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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4.5

(.-1)

 

눈을 떴다. 이곳은 어디일까.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이곳이 나의 방이란 걸 깨닫는다. 벌떡 일어나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다. 16시 37분. 악몽을 꿨는지 얼굴에 약간의 땀이 배어 있다. 화장실에서 찬물에 세수를 하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내 방에서 가장 아늑함을 느끼기 때문일까. 거실에 있는 시간보다 내 방에서 더욱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과 책장, 소형 침대가 하나 있는 간소한 곳이지만 나만의 공간이라서인지 더욱 큰 애정을 가지게 된다.

 

방 안에 별다른 장식품은 것은 없지만 침대 머리맡에 4절지를 세로로 세워 놓은 정도 크기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것은 샤갈이 1938년에 그렸다는 '에펠탑의 신랑신부'라는 작품의 모사품인데 작년 10월쯤 '인상파 거장전'을 다녀온 후 샤갈의 색채와 화풍이 인상 깊어서 이 작품을 들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미술 작품에 거의 문외한이라고 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는데, 샤갈만큼은 그 이름에서 오는 세련된 어감, 그리고 한 번 보면 뇌리에 각인되어 잊히지 않는 그림의 성격 탓에 다시 되돌아와 또 한 번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었다. 특히 신랑과 신부는 더욱 그랬다.​

 

그림을 보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한 쌍의 부부가 사람 크기만 한 닭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바이올린을 켜는 남자와 촛대를 들고 있는 남자. 염소가 앞발로 활을 들고 비올라로 이루어져 있는 자신의 몸을 켜려는 모습. 그리고 산 중턱에서 자신들이 닭을 타고 갈 차례를 기다리는 또 한 쌍의 부부 -그 옆에선 그들을 인도하는 또 하나의 남자가 있다- 가 보인다.

 

그림의 중심인물인 그 부부 중 신랑은 무표정한 표정의 아내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소곤거린다. 신랑을 자세히 보면 귓속말과 함께 신부의 배를 만지고 있는데 그 신부의 배는 불룩 튀어나와 있다.

 

이것을 보고 신부는 임신한 상태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신부가 비쩍 마른 체구에 복부 비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프랑스의 에펠탑을 뒤로하고 하늘을 떠다니는 신랑, 신부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혼전 순결을 잃은 신부, 그리고 애정 없는 신부에게 귓속말로 온갖 말들을 떠벌리고 있는 모습. 붉게 타오르는 태양빛. 신랑과 신부는 진정 행복이란 강을 건너가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것은 나만이 홀로 생각하는 쓸데없는 생각과 잡념, 그리고 헛된 과대망상. 내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비현실적인 일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마. 넌 책이나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하는 등의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러면 나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구” 하며 대꾸해 보지만 역시 이질적인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경험상 이럴 땐 그냥 혼자서 생각하다 그만두는 게 제일이다. 특히 홀로 여행을 떠날 경우에는 더욱 많은 그러한 감성들을 경험할 수 있다.
 

생각에는 무한한 자유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러한 시간들이 주어질 때는 더없이 행복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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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斷想)

"이제 잘 시간이야."

저녁 시간대 복도는 항상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A의 방도 여느 방과 같았다. 오래된 복도는 체중을 못 이기고 한참 울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멎었다. 가라앉은 방은 문을 잠근 후에야 바깥세상에서 온전히 떨어져 나왔다.

 

종일 비어 있던 바닥에 쌀쌀한 밤공기가 눌러 붙어 있다. 곳곳에서 낯익은 냄새가 올라온다. 침대 시트와 현관 사이, 얼마 되지 않는 그 거리는 항상 멀다.

 

A는 비척비척 걸어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눈을 감고서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서 몇 번이고 몸을 뒤척거렸다. 그 사이에 찹찹하던 이불에 온기가 스몄다. 하지만 겨우 꼭 맞는 자세를 찾았나 싶었던 그 순간, A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또 깜빡했다.”

 

A는 누운 채 침대 곁 협탁으로 손을 뻗었다. 낡은 협탁 가장 위쪽 서랍. 반쯤 빈 약통은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불면증은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에요. 작은 습관이 중요한 거죠. 되도록 휴대전화는 멀리 두시고…….’

 

꼭 라디오 DJ같은 의사의 조언은 지직거리다가, 알약을 삼키자 이내 꺼져 버렸다. 이것저것 다 해 보아도 이것만한 게 없다니까. A는 혼자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눈알을 눌렀다 떼었다 반복하는 사이에 바깥의 잡음과 잔상들이 눈앞에 어지럽게 춤을 추다가 사라졌다. 약효가 돌기 까지는 항상 이렇다. A는 탄식을 하며 몸을 뒤척였다. 반대편 창문에 번지던 방의 풍경이 오늘은 없다. 거울이 사라진 것이다.

 

‘창이 열려 있었나?’

 

창틀 아래에는 아직 노을 찌꺼기가 눌러 붙어 있고, 저녁 바람이 그 틈으로 불어 들어온다. 그제야 깨달았다. 한기가 심했던 게 이 탓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외풍이 센 집이라고 했었다. 옆집은 안 하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기를 쓰고 창을 닫지만, A는 좀처럼 챙기지 못했다. 소소한 것 하나에도 무감각했던 탓이다. 그 덕에 결국 오늘도 잠기운을 아쉽게 떨쳐내며 창으로 몸을 빼야 했다.

 

“음.”

 

문득, 커튼을 걷으려던 손을 멈추고 섰다. 동시에 시선도 한곳에 닿았다.

 

얇은 커튼이 바람 때문에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안으로 말려 들어온다. 일렁거리는 그림자 위로 바깥 조명이 기어들어온다. 흰 커튼은 비눗방울 막처럼 터져, 불빛을 바닥에 흩뿌려 놓았다. 생경한 풍경이다.

 

부신 눈을 살짝 찌푸리니 빛의 갈래가 오므라든다. 귤색으로 뭉뚱그려진 뭉치들은 A를 쓰다듬고 침대 위로 퍼져, 액자들에 부딪히며 방을 돌아다닌다. 거리의 소리들도 덩달아 구석구석 스며든다.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 같다.

 

몇 십 분쯤 전까지만 해도 부딪히며 살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환상처럼만 보인다. 커튼 너머로 영화가 흘러간다. 이름 모를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내가 없는’ 영상이다.

 

A는 창을 반만 닫고 돌아와 눈을 감았다. 몸은 축 가라앉지만 정신이 꺼질 요량이 없어서, 누운 채로 조금만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오늘도 분명 많은 일이 있었지만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움직이려 애쓰면서 늘어지는 시간을 쳐냈다. 가끔 머리가 몸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했다.

 

-왜 너는 달라?

 

얼핏 그런 물음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대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이다.

 

눈을 떠 어둠 속을 들여다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하루 끝에 걸려 일렁거린다. 소리는 밤이 되어도 여전히 흐르고, 사람들은 온갖 표정을 짓고 돌아다닐 테다. 지친 기색도 없이.

 

그렇다면 그들도 그럴까. 방문을 닫고 나면 그저 흰 벽지 같은 얼굴을 할까. 그들의 눈에는 무엇이 보여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일까.

 

-왜 너는 달라?

 

글쎄.

어물쩍 대답하고 나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A는 그제야 물음을 끄고 눈을 감았다. 색색의 풍경이 흑백으로 물들어 부서지며 속삭인다.

 

‘이제 잘 시간이야.’

 

 

Inspired by Vitriol (Guckkasten, 1st 'Guckkasten')

국카스텐의 '비트리올' 감상글에서 출발한 초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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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성장일기

 

 

 

 

   중학교 1학년 때 쯤, 키가 멈췄다. 지금의 키는 169-170cm 정도. 그러니까, 학창 시절 나는 늘 맨 끝번호였다.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성장이 느린 탓에,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보통의 남학생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초등학교 때는 1년에 10cm씩 쭉쭉 자라서, '이러다 내가 고목처럼 거대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성장은 생각보다 빨리 멈춰버렸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X반의 키 큰 애'였던 나의 성장 속도가 극단적으로 멎어든 것과는 상관 없이, 어떤 아이들의 성장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거나 급격하게 빨라졌다. 곧 나와 다른 친구들의 신장 차이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다 작았던 남자아이가 훌쩍 자라 내 정수리를 보며 이야기하게 되는 상황도 생겼다.

 

  더 이상 내가 'X반의 키 큰 애'라는 수식어로 불리지 않게 되면서, 그 '성장'이라는, 눈에 보이는 척도를 통해 나는 사람마다 제각기 자라나는 속도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물을 마시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볕을 쬐어도, 실은 모두 저마다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구나.

 

  이건 인체의 신비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심지어 삶의 진리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비단 키나 몸무게 같은 것뿐만 아니라, 저마다 품고 있는 어떤 것이 폭발적으로 터뜨려지는 시기가 있다. 모두가 귀여운 종달새 같았던 초등학교 4학년 때 폭주기관차처럼 격렬한 사춘기의 시간을 보낸 친구도 있고, 학창 시절 내내 침잠해있다가 거의 서른이 다 되어서야 폭풍우 한 가운데로 들어가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애늙은이도 있는 걸 보면.

 

  그래서 누가 더 자랐고 덜 자랐나에 대해서는 지금이 아니라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지금 내가 요만하다고 해서 계속 요만한 채로 인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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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고대하던 출구에 다다랐음에도,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터널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적잖이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포크질이 서툴던 동네 꼬마를 떠올렸다. 왜 내가 그 순간 꼬마를 떠올렸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사실 그 꼬마의 얼굴 같은 건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 동네를 떠난 지 벌써 15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또 갓 싹을 틔워낸 떡잎들처럼 아이들의 생김새는 엇비슷하기 마련이다. 만약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여기에서 그 꼬마를 찾아보세요.’ 라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올바른 답을 찾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아이들 틈에서 꼬마를 단번에 알아낸다면, 그것은 아마도 생김새 따위가 아닌 다른 힌트를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공기의 질, 이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현재의 시간과 이미 지나간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기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정확히 내가 걸어온 만큼의 길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아마도 입구 혹은 또 다른 출구가 있을 것이다. 나는 완전히 몸을 돌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이 따끔거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 웬일인지 이전만큼 두렵지가 않다.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리운 냄새에 몸이 흠뻑 젖었다. 

 

  그렇게 나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 올바른 경로를 이탈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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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청소

 

 

 

 

    방 청소엔 도통 소질이 없는 편이지만, 늘어놓았던 것들을 모조리 다 치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잔뜩 더러워진 책상을 닦다 보면 지워도 지워도 도통 깨끗해지지 않는 흔적들이 발견된다. 오기가 생겨 힘을 주어 빡빡 닦아보지만, 소용이 없다. 털어내고 또 털어내고 먼지는 계속 쌓인다. 그럴 땐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울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세상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참 많다. 스물이 갓 넘은 어떤 날엔 "다 잘 될거야"라 말하는 것이 참 쉬웠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조심스럽다. 대부분의 일들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기 마련이라는 걸, 서른이 된 지금에서야 깨닫고 있다.

 

  보통의 어른이 몽상가로 살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결코 끝나지 않는 대청소 대신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정돈하는 정도의 일상적인 청소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애써 지우려하지 않고 기념으로 삼거나 내려앉는 먼지를 용납하는 일이 습관이 되면, 어린 시절의 우리를 눈물 짓게 했던 것들은 이제 더 이상 지워버려야 할 골칫거리나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가 되지 못한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존재는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이 아니라, 마침내 세상 모든 것들의 '제 자리'를 용납할 수 있는 관용을 지니게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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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Adulthood

 

 

 

 

    어른이 되면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난 뒤 가장 좋았던 것은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적어도 학창시절엔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아이들과 서먹하면 1년이 고달팠으니, 나는 그런 불편함이 싫어 서른 명이 넘는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수고로움을 택하는 아이였다. 덕분에 1년이 모두와의 우정으로 꽉꽉 들어찼지만, 한편으로는 피곤하다는 느낌도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억지로 애쓰지 않았다. 입학 첫 학기에는 친한 친구들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대신 그 '손에 꼽히는' 친구들과는 정말로 많이 친해져서, 서로 온 마음을 내어주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함께 하는 사람의 숫자는 적어졌지만, 공기의 농도는 더욱 짙어졌다. 나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일당백의 감정들. 서로를 위해 울고, 웃어주는 나날들이 좋았다.

 

  정말로 친한 사람들과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다수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제법 융통성있게 잘 엮어갈 수가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나이를 먹으며 능글맞게 어떤 일을 웃어넘기기도 하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 어쩌다가 마주쳐도 반가운 것처럼 인사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한 편으로는 내가 정말로 어른이 된 것 같아 편하고 좋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모든 일, 모든 사람에 최선을 다해야만 성이 풀렸던 순수하고 에먼 열정이 사라진 것만 같아 슬프기도 했다.

 

  확실히, 이건 어른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여 우선순위를 둘 수 있다는 것.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과 하기 싫은 일, 불가능한 일, 잘 못하는 일을 나누고 '내 영역'을 선택하는 것. 그래서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2순위로 제쳐둘 수도 있는 것.

 

  그러니 어른으로 사는 일도 꽤 할 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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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집

한여름의 끝 下(끝)

미정 씨는 한참 동안 사진만 보고 또 보았다. 여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여름은 미정 씨에게 준이 한국에 온 이유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미정 씨의 눈에서 투명한 유리알이 고였다. 그리고 준의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것 까지, 미정 씨는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밤이 깊어가도록 미정 씨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 미안해서, 그 아일 어떻게 봐요, 내 손으로 버린 그 아일난 볼 자신이 없어요. 무슨 면목으로 봐요…. 20년전에 끊긴 연을 다시 잇는다고 이어질 리가 없어요. 다행이에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커 줘서"

 

미정의 목소리가 여름의 몸까지 전해졌다. 모질게 말은 하고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바르르 떨리는 두 손을 겨우 맞잡고 있었다. 여름은 그런 미정의 손을 잡고선 말했다. 강한척하지 말라고 준은 당신을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낳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버렸던 아이는 잘 성장했고 그렇게 미안해하지 말라 했다. 미정은 여름의 어깨에 기대서 한참을 울었다. 일본에 도착한 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슬펐다. 그러나 준비한 슬픔이어서 그런가 생각만큼 많이 슬프지는 않았다. 덤덤했고 아렸고 곁에 많이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어머니는 울고 또 울고 우셨다. 

거느린 어깨가 처지는 걸 보니 가슴팍의 언저리가 저려왔다. 준은 꼭 안아드렸다. 작은 손으로 어머니는 준의 등을 쓸어주셨다. 따뜻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여름은 끝이 났고 준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진연구도 하고 아버지의 가게 일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바빴다. 그래도 언제나 잊히지 않는 한국에서의 추억을 가슴속에 묻고서 말이다. 여름은 미정 씨와 헤어지며 혹여 하는 마음의 미정 씨의 번호를 받았다. 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개강을 했고 취업난에 허덕이며 살고 있고 방세 내기에 아득바득 개미처럼 일하기도 했고 소개로 남자를 만나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면 분명히 헤어짐도 있는 법이다. 준이 가끔 머릿속 한중간에 떠오르기도 한다. 스물넷, 치열하고 바쁜 한 해를 보내면서좋은 추억의 한구석이라 생각하며 추억을 묻는다. 겨울이 찾아왔다. 이름하고 안 맡게 겨울을 참 좋아한다.여름은  한 출판회사에서 번역일을 맡게 되었다. 낯설고 처음이라 서툴지만 나름대로 일에 적응도 하고 있었다. 회사 동료들과 잘 지내려 노력하는 것도 몸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이번 해에는 졸업이니 이젠 정말 사회인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뿌듯해지곤 한다. 

아직도 방구석에는 준과의 사진이 붙여져 있다. 잘 지내고 있을까…. 내생각은 할까, 한해의 끝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한해의끝은 각종 시상식과 함께 불어 번역을 하며 치맥을 먹는다는 건 우울하긴 하지만 일종의 직업이니 어쩔 수 없었다.일본의 겨울은 시리도록 추웠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라면집을 이어받아 하고 있긴 한데 나름 괜찮은 거 같다.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울곤 하신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큰 걸지도 모른다. 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그걸 주는 걸 일종의 부업으로 삼아 손님에게 주는데 이것이 또 입소문을 타 옛날보다 장사가잘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수첩을 발견했었다. 친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수첩이었다. 이 수첩은 어머니 몰래 방안 서랍 속에 간직되어 있다. 혹여 친어머니를 만난다면 전해줄 생각이다. 이건 그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봄이 찾아오고 다시 여름이 왔다. 여름은 열대아속에서 불어 번역은 죽을 맛이었다. 사회초년생은 욕도 듣고 눈물도 흘리고 그래 살고 있었다. 술에 취한 어느 날 사귀고 있던 남자와의 이별로 거의 물을 퍼마시듯이 술을 마셨고 만취한 가 돼서 준에게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버렸다. 

'보고 싶어' 

아침에 돼서야 자신이 한 짓을 알게 되었고 얼굴마저 빨개져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파묻혀있는데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私も'(나도) 

심장이 떨려왔다. 한동안 핸드폰을 보며 뻥진 기분을 알까 그러더니 다시 알림음이 울렸다. 여름은 개탄 기분이었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끝나가는 기분이었다. 이건 혁명이라며 방을 뛰어다니며 날뛰었다. 

'待って行くよ'(기다려 한국으로 갈게) 

한국으로 온다는 말만 남기고선 몇 날 며칠은 연락이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저 연락이 사실일까 아니면 헛것을 본 걸까 몇 번을그 창을 본지 모른다. 여름은 선뜻 머릿속을 지나가는 작년 여름날의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준의 어머니의 연락처. 핸드폰의 메모장을 뒤져 남겨놓은 연락처, 이번에는 꼭 전해주어야겠다며 다짐했다. 밀린 번역문을 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눅눅하고 비가 쪼르륵 내리는 날 편집부 회식이라며 껴서 오게 된여름은 술잔을 기울이며 하는 부장의 연중인사를 마치고 상사들 눈치 보며 알코올을 섭취 중이었다.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또 스팸이지 싶어 확인하지 않으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금을 열고 클릭하자 준의 메시지였다だよ'(여름, 한국이야) 

순간 기쁨의 찬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주위 동료들의 시선이 모두 여름으로 집중되었다. 여름은 집안에 일이 생겼다며 죄송하다며 가방을 챙겨 들었고 급한 마음에 높은 굽을 신은 발을 생각지도 못 한 체 도로 위를 뛰었다. 

'クァンファムン?場の前'(광화문광장 앞) 

여름은 택시를 잡아 광화문으로 가달라고 했다. 초초함과 설레는 마음으로 핸드폰의 시계만 껐다 켜기를 반복했다.

광장 앞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여름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늦은 것은 아닐까 걱정에 발만 동동거렸다. 어깨 밑으로 바람이 불었다. 밝은 조명들 수많은 발자국, 주저앉고 싶었다. 기다림이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려웠다. 초조함에 울음이 곧 터질 것만 같았다. 못한 말들이 많은데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데 입술을 물었다. 

"여름" 

자신을 감싸는 거대한 품속에 파묻혀 한참을 그곳에 멍하니 서 있었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연락이 없었는지 일 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모든 것이 멈추고 그 중심에 둘만 있는 느낌이었다. 준은 가만히 여름을 토닥였다. 일 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높은 구두, 그리고 머리색깔,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감정이었다. 

"보고 싶었어, 준" 

목을 감싸는 여름에게 제압당한 체로 비에 옷이 젖어 버리는지도 모른 체 준은 웃었다. 이 상태 그대로 바뀌지 않길 희망하며 웃어 보였다. 여름도 덩달아 웃었다. 비 냄새와 빗소리를 따라 근처 찻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 년 사이의 준의 한국어 실력은 엄청나게 늘어있었다. 둘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다 알겠다는 듯이 서로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쳤다. 차를 마시다 여름은 생각 난 것이 있는지 핸드폰에 저장된 준의 어머니의 번호를 내밀었다. 

"이거,"

"…."

"어머니 번호" 

침묵이 맴돌았다. 준이 입을 열었다. 자신이 그리 급히 일본으로 가버리고 아버지가 그만 세상을 떠나시고 마음을 추스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얼떨결에 라면집을 운영하는 것도 연락하지 못한 이유도, 그리고 정미 씨의 전화번호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おなじなんだね"(똑같네) 

아버지의 수첩 속 그 번호와 똑같았다. 바뀌지 않은 번호를 보니 왠지 모를 허무함에 허공을 바라보았다. 준은 한참 동안 그 번호를 바라보았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와서 전화를 한다고 달라지느냐는 생각들, 여름은 그런 준을 보다 작년 그 여름날의 이야기를 꺼내야겠더라 생각이 들었다. 조곤조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준이 그리 가버리고 그 민박집에 투숙하던 그 중년여성이 준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울지 않으려 애쓰는준을 보며 작년과 같은 말을 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연락해봐요.." 

 

준은 여름과 헤어지고선 한강에 벤치에 앉아 맨정신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맥주캔을 따서 마시고는 알코올이 알딸딸해 질 때쯤 번호를 꾹꾹 눌렀다.신호음이 가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미정은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으려 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았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はは"(엄마) 

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미정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선 '준?'이라고 물었다. 준은 간신히 대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기 속으로 그날의 바람과 감정이 실려 들어가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약속을 잡은 쪽은 미정이었다. 준은 그날 밤 친어머니에 대한 미움, 원망, 질투, 후회가뒤섞인 채로 잠이 들었다. 그래도 그리움이 젤 크게 다가왔다. 며칠뒤 한 카페에서 둘은 얼굴을 마주했다. 준은 화를 내지도 큰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날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내며 자신 앞의 여성을 비교했었다. 

"ごめん"(미안해) 

미정이 준의 손을 잡았다.그제서야 준의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나왔다. 꾸억꾸억 삼키던 울음이 분수가 되자 미정은 아무 말 없이 토닥거렸다. 준은 왜 자신을 버렸는지 묻지 않았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준은 미정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알렸고 미정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よく育つてありがとう"(잘 커 주어서 고마워) 

이 말을 뒤로 둘은 나중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여름의 회사 앞에서 서 있던 준은 여름을 보자 활짝 웃어 보였다. 여름은 준의 씁쓸한 웃음을 보자 오늘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고 한 것이 떠올라 측은해졌다. 두팔벌려 꼭 안아주었다. 이것이 최선일 거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준도 한국에서 뜨거운지 여름이 뒤를 돌아서 준을 보았다. 준은 그런 여름의 모습을 사진 속으로 남겨주었다. 철도를 달려온 부산은 더웠고 또 더웠다. 많은 곳을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좋은 추억도 남기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 불꽃놀이를 위해 폭죽을 구매해서 모래사장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늘 위로 터지는 폭죽을 보며 여름을 보며 귓가에 속삭였다. 

"どのような夏よりもっと美しい夏だよ、好きだよ。" 
(어떠한 여름보다 더 아름다운 여름이야.좋아해)

 

 

한여름의 끝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또 사진속 보다 더 휘향찬란하게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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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집

보통의 사랑

모든 것을 끝나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길 원했다. 누구보다도 더 특출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사회의 일원이길 바랐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가난이 싫어 열심히 공부만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끝은 보이지가 않았다. 허벅지를 찔러 가면서, 커피를 하도 많이 마셔서 위가 쓰린지도 모른 체 그렇게 죽으라 공부했다. 남들이 고액 과외를 받을 동안 그냥 죽으라 했다. 앞만 보고 달렸는데도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빚에 허덕여 자살시도를 하다 병상에 누워계신지 4년이 넘었다. 그래도 남은 것은 엄마였는데 엄마마저 병으로 앓아 누어버렸다. 나에겐 누구나 다하는 것들이 사치가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그랬다. 너무 현실적이라고 나는 그에 물음에 답을 해주었다. 나처럼 살아 보라고 그러면 누구나 현실적이게 바뀌게 될 것이라고, 돈이라는 막중한 벽 앞에 마주치게 되면 공상보다는 현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어느새 졸업도 뒤늦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꿋꿋이 살아가려고 하였다. 잠을 줄여 가면서 빚 한번 갚아 보겠다고 아등바등 그리면서 살아왔다. 연애는 나에겐 사치였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들어왔다. 막았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 벽은 단단하고 높아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벽은 어쩌면 아주 쉽게 흐트러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남들처럼 웃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팝콘을 사 먹고 커플 운동화를 맞처 신으며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며, 앞날을 기약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앞날은 나에겐 너무나 거대한 거라서 항상 너와 나 사이의 벽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돈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넌 처음에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건 사랑으로 단지 해결된 문제가 아니었다. 네가 나를 위해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제일 싼 것을 골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에게 짐이 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하루에도 몇 개의 알바를 뛰며 짬짬이 보는 너는 오아시스와도 같았는데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너는 점점 차이가 나는 나에게 실망을 느꼈고 우리가 원했던 보통의 연애는 힘든 연애로 바꿨다. 연애도 돈이 있어야 누군가에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너는 나의 빚을 갚아줄 능력이 없다. 우리는 연애가 아니다. 이건 둘에게 피해를 줄 뿐이었다. 편의점, 과외, 고깃집 알바. 인형 탈 알바 모든 것들을 짬짬이 하다 보면 골병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너도 병이 든다는 것을 미쳐 나는 깨닫지 못 했다. 한 날 내가 미안하다고 했었다, 너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너에게 기대 처음으로 울었다. 너는 안다는 듯이 등을 토닥였다. 따뜻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좋은 추억만 남겨 주고 싶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힘든 추억만 남겨 주고 있었다. 한 번은 네가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나는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연인들처럼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싶지만 그럴 조건은 성립되지 않았기에 나는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이제는 힘이 든다. 더 이상 이 구질구질한 똥텅에 너를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너는 너대로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헤어지자"

고개를 숙였다. 울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너는 당황한 기색으로 왜 그려냐고 물었다. 나는 돈 때문이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나 하루에 알바를 세 개를 뛰어 그래도 고작 얼마 밖에 못 받아, 그 돈으로 아빠 병원비, 엄마 약값 그리고 사채 돈 갚으려면 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나는 있잖아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 나도 보통의 사람이 되고 싶고 보통의 연애를 하고 싶은데 우린 너무 힘들잖아, 우리 헤어지는 게 맞아.. 미안해"

너는 날 붙잡지도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너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보통의 사람이 되길 원했고 보통의 삶을 살길 원했는데 이렇게 어려운 길인지 알았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무생물이고 싶었다. 처음에는 부모를 원망을 했었다. 부모를 원망을 해봤자 아무것도 남는 것들이 없었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 되고 싶었고, 보통의 사랑을 원했고 보통의 삶을 살길 원했다. 
나에게 이 바램은 너무나도 큰 바램인 걸까.

눈물이 난다. 닦지 않는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이 보인다. 축 처진 어깨가 눈에 담긴다. 미안해, 이런 나라서 미안해
속으로 되니 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통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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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집

샴푸

오늘 근처 마트에서 샴푸를 고르다가 눈에 익은 샴푸 하나를 보았다. 한참을 그 샴푸 통을 만지작거렸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디자인도 향기도 다 그대로였다. 뼛속에 깊게 묻어 두었던 것들이 하나하나 다시 피어오른다. 원래 쓰던 샴푸가 있었는데 오늘따라 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샴푸를 샀다. 원래 쓰던 샴푸는 냉동댕기 쳐 진 채 새로운 것이 화장실을 채웠다.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결심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진다. 무너진 것이 아니라 밀어내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를 감는다. 향이 올라온다. 옛 기억이 떠오른다. 한참을 거품을 내서 감았다. 감을 때마다 좋든 안좋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향들이 퍼지지 않길 바라면서 선풍기 바람 앞에서 머리를 말린다. 제일 좋아하던 향기의 샴푸, 그리고 그 사람이 좋아했던 샴푸, 항상 좋다며 덩달아 같이 사서 썼던 샴푸, 그 사람도 쓰고 있을까? 아니면 잊기 위해서 쓰지 않았을까? 

아마, 그 사람은 후자였겠지. 또 혼자서 결론을 내린다. 나도 똑같이 그 사람을 잊으려 바꾼 샴푸 향이었다.그런데 실상 그걸 바꾼다고 잊혀지는것들이 아녔다. 오랜 기간 함께하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럴 때마다 먼저 내밀고 내밀어 다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이젠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 향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그 사람이 제일 좋아했던 향기였고 그 사람이 내 머리 향을 맡으면 나도 덩달아 좋았다. 바뀌지 않은 것들이 참 많은데 바뀐 건 우리 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프다. 

분명히 쓰면서 그리울 것이다. 그 사람이 그리워서 이 향을 쓰는 것이 아니다. 추억하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향이 좋기에 쓰는 것이다. 멋대로 정의를 내린다. 

향이 좋아서, 그래서 이 샴푸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