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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13

둥, 둥, 둥!!!
검은 얼굴의 해적은 손을 높이 들어 북을 내리치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노를 저어라! 더 힘껏!"
발레트는 이를 악 물고 족쇄 찬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생존 앞에서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앞 사내의 등에 긴 채찍이 내리꽂혔다. 사내의 손에서 노가 떨어지자마자 곧 사정없는 매질이 이어졌다.
"계속 저어요."
지아니가 정면을 응시한 채 표정없는 얼굴로 말했다. 땀이 비가 오듯 흘러 내렸다. 지하 선실은 덥고 습했다. 발레트는 강렬한 태양이 그리워졌다. 빌구의 성벽 위에서 마셨던 포도주가 간절히 생각났다. 금빛의 스케베라스산과 붉은 바다, 함께 했던 사람들. 다시 한번 그곳에서 몰타의 풍경을 보고 싶었다. 지아니의 말이 옳았다. 버텨야 했다.
발레트는 북소리에 집중했다. 북을 치는 해적의 손이 더욱 빨라졌고 노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해적들의 엉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레트는 라골레타 항에 가까이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항구는 북아프리카의 관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괴괴한 모습이었다. 트리폴리를 무참히 함락시킨 해적의 잔인함을 피해 아랍 지도자는 이미 도망쳐 버린 후였고 튀니스 주민들은 해적들을 상대로 감히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바르바리 해적들은 힘쓰지 않고 라골레타 항에 입성했다. 부족 대표들은 해적에게 튀니스 요새를 내어주고 말았다.
갤리선 노예들은 모두 족쇄를 찬 채로 배에서 내렸다. 발레트는 트리폴리에서 사로잡힌 후로 처음 두 발로 땅을 딛고 섰다. 다른 배에서 내린 노예들 사이로 로메가스가 보였다. 로메가스는 걸음을 멈추고 발레트를 쳐다보았다. 발레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오랫동안 걷지 못한 탓에 지아니는 다리의 중심을 잡지 못했다. 휘청거리는 그를 발레트가 붙잡자 해적은 둘 사이를 떼어놓으며 지아니의 등을 밀쳤다. 검은 얼굴의 해적은 발레트를 노려보며 허리춤에 찬 칼을 만졌다. 발레트는 족쇄를 끌며 앞으로 걸었다. 이제 마그레브의 튀니스는 해적의 도시가 되었다.

 

 

지중해의 바람이 갑판 위로 몸을 내민 안드레아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갔다.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몰타에서 경험한 짧은 환희 뒤에는 텅 빈 허전함만이 남았다. 눈을 감으면 애처로운 얼굴로 항구를 뛰어다니는 나디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드레아는 마지막 순간을 지울 수 없었다. 성 요한 기사단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숨을 내쉬었다. 트리폴리에서 살아남은 자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요새는 해적이 장악하고 있고 대다수의 주민과 병사는 죽임을 당했다.
'에스파냐에는 다른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갤리선은 바르셀로나를 향하고 있었다. 제노바는 일찍이 상업으로 도시가 형성된 곳이었다.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로서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으나 베네치아와의 세력 다툼에서 패배한 후 밀라노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그렇게 쇠퇴의 길을 걷던 제노바에게 에스파냐의 카를 5세가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그는 제노바의 용병 대장 도리아를 해군 총독으로 삼고 제노바의 자립을 도와주었다. 카를 5세는 해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했다. 도리아 또한 용병으로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쪽으로 움직이는게 당연했다. 북아프리카에 관심을 두지 않던 카를 5세도 더는 바르바로사의 도를 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전군을 바르셀로나에 집결시켰다.
안드레아는 도리아가 이끄는 해군 선단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는 금융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다의 삶을 택했다. 돈을 저울질하는 것은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원했다. 피오르 삼촌은 늘 그가 동경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어린 안드레아에게 바다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였다.
안드레아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렸다. 파도는 저항없이 순순히 길을 내주었고 돛은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바람은 지중해의 서쪽으로 배를 실어 보냈다.

 


바르셀로나는 독일, 에스파냐, 이탈리아에서 집합한 갤리선과 무장 상선으로 가득차 있었다. 원정에 필요한 수많은 물자를 배에 적재하는 선원들로 항구는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카를 5세는 튀니스까지 점령한 바르바리 해적으로 인해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튀니스는 시칠리아까지 배로 하루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였기에 해적은 제국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그것은 광활한 영토를 거느린 카를 5세의 자존심에 금이 가게 만든 사건이었다. 더구나 바르바로사는 오스만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카를 5세는 이번에야말로 지중해가 기독교도의 것임을 단단히 일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튀니스 원정은 대규모의 함선과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교황은 자금을 내어 선단을 조직하였고 릴라당은 세계 최고의 무장 상선인 성 안나호를 바르셀로나로 보냈다. 도리아가 이끄는 제노바 해군도 바르셀로나 항에 들어섰다.
안드레아는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에스파냐 해군에게 트리폴리에 관한 다른 정보가 들어왔는지 알아보았다. 에스파냐 수비대장 멘데스는 죽임을 당했고 살아남은 병사들과 성 요한 기사들은 갤리선 노예로 넘겨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사망자 명단에 발레트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보면 포로로 잡혔을 확률이 높았다. 해적의 습격이나 해전으로 포로가 된 기독교도나 이슬람교도는 갤리선 노예로 보내져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해전으로 배가 침몰하면 제일 먼저 목숨을 잃는 건 노예들이었다. 그렇기에 각국의 갤리선에는 노를 저을 노예가 항상 필요했고 노예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안드레아의 눈에 성 요한 기사단의 무장 상선 성 안나호가 들어왔다. 돛대에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 때 창설된 성 요한 기사단은 귀족의 자제들로 구성된 의료 기사단으로 출발했다. 기사는 청빈, 순결, 순종을 평생토록 맹세했고 기사단에 남은 생을 바쳤다. 안드레아는 트리폴리 요새가 함락되지 않았다면 튀니스 원정에서 발레트를 동맹군으로 만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성당에서 기도한다는 나디아의 말을 떠올렸다. 우두커니 서 있는 안드레아의 앞뒤로 짐을 맨 선원들의 분주한 발걸음만 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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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3 - 3

586

 

 

 

만일 조사를 받는 와중에 자신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장을 했는데 그게 하필 검은 고양이 코스프레였고, 살인미수를 한 인간이 자신의 잘못은 스틱스 강 저 멀리 던져버리며 멀쩡하게 이야기 하고 있고, 하필 건들인 사람이 적과 아군을 둘째치고 거대한 기업의 영애라고 한다면, 지금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양한 사고를 경험했지만 이렇게 다각도로 사람을 미쳐버리게 한 상황이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나는 한마디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어차피 조사를 받는 건 레인이지 내가 살인을 저지르려고 한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는 일반 경찰이 조사하기엔 무리가 있다. 뜬금없이 샤프심이 총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는 기괴한 현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그 말을 믿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 이건 무슨 해프닝인가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끝나긴 하겠지만...

 

“저도 피해자라니까요? 세상에 총알처럼 빠른 샤프심으로 죽을 뻔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날아드는 방향을 보아 시민들 사이에서 날아들었다는 건데, 그런 연약하고 힘 없는 시민은 저에게도 적용되는 사항이라고요. 제가 비록 이런 이상한 가면을 써서 믿지 않으시려고 하겠지만, 제 옆에 있는 여자친구도...아니. 코스프레 일 때문에 여장한 친구도 무서운 경험을 했다니까요? 안 그래도 소극적인 사람인데 이 일로 트라우마가 되면 어쩌겠어요?”

 

참으로 당당하게 자기가 저질러놓고 수습하기 위해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매우 능숙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보다 여장한 친구라고 떠벌린 순간, 모든 사람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은 가지각색으로 바뀌었다. 뭐, 코스튬 플레이 문화가 있긴 하니까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은 상대적으로 적겠지만, 방금 이 녀석 나를 여자로 착각했었지? 조만간 때릴까? 그리고 누가 소극적이야?

 

“당신. 본부에 직접 전화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저 남자를 잡아가는 게 좋을 걸?”

 

서리가 피어 오르듯한 리제로트의 말에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나이가 어려도 카리스마가 타고난다면 자신보다 더 작은 어린 아이에게도 압도당할 수 있다. 하긴, 힘을 가진 자야말로 카리스마가 있기 마련인가?

 

그것도 아닐 텐데...

 

“우선 경찰서까지 가시죠. 그보다...”

 

나를 바라본 경찰은 잠깐 고민하며 경직된 체 서 있었다. 나에게 끊임없는 불안감을 심어주는 행동을 5초동안 하다가, 다시 옆에 있던 리제로트가 입을 열기를...

 

“그 사람은 놔두세요.”

 

여전히 나에게 볼일이 있다는 건가?

 

[레인은 괜찮을까?]

 

릴리스가 경찰관 사이에서 유령처럼 통과한 체 나에게 날아들었다. 다른 이들에게 허상이라고 해도, 그 허상이 내 손을 붙잡을 때는,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따듯했다.

 

[레인이야 알아서 해결하겠죠. 레인도 인맥이 없지 않아 있을 테니까요.]

 

자기가 일을 벌이고 수습하는 걸 밥 먹듯이 하는 녀석이니까. 저런 일에 익숙하다고 한다면...

 

[문제는 저에게 처해진 상황이네요.]

 

리제로트는 살며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더니.

 

“잠깐 같이 차를 마실 시간은 있겠죠? 만약 없다면 그런 모습으로 조사받으러 가셔도 상관 없어요?”

 

천천히 경찰서로 끌려가는 레인을 바라보며 한숨을 마음속으로 포장했다.

 

“좋아. 옷의 저주를 풀어야 하지만, 잠깐의 휴식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런데...”

 

“유랑극단의 간부가 어째서 적의 입장인 자신과 이렇게 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죠? 유랑극단은 애석하게도 결단력이 거의 없는 단체거든요. 당장 죽어야 할 적일지라도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일 뿐이에요.”

 

“그런 것도 각본가가 다 쓴 거야?”

 

각본가의 존재는 모든 일을 미리 적어놓고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지만, 레이베리아의 힘이 그렇게까지 전지전능하지 않았나 보다.

 

“아뇨. 이건 각본과는 별로 상관 없어요. 아무리 레이베리아라도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보다 제가 맛있는 찻집은 잘 알고 있으니 따라오시죠.”

 

적어도 옷의 저주라도 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내 여장이 리제로트 입장에선 보기 좋았나 보다. 정상적인 옷을 입고 있었을 때는, 기어가는 지네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표정이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

 

“꼭 이렇게 걸어가면서 공개처형이라도 해야겠냐?”

 

“괜찮아요. 월터가 저희를 지켜줄 거에요.”

 

“내가 내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줄 알아? 이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게 싫다는 거야.”

 

“저주가 걸려서 벗지도 못하잖아요? 이렇게 된 이상 당당하게 커밍아웃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여장으로 커밍아웃을 왜 하는데? 여장을 당했는데 그런 비참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아.”

 

“여장을 하던 말던 자신의 신변에 대해 궤변을 늘여놓는 건 잘 하시네요.”

 

“궤변이라니? 나처럼 정론을 이야기 하는 사람도 없다고? 모든 세상사람들이 전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나야.”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니 이 말싸움은 내가 이긴 거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 이기고 지는 걸 따지는 내 입장을 잠깐 생각하자니, 너무 비참해서 머릿속에 있는 휴지통에 넣고 삭제를 누르기로 하자. 찻집에 따라가는 내내 월터의 팔을 바라보았는데, 샤프심임에도 불구하고 무기보다 더 심한 살상력으로 끌어올린 레인의 공격을 버티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잘만 움직였다.

 

“그러면 당신은 지금 이 세상이 잘못 되었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 건가요?”

 

“인지는 하지. 어차피 이 시간대에서 내가 사라지기만 하면 되잖아. 나도 본래 장소로 돌아가고 싶어서 미칠 거 같아. 그러나, 해결해야 할 일이 한 두 개가 아니라서 말이지. 추후 미래의 유랑극단에 대한 일도 처리하고 싶으나, 애석하게도 우리끼리 싸우면 모든 곳이 다 멸망해버리니, 어쩔 수 없이 지금 당장이라도 뒤집지는 않는다고.”

 

“뒤집는다면?”

 

“레이베리아와 일기토를 벌일 생각도 하고 있어. 하지만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어.”

 

리제로트와 월터의 걸음이 멈추고 나도 따라서 멈췄다.

 

“왜 나를 구해줬지?”

 

내 한마디에 리제로트는 우두커니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결정한 듯 입을 열었다.

 

“당신이 죽는 건 각본에 없으니까요. 애초에 각본엔 당신의 이름도 특징도 적히지 않아요.”

 

“내가 적히지 않는다는 건 예전부터 일어난 일이지,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어.”

 

정해진 각본이었다면 죽었다는 건가? 아니면 그 각본에 쓰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구해준 건가? 아니, 날 구한 목적은 따로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각본에 없다는 의미는 정해져 있는 결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증거. 그러니 당신을 한 번 살려주고, 그 은혜로 저에게 정해진 결말을 부셔달라는 의뢰를 하고 싶은 거에요.”

 

[호오? 꼬마가 제법 머리를 쓸 줄 아는데?]

 

나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던 릴리스의 감탄사는 내 귀를 때렸다. 유랑극단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의뢰를 했다는 말은, 적과 아군의 구분을 떠나서 일단 같은 배를 탄다는 의미가 되는데, 의뢰인이 배신을 안 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저 어린 표정에는 절박함이 드러나있다.

 

“그래? 내가 널 살려줬으니, 너도 날 살려달라 이런 소리구나.”

 

“멋지게 돌려 말했는데 당신은 낭만이 없군요.”

 

“의뢰를 받는 순간부터 낭만이고 뭐고 없어. 배신하지 않는다면 나는 의뢰인을 최대한 도와주는 것뿐이야.”

 

그러니 배신을 하면 그 이후엔 어찌될지 모른다는 협박을 미리 깔아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제로트는 흔쾌히 손을 내밀었는데. 악수라는 건 기본적으로 “서로 잘해봅시다.”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은 손을 붙잡고 살짝 흔들며 의뢰를 받아들인 찰나.

 

[자기? 아무래도 다른 곳에 위험이 생긴 거 같은데?]

 

[위험?]

 

리제로트가 이제 와서 자신을 미끼로 함정을 팔 이유는 없고.

 

[위험이라면? 적습은 아니겠지?]

 

일부러 위험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면, 명확한 정보를 모르는 모양이다. 유랑극단이 보낸 자객이라고 생각하기엔 의구심이 드는데...

 

“카일~ 어디서 다른 소녀와 놀기 위해 비밀친구 서약을 하고 있는 거죠오?”

 

역시나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는 법이다.

 

“대체 이게 무슨 난장판이야!”

 

거대한 검기가 리제로트와 월터를 노리는 게 아니라, 정확히 나를 노리며 뿜어져 나왔다. 공중으로 날아갈 만큼 힘껏 도약을 하자마자 기이한 밧줄이 날아왔는데, 마법방패<Magic Shield>로 내 주변을 감싸며 빠르게 회전시켰다. 밧줄은 빠른 회전에 튕겨나가고 안착한 자리에서 루비아와 루니아 누나를 마주했다.

 

“그보다 명백하게 저를 먼저 죽이려고 하지 않았나요?”

 

“당연히 카일이라면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안일하게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하물며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그런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이지 않는가? 특히 나에게...

 

“당신들도 같이 찻집에 가시죠?”

 

리제로트는 나와 마주할 때와는 전혀 다른 호의적인 미소와 함께, 루비아와 루니아 누나에게 권유를 했다. 물론 귀여운 걸 보면 환장하는 루니아 누나라면 받아들이고도 남았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유랑극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섣불리 승낙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귀여운 카일을 데리고 온 거랍니다아. 차는 잡화점 안에서 마셔도 상관 없거든요오.”

 

“그런가요? 그럼 그 잡화점에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

 

상상이상의 전개가 나오고 있어서 나 또한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다. 사실은 흥미진진하다기 보단, 여기서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 더 무서웠지만, 이제 하다못해 집까지 찾아오려고 한다. 지금 유랑극단들이 잡화점을 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는걸 보면 그냥 날로 먹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기다려. 잡화점은 아직까지 유랑극단은 아직까지 적이야. 너를 잡화점에 들어오게 하고 싶은 마음이 1%가량이 있어도 지금은 안돼.”

 

아까까지만 해도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는지, 얼굴이 살짝 풀어진 리제로트가 다시 정색을 하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흐음? 어여쁜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진정으로 노리는 건 잡화점 멤버들이냐?

리제로트의 눈빛이 살짝 번뜩인 걸로 보아 진짜인 모양이다.

 

“꽃밭에서 놀고 싶은 건 소녀의 마음이라고요?”

 

“내 표정을 읽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만, 네가 말하는 꽃밭의 의미는 아무래도 전혀 다른 의미인 거 같으니까. 안 된다고 해둘게. 실제로 꽃밭에서 꽃들만 있는 줄 알아? 곤충도 있고 지렁이도 있고 그 사이에서 사냥하고 있는 고블린도 있다고.”

 

몬스터들의 숲에 2박 3일로 캠핑을 해봐야 꽃밭도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걸 깨닫겠지. 실제로 네펜데스 돌연변이들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차이점이 있다며 그냥 네펜데스는 가만히 있고, 돌연변이들은 직접 뛰어서 사람을 집어삼킨다.

 

“당신은 아직까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 잘 모르시나 보네요?”

 

“글쎄? 사람이 많은 것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여장하면서 이상한 잡지 모델이나 하는 삶은 원하지 않거든.”

 

잡화점에서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건 없지만, 마냥 긍정적일 수 없는 이유라면, 아직까지 따라다니고 있는 투명한 카메라 같은 것들이, 온 종일 날아다니면서 잡지의 재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리라.

 

물론, 지금 카메라를 든 루니아 누나 또한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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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연재주기가 길어지고 있네요.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기간이 매우 짧아서, 제가 휴일 없이 야근을 1달에 30일정도를 하고 있거든요.

 

집 오면 새벽 12시부터 2시인데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이니.

적어도 7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 와중에 글을 쓸 시간보단 제가 설계쪽의 일을 하면서 설계와 관련된 것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네요.

 

역시 직장인의 삶은 힘든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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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12

릴라당은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리폴리 요새의 방어를 맡아달라는 카를 5세의 조건이 처음부터 탐탁치 않았던 그였다. 그곳은 남부 이탈리아 해안 마을을 습격하는 해적들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었다. 변변치않은 병력과 지원으로 타국의 요새를 지킨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기사들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마을은 불태워졌고 요새는 해적들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북아프리카 해안은 해적이 군림하는 땅으로 점차 바뀌고 있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마르삼세트 항구는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오가는 상선들로 늘 분주했다. 이곳은 각국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온갖 소식이 넘쳐났다. 나디아는 거친 바다 사람들 사이를 부단히 뛰어다녔다. 사내들은 젊은 아가씨가 항구를 돌아다니는 것이 이상한지 힐끔힐끔 쳐다봤다. 북아프리카에서 온 상선은 트리폴리에 관해 더 이상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요새를 지키던 대다수가 죽었고 살아있다고 해도 노예로 끌려갔을 것이라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성벽 공사를 감독하는 기사를 통해서도 다른 소식은 얻지 못했다. 나디아는 발레트와 헤어지던 날을 떠올렸다. 등을 돌려 걸어가던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했다.
"나디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나디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말끔한 옷차림의 안드레아가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놀라면서도 반가운 얼굴로 나디아에게 다가왔다. 안드레아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나디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안드레아는 나디아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나디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한 후 몸을 돌리려 했다. 안드레아는 나디아의 왼쪽 팔을 붙잡았다.
"항구를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해요. 무슨 일이에요, 나디아!"
안드레아는 나디아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녀는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다.
"트리폴리.. 혹시 트리폴리 소식을 알고 있나요? 누가 살았는지.."
나디아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두려워졌다. 발레트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나디아는 잘 알고 있었다. 안드레아의 어깨 너머로 스케베라스산이 보였다. 언젠가는 진실을 마주할 때가 올 것이었다. 나디아는 몸을 떨었다.
안드레아는 흔들리는 눈빛의 나디아를 보며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말했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방법이 있을 거에요. 누구를 찾는 겁니까?"
"발레트.. 성 요한 기사단의 발레트"
나디아는 토해 내듯 발레트의 이름을 가까스로 말했다. 기사단이라는 나디아의 말에 안드레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힘겨운 얼굴로 간신히 눈물을 참는 나디아를 보며 안드레아는 가슴이 멎는 것 같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나디아에게 말했다.
"나디아, 난 오늘 제노바로 돌아가요. 트리폴리 소식을 알게 되면 꼭 전할게요."
안드레아는 잡고 있던 나디아의 팔을 천천히 놓았다. 나디아는 안드레아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녀의 푸른색 로브는 점점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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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사랑한다는 헛소리

 

 

 

 

  사랑해

 

  그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하던 행동을 모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사물에 대한 명칭을 알아가는 아이도, 마음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소년·소녀도, 군데군데 미세먼지보다 더 강력한 잡음이 끼어든 인생을 어떻게든 사랑해보려는 청년도, 안녕하세요? 보다 건강하시죠? 라는 인사가 더 익숙해진, 지긋한 나이의 어른들도 모두 좋아하는 말. 그렇지만 손만 뻗으면 닿아 까먹을 수 있는 귤처럼 여기고 싶지는 않은 그 말.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였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왜 뜬금없이 그런 말을 갑자기 해버린 건지 궁금했고, 그 이유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다 그만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스쳐지나가는 이로 만들어버렸다. 사랑의 말에 이유를 묻는 순간, 진심은 헛소리가 되었다.

 

 

  사랑해

 

  얼마 뒤, 나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그 말과 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조우했다. 작년부터 엄마는 간헐적으로 헛소리를 내뱉었다. 처음 그녀의 그런 모습을 알아챈 건 다름 아닌 나였는데, 나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두 번의 이상 반응인 걸로 넘겨버렸다. 그러나 그 헛소리는 조금씩 느슨하게 엄마라는 존재 안에서 영역을 넓혔고, 시간이 지나며 그녀를 원래의 엄마 반, 낯선 엄마 반이 함께 공존하는 다면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예전에 자신이 재미도 보람도 없는 삶을 산 것 같다면 자주 자책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녀가 피안彼岸을 끌어들여 인생에 즐거움의 빛을 드리운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하기도 했다. 여하튼 갑작스런 그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건 엄마의 입을 통해서였다. 저 말을 한 건 낮의 엄마일까 아니면 밤의 엄마일까, 내가 서서 고민하는 중에 그녀는 내 눈을 곧이 바라보며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내가 해야 하는 건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더 이상 아득해지기 전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웃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랑한다는 말을 머리맡에 두고 떠나보내지 않는 일,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잡아두는 일, 그녀에게 나는 기적을 행할 수 없지만 나에게 그녀는, 엄마라는 사람은 여전히 기적이라는 사실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은 낮의 엄마가 보내는 진심의 신호든 밤의 엄마가 토해낸 헛소리든, 나는 전혀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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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11

나디아는 성벽 위에서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가는 붉은 빛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빌구의 성벽은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고 크레누는 공사 기한을 맞추기 위해 때때로 야간에도 작업을 진행했다. 인부들과 함께 저녁을 먹던 크레누는 바다를 마주하고 서 있는 나디아를 발견했다. 그녀의 가냘픈 몸은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릴 듯 했다. 나디아의 풍성한 머리카락과 치맛자락은 너울너울 춤을 췄다.
크레누는 아내를 하늘로 먼저 보내고 망연자실해 있던 5년 전을 떠올렸다. 술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길모퉁이에 앉아 울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소녀에게 음식을 사주며 지낼 곳은 있는지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의 고통을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기에 크레누는 나디아를 거리로 돌아가게 할 수 없었다. 크레누는 나디아가 환한 웃음을 되찾길 바랬다.
한쪽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인부 중 한 명이 크레누에게 달려와 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
"트리폴리 요새가 해적에게 습격을 당했답니다. 지금 항구에선 온통 그 얘기로 난리에요!"
크레누는 들고 있던 포도주 잔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디아를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크레누의 등뒤에 와 있었다.
"나디아!"
미처 붙잡기도 전에 나디아는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녀는 마르사 해안을 지나 스케베라스산을 올라갔다. 숨이 미칠 듯 찼으나 오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쳤고 작은 생채기에서 피가 이슬처럼 맺혔다. 나디아는 정신없이 뛰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떨어진 눈물은 모든 것을 적셨다. 고조 섬, 어머니와 오빠 그리고 발레트까지도...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다 깊숙한 모래 더미에 파묻혀 버렸다.
나디아는 땅끝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발을 멈췄다. 어둠은 이미 바다를 삼켰고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만이 그 존재를 알릴 뿐이었다. 나디아는 목에 걸린 십자가 펜던트를 손에 잡고 무릎을 꿇었다. 바람은 그 여느 때보다 세차게 나디아를 휩쓸고 지나갔다. 나디아는 눈을 들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하의 밤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발레트는 잠을 청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정신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어깨는 쇳덩이를 올려놓은 듯 무거웠다. 하루 종일 고되게 노를 저었던 사람들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해적들은 대다수가 육지로 나갔고 노예들을 감시할 몇몇만 남아 있었다. 발레트는 고개를 돌려 수염으로 뒤덮인 남자를 보았다. 사내가 자신의 출신을 밝혔을 때 그와 같은 눈을 어디서 보았는지 발레트는 알 수 있었다.
'나디아...'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이 이름 때문일지도 몰랐다. 몰타를 떠난 이후로 발레트는 나디아를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나디아를 만나고 간간이 비쳤던 그녀의 쓸쓸한 눈빛이 마음에 걸렸었다. 그녀가 웃으면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었고 안심이 되었다. 깊은 상처를 털어놓았을 때는 한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발레트는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대었다. 차갑고 딱딱한 물체가 만져졌다. 나디아가 오빠의 칼을 발레트에게 줄 때 그녀는 이전과 달라 보였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강해 보였다.
"당신이 어떻게 그 칼을.."
초록 눈의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발레트는 놀라는 사내에게 칼을 건넸다.
"나디아... 당신의 여동생을 알고 있소. 이제 주인을 찾은 거요."
사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칼을 잡았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칼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디아...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사내는 칼에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디아를 지켜달라 부탁하며 주신 칼이었다. 그는 지난 5년간 나디아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어디선가 살아 있을거라는 믿음으로 그는 노예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움푹 패인 사내의 얼굴은 뜨거운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발레트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사내의 몸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사내는 감았던 눈을 뜨더니 칼을 내려놓았다. 그는 발레트를 보며 나디아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몰타에...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은 말아요."
사내는 발레트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한번 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어떻게 발레트가 칼을 가지고 있는지도 물었다. 발레트는 그간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말없이 듣고 있던 남자는 발레트의 말이 끝나자 칼을 도로 건넸다. 발레트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남자는 나디아와 닮은 초록 눈으로 발레트를 바라보며 그의 팔을 잡았다.
"나디아가 당신에게 준 거요."
발레트는 칼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난 지아니 레오나디요."
"발레트,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
두 사람은 족쇄 찬 손과 손을 마주 잡았다.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밤이었다. 벌거벗은 사람들은 몸을 웅크리며 마른 기침을 해댔다. 발레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침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