘?"
방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들리자 베일을 벗고 머리를 다듬고 있던 보키아 부인이 밝은 목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나요, 부인."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는 문앞에 보키아가 서 있자 아무 말 없이 다시 거울로 시선을 주었다.
"성당에 다녀오는 길이오?"
보키아는 화장대 앞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신부님을 뵙고 왔어요."
그녀는 다소 차가운 말투로 여전히 보키아를 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피오르 신부가 나보다 당신의 얼굴을 자주 보겠군."
보키아는 창 쪽으로 걸어가며 밖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죠?"
더 이상의 말은 듣고 싶지 않은 듯 짜증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며칠 후 에스파냐에서 손님이 오는 건 알고 있겠지.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바라오."
보키아는 할 말을 마치자 방을 나가 버렸다. 그녀는 들고 있던 머리빗을 화장대에 내려놓았다. 거울 속에는 생기잃은 표정의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