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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6 - 10

520

 

 

 

소녀...아니,  소녀처럼 어리게 보이는 여성은 차분하게 걸어와, 우리와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검은 달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세상의 멸망을 알리기 위해. 혹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안내자. 그녀의 눈에 들어오면 영혼은 보존되어 영원히 그녀의 곁을 맴도는 행성이 된다고 한다. 아직까지 나는 죽어본 적은 없지만, 나에게 새긴 검은 달의 문양이야 말로, 나중에 죽을 경우 전생을 하여 총애를 받긴 할 거 같지만, 잡설은 치우고 마리아가 입을 열며 사탕을 지휘봉처럼 허공에 찔렀다.

 

“정신계열은 이 우주에서 첩만큼이나 도달한 자가 없노라. 그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데. 카일이여. 혹시 그 초능력자의 몸에 쉽게 침입할 수 있는 만큼, 엘티노스가 다른 수작을 부려놓지 않았는가?”

 

말한 적도 없는데 마리아의 추측은 끊임없이 뻗어 나아갔다.

 

“초능력자의 육체가 죽으면, 들어온 천족의 혼까지 소멸한다고 들었어요. 인간의 수를 줄이는 것도 있지만, 천족이 그 안에서 죽으면 천계에 있는 개체수가 줄어들겠죠.”

 

마리아의 작은 고개는 상황을 인지하듯 끄덕였다.

 

“그러면 1차적인 봉인은 있지만, 2차적인 봉인은 없다는 소리이지 않는가? 2차적인 봉인은 아까 첩이 말했던 것처럼, 초능력자의 자의식을 강화하거나, 초능력자 자체를 봉인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마리아. 그 계획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요오.”

 

루니아 누나는 느긋한 목소리로 마리아의 생각을 붙잡고 늘어졌다. 마리아가 고개를 돌려 루니아를 바라보는 동안 이야기 하기를...

 

“지금 이곳에 있는 초능력자들이 누군지도 모를뿐더러,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 알지도 못하잖아요오? 게다가 초능력자는 일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몸에 들어가기 쉬운 거지, 적합성이 높으면 일반인에게도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가 되요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듯이, 나는 비록 초능력자가 아니지만, 마나와 친화력이 높고 레시아나 시나가 내 몸에 동화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당연히 내 체질이 특이한 것도 있지만,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특이체질이 분명 존재하니까.

 

“그렇군. 루니아의 말도 일리가 있노라. 그러면 모든 이들의 자의식을 강화해주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자의식이 강해지면 대담해져서 사고나 그런 것이 일어나지 않나요?”

 

내가 질문을 하자 루니아 누나와는 다르게,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건성으로 답하는 마리아.

...그런데, 내가 물어볼 때는 처음부터 한숨을 내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시당하는 기분이니까.

 

“그건 쓸 때 없는 자존심이 높아지는 거지, 자의식이 강해진다는 소리가 아니니라. 자의식이 강해진다는 소리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니라. 남과 타협하지 않는 진정한 자신을 알게 해주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란 말이다.”

 

“그럼 마리아가 들어가 있는 여성은 자의식이 약한 거에요?”

 

“아니. 그거와는 전혀 다른 거다. 흔히 줄임말로 ‘케바케’라 하지.”

 

케바케?

그런 줄임말은 어디서 줍고 이곳에 뱉는 걸까?

 

“케바케에?”

 

루니아 누나도 모르니 고개가 갸웃하면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의 줄임말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첩의 경우에는 하나의 산 제물을 받아들인다는 개념이지. 숙주가 되는 여성의 영혼은 첩에게 거둬지면서, 다음 생을 살아가는 것을 뜻하며, 현재 이 몸은 첩의 것이 되는 거지. 딴 소리를 너무 많이 했구나. 어쨌든, 2차 봉인을 하는 것이라면, 모든 인간들이 아직까지 무역을 하고 돌아다니는 지금이야 말로, 곧장 실행에 옮겨야 하는 계획이 있다.”

 

벌써 계획까지 준비한 마리아에게 모두 집중을 하고 있는데.

 

“카일이여. 그대의 도움이 꼭 필요한데 괜찮은가? 이 일이 잘 진행되려면 카일 밖에 도움을 부탁할 사람이 없노라.”

 

“그거야, 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능하겠죠.”

 

“괜찮다. 오히려 카일이야 말로 300.999%의 능력을 끌어 올릴만한 일이니 말이다.”

 

300까지는 괜찮은데 0.999는 무슨 수치야?

차라리 반올림을 해서 301%라고 해주지.

 

“그나저나, 마리아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저에게 최적화가 되어있는 일이에요?”

 

“그렇다. 카일이 아니면 이 일을 할 수가 없노라.”

 

“설마 백장미 팬들을 싸인하라거나 그러면 안 되는데요?”

 

“300년 뒤에는 카일이라는 존재는 이미 죽은 지 오래이지 않는가? 애당초 백장미와 관련된 일이 아니니 안심하거라.”

 

백장미에 관련이 없이 나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일이라니?

그거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은 항상 가치를 측정하며 살아가고, 자신에게 잘 맞는 가치에 대해 한 없이 높게 평가하지만,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는 일은 가치가 심해로 곤두박질 치기 마련.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중에.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기에, 마음 속에서는 자기 멋대로 기대하기 시작했다.

 

“마왕님. 혹시 ‘그거’ 연구 다 되지 않았습니까?”

 

“마리아. ‘그걸’ 꺼내자는 것인가? 아직 임상실험은 하지도 않았노라.”

 

무슨 약물이야?

임상실험을 하지도 않았다는 말이 걸리잖아.

 

“헤에? ‘그거’를 꺼내다니요오? 마리아. 그런 무시무시한 일을 여기서 하자는 건가요오?”

 

대체 ‘그게’ 뭐길래?

 

“제가 판단하기에는 아직까지 위험하다고 봅니다만, 저희들이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나마저 위험하다고 생각할 만큼 무시무시한 약물인가보다. 루니아 누나의 요리와 레시아의 요리, 시나의 요리가 섞인 것보다 더 위험한 약물이 있을까? 설마 흔히 말하는 창조주마저 죽어버리는 최악의 독액이라던가?

 

300.999%라고 하더니, 오히려 부담만 가잖아? 상대를 너무 치켜세우고 어려운 일을 부려먹으려는 속셈일까? 나보다 더 뛰어난 존재들이 살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었다. 우선 무슨 일인지 듣기나 해보자.

 

그래야 분위기만으로 질소포장중인 ‘그것’에 대해 알 수 있겠지.

 

“카일이여. 6단계 분리이론이라는 말 알고 있는가?”

 

“그건 또 뭐에요? 먹을 걸 6단계로 분리한 다음 나눠서 먹는다는 이야기인가요?”

 

3식이 6식으로 바뀌어서 매번 반찬을 육식으로 해결하는 육식주의자가 되는 거야.

 

“쓸모 없어서 분리수거도 안 되는 개그를 독백으로 하지 말거라.”

 

“마리아야 말로 남의 생각을 읽으려고 하지 마시죠.”

 

이번 개그는 재활용은커녕 분리수거도 힘들다니. 그 전에 6단계 분리이론이 뭐인지 모르는 나와 잡화점 멤버들은 마리아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6단계 분리이론이라는 것은 6명만 거치면 모두 간접적으로 어이 진다는 말이다. 애석하게도 이 이론을 알고 있는 유능한 첩은, 아쉽게도 300년전에는 통신수단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시절이니 사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법공학의 개발로 인해, 일반인도 특정 기계만 있으면 멀리 있는 사람과 통화할 수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마리아는 주머니 속에서 “짜잔!”이라는 외침과 함께, 기묘한 물건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이야 말로 그 연락수단 중 하나로, 안에는 제법 복잡한 마법공학과 수식이 이곳 저곳에 붙어있노라. 하급마나석만으로 사용할 수 있게 계량한 이것은, 초기에는 통화만 가능했다고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다양한 유희거리를 이곳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이 화면에 들어와있는 아이콘을 누르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지.”

 

그걸 본 레시아는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봤고, 시나는 내 옷자락을 붙잡으면서 “마스터. 저거 하나 사주세요.”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루니아 누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는데, 이미 소지하고 있는 걸로 예상하고 있을 때였다.

 

“최근에는 휴대기기가 발달한 것은 잘 알고 있어요오. 저도 이곳에 도착하면서 쭉 둘러보는데, 그걸로 먼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Yee.T 보드게임이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면서요오?”

 

실로 경이로운 물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저 조그마한 물건 하나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해내다니. 하지만, Yee.T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다. 그것 빼고는 300년 이후에 신세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

 

“우리는 그럼 너무 구식처럼 저런 물건 하나 이용하지 않았다는 거네요.”

 

“그런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신상을 숨기기 위해선 이걸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지. 조금이라도 개인정보가 누설되면 곧바로 뒤집혀지지 않는가?”

 

그 기묘하고 똑똑한 물건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았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서 그걸 어떻게 이용할지 물어보도록 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걸 이용할 거라 생각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이용하실 건가요?”

 

마리아는 씨익하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첩이 말하지 않았는가? 6단계 분리이론을 여기서 실천할 것이다. 이 기계 안에 있는 어플리케이션 중에는, ‘얼굴 책’이라던가 ‘지저귐’등. 모든 이들이 하나로 묶여있듯이 거대한 체계가 존재하는데,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관심을 이끌면, 모든 사람들이 그걸 보고 배포하면서 퍼지게 되어있노라. 그 영상 안에 자의식을 강화하는 최면마법을 심어놓으면 끝이지.”

 

“영상이라. 안리아스 수정구로 녹화나, 풍경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이제 모든 이들에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더 놀랍네요.”

 

“첩은 다른 세계에서 경험한 결과,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낸 결과물로 승부를 본다. 거기에 첩의 계정도 살짝 참여하는 것뿐이지.”

 

300년 후의 세계에서 그 문명의 문물을 사용하자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어오니, 내가 300.999%으로 발휘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에 대해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잠깐의 침묵을 기회로 먼저 치고 올라오기로 하자.

 

“백장미를 그 안에서 촬영할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것이 좋을 거에요.”

 

“아이잉~ 왜요오~! 카일의 귀여움을 알릴 수 있는 순간이라고요오~!”

 

루니아 누나가 내 팔을 붙잡고 흔들면서 앙탈을 부렸지만, 이미 나는 굳건하게 버티면서 “안 돼요. 돌아가요.”라고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마리아의 작은 손이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하기를...

 

“걱정 말거라! 카일을 여장시키면서까지 고생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백장미를 찍을 생각은 없다.”

 

“잠깐만요오. 마리아. 이야기가 틀리잖아요오.”

 

기어 다니는 루니아 누나의 목소리를 보아, 맨 처음에 계획했던 건 백장미였는데, 마리아의 변덕인지, 나를 방심시키기 위함인지, 계획을 급하게 수정하는 모습이다. 둘이서 소근거리는 것이 무슨 내용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가 앞으로 나서서 들으려고 했으나, 레시아와 시나가 나를 막고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여성들의 비밀공유를 남자가 멋대로 듣는 것이 아니니라. 주인.”

“마스터.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잠깐의 시간 동안 방해를 받았을 무렵. 루니아 누나와 마리아의 간격이 벌어지고 어마어마한 웃음이 루니아 누나의 얼굴에 달라붙은 모양인지, 쉽사리 떨어져나가지 않았다. 가끔 저런 웃음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마왕님. 잠깐만 귀를...”

 

“무엇인가?”

 

이번에야 말로 듣겠다는 심정으로 가까이 가려고 했으나, 루니아 누나와 시나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뭐해요? 데자뷰 놀이에요?”

 

“카일은 여자들의 비밀대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답니다아~”

 

레시아가 귓속말을 다 들었는지 진지한 목소리로, “오늘 어떻게 되도 모른다. 감당은 할 수 있는가?”라고 조용히 말을 하자. 마리아는 “모든 책임은 제가 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내가 백장미를 찍지 않는 건 확정이 난 모양인데.

책임을 진다는 말은 또 무슨 소리인지 마음에 걸린다.

 

시나의 경우에는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지, 더 이상의 비밀대화를 진행하지 않고, 잡화점 멤버가 점점 가까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 어떤 사람이 봐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집단 행동이라 볼 것이다.

 

“자, 잠깐만요? 왜 그래요?”

 

사방으로 나를 포위한 잡화점 멤버들. 가만히 서 있는 모습만 봐도 무서운데, 따듯하게 웃고 있는 레시아의 미소를 보며 더욱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주인. 마리아가 우리에게 권유한 것으로는 여자아이로 변하면 어떻겠냐는 소리가 들리는데?”

 

“어. 그건 레시아와 시나가 하는 거에요? 나이야 역행하실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건 맞다고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제 손목에 은팔찌라도 차게 된다면...”

 

“아니. 짐와 비둘기가...”

 

“올빼미입니다.”

 

시나는 꾸준히 태클을 걸고 있지만, 레시아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벌렸다.

 

“어쨌든 우리 둘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루니아 누나가 하는 거에요?”

 

“그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누가 하는데? 아리엘을 스타로 만들 생각인가?

 

“누가 하는지 잘 모르겠...”

 

“마스터가 하시는 겁니다.”

 

지금 말을 내가 잘못들은 건가? 그래 맞아. 내 귀가 잘못 된 것이 분명해.

 

“누가 해야 할지 참 의문이네...”

 

“주인이 하는 것이다.”

 

“저기. 생물학적으로 봐도 어마어마하게 불가능하다는 생각만이...”

 

여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지, 성별이 또 바뀐다고? 게다가 이번엔 나이까지 어려져서? 그냥 날 구워삶지 못해 안달이 난 거 같은데?

 

“마법이면 가능하다. 짐은 운이 좋게도 강력한 마왕이니 말이다.”

 

“아니. 그건 운이 나쁜 것일뿐더러 ‘전’마왕이잖아요. 지금은 마왕이 아니지...그 전에 저처럼 남자답게 생긴 사람에게 성별을 바꾸고 나이까지 어려지라고요? 외형 변형 아이템이라도 사셨어요?”

 

도망갈 준비를 슬그머니 했지만, 내 어깨를 꾹 누르며 웃고 있는 루니아 누나가, 내 눈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오. 잔뜩 예뻐해 줄게요오.”

 

“루니아 누나. 눈이 무서워요. 눈에 생기가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마리아가 천천히 밖으로 나가면서...

 

“그럼. 마왕님. 잘 부탁 드립니다. 저는 잠깐 계정을 만들고 녹화 준비를 위해 장비를 조달하도록 하죠.”

 

“마리아! 어디가! 지금 장비를 왜 조달하는 거야! 잠깐! 레시아! 그 손에 마법진 치워요! 아아아아아아악!”

 

개인적으로 나는 공포가 극한까지 달하게 되면 비명을 지른다.

예를 들어, 가장 현실적으로는 살인자에게 죽기 직전이거나.

 

가장 비현실적으로는 성별이 강제로 바뀌기 전이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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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후의 세계는 현대와 거의 같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촬영이나 녹화가 상대적으로 많이 발달한 곳에서,

카일이 구르는 것은 필연적인 요소겠죠.

꿈에서 멱살잡고 흔들 것 같지만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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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2 - 1

07

 

주인과 사역마의 관계는 무엇일까?

사역마에게는 주인의 말을 따라야 하지만,

사역마가 마왕인 경우에는 내가 사역마의 말을 따라야 하지 않는가?

이런 경우에는 누가 주인이고 누가 사역마인지 모르겠다.

- 가위바위보 벌칙으로 레시아에게 고양이 어퍼컷을 맞기 직전에 스쳐나간 카일의 생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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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제와 오늘이 바뀌는 새벽 0시가 되었다. 항상 시간은 제대로 맞물려 돌고 도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내가 쓰러지고 나서 시계를 봤을 때, 새벽 2시가 다 될 쯤이었다. 레시아는 카운터 위에서 멍하니 손님이 오나 안 오나 출입구만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레시아? 제가 어퍼컷 맞고 기절한 사이에 손님이 왔나요?"

 

"아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하! 그럼 다행이네...

 

"어째서 강도가 올라간 거에요! 하마터면 정말로 죽을 뻔 했잖아요!"

 

"오오. 역시나 태클은 잊지 않는구나 주인. 이래서 주인이 활기차다고 하는 건가?"

 

"활기고 나발이고! 내가 사역마에게 죽을 뻔한 것은 변하지 않아요!"

 

어째서 이 마왕은 가위바위보를 좋아하는 걸까?

보통 마왕의 이미지는...

 

"크하하하! 이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제..제발 목숨만은!"

 

"그럼 금화를 내놔라!"

 

"드...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할 텐데. 지금 마왕은 내가 태클 캐릭터라고 인식하고, 그것에 맞춰서 파트너를 해주고 있다. 레시아. 지금 마계는 안녕하십니까? 기왕 생각나서 나는 고양이 혀로 빗질하고 있는 레시아에게 물었다.

 

"레시아는 마왕인데, 마계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3층에 있는 사키엘의 문으로 자주 다녀온다."

 

"에? 언제요?"

 

"주인이 기절했을 때나, 주인이 외출하던 당시에 짐은 마계의 상황을 처리하고 오고 있도다."

 

역시 유능해서 그 짧은 시간에 일 처리를 하고 오는 건가?

 

"모두 마계 공작에게 배포해서 처리하고 있으니, 짐은 할 일이 없도다."

 

"마왕님이 처리해야 하는 일을 부하가 하기 때문이잖아요!"

 

"본래 높은 관직을 준 이유도, 짐이 그 가련하고 미천한 것들을 쉽게 부려먹기 위해서다."

 

결국 부려먹기?!

 

"그리고..."

 

고양이 발바닥이 내 뺨을 쓰다듬었다. 작았지만 체온은 있었는지 따듯했다.

 

"언젠가 그대도 내 밑에 둬서 마나창고로 사용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 마나창고...진심입니까?

 

"저는 마나창고나 되기 위해서 태어난 몸이 아닙니다."

 

"그럼 앞으로 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레시아는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앞으로 이 잡화점을 남에게 양도하면, 나는...

 

"할게 없으면, 마계로 오지 않겠는가?"

 

뭡니까? 꼭 어떤 남자가 자신의 상의를 젖히고 "하지 않겠는가?"라는 듯한 포즈는...

 

"마계로 오면 마나창고가 되는데요?"

 

"그러기 위해, 짐은 주인이 필요한 것이다."

 

마나창고가 되는 엔딩은 싫다.

그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잉여가 되는 것이 더 싫다.

 

"그보다 주인? 최근에 도박이 끌린다거나, 마약에 흥미가 간다거나, 어린애들을 범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레시아? 그건 또 무슨 끔찍한 소리에요?"

 

나를 어떻게 봐야 그런 끔찍한 소리가 나오는 겁니까?

하지만 레시아는 진심으로 걱정을 하는 말이었다.

 

"짐은 '타락'이라는 단어의 마왕이다. 대부분 짐과 관련된 자들은 모두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을 하고 있었는데. 그대는 지금까지 타락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물어본 것뿐이다."

 

"그거야 레시아가 고양이 모습으로 나에게 아무 짓도 안 하니까..."

 

"아니. 짐과 주인은 이어져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영향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짐 안에 마나는 신성한 기운과 전혀 상반된 성질인 것이 당연한 것. 더군다나 인간과 이어져 있으면서, 짐의 마나는 주인의 몸을 침투하여 타락시키는 것이 이론으로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론이 어긋났다. 이거죠?"

 

"말 그대로. 이렇게 되면 주인의 정체가 어떻게 되는지 흥미가 돋는다."

 

"혹시. 목걸이 때문이 아닐까요?"

 

"비니스의 목걸이인가? 그것의 영향도 있지만, 주인의 체질을 나중에 조사해야겠다.

 

"조사 하지 마세요."

 

"그럼 해부를..."

 

"그것도 하지 마!"

 

그렇게 바보 같은 대화가 이리저리 다녀가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행복한 생활 중 하나가 아닐까?

바보 같은 말을 같이 할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딸랑~딸랑!

 

"어서 오세요? 뭘 찾으러 오셨나요?"

 

손님은 2m이상의 체구를 가진...네?

 

"여기가 엘티노스 잡화점인가?"

 

"마...맞습니다만...혹시 어느 종족인가요?"

 

말 그대로 어느 종족인지부터 물어볼 정도로 인상이 험악했다. 물론 개안이 된 눈으로 봤을 때는, 마나가 없었지만, 그 뒤에 사악한 것이...

 

"나는 긍지가 높은 웨어울프의 수장 실베스라고 한다네!"

 

악수를 청했다. 오! 그래도 사람다운 면모가 있구나!

악수를 하자. 체격과 동일하게 힘찬 에너지가...

 

"잘 부탁한다네!"

 

얼마나 힘차게 흔들었는지 내 몸이 위 아래로 상하운동을 하다가 결국 추락했다.

 

"크억...! 이건 또 무슨 벌칙이야...!"

 

[호오...저 기술도 짐의 가위바위보 벌칙에 사용하면 되겠구나!]

 

[이상한 것 보고 따라 하지 마시죠!]

 

"그래서...무슨 일인가요..."

 

힘들게 카운터에서 일어나고, 실베스 씨에게 대체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가장 어이없는 소리를 듣고야 마는데...그 말은...

 

"한 인간에게 반했다! 그 인간과 나를 이어주는 물품을 달라!"

 

...

진짜 이건 뭐...

여긴 잡화점인데?

 

"이어주는 물품이라고 해도...밧줄이라도 드릴까요? 납치라도 하시게?"

 

벌써부터 나는 범죄자를 육성하는 잡화점이 되어가는가...?

 

"나는 긍지 높은 웨어울프다! 정면에서 부딪쳐야 될 사랑인데! 어디서 그런 얄팍한 수로 사랑을 얻으려고 하는가!"

 

실베스 씨는 정말 긍지가 높았다.

보통 사랑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근데 왜 인간에게 반한 겁니까?"

 

"그...그건..."

 

실베스 씨의 얼굴이 화악하고 달아오른 것이 느껴지는 변화였다.

실베스 씨의 피도 긍지 높게 빠르게 빠르게 반응하는 듯 했다.

 

"아! 더 이상 추궁하면 너의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실베스 씨는 정말 남자답게 나에게 경고를 했다.

그보다 누군지 모르면 내가 대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여기서는 더욱 더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바꿨다.

물론 여기서 겁먹고 낑낑거릴 생각은 없다.

 

"그럼 뭐 범죄로 이용되는 미약이라도 줘야 할 판인가요? 그거 참 긍지 높아 보이네요."

 

물론 이 가게에는 미약이 없다.

여긴 불법거래소가 아니란 말이야!

 

"인간! 나를 조롱하는 건가!"

 

"하기야 인간인 제가 감히 실베스 씨의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것에 대해 조사는 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만일 그 여성이 실베스 씨를 보고 공포에 떨면, 그것도 하나의 사랑 중 하나인가요?"

 

"무...무슨?!"

 

실베스 씨가 많이 당황한 듯 하다.

 

"뭐 아깝네요. 죽이던 말던 상관은 없지만...누군지 모르면 도와줄 수는 없어요. 물품도 찾을 수 없고요. 아참...절 죽이시려고 했다면, 꽤나 상대를 잘 못 고른 거랍니다? 여기 있는 제 사역마는 저와 다르게 '우수'하니까요."

 

[호오? 짐을 칭찬하는 것이냐? 칭찬으로 가위바위보를 더 하겠도다.]

 

[칭찬으로 날 죽일 생각입니까!]

 

[그럼 그 칭찬은 무엇이냐!]

 

[그야 상대가 저를 죽이지 못하게 만드는 허세잖아요!]

 

[허세는 아니다. 저런 강아지는 짐이 목줄에 채우고 교육을 하면...]

 

[그 이상은 말하면 안 돼요.]

 

나중에 실베스 씨와 레시아가 프리스비 대회에 나가는 것을 상상했더니

그건 그거대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이었다.

 

[그럼 주인이 목줄을 차고 짐이 교육시키면...]

 

[조용히 해요! 대체 뭘 할 생각입니까!]

 

실베스 씨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도와다오! 인간! 나의 사랑을!"

 

실베스 씨가 절을 하는 순간, 바닥에서 "우지끈!"이란 불길한 소리와 함께 금이 갈라진 것을 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움찔거렸지만, 실베스 씨를 일으켜 세우고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실베스 씨. 그보다 카일로 불러도 됩니다. 그리고 이 고양이는 제 사역마 레시아입니다."

 

실베스 씨는 여유로운 웃음을 띄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후훗...나는 긍지 높은 웨어울프! 나 또한 동물들과 의사소통이 통한다!"

 

그러면서 늑대의 울음소리인 하울링이 울려펴지자. 레시아는 이렇게 답했다.

 

"짐은 레시아다. 잡견."

 

어지간히 화났나 보다.

 

"카일! 이 사역마는 뭔가! 나는 윤기 나는 털이 밤 하늘에 빛나는 웨어울프의 털과 같다고 말한 것 뿐인데!"

 

그 하울링 한 번으로 그런 엄청난 뜻이 다 들어 간 거냐!

밤 하늘에는 별이 있지, 웨어울프의 털은 없어!

 

"그보다 레시아의 본 모습은 고양이가 아닙니다. 저의 정신건강을 위해 고양이로 지내는 것 뿐이죠."

 

"아무튼 카일 형제여! 나의 사랑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게!"

 

그래서 대상이 누구인지 아직 말을 안 했는데요 실베스 씨?

 

"잡견. 네놈이 좋아하는 암컷이 누군지 말하기나 하거라!"

 

"레시아! 부적절한 단어는 쓰지 마요!"

 

그러자 실베스 씨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레...ㅂ..."

 

"안 들린다. 더 크게 못하는가!"

 

"레베카 입니닷!"

 

레시아에게 많이 기가 눌렸나 보다. 웨어울프 수장이라면서요...

 

"카일 형제! 사역마가 많이 무섭다!"

 

"아..알겠어요! 그건 험악한 표정이니, 나중에 불쌍한 표정 연기는 연습하고 오세요..."

 

그나저나 레베카?

 

"근데 그 레베카라는 분은 뭐 하시는 분인데요?"

 

"레베카는 긍지 높은 웨어울프와 맞게! 왕국 기사단 중 하나인 '릴리'의 부 기사단장이다!"

 

...

릴리?

분명 그거와 관련된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왕국신문

역시나! 대몬스터 전문 기사단! 릴리!

릴리는 여성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으로 예전부터 몬스터로 인해 피해 받은 여성들이다.

그 중에 기사단장인 루니아(나이는 밝히면 죽인다고 해서 밝히지 않습니다.)를 

필두로 오늘 새벽 1시경에 오크의 침공을 막아냈고,

그것도 모자라서 오크 캠프 5곳을 수 차례로 불바다로 만드는 업적을 새웠다.

그 공로를 알프레이드 왕자(24세)가 직접 상을 수여하였다.

그리고...(생략)

 

저기...실베스 씨? 상대를 너무 잘 못 고른 듯 합니다!

 

"저기 실베스 씨? 릴리라는 기사단은 뭘 하는지 아시나요?"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긍지 높은 기사단이 아닌가!"

 

이런 제길...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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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다행히도 제 글은 다 안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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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9 - 9

354

 

 

 

훈련은 계속해서 1주일이 지났을 무렵. 이사벨 씨의 호출로 나는 모의전투 방에 놔두고 아테리카 학원으로 가야 했다. 3층에 있는 사키엘의 문은 장소를 기억하는 곳마다 편하게 갈 수 있기 때문에, 이사벨 씨가 있는 학원장실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고, 평상시의 복장이 아니라 남색의 여성용 정장을 입고 이사벨 씨와 대면했다. 나를 부른 이유가 제발 제대로 된 정상적인 이유이기를 빌며 천천히 걸어갔다.

 

“카린 선생이군. 사키엘의 문을 이용해서 그런지 부르자마자 오는 것에 대해 놀랐다.”

 

아까 분노로 변한 모습과 달리 평상시에는 항상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으로 활동하니,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고 보면, 마법 무투제를 하는데 어디서 싸우는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저희는 어디서 싸우는지 알 수나 있을까요?”

 

“아. 그건 내 여동생이 알아서 할 거다. 예로부터 켈모리아는 쓸 때 없는 쾌락주의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에 50명을 내던져주고, 죽기 직전에 안전지대로 텔레포트 시키는 팔찌도 채우겠지. 그보다 가장 중요한 것을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사벨 씨는 나에게 입을 열기를...

 

“요즘 카린 선생의 아이들이 1주간 실력이 많이 늘었어. 확실히 켈모리아가 어떤 녀석들을 투입시킬지는 모르겠지만, 저번 년도의 켈모리아 학생들의 실력과 비교를 하면, 거의 막상막하라고 볼 수 있을 정도야.”

 

막상막하?

그 정도로 훈련을 하고 가르쳤는데.

 

“이제 겨우 막상막하라면 비등한 실력대란 소리에요?”

 

이사벨 씨는 나의 경악한 외침에도 아무런 미동도 없이 끄덕였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지만, 내 제자들이 그 정도로 약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칸포리우스 반란 때 제자들도 최전선에 나가서,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고요? 당연히 그 괴물들이 화염공격에 악점이라고는 해도, 그 사지에 내몰려서 살아왔는데, 카멜롯의 마법학원은 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이사벨 씨는 내 질문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린 선생의 제자들은 아테리카 학원에서 팀 대항전을 한다면 1위를 계속 하겠지만, 카멜롯과 마법 무투제는 확실히 다르다네. 자신의 제자만 봐와서 최고인 줄 알았던 모든 선생들은, 카멜롯에 있는 애들을 만나고 전부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 이번엔 켈모리아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강하게 도발했는지 몰라도, 이번 년도만큼은 가장 자신 있다는 소리야. 그 극한의 쾌락주의자인 녀석이 매번 도발했지만, 이번에는 뭔가 믿고 있는 구석이 있는 듯해.”

 

카멜롯에는 항상 괴물 같은 학생들이 발에 많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비밀병기를 준비했길래, 내 제자들이 밋밋할 정도로 낮은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뭐냐. 최근 켈모리아가 학원장의 비서로 ‘아리엘’이란 소녀를 입명했는데. 그 아이가 이번 마법 무투제의 리더라고 하더군.”

 

뜬금없이 카멜롯에 있는 마법학원생도의 이름을 거론한 이사벨 씨는, 나를 매우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 예상으로는 유일하게 카린 선생의 정신방어를 뚫을만한 환술사니까. 그 아이를 가장 조심해야 할 거야.”

 

내 정신방어는 몽마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릴리스도 뚫지 할 정도로 견고하고, 마왕인 레시아가 극찬할 정도로 정밀함을 자랑했는데, 나의 최고의 장점인 정신방어력이 그 아이 앞에서 효과가 없다는 것은, 마법 무투제에서 잘 못 걸렸다간 끝장이 난다는 소리다. 그 아이의 최면에 걸려서 항복한다고 선언한다면, 제대로 된 힘도 못쓰고 5명이 전부 탈락할 테니까.

 

“그보다 학원장의 비서는 대체 뭐길래 학생을 입명하는 거에요?”

 

이사벨 씨는 내가 궁금해 하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 답을 해줬다.

 

“카멜롯에는 엘리트를 전문으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기관이다. 아테리카 학원에서 만약에 마법의 기초를 알려줘야 한다면, 이론만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할 경우, 카멜롯에 있는 학생들은 이미 마법의 기초와 심화 이론까지 끝낸 상태에서, 처음에 배우는 것은 마법의 기초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마법사의 길 중급부터 사용할 수 있는 마법들을 배우지. 이미 기초를 벗어나고 심화를 넘어서, 입학하자마자 실용할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게 만드는 거라네. 사람은 걸어 다니기 전에 뛰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카멜롯의 아이들은 걷기 전에 날고 있다는 이미지가 많이 보이지.”

 

그 이외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마법학원에서도 8팀이 지원했다고 하지만, 카멜롯 마법학원의 명성이 자자하다면, 분명 모든 팀이 카멜롯에 있는 팀들을 모조리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 것뿐만이 아니라, 카멜롯에 있는 팀원들 중에는 원소술사 최상급이 껴있고, 그 다음으로는 좀 이상할 정도로 특이한 녀석들이 많이 있어. 하나는 발록의 피를 이어받았고, 다른 하나는 천계의 심판자의 혼을 물려받았으며, 가장 어처구니 없지만 내가 들은 정보로는...”

 

“정보로는요?”

 

이사벨 씨는 한숨을 내쉬면서 나를 살짝 보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월식’의 파편을 이어받은 소녀가 있는 모양이야.”

 

월식의 파편?

루비아 씨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내 안에 있는 월식을 조각 냈을 터인데, 그게 또 어떻게 나뉘어져서 날아간 건지...지금은 어릿광대가 정식으로 월식을 계승한 녀석이 되었지만, 월식의 파편이 숙주를 먹고 자라난다면 그 아이가 불안정하게 월식의 뒤를 이어, 모든 것을 때려부수는 파괴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멜롯이 안전한 이유라면, 켈모리아 씨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이번 마법 무투제는 조심을 하는 것이 좋아. 카린 선생.”

 

“사역마로 레시아와 시나도 부르는 것이 좋을까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 8팀 전부 죄다 날려버리고 마지막 싸움을 하루 안으로 끝낸다면 말이야. 문제는 이번 마법 무투제는 사역마의 랭크가 A랭크 이하라서, 이미 EX를 뛰어넘은 마왕님과 빛의 여신님을 사역마로 쓰는 것은 힘들 거라 생각해.”

 

사역마도 너무 강하면 필요할 때 사용할 수가 없구나.

 

“그런데 저희들에 대한 정보는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을까요?”

 

“켈모리아라면 이미 알고도 남았겠지. 아니. 이미 이걸 전부 예언하고 나를 도발한 거라고 생각하지만...자칭 제2의 엘티노스라고 부르는 여동생의 눈에 잘 띄지는 마.”

 

나는 의아했다.

여동생 눈에 잘 띄지 말라는 말을 들은 나는 질문을 했고. 이사벨 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카린 선생. 아니, 카일 선생을 라이벌로 인식하게 된다면, 꽤나 골치 아프게 될 거야.”

 

귀여운 것을 소유하고 싶어한다면서, 나중에는 라이벌 의식까지 느끼게 되는 그런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는 뭘까? 물론 이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제자들의 성장이 저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더 혹독하게 훈련하거나, 일정을 다시 수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람에게는 각자 소화해낼 수 있는 한계가 있는데, 그 이상을 하면 괴로워할 뿐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그 괴물 같은 카멜롯 학원생들과 내 제자들이 붙게 되었을 때, 실력이 막상막하라는 소리니까. 초반에는 서로 만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소식은 3일 후에 리더끼리 모여서 전장을 확인하러 간다고 하던데, 거기서 내 여동생에게 볼일 볼 것 있다면 확실하게 끝내는 것이 좋아. 저번에 뭘 감정하고 맡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맹수 조련사가 넘겨준 정체불명의 알에 대해 생각해냈다.

 

“아. 맞아요. 맹수 조련사가 분명 저에게 맡긴 알이 있긴 한데, 제 감정마법으로는 절대로 해석이 불가능해서, 켈모리아 씨에게 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사벨 씨는 내 복장을 보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카린 선생. 그런 모습으로 만나러 간다면 절대로 만나주지 않을 것 같은데?”

 

정장이 어때서?

오히려 격식이 있는 장소에서 이런 옷을 입고 가야, 원활한 일 처리를 하기 편리하잖아? 그런데 정장을 입고 만나러 가는데도 만나주지 않는다면, 대체 뭘 입고 가야 하는 거지?

 

“물론 내가 보기에는 깔끔하고 보기 좋다네. 하지만 내 여동생은 아까와도 말했듯이 쾌락주의라서, 원칙적이고 밋밋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싫어하거든, 그래서 그런 여동생에게 관심이 있을 법한 옷을 준비했는데.”

 

그러고 이사벨 씨가 곱게 포장이 되어있는 옷을 건네주고, 나는 살짝 열어서 그 내용물을 본 뒤에 질문을 했다.

 

“이사벨 씨. 잠깐만요. 여기 타는 쓰레기 버리는 곳이 어디죠?”

 

“지금 한번 입어보게. 카린 선생과는 접촉한 적이 얼마 없어서, 쓰리 사이즈는 대충 생각했으니까.”

 

“아니! 이런 옷을 대체 어떻게 입으란 거에요! 이 상태로 길거리에 돌아다니라고요? 누구 정신적으로 죽이기 위해 태어난 암살자에요?”

 

안에 들어있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큼지막한 하얀 고양이 신발과 큼지막한 하얀 고양이 장갑. 티셔츠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배꼽이 다 드러나게 디자인 되어있는 듯한, 상의에는 가슴 쪽에 하얀 털이 붙어있었고, 살짝 파여있는 걸로 봐선 노출도에 신경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았다. 하의 같은 경우는 스커트로 되어있는데, 짧다라는 말 이외에는 자세한 것을 생략해야겠다. 대체 이게 어딜 봐서 입으라고 있는 옷일까?

 

“솔직히 말해요. 이사벨 씨도 루니아 누나에게 무슨 소리 들었어요?”

 

“뭐. 이걸 입고 있는 카린 선생의 모습을 찍는다면 금 100을 주겠다고 해서. 남자의 모습으로 이걸 입히고 찍어서 보내준다면 금 500이라고 했다.”

 

솔직한 제보 감사합니다. 이사벨 씨. 당신을 ‘영원한 원수’목록으로 생각하기 전에, ‘일시적인 원수’목록에 넣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지금 입어보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사벨 씨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 입어요. 그리고 입기도 싫고 말이죠.”

 

이사벨 씨는 나를 보고는 느닷없이 손가락을 튕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사벨 씨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갔지만, 3초가 지나고 나서 내 몸에 이변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뭐야! 언제 입혀진 거냐!!!”

 

이걸 입고 돌아다니는 그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수인 복장 세트가 어느 사이에 입혀져 있었고, 남색 여성용 정장은 아까 전에 내가 확인했던 포장지 속에 그대로 곱게 접혀 있었다.

 

“이게 뭐에요! 대체!”

 

“빰~!”

 

당황한 내가 소리쳐도 이사벨 씨는 양팔을 벌리며 저 위에 한 단어를 외칠 뿐이었다.

 

“아니! ‘빰~!’이 아니잖아요! 대체 저에게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이런 모습으로 있냐고요!”

 

“빰빰~!”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하고 포즈는 그만두라고요!”

 

그나마 위안인 것은 거대한 고양이 장갑이 무의식적으로 가릴 때는 쓸모가 있어 보였다.

 

“요즘 따라 이런 노출도가 높은 옷을 입히는 이유는 뭐에요? 앞쪽도 파여서 신경 써야 하는데, 스커트는 왜 이렇게 짧은 거에요? 이거 그냥 완전히 몽화관에서 코스프레 코스에 나올법한 복장이잖아요!”

 

-찰칵!

 

어디선가 빛이 터지고 이사벨 씨와 나는 왼쪽 창문을 동시에 쳐다봤다. 창문에는 카메라를 나에게 조준하고 있는 회색 빛의 머리가 공중에 휘날리며 나에게 소리치기를...

 

“오! 카린 씨! 피스! 피스! 더블 피스!”

 

“뭐가 얼어 죽을 피스야!”

 

밖에서 윈디가 카메라를 들고는 저 하늘 높이 사라지면서, “오호호호! 잡화점에서 뵙겠습니다!”라는 외침을 남길 뿐이었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그것부터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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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고양이 소녀 카린 풀세트 5만9천ㅇ...<-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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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Think & Write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by 알랭 드 보통(2016)

#The Course of Love: 오리지널 제목을 번역하여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저자가 결혼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썩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접해서였을까, 이 장편소설은 저자가 그 전 에세이에서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소설로 풀어낸 것이구나 생각했다. 사랑은 '점(intervals)'이 아니라 '선(continuation)'이며 낭만주의적 강렬한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 서로 맞춰 발전해 나가야 하는 제도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현실에서 사랑은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라는 진부한 문구와 함께 클라이막스에서 끝나는 영화와 소설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지속되어야 하는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의 유기체이다. 영화와 소설에서 극적으로 묘사하여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집어넣는 사랑은 한낱 'the course of love'의 작은 단편이자 러브스토리의 시작일 뿐, 진정한 '러브'에 대한 '스토리'는 그 다음부터라는 냉소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이야기.

 

이미 결혼생활 15년이 넘는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앉았는지 모르겠다며 툴툴댔지만 '독서토론'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위해 짜증을 꾹 참고 끝까지 읽은 결과 이 책은 내게 툭~ 하고 생각 돌맹이를 던져 주었다. 팍팍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쿨하게 보여줘서 속이 시원하다? 나중에 딸내미가 결혼을 하려고 할 때 꼭 읽게 해야겠다? 아님 지금도 계속해서 my course of love에 파트너로 열심히(?) 살고 있는 내 남편에게 권해야겠다? 

 

#낭만을 뛰어넘어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96 페이지 첫 번째 단락. "삶의 추함을 인정하고 낭만주의를 뛰어넘어 짧고 뜨거운 사랑을 일생으로 확장하는 일에는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일상의 삐긋거림은 맹독으로 작용하기 쉽지만 성찰에 담그면 묘약으로 연금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결혼이 아닌 '양육'에 대해 반추했다. 라비와 커스틴 이야기에서 언급되지만 아이는 결실을 이룬 사랑의 절정이라고나 할까? 다들 그러지 않나?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며 결실은 아이라고. 결혼처럼 출산과 육아 또한 사랑의 감동적인 열매라는 생각은 아마 출산 후 일주일 정도일 것이며 아이가 자라면서 아주 간헐적으로 느끼는 행복과 만족감 덕분일 것이다. 육아라는 현실의 민낯은 그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고통스러우며 오해와 실망, 바닥으로 내닿는 피로와 우울감으로 점철된다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엄마로서 내 아이와의 관계는 사랑과 헌신 위에 있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는 않는다. 완벽하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솔직히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내가 아이를 위해 경력의 황금기를 발로 뻥 차버리고 전업엄마로 눌러 앉았다는 사실은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출산에 이어 두 번째 기적이다. 아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고 짠해지는 낭만적인 사랑은 내 마음 아래에 든든히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기 시작했다. 육아 역시 시간과 함께 지속되고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변함과 함께 확장 또는 조정되어야 하므로 그 역시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반석 위에 나는 육아에 대해 어떤 철학을 세울 것인가?

 

"엄마가 너를 무척 사랑하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충실하는 데에도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하자. 내가 너만을 위해 내 남은 인생을 올인할 수는 없지 않니? 너도 엄마의 무조걱적인 헌신이 전부라는 생각은 내려놓는 것이 어떨까? 낭만으로만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길고 깊으며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하구나. 엄마는 엄마 인생을 충실히 살고, 너는 너의 인생을 충실히 사는 거지. 가끔 함께 하며 순도 100%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하자꾸나. 언제나 손을 뻗으면 우리는 손이 닿는 곳에 있어. 격이 없이 만나고 기쁘고 힘들 때 두 배로 축하하고 네 배로 위로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함께 하며 기나긴 인생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는 여행의 동반자라고나 할까?" 열 살 짜리에게 너무 어렵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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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7 - 1

521

 

자신이 머물고 있는 보금자리는 안전한가?

동물들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 보금자리를 공들여 짓지만,

맹수는 그것을 알고 오히려 이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묻는데, 지금 머물고 있는 보금자리는 안전할까?

-겨우 도망쳐 나온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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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뒤의 세계는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정글이 많다. 파이론에서도 가장 높다는 건물에 올라가서 밑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사람들은 개미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말하는 소리는 전혀 귓가에 도달하지 못했다. 높이에 따라 바람은 매섭게 부딪치고, 새들은 그 위에서도 자유롭게 날아간다. 좋겠다. 저 새들은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겪지 않아서!

 

잡화점에서 도망치듯 뛰쳐나가 숨어있는지 1시간이 경과하면서, 그나마 내 본래의 모습을 손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크나큰 인기를 얻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여자애로 바꿔버린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터무니 없는 소리니까. 당연히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기 위해, 레시아나 시나, 루니아 누나 3명이서 영상을 찍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멀쩡하다 못해 매력적인 존재들을 놔두고, 내 성별을 바꾸고 어린애로 만든다는 그 시점부터,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생각하고 있지만, 언젠가 떠오를 기발한 해결방법을 위해. 꾸준히 머리를 돌리고 과부화시키고 냉각하는 것을 반복하며, 뇌 신경을 전부 태워버리더라도 노력해야 한다.

 

“잠깐만? 뇌 신경을 전부 태우면 생각은커녕 죽잖아?”

 

뜬금없이 혼잣말로 내 생각에 태클을 걸어 중지가 되었다. 고뇌의 늪에서 나와 현실을 자각하고, 시선은 다시 정면을 향해 바라봤다. 잡화점에서는 내가 그녀들의 남편이지만, 그녀들은 나를 남편이라 생각하지 않고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관계는 수정해야 할 방안일까? 그렇다고 국이 짜다고 해서 밥상을 엎을 수가 없다. 애매하게 못하면 그런 일을 할 생각만 가지고 있지만, 루시피나의 요리는 흠잡을 때가 없을 정도로 매우 잘하며, 3명은 독극물을 창조하는 것에 도가 터버렸다.

 

요리를 하라고 했더니 암흑물질과 형광물질, 그 사이에는 무지개가 놓여져 있으니까.

아무튼 당분간 갈 곳도 없는 이곳에서 멍하니 앉아, 이미지를 띄우고 체내에 있는 에너지를 회전시키자, 내 몸에 알맞은 회색 빛의 코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에 알았던 거지만 명계에서 레시아와 닮은 뱃사공에게 다녀온 이후로, 엉망진창이었던 힘이 안정이 되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서, 시나와 레시아처럼 물질을 창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마나로 이루어진 형상은 불안정하고 공급이 끊어지면 바로 사라지는 것과는 다르게, 내가 창조하는 것은 생성과정에서 한번이면 충분했다. 제거하는 것도 내가 하면 되는 것일 테니, 다음에는 골드를 좀 복사해서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이런 힘이 있다고 해서, 전혀 기쁘지 않은 것은 왜 일까?”

 

분명, 어릴 적에 나는 신기한 힘이 눈을 뜬다면, 그에 맞춰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생활이 편해질 것이라는 걸 생각했지만, 그 신기한 힘은 그에 걸 맞는 부작용도 존재하는 것을 모르던 순진무구한 시절이었다. 지금 당장 나에게 처한 위기는 신기한 힘과는 아무 상관 없지만...

 

뒤쪽에서 옥상의 문이 열렸다. 잡화점 문과는 다르게, 나무가 아닌 합금으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 문에 있는 마법진과 결계를 뚫고 올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후우...이거 혼났네.”

 

발목까지 오는 검은 코트를 입고 온 레인은, 흠집이 이리저리 생긴 가면을 쓴 상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 카일 씨. 여기 있었군요.”

 

“그 가면은?”

 

“카일 씨가 있는 잡화점에 놀러 갔는데, 느닷없이 공격이 들어와서...하마터면 인생에 단 한번밖에 없을 줄 알았던, 성전환 패턴을 그대로 당할 뻔했어요. 지금쯤 이 삼각자가 없었다면, 모든 마법을 직격으로 맞고 끌려갔겠죠.”

 

레인이 들고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거대한 삼각자. 어처구니 없게도 그 삼각자의 절반이 사라진 체 옥상 바닥에 버려졌다.

 

“제 삼각자가 부셔질 정도로 퍼붓는데, 평소에도 카일 씨는 이렇게 맞고 다니나요? 가정폭력 아닙니까?”

 

“넌 그게 가정폭력의 수준으로 보이냐? 마법 맞고 눈떠보니 잡화점으로부터 1km정도 날아간 게?”

 

가정폭력을 뛰어넘는 애정행각이라고 해야 할지. 어쨌든 내 근처로 다가가서 내가 보고 있는 경치를 따라보고 있었다.

 

“카일 씨는 그래도 좋겠네요. 찾아줄 사람이 있잖아요?”

 

“그래. 그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다만,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장난감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만 뺀다면...”

 

레인은 내 말에 생각났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카일 씨. 아까 그 이상한 꼬마에게 들은 말로는, SNL에 내보낼 귀여운 영상을 찾는다고 했는데,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로 변한 거에요?”

 

마리아에게 들은 건가? 이상한 꼬마라고 말하는 거 보면, 이질적인 감각을 정면에서 맞이했겠지만, 그건 둘째치고...

 

“넌 토요일 밤에 라이브로 어딜 보낼 생각이냐? SNS겠지.”

 

“이야. 300년 전에 사람이 SNS에 대해서 알다니, 장족의 발전이 아니라 급성장이라고 봐야겠어요.”

 

“그렇게 볼 생각하지마. 이 정신이 출타한 녀석아.”

 

그런데 레인이 이곳에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그저 우연히 겹쳤던 것뿐일까? 어느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가서 현실이 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불꽃이 튀어 오르고 청명한 강철의 충돌이 옥상 위에서 울려 퍼졌다. 내 고막이 찌르는 듯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레인의 손에 들린 것은 트라이앵글이었는데,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소리가, 사방으로 뛰쳐나오며 내가 있는 위치를 간접적으로 알리게 되어버렸으니...

 

“너. 누구의 사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야.”

 

“제가 잡화점에서 어마어마한 폭격을 맞고도 살아왔을 거라 생각해요? 당연히 거래를 함으로써 절 풀어준 거죠.”

 

“날 데리고 오라는 말을 들은 거냐?”

 

“그건 아니고, 시간만 벌어달라고 했거든요. 제가 카일 씨를 어떻게 이깁니까?”

 

뻔뻔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손에는 벌써 사브르를 들고 있었다.

 

“너는 왜 잡화점 1호점에 찾아와서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거냐고...”

 

“심심하면 놀러 가는 게 1호점 아니에요?”

 

“지금이라도 날 놔주면 필요 없는 희생은 줄일 수 있을 거야.”

 

“카일 씨. 하늘을 보세요. 저 사조성이 보일 겁니다.”

 

지금은 대낮이라 사조성은커녕 별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에 조그마한 점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하면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나에게 날아드는 것만큼은 확인했다. 검은 흑발을 날리며 고속으로 내려오는 소녀.

 

“사조성이 아니라 죽음의 별이잖아 그냥!”

 

마리아를 보자마자 어쩔 수 없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곧 이어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건물 옥상에 있는 콘크리트의 파편과 흙먼지들이 사방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레인은 과연 살아있을지 의문이지만, 뒤를 돌아보며 붕괴위기의 건물은, 시간이 역행하듯 천천히 돌아오면서 낙하하던 잔해까지 모두 원상복구가 되었고,

 

갈고리 사슬 하나를 아까 뛰어내린 옥상에 던진 후에, 겨우겨우 매달리면서 옥상으로 다시 올라갔다.

 

“여전히 반응이 빨라서 잡기 힘들군. 그만 포기하고 이곳에 와야 하지 않는가? 그러면 본래 30개를 녹화해야 하는 영상을 3개로 줄여주겠노라.”

 

“밝은 미소로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니, 이번 계획은 무산으로 만들어 주시죠?”

 

말 그대로 밝은 미소로 작은 손에 검은 성배를 들고 있는 마리아는, 잔을 살짝 기울자마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기이한 검은 촉수 같은 것을 피했다.

 

검은 성배에서 안에는 문어도 살고 있는 건가?

 

“애석하게도 카일이여. 첩에게는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장비를 겨우겨우 빌렸는데 빨리 찍어야 한다고?”

 

“그건 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거잖아요. 멀쩡한 사람의 성별과 나이를 변화시켜버린다는데, 그걸 어떤 인간이 허락해요?”

 

“첩이 허락한다.”

 

“하지마! 그냥!”

 

마리아의 경우에는 거리를 유지하는 마법사형이니, 내가 먼저 근접해서 공격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그걸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레인이 근처에서 근접공격을 막아주고, 마리아가 원거리에서 결정타를 먹이는 것이, 가장 유효한 타격방법이라고 한다면 꽤 힘들겠지만, 다행히도 이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마리아의 경우에는 내가 도망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지.

 

이 세계가 멸망해도 끝까지 따라올 것 같아서 더 무섭다.

 

“생각을 해보면 카일과 첩은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지 않는가? 애석하게도 그건 당연한 일인데, 첩이 진심으로 힘을 끌어올리는 것은 그 세계가 멸망할 때일 뿐이니까.”

 

“멸망 당하지 않을 정도로 힘을 내본 적은 없나 보군요? 저번에도 그 소녀의 모습에서 성인으로 변했을 때는 진심으로 힘을 끌어올린 게 아니에요?”

 

“그야 당연하지 않는가? 첩이 휘두르는 힘은 극미량에 불과하다. 그 극미량의 힘으로 땅이 갈라지고 산이 쪼개지는 것뿐이지. 아주 미세하게 힘 조절을 하지 못해서, 이 건물도 옥상부터 주저앉아 무너질뻔하지 않았는가?”

 

살아생전에 저런 무식한 먼치킨은 처음 봤네.

 

마리아가 지니고 있는 힘이 거대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을 따르는 자들은 세계가 멸망할 때 찾아와서, 안전한 땅으로 인도해주는 역할이니까. 그래도 급을 따지자면 신에 위치할 수준은 되겠지.

 

신비롭고 경이로운 정신기생체이지만...

 

“아무튼 시간을 더욱 더 지체할 수 없으니, 첩이 살짝 힘을 끌어올릴 테니까. 죽지 말거라.”

 

성배에 담긴 검은 물이 나에게 쏜살같이 튀어나오자마자, 옆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검은 물에 닿은 콘크리트가 서서히 기이한 형태로 뒤집어지기 시작하면서, 기괴한 생명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저건...

 

“슬라임이 검은 물에서 튀어나오다니...그 물은 얼마나 많은 생물이 들어가있는 거에요?”

 

“잘만 들여다보면 카일도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지.”

 

그 검은 물 안에서 내가 수영이라도 하고 있다면 끔찍했겠지만, 그 슬라임이 점점 인간의 형상을 지니기 시작하더니, 나와 쏙 빼 닮은 형체의 남자 3명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아...이런.”

 

순식간에 벌어진 공격에 반응은 하려고 했지만,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이후, 내가 다시 눈을 뜨니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첩의 말에 반항하지 않고 순순하게 따라왔으면 좋지 않았는가? 카일도 슬슬 말을 듣지 않고 튀어나가려니 잡기가 힘들구나.”

 

“그나저나, 카일 씨는 감이 예리하네요. 조금이라도 더 은밀하게 다가가지 않았으면, 트라이앵글을 못 울렸을 거에요.”

 

 

재기불능이 되어버린 내 두 다리를 각각 한 명씩 잡고 끌고 가고 있을 무렵. 태클은 걸고 싶어도 머지않아 어마어마한 피로가 다시 내 눈꺼풀의 무게를 증가시키고 있었다.

 

뭐에 맞았는지 몰라도 3명의 분신의 손 앞에 마나가 모이는 걸로 보아, 검을 들어서 근접전을 하겠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원거리에서 포격을 한 모양이로군.

 

이대로 끌려가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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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카일의 분신 3개를 소환했다.

카일의 분신1 마나 캐논!

카일의 분신2 마나 캐논!

카일의 분신3 마나 캐논!

 

카일은 쓰러졌다.

 

대략 이렇게 전투가 흘렀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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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2 - 2

08

 

 

하필 몬스터 학살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을 몬스터가 좋아하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여기가 이제 잡화점인지, 고민 상담소인지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을 때, 나는 레시아와 같이 프리트론 왕국에서 북쪽에 있는 기사단 지역 근처에서 실베스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실베스 씨에게 숙제를 시켰는데 그것은...

 

"카일 형제!"

 

2M의 장신의 남자는 근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왔다. 웨어울프 종족 특정상 체력이 강인하기 때문에, 낮잠을 잔다면 아침이건 밤이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들었다. 역시나 강한 인상을 주는 짧은 은발과 은안을 소유했으니, 사람들이 실베스 씨가 지나갈 때 마다 쳐다보기 바빴다.

 

인상만 조금 폈더라도 레베카 말고 다른 여자들이 좋아했을 법한 훈남의 이미지인데...

 

"실베스 씨. 편지는 다 작성했나요?"

 

가장 기초중의 기초전략인 두근두근 러브레터 대작전이다.

 

[주인...아무래도 '대'자는 빼야 할 것 같다만?]

 

[레시아? 어째서 제 독백을 읽은 건가요?]

 

[혼잣말이 들렸다. 주인이 누설 한 거니까 주인의 잘못이다.]

 

[그보다 레시아? 왜 이리 기분이 편치 않아 보입니까?]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뭐가요?]

 

[아무것도...]

 

레시아의 기분은 나중에 풀어주기로 하고, 우선...

 

"실베스 씨. 편지 내용을 잠시 읽어도 되겠습니까?"

 

"형제여! 나를 치욕으로 빠뜨릴 작정인가!"

 

"그럼 차이던가요..."

 

빠른 움직임으로 편지를 내미는 실베스 씨.

웨어울프가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편지를 읽어보았다.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또 무언가 실수를 한 것이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 읽었다.

물론 레시아도 내 옷 속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같이 봤다.

 

릴리 기사단에 있는 아름다운 꽃 레베카 양에게

 

긍지 높은 기사단에서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 오른 레베카 양.

저 또한 레베카 양에게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긍지를 가지고 이 편지를 작성합니다.

저는 그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대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그대를 생각하고 울부짖으며,

당신이 저를 보고 웃어주는 꿈을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긍지 높은 남자!

레베카 양과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 입니다. 

사귀게 된다면, 그리고 결혼한다면,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저녁 6시마다 리베리티아 고원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답변을 주시길 바랍니다.

 

그대를 사모하는 실베스가.

 

음...

확실히 기대 이상으로 평범하게 잘 써줬다.

게다가 어디서 배운 작문인지 몰라도 이 정도로 잘 써줬으면 레베카 양은 흥미라도 생기겠지.

문제는 릴리 기사단 또한 빼어나고 수려한 외모 덕에, 이 편지봉투가 눈에 잘 보여야 한다.

안 그러면 잉여 편지와 함께 캠프 파이어의 희생양이 되리라.

 

"그럼 문제는 이 편지봉투가 얼마나 눈에 잘 띄느냐인데..."

 

[그보다 주인? 저런 종이 쓰레기를 집어넣는 곳이 아니라, 몰래 침투하면 되지 않는가?]

 

[오! 레시아! 나이스 아이디어군요! 근데...릴리 기사단 숙소는 금남구역 입니다만?]

 

[주인이 여장을 하면 되지 않는가?]

 

[그거 참 쉽게 쉽게 말씀 하시네요. 대부분 여장한 캐릭터는 좋은 모습을 못 보이거든요?]

 

"카일 형제여..."

 

레시아와 텔레파시를 싸우는 동안 실베스 씨가 말을 걸었다. 뭔가 어두운 얼굴로 되어 있으니 더욱 무섭게 내 어깨를 잡고 입을 열었다. 아주 침착하고, 아주 조용하게...

 

"레베카 양의 숙소에서 편지를 놔주지 않겠나?"

 

이런 제기랄!

어떻게든 여장을 당하지 않을 계획을 새워야 한다.

남자가 여장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다고!

 

"거긴 금남구역인데요?"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보다 부셔져요! 아파요!

 

"여장을 하고 몰래 갔다 오면 되지 않는가! 형제여! 내 일생의 소원이네!"

 

아파! 아프다고! 놔줘!

 

[지금은 저 잡견이 말하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

 

"안되! 절대로! 여장하기 싫어!"

 

나의 단말마는 한 순간에 제압되었다.

 

***

 

다행히...여장하는 벌칙은 면했다.

...

......

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주인. 이렇게 보니까 더 잘 어울리지 않는가?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긴 머리 가발만 씌워주니 정말로 여자라고 믿어도 되겠구나.]

 

[조용히 해요.]

 

[하얀 프릴이 가득 담겨져 있는 고딕 롤리타 밖에 없어서 미안하지만, 나중에 여자라도 될 생각이 있는가? 마왕성에 있는 옷을 전부 꺼내서 입히고 싶다만?]

 

[조용히 하세요.]

 

사람 열 받아 죽겠는데, 레시아는 상한 기분이 풀어진 것도 모자라 신이 난 듯하다.

하긴. 남이 생고생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는 절대 저런 짓 하지 말자."

다른 하나는 "깔깔깔! 저게 뭐냐! 키키키킥!" 이다.

 

오늘도 여장을 하면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표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분명 사고가 터진다는 징조니까.

어디서 봤느냐 하면...잡화점에 있는 엘티노스의 자서전을 다 읽어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나는 1분 1초라도 빨리 레베카인지 뭔지 하는 계집에게 편지를 주고 뛰쳐나오기만 하면 된다.

 

[주인? 독백의 상태가 많이 흉포해졌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레시아가 나를 마법으로 재워버린 바람에 빠른 대응을 못한 건 사실이지만, 아니 끔찍한 기억은 잠시 봉인해두자. 애초에 마른 체형이 이런 일에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마치 첩보소설에서 나올 법한 주인공처럼 어둠에 동화하고(문제는 햇빛 때문에 실패.) 기척을 죽이고(애초에 사람이 없었다.), 발소리도 죽였다.(그보다 구두를 신어서 발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듯 하면서도 안 보이는 그런 상태로 천천히 릴리 기사단 숙소에 들어갔다.

앞에 보초를 서고 있는 경비병은 대체적으로 베테랑이 없는지 레시아가 최면을 걸자, 들여 보내줬다.

남은 것은 레베카 양의 숙소를 찾는 것.

 

다행히 이름이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상한 문을 열고 "꺄아악!"하는 사건이 없을 테니. 그것 또한 안심.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뭣이냐 하면, 2명이서 방 하나를 쓴다는 것이다.

그것도 기사단장과 부기사단장이 한 방에.

 

제발 아무도 없길 빌었다.

 

[괜찮다. 주인. 아무도 없다.]

 

[정말이에요?]

 

레시아가 어느새 나와서 문에 귀를 기울이더니 그리 텔레파시를 보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쯤 아마 훈련을 하고 있겠지.]

 

[그거 다행이네요.]

 

문을 열자, 2층 침대와 책상은 좌우로 2개가 있고, 바닥에는 고풍스러운 그림이 그려진 붉은 카펫이 그려져 있었다. 기사단장이라 더 넓은 방을 사용할 줄 알았지만, 기사단에서 생도가 생활하는 생활관과 같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부기사단장 책상 서랍 안에 편지를 넣었다.

이것으로 미션은 완료.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빨리 이 빌어먹을 것의 여장을 집어 던지고 싶다고 생각할 찰나...

 

[주인! 발소리다! 수십 명의 발소리가 들린다!]

 

신이시여...

빠른 동작으로 문을 닫고 나서 창문을 내려봤다.

4층?! 여기가 그리 높았었나?!

 

[주인. 뛰어내려라!]

 

[저는 편지를 전달하고 죽는 겁니까!]

 

[착지는 짐이 맡겠다.]

 

"제길...실베스 씨에게 값을 많이 치르게 만들어야겠네..."

 

새벽<Daybreak>을 사용한 이후에 마나 컨트롤이 능숙해져서, 마나로 신체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창문을 뛰어내리면서 창문을 닫고,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다리로 착지했다.

도중에 레시아가 충격을 흡수해주는 마법진을 착지하는 땅에 펼쳐줬기에 안전하게 착지가 가능했지만, 릴리 기사단은 아직 밖에 많이 있었다.

 

[레시아.]

 

[왜 부르는가?]

 

[레시아가 저 앞을 가로질러서 시선을 끌어주세요. 실베스 씨와 만나던 장소에서 귀환마법 준비도...]

 

[알았다. 주인.]

 

레시아는 작고 검은 바람과 같이 질주하자...

 

"어머! 귀여운 고양이다!"

"야옹아! 이리와!"

 

여성도 기사단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 힘들고 고된 훈련에는 귀여운 동물만 봐도 관심이 끌리고, 쫓아가서 만지고 싶은 법이다. 아니면 평상시에 그러던가...

가장 큰 문제는 이곳의 지리를 모르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루트는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무조건 한 방향으로 직진.

그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 중 하나였다.

 

10분 정도 달리고 나서, 운동장 같은 곳에 도착했다.

출구는 앞에 보였으니 저기로 뛰어넘어가면 되지만...

 

"거기? 못 보던 얼굴인데? 여기는 실력 테스트하는 장소라서...혹시! 기사단 시험을 보러 온 거야?"

 

뒤를 돌아봤다.

뒤를 보기 싫다고 뇌는 말하지만, 몸은 안 보면 죽을 것이라 직감했다.

모습을 천천히 보았다.

눈은 백색의 스커트와 금색 테두리가 아름답게 새겨진 백색의 기사단 제복을 확인하고, 왼쪽 가슴 쪽에 달려있는 금색 독수리 휘장을 확인하는 순간.

 

'릴리 기사단장...루니아...'

 

뇌에서는 빠른 화학반응과 함께 결론을 내렸고, 빠르게 사고처리를 시작했다.

내 뇌 속에서는...

 

"이야! 큰일이네! 큰일이야!"

 

"답이없네! 답이없어!"

 

"큰일이네! 큰일이야!"

 

"답이없네! 답이없어!"

 

그만해! 이 망할 것들아!

뇌가 이미 폭주를 해서, 뇌 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시간에 기사단 시험은 논외이지만, 그래도 기사단장이 특.별.히! 시험감독을 해줄게?

 

파도물결처럼 긴 웨이브의 금발이 바람이 나부끼고, 루비 같은 적색의 눈을 가진 기사단장은 왼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매우 상냥한 목소리로 여유를 부렸다. 그렇다면 저기 있는 기사단장으로부터 도망가서,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가기 위한 선택지를...살아 나가기 위한 도박을 실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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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적은 주인공을 굴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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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28 - 2

244

 

 

 

어떤 사람이든지...어디서 나올 법한 빅맥세트와 같은 그런 운명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유연하게 입을 열고 닫으면서 겨우겨우 류하 씨를 설득할 수 있었다. 카렌은 언제나 그랬듯이 마차를 타면서 나에 대한 질문이 한 가득했고, 분명 그것은 부모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그래서 저의 어머니 후보는 얼마나 많은 건데요? 아버지는 저의 것인데 말이죠.”

 

“...뒤에 있는 말은 뭔가 이상한 것 같다만?”

 

“지금 이 나이에는 아버지를 독점하고 싶다는 딸아이의 심리작용이 왕성할 때라고요? 당연히 어머니를 경쟁상대로 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나타날 시기라고요?”

 

“그걸 말할 거면 엘렉트라 콤플렉스겠지. 오이디푸스는 부친을 살해했다고...뭐 그래도 네가 남자 아이가 아니라서 몇몇은 후회하게 되기도 하더라.”

 

차라리 동성이었다면 다른 여성진에게 관심을 보여서, 내가 좀 더 편해질 수 있는 생활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하나 밖에 없는...대체 왜 있는지도 모르는 딸이기에, 비록 호문쿨루스라고 할 지라도, 무의식 적으로 꽤나 아끼게 되고 챙겨주게 된다.

 

“그나저나 류하 님은 아버지의 몇 번째 부인인가요?”

 

“그런 거 아니다. 애초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기에는 너무 뒤떨어진 상태야.”

 

“네? 아버지는 아직도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다니는 건가요?”

 

예부터 자신을 과대평가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가진 오만함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한다고 들었다. 따라서 나는 검소하면서도 절대로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카렌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자신감이 부족하니까, 아버지는 주변 여성진에게 언제든지 먹힐 가능성이 있다니까요?”

 

“그런 오해를 부르는 단어를 쓰지 말거라. 그리고 뭐가 먹힐 가능성이 있어? 그 사람들은 파리지옥이 아냐.”

 

“아버지는 다 알면서 회피하시는군요?”

 

계속 움직이는 마차 안에서도 내가 태클을 걸어야 할 범위가 산더미로 올라가기 때문에, 조용히 지낼 날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류하 씨가 직접 힘을 써줘서 알아봐준 마차라 그런지, 아무리 붙어있어도 1개월정도 걸리는 국경을 이틀 정도의 시간에 들여서 돌파했다.

 

라고 하기 보단...

 

“이거 류하 님이 말해줬는데 CAR-83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거 마나로 운영되는 말없는 마차 말이에요. 보통 마차로는 쉬고 움직여야 2개월에 도착하는 거리를 13시간만에 도착을 하다니.”

 

그야 당연히...전력질주를 쉬지도 않고 하니까 그렇지. 강이건 뭐건 그냥 질주 하나로 무마시켜버리니까.

 

“어쨌든 이 다음은 아르칸 제국이죠? 아르칸 제국에는 대체 뭐가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에요.”

 

카렌이 아르칸 제국으로 가는 것은 그저 단순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메이와 가이로안 씨를 찾기 위함이다. 그래도 카렌은 아르칸 제국에 들어서자마자 놀 거리로 가득한 아이의 눈으로 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카렌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잠깐 말하고자 했다.

 

“카렌.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놀아야겠구나.”

 

“네? 어째서 아버지는 소녀의 마음을 그리 미안하지 않는 듯한 얼굴로 짓이겨버릴 수 있는 것이죠?”

 

내 목적은 그저 사키엘의 문을 이용할 때, 아르칸 제국으로 가는 길목을 완전하게 열어놓는 일이었을 뿐이니까. 그것 때문에 류하씨도 흔쾌히 마차를 빌려준 것이지. 아니 마차가 아니라 CAR-82였던가?

 

“지금은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는 시간대라서...곧 날이 저물고, 잡화점에 돌아와서 하지 않았던 물품정리를 다 하면, 아슬아슬하게 8시정도 되겠구나.”

 

“아하! 지금 아버지의 신부 후보들을 빨리 보고 싶어서 일부러...”

 

-덥썩! 꽈아아아아악!

 

“으아아앗! 아이언 클로라니이이이잇! 아버지 잘못했어요! 차라리 엉덩이를 때려주세요!”

 

“엉덩이를 때려서 훈육하기에는 시기가 좀 많이 늦었으니까, 아이언 클로를 20초만 더 버텨 보거라.”

 

다시 지상으로 축 늘어진 카렌을 이끌고 잡화점으로 귀환마법을 사용했다. 잡화점에 돌아오고 나서 다시 지상으로 추락한 나는...아니 진짜 내 인생은 왜 이런 거야? 어쨌든 고통을 무릅쓰고 일어나서, 레시아가 나를 기다렸는지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들고는 입을 열었다. 검은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 고개를 들며 인사를 하는 광경은, 이미 나에게 익숙해졌는지 오래 되었다고는 하지만...

 

“음. 주인과 내 딸이 온 것인가? 어서 어머니께 안부 인사를 먼저 하거라.”

 

“아니...여러 가지 태클을 걸게 많은 것 같지만, 상황이 매우 급한 만큼 일단 넘어가 드리도록 하죠. 슬로배스 씨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요?”

 

메이의 아버지이면서 나태의 표식을 가지고 있는 나무늘보. 상대를 영원한 잠으로 빠뜨린다는 최악의 게으름뱅이인 슬로배스 씨는, 사실 7일 전부터 레시아에게 보고를 하고 미리 찾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슬로배스 씨의 움직임상...죽은 나무늘보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7일 정도 지나서야, 겨우겨우 슬로배스 씨는 자신의 방을 빠져나갔다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레시아가 대신 찾아주기로 했다고...

 

지금은 슬로배스 씨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자...

 

“나무에 매달려서 나뭇잎을 먹고 있다.”

 

“...어째서?”

 

“그야 나뭇잎은 도망가지 않으니까 말이지. 어쨌든 주인은 아르칸 제국까지 다녀오는 길인가? 내일부터 탐색작업을 한다면 짐을 데려가야 하겠군? 짐도 슬로배스에게 청을 받아서 메이를 찾아야 할 테니 말이다.”

 

“마왕이 부하의 부탁도 들어주는군요.”

 

그러자 레시아는 언제나 늘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잊었는가? 짐은 의외로 마왕이니라. 높은 자리에 있는 자는 아래에 있는 종자를 굽어보고, 잘 자라나는지 확인하는 것이 의무이자, 필수적인 일이니라. 짐의 부하가 어쩔 수 없이 슬퍼하는 것을 오히려 높은 자리에 있는 짐이 덜어줘야 하는 것도 의무. 왕이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밑에 있는 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면 안 되는 일이니라.”

 

“그걸 생각하면 첩에게 잡일을 시키지 말라고요!”

 

마리아는 거대한 서류뭉치를 한 가득 들고는 태연하게 소리치며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레시아는 잠깐 마리아를 쏘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태연하게 돌려,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작은 앞발을 핥았다. 그나저나 저 서류뭉치는 대체 어디서 가지고 온 거지?

 

“짐의 마왕성이 요새 리메이크 하고 있기에...잠깐 마왕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대부분의 잡무를 여기서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걱정 말거라. 내일은 주인과 같이 동행을 할 수 있으니.”

 

그냥 서류지옥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나저나 레시아 어머니의 본 모습을 못 봤는데요? 어떻게 생기셨나요?”

 

카렌은 레시아를 레시아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느닷없이 내가 모아놓은 마나의 절반이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살짝 휘청거려서 아무거나 붙잡고 몸의 탈진을 호소하던 찰나에, 검은 드레스를 한 가득 몸에 두르며, 연옥의 지옥불을 상징하는 두 눈동자와,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이 허공에 펼쳐질 때. 카렌을 이미 끌어안고는 레시아는 기쁜 목소리로 입에 열었다.

 

“역시 짐의 자식이라서 그런지 보는 눈은 있도다. 주인의 자녀가 짐을 어머니로 인식하는 것을 보아하니 결국 정부는 짐의 것이나 다름이 없군. 주인! 오늘은 팥밥을 짓거라!”

 

“무슨 팥밥이에요! 잡무나 제대로 하시죠!”

 

카렌의 눈이 상당히 커지면서도 “예쁘다...”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흘려버린 듯 했다. 말 그대로 타락의 표식을 가진 레시아의 본 모습은, 누구도 품어줄 수 있는 비정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마왕이니까.

 

그나저나 이번엔 다른 비정상적으로 남은 절반의 마나가 전부 날아가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자 이번엔 내 안에서 서서히 빛의 구체들이 모이더니, 하얀 눈보다 더욱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잡화점의 바닥으로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그래도 전에 봤던 모습에서 조금 더 성장을 한 시나는, 카렌의 팔을 붙잡더니 느닷없이 레시아에게 뺏어서 끌어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런 냥캣에게 다가가면 이상한 것만 배우게 됩니다. 그러니까 제 밑에서 자라나서 고운 아이가 되어주세요.”

 

“이쪽은 귀엽다...”

 

다시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내어버린 카렌은 양쪽을 바라보고 난 뒤, 탈진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에게 뛰어와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소녀 부탁이 좀 있어요.”

 

“뭔데...”

 

“그냥. 하렘 만드시는 게 어떠신지요?”

 

“......”

 

저 말을 들은 지 3초 후.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아프다니까요!!!”

 

다행히 아이언 클로를 할 수 있는 기력은 존재해서 다행이었다만, 다시 앞을 보니까 전방에 레시아는 고개를 살짝 내리고, 시나는 고개를 살짝 들은 채 격렬한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그 둘의 싸움을 말려야만 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내 운명이라면, 차라리 스탠드 하나를 달고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여행도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그거 멋지지 않나? 시간 멈추는 거...

애석하게도 지금 이것이 현실이다.

 

“둘은 그만 좀 싸우라니까요. 제 마나를 지금 다 날려먹고 그 모습으로 싸우기라도 한다면, 세계가 완전이 난리가 나는 것은 둘째치고 잡화점이 날아갈 테니까요.”

 

예로부터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집안이 잘 되야 모든 일이 잘 된 다는 것.

그 외에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듯이...지금 집안이 작살나게 생겼는데 나라 안전이든 세계의 평화든 지금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물론 잡화점을 집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지금 여기서 레시아와 시나가 마법이라도 잘못 난리는 날에는 문제가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안심하거라 주인. 전에 저 비둘기하고 마법을 써서 싸우지 말자는 약속을 했다.”

“괜찮습니다. 마스터. 저희들의 마법으로 잡화점이 날아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저 둘의 미소를 보아하니

 

“하지만 약속은 깨지라 있는 것이다!”

“그래도 냥캣과는 약속하지 않습니다!”

 

이 녀석들 또 싸우려고 하네...

 

-파앙!

 

뭐 약속대로 잡화점은 무너지지 않았는데, 폭발의 여파로 나는 창문을 깨고 날아가서 다시 흙먼지를 먹어야 하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아 그러니까! 그냥 스탠드술사로 전직해서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운명이 더 멋지다니까? 이렇게 폭발해서 날아가는 걸 보면 어디 미사일 악당 같잖아? 그 바보 같은 전기 쥐나 납치하려는 그런 바보 같은 녀석들...

 

“오늘도 제대로 날아가셨군요. 오자마자 당신의 복부에 주먹을 때릴 생각을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당신 때문에 흥이 다 깨졌으니까 책임지시죠?”

 

무자비하면서도 사무적인 쇼콜라 씨의 냉철한 목소리를 듣고, 어이없는 감정을 꾹 눌러 참으며

 

“쇼콜라 씨. 나는 마나가 거덜난 상태로 날아간 피해자라고요? 그렇다고 쇼콜라 씨가 책임지라고 해면, 오히려 제가 하프를 들고 기타소리를 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파악!

 

“아악!”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데 순식간에 쇼콜라 씨가 신은 검은 색의 구두가 내 시야와 가까워지더니, 그 상대로 내 얼굴을 밟아버렸다. 비명을 지르는 것은 당연이거니와, 뇌까지 땅에 박혀버릴 듯한 충격으로 기절할 뻔한 내 정신을 붙잡고, 나는 한자 한자 또박또박 말을 했다.

 

“대체! 뭐 하는 거에요!”

 

“그대로 올려다 보면 저의 속옷이 보이기에...”

 

말로 하라고!

머리를 밟으려고 하지 말고!

 

“아...그래도 이 모습을 보아하니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뜰 것만 같은...”

 

“뜨지마!!!”

 

나는 폐안에 있는 공기들을 모조리 내뱉으면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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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길목에서 쓰러진 체 발견하면, 머리를 밟지 말고 일으켜 세워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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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4 - 2

299

 

 

 

항상 수행을 하는 사람은 언제 한번은 벽에 부딪치는 기분을 맛보게 된다. 검사의 길을 간다고 한다면 중급과 상급에서 주로 벽을 처음 맞이하고,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경지에 올라가야 한다. 예전에 루크를 가르칠 때도 신검합일의 경지를 자연스레 끌어올렸듯이, 나도 시공간술사의 길을 걷는 지금은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고, 제대로 사용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시야는 애석하게도 제한 되어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갯가제의 눈은 12개의 색상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보는 3원색과는 달리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색상을 9개나 더 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시공간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게 말로만 쉽지 거의 불가능 아니던가?

종족을 바꿔야 하잖아?

그 고양이 수인 말고.

 

“직접 체험한 것을 기억하는 게 인간이 가장 잘하는 일이지만, 미지의 영역에 들이는 일은 인간이 가장 자주 실수하는 것이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주인. 하지만 주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간술사의 길을 그렇게 걷고 싶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고양이 마법소녀 카린이 되어...”

 

“싫어요.”

 

나는 레시아의 말에 즉답했다.

 

“어째서인가? 주인은 카린이 되었을 때 마법의 진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 고효율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히려 날 왜 못 굴려먹어서 안달이 났는지 그 이유부터 물어봅시다. 레시아는 내가 성별이 바뀌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는 것은 잘 알잖아요? 게다가 지금은 틀을 제대로 못 잡아서 변해봤자 의미가 없다니까요?”

 

레시아는 작은 앞발을 핥으며 내 말을 다 듣고, 퉁명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 주인의 페어링이 강화되어 짐 멋대로 변신시킬 수는 있다만, 그거는 주인의 호감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니 하지는 않으마. 이렇게 되면 누가 사역마이고, 누가 사역하는 자인지도 슬슬 알 수가 없군. 오히려 지금은 짐이 주인을 멋대로 할 수 있으니 주인이 사역마 같지 않는가?”

 

칫! 벌써부터 하극상이 예상되는 발언이라니.

 

“그래도 약속에 따라 제가 잡화점을 운영할 때는 레시아가 도와줘야 한다고요?”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니 짐이 특별히 주인을 간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없게도 공원에 날아가서 죄다 옷이 젖어버렸으니, 그 추운 날에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상태로 기절해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확실히 말하면 주인의 몸은 추위와 더위에 이제 어느 정도 강도가 있다고는 해도, 루니아의 요리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지는 것은 여전하구나.”

 

레시아는 염력을 이용해서 내 이마 위에 있는 수건을 다시 적시고 올려놨다. 대략적으로 어제부터 이어진 고열은 거의 다 나았다고는 생각했는데, 루니아 누나의 특제 영양식으로 인해 3일 정도 더 누워있었다. 영양식인지 아니면 죽음으로 가는 최후의 만찬인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짧은 임사체험으로는 직사의 마안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인. 지금 피곤한 것인가? 세상에는 직사의 마안 같은 거 존재하지 않는다. 선이 보이는 것은 소설의 주인공들뿐이니라. 애초에 선을 따라 긋기만 해도 모든 사물이 해체되는 설정은 무서운 설정이니까. 마이너스의 손과 같은 것이다.”

 

“마이다스의 손이겠죠. 그나저나 지금은 레시아의 차례인 거에요?”

 

“본래는 돌아가면서 간병하기로 했지만, 루니아가 영양식을 가져와서 주인을 5번 정도 도로 죽이는 바람에, 지금은 비둘기와 내가 집중적으로 간병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바라봐도 시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나는 대체 어디에 있길래 모습이 안 보이는 걸까?

 

“비둘기가 아니라 올빼미입니다. 기본적으로 그것 정도 구분해주시죠. 냥캣.”

 

말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선...이불에서 나오는 소리인데. 올빼미의 모습으로 이불 안에 들어가 있는 듯 했다. 그야 당연히 주온에서 나오는 귀신처럼 이불에서 머리가 나타날 일이...

 

“마스터. 조금은 따듯하신지요?”

 

“으아아아아악!”

 

주온인가?

정녕 장르가 주온인 것인가!

시나의 머리가 이불에서 튀어나와 나는 비명을 질렀다. 지금 올빼미 상태가 아니란 소리인가? 이거 두꺼운 이불이 아니었어?

 

“주인. 주온은 장르가 아니다. 그보다 비둘기여. 언제부터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고 있었던 것인가? 꽤나 전형적인 유형의 간호방법이 아닌가? 끌어 앉으면서 상대를 따듯하게 해준다는 그 자체는...”

 

“냥캣도 이틀 전에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저도 할 겁니다.”

 

경쟁하는 건 뭐라 말하지 않겠지만 나와 관련이 없는 경쟁이었으면 좋겠다.

 

잠깐. 아까 내가 뭐라 말한 거지?

눈이라고 했던가?

 

“눈을 다른 방향으로 개안하면 되잖아요? 시공간을 볼 수 있는 눈으로? 그것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는 거라면 당연히...”

 

“안 된다.”

“안 됩니다.”

 

레시아와 시나가 거의 동시에 내 말을 거절했다. 시나는 덧붙여서 내 귀에 속삭이듯이 조용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마스터. 시공간능력을 위해 눈을 희생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마나로 시력을 강화해서 상대방의 마나를 측정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시공간의 흐름까지 볼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것을 보는 이들은 정신력에 상관없이 전부 미쳐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럼 추측으로 따지자면...

 

“혹시 시공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상상외로 그로테스크 한 것?”

 

“시공간의 압축된 정보는 마스터가 보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확실히 개안을 하고 난 뒤에 곧바로 뇌에 과부화가 걸릴지도 모르니 말이죠. 시공간의 흐름을 보다는 것은 1초 이내에 모든 것도 감지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것. 잠깐이라도 그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

 

“단순한 공간마법이 아니란 소리란 거지? 시간까지 같이 조종해야 하니까.”

 

레시아의 아공간을 이용한 마법이라던가, 귀환마법 같은 경우는 어차피 시간은 동일하니 상관이 없다. 하지만, 시간까지 붙여서 다룬다고 하면 그 시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고, 신마저 섣불리 건들이지 못하는 영역이기에 인간이 그걸 다스릴 줄 안다는 뜻은, 이미 초월을 했다는 의미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시공간술사가 된다면 확실히 킹 크림슨이나 스타 플래티나가 없어도, 시간을 이용한 전술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스탠드를 뽑아야 하는 운명일까요?”

 

“애초에 이곳에는 스탠드 구현의 화살도 없노라. 모든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야와 처리능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모든 것을 동시에 본다? 그건 마치 천리안을 개안하라는 소리인 것 같네요?”

 

“시공을 보는 눈의 바로 밑이 천리안이다. 확실히 그 위는 정해진 정식명칭이 없지만, 주인이 미치더라도 시공의 흐름을 보고 싶다면, 천리안을 먼저 깨우쳐야 하는 것이 정석이라고는 하지만...사실상 천리안을 깨우치지 않고 시공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그렇지 않는가? 빛의 여신이여?”

 

시나는 잠깐 뜸을 들이듯이 그저 나를 끌어 안기만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시아가 시나를 부를 때는 비둘기라 자주 부르지만, 레시아가 빛의 여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처음 들었다.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것인가? 신격화를 해도 주인이 주로 통제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대만 주인과 신격화를 할 때마다 강제로 의식을 끊어버리고 주 통제를 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만, 그것은 주인을 보호 차원으로 시공간의 흐름을 못 보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데모르테나 아랑은 신격화를 했을 때, 마스터의 의식이 그대로 유지 되었다는 것은 짐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난 것뿐이니라.”

 

시나는 레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았을 때는 레시아의 말에 대부분 긍정적으로 수긍하는 얼굴이었고, 레시아는 계속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애초에 다른 차원의 그냥 굴러다니는 여신도 아니고, 아우리스와 같이 이 대륙의 태초의 여신이 아니라, 최초로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그 공간에서 빛을 밝힌 여신이다. 차원단위의 막강한 여신이 이곳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지만, 시공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대만이 가능한 일이다. 빛이 침식하고 나서 시간을 깨닫고, 빛이 침식하면서 주변에 공간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거야 말로 어마어마한 능력이 아니던가?”

 

또 다시 아무런 말이 없는 시나는 내 가슴팍에 고개를 묻을 뿐이었다.

 

“뭐. 이정도 되었으면 시간이 슬슬 되었겠지. 짐은 잠깐 밖에 나가서 베니와 놀고 있겠다. 주인이 궁금한 것은 다시 비둘기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보도록. 착실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야 말로...”

 

다음의 레시아의 말은 마치 경고장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거짓과 욕구를 가득 품고 있으니 말이다.”

 

문틈으로 빠져나가는 레시아의 뒷모습을 나는 그대로 보면서, 다시 서서히 닫혀가는 문을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지금의 레시아와 시나의 기싸움은 평소와 다르게 너무 무겁고 진중해서, 내가 섣불리 뭐라 끼어들 수도 없고 시나가 일방적으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없었다.

 

서로 비둘기라던지 냥캣이라던지 그렇게 부르지 않고, 레시아가 빛의 여신이라고 거론할 정도라면, 분명 아직 시나는 나에게 뭔가 감추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진실을 알기 위해서 지금의 시나에게 질문을 멋대로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니, 오히려 비밀이 있다면 간직하거나 나에게 자연스럽게 털어놓게 하는 방향으로 하기로 하자.

 

“음. 뭐냐. 억지로 시공의 흐름을 개안시켜달라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아. 애초에 너는 나를 보호하려고 내 의식을 계속 재운 것이잖아? 거기에 대해서 별로 마음도 갖지 않고 있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아닙니다.”

 

찰나라는 그 짧은 시간에 시나는 격양된 목소리를 냈다. 그런 시나의 머리만 쓰다듬어주고 있었던 나는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이길래...?”

 

“제가 그 냥캣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은 사전에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전의 약속? 무슨 약속인지 몰라도 레시아가 물었을 때는 오히려 받아 치는 것이 시나의 몫이었잖아? 여태까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콤비가 탄생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전 그 냥캣과 콤비를 맺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맺어야만 했으니까요. 애석하게도 분하지만 냥캣의 말대로 저는 지금도 불안정한 힘으로, 제대로 된 권능도 휘두르지 못하면서, 저번에 파멸의 빛이라는 다른 여신의 권능으로부터 마스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건 내가 부족한 거지. 시나가 부족한 탓이 아냐. 오히려 가슴에 담아둘 필요는...”

 

아직까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일까? 나는 시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 위해 머릿속에서 적당한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으로 만들었을 무렵.

 

“저의 권능이 강력하게 발휘하면서 불안정한 힘을 제대로 통제함으로, 저의 전성기 시절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냥캣이 페어링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제안을 한 것입니다.”

 

시나로부터 뭔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잘못 들어서 그런데 페어링 강화를 해야 한다는 환청을 들은 것 같아서.”

 

“마스터의 귀는 정상입니다.”

 

제길! 대부분의 친구가 적은 소설에서는, 귀가 정상적이지 않아서 플래그를 다 부순다고 들었는데!

 

“잠깐. 나 밖에 산책 좀하고 올게. 아무래도 요즘 산책을 안 했더니 청력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야.”

 

“청력과 산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제길...

아직 탈출구는 남아 있을 거야.

뭣하면 바이츠 더 더스트를 발동하지 뭐.

아. 4부는 끝났지 참.

 

“괜찮습니다. 마스터. 지금 외형으로는 10대 후반쯤의 외모입니다.”

 

“아니. 뭐가 괜찮아!”

 

“스타일도 어른 체형에 가깝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냐!”

 

“뭣하면 지금 보여드리는...”

 

“가만히 있어!”

 

시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차근차근 입을 열었다.

 

“역시 예상대로 마스터는 잘 넘어오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저 또한 마스터에게 착하고 얌전한 아이로 기억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지만, 오늘만큼은 그걸 유지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 생각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무래도 마스터의 몸에 대한 통제권은 제가 빼앗도록 하지요.”

 

뭐?

방금 내가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었는데?

지금 통제권을 빼앗는다고 했던가?

 

“저기 시나. 나는 정신방어가...”

 

“괜찮습니다. 저와 마스터는 페어링으로 이어져있고, 애초에 마스터보다 제가 힘이나 능력으로는 강하니, 제대로 통제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평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딱히 위와 아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역마와 사역주의 역전관계는 허용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냥캣이 많은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추면서 마스터가 의심을 하지 않기 위해, 사전에 약속 되어있던 시간 끌기를 했던 것이지요.”

 

시나는 담담하고 사무적으로 나에게 입을 열었고, 거기에 5분 정도 생각을 하고 도달한 결론 끝에 나는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 다음 내뱉었다.

 

“악! 카렌! 루시피나! 루니아 누나! 젤나가 님! 가면 라이더!”

 

“아무리 불러도 소용 없습니다. 지금은 냥캣이 침묵마법을 시전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마스터? ‘저에게 키스를 먼저 해주세요.’”

 

몸에 통제권이 빼앗긴다는 뜻은 그 시간 동안에는 인형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의식은 있어도 시키는 명령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키스를 하고 있는 내 스스로에게도 놀라기 마련. 따듯하다 못해 뜨겁고 매끈거리는 감각이 입안을 휘저을 무렵. 시나가 입을 먼저 때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냥캣처럼 트라우마가 남겨지지 않고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면서, 오늘은 시행착오가 없고 둘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상냥한 끝을 향해 나아가보죠.”

 

시나는 내 양쪽 뺨을 잡고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막으며 내 눈을 계속해서 마주쳤다.

 

“단계를 밟다니...너 정말!”

 

“아까 냥캣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시나는 경악하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즐기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는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이미 욕망이 넘치다 못해 폭포를 이루며 쏟아지듯이 위에서 바라보았고, 살며시 입고리가 올라가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착실하고 똑 부러지는 사람일수록, 거짓과 욕구를 가득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시나가 다음으로 나에게 내린 지시는...

 

-이 다음은 날아가버린 시간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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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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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8

458

 

 

 

옛말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 곱게 정신이 나가면 괴짜고, 나쁘게 정신이 나가면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는 소리가 있다. 당연히 이건 내가 2분전에 생각을 했으니 옛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노아스를 앞에 두고 윈디와 이프리트가 애먹고 있었다. 땅과는 상성이 그리 좋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이 도서관의 구조가 켈모리아에게 유리한 지형이라서 그런 걸까?

 

“정령들은 정령들끼리 놀아야지. 안 그러겠어?”

 

“노아스에게 저주까지 걸을 정도라면 켈모리아 씨가 시체협회의 회장자리에 있는 건가요?”

 

“이 정도의 저주술사라면 가능하지. 그런데 의외인걸? 어째서 지금의 카일에게는 저주가 걸리지 않는 걸까? 지금도 계속 시도를 하고 있지만 걸리지 않네. 이번에는 어떤 무시무시한 물품을 가져온 걸까?”

 

“어릿광대의 가면이에요.”

 

“그래서 옷이 바뀌지 않았구나. 이번에는 인어공주 복장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인어공주든 인어왕자든 우선 제가 말한 질문에 충족하지 않은 답변을 하셨어요. 지금 시체협회회장의 자리는 켈모리아 씨가 가지고 있는 거죠?”

 

켈모리아 씨는 여전히 느긋하게 가만히 서있을 뿐. 그 이유라면 내가 티르빙을 무기로 변환시키지 않은 이유일까? 그저 이게 대화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나도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을 텐데.

 

“당연하지. 엘티노스가 이루지 못한 업적 중에선 남을 가르치기 싫어하기 때문에, 어느 협회든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니까. 그걸 정복하기만 한다면 나는 엘티노스의 모든 업적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어.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저주술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라 그런지,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보지 않아. 오히려 겁을 먹고 벌벌 떨고 있지. 나의 분위기에 맞추려고 열심히 아양 떠는 사람들을 보면 한숨밖에 안 나와. 그래도 카일과 아리엘은 나를 제대로 봐주니까 좋아해♥”

 

이 정도면 정말 병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그러면 슬슬 칼을 뽑아줄래? 아니면 질문이 더 남아있는 걸까?”

 

“이프리트! 실피드! 돌아와!”

 

이프리트와 실피드를 내 옆으로 다시 두면서, 의아해하는 켈모리아의 표정을 바라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되었어요. 켈모리아 씨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비틀린 길을 걷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요?”

 

“내 길은 전혀 비틀리지 않았어. 카일. 너의 관점을 적용해서 나에게 잘못 되었다는 하지 말아줘. 적어도 나의 관점에서 생각을 좀 해보고 나서 입을 열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거나, 내가 조금 더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걸? 아리엘은 그걸 위한 제물일 뿐. 마신의 힘을 봉인하고 소란을 끝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더욱 더 올라갈 수 있어.”

 

대체 이 바보 같은 말은 어떻게 들어야 잘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켈모리아 씨. 지금 아리엘의 잠재능력을 얕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 애는 이곳으로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마법 무투회까지 나갈 정도로 바보 같은 괴물이라고요. 거기에 마족으로 만들고 이제 모든 것을 다 파괴하는 마신이 된다면, 아주 그냥 세상을 다 날리고 싶다고 하지 그러세요? 정말 켈모리아가 마신이 된 아리엘을 이길 수나 있겠어요?”

 

“괜찮아. 내가 아니면 검은 높새바람이 알아서 해주겠지? 아니면 잡화점의 해결사라고 불리는 카일. 네가 보여줄 수 있잖아? 당연히 지금은 나를 뛰어넘어가야 아리엘을 막을 수 있을 걸?”

 

“엘티노스 때문에! 그딴 업적 때문에! 차원 하나가 박살 날 위험이 있는 그 바보 같은 일을 실행하겠다고!”

 

결국 머리에 분노만 가득 차버린 목소리가 전부 가라앉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티르빙을 귀걸이에서 빼낸 뒤에 롱소드로 변환시키기 시작했다.

 

“켈모리아 씨를 보니 한 가지 말은 맞는 것 같네요.”

 

“어느 거?”

 

“바보는 죽어야 낫는다는 거요!”

 

내 목소리가 주변을 울려 퍼지기 시작했을 때, 이프리트와 윈디. 진명을 말하자면 실피드가 나의 감정에 호응을 해주듯이 거대한 불길과 강한 태풍으로 주변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카일의 고유마법은 무서워. 다른 이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마나를 산화시키는 마법. 그래도 지금 당장은 나에게 위협이 아주 조금은 되는 거 같아. 그래도 그건 잘 알아야 해. 카일은 검사의 길 최상급이 아니라는 것과 최상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마왕이 잠재되어있던 마나를 깨워버리는 바람에 그 기회가 영원히 날아갔다는 것.”

 

“그러면 켈모리아는 검을 쓸 줄 알아요?”

 

“그야 못하지. 엘티노스도 검은 다루지 못했다고 나왔거든.”

 

그런 세심한 것도 따라 하는 건가?

 

“그래도 모든 길은 하나로 이루어져있다는 말을 들은 나는, 검사의 길 최상급 혹은 달인의 경지로 올라가기 전에, 마법사의 길을 모두 돌파한다면 모두 똑같아진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권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에 하나는 육체만 단련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내공심법이라고 불리는 마나연공법을 수행하기도 하지.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하나는 상처가 많고, 다른 하나는 상처가 적은 거요?”

 

“땡! 육체만 단련한 사람은 전사, 내공심법을 단련한 사람은 마법사로 치부할 수 있다는 거야. 내공심법을 연마하면 어느 사이에 속성이 붙지. 빙백신장은 하란국에서 무공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 눈에는 마나를 이용한 마법일 뿐이야. 엘라임의 주인인 해연의 경우도 같은 것이지. 전사의 길을 걷고 있다가 정령사로 변환된 경우지만, 조금이라도 마법이 들어간다면 우리는 전부 마법사 종류로 치부하고 있어.”

 

“느닷없이 그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뭔데요?”

 

켈모리아는 천천히 손을 내뻗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나를 자각한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마법사라는 거야.”

 

-파아앙!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내 앞을 몰아치면서 온 몸을 뒤흔들었다. 마나를 산화시키는 새벽<Daybreak>이 켈모리아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내 마나를 모조리 고갈시켰고, 이프리트와 실피드는 내 마나가 사라지는 바람에 정령계로 날아가버렸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티르빙은 귀걸이 형태로 강제 귀환을 당한 상태에서, 겨우 벽을 등지고 넘어지지 않은 나는, 속이 뒤틀려서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고통을 꾹 눌러 참고 말했다.

 

“제길...! 어떻게!”

 

“당연하지. 나는 마법의 지배자거든. 모든 마법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참된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 마법 무투제에 억지로 널 끌어드린 이유라고 한다면, 너의 마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지. 특이한 체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너의 체질은 주변 마나를 모으는 거야. 사방팔방에 퍼트리고 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터져 나온 마나들이 내 몸을 집어 던지듯 저 멀리 날려버렸다. 유리창이 깨져나가도 상관없을 법한 무시무시한 속도인데, 정작 유리에 부딪쳤을 때는 흠집도 없이 멀쩡했고, 오히려 충격으로 몸을 보호해줄 마나도 없어서 뼈가 으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도서관 안에서 싸우는 그 자체가, 켈모리아의 손바닥에서 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으니, 지금 이곳을 당장 탈출하고 싶어도 긴급귀환까지는 좀 오래 걸린다.

 

“마나가 다 없어진 마법사들은 그저 일반인에 불과하지. 너의 경우는 조금 더 단련한 일반인일까?”

 

“제길!”

 

주변에 있는 연필이라도 거꾸로 잡아서 오른팔로 휘둘렀지만, 켈모리아의 왼팔이 내 팔꿈치를 쳐내고 정권이 내 가슴을 강하게 가격했다. 숨도 못 쉬고 다시 날아가는 내 몸은 처절하게 바닥을 구르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 시간도 주지 않고 켈모리아의 매끈한 다리가 내 얼굴로 날아왔다. 보나마나 마나를 힘껏 담아 파괴력을 올린 돌려차기인데, 마나로 보호받지 않는 팔로 방어하다가 내 오른팔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듣기 좋은 비명이야. 조금 더 울어볼래? 에잇!”

 

팔이 내려간 것과 동시에 얼굴에 다시 날아드는 발차기를 맞고 내 머리가 부디 제대로 목 위에 붙어있길 빌며 눈이 번쩍한 사이에 쓰러져 있는 나를, 광택이 나도록 잘 닦여있는 바닥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팔이 부러져서 어떻게 하지? 우리 카일?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이상 마법사로 익숙해진 카일이라면 대비책이 없을 것 같은데? 그 잘난 탈출은 어떻게 할거지?”

 

“괜히 이사벨 씨가 당신을 보며 분노하는 것이 아니었어. 지금 이렇게 보니까 에밀리의 말도 맞았고! 다만, 그 잘난 탈출은 지금 보여주지.”

 

으름장을 하게 만드는 타 들어가는 듯한 목을 겨우 뱉으며 피까지 쏟아냈다. 입에 비릿한 향이 나고 의식이 점점 깨어나가는 기분. 남은 마나를 사용해서 내 신체를 24시간 전 멀쩡한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유를 너무 부려도 좋지 않죠. 안 그래요?”

 

품속에 있는 가면을 의식하면서 천천히 오른손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결국 제 형태를 갖춘 가면은 눈, 코, 입이 기괴하게 비틀린 형태였고, 나에게 딱 맞는 가면을 쓰면서 천천히 귀환하기 시작했다.

 

“켈모리아!”

 

뒤에 아리엘의 눈망울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이상한 괴한이 침입한 것과 그걸 막는 켈모리아가 멀쩡하게 있는 것뿐이겠지.

 

“내일은 당신의 야망도 끝이야. 이걸로 완벽하게 적으로 돌아섰어. 언젠가는 카멜롯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움직이기 전에, 내가 모든 것을 전부 박살낼 테니 각오해둬.”

 

“그거 기대하고 있을게. 지루했던 쾌락주의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크리스마스인걸?”

 

“켈모리아? 이게 무슨 소리에요? 그리고 저 가면 쓴 남자는 카일 씨 맞죠? 왜 둘이서 싸우고 있는 거에요?”

 

혼란을 겪고 있는 아리엘의 모습을 뒤로하고 잡화점에서 나를 소환하는 소환진이, 내 발밑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다시 반전이 되기 시작하면서 잡화점에서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바닥에 손을 뻗어 지탱하고 순서대로 왼발부터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주인?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지금까지 볼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지고 있노라.”

 

검은 고양이 하나가 내 표정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하얀 가면에 가려져 있으니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내뿜고 있는 분위기가 주변에게 퍼지고 있는 모양.

 

“진짜 적은 켈모리아로 고정하고 지금부터 계획을 짤 겁니다. 그러니 레시아, 시나 모두 잡화점 멤버 전원 오늘 새벽에 소집해주세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들어야 할 것이며, 이 날 이후로 잡화점이 모든 사람의 적이 될 각오까지 해야 할 겁니다. 검은 높새바람 중에 아무나 한 명도 불러주시고요. 아니, 멜로디 씨를 잡화점에 초대하세요.”

 

“주인은 카멜롯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생각인가?”

 

“마스터. 조금 더 냉철한 사고로 진행하길 부탁합니다. 지금의 방식은 마스터가 완전히 악역으로 몰리는 길입니다.”

 

“악역이고 나발이고 상관 없어! 지금 당장 그 광기를 끝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어갈 거야!”

 

“적어도 여신을 설득하는 건 어떠신지요? 지금 마스터가 수정구에 녹화한 것들을 모두 보여주는 겁니다.”

 

 

시나의 말을 듣고 잠깐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그 의견에 동의를 하듯 하얀 올빼미에게 보라는 듯이 내 손 위에 수정구를 올려놓자. 천장에서 날아와 수정구를 낚아채고는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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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바로 다음이 최종화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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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24 - 12

212

 

 

 

로버트 씨의 집에는 검소한 생활의 흔적이 보이는, 나무로 만든 침대. 나무로 만든 의자. 나무로 만든 탁자. 나무로 만든 장식품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아무래도 로버트 씨가 직접 만든듯한 물품들을 감상하면서, 레시아는 탁자위로 올라와 엎드리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나무의 재질은 잡화점에 있는 것과 다르군.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소재로 되어있노라.”

 

“마음이 진정되는 소재는 따로 있나요?”

 

그 이후에 다른 곳을 둘러보면 손님이 올 때를 대비해서 만들고 있는 듯한, 간이용 침대가 내 오른쪽에 있는 문이 열린 방에 고스란히 대기하고 있는 것. 은퇴를 하면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의지가 집으로 구현화 된 줄 알았다. 물론 지금 로버트 씨의 직접은 용병이 아니라 농부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지만, 지금은 가을이고 이번 계절에 추수를 앞뒀으니,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인 만큼 로버트 씨의 활약도 더욱 더 커지겠지.

 

“그나저나...그 간호사 옷을 입고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내 건강상태라면 상당히 양호하네만?”

 

“로버트 씨의 건강상태는커녕, 제가 진단할 수 있는 것은 태클 타이밍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 간호사 복장은 레시아와 시나가 억지로 입혀놓은 거니까. 저의 의지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어쨌든 본론으로 넘어가서...”

 

로버트 씨에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조리 다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더욱 정확하게는 신인류에 대한 정보와, 지금 호문쿨루스가 대륙규모로 섞여서 인간처럼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브센티아에 대한 나의 과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한 후에 호쾌한 웃음이 싹 지워지고 로버트 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모두 마음속에 담아 음미하듯 경청을 해주셨다.

 

“따라서...지금은 본래 전 대륙의 적이었던 유랑극단 중에, 어릿광대와 맹수 조련사가 하멀 씨를 도와 수사를 벌이고 있고, 저는 로버트 씨에게 경고차원으로 와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니. 그저 마음속에 담아놓고만 있다가 만약...로버트 씨 주변에서 난리가 난다면, 그때는 빠르게 잡화점으로 와주시면 되요. 잡화점의 대결계가 작동해도 제가 이렇게 말해줬으니, 로버트 씨도 들여보낼 수 있겠죠.”

 

로버트 씨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내가 은퇴했다고 해서 너무 얕보는 것 아닌가? 만약 호문쿨루스들이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는 것을 지켜본다면, 그 자리에서 내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야. 물론 마을 주민 전체가 호문쿨루스라면 그건 사정이 좀 달라지겠지만...”

 

“뭐...그건 뜻대로 하세요. 저는 만일의 경우 피난처를 알려드린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뱀 조종자와 은빛 송곳이 없이도 괜찮으시겠어요?”

 

뱀 조종자와 은빛 송곳은 티르빙이 멋대로 집어삼켜버린 로버트 씨의 무기들이지만, 은빛 송곳만큼은 로버트 씨를 나타낼 수 있는 무기 중 하나다. 은빛 송곳니라고 불렸으니 지금은 이가 빠진 용병이라 생각했다.

 

“나야 괜찮네. 적어도 이 튼튼한 몸과 7가지의 무기가 함께 하고 있으니까.”

 

60세 중반을 달리시는 외모인데도 몸이 튼튼하시니 부럽군요. 하긴...아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다급하게 몸을 가리고 밖으로 뛰쳐나온 것을 봤었지...

 

그 순간은 내 눈이 정말로 잘못 되길 빌었다.

이런 일은 없다고...

 

“오랜만에 손님이 왔는데 빈손으로 돌려보내면 쓰나! 자 여기 음료일세! 선선한 가을이라고 할지라도 낮에는 상당히 더웠을 텐데 들이키게.”

 

“음료라...”

 

나는 컵에 담겨있는 음료의 색상을 봤다. 옅은 분홍색의 액체라면 무슨 과일이 들어간 것일까? 로버트 씨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듯이 멍하니 있다가, 내가 컵을 집으려는 찰나에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 앞에 있는 컵을 회수해버렸다.

 

이거 뭐 줄려고 하다가 뺏는 것도 아니고...

 

“아. 미안하군. 자네에게 줄 것이 이게 아니었네.”

 

“...그럼 그 컵에 담겨있는 게 뭔데요?”

 

“별거 아니네. 좀 더 정상적인 음료로 줬어야 했는데, 실수로 어제 나와 같이 잤던 여자에게 먹인 음료를 줄뻔했군.”

 

...로버트 씨에게는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뭐...술이나...그런 거겠지.

 

“어디 보자...소다. 오렌지 주스. 보라색 음료...서니 D! 예!”

 

...지금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심정이 얼마나 착잡했는지 그 고통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서니 D인지 뭔지 하는 음료를 보아하니, 오렌지 주스와 흡사하게 생기긴 했는데. 어째서 로버트 씨는 서니 D인지 뭔지에 열광을 했을까?

 

아무튼 음료로 목을 축이고 나서 다른 대화를 했다. 다른 대화라고 해도 일상에 대한 대화일 뿐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메뚜기 때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검 하나를 들고 나와서 메뚜기를 모조리 쓸어버리고, 밀을 지켜냈다는 그런 무용담이 생각났다. 애초에 밀은 하나도 베지 않고 날아다니는 메뚜기 때를 전멸시킬 정도면, 아직까지 실력은 나보다 높은 수준이 아닐까? 로버트 씨의 마중을 받고 나온 나와 레시아, 시나는 이브센티아에 더욱 깊숙하게 들어갔다. 물론 여전히 따가운 남녀의 시선이 버티기는 힘들지만...산 위에서 등산을 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았다.

 

과거와 겹쳐지는 모습도 있고 겹쳐지지 않는 모습도 서서히 보였다.

 

“주인이 전에 의뢰를 했을 무렵. 저 위로 그냥 절벽을 올라가지 않았는가?”

 

“그때는 빨리 의뢰를 해결하고 싶었고, 장비도 충분하게 가져왔을 때니까요. 지금은 이런 간호사 복장으로 대체 뭘 하란 소리에요? 간호사 복은 허공을 뛰어오를 수 있는 마법의 아이템이 아니라고요? 물론 마법부여가 되었다면 가능했겠지만...”

 

시나는 왼쪽 어깨에서 말을 걸어왔다.

 

“마스터. 그러면 맨 위에는 사람이 살았습니까? 건축물로 보이는 구조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시나의 탐지능력은 대체 어디까지 인지...빛이 닿는 곳이라면 전부 파악이 가능한 걸까? 말 그대로 지금은 태양빛에 가려진 구름이 서서히 지나가면서, 산 전역에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살았었지. 분명 아랑을 섬겼다고 했는데, 엘티노스에게 잘못 덤빈 아랑이 어디론가 봉인되고 나서부터, 꽤나 힘들었던 시기를 넘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이고...”

 

끝까지 올라가는 집념의 등산코스를 마친 나는, 확실히 보이는 거대하지 않고, 조그마한 목재로 건축된 절을 볼 수 있었다. 사당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속으로 묵념을 하며, 천천히 내가 쌓아놨던 돌무덤이 있는가 확인을 하려고 했다.

 

이브센티아에 있던 그 수많은 돌무덤은 분명히 마을을 다시 지을 때 치웠어도, 이런 산속 깊숙하게...그리고 비밀리에 있는 돌무덤까지는 치우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길을 잘못 들었나? 대략 이런 경치가 보이는 위치에서 돌무덤을 쌓아놨을 텐데?”

 

아무리 약 2년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같은 장소에 오면 저절로 기억이 떠오르는 법.

 

“비바람에 휩쓸려서 사라진 것이 아닌가? 사람은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세상이 변한다는 소리가 있노라. 이미 2년이나 지난 세월인데 같은 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렇긴 하죠?”

 

이미 2년동안 수많은 비바람과 이변이 휩쓸고 간 세월에, 그런 돌무덤이 튼튼하게 버텨줄 일은 없다. 하이힐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발도 빨리 쉬게 해줄 겸. 슬슬 돌아가려던 찰나. 옆에 있는 시나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마스터. 저 건물 안에서 생명체가 감지됩니다.”

 

“생명체? 어디 팬더라도 살고 있나?”

 

어쩌면 그 집 안에 있는 것이 동물일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빨리 내쫓으려고 천천히 다가갔다.

 

-끼이익.

 

앞으로 10M정도 남은 장소에서 문뜩 내 발은 멈췄다. 레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나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움직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거기! 당신! 여기가 어디라고 막 들어오는 거에요!”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머릿속을 헤집어서 억지로 꺼내고,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붉은 머리핀이 그날의 참상을 다시 각인 시켰다.

 

짙은 검은 머리카락에 흰색이 바탕이 되어있는 무녀.

붉은 눈을 하고 있는 모습이야 말로...

 

“아. 이런. 아무도 안 사는 줄 알고. 죄송합니다. 금방 나갈게요.”

 

지금 여기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으니, 발바닥이 아프다고 불이 나는 것도 잊어버린 체, 미친 듯이 뛰어가서 사당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재회의 기쁨이 아니라 이건 확실히...

 

“주인과 같이 있어서 알 수 있는 것은...확실히 호문쿨루스가 존재하긴 하는 군. 이브센티아라는 마을에 말이지.”

 

레시아는 담담하게 오른쪽 어깨 위에서,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나를 신경 쓰지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게다가 마음속은 세척이 되어있는 상태에서, 저렇게 반응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호문쿨루스인 것은 확정이니라. 분명 아직까지 대기상태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지금은 자신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믿는 거겠지.”

 

“제길...왜 하필...루비아 씨가 저렇게 살아있어야 하냐고요?”

 

“짐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아가도록 하지.”

 

“아뇨. 일단 평상복을 입고 다시 만나봐야겠어요. 절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레시아의 무게가 느닷없이 늘어나는 것이 느껴지자 마자, 휘청거리던 내 몸은 이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크학! 아프잖아요!”

 

“지금 주인의 상태로는 절대로 그 무녀와 만나게 둘 수는 없노라. 지금 주인의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나 알고 말하는 것인가?”

 

시나가 내 어깨에서 내려와 얼굴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마스터. 많이 창백하십니다. 거대한 정신적인 데미지가 우려될 수 있으니, 우선 잡화점으로 돌아가서 쉬는 것을 권장합니다.”

 

***

 

월식의 포식.

지워버리고 싶은 내 흑역사.

거기서 분명 월식을 봉인하던 무녀, 루비아 씨는 내 손으로 죽였었다.

당시에 월식의 조종을 받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 감각은 손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신랑...”

 

루시피나가 내 모습을 보고는 매우 걱정스러운 나머지,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접어들게 되면서, 저 멀리 달려가서는 “어떻게 해요! 저러다가 신랑이 굶어 죽게 생겼어요!” 라고 레시아에게 따지고 있었다. 그에 레시아는 “아니...아직 저녁시간대가 아니기에 저녁을 먹지 않는 것뿐이지 않는가? 그대는 침착함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노라.”라며 타일렀다.

 

내가 충격을 먹어도 우선 배가 고프면 식사가 먼저이고, 굶으면서 실연에 빠지거나 그런 일은 없다.

 

다만...

생각이 좀 많이 하게 되는 것뿐.

 

어째서 루비아 씨가 호문쿨루스로 되살아 난...아니 솔직히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것은...불가능 하지 않을까? 이건 마치 사람을 복제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호문쿨루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다...이런 말인가?”

 

파내면 파낼수록 더욱 복잡해지는 이 바보 같은 사건...

마리아는 저 멀리 뒤에서 “그렇군. 지금 카일에게 필요한 것은 수분이니라! 어디보자...소다. 오렌지 주스. 보라색 음료...서니 D! 예!”라는 말을...

 

“그 서니 D는 요즘 유행하는 음료에요? 어째서 우리 집에도 있는 거야!”

 

“덤으로 20%가 주스인 쿨에이드도 유행이니라. 카일이여.”

 

“20%가 주스인 것에 열광하지 말라고!”

 

마리아에게 태클을 걸고 있는 동안, 레시아는 천천히 다가와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인도 꽤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군? 분명 호문쿨루스의 제조방법은 죽은 자를 살리거나 할 수 없는데. 루비아인가 하는 그 무녀가 있는 모습을 보면...지금 그자는 죽은 사람의 표본을 이용해서, 호문쿨루스를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시아의 말을 끝으로...

다시 한번 찾아가기로 결심을 했고, 나는 레시아에게 고개를 돌리며 빠르게 답을 했다.

 

“그 전에. 기프트피어스 내놓으시죠? 지금까지 간호사 복장으로 입혀놓는 것은 무슨 심보에요!”

 

“...호에에에에~~??”

 

“모르는 척 하지마! 당장 내놔!”

 

 

물론...지금은 늦었으니 잡화점을 운영하고, 일반적인 복장을 입은 뒤에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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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 가면 다크소울3를 지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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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찾아 떠나는 행복한 일상 속, 소소한 생각들

스물 다섯번째 생각_25

나는 굉장히 치열하게 살아왔다. 
수많은 아픔들과, 상처들 속에서 나는 꿋꿋하게 버텨냈다. 
아픔과 상처들을 받으면서 배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나하나 전부 나열하기엔 많은 경험들이지만, 그래도 내가 성장했다는 사실 하나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작년 말부터 올해 중반까지 정말 최악의 나날이었다. 
생각하기도 싫고, 끔찍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다.

그냥 내 삶의 일부분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 깊숙한 서랍속에 넣어두기로 했다.

.

.

.

우리 할머니는, 굉장히 정정하셨고, 스마트하신 분이셨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할머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편이다.

맞벌이 때문에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나를 키워주셨고, 나의 친구였으며 영원할 줄 알았던 할머니의 큰 사랑.

 

늘 항상 햇빛이 들어오는 발코니에 앉아 성경책을 읽으셨고, 소일거리들을 하시던 할머니의 뒷모습..
허리가 굽어 등이 늘 동그래보였지만, 아담한 체구에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던 우리 할머니..

그렇게 예쁘고 아름답던 우리 할머니가
무시무시한 병, 기억이 사라지는 병에 걸리셨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알아보셨던 우리 할머니.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도 나를 기억해주셨던 우리 할머니.

 

나는 할머니의 영원한 아기였었나?
기억을 잃고 아무도 못 알아보면서도 기억 한 곳엔 '우리 아기'가 남아있었을까?

할머니에게 난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아기 천사였나보다. 
늘 항상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잊지 않는다. 
할머니의 큰 사랑으로 나는 마음 예쁘게 살아갈 줄 알게 되었으니까.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소중한 글귀.

기억하기 싫은 기억들도 언젠가는 다 희미해져 갈 것이니, 
지금 기억할 수 있을 때 마음껏 기억해두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갔으면...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재미있게 살아가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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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곱게 펴서 내보이다

05_돌아온 사람

집안에서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게 이상하리만치 어색했다.

내가 끓이지 않은 된장찌개도, 통이 아닌 접시에 꺼내진 김치도 이상했다

지금 이 시간은 모든것이 이상하다

 

아니야

먹어야지, 그래야 살겠지

 

젓가락질을 하는데 시선이 따라 붙는다.

애써 무시하고 밥을 먹는데 눈에 아른거리는 인영이 덜덜 떠는게 느껴졌다.

 

난 울지 않을 거다. 울어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잘못한게 아니야

 

"체하겠어요"

"....."

 

대답도 못할 정도로 울먹이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난 결국 받아드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이 사람을.....

 

"식사.... 안하세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다.

제자리...... 어떤것이 맞는 자리인걸까

적당한 젓가락질 소리만 작은 집안에 울렸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고 14살,

교복을 맞춘 다음날 사라졌던 엄마는

내가 직장을 다니게 되고 21살이 되었을 때 집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돌아왔다.

 

크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바빠진 회사 일로 9시,10시 퇴근이 반복되었고 집에 와선 쓰러져 자기 바빴다.

엄마도 일을 하고있는지 늦게서야 집에 들어왔고,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려웠다.

회사일은 지치고 집에선 속이 답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 흘렸던 엄마는

정말 나를 버리고 떠난것이 맞았다.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지만 이건 확신이 섰다.

 

그래, 정말 버린거였구나

 

차라리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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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내 행복은 있지...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7.31. 수 비 옴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예슬, 우람  - 슬이의 친구

7월도 마지막이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는 슬이에게 견디다 못해 엄마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요즈음엔 엄마가 머리맡에 머리띠를 풀어놓고 잠이 들면 슬이는 일어나서 머리띠를 자기 머리에 꽂아도 보고 올려놓기도 하고 놀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엄마 머리도 잡아당기고 얼굴도 꼬집고 해서 엄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단다.

 

슬이가 머리띠를 가지고 놀다가 슬이 머리에 꽂으면 엄마가

'슬이 정말 예쁘구나' 해주면 좋아서 인지 아니면 쑥스러워서인지 슬인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한다.

 

오늘은 금요예배를 예슬이네 집에서 하는 날이라 슬이를 데리고 갔다. 우람이도 놀러 와서 셋은 같이 놀았다. 슬이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예슬이를 때리려 든다. 우유병, 심지어는 음료수 캔으로도 마구 때리려들어 엄마가 슬이를 혼내 주었단다. 처음엔 예슬이가 자꾸 슬이를 때려 예슬이를 혼내 주었더니 예슬이는 때리지 않더구나. 슬이는 자꾸 때리려 들어 엄마는 걱정이다.

 

집에 오는 길에 슬이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계속 엄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코도 맞대고 깔깔 웃으면서 긴 거리를 즐겁게 웃으면서 왔단다.

 

슬이가 다 큰 것 같아 엄만 무척 행복했다.

2016.06.18 눅눅한 더운 날 제가 쓴 글 입니다.

 

마을버스

여름 치고는 선선하게 느껴지는 구름 한 점 없는 평평한 날씨였다. 주말에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엘 내려가기로 했다. 집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그렇게 고속버스를 1시간 40분 정도를 타고 '증평'에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터미널은 예상외로 늘 북적인다. 시멘트가 벗겨져 비듬처럼 떨어지는 벽에 남아있는 온갖 낙서들. 초록색 등박이가 없는 의자가 줄지어 있고, 안에는 매점 두 개가 양쪽으로 포진되어 있는 곳. 이곳이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골 터미널이다. 그렇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터미널을 지나서 우체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탄다.

 

내가 좋아하는 마을버스는 굉장히 특이하다. 일반 시내버스와 모양은 같으나, 버스를 탈 때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타는 게 특징이다. 그러곤 아무도 돈을 내지 않고 앉아있는다.

 

대학생 때 서울 친구가 우리 집엘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이 마을버스를 같이 탔었다.

"왜 돈을 안내?"

그 친구의 놀란 표정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이 버스는 공짜야."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친구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내 말을 믿었다.

 

이 마을버스는 내릴 때 돈을 낸다. 운전을 해주는 아저씨가 일일이 손님을 기억해 거리마다 요금을 다르게 받는 것도 신기하지만, 다리 아픈 할매들의 큰 짐이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올라오며 그 짐들을 먼저 탄 사람들이 들어준다. 이 버스는 할머니들이 자리에 다 앉은 뒤에나 출발을 한다.

 

나는 이번에도 벨도 누르지 않고 버스아저씨에게

"저기서 내려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버스는 근처 버스정류장에 선다. 그제야 버스비를 결제하고는,

 

서울버스를 탔을 때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 "감사합니다."를 내리기 직전 버스아저씨에게 크게 말할 때 그때, 이 마을버스가 좋다.

엄마가 있는 집에 다 왔다는 설렘과 함께 무언가 뭉근한 시골 정이 이 버스를 내릴 때 내게 묻어나는 것 같아서.

 

▲우리집 담벼락에 핀 능소화

엄마의 밥 그리고 당면 김치찌개

 

"엄마 또 삼겹살이야?"

삼겹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지만 매번 저녁 삼겹살은 쫌 그렇다.

아침은 패스. 점심은 배달. 저녁은 삼겹살인 우리 집은.

참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식단이 쫌 그렇다.

 

맛있는 집밥이 먹고 싶어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요리는 입맛만 까탈스러워지고 엄마를 닮은 손맛 때문인지 일찍 요리사의 꿈을 접었다. 물론 요리를 배운 경험 때문에 요리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서도.

 

유일하게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열광하는 건 엄마의 밥과 당면 김치찌개다.

엄마의 밥은 말 그대로

흰 쌀밥.

반찬은 사와도 밥만은 꼭 금방 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울 아빠 덕에 엄마는 다른 건 안 해도 밥은 꼭 압력밥솥에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그 흔한 일반 밥솥 하나 없다.

 

 

압력밥솥에 물 맞추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일반 자동 밥솥은 물 넣는 선이 그어져 있어 그대로 넣고 취사만 누르면 되지만 압력밥솥은 일반 밥솥보다 물을 더 적게 넣어야 하고, 중간에 불 조절을 해줘야 하며, 불을 끄고 나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잘못하면 밑바닥이 타기도 쉽다.

 

아빠는 약간 진밥을 좋아하고 나는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기에 엄마는 일부러 압력밥솥에 들어가는 쌀을 기울여 놓는다. (한쪽은 높게 한쪽은 낮게) 그러면 높은 쪽 쌀은 고슬고슬해지고 낮은 쪽 쌀은 물이 더 많아 촉촉해진다. 입맛도 다른 아빠와 나에게 맞추기 위해 엄마도 여간 신경을 쓰는 거다.

 

두터운 돼지고기를 달달-볶아서 잘 익은 김치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마지막엔 다른 집에선 잘 넣지 않는 '당면'을 넣는 김치찌개. 팅팅 불어 김치찌개의 깊은 맛이 고대로 배어있는 당면에 식감 좋은 고기와 얼큰한 국물에 치익치익-압력밥솥이 만든 고소한 윤기도는 밥을 먹으면 그냥 게임 끝이다. 밥 한 공기 뚝딱. 그러고 나서 과일이랑 아빠가 손수 만든 막걸리를 한잔 하고 나면

아-! 있는 그 자리가 행복한 삶이란, 이런 거구나 한다.

작가 say: 수정본 입니다 :) 읽었던 분도 다시 읽어주시면... (굽신 굽신) 오늘도 너무... 덥네요... 시원한 회사가 짱인 것 같아요.... 전기료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집에서 에어컨을 트는게 너무 무섭네요.... ㅠㅠ 모두~ 오늘, 있는 자리가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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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17. The Star

17. The Star

 

등교하기 전 이른 아침, 평소라면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혀 있을 카페가 불이 켜져 있었다. 입구에 라는 작은 명패가 달린 이 카페는 평소에 친구들과 심심풀이 삼아 타로 점을 보러오는 곳이다. 최근에는 시험기간이라서 자주 오지 못했는데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들어가 볼까?’

 

그렇지 않아도 시험이 끝나면 와볼까 싶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는 게 아닌 나 혼자서.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살짝 열리고 낯선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카페에서 주로 타로 점을 봐주는 언니도 아니었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해주는 오빠도 아니었다.

 

“들어올래?”

 

“네? 저요?”

 

얼떨결에 되묻는 나를 보며 그는 싱긋- 웃었다. 귀공자 같은 외모에 그런 살인적인 미소라니, 뺨이 화끈거린다. 이건 반칙이다. 그러면서도 발은 내 대답을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카페로 향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와 그를 따라서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최현, 여기 오너야.”

 

“아, 네. 네?”

 

엉겁결에 대답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은 미남이 카페 사장이라니, 소문으로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해야겠다. 그는 조용히 미소하며 카드를 골고루 섞었다.

 

* 점을 보기 전 카드를 골고루 섞는 걸 Shuffle이라고 한다.

 

‘언니는 주면서 직접 섞으라고 하던데. 조금 다르네.’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들었지만, 조금 의외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일렬로 쭉- 펼쳐놓고 말했다.

 

“딱 3장만 골라봐.”

 

“음-.”

 

나는 테이블 위에 일렬로 펼쳐져 있는 78장의 카드를 노려보았다. 마치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3장의 카드를 골라서 빈자리로 빼내었다. 그는 아직 뒷장을 보이고 있는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좌우는 상관없지만, 상하는 신중하게 정해서 뒤집어봐.”

 

가장 왼쪽에 있는 카드를 집어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드러난 카드는 [01. 마법사] 정방향이다. 다음은 위에서 아래로, 마지막 카드는 다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각각 [17. 별]과 [13. 죽음] 모두 정방향이었다. 마지막에 나온 카드에 시선을 고정하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저 카드가 모두 나쁜 건 아니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찝찝했다. 해골이 그려진 우중충한 그림이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거 같다. 눈동자를 굴려 힐긋 바라보았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며 그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을 속에 숨겨두고 있구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 알았을까? 부모님에게도 친오빠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속에만 숨겨두고 있었다. 놀란 내 눈을 보며 그는 마법사 카드를 가리켰다.

 

“마법사의 카드는 지식이나 지혜와 관련이 있지만, 속임수를 쓴다는 점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도 나오지. 반면, 지금은 또 다른 의미로 숨겨진, 잠재된 능력을 뜻하기도 해.”

 

“잠재된 능력이요?”

 

그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별이 반짝이고 있는 카드를 짚었다.

 

“네가 희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곱고 남자다운 손가락이 짚은 카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고 싶은 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성적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고 우선이다. 그 이유를 알고 있고 납득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겁나니?”

 

그림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얘기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친구들은,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지,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마법사 카드로 옮겨갔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의 말에 울적한 말이 조금 가라앉아 눈을 들어 작게 되물었다.

 

“정말요?”

 

“그럼. 다만...”

 

그는 가장 마지막, 해골이 그려진 카드를 짚었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성장하려면 이 고비를 반드시 넘겨야 해.”

 

“어떻게요?”

 

그는 팔을 테이블에 올려서 기대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상냥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숨기지 말고 알려야지. 설령 누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며 설득해야 해.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워나가야겠지.”

 

“꼭, 알려야 돼요?”

 

나를 마주한 미소가 한층 더 부드러워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배우기 위해서라도 알릴 필요가 있어. 너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나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

 

카드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보았다. 잿빛 머리의 노련해 보이는 마법사와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과 깃발과 방패를 든 해골, 필요한 건 용기와 노력과 배움이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렸다. 울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할 수 있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냐. 얼른 가 봐.”

 

그는 유리창 밖을 눈짓했다. 낯익은 여고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와 달려갔다.

 

“얘들아! 같이 가!”

 

“어? 너 왜 저기서 나와?”

 

“아침부터 커피 마셨어?”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 앞으로 내 운을 봤어.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씩- 웃으며 내가 꺼낸 말에 등굣길 내내 놀라기도 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은 금세 이런저런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나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은 달랐다. 현재 고3, 수능을 앞 둔 수험생이 갑자기 진로를 바꾼 것에 선생님은 크게 걱정하셨다. 심지어 엄마는 화를 내기도 하셨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왜 탄탄한 진로를 두고 그런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 거냐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된통 꾸지람도 들었다.

 

그럴 때면 힘이 되어주는 건 친구들이었다. 부모님도 언젠가는 이해하실 거라고,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마다 용기를 내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내 끈질긴 설득에 먼저 마음을 움직여주신 건 선생님이셨다.

 

“현재 네가 원하는 학과로 안전하게 지망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

 

선생님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길을 택할 수 있게 안내를 해주셨고,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걸 눈치 챈 오빠와 아빠가 엄마를 설득해주셨다. 덕분에 마지못해 내 선택을 인정해주셨지만, 시간이 지나서 수능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도 받으며 열심인 모습에 엄마도 천천히 나를 인정해주셨다.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대 중반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리를 잡고, 인정도 받으며 소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날 아침의 일이 떠오른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날 이후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할 때까지, 다시 보지 못했다. 소문은 여전히 무성하게 나 있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며 창문 너머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만, 확실하게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에도 미소만은 뚜렷하다는 느낌에 쿡- 하고 작게 웃었다. 동쪽 하늘에 새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 태양을 마주보며 눈이 다 감길 만큼 미소했다.

 

오늘 하루도 시작이다. 반짝이며 빛나는 꿈을 위해 달려갈 하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