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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11 - 6

89

 

 

 

루나가 온지 2일 정도 더 지났을 무렵,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세상에 고민이 단 하나도 없다는 표정으로 밤에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열심히 노래와 춤을 추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물론 마리아나 루시피나 씨도 의상을 맞춰서 안무 연습과 노래연습을 한 성과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몬스터는 물론이고 사람들까지 자주 오게 될 정도로, 제법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쯤.

 

북적북적한 잡화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는 레시아와, 바쁜 와중에도 정신 차리며 계산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앞에 정면거울로 통해 보고 있었다. 하지만 넋을 놓고 있다가는 계산에 실수가 나기 쉬우니까, 일단 40실버를 거슬러주고 서술을 시작하도록 하자.

 

“여기 40실버 받으세요.”

 

“이번 잡화점 주인은 살이 마른 것 같아서 먹을게 없어 보이는구먼...”

 

잠깐 먹을게 없어 보인다고? 그보다 전 잡화점 주인은 광기에 미쳐서 감옥에 있을 텐데? 무슨 소름 끼치는 말을 하는 거냐? 설마 잡화점 주인들 중에 하나를 그대로 잡아먹어서 행방불명이 된 원인인가?

 

아무튼 내가 잘못 들었나 생각되어 “네?”라고 다시 되묻자, “호호호...! 농담이여. 농담.”이라고 웃으면서 수세미를 사가는 기묘한 할머니가, 잡화점 밖에 나가는 것을 본 후에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만일 혼자서 운영을 했다면, 식욕이 강한 몬스터에게 잡아 먹히는 것은 인간이 되겠지. 어째서 잡화점 규칙에 사역마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적용이 된다.

 

몸은 알아서 지키라는 것.

지금 기묘한 할머니의 사례를 통해 오늘도 하나 배워갔다.

애초에 잡화점에는 쓸모 있는 기능은 많은데, 왜 하필 침입자를 요격하는 기능이 없는지 이해를 할 수 없을 때쯤. 잡화점에 온 손님은 밤 11시인데도 불구하고 60명이 다녀왔다. 이 정도면 카페로 개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잡화점에 손님을 받은 체, 물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지도...

 

그러면 그 빌어먹게 짝이 없는 여장모델을 하지 않아도 된다.

루니아 씨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이득이자 목표인 나에게는 어느덧 이룰 수 있는 소망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쁘고 바쁘게 살아가는 것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레이비스 씨의 조언. 레이비스 씨는 애초에 루나에 대한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으며, 루나가 왔다는 달에 무슨 안 좋은 일이 터진 것까지 알아차린 것을 보면, 괜히 수석 수사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나는 지금도 말해주지 않았다. 가끔가다 불안한 눈빛으로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있지만, 처음에 만났을 때보다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아마 슬슬 같이 살면서 많이 편해졌다는 의미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비밀을 캐내지 않을까? 혹은 그 비밀을 알면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그런 초조한 마음이 느껴지는 건 변하지 않았다.

 

슬슬 오늘 알아낼까? 아니면 조금 더 입을 열기를 기다릴까?

계속해서 선택지를 이리저리 반복하는 것도, 이제 슬슬 지칠 무렵에, 내가 또 루나에게 질문을 해서 울리게 된다면,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3인방에게 멍석으로 말려서 구타를 맞아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마냥 기다리고 기다릴 수 밖에.

 

그래도 저렇게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레이비스 씨의 조언을 왠지 머리에 잊고 싶...

 

“감히 내 조언을 머릿속에서 잊으려고? 음...곤란한 걸?”

 

-철컥!

 

순식간에 회상 속의 레이비스 씨가 권총으로 겨누자, 나는 레이비스 씨의 조언을 다시 각인 시키며, 머릿속의 회상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무서운 인간...남의 생각 속에서도 나와서 위협을 가할 줄이야. 이쯤 되면 정말 레이비스 씨가 어째서 인간으로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째서 마왕으로 등극하지 않는 지. 이것도 시간이 나면 아이니스 집에서 파는 육포를 분석하면서 고찰을 해보도록 하자.

 

“오늘 루나는 정말로 힘냈어요!”

 

루나의 분홍빛의 토끼 귀는 위 아래로 흔들거렸다. 마치 효과음을 넣고 싶다면, ‘뿅뿅!’이런 효과음이 있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는 글이라 효과음은 넣을 수가 없고, 그래도 많이 기쁜지 귀엽게 낮은 점프를 반복하면서, 귀도 따라 같이 움직였다. 루나 덕에 매출이 늘어난 셈이 되니까, 루나도 이 잡화점에 살면서 1인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셈. 따라서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듯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서, 그 기대에 부흥을 하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

 

“어디서 루나링의 머리를!”

 

-파앙!

 

지 못했다. 검은 마탄이 나에게 날아온 것으로 봐선, 마리아가 오늘도 검은 성배를 꺼내서 마탄을 내 쪽에다가 발포를 한 것이 틀림없지. 내가 루나와 가까이만 있어도 라이더 킥...아니 레시아 킥을 날리는가 하면, 루시피나 씨는 오히려 자신이 더 달라붙으려고 루나에게 정중하게 비켜달라고 하며, 마리아는 그냥 ‘발로 차! 싸커!’라는 노래 구절이 생각날 정도로 힘차게 차거나, 검은 성배를 소환해서 마탄을 쏴버린다.

 

덤으로 마리아가 발로 차는 것 또한, 상당량의 마기로 강화된 발차기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보호마법<Protection>과 마법방패<Magic Shield>의 전개속도가 0.3초 안으로 모두 전개할 정도. 물론 그렇게 전개를 빠르게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전개를 해도 아픈 것은 매 한가지다.

 

이번에도 마법방패로 막았으나,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송곳처럼 뚫어버리는 마탄을 막지 못한 체, 오늘도 카운터에 쓰러져있는 나는 한숨을 쉬며 천천히 일어섰다.

 

“마리아...제발 쏘지 말라고 했잖아요...”

 

“루나링은 루나링이지만, 첩도 힘을 냈는데 어째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는가!”

 

“루나 다음에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면 쓰다듬어 줬을 거에요! 그보다 너무 급하게 쏘잖아요! 그 드릴같이 생긴 마탄은 또 뭡니까!”

 

“아 그거 ‘나노 드릴 브레이커’라는 기술이다.”

 

“하하. 기가 드릴 브레이커는 상당히 크니까, 나노는 작다? 그거 완전 기술 표절 비슷한 거 아니에요?”

 

“벤처 마킹이다. 아웃 소싱이다.”

 

“말은 잘해요...아무튼 다 쓰다듬어 드릴께요. 그러니까 다음부터 그 기묘한 마탄 날려서 제가 다시 일어나게 하지 말아주세요.”

 

결국 루나와 마리아. 그리도 뒤늦게 정리하고 온 루시피나 씨까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레시아는 항상 쓰다듬고 있으니까 불필요 한 듯, 가만히 카운터 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애초에 밖에서 선전하는 것은 몇 시 까지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말을 했기에, 오늘도 30분만 공연을 하고 끝이 났다.

 

물론, 몬스터들과 인간이 섞여서 루나의 노래와 춤을 보고 난 뒤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이 깜짝이야! 이게 뭐야!”라는 듯한 소리를 지르더니, 그냥 없던 일로 묵언의 약속이라도 하듯 아무 소란 없이 돌아간다고...

 

이러다 몬스터와 인간이 공존이라도 하는 시대가 오기라도 하면, 릴리 기사단은 해체가 되는 걸까? 그것도 나름대로 기대해보도록 하...안 돼. 그러면 루니아 씨가 하루에 한 번씩 찾아와서 나를 괴롭히게 될 꺼야.

 

부디 릴리 기사단은 이 행성이 망할 때까지 영원하기를...

 

그래도 아직까지 시간은 남아있고, 정말 루나의 효과가 대단하다고 느낀 중에 하나는, 루나가 공연을 마치자마자 잡화점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어진다. 조만간 이 잡화점이 카페로 개조하기 전에, 콘서트 장으로 개조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저도 같이 옆에서 도와드릴까요?”

 

루나는 멀뚱멀뚱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새벽을 보내야 하는 내 입장에서 말동무가 생기는 것이 정말 고맙지만, 그래도 괜찮은 건지 물어봐야, 나중에 날아온 그 나노 드릴 뭐시기를 안 맞지.

 

“공연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요! 루나는 끄덕 없어요!”

 

두 손에 불끈 주먹을 쥐어, 자신은 아직까지 생생하다고 귀엽게 어필을 했다. 뭐 그렇다면 본인이 좋다고 하니까 나는 허락을 해야지.

 

“알았어. 그보다 레시아 어디가요?”

 

레시아가 느닷없이 자리를 비켜줬다.

아무래도 레시아는

 

“잠깐 마계에서 할 일이 있기에 짐은 이만...”

 

이라고 변명을 말하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주인. 이제 슬슬 루나링의 비밀을 알아내도록 하라. 이쯤 되면 슬슬 괜찮을 지도 모르니까.]

 

[레시아도 루나가 뭘 숨기는 건지 눈치를 채신 건가요?]

 

[짐은 그 잘난 마왕이다. 아무리 루나링이라고 해도, 지금의 루나링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숨기고 있는 것쯤은 처음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허나, 우리 셋보다는 주인을 더욱 신뢰를 하고 있으니, 이 일은 주인에게 맡기도록 하마.]

 

그렇게 레시아는 3층으로 올라가서 당분간 나타나지 않았고, 나와 루나 둘만 남은 체, 루시피나 씨와 마리아는 자러 들어갔다.

 

그나저나 이 거북한 분위기는 뭐지?

레시아와 같이 있는 것이 많이 익숙해서 그런가?

 

“저기...? 허브티 끓일까요?”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네! 주인님!”

 

...그 주인님이라는 단어 정말 익숙하지 않아서 다시 소름이 오를 때, 루나는 허브티를 끓이면서 아까 밖에서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리듬도 박자도 신세대라서 그런가? 중독성이 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슬슬 나는 루나를 떠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루나? 달은 어떤 곳이야?”

 

“예? 어째서? 설마 주인님도 달에 이주할 마음이 생기셨나요? 그거 정말 다행이에요. 올해로 시집을 못 가는 줄 알았는데! 아 참! 저와 주인님은 주종관계였죠. 그래요 메이드는 절대로 주인님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에요. 아아! 이런 비극적인 운명을...”

 

“멈춰! 어디서 혼자서 애증극이야?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달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봤지, 내가 거기에 이주하면서 너와 같이 결혼하고 살 것은 아니라고!”

 

여전히 몇 단계를 생각하는 루나의 머릿속이 궁금하던 찰나, 루나는 토끼 귀가 축 쳐지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이걸 말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듯한 고민을 하는 표정으로 말 없이 서 있었다.

 

포트가 삐이이! 하고 김을 내뿜으며 소리를 지르자, 루나는 잠깐 멍해있던 의식을 되찾았고, 그 이후에 허브티와 빈 찻잔을 두 개를 가져와서, 카운터에 있는 내 앞에 하나를 살며시 놓고 허브티를 따라주었다.

 

“제가 있던 세계가 궁금하시군요...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곳은 절대 아니랍니다.”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루나의 말에 허브티가 식어가는 착각을 느끼며, 계속해서 루나의 말을 듣기로 했다.

 

“달에는 저와 같은 달 토끼들이 아이돌을 꿈꿔요. 물론 아이돌 밖에 길이 없기 때문에 직업은 한정적이고, 달에서 규율을 어기면 영원히 절구질을 하여 떡을 만들어야 하는 형벌에 처하죠. 게다가 저희들은 수명도 길답니다. 사실 제가 주인님보다 몇 세기는 더 살았을 지도 모르죠.”

 

달 토끼들은 수명이 많고, 형벌을 내린다는 시점에서 법과 그 위에 통솔자가 있다는 것을 추측했다.

 

“저는 달 토끼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까지 알아버렸죠. 저희들을 관리하는 관리원의 정체를...”

 

관리원이라고 알 수 없는 것에 루나의 찻잔에 있던 허브티는 파문을 그리며 떨었다.

 

“관리원의 정체를 아는 순간, 저희들은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따라서 저는 죽기 싫은 나머지, 마침 만월의 연회를 열어야 하기 위해 열려있던 공간이동장치로 도망갔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제가 자주 온 곳이라, 다른 몬스터들은 저를 알아보고 싸인해달라고 마구 몰려왔고, 레버를 조작한 대점프를 이용하여, 이 잡화점 문에 부딪친 거에요.”

 

레버 대점프?

그건...아냐 됐다. 태클 걸지 말자.

아무튼 그래서 검열삭제네 뭐네 라고 말한 것이구나.

 

“그럼 그 관리원의 이름은? 얼굴이나 특징 같은 것은 말해줄 수 있어?”

 

“그건...불가능 해요. 말하자마자 관리원은 그걸 듣고 쫓아올 거에요.”

 

이미 관리원을 안 시점으로, 그 관리원은 루나를 찾기 위해 달에서 긴급발령이 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렇게 보면 조만간 침공이나 납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까 루나가 잡화점에서 선전하는 것으로 보아, 빠른 시일 내에 달에 있는 그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찾아오겠지...

 

루나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루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걱정하지마.”

 

그래.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안심을 시키는 것.

내가 우선적으로 루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없었다.

 

“네?”

 

갑자기 고개를 들며 더욱 눈이 커진 체 나를 바라보며, 의문을 입으로 표현하는 루나.

그리고 나는 대담하면서도,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여기에 있는 3인방은 다 나보다 강하거든, 나까지 도와주면 분명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기 전에 막을 수 있겠지.”

 

더 고개를 숙인 체, 떨어지는 눈망울들은 기뻐서일까? 슬퍼서일까? 조용히 숨죽이고 우는 루나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면 그나마 진정을 하게 될까? 여전히 자신의 죄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체, 죄악에 벌벌 떨고 있는 루나의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것일까?

 

 

여전히 달은 뜨고 있고, 그 달을 뒤로한 체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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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사장님은 정말로 선하신 분이라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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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19 - 7

159

 

 

 

연회가 끝나가는 시간을 확인 했을 때는 오전 0시. 바로 다음날의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만 남긴 체 사라질 시간이다. 만일 내가 그런 한정적인 여성화를 겪고 있었다면, 신데렐라와는 다르게 매번 오전0시를 기대하고 있겠지. 그나저나 그런 이중적인 삶 또한 매우 힘든 인생이 되겠구나...잡화점에 돌아가서 이제 루시피나가 고생하고 있을 테니 교대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다름이 아닌...

 

“카린이라고 했던가? 이 근방에서는 못 보던 얼굴이로군...이라고나 할까. 잡화점의 주인 아닌가?”

 

크로이츠 씨였다.

 

“본래 제 이름은 카일입니다만,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이런 모습으로...”

 

하멀 씨와 같이 뭔가 눈으로 보면 상대방을 꿰뚫는 기술이라도 있을까? 어쨌든 날 맨 처음으로 보았던 눈은 “너는 여자가 아니지 않았냐?”라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눈이었고 그걸 알아봐주니 나는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맞았군. 하멀과 루니아가 항상 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하고는 했지.”

 

크로이츠 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온화한 분위기로, 나에게 악수를 신청했다. 악수를 하는 의미는 친밀감과 앞으로의 관계를 잘 지속해나가자는 의미 등. 긍정적으로 잘 쓰이는 인사법 중 하나다.

 

그런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라...과연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백장미 잘 읽고 있네.”

 

루니아 누나!!!

크로이츠 씨에게 뭘 가져다 드린 거에요!!!

뭐 하기야...여신들에게도 인기가 많더라...

 

“그거 들어본 말 중에서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를 정도의 칭찬이군요.”

 

크로이츠 씨는 나의 얼굴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루니아는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괴롭히는 것으로 선제공격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카일 군에게 집중된 것을 보면 내가 안심이라네.”

 

“제가 모르는 루니아 씨는 여러 사람에게 여장을 시킨다거나 그랬나요?”

 

“그건 아니지만, 완전히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라고 해야 하나? 남녀 구분하지 않고 귀여운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섭외하러 나간다고 가출했으니까 말이지.”

 

릴리 기사단이 만들어진 배경이,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끔찍한 소리인가?

 

“처음에는 귀엽다고 데려온 아이들은 전부 여자 아이였고, 그 와중에서도 루니아가 보는 눈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몰라도, 대단한 재능들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었네.”

 

“...그게 릴리 기사단이 만들어진 시초인가요?”

 

“아니. 그냥 루니아의 방탕함을 설명해주고 있는 건데?”

 

그걸 왜 나에게 설명하는 거야?

 

“저기...제가 루니아 누나의 방탕함을 어째서 알아야 하는 건가요?”

 

“음? 곧 부부가 될 텐데, 알아야 할 것은 전부 알아야 하지 않겠나?”

 

네? 잠깐? 뭐라고요?

 

“저기 크로이츠 씨? 제가 아무래도 처음 있는 연회에 어울리지 않는 이런 몸을 가지고, 총 300명의 인파들에게 시달렸기에, 상당히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 귀가 멀쩡한 기능을 한다는 가정하에, 지금 부부라는 단어가 들린 것 같은데 제가 잘못들은 겁니까?”

 

“제대로 잘 들었네만?”

 

...

설마 루니아 누나의 기사단장 은퇴떡밥이 여기서 회수되는 것은 아니겠지.

 

“괜찮다네. 루니아는 요리실력이 끔찍할 정도로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정리하면서...”

 

“아니...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루니아 누나가 어째서 저와 부부가 된다는 전제인가요? 무슨 방정식에 써내려도 될 정도로 당연한 소리라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피타고라스 씨가 상당히 불쾌할 것 같습니다만?”

 

카일 제곱 + 루니아 제곱 = 부부 제곱이 아니란 소리다.

크로이츠 씨는 나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다음의 말을 했는데.

 

“그래도 예전 수호 명령서를 빌미로 루니아를 붙였건만, 기정사실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것에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네.”

 

“기정사실이라니요...수호 명령서를 빌미로 저를 여러 가지 의미로 노렸다는 소리가 되잖아요?”

 

그날 정말 큰일 났던 것은 알 수도 없는 약에 쓰러지고, 사신에게 맞아서 현실로 돌아오니, 루니아 씨의 음식을 먹고 다시 쓰러지는 무간지옥이었다.

 

“어쨌든 루니아를 앞으로 잘 부탁하네. 그리고 하멀이 자주 부려먹고 있는 것 같아서, 대신 하멀의 아비인 내가 사과하도록 하지.”

 

그래도 아들을 위해서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멋진 아버지가 있는 집안이라...

내 부모는 내가 잡화점을 이어받자마자 날 순식간에 버렸거늘.

어쨌든 크로이츠 씨와의 짧은 만남을 한 뒤에...다시 의상실에 돌아와서 본래 옷을 입으려고 하던 찰나.

 

“어서 와? 의상실은 처음이지?”

“어서 의상실로 들어오도록 해?”

 

그 공포의 메이드 자매가 내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그보다 위장이 역류할만한 의문사는 그만 쓰는 것이 좋을 텐데?”

 

왜 이 아이들은 말 끝마다 의문사일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 해? 이미 이렇게 쓰여져 있는 걸?”

“글쓴이가 캐릭터를 강하게 부여해야 한다고, 억지로 이렇게 쓰고 있는 걸?”

 

글쓴이!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하지만 리제는 괜찮아?”

“그래도 로제는 괜찮아?”

 

“너희들은 억지로 쓰고 있다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의문사가 나오잖아!”

 

내가 상대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힘든 녀석들인가...이걸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난이도가 4개 정도 있는데. 쉬움, 보통, 어려움, 코리안 이라는 난이도 중에 코리안이 수준의 난이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말 어렵다는 것.

그나저나...

 

“나는 빨리 옷을 갈아입고 돌아가고 싶거든? 이제 슬슬 비켜주면 안될까?”

 

“그건 불가능해 언니? 목욕을 하고 가야지?”

“마사지도 받고 가야지 언니?”

 

제길 전투인가...

어쩔 수 없이 내 앞에 있는 메이드 자매를 격퇴하고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아까 전에는 쇼콜라 씨가 수작을 부려서 육체가 순식간에 강화했기에, 내가 쉽게 제압 당한 것이지만, 쇼콜라 씨가 없는 이틈에 빠르게 기절을 시키고, 옷을 되찾은 뒤에 귀환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하자.

 

그나저나 레시아는 어디에 있을까?

아까 전에도 텔레파시가 안 돼서 음성사서함으로 남겨놨는데.

 

“그럼 억지로 돌파해주도록 하지. 아까 호락호락하게 당한 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경기도 오산?”

“오산대?”

 

“그런 개그 하지 말라고!...아니! 특정 지방은 왜 거론하는 거야!”

 

*글쓴이는 아재 개그를 위해서만 사용했지, 그 이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는 것을 알립니다.*

 

“목욕 전에 우리들과 춤을?”

“언니? 그건 위험해?”

 

“문답무용!”

 

빠르게 마나를 온 몸에 회전을 시키며, 그 자매 앞으로 돌격을 했다.

 

***

 

뭔가 눈을 다시 떠보니까 얼굴이 너무 똑같은 쌍둥이 자매. 리제와 로제가 내 상태를 보는 듯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얼마나 지난 걸까?

 

“굉장해? 우리 상대로 30분을 버텼어?”

“우리들을 상대로 15초도 못 버티는 사람은 많아?”

 

여전히 누가 들으면 올라올듯한 의문사는 둘째치고, 저 자매 둘에게도 단 한방의 유효타를 날리지도 못하고, 30분동안 생선의 뼈와 살이 분리되듯이 발려버렸다는 소리잖아? 내가 마계촌에서 나오는 주인공도 아니고, 한방 맞고 갑옷이 날아가고, 두 번 맞고 가죽이 날라가는 그런 개복치가 아닐 터였다. 하지만 30분동안 내가 직접 맞은 유효타격은 두 번. 말 그대로 목숨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니는 우리들에게 본 실력을 발휘하게 할 정도로 강해?”

“졌다고 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거야?”

 

영원의 투기장은 어떤 괴물들이 출현하는 장소일까?

저 자매는 영원의 투기장 우승자라고 했던가?

매리와 마리가 순식간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언니? 땀이 많이나?”

“언니? 이제 목욕하러 가자?”

 

...

아 제길...

반항이라도 할 힘이 있었다면, 드릴 하나를 가지고 땅을 파서 숨어 들어갈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몸에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질질 끌려갔다.

 

패배자에게는 어떤 자비도 없다고 했던가?

혹은 패배자에게는 수치뿐이다 라는 말이 있던가?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자.

여담으로 마수들의 손에서 벗어난 그 자체가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신랑! 어서 와! 그나저나 얼굴이 왜 그래? 마치 쌍둥이 메이드 자매에게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당하고 온 사람처럼?”

 

루시피나는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감이 잘 들어 맞았다.

 

“가 아니라.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말을 할 수 있는 거에요? 무슨 추적기라도 달아놨어요?”

 

“아니. 마왕님께서 수정구로 전부 녹화해주셨거든.”

 

레시아!!!

...오늘따라 마음속으로 외치는 사람이 많은 건 내 착각일까?

 

“그럼 루노아 씨가 했던 이야기도 전부 다 봤겠군요...”

 

루시피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브티를 내 앞에서 따라줬다. 진정효과가 있는 허브티를 내가 괜히 많이 마시는 게 아니다. 무슨 일을 겪고 혹은 소리만 들어도 나는 놀랄 준비가 항상 되어있으니까.

 

예전에는 허브티를 하루에 5잔 정도 마셨다면, 지금은 하루에 14잔 이상을 마시게 되었다. 어쨌든 지금 루시피나에게도 루노아 씨가 말해준 정보로, 전 대륙규모로 뭔가 혁명이 일어난다는 그런 소식을 받았으니,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랑이 알아보라는 그 어릿광대가 속한 단체 말이야?”

 

“아. 그 유랑극단인지 뭔지 하는 그곳이군요.”

 

“아무래도 이번 혁명과 같은 반란과 관계가 가장 깊어 보여.”

 

정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일리오스 씨 휘하에 있던 남작들이 많아진 이유는, 별 의미가 없거나 유랑극단에 가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인데?

 

남자일 때는 전혀 모르는 감각이, 지금 머릿속에서 빨리 일리오스 씨에게 가야 한다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체 일리오스 씨는 어디에 있을까? 애초에 연회는 다 끝난 것 아닐까?

 

...아니 이번 연회는 확실히 귀족들을 먼저 수색한다는 입장으로, 벌어진 대연회이니 마무리로 회의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레시아가 했던 말 중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세척’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이 곳에 오기 전에도 뭔가 따른 수를 써서 연회에 참석했다는 소리겠지.

 

가장 간편한 것은 최면이고 그 중에서도 극도로 자기 암시를 하게 되면,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루시피나. 지금 당장 저를 왕국 회의실에 있는 곳으로 공간이동마법을 사용해주세요.”

 

“그럼 오늘 낮잠은 나랑 같이 잘 꺼야?”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런 말 하지마.

이쪽은 지금 비상사태란 말이야.

 

“그냥 잔다는 전제 하에 말이죠.”

 

“알았어! 그럼 빨리 날려보내줄게!”

 

안 그래도 피곤할 터인데, 루시피나는 어쩔 수 없이 연장근무가 되어버렸고, 눈 앞에 시야는 다시 왕국 회의실로 추정되는 천장 위에서, 급격하게 올라간 내 시야에서는 전에 본듯한 자와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병사들과 대처하기 시작했다.

 

“맹수 조련사?”

 

이미 샤벨 타이거로 추정되는 그림자를 지휘하고 있는 또 다른 갈색의 가면.

그리고 일리오스 씨와 크로이츠 씨...최근 정력제를 구매하고 있는 왕은 아직 무사한 듯 보였다.

 

“마나 캐논!”

 

거대한 폭발음이 병사와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의 외침에 전부 위를 올려다 보다가, 얼굴이 경악으로 바뀌면서 섣불리 그 자리에서 이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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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 그런지 PC방에 초등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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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28 - 3

245

 

 

 

다음날.

카렌을 놔두고 레시아와 같이 아르칸 제국으로 사키엘의 문을 열고 나와, 빠른 속도로 주변에 맛집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뭐 솔직히 메이와 가이로안 씨를 찾으러 나온 것으로 맛집 근처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을 하겠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냥 고양이 한 마리 데리고 와서 여행하는 거라고 볼 수 있는 모습인데...솔직히 나도 용병생활로 미아나 실종된 사람을 찾으러 자주 이동은 해봤으나, 설마 맛집을 노려서 먼저 수색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진심으로...

누가 사람이 행방불명 됐는데 맛집부터 찾아 나설까? 어떤 인간이 대체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음. 이 왕교자의 식감은 부드럽군.”이라고 외칠 수 있

 

“주인. 이 왕교자의 식감은 부드럽구나. 짐이 이곳을 매수해도 괜찮은가?”

 

“매수하지 마세요.”

 

구나...

 

지금 왕교자를 먹고 있는 이 곳에서 메이와 가이로안 씨가 사라진 지점이다. 물론 이 가게 주인에게 자세한 특징을 설명하자니, 5일 전에 그 둘이 이곳에 방문해서, 모든 왕교자를 다 해치우고 폭풍처럼 사라졌다는 말을 보아, 메이의 먹성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지만, 5일이 지났다는 그 말 한마디로 이들이 살아있는 가능성은 10%미만으로 되어버렸다.

 

그럼 어디를 다시 찾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땅을 보호하는 수호룡인 가이로안 씨는 적어도 땅속에 숨는 것을 잘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대지를 담당하는 드래곤이 두더지와 같은 습성이란 소리도 아니다. 위급할 때만 땅으로 숨는다는 거지. 아마도...

 

“아무리 위급하더라도 드래곤은 자존심이 높기 때문에, 땅속에 숨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 전에 그런 바보 같은 독백을 할 시간이 있으면, 짐을 도와서 흔적이나 빨리 찾아내거라.”

 

아직까지도 왕교자를 우물우물하고 있는 레시아의 볼을 늘려주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은 전투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도 급선무다. 셜록 홈즈라는 탐정은 흔적만 봐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범죄가 진행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전투지역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노란색 테이프로 ‘접근금지’라고 쓰여진 곳을 멋대로 넘어가서, 그저 멍하니 움푹 파인 부분이라던가, 날카로운 무언가가 사방을 긁고 간 흔적을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이럴 때는 윈디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어머나? 이게 누구신가요? 카린 아니에요?”

 

“쉿! 그 이름은 입에 담아서는 안 돼. 그전에 윈디는 여기에 어쩐 일로 온 거야? 그 닌자 거북이라도 만나야 할듯한 노란 점퍼는 어디서 구했어?”

 

“에이프릴 오닐과 닮았나요?”

 

“아니.”

 

나의 즉답에 윈디의 호박과 같은 눈동자는 이내 가늘어졌다. 그보다 에이프릴 오닐은 백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 않고 말이지. 어쨌든 가슴 쪽에 사진기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이 녀석도 이 근방에 일어난 정체불명의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아르칸 제국에 용케 잘 넘어왔네요? 지금 마법사들의 짓이라며 사방팔방으로 마법사들을 잡아 들이고 있는데 말이죠.”

 

“그거야 하란국에서 입김을 불어넣어 줬으니까. 아르칸 제국과 하란국은 대표적으로 우호도가 깊은 제국이잖아? 예전 칸포리우스 제국의 전성기 때, 하란국과 아르칸 제국에서는 친선동맹으로 서로 혼약을 시켰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런 평화의 시기에서는 일부로 우호도를 깰 이유가 없지.”

 

“그래도 지금 칸포리우스 제국에서는 마법사들을 잡아간다는 이유로, 곧바로 전쟁을 할 준비를 치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카일 씨가 이곳에 있는 이유라면 마법사들의 소행이 아니란 소리가 되겠지요?”

 

“두뇌회전은 여전하네. 지금 메이와 가이로안 씨를 찾고 있어. 이 근방에서 행방불명이 되어버려서 지금 드라고니스도 난리가 났으니까. 이것도 죄다 신인류 소속의 호문쿨루스가 남긴 일 중 하나라고는 하는데...지금 뭘 적고 있는 거야?”

 

“그거야 카일 씨가 한 말을 그대로 적고 있죠? 칸포리우스 황제와 아르칸 제국 황제에게는 알려줘야 할 것 같으니까요. 그나저나 신인류라면 요즘 핫하고 있는 인류 적대 단체잖아요? 그걸 빌미로 이야기를 해둔다면 아마 지금 당장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죠.”

 

“그래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뼈아프단 말이지...”

 

레시아는 가만히 있다가 내 어깨 위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주인.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기척이 여럿 감지되고 있다.”

 

“...기척이요? 윈디...어라? 어디에 있는 거야?”

 

윈디가 사라진 곳에서는 종이 한 장이 뜯어진 체 덩그러니 땅바닥에 놓여져 있는데, 내용은...

 

카일 씨! 오늘도 고생하세요 –윈디.

 

“제길...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어디서 다가오는지 모르는 정도라면 투명화 상태라는 소리이지만, 레시아가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정도라면 최상위랭크 정도는 아니란 소리다. 물론 아르칸 제국은 마법협력으로 인해 마법공학의 기술이 무자비할 정도로 발전했으니, 전신을 투명하게 만드는 갑옷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면...

 

“움직이면 쏜다. 손들어!”

 

“...저기 정 반대로 된 거 아니에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일단 손들어.”

 

아르칸 제국의 병사라는 소리인데, 왠지 모르게 좀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아무튼 신원조회를 하려는 것인지, 기묘한 물건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조작하는 기계의 모습으로는...

 

“음. 하란국에서 보내온 비밀요원이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헬멧을 쓰고 묘한 기계음이 섞여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음성까지 변조되는 걸로 보면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신원이 밝혀지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일까? 아무튼 신기한 사람이 좀 많이 있는 듯했다. 아직까지 불가시상태라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로 보아 바로 내 뒤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는, 나는 천천히 뒤로 돌아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류하 씨가 나를 하란국에서 보낸 비밀요원이라고 입김을 불어넣은 건가...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제가 감히 물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고만장하신 하란국의 비밀요원이라면 발설을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그쪽도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해요?”

 

“상당히...”

 

...꽤나 유쾌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무례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메이와 가이로안 씨의 상세한 특징을 이야기 해주고, 그 투명인간은 “흐음...”이라는 소리를 살짝 흘렸다.

 

“그들은 3일전에 아르칸 제국을 나갔습니다. 물론 이 장소에서 전투를 벌인 것까지는 봤지만, 그게 설마 신인류들의 호문쿨루스인 줄은 상상도 못했군요. 제가 이미 상부로 보고를 해서 명령을 받은 시점에서는, 꽤나 많이 다친 남자가 마법을 사용해서 사라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렇다면 긴급 텔레포트를 사용했다는 소리로 봐야 할까?

 

“그나저나 혹시 카일이라면...그분 아니십니까?”

 

“어느 거요?”

 

“그 백장미 잡지에서 바니 걸 복장...”

 

“그건 제발 제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주시겠어요?”

 

하긴 천계에도 퍼졌는데 여기에서 안 퍼질 리가 없지...

 

“그나저나 고생 많으시네요. 보통 생사가 불투명한 사람들을 찾으러 나가려고 하지도 않는데, 꽤나 중요한 사람들인가 봅니다?”

 

“중요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이니까 찾아 다니는 거죠.”

 

순간 레시아가 “캬아아!”하면서 털을 곤두세우더니 허공에 발톱을 휘둘렀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오랜만에 보는 고양이라서 조금 쓰다듬어 주려고 했는데, 꽤나 성질이 앙칼지네요.”

 

기계음에서 들리는 어조는 당혹감이라고나 할까? 그 전에 레시아는 대체 어떻게 투명화된 제국 군인들의 위치를 알 수 있을까?

 

“그래도 조금 바쁘시겠지만, 저희들의 인솔에 좀 따라와주시겠습니까? 적어도 아르칸 제국에서 수도방위군까지 와주셔야겠습니다.”

 

“수도방위군이요? 여기가 수도는 아니잖아요?”

 

애초에 여기는 아르칸 제국의 외각이고, 주로 내가 활동해야 할 장소인데 수도까지 가려면,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지체되고 만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이 사람들은 애초에 내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입을 열기를...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CAR-103을 준비했으니, 수도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가 될 겁니다.”

 

“...대체 무슨.”

 

[괜찮다. 주인. 짐이 나중에 이곳으로 공간이동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주인은 여기서 쓸 때 없는 마찰을 빚고 싶지는 않을 테니. 지금은 그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게다가 주인에게 타도를 줬던 그 죠니라는 자는, 이곳 빌헬름 기사단에 기사단장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그 곳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면...일단 시간을 좀 내어드리죠.”

 

“그리고 이것 싸인도...”

 

첫 번째로 안 사실은 4명이 나를 포위했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로 안 사실은 이들도 전부 백장미를 구독하고 있던 독자들이란 소리였다. 그나저나 진짜 이놈의 잡지는 어디까지 퍼져나가는 걸까? 먼 훗날 외계인이 날아와서 나를 우주선으로 납치한 다음에, 싸인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고 실토할 것 같은 이 기분...

 

나는 한숨이 예약생산 시간에 맞춰서 나오도록 설정했으니, 지금 한숨을 내쉬고 난 뒤에 천천히 손을 뻗어 허공에 떠있는 듯한 잡지를 잡았다. 난 언제까지 저런 흑역사를 싸인해줘야 하는 운명일까?

 

***

 

제국의 수도방위국은 말 그대로 총 지휘체계를 가진 장소라고 봐야 하지만, 그 본부에서는 온통 투명인간들의 소굴과 다름이 없었다. 말 그대로 사방에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반해, 내 시상에 맺혀있는 것은 레시아와 건물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방팔방이 전부 기계음으로 변조된 듯한 음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이들의 성별조차 알지 못했으며, 만약 거수자가 다른 곳을 침투해야 한다면, 아마 이곳이 가장 공략하기 힘든 장소 중 하나이리라.

 

물론 지금은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잘 알겠지만, 왜 이 안에서도 서로 투명화 상태로 있는 것일까? 보통 사령부 내부에서는 무장을 하지 않을 텐데?

 

“이쪽으로 따라 오시죠.”

 

사령부에 도착하자마자 전방에서는 아무도 없는 투명인간 상태의 사령관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그야 당연히 저쪽에서 먼저 입을 열거나 움직여야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거대한 침묵이 맴도는 가운데 내 뒤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인솔했던, 그 담당자가 천천히 내 앞으로 이동하는 듯이 소리를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에...

 

“불가시상태 해제...”

 

““해제.””

 

한 사람의 말에 복창하면서 은폐상태를 해제하자, 4명 전부 하나 같이 똑같은 검은색의 전투복과, 머리 사이즈에 딱 맞춰진 슬림한 느낌의 헬멧이 눈에 띄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 헬멧을 벗으려고 하자, 벗기 편하도록 압축된 공기가 빠져나가듯이 “쉬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넓게 벌려진 헬멧을 양손으로 잡아 쉽게 벗으면서, 기다란 분홍빛 머리카락이 늘어지기 시작하면서 입을 열기를...

 

“수도방위군에 잘 오셨습니다. 저는 이곳의 총사령관 ‘페이’이라고 합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헬멧을 벗었을 때는 이상한 변조 음성이 아니라, 맑고 곱게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몰래 카메라를 당한 내 정신을 다시 깨웠다.

 

“잠깐만요? 그럼 지금까지 총사령관이 저를 직접 인솔했다는 소리잖아요?”

 

“그렇게 된 셈이죠. 물론 당신의 이상한 행동으로 인해, 신인류의 호문쿨루스들에게 공격받을 위기에서 저희들이 구해준 것이지만요. 이건 저와 친하게 지내던 전 기사단장...지금은 죠니를 구해준 몫이라고 생각하세요. 본래 저희들의 임무는 당신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처를 돌아다니는 신인류의 호문쿨루스 들을 잡는 임무였으니까.”

 

 

씨익하고 자신 있게 웃는 녹안 속에는, 아직도 멍하니 정신을 못 차리는 내 모습이 비춰져 있었다. 나는 몇 단계로 이 사람에게 낚시를 당했는지 그것부터 세고 있는 머리를 말려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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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태클을 걸기 위해 계산하고 있는 카일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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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Think & Write

동물농장 #1: 조지 오웰

#George Orwell: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생.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와 같은 성이고 신화의 에릭과 같은 이름이다. 왜 몃진 본명을 두고 필명을 썼을까? Milliken 출판사 교사용 지침서에 실린 저자설명을 보니 필명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33년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을 출간할 때부터이다. 파리와 런던에서 노동자층, 극빈곤자와 생활한 내용의 자서전적인 이 책을 내면서 본명을 썼다가 가족까지 곤란해 질까봐 필명을 선택한다. 

 

#Lower upper-middle class: 영국 백인이지만 인도에서 태어나서 두 살 때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오웰은 자기 가족의 계급을 'lower-upper-middle class'라고 표현한다. 위키피디아에서 '상류 중산층 하급계층'이라고 번역한다. "People in the English upper classes who were not rich, but who felt they should live as if they were(Milliken, p.3)." 오웰은 상류층 출신이다. 무지막지하게 부자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상류층이다. 덕분에 여덟 살때 사립 기숙사 중학교에 입학한다, 상류층 답게. 심지어 고등학교는 상류층 귀족자제들만 들어간다는 Eton이다. 그러나 어릴 적 나름대로 부족함 없이 자랐던 어린 오웰은 그 사립학교에서 처음으로 자기가 속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처음으로 더 큰 세계에서 상대적인 빈곤과 절망을 알게 된다. 제일 가난한 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Such, Such Were the Joys] 책에서 오웰은 다음과 같이회고한다. "In a world where the prime necessaties were money, titled relatives, athleticism, tailor-made clothes ... I was no good."

 

#사회주의 사상과 만남 at Eton: 이튼에 장학금을 받고 1917년에 입학한 오웰은 처음으로 진보적인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다. 1921년 졸업할 때 공부는 167명 중 138등을 할 만큼 형편없었다. 장학금을 받고 Oxford에 입학하기란 불가능했다. 대신 오웰은 아버지처럼 따라 공무원이 되어 1922년부터 27까지 미얀마(구. 버마)에서 경찰로 복무한다 ([Burma Days]). 학창 시절 심취했던 사회주의 사상과는 정반대의 길(role-revearsal), 즉 영국 제국주의를 굳건히 지키는 길을 가게 된다. 그러한 자신의 선택이 불편했을까? 오웰은 1927년 공무원을 퇴임하고 파리에서 노동자와 함께 생활했고 그 때부터 간간히 단편,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출판된 책은 없다. 이후 런던으로 돌아와 극빈자와 생활하며 본인 역시 이런 저런 하찮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이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바로 앞서 언급한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이다. 1930년대 몇 권의 책을 출판하면서 그의 사회주의 사상은 더욱 견고해진다. 

 

#만인이 평등한 유토피아는 없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오웰은 프랑코 파시즘에 대항하여 공화파에 합류해 싸운다. 서로를 동지(comrades)라고 부르며 만인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계급이 없는(classless) 사회주의 이상이 실현될 것 같은 생각에 들뜬다. 하지만 뒤이어 그가 경험한 것은 바로 그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싸웠던 동지들, 바로 그들로부터 숙청되는 또 다른 동지들이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주의 이상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엄청난 충격과 절망을 안고 영국에 돌아온 오웰은 1943년 BBC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동물농장] 작업에 들어간다. 그의 유일한 목표는 바로 스탈린 체제의 공산주의와 전체주의, 기회주의를 까발리는 것. 스탈린이 실행하는 그 무지막지한 탄압과 비정상적인 통치는 결코 사회주의가 아님을 만방에 알리는 것. 이상과 목표를 향하는 발걸음 아래에서는 우리 모두 평등할지 모르지만 능력(ability)은 절대로 동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인간본성을 냉철하게 인정했을 때 '만인이 평등하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너무나 순진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논리임을 고발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였을까? [동물농장]이 독자에게 날카롭게 던져주는 잔인한 클라이막스는 다름아닌 2장과 10장의 극명한 대조가 아닐까?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라는 일곱번째 계명이 붕괴된다. 그런 것이 있었던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신 벽 전체에 크게 적힌 유일한 계명은 다음과 같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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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먹먹함

⠀재미있지 않아요? 윤이 창밖을 보면서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 언저리를 눈으로 쫓는다. 덜 마른 머리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점심시간 모텔촌 근처 카페에 앉아 있으면 으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저렇게 머리를 적신 사람들 사이에는 이상한 유대감이 있어요. 우린 어젯밤 섹스했다. 같은 거요. 그녀는 정말로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이 후후. 하고 웃었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우리도 언젠가 저 유대감에 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뒤로도 한참 창밖을 보던 윤은 커피 한 잔을 다 비워내고 나서야 연필을 들었다. 언젠가 “나의 시는 여러 가지 욕망, 특히 성욕으로 쓰는 거예요.” 라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머리칼을 적신 사람들과, 새로 쓰여질 시, 윤의 손가락과 연필, 맞은편에 앉은, 그러니까 그녀가 보고 있을 내가 그녀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그것은 기대였다. 그녀의 욕망 중에 하나를 자극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 시를 쓸 때면 어김없이 이름 모를 아우라 같은 것들이 윤의 주변을 둘러싼다. 말하자면 기세랄까. 기운이랄까. 그런 것들. 그 아우라는 나로 하여금 그녀의 연필 소리에 숨죽이고 귀 기울이게 만들었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토끼가 사자 앞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랬다. 윤의 시는 여섯 줄로 되어 있었다. 삶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윤은 눈으로 시를 따라 읽는 내게 삶이란 누군가에겐 긴 것이고 누군가에겐 짧은 것일 거라고 말했다. 그리곤 이 시처럼요.라고 덧붙였다. 꼭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으로 창밖을 본다. 여전히 머리칼을 적신 채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윤의 시가 가지고 있는 어떤 공통적인 주제, 그러니까 죽음과 결핍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을 상처들을 안다. 그것은 삶을 포기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먹먹함이었다. 저기, 우리 밥 먹으러 안 갈래요? 나는 윤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함께 글을 쓴 반 년 동안 단 한 번도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관계의 발전이었다.

⠀사실은 예전부터 같이 밥을 먹고 싶었는데요. 윤이 테이블 위에 놓인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직업병일까. 여전히 만들다 만 것 같은 문장이었다. 윤의 시선은 젓가락 끝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단순히 끝과 끝을 맞추기 좋아하는 그녀의 결벽 때문인지, 쑥스러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두요. 괜히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물론 내게는 끝과 끝을 맞추는 결벽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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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9 - 7

548

 

 

 

팬미팅이 진행되고 있는 한편 루니아 누나 무릎에는 검은 고양이가 얌전히 누워있었고, 루나 오른쪽 어깨 위에는 하얀 올빼미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번 의뢰로 나와 마리아까지 포함하여 5명이 루나를 지키고 있었고, 어릿광대가 나타난다고 한들, 내가 들고 있는 가면에 탐지되기 때문에, 쉽사리 접근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얀 가면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으니, 어릿광대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고, 유랑극단의 나머지 멤버가 이곳으로 침입할 가능성을 생각해서, 검은 고양이로 잠복하고 있는 레시아가 커다란 결계를 미리 쳐놓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팬미팅에서 이벤트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 라이브를 한다는 간편한 일정을 가지고 있지만, 상세하게 들어선다면 퀴즈라던가 빙고라던가, 소소하게 즐길 거리가 준비되어있는 줄 알았건만.

 

아니나 다를까...

 

-Yee~

 

저놈의 Yee.T 보드게임은 어디를 가나 꼭 한번씩 보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모두 스마트한 마공학 기계를 들고 루나의 앨범 전집을 건 보드게임 대회속에서, 사람들은 광기에 젖은 눈빛으로 다른 사람을 탈락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는 모습. 밖에서 지켜야 하는 근무자 대부분이, 몰래 참석하여 이벤트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통로는 두 곳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티스 씨의 분신이 감시 중이다. 사실, 나 혼자 외부에 침입자를 감지할 수 없지만, 이곳만 해도 그리티스 씨의 분신이 3천개체나 되기 때문에, 이벤트를 즐기던 말던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안에는 마왕님과 빛의 여신님, 그리고 전설의 무패를 기록한 여기사가 함께하고 있다면, 오히려 과잉보호가 아닌가?”

 

“그래도 상대는 어린 달 토끼를 납치한 용의자로 올라간 사람이에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라고 해도, 보통인간들 보단 지능이 매우 높기 때문에, 따라갈 사람과 따라가지 않아야 할 사람은 분간하더라고요. 그리고 상대를 어떻게 해야 더 처절하게 능욕할 수 있는지 알고 있고요.”

 

먼 과거 달 기지에 납치당했던 시절에, 몸이 마비되어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 나를 여장시켰던 어린 달 토끼들을 생각하니, 머릿속에서 화가 들끓기 시작했다.

 

“잡화점의 주인. 지금 머리가 점점 가열되는 것 같은데 괜찮은가?”

 

“아무리 사람이 열 받는다고 해도 물을 올려놓으면 끓어오르진 않아요. 다만, 과거에 안 좋은 추억이 좀 생각나서. 나중에 술을 마셔서라도 억압해야겠네요.”

 

“하지만 자네는 술을 안 하지 않는가?”

 

“아. 그랬었죠. 망각하고 있었네요.”

 

술은 즐기기 위함이고 과음은 불행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라면 잡화점 멤버들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매우 조용해서 별 탈이 없을 정도로군. 자고 일어나도 아무일 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결말이 오리라 보고 있네만?”

 

내 머리 위에서 보라색 슬라임은 무슨 수단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멋진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당연하죠. 그녀는 루나의 콘서트를 보고 저녁식사까지 초대했잖아요. 그 와중에 사고가 터지거나, 인질극을 벌이거나, 납치극을 하면서까지 망치기는 싫을 거에요. ‘좋은 유흥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미소를 짓는다.’라고 하잖아요.”

 

“그런가? 옛말에 그런 말이 있는 건 처음 듣는군.”

 

“당연하죠. 방금 막 지어냈으니까.”

 

“?”

 

“?”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내 캐릭터는 명언 제조기가 아니라 태클을 걸 때야 말로 빛을 보는 것일까? 나름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티스 씨가 만약 눈이 있었다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으리라. 따라서 내 명언에 트집이 잡혀 흠집이 생기기 전에 입을 열었다.

 

“어쨌든 저 안에 수십 단위로 잠입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신호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맞겠죠. 게다가 루나는 아이돌이잖아요. 300년이 지나도 어떻게 아이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불노불사의 달 토끼라는 칭호까지 얻었으니, 이번 콘서트는 리제로트마저 가장 기대되는 무대가 될 거에요.”

 

“그런 건가?”

 

“그런 거죠.”

 

입안에 사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마리아에게 받은 막대사탕조차 없다. 심심한 입을 뭐로 달래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머릿속에서 문뜩 지나간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제가 알고 있는 사브누아도 인형사지만, 최초로 판도라의 빈 상자를 이용해서 영혼이 깃든 인형을 만들었어요. 과거에 인형사는 마나를 이용해서 실을 짜고, 그걸로 인형을 조종했지만, 지금 이 시대의 인형사는 마법을 사용하는 인형사일까요?”

 

“그걸 나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정답을 이야기 해줄 수 없다네.”

 

“제가 질문한 의도는 저와 같이 생각하자는 거에요. 그리티스 씨도 300년 후의 미래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습득함으로써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잖아요.”

 

“흠. 비트코인의 움직임은 아직 잘 알지 못하네. 저번에도 3천 골드를 잃었으니 말이지.”

 

거기엔 왜 돈을 사용한 거야?

지금은 깊게 생각하지 말자.

 

“지금 유랑극단이 채용한 인형사라면, 마법사가 아니라 초능력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에요. 아니면 둘 다 사용할 줄 안다거나.”

 

“그게 꼭 중요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당연하죠. 마나를 이용한 인형술이라면 제가 다 차단할 수 있지만, 초능력은 근본적으로 좀 달라서 새벽<Daybreak>으로는 차단이 불가능해요. 힘의 근본을 날려버리는 황혼<Dusk>를 사용해야 하지만, 그걸 쓴다면 제 몸이 넝마가 되겠죠.”

 

힘이 강한 만큼 받는 반동이 심하다. 인간의 육체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반동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내가 인간의 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만. 하지만, 인간이 인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능력이 좋은 인간을 괴물이라고 칭해도 인간은 인간. 그 범주에 벗어나지 못하니까 내가 위험한 거다.

 

“일찍이 저는 여러 번 죽을 뻔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역시 안전이 제일이라는 거하고, 모든 일은 무리를 하지 말자는 방침이에요. 모든 변수를 제거한 뒤에 내가 봤을 때 형용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이라면, 가차없이 진행할 수 있는 자신이 있죠. 그러나 유랑극단의 인형사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그 변수는 결국 제 발목을 잡게 되는 원인이 될 거에요. 그러니...”

 

“알았다네. 그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니 조금만 기다려보게.”

 

내 말을 다짜고짜 끊은 그리티스 씨는 뭔가 생각하는지 20분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맹목적인 침묵은 그렇게 찾아오고 조용한 흐름 속에서 시간을 자각하고, 조용히 이벤트가 끝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카일. 돌아왔다!”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뛰어오는 마리아. 홀로 밖에서 지키고 있는 나를 보자마자 뛰어들어 껴안았다. 체구가 작은 여성이 뛰어들었을 때 장점이라면, 충격량이 덜 하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세간의 눈이 좋지 못하다는 의미지만. 지금은 나와 그리티스 외엔 아무도 없으니 신경 쓰지 않고 받아줬다.

 

“분명 허공에서 차원을 뚫고 오거나, 그림자에서 다시 나타날 줄 알았는데.”

 

“그러면 로맨틱하지 않다. 첩은 첩대로 카일과 무지개 빛의 로맨스를 펼치기 위해서, 이런 연출을 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첩을 이렇게 보니 신선해서 두근거리지 않았는가?”

 

“제가 왜요?”

 

-파악!

 

정강이에 어마어마한 충격은 나를 차디찬 바닥으로 눕게 만들었으니, 조만간 정강이 보호대라도 만들어놔야 할지도...

 

“아프잖아요! 뭐 하는 짓이에요!”

 

“거짓말을 하니 벌을 받는 것이니라. 첩은 정신계열에선 최상위 포식자. 그 누구도 첩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노라. 물론 인간한정으로 말이지.”

 

“웃기시네! 그저 자기가 원하는 답이 안 나오니까 때린 주제에!”

 

-파악!

 

“잘못했으니 제발 그만 좀 차시죠.”

 

“그러면 설레었다고 말하거라.”

 

“그건 좀...”

 

-파악!

 

“아악! 제발 좀 그만 차라고요! 조금이라도 혀를 더 놀리면 이번엔 절 성배로 부어버릴 것 같아서 설레네요! 됐어요? 됐냐고요!”

 

맞는 게 싫어서 ‘설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사람이 있다면 제보를 바란다. 그런 제보가 하나라도 있다면 지금 이 억울함을 함께 공유하는 동지가 될 테니까! 어마어마한 고통을 인내하면서 천천히 일어섰을 때, 마리아의 작은 입은 쉴 줄을 몰랐다.

 

“카일이 말한 대로 잠입요원을 침투했다. 1시간 안으로 대부분의 정보는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곤 하지만, 아쉽게도 표면적인 정보들뿐이니라. 카일이 원하는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선 좀 시간을 달라고 하더구나.”

 

“어차피 혼란을 주기 위해 일부러 침투시킨 거니까. 무리하지 말고 들켰을 때는 바로 도망가라고 하세요. 그런데 잠입한 사람은 성별은 누구에요?”

 

“어째서 성별을 따지는가? 여자요원을 투입시켰다만? 설마! 그 여자요원에게 관심이 있어서!?”

 

“저기. 그것 때문에 그 질문을 드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겠어요?”

 

사실 성별을 따질만한 이유는 없지만, 낮말에는 새가 듣고 밤 말에는 쥐가 듣는다. 일부러 정보를 흘리는 것으로, 라 캄베리 안에서는 벌써부터 여자요원을 찾겠다고 사방을 뒤지겠지.

 

사실 마리아와는 텔레파시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지금 그 자가 이 근처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건가?]

 

[감시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리제로트가 바보가 아니라면, 저희 주변에서 몰래 정보를 듣는 사람들이 있을 거에요. 이제 와서 말하기에는 너무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리제로트 라 캄베리는 유랑극단에 소속되어 있어서, 제가 잡화점의 주인이고 다른 사람들이 잡화점의 멤버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상태겠죠. 무방비하게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흘려놓는다면...]

 

[진짜 정보만 듣고 가짜 정보까지 물어버리겠군. 그런데 정말 괜찮은가?]

 

[어떤 거요?]

 

마리아와 나는 겉으로 저녁 반찬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동안, 걱정하는 억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말 라 캄베리에 아무도 잠입하지 않아도 되는가? 정보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기회이고, 기밀까지 뽑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검은 달의 여왕소속의 잠입요원들은 엘리트다.]

 

[그래도 정보전은 그리티스 씨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마리아의 요원들은 다른 일을 해줘야 하니까요.]

 

[어린 달 토끼들의 흔적을 찾는 것 말인가?]

 

[정확해요.]

 

진짜 정보는 라 캄베리에 기밀정보를 빼고 있다는 것.

가짜 정보는 라 캄베리에 잠입요원이 침투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섞어서 흘려 보냈으니 빨리 걸려들길 빌었다. 리제로트의 발을 묶기 위해서도 있고, 기밀정보를 알아내면서 정보전에 우위를 점하는 것.

 

“그러면 첩은 떡볶이로 하겠다.”

 

“나중에 이야기 해둘게요.”

 

저녁반찬에 대한 이야기가 다 끝나고, 이벤트가 슬슬 끝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갔으니, 콘서트를 준비하는 동안 화장실이나 음식, 응원봉을 사기 위해 건물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빠져 나왔고, 다른 이들이 나가는 동안 뜻밖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거기 당신.”

 

금발의 소녀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꺼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죠.”

 

 

마리아는 언제부턴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는지 내 옆에서 사라졌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나는 리제로트 옆에 있던 남자에게 인도를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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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많이 피곤하네요.

 

합격인지 불합격인진 잘 모르겠만...

전 레식이나 하렵니다.

 

+

 

상상의 나래 : http://cafe.naver.com/novu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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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인스턴트 맨

 

 

 

  퇴근 후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차키를 집어드는 것. 군더더기 없는 몸짓과 함께 그대로 자신과 어딘가 묘하게 닮은 차에 올라타 미끄덩, 30분을 달려 그가 도착한 목적지는 편의점이었다. 익숙하다는 듯 레토르트 식품을 넣어둔 곳으로 직행, 몇 개 남지 않은 도시락 중 가장 가성비가 좋은 걸 골라 망설임 없이 계산대로 향했다.

 

 마흔을 목전에 둔 나이지만 아직은 삼십 대, 대기업 근무, 본인 명의 20평형대 아파트 보유, 큰 키, 서글서글한 외모, B** n시리즈의 자차 소유, 호탕한 성격. 다른 사람들 말에는 그냥 웃어넘기거나 혹은 변변치 않은 핑계를 대곤 했으나, 그는 사실 자신이 왜 여태껏 혼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의 직장 동료나 같은 나이의 인간들과는 달리 꽤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감성적이니까, 그러니 감수성이 넘쳐흐르는 나는 따라서 여자들에게도 꽤 괜찮은 대화 파트너가 될 수 있을 텐데. 솔직히 말해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면, 그는 여자를 만난 경험도 제법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일정 수준의 시간에 도달하면 이별이 찾아왔다. 분명히 좋아하는데, 어쩌면 사랑하는 것도 같은데, 꼭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물러나게 되는 그였다. 도통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애도 결혼도 너무 큰 과제처럼 느껴졌다.

 

 2025년 6월 어느 날, 그는 TV에서 놀라운 소식 하나를 들었다. 지난 해 체결된 ‘보어링협약 Boring Convention’에 따라 내달부터 사랑이 전면 금지된다는 것. 보어링협약의 정식 명칭은 ‘인류의 편안한 삶을 위한 정서 조절에 관한 협약’이며, 2024년 6월 18일 미국 오리건 주의 Boring이라는 도시에서 체결되었기 때문에 간편하게 보어링협약이라 부른다 했다. 협약에 참여한 168개국 국민들에게 7월 1일부터 내장형 칩이 무상으로 제공되며, 삽입 즉시 효과가 발동될 거란다. 그는 한 국가나 국제사회가 중대 사항에 대해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지내온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규율과 질서를 군말 없이 잘 지키는 편에 속했고, 그래서 ‘법 없이도 잘 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곤 했다. 그런 그가 이번 보도를 접하고는, 처음으로 큰 혼란을 느꼈다. 사랑이 금지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류를 거부한다는 건 그에게 더더욱 상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보도 다음 날 저녁부터 그의 퇴근 시간이 당초보다 1시간가량 늦어지기 시작했다. 거리가 촛불을 든 인파로 넘실댔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집에 들어와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포털사이트에 접속해도 온라인 사이트에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유저들의 자취가 줄을 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어링협약에 반발하는 것 같았다. 그는 광화문을 지나며 마주친 ‘인간실격’이라는 문구를 떠올렸다. 인간다움이라는 게 뭘까. 사실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생각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으므로.

 

 7월 1일, 등기로 배달된 내장형 마이크로 칩을 삽입했다. 우리 집 강아지랑 똑같네, 칩을 넣으며 껄껄 웃는 부장님의 옆모습이 왠지 불량식품을 삼킨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꽤 설렜다. 언제나 시대는 변한다. 그리고 시대정신을 따르지 못하면 도태된다. 나는 이번에도 도태되지 않을 것이다.

 

 석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가 오가는 길 위에는 NO를 외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 시위가 언제 끝날까, 길이 너무 막히는데. 내년에 완공된다는 새 도로를 타고 속도를 올리는 상상을 해본다. 기분이 나아진다. 칩을 장착한 뒤 그는 오히려 좋아하는 것이 더 많아졌다. 아마도 몸속에서 좋음의 정서가 과잉 반응하는 걸 예방하는 대신 다양한 대상을 애호할 수 있도록 분배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확실히 사랑이 없는 세계는 더 안락한 듯 보였다. 심장을 뒤틀리게 할 만큼 큰 감정소비가 사라지니, 연인이 되는 일부터 시작해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개별 사건들이 속속 타결되니 생활 자체가 간략해졌다. 인생을 복잡하게 하는 가장 거추장스러운 것이 걷어지니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다. 건조하면서도 평화로운 시간이 지속되었다. 그는 인스턴트 음식이 처음 들어왔을 때 그것이 인류의 건강을 크게 해칠 거라며 호언장담했던 전문가들의 근심 어린 얼굴을 떠올렸다. 어느새 자기 삶의 영역에서 인스턴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높아져있음을 눈치챘지만,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그는 퇴근 후 1시간을 달려 새로운 연인에게 향한다. 이번에는 왠지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이제 “너무 아픈 사랑은 하지 말자”며 연애에 억지로 한계선을 그을 필요도 없다. 아마 곧 자신과 많이 닮은 그녀와 결혼해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매끈한 검정색 자동차가 촛불을 뒤로 하고 도로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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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2 - 4

10

 

 

나의 추측에 뒷받침 되는 증거는 없다만, 레베카 씨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뭔가가 있을 것이라 분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나는 5실버를 주고 신문을 읽었다. 

레시아는...

 

"아저씨! 그러니까 왜 제가 릴리 기사단을 취재해야 되냐 구요!"

 

아이니스가 살쾡이 같이 앙칼진 목소리로 나에게 항의하는 동안, 레시아는 아이니스가 주는 육포를 받아먹고 있었다. 엄청 맛있게도 먹네...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리 맛있게 먹나요?

 

"아저씨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냐? 오빠라고 부르라고!"

 

결국 아이니스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잡화점 물품 중에 마법책을 몇 권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릴리 기사단에 취재하라고 했다. 물론 아이니스는 어리고 기자도 아니지만, 루니아 씨의 성격으로 봐서는 갑자기 차 한잔을 하기 위해 대려 가려고 기를 쓰겠지.

 

내가 제안한 거래에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 쪼그려 앉아있던 아이니스는 기지개를 피며 일어났다. 그런데...어깨부분과 치마부분에 일정 간격을 접어서 마치 꽃 모양으로 강조가 되어있는 옷이라니? 게다가 옷 전체가 검은색으로 깔끔하고 멋져 보였다.

 

"아이니스? 그 옷은 뭐야?"

 

"이거요? 르블랑 원피스에요. 혹시 반했어요?"

 

거기서 '반했어요'가 어떻게 나오는 거야?

깜찍하게 돌지마! 지금 뒤에 있는 저 아저씨 눈이 빛나고 있으니까!

 

"아니. 취재하러 갈 때, 그거 입고 나가라고. 어울리긴 하네."

 

"쯧. 이걸로 아저씨를 함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린애가 나에게 혀를 찼다. 이런 무서운 것을 봤나...

벌써부터 아이니스가 어려 사람들을 꼬드길 가능성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공략 대상이 아냐.

 

[이 꼬마가 벌써부터 짐의 주인을 공략하려고 하다니, 꽤 큰 거물이 되겠구나.]

 

[레시아? 이미 레시아는 육포로 공략 당했거든요?]

 

[이런 육포로 짐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적어도 앞으로 3개면 바뀌겠지만...]

 

[마왕이 왜 이렇게 잘 공략 당하는거냐!]

 

정말 그 험난한 마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넘어갈 뻔한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아저씨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되냐!"

 

바로 이거...

하지만 아이니스는 내 말을 무시한 체 자기 할 말만 했다.

 

"그러면 거래는 성립 된 거죠? 마법책과 아저씨를 빌려준다는 조건으로 제가 릴리 기사단에 가짜 기자로 취재하는 것..."

 

"내가 왜 거래조건에 끼어있어! 은근슬쩍 바꾸지마!"

 

"역시나 빈틈이 없네..."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작은 소리라도 다 들을 수 있는 내 귀는 기겁을 했다.

평소에 아이니스와 자주 하는 만담이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 레베카 씨의 혼약에 대해서 물어보면 되는 거죠?"

 

아이니스는 녹음이 되는 수정구를 집어 넣었다.

물론 저 수정구도 내가 대여해주는 것이지만, 저 물건도 2층에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제발 부셔지지 않게 돌아와주면 좋겠다.

 

아이니스가 가고, 아침의 태양빛이 가게를 밝히는 시간이 되는 오전 11시.

왕국의 상황을 잘 아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딸랑~딸랑!

 

"저기 손님? 아직 개점을 안 했..."

 

"여기가 명성이 자자한 잡화점이고 그쪽이 주인인가?"

 

짧지만 고풍스러운 은발에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눈.

 

"나는 뭐...잘 알고 있지? 신문에도 많이 나오는데?"

 

사신을 연상하게 만드는 검은 제복주변에는 금색의 테두리가 제복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여기에 잠시 조사를 하러 나왔거든? 그러니 협력해줄래?"

 

왼쪽 가슴에는 금과 백금으로 이루어진 해골문양의 휘장

 

"아니면..."

 

기이하게 생긴 총으로 내 머리를 겨누며 싸늘하게 웃었다.

 

"공무집행방해죄로 죽던가."

 

건방진 말과 거기에 잘 어울리는 중저음으로 남을 기선을 제압하는 목소리.

왕국 마법 수사관 하멀 레이비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막 나가는 인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 총은 내려놓으시고, 차나 마시면서 말할까요?"

 

"흠...좋아. 적어도 다른 민가 집에 있는 사람들보단 좋군. 마음에 들어."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한 거냐? 이게 수사야 협박이야?

공권력 남용으로 처벌 받아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레이비스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의자에 앉아서 거만하게 다리를 꼬면서 오른손에 있는 권총을 빙빙 돌렸다.

 

"빨리 만들어. 그리고 온도는 90도로 유지하고, 일부러 내가 꼴 보기 싫다고 뜨겁게 하면 알지?"

 

왜 저런 녀석이 마왕이 안 됀걸까?

결국 허브티를 내놓고,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나 봐야 했다. 물론 실없는 소리를 한다면 내쫓아 버릴테지만...

 

"이 편지. 누군지 몰라도 릴리 기사단에 침입해서 레베카 경이 읽은 모양이야."

 

실베스 씨가 친필로 쓴 편지가 내 눈 앞에 떨어졌다.

 

"그래서 누군가 릴리 기사단 숙소까지 침입할 수 있는 변태가 있을 거 같아서 수사를 벌이는데, 아무도 안 잡혀서 결국 파이론이란 깡촌까지 오게 된 거야."

 

...

그거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라곤 하나...그거 내가 했던 거잖아.

 

"물론 지금 내 호위 2명이 저 집 앞을 지키고 있지만, 같이 들어가자고 해도 무서워서 못 들어가는 꼬라지 하고는...이건 둘째치고! 그때 알리바이를 알고 싶어서 왔는데, 확실히 너는 왕국에 놀러 온 적 있지?"

 

누가 나의 신상정보를 팔아 넘겼는지 몰라도 저 눈은 "이미 다 알아봤어. 거짓말 하면 죽는다."라는 눈이다.

 

"예...그때는 제 고양이도 같이..."

 

"거기서 뭐 했어?"

 

만일 여기서 "강제로 여장 입혀지고 침입했다" 라고 하면, 레이비스 씨가 웃으면서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다른 말을 했다.

 

"그냥 구경 좀 하다가, 잡화점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탕!

 

방금 발포소리에 내 뒤에서 자고 있던 레시아도 깜짝 놀랬는지 일어나다가. 다시 잠들었다.

내 머리 바로 앞에서 허공으로 회전하던 마력탄은, 비니스의 목거리에 새겨진 방어마법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누...누구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말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마력탄을 쏘는 거에요!"

 

"이상하네...원래 기억을 지우려고 쏜 건데?"

 

뻔뻔하게 고개를 갸웃 거리는 레이비스 씨에게, 주먹으로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물론 그런 짓을 하면, 잡혀가는 건 나겠지...

 

"아무튼 이름이 뭐였지?"

 

"카일이라고 합니다."

 

"좋아! 카일. 그러면 수사는 이걸로 마치고, 다음에 내가 올 때는 차를 더 잘 끓이도록. 단, 내가 여기에 있었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면 안되."

 

레이비스 씨는 천천히 자리에 일어서서 잡화점 밖에 나갔다. 물론 잡화점 밖에서 작은 총성소리가 들려온 것만 뺀다면, 상당히 평화로운 하루가 되었다.

 

***

 

베가프를 찾아가기 위해, 작은 성당에 갔는데...

 

"망령이 나타났다!"

 

이제 제발 잡화점을 괴물의 집 취급하는 것은 그만 뒀으면 좋겠다.

또 다시 5분도 안 되자 경비병들이 나를 포위를 했...이거 데자뷰인가?

 

"망령이여 물러가라!"

 

"뜨거운 물 그만 뿌려! 베가프!"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수습하는데 내 인생에서 10분이라는 시간이 소비 되었다.

 

"미안해. 성수는 살균을 위해서 항상 끓이거든..."

 

성수에 무슨 살균이 필요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가정적인 사람이다. 사제 모자를 벗고 눌려진 갈색머리를 정리하는 베가프에게 혼약에 대한 것을 물어봤다.

 

"왕궁에서의 혼약? 혹시 릴리 기사단에 몰래 들어가봤어? 그래서 반한 거야?"

 

요즘 사람들이 왜 이리 감이 좋은지 모르겠다.

몰래 들어가봤지만, 반한 건 아니야.

여장을 당하고, 기사단 숙소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오로지 거기엔 괴물 뿐이였어...

 

"아니. 그냥 내 친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인데..."

 

나는 실베스 씨를 익명의 친구로 바꾸고, 사정을 다 설명했다.

물론 레시아는 베가프의 시야로는 보이지 않는 저 구석에서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다.

 

"요즘 왕궁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릴리 기사단을 겨냥한 귀족들의 강제 혼약이 많나 봐."

 

"릴리 기사단이 표적이라고?"

 

그거 못 들은 이야기인데?

 

"릴리 기사단원들은 전부 외모가 좋잖아?"

 

"그렇긴 하지."

 

루니아 씨가 귀여운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괴물이기 때문에...

 

"귀족들은 자신의 옆에 항상 수호기사를 두고 싶어하는데, 최근에 릴리 기사단에서 계속해서 수호기사를 요청을 하다 보니, 인원수가 모자라게 되어 거절을 했거든. 왕국에서도 그것은 받아 들여줬어. 그런데 문제는 릴리 기사단에 있는 한 여성과 귀족이 혼인을 하면서, 그 것을 악용하려는 귀족들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릴리 기사단원을 지목해서 혼약을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저 말은 즉, 예쁜 기사를 얻고 싶지만, 왕이 안 된다고 하자. 혼약을 빌미로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것으로만 하기로 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 레베카 경의 상태는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거든..."

 

"그건 무슨 소리야?"

 

좋은 상태가 아니라니?

 

"최근에, 몬스터 토벌에서 레베카 경이 이끌던 부대가 몬스터의 함정에 빠져서 겨우겨우 살아나온 과정에, 허리를 다친 모양이야. 덕분에 무리한 행동을 하면 두번 다시는 걷지 못한다고도 하고, 사무직이나 훈련만 하고 있는데, 그걸 노린 알벤토 가의 아들이 혼약을 한다고 해서, 레베카 경은 시집도 가야하고, 기사로서 은퇴도 해야 되."

 

"알베톤 가의 아들이라면 공작이잖아?"

 

베가프는 다시 끄덕이고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마른 듯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문제는 알벤토 가의 아들인 벤다이어 알베톤은...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새디스트로 알려져 있으니까. 실제로 하녀가 고통에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실베스 씨가 들으면, 당장 자신의 부족을 이끌고 공성전을 할 법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려고?"

 

"그야. 레베카 씨가 그쪽으로 시집가서 맞기 전에 혼약을 깨야지."

 

하지만 어떻게?

기발한 아이디어가 없을 려나...

 

"베가프...우리 한 번 연극 찍어볼까?"

 

"무슨 소리를?"

 

"너의 소질을 되살릴 기회가 있다는 거야. 잘만 하면 대사제로 갈 수 있고. 어때?"

 

친구를 꼬드기는 내 모습이 악마와 닮은 것 같아.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야 가망이 있다고나 할까? 베가프는 친구인 나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시에 레시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만약 알벤토 가에 시체가 있다면, 그 시체를 되살릴 수 있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짐은 마왕이다. 네크로맨서의 길 또한 심심하게 독파하여, 모두 마스터를 했노라.]

 

[그러면 지금 알벤토 가로 숨어들어가서, 무엇이 있나 봐야겠네요.]

 

***

 

허공을 가르는 채찍소리는 하녀의 하얀 피부에 붉은 자국을 새기며 농락했다.

오히려 비명을 더 지르라는 듯이 눈을 가려버리고, 위에서는 일정 주기마다 촛농이 떨어지는 충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광경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참담한 광경이라 생각한다.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휘날리는 붉은 머리와 상의를 탈의하여 다져진 근육을 자랑하는 남성은 하녀의 비명이 더 잘 나오도록 하녀의 피부에 칼집을 내다가 튀어버린 핏자국들이 얼굴과 몸 곳곳에 남아있었다.

 

광기에 물든 붉은 눈을 잠시 감으며, 귀족은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자신에게 흐르는 땀이 시야를 방해하자, 비어있는 왼손으로 쓱 닦아냈다. 잠깐 동안 휴식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체력이 약한 하녀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다 몸에 경련이 일어나더니 이윽고, 숨이 끊어지는 것으로 보고는 재미없다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길...3일동안 쉬지 않고 고통을 주면 죽어버리다니. 또 하나 배웠군."

 

이렇게 사람이 죽은 것을 본 것이 32번.

32번씩이나 하녀 뿐만이 아니라, 납치한 평민들도 똑같은 죽음을 맞이 했으리라...

자신 옆에 있는 의지가 돋보이는 레베카의 사진을 들어올리며, 자신이 레베카를 구속시킨 체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흥분하던 찰나...

 

"벤다이어 님..."

 

온순해 보이는 인상의 늙은 집사가 사진을 천천히 내려놓는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라며 벤다이어 알벤토가 짜증나는 목소리로 말하자 집사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막 새 장난감을 가져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식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띈 벤다이어는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오호라. 때 마침 잘 됬군. 레베카 경이 나와 혼인 할 때까지 심심풀이가 필요했거든."

 

집사는 손짓을 하자. 검은 르블랑 원피스를 입은 아이니스가 의식을 잃고 끌려온 것이었다.

벤다이어는 "예쁜 비명을 잘 지르겠구나."라는 상상을 하며 의욕이 다시 돌아왔지만...

 

"그래도 나중에...지금은 레베카 양에게 점수를 좀 따야하거든...르웰로! 샤워할테니 알아서 묶어놔!"

 

벤다이어는 아쉽다는 듯이 기절한 아이니스의 뺨을 쓰다듬으며 웃다가, 시간 내에 데이트 장소에 나가야 하는 사람처럼 벤다이어는 빠른 발걸음으로 이동했고, 르웰로라 불린 늙은 집사는 벤다이어가 지하실에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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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이건 그냥 머리비우고 보는게 더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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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9 - 11

356

 

 

 

내 제자들의 실력을 파악해준다던 루니아 누나가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음산하면서도 불길한 붉은 기운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을 때는, 루크는 자신의 검을 지탱하며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마를렌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기라도 하는 듯, 다리 위에 손을 꽉!하고 움켜쥐었다. 아르메는 마나가 서서히 부족해졌는지 중급 정령들이 하나 둘 씩 사라졌으며, 파르시아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체, 매우 피곤한 눈빛으로 루니아 누나를 응시했다. 10분 정도 지났어도 루니아 누나는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고, 매우 여유로운 분위기로 입을 열면서 천천히 말했다.

 

“역시 동생들의 제자라 그런지 다른 아이들처럼 3분 안으로 쓰러지지는 않네. 내 대련을 10분정도 버티는 녀석들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말이지. 수의 차이가 있다고 하며, 연계의 유무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렇게 무차별하게 당해버렸으니 무슨 소용인지.”

 

사람이 한 순간에 악녀로 변한다면 루니아 누나만큼 제대로 된 악녀도 없을 것이다. 루크가 다시 기합을 넣고 타도를 휘두르면서, 동시에 마법검을 대검형태로 생성해서 휘둘렀지만, 오히려 루니아 누나는 비어있는 왼손으로 타도의 옆면을 빠르게 쳐 날린 뒤에, 중심을 잃은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서 클레이모어의 검 날을 오른손으로 잡고, 검자루로 루크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루크의 마지막 발악에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상대한 루니아 누나는, 밝은 목소리로 10부터 1까지 천천히 카운트 다운을 하기 시작했고, 0이라는 숫자가 되자마자 루니아 누나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도라면 카멜롯에 있는 학원생들과 막상막하가 맞네요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벌한 분위기를 싹 다 지우고, 검을 집어넣으면서 나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4명을 상대했다고는 하지만 땀도 흘리지 않는 루니아 누나에게서 좋은 향이...아니, 이게 아니라.

 

“그렇다고 달라붙지 말라고요. 루니아 누나.”

 

“언니.”

 

“언...아니! 교정하려고 들지 말고!”

 

“그래도 카린은 제대로 된 여자니까. 저를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게 맞아요오.”

 

이걸 그냥 때릴 수도 없고...

물론 내가 때리기 전에 죽겠지만.

 

“사력을 다해도 카린의 학생들은 10분을 못 버텼으니, 이제 제가 요구한 걸 어서 행동에 옮겨주시죠오?”

 

나와 루니아 누나가 내기를

 

“언니.”

 

나와 루니아 언...

 

“아니! 독백까지 교정하려고 들지 말란 말이야!”

 

어쨌든 내기의 내용은 루니아 누나가 이기면, 내가 하룻동안 루니아 누나의 고양이처럼 지내는 벌칙게임과 비슷한 종류였고, 내가 이기면 백장미를 찍지 않는다는 커다란 도박이었는데. 어라?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내가 큰일났잖아?

 

“아! 맞아! 오늘 그러고 보니 중요한 일이...냐아앗!”

 

아무일 없이 도망가려고 했다가 내 꼬리가 잡혔다. 다시 온 몸에 달리는 미지의 통증에 내 몸은 경직당하고는 그 상태로 엎드렸다.

 

“크후후. 카린~? 도망가려고 하면 못 쓰죠오? 하룻동안은 저에게 응석을 부리는 거라고요오? 아아, 잡화점 오픈 하기까지는 4시간 정도 남았으니까, 4시간동안 카린과 단 둘이서 치유를...”

 

“루니아 누나!”

 

“언니.”

 

“아니, 그건 일단 뒤로 밀어두고! 아직 기사단 일이 남았잖아요! 정확히 10분 뒤에 쉬는 시간이 끝나니까, 곧 다시 일을 하시러 가야죠!”

 

하지만 루니아 누나는 나를 멀뚱멀뚱하게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일이 중요한 가요? 카린을 하룻동안 소유할 수 있는데?”

 

대체 릴리 기사단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레시아! 시나! 도움! 도움!]

 

나는 긴급하게 레시아와 시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해방시켜달라는 메시지가 가득 담긴 ‘도움!’을 중요하니까 2번씩이나 외치자, 나에게 날아온 텔레파시는 다음과 같았다.

 

[아. 루니아와 같이 일을 나가는 것인가? 조심이 다녀오도록 하거라.]

[루니아와 좋은 외출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들이 단체로 약을 먹었나? 이런 중요한 때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나를 지금 당장 못 보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내려고 하는 거야? 지금 내 생일도 아닌데도 말이야, 돌아와서 ‘서프라이즈!’라고 외치면 깜짝 놀랄 만큼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겠어.

 

“그럼 제 휴식실로 갈까요오?”

 

“어째서어어어어어!”

 

내 절규는 잡화점에 있는 모의전투실에서 루니아 누나의 릴리 기사단 본부로 가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되었다. 마치 올드 스파이스인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차원 속에서 젊고 건강한 흑인 남성이 ‘빠워어어어어!’를 외치는 것처럼.

 

“어어어어어어어어어!”

 

말 그대로 계속 되었

 

-타악!

 

“냐앗!”

 

루니아 누나가 이마를 손가락으로 때리며 내 입은 닫혔고, 숙소 침대에서 루니아 누나는 나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혀놓고는 그 상태로 끌어 안았다.

 

“옷 때문에 푹신해서 기분 좋아라아~”

 

가장 최악의 벌칙은 말 어미마다 ‘냥’, ‘냐’를 붙이는 거지만, 그게 아니라서 천만에 다행이지. 그나저나 4시간동안 루니아 누나는 기사단 숙소에서, 그냥 이대로 나를 가만히 앉혀놓고는 그대로 치유만 받을 거라면, 나 또한 그냥 아무일 없이 지나가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나쁜 벌칙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후우~”

 

“냣!”

 

고양이 귀에 기습적으로 뜨거운 바람을 불기 전까지는...

 

“지금 뭐 하는 거에요!”

 

“고양이 소녀는 뒤에 ‘냐’라던가‘냥’을 붙이는 거랍니다.”

 

지금 누구의 정신을 갈아서 비둘기 밥으로 주려고 하는 것인가?

못해! 안 해!

 

“누가 그런걸 할 줄...”

 

“후우~”

 

“알았다냥! 하면 될 거 아니냥!”

 

반항이 실패했다. 뭐라 반항하려고 하면 뭔가 강도 높은 행동을 하려고 할 것 같아서, 나는 우선 전략상 후퇴를 하기로 하고, 다른 이야기 거리를 말하려고 했는데, 루니아 누나로부터 먼저 입이 열렸다.

 

“카린? 루비아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프리트론에서 본 적이 있어요오. 하지만 머리와 눈의 색상이 다르고, 안경도 써서 다른 사람이라 생각해서 지나쳤지만, 뭔가 익숙한 기분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분명 루비아 씨와 닮은 호문쿨루스는 2개체가 있지만, 그 중에서 달 토끼들이 살려낸 루비아 씨가 맞을 듯하다. 지금에 와서 루비아 씨가 호문쿨루스이긴 해도 살아있다고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처럼 계속해서 숨겨와야 하는가?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 루니아 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루비아를 만나봤자. 별로 반갑지 않아요. 오히려 여동생이 죽은 것이 익숙해지니까, 지금은 카린이 제 여동생 같은 기분이거든요.”

 

그거 루비아 씨가 직접 들으면 슬퍼할 것 같은데? 루비아 씨는 루니아 누나를 많이 걱정하면서, 몰래 몰래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들었지만, 정작 그 본인은 여동생을 만나도 반갑지 않을 것 같다니? 그보다...

 

“저는 본래 성별이 남자인 거 알고나 있죠?...냐.”

 

“지금은 여자잖아요?”

 

이 고양이 귀를 나중에 내가 태워서 없애버리든지 해야지!

 

“그건 그렇고 잠이나 자볼까아?”

 

“잠깐! 우아앗!”

 

억지로 침대에 같이 쓰러지고는...사실, 난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는데, 한낱 잔디가 사람 발에 밟히기 싫다고 버틸 수나 있을까?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하얀 침대에서 루니아 누나는 모든 것을 얻은 마냥 웃으면서 행복해 하고 있었다.

 

“지금 만약에 카린이라도 없었다면, 저는 업무 스트레스로 죽어버렸을 지도 몰라요.”

 

“아니...그건 아닐 것 같은데. 냥. 아 진짜! 어미 뒤에 붙이는 거 안 하면 안 돼요?”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서 억지로 하라는 거랍니다.”

 

기사단 제복 그 상태로 입고 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그대로 계속 끌어안고 있는 루니아 누나의 고독함을 잘 알 것만 같았다. 이 상태로 같이 자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면, 나도 뭐 기꺼이 같이 잘 수는 있다.

 

“카린.”

 

“왜 부르는 거에...읍!”

 

뭘까?

내가 생각했던 평온한 낮잠과는 다른, 스펙터클한 낮잠이 될 것 같은 이유는? 우선 내 입안에 끈적하게 들어오는 침입자를 밀어내야 했지만, 오히려 얽히는 바람에 미묘한 구도가 되어버렸다.

 

“우읍! 읍!”

 

보통 연습을 할 때, 관절기나 목조르기 등 위급하다 싶으면은 손바닥을 땅이든 어디든 다급하게 때려서, 항복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내가 키스를 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분위기와 자극에 탭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부드럽지만 거칠기도 한 뜨거운 숨결과 끈적한 기분을 공유하면서까지, 내 정신을 휘저어버리는 루니아 누나의 행동에, 나는 사력을 다해서 어깨를 밀며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그게 쉽게 되었다면 이 정도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를 잠깐이나마 해방시켜준 것은 대략 8분정도가 흘렀을까? 몸이 뜨거워져도 머리는 냉철 하라는 말이 있듯이, 아직까지 용광로가 되지 않은 내 머리를 통해, 수많은 태클을 걸 단어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낮잠이라면서요! 잠만 잔다면서요!”

 

“으음? 카린이 귀여운 걸요오?”

 

“귀엽다고 키스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만!”

 

“하면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오?”

 

말이 통해야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말던 하지.

 

“그나저나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방안이 덮네요오. 잠깐 윗옷을...”

 

“아니. 아니. 거기 멈춰요. 당장 그 행동 멈추고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요?”

 

“이미 벗었는데요?”

 

“빨라!!!”

 

제복 안에는 하얀 와이셔츠가 있었으니 그나마 수위상 안전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게 글만으로 이루어져서 정말 다행이야. 내 배 위에 앉아있는 루니아 누나는 마치 사신이라도 되는 마냥 입을 열었는데. 그 단어는 놀랍게도...

 

“카린은 안 벗나요오?”

 

이와 같은 말이었다.

 

“뭘 벗어! 정신 놨어요!”

 

“그래도 카린은 4시간동안 저의 소유물인데, 주인이 말하면 들어야 하지 않나요오?”

 

“들고양이에게 손 뻗으면 알아서 오던가요? 난 안 오던데? 그리고 고양이는 개처럼 친밀하지 않은 동물이거든요!”

 

“흐음?”

 

루니아 누나는 얼굴을 가까이 하면서 나의 눈을 빤히 봤다. 본능적으로 부담스러워서 움츠러드는 기분에, “뭐, 뭔가요.”라고 물어봤지만, 점점 루니아 누나의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꺄아! 너무 귀여워!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잘 맛봤다고 소문이 날까!”

 

“뭘 맛봐요! 정신 놨어요!”

 

흔히 볼 수 없는 루니아 누나의 폭주모드가 여기서 발동해버렸다. 다른 곳에서는 사도라는 존재가 폭주를 일으키면 세상이 망한다고 하던데, 이곳에서는 루니아 누나가 폭주를 일으킨다면 세상까지는 몰라도 내가 망하는 것이 순식간이다.

 

“냐암!”

 

“냐앗! 귀는...귀는 핥으면 안 되요! 아앗!”

 

귀를 문체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며 나에게 천천히 말을 걸었다.

 

“카린이 싫다면 이 이상은 하지 않을게요.”

 

폭주가 끝나고 드디어 숨을 고르며 이제서야 내가 말을 할 수 있...

 

“그런데 카린은 츤데레 캐릭터니까. 싫다는 것도 좋다는 의미겠지요? 크후훗!”

 

이런 제길!

 

“대체 어떤 공식을 붙이는 거야. 그만둬! 허벅지에 손 올리지마! 그만해에에!”

 

“카린이 귀여운 게 공식이랍니다아. 각오는 해두세요오~”

 

 

살아생전에 잡화점 멤버에게 습격 당했지만, 루니아 누나가 이렇게 습격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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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장면은 킹 크림존이 다 날려버렸으니까 안심하라구!

-킹 크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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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2 - 3

 

576

 

 

 

허구한날 일이 꼬이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다. 아직도 풀어야 할 일이 산더미임에도 풀어가는 것보다 꼬이는 속도가 더 빠르니, 지금 당장 굴러다니는 장난감 공마저 매우 심심하게 보였다. 간단하게 일을 끝내고 싶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아직까지 쓰라린 등을 가지런히 의자에 기대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생각의 늪에서는

 

“메에에에!”

 

6번째 양도 있...아니? 언제 또 잠든 거야? 푸른 초원에 울타리가 있고 양들이 여김 없이 울타리를 뛰어넘지만 6번째 양만큼은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간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이런 꿈이 나올 때마다 불안하긴 마찬가지. 이번엔 어떤 참신한 방법으로 울타리를 못 넘는가에 의구심을 표출했다.

 

“메에?”

 

나에게 뭘 물어보려는 건지 몰라도 양의 언어는 배운 적이 없으니 그만둬. 순진한 눈으로 다가와서는 자신의 털 속에 앞발을 집어넣더니 담배 한 보루가 튀어나왔다. 꿈이라고 하여 뭐든지 다 되는 건 맞지만, 아무리 나라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안다고.

 

그런데 담배는 또 어디서 뭘 하려고?

그 전에 양이 능숙하게 담배 피우지마.

썬글라스도 끼지 말고 기이한 갱스터 음악도 나오지마.

 

-부우우우웅! 파지지지직!

 

하...이번엔 울타리를 자동차로 부수는 거냐. 사전준비를 위해서 담배와 썬글라스. 그리고 어디서 틀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양털 안에 숨겨져 있던 카세트로 갱스터 음악까지? 조만간 염소가 아니라 양시뮬레이터가 나와도 할 말이 없겠구나.

 

“그런데. 왜 이곳으로 부른 거에요?”

 

고개를 들어올리니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반팔티셔츠와 부드러운 털로 이루어진 잠옷바지가 융합된 엘티노스는 성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날 찾잖아. 잘 자고 있는데 봉창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염라대왕이 찾아와서 세계가 종말직전이라고 난리를 피우니, 누가 그런 소리를 했냐고 물어봤고, 잡화점의 주인이 그런 소리를 했다고 하더라. 무시무시하지 않냐? 명계에 가만히 있어도 바쁠 텐데, 지상에 올라와서 용케 날 찾았으니 말이야.”

 

“그 동안 소식도 없이 어디에 숨어있었던 거에요?”

 

“당연히 보이드에 대해 조사를 하고, 그 보이드 안에 유랑극단이 숨어있는 것까진 알았지만, 아쉽게도 레이베리아가 천계에 있는 모든 이들을 인간의 육체로 편도여행을 보냈더라고. 나는 인간의 몸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한동안 숨어 지낼 생각이었어.”

 

인간의 육체에 봉인된 천계의 필멸자들은 인간의 자의식이 강한 이상, 봉인되어있다고 봐야 한다. 예전에 마리아와 같이 인간의 자의식을 강화시킨다고, 개고생을 한 트라우마가 스쳐 지나가려고 할 때. 강하게 머리를 휘두르며 단칼에 끊어버리고 입을 열었다.

 

“그럼 레인은요? 레인의 잡화점에서 지내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 정신 나간 녀석하고 1분 1초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은 없다. 너도 레인의 집에 가서 스테이크에다 딸기주스를 부어버리는 참사를 두 눈으로 꼭 목격하길 바래.”

그나마 요리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퓨전요리가 주 요리인가? 딸기주스를 스테이크에 부어버리는 참신한 식습관에 어울릴 필요는 없겠지. 차라리 무지개 음식을 먹고 기절하거나 죽을 뻔한 게 더 편하다.

 

“그래서 레인의 집에서 뛰쳐나와 그 동안 행방불명으로 독립적인 수사에 들어갔다는 거죠?”

 

“그렇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여자를 꼬셨어요?”

 

“얼마 못 꼬셨어.”

 

꼬시긴 했구나. 이 양반은...

 

“그래도 난 어마어마한 정보를 담고 왔지. 그래서 6번째 양을 너에게 보낸 거야.”

 

“그래요? 언제부터 울타리도 못 넘는 애가 제 꿈에서 튀어나와 난동부리던 모든 원인이 전부 엘티노스 때문이에요?”

 

“잠잘 때 양을 세니까.”

 

“아니, 그거와 관계없이 6번째 양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길래, 애가 울타리를 못 넘어서 갱스터가 되는데요?”

 

지금도 옆에서 과속하는 소리와 함께, 갱스터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매번 나와 엘티노스 주변을 계속 턴하고 있다가 엑셀을 밟을 때, 나무판자가 끼었는지 한 순간에 전복되어버렸다.

 

“뭐. 저 애야 유별나니까 상관없고 너의 왼팔에 잠든 건 월식이야?”

 

“그건 또 바로 맞추네요?”

 

“나는 의식과 무의식을 관리하는 상급신이야. 그런 거 하나 잘 알아둬야 무시를 안 당하지. 사회는 뭐 하나만 잘못하면 그대로 무시당하고 놀림을 받는 거야.”

 

“그럼 엘티노스 씨는 뭘 잘했길래 대마법사라는 칭호까지 받은 거에요?”

 

“당연히 마법을 잘 했지.”

 

이 양반하고 말하는 게 이렇게나 피곤할 줄이야.

하긴, 전설의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받으려면 그만큼 마법을 잘 해야지.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짜증났다. 뭔가 다른 태클이나 발언을 기대했건만!

 

“월식은 하나이면서 여럿인 존재라고 하더라고요. 본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한 마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조각으로 잘려나가 살아가고 있지만, 그 수많은 조각들이 하나 같이 정보공유를 하는 종족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 그 중에 하나는 어릿광대가 가지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너의 왼팔에 잠들어있는 월식과 더불어, 수많은 월식이 사방팔방에 다 깔려있다는 건가?”

 

“평행우주관점으로 보면 그렇죠. 사실상 다른 차원에서 월식이 넘어오는 것도 봤고요.”

 

그 날은 끔찍했지만 트라우마로 다시 급부상하기 전에 고개를 휘저어 떨쳐냈다. 생각도 하기 싫다는 굳은 의지가 다시 한번 빛을 발휘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엘티노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완전히 인간에서 벗어나려고 난동을 부리는구나. 너는 언제쯤 신세계의 신이 되는 거냐?”

 

“제가 이름 쓰면 죽는 공책이라도 주웠나요? 신세계의 신이 되기 전에 죽잖아요.”

 

“그래도 사과 좋아하는 사신이 따라붙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사과 말고 나를 좋아하는 뱃사공이 따라붙을 거 같아서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서, 천계에 있는 존재들은 인간의 몸 속에 봉인되어있는 상태라면, 마계는 지금 어떤 상황이 된 거에요?”

 

엘티노스는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가 자연스레 탄식으로 물들어갔다.

 

“어쩌긴. 초능력자들과 대판 싸우고 있지. 천계는 이미 멸망했다고 가정하고 둘이 피 터지게 싸우면서, 서로 극심한 소모전에 돌입하고 있어. 유랑극단의 움직임은 겉으로는 너의 잡화점을 찾고 있는데, 속으로는 또 다른 움직임이 보이는 거 같아서 불안하단 말이야. 세상을 지우개로 지워버리겠다던 계획도 너 때문에 실패한 걸 보면, 플랜 A에서 플랜 B로 넘어갈 거 같아.”

 

세상을 지우는데 조용한 방법이 남몰래 지우는 방법이라면, 플랜 B의 경우엔 세상사람들이 알기 싫어도 알게 될 정도의 소란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한들 내 앞에 떠들어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세상뿐만이 아니라 평행차원마저 위태롭게 하는 나에게 있어선 스케일이 너무 작았다.

 

허구한날 다른 사람이 “제가 오늘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오겠습니다.”이러는데 이미 옆에서 달을 따와 세계를 멸망시켜버리면, 별을 따온다는 사람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을까?

 

당연히 하늘에 별을 따오는 건 오히려 달을 떠오는 것보다 더 위험천만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튼 세간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경쟁자보다 더 쉬워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눈에 띈다는 의미다. 그러면 그들은 이제 어떻게 나와야 할까?

 

“뭐, 전 세계의 인류들을 인질로 잡아서 죽인다고 해도, 저와 관련된 사람들만 안전하다면 굳이 움직일 필요도 없을 것이고, 이전에 시간을 멈추고 죽였다는 거짓말은 통하지 않고, 이제 공간을 지운다고 할지라도 저의 존재만으로 지워진 공간이 다시 재생성되니까. 저들 입장으로는...”

 

날 유랑극단으로 초대하는 방법이 있다.

 

최악의 적을 자신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에서 처절하게 능욕하는 것이야 말로...

 

나를 죽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겠지.

당연히 자신이 죽으러 적진에 가는 바보 같은 사람은 없다.

 

“정말 사람이란 건 목숨이 너무 질겨서 탈이야. 그렇지 않냐?”

 

엘티노스도 사람이었던 시절이 있으니 장난끼가 가득 넘쳤다. 조그만 나뭇가지로 급소만 찔러도 죽는 게 사람이지만, 죽기 전까지 발악하여 가까스로 살아가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도 소 힘줄보단 질기지 않더라고요. 그러면 슬슬 활동하셔야죠? 고작 보이드와 천계가 망하는 동안 어디에 숨어서 비밀병기를 만드신 거에요?”

 

엘티노스는 주머니 속에서 이상한 빨간 버튼을 꺼냈다. 설마 어디서 대륙을 이동하는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겠지?

 

“이걸 누르면 모든 게 해결 될 거야.”

 

“뭔데요? 자폭스위치에요? 이거 누르면 누가 죽어요?”

 

“그거 누르고 5초뒤에 반경 1km정도는 모두 사라지는 거지. 강함의 유무도 따지지 않고 피하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거든. 완전한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어.”

 

그래도 왠지 루니아 누나라면 살아서 돌아올 것 같다.

이전에 마법이 없으면 5초 안으로 1km를 뛰라는 소리잖아.

그게 가능한가?

 

“레인도 똑같은 물건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 녀석이 사용하면 반경 1km가 반경 100만km로 증가해버리니까. 이 세계가 완전히 끝장이 날 징조가 보이면 사용할 거야. 그리고...아마 모든 평행세계가 이쪽으로 거의 집결 되었을 때도 누를 거다. 멸망까지 가는 건 현명하지 않지.”

 

뭘 해야 반경 1km짜리가 반경 100만km가 되는 거지?

 

“아뇨. 모든 평행차원이 겹쳐지기 전에 제가 떠날 거에요. 애석하게도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레인에게 맡겨야죠. 선임이 일 처리를 못하면 후임이 대신 처리한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너는 레인이 장난감 마법지팡이 휘두르면서 다이어 울프를 때려죽이는 걸 못 봤구나? 그 녀석은 지루하다고 툭하면 튀어나가서 사건을 일으키고 수습하는 게 취미라고. 내 생전에 별별 싸이코는 다 만나봤지만, 그 놈만큼 단단히 돌아버린 싸이코는 처음 봤다.”

 

사건을 일으키고 그걸 다시 수습하는 귀찮은 일을 지루해서 한다라...

아무래도 그 녀석은 면담이 좀 필요해 보였다.

특히 마법지팡이로 다이어 울프를 구타한 시점부터...

 

“확실히 제 후배는 정상인이 아니네요. 나중에 제가 확인하는 걸로 하고...이 꿈의 세계에서는 어떻게 나가야 해요?”

 

“글쎄? 뭣하면 6번째 양에게 물어봐.”

 

참나...잠에서 깨고 싶다고 해서 6번째 양에게 물어보면 해결책을 알려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6번째 양에게 가까이 가보니...

 

“저기 앞에 9와 3분의 4승강장에 뛰어들면 깨어날 수 있메에에.”

 

“너 말도 하냐! 그리고 4분의 3승강장이겠지!”

 

역사상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지금까지 봐왔던 정이 있으니 정말로 9와 3분의 4라고 쓰여진 기둥을 보며 중얼거렸다.

 

“좋아. 혹시 몰라? 여길 통과했는데 호그와트가 나올지.”

 

쓸 때 없는 걱정을 하며 긴장한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꿈일지라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바람을 가르며...

 

-파악!

 

“악! 내 이마!”

 

설마 낚인 건가? 눈 앞에 별이 비춰지면서 6번째 양과 엘티노스가 실실 웃을 거 같은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다. 하지만 비웃음도 없고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흔들의자에서 떨어졌을 뿐. 고요함이 비어있는 공간을 한 가득 채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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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줘...아니 차라리 날 죽여줘...

[일요일도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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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4 - 4

301

 

 

 

이 일은 과연 무슨 난장판인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싶었다만, 애당초에 류하 씨는 계속해서 재빨리 혼약을 해야 한다는 말로 나를 부추기기 시작할 무렵. 칸포리우스에서 사자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어도 “돌아가라고 하거라!”라는 말을 외칠 뿐이었다. 그나저나...

 

“저기 류하 씨. 저 1시간 정도 인형과 같은 생활을 한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놔주시면 안 될까요?”

 

“카일리늄을 흡수하고 있으니 조용히 하거라.”

 

“대체 그 미지의 물질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데요?”

 

조만간 내 모습을 한 피규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그건 그렇고...

 

“칸포리우스의 황제와 혼약문제는 당초에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를 시기하는 반대파들의 계략이다. 하란과 칸포리우스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아니한 이유는, 칸포리우스의 황제야 말로 자신의 야망만을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이지. 지금 신인류로 인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황제는 나중에 신인류를 모두 제압하고 나서, 약해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렁이 같은 욕심이 가득한 자는 지금 활발하게 신인류와 싸우고 있는 아르칸 제국을 치려고 하겠지만, 그 바로 위에 여의 제국이 있으니 도움을 받고 싶어하거나, 모종의 거래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외교로는 요구하는 것이 존재하니까. 류하 씨가 여성이란 점을 이용해서 동맹을 가장한 혼약식을 체결하자는 것이고, 거기에 류하 씨의 정책을 주로 반대하고 있었던 반대파들은 그 혼약식으로 어떠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몰래 칸포리우스 제국과 손을 맞잡았다는 소리가 되겠네요? 물론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으니 다른 이와 혼약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완전히 무산되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군요.”

 

“과연! 여가 점을 찍은 자답구나.”

 

나를 끌어 안는 것은 뭐라 말을 하지 않지만, 너무 끌어 안아서 조만간 뇌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아 지금부터 1분의 시간 동안만 더 있으면, 질식사로 숨이 넘어갈 자세가 되어 있었다. 연약해 보이는 체형인데도 불구하고 대체 어디서 저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이상 힘을 준다면 내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내 생각보다 30M정도 빨리 앞서 나간 사이에, 검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내 무릎 위에 있었던 레시아는 붉은 눈이 류하 씨의 얼굴을 직시하고 입을 열기를...

 

“하란국의 여제여. 짐이 생각하기로는 그 결혼은 미끼이며, 애초에 칸포리우스의 황제는 다른 나라의 여성과 혼약할 이유가 없다. 짐이 생각하기로는 칸포리우스 제국과 하란국에 있는 반대파 세력을 마치 흡수한 것 같지 않는가?”

 

“마왕의 말도 일리가 있군. 여의 신하들 중 일부를 현혹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가?”

 

“짐이 한번 경험을 해본 적이 있노라. 결혼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골치가 아픈 관심사가 많지 않는가? 예를 들어서 ‘한정판 육포를 주는 것으로 자신을 노예로 삼아달라.’라는 제안을 해왔다. 짐은 그 한정판 육포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다른 자들이 곧바로 마왕성의 내부에 침투해서 창고를 습격하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 적이 있으니, 혹시 모를 2중, 3중 작전에 대해 의심할 가치는 충분히 있노라.”

 

나는 레시아의 말에 언제나 변함없이 쓸 때 없는 내용을 빌미로 태클을 걸었다.

 

“누가 한정판 육포로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거에요?”

 

“짐은 역대 마계 역사상 최고로 강력한 마왕이니라. 마계에서는 짐의 진명이 퍼지기만 해도, 모두가 목을 조아리면서 여러 공물을 받치느라 바빴으며, 그 덕분에 창고에는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 넘쳐났다.”

 

“그럼 산해진미가 들어있는 창고를 습격 당한 것을 사전차단 했다는 거에요? 뭐랄까 무기라던가 금은보화가 아니라?”

 

“주인은 짐을 얼마나 얕보는 것인지 몰라도, 첩자가 고작 음식 때문에 창고를 습격할 자들이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애초에 음식을 훔치는 것은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 있다. 마계에서는 그리 제대로 된 먹거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

 

확실히 어느 첩보원. 혹은 첩자가 음식이 들어있는 창고를 털기 위해,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하겠는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정상적인 내용을 말한 내 잘못이 크다. 게다가 마계에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해 일부러 음식을 훔쳐가는 것까지 눈감아 주는 군주가 어디 있을까? 레시아야 말로 본래 마왕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물론 그들이 습격한 창고가 육포를 가득 담아 놓은 창고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짐은 질투의 공작인 리비아를 몰래 파견해서 사전에 차단한 것뿐이다.”

 

“어떤 첩자가 기밀자료를 수집하지 않고 육포를 털러 온 것이 말이 되는 거에요!”

 

육포와 관련만 없다면 마왕 중에서도 역대 급으로 가장 선한 마왕이라 생각했다.

 

“그런! 그럼 여는 육포 창고를 지켜야 하는 것인가!”

 

“류하 씨는 어째서 거기에 말려 들어가는 거에요!”

 

레시아가 분위기를 휘어잡으면 이야기는 산을 넘어 우주로 나아가 항해할지도 모른다. 시나는 내 어깨 위에서 날카로운 부리로 옷깃을 물어 내 시선을 돌렸다. 하얀 올빼미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마스터.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떠 올랐습니다.”

 

“뭐길래?”

 

“마스터가 여제를 대신해서 참석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시공간이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웠다. 지금 시나가 나에게 방금 뭐라 한 것 같은데?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 귀로 흘러 들어온 말은, 뇌를 부수고 다른 귀로 빠져나간 듯이 현기증이 순식간에 올라왔을 무렵. 레시아는 “그것도 좋은 생각이로군?”이라며 호응을 하기 시작했다.

 

“뭐가 좋은 생각이에요? 나더러 칸포리우스 황제에게 시집을 가라고요? 남자인데?”

 

“카린이 있지 않는가?”

 

“제정신이에요?”

 

“애초에 짐은 시집을 가라고 한 적이 없다. 어차피 상호간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서는 연회를 올려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마음에 들고 혼약을 하기 위한 상대라고 할지라도, 제국의 절차를 꼭 따라야 한다고 들었다.”

 

절차라면...

 

“3번의 초대를 받고 연회 속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절차를 말하는 거야?”

 

내가 절차의 내용을 말했을 때. 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마스터가 전에 타국의 귀족들과 왕족들이 서로 혼약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를 먼저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저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상대방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기 위함도 있으며, 서로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는 기간이 필요함에 있다는 것이. 이른바 ‘상호탐색기간’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레시아는 “그렇군!”하며 뭔가 떠올랐는지 호들갑스럽게 이야기 했던 것은...

 

“예전에 알벤토 그 자의 결혼을 망치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 도중에, 멋대로 결혼식이 발표된 것에 상당히 당황한 이유가, ‘상호탐색기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알벤토의 즉흥적인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한 것인가?”

 

“아. 확실히. 그런 기억은 있네요. 크던 작던 연회에 3번은 초대받아야 하니까. 최소 3일정도의 시간은 있는 줄 알고 느긋하게 계획을 세우려다가, 알벤토가 자기 멋대로 결혼식을 열겠다고 해서, 결국 제가 멋대로 쳐들어 가서 때려부수는 작전으로 바꿨죠.”

 

그러고 보면 실베스 씨는 뭐하면서 지내려나? 나중에 한번 찾아가볼까?

 

“그 기간 동안 마스터가 칸포리우스 제국의 눈을 끌고 다니면, 하란국 내부에서는 칸포리우스에 동화된 반대파 세력을 어떻게든 증거를 만들어서 퇴출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시나의 말에 나는 잠깐 동안 생각을 하다가 좀 더 효율적인 방면을 찾기로 했다.

 

“아니.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마리아나 카렌이나 그런 사람들도 많잖아? 왜 매번 나야? 나는 남자라고? 이번엔 여장을 해서 황제를 만나라는 거야? 하긴 칸포리우스 제국의 귀족들이나 황제들의 측근의 눈은 속이기 어려우니 이제 아예 카린으로 되라는 거야? 아니. 차라리 내가 반대파 세력을 때려잡을게. 너희 둘 중 한 명이 상호탐색기간에 나가서...”

 

“거절한다.”

“거절하겠습니다.”

 

...이 악마 같은 녀석들.

 

***

 

레시아나 시나 둘 중 하나가 내 성별을 강제로 바꿔버리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불합리함을 느끼는 중이긴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사역마를 잘못 소환하면 내가 사역마 때문에 성별이 바뀌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별이 이리저리 변하는 것은 직접 경험해본 바로는 꽤나 적응하기 힘든 이유는, 옷이 달라서 힘든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적응하기 힘들다.

 

옷이 힘들지 않는 이유는 그 어처구니 없는 잡지를 찍어보니 익숙해진 이유도 있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가 하란복을 입혀지면서 지금도 여전히 류하 씨가 인형처럼 꼭 끌어 안은 상태에서...

 

“아니! 잠깐만! 류하 씨! 일상생활 가능해요? 언제까지 끌어안고 있을 거에요!”

 

류하 씨는 금색의 곤룡포를 두르면서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 카린베리움을 흡수하고 있으니 조용히 하거라.”

 

“타이베리움이겠죠. 다른 세계에서 GDI와 Nod가 서로 많이 가져가려는 광물은...그보다, 카렌도 저와 외모가 비슷하니까 저를 이렇게 여자로 변신시키기 전에, 카렌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던가 그런 다양한 방법이 또 있잖아요?”

 

“주인이 직접 움직이면 뭔가 보너스로 더 얻는 정보가 있다고 생각하며, 주인은 자유분방한 카렌에 비해 츤데레 속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는가?”

 

“레시아. 여기서 벗어나면 조만간 아이언 클로가 더블로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하시죠.”

 

검은 고양이는 잠깐 동안 할 말을 잃다가 다시 주요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딱히 항마의 축복의 영향도 아니고, 주인이 돌아오고 싶다고 짐이나 비둘기에게 말한다면...”

 

“올빼미입니다. 냥캣.”

 

시나는 자신을 여전히 잘못 부르는 레시아에게 태클을 걸었으나, 레시아는 그에 신경도 쓰지도 않고 다시 자기 하고픈 말만 하기 시작했다.

 

“남자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한다면 빛보다 빠르게 되돌려줄 수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 안심하거라.”

 

“그럼 지금 당장 돌려주시죠. 그리고 다른 작전을 생각해보도록 하죠.”

 

“불가능하다.”

 

“아까와 말이 다르잖아!”

 

날카로운 면도날처럼 파고드는 레시아의 즉답으로 내가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류하 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소리치지 말거라.”라고 계속 달래고 있었다. 내가 뒤로 살짝 돌아 보았을 때는 행복 가득한 웃음을 한 류하 씨는, 초롱초롱한 옥색의 눈동자가 여러 의미로 내 시야를 찬란하게 비추었고, 그 사이에 내 다리에 무게가 전해져서 다시 앞을 보았을 무렵. 초량이 내 다리에 누워서 편안한 듯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그 외모라면 오히려 황제가 제국을 줄 테니, 제발 자신에게 시집오라고 하지 않을까? 그러면 오히려 황제의 부인이 되는 그런 급전개를 맞이할 수 있잖아? 301화에서 느닷없이 신분상승으로 끝이 났다는 그런 일이?”

 

“그러다간 정말 독자들에게 맞아 죽어. 애초에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하기 전에 3번의 연회를 하는 동안, 어째서 칸포리우스 제국이 하란국을 초대하는 가가 아니라, 아르칸 제국을 노리는 것인지 그것부터 알아봐야 하잖아? 유지되어온 평화의 시기를 지금 칸포리우스 제국이 깨뜨리는 이유를 먼저 알아봐야지. 그 전에...”

 

나는 무엇보다 제일 먼저 말해야 할 것이 있었으니...

 

“이제 그만 놔주지 않으실래요? 2시간째 인형처럼 끌어안고 있으니 몸이 굳는 것 같아서.”

 

 

류하 씨로부터 해방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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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카일을 인터뷰했는데...잘 진행되지 않아서 굴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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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프루스트 클럽>

내게 다가온, 가장 아프고, 시리고, 또한 아름다웠던 이야기

 

정말이지, 내가 왜 이제야 이 책을 알게 되었는지,
왜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조금 더 이 책을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까.

아니다.
단지 이 책을 지금에야 알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지금보다 일찍 이 책을 알았더라면 나는 이해하지 이제야 수도 있다.
지금보다 후에 이 책을 알게 된다면 나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이 책이 어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
나는 이 책이
그저 좋다.


이제껏 읽어온 많은 성장소설 중에서 이렇게 다가온 책은 처음이었다.
내가 책의 내용에 감동했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책의 내용에 공감했다는 말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공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 아니다.
그저 진짜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아직 내 어휘력이 부족한 것일까.
책을 읽고 느낀 내 감정을 나타낼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 안에서는 이 책을 통한 감정을, 느낌을 표현하기 못하겠다.
어쩌면 이 세상의 어떤 단어를 가져와도 안될지도 모른다.



윤오는 나였다.
동시에 윤오는 내가 아니었다.
읽으면서 나와 윤오는 같다고 느꼈다.
읽으면서 나와 윤요는 다르다고 느꼈다.
같은 상황에 있었음에도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했다.
어쩌면 나는 윤오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원이 같은 친구, 효은이 같은 친구를 만나서
'자신만의 단어'를 찾고,
아픔에 대한, 과거에 대한, 자신에 대한, 감정에 대한,
그 어떤 무언가를 진심으로 나누며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내가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친구와 나름 잘 지내고 있고, 서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이후로부터는,
아니었다.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동시에 그 친구도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게 확신하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가족들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친구에게 이야기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야기하지 못 했다.

나는 나를 표현할 '나의 단어'를 찾지 못 했다.
나는 나를 표현할 줄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본질적으로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둘러싸여
누군가 만들어낸 이름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왜인지 이제는 아프게만 느껴진다.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은 게 아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이러한 사람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좀 더 본질적으로, 나를 이해해주고,
내가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게 되었다.
현실에 그런 사람은 없다.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라는 이름의 틀에 박혀서 항상 '나은 것'만을 추구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에 따른다.
어른들은 자신의 가치를 추구한다.
그게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문제아처럼 굴겠다는 게 아니다.
나의 가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그런 기분이 든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어서
이제는 답답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이 감정을
오래오래 내 안에 간직하고 싶다.

잃고 싶지 않은 감각.
잃고 싶지 않은 느낌.
잃고 싶지 않은
김윤오,
이나원,
신효은,
그리고
오데뜨,
제영군.

책에 나오는 모두를
기억 속에서 잃고 싶지 않다.
내 안에서 지워버리고 싶지 않다.
이 책을 그저 '언젠가 읽어본 적 있다'라는 식으로
대충 넘겨버리고 싶지 않다.

아마 이 책 이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책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 책을 잊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던 구절,
읽으면서 본질적으로 무언가 울리는 느낌이 들었던 구절,
그 구절을 하나하나 적어 내 눈이 닿는 곳 어디에든 붙여둘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다.

언젠가 내가 내가 쓴 글들을 뒤적여보면서,
혹여 내가 이 책을 잊게 되더라도
과거의 내가 쓴 이 글을 뒤적여보면서,
다시 이 책을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언젠가 다시 떠올려서
다시 이 책을 읽고
다시 가슴 아파하고
또다시 흐를 듯 안 흐르는 눈물을 느껴가면서
또다시 이 감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책이 있을 수 있다.
자기에게 맞는 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단어'를 찾아가는 것처럼.
수많은 책을 읽고 또 읽어서
'진짜 나'에 가까운,
본질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 중에 내게 가장 가깝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책들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언젠가 이 책보다 좀 더 내게 다가오는 책이 있더라도,
그런 책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잃고 싶지는 않은 책이다.




김혜진.<프루스트 클럽>.출판사 바람의 아이들. 반올림 시리즈 6번.
저자의 다른 책. <밤을 들려줘> 등

책 안의 책. 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캐나다로 떠나버려 소식을 알 수 없는 나원이,
끝내 먼저 떠나버려 다시는 마주할 수 없는 효은이,
그리고
과거에 아파하며 다시금 그때를 떠올리는 윤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오데뜨, 그리고 제영군.


다섯 명의 사람들이 그려가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가깝고, 아프고, 또 아름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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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3

461

 

 

 

천계는 어떻게든 회유를 했으니 상관은 없고 지금은 검은 높새바람의 공중요새에서 에밀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토끼 인형으로 가득한 에밀리의 방은, 정말 살아 움직일 것 같은 토끼 인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작은 무릎 위에서는 하얀 토끼 하나가 에밀리의 사랑을 받는 듯이 우월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인형주제에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하고 있다니.

 

그 옆에는 페트리가 차를 나에게 내밀면서 말을 걸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에밀리 님께서는 철저하게 어떻게 하면 모든 지도자들을 자신의 밑으로 둘지, 생각을 하고 계시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말을 걸고 건드려도 응답을 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나중에 오시는 게 어떨까요?”

 

“얼마나 걸릴 거라고 예상하는데?”

 

여전히 명상하고 있듯이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무 말 없이 2시간이 지났다고 했지만, 페트리가 말한 정보로는 최소 30분에서 최대 6시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그럼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예민하게 구는 상황인 것 같은데. 그래도 조용하게 명상을 하듯이 있는 모습을 본다면, 별의 아이답게 천체를 돌려서 진리를 파악하듯이, 이 세계도 큐브퍼즐처럼 끼워서 돌리고 맞추고 있었다.

 

“카일 씨. 예정대로 하멀 수사관에게 가는 건 어때요?”

 

“카일. 졸려.”

 

정령계로 역소환 된 이프리트와 윈디 메르아를 다시 소환했지만, 이런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좀 많이 들게 했다. 당연히 나와 계약을 맺어서 내가 부르면 오는 것이 정령들이지만, 이 정령왕들은 자기 멋대로 밖에서 뛰어 놀 수 있으니, 여전히 잡화점에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에밀리의 무릎에 하얀 토끼인형이 있다면, 내 무릎 위에는 이프리트가 베개로 삼아 누워있는 모습.

 

내 뒤에서 윈디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주위를 산만하게 만드는 1등 공신의 역할을 맡았는지. 아니면 뭘 잘못 먹었길래 에너지가 넘치는 바람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토끼인형들을 이리저리 만지고 보면서 나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윈디. 너 그것만 59번 말한 거 알고 있어?”

 

“그럼 60번을 채우도록 하죠. 예정대로 하멀 수사관에게 가는...으읍 으으읍읍!”

 

결국 아이언 클로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양손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윈디의 입을 가리고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압박용이라고 해야 하는 게 좋겠지. 적당하게 1분동안 압박을 주자 축 늘어진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건어물...아니. 윈디를 무시하고 이프리트의 머리를 빗으로 천천히 쓸어 넘기기 시작했다.

 

레시아와 시나의 경우에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잡화점을 지킨다고 했지만, 레시아의 경우에는 마계에 있는 군대를 소집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리라.

 

“아무래도 윈디의 말처럼 하멀 씨부터 찾아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이제 다 해결했거든.”

 

토끼안대에 가려져있으니 전혀 눈치를 못 챘지만, 지금 퍼즐을 다 풀었는지 토끼인형을 무릎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나 봐? 하늘에서 뭐라도 쏟아져 내려온 거야?”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지. 그건 둘째치고 곧바로 본론으론 넘어가서, 우리들은 지금 여신으로부터 한 지역을 몰살시켜도 눈감아준다는 물품을 얻어놓은 상태야. 다만 귀속이 되어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가장 은밀하게 움직여줘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네. 하지만 곧 필요 없어질 것 같은데?”

 

에밀리의 말에 내 귀가 살짝 움찔거린 것 같았다. 곧 필요 없어진다는 말을 해석하자면, 우리 누구나 다 알 수 있듯이 켈모리아가 아리엘을 마신으로 각성시킨다면, 모든 천계와 마계가 파멸을 막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니까. 굳이 카멜롯을 지금 당장 지도밖에 지워버리려는 나의 의도라면, 초기진압이라는 말이 더욱 더 큰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필요 없어질 거라는 말은 내가 실패한다는 소리인가?

 

“내가 초기진압에 실패한다라는 소리야? 아니면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아리엘이 각성을 한다는 소리야?”

 

“둘 다 아냐. 아리엘은 이미 각성한지 오래였고, 카멜롯 전체는 그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지. 애초에 이 허무맹랑한 상황에서 진실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은 하멀과 나 밖에 없어.”

 

하멀 씨와 에밀리 밖에 없다는 말이라면? 진실과 똑바로 마주할 수 없다는 소리인가?

 

“레이베리아의 힘을 이어받았으면 지금 초기 진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너무 늦어버린 뒤라서 말이지. 이런 아슬아슬한 경계를 만약 카일이 스스로 깨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카일이야 말로 영웅이 되는 거지. 우리는 위험하니까 깨어나지 않는 척. 인지하지 않는 척을 하고 있어도. 카일은 그런 참혹한 현실을 받아드릴 이유는 없잖아?”

 

무슨 소리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뭔가 뒤틀려 있는 장소에 있다는 소리일까? 아리엘이 각성한지 이미 오래라면 지금 당장 막아야 할 텐데.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이게 가상의 세계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

 

“바보 같은. 그럴 리가 없잖아? 현실인지 꿈인지 확인하고 싶으면, 동전이라도 돌려보던가?”

 

그럼 대체 뭘 대한 인지라는 걸까? 뭘 깨어나야 한다는 소리지? 나는 머리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는데, 에밀리는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확실히 별의 아이가 유별나다고 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어린애는 주스를 마셔야 하는 나이인데, 차를 마시면서 즐기고 있는 모습에 이질적인 기분이 내 등을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선문답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뭘 조심하라는 거야? 뭘 인지하고 뭘 깨어나야 한다는 건데?”

 

“공포야.”

 

공포?

 

“카일은 공포에 대해서 똑바로 마주봐야 제대로 된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지금 당장 켈모리아를 처단해야 할지. 아니면 카멜롯 그 자체를 날려야 할지. 선택은 카일의 몫이지만 이번엔 제대로 해결해주길 바래.”

 

“이번엔?”

 

에밀리가 말하는 것은 하나하나 숨겨진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반인의 청각으로 받아들이면서 뇌에서 아무리 집어봐도, 그에 근접한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별의 아이라서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의 모든 이치를 보게 되는 것일까?

 

내가 답답해 하는 것은 이프리트를 통해 할 수 있었는데.

 

“카일? 무릎 떨지마. 자는데 방해돼.”

 

“이제 낮이니까 좀 일어나요. 이프리트.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나의 일생에 있어서 잠은 중요해.”

 

여전히 오랜지 빛의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 중 하나인 내 무릎을 베고 다시 자려고 했지만….

 

“이프리트. 동화할 준비나 하세요. 이 장소에서 곧 나가야 하니까.”

 

“알았어. 대신 5시간만 더.”

 

“놓고 가기 전에 당장 안 일어나!”

 

소리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에밀리는 휘파람으로 분위기를 쓸어 내렸다. 그 휘파람에 멈춘 나는 서서히 에밀리를 올려다 보았고, 언제부터인가 내 앞에 서있는 에밀리는 조용히 이프리트에게 손을 뻗어내면서, 다음과 같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다른 정령왕에 비해서는 너무 어리니까. 카일이 잘 보듬어 줘야 한다고?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카일이 혼자 독점하는 것은 너무하지만, 그래도 엘티노스 잡화점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로 엘티노스의 이름을 이어받겠다면, 카일 옆에 붙어있는 모든 사람들을 굽어살펴야 한다고? 그러니 이프리트가 응석을 부린다면 받아줘야 하고, 마왕과 빛의 여신이 밤자리를 요청한다면 그걸 피하지 말라고? 그 외에도 주변 여성들에게 좀 자비를 준다면, 이번 일은 매우 쉽게 진행이 될 거라 생각해.”

 

“느닷없이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는데?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발언 아냐?”

 

“그것도 다 필요한 수단이야. 카일 씨는 일이 유연하고도 빠르게 진행되면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에 대한 제시를 한 것뿐이지. 여전히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카일 씨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부탁을 하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에밀리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이유라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겠지.

 

“유연하게 일이 진행되면 좋아하지만, 너도 아직까지 어리다고 생각해.”

 

이프리트와 윈디를 동화시키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앉아있을 때는 에밀리와 비슷비슷한 키로 있었지만, 역시 일어나보면 나의 키가 더 컸다.

 

“작전이 잘 먹히는 것은 매복이 있다는 거야. 내가 안심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전에, 차라리 내가 고생을 하고 말지. 그리고 비장의 카드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사람이 이기는 거야.”

 

어린애에게 충고를 하는 심정으로 말했지만, 에밀리가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그러면 카일 씨가 항상 바라는 이상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으면 알아서 하도록 해. 확실히 어린애의 충고를 듣는 것은 어른으로서 할 게 못 되지?”

 

그 말을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나보다 강한 사람들은 사방에 널려있으니, 힘 차이로 인한 무력함으로 내 발이 무거워진 것은 아니고, 차라리 에밀리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휘어잡았다.

 

공포와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부터, 아리엘은 이미 각성한지 오래라는 말. 차라리 모르고 진행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은 말밖에 없었다.

 

“하긴, 켈모리아가 내가 간 이후에는 곧바로 아리엘을 각성시킬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평화롭게 지내고 있단 말이야? 뭐 부셔지는 일도 없고, 잡화점에는 공격도 들어오지 않았지. 오히려 천계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여신들을 진정시킨 것밖에 없어.”

 

“그게 뭐가 이상한 건가요? 카일 씨?”

 

윈디의 질문에 대답이라고 한다면...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이야. 마신을 각성시켰다면 이곳이 먼저 난장판이 되어야겠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니까. 그게 더 어처구니 없다는 소리가 되는 거야.”

 

아니면 지금 아리엘을 통제하지 못하는 켈모리아가 일시적으로 봉인한 상태라던가. 머릿속에서 모든 에너지를 활용해서 추측이란 추측은 다 뽑아내고 있었다.

 

“너무 미래에 있는 일을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아까 전에 그 별의 아이가 하는 말도 그렇고, 그냥 잡화점 안에 있는 다른 분들에게 부탁해보는 것이 어때요?”

 

“내가 부탁할 일은 따로 있어.”

 

“좀 더 중요한 일을 부탁하라는 소리에요. 예를 들어서 적진 한가운데에 정보를 꺼내오거나,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1성구부터 7성구까지 다 모아서 신룡을 부른다거나.”

 

“그 사람들이 다른 차원에 가면 난장판이 될 것 같으니, 그런 일은 시키면 안 돼. 아무래도 하멀 씨가 좀 더 쉽게 알려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는 프리트론으로 가야 할 것 같으니 부탁할게 윈디.”

 

 

천칭들의 모임에 모여드는 지도자들을 규합하고 통제하는 일은, 에밀리가 알아서 해줄 것이니. 에밀리와 하멀 씨가 인지하고 있는 위협에 대해 묻기 위해, 떨어지는 빗물과 함께 땅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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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서 그나마 덥지 않은 듯한...아 에어컨을 틀었구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