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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산책

Salvete! Vos noscere gaudeo!

Salvete. Vos noscere gaudeo!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의 첫 번째 라틴어 산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산책이고 하니,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에 필요한 문장들을 배워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살펴볼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오늘 배운 단어들을 어원으로 삼는 영어 단어들 또한 소개해드릴게요.

 

오늘의 표현

 

어느 나라 말을 배워도, 처음 배워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사하고 자기소개겠죠? 물론 이 인사를 알아듣고 화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먼저 인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Salve! 

 

만약 인사를 받는 상대방이 여럿인 경우에는 뒤에 -te만 붙이면 됩니다.
 

Salvete!

 

인사를 한 다음에는 자기 이름을 소개해야겠죠?

 

Ioannes vocor.

 

Ioannes는 제 이름 John의 라틴어로 바꾼 것이고요, 여기서 vocor는 ~라고 불리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나는 요아네스라고 불려"이고, 조금 더 정중하고 올바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Nomen mihi est Ioannes.

 

Nomen은 이름, mihi는 for me, 나를 위한 이란 뜻입니다. est는 be동사에 해당하며, 마지막으로 이름이 붙습니다. 번역하면, "나를 위한 이름은 요아네스 야"라는 아주 이상한 문장이 되지만, 실제로 라틴어에서는 이게 더 자주 쓰이는 표현이라고 하네요.

 

이번에는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법을 배워볼까요? 저는 학생입니다 를 한 번 배워볼게요.

 

discipulus sum. 혹은 discipula sum. 

 

만약 남성분이 시라면 discipulus, 여성분이 시라면 discipula라고 하면 돼요. 둘 다 각각 학생을 의미하는 라틴어입니다. sum은 여기서 be 동사에 해당하고요. 왜 앞에서 be 동사는 est 였는데 지금은 sum이었냐고요? 그건 다음 시간에 자세히 소개해드릴게요.

 

인사도 하고 자기 이름도 말했으면, 이제 "만나서 반가워"하고 이야기해야겠죠? 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Te noscere gaudeo!

 

반면 상대가 여럿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Vos noscere gaudeo!

 

뜻은 Te/Vos은 당신 혹은 당신들을, noscere는 알게 되다, 알게 되는 것. 마지막으로 gaudeo는 나를 기쁘게 하다. 당신을 알게 되어서 나는 기쁘다. 그러므로 만나서 반갑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번에는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는 법을 배워볼까요?

 

Quod nomen tibi est?

 

nomen은 내 이름을 소개할 때, 이름이라고 얘기했었죠? Quod는 which 혹은 who 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mihi가 나를 위한 이었던 것처럼, tibi는 for you, 너를 위한 이란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est는 be동사에 해당하죠. 즉, "너를 위한 이름은 무엇이야?"가 바로 네 이름은 뭐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 역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이 표현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해요.

 

마지막으로 작별할 때의 인사는 무엇일까요?

 

Vale!

 

Salve와 마찬가지로, 여럿에게 건네는 작별에는 -te만 붙이면 됩니다.

 

Valete!

 

마지막으로 그러면 오늘 배운 표현들을 다 복습해볼까요?

 

Salve/Salvete!                              안녕하세요(단수/복수)

Ioannes vocor.                             요아네스라고 합니다.

Nomen mihi est Ioannes.           제 이름은 요아네스입니다.

Discipulus/Discipula sum.          저는 학생입니다.(남/녀)

Quod nomen tibi est?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Te/Vos noscere gaudeo.            만나서 반갑습니다.

Vale/Valete!                               다음에 봐요(단수/복수)

 

그럼 이 표현들을 어떻게 발음할까요?

 

일단 라틴어의 V는 U나 W로 발음합니다. 뒤에 자음이 오면 U로, 모음이 오면 W로 발음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R 같은 경우는 마치 개가 으르렁하듯 혀를 떨어주어야 하는데, 이게 익숙해지는 데는 조금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으르르 으르르 하면서 연습해보세요. 아무도 없을 때요. 좀 많이 부끄러워요.

그 외의 대부분의 라틴어는 알파벳이 쓰여있는 대로 읽습니다. 영어에 비해서 발음을 배우기가 정말 쉬운 언어가 아닐 수 없지요.

 

오늘의 표현들을 발음으로 써보면 다음과 같아요.

 

Salve/Salvete!                              살웨/살웨테

Ioannes vocor.                             요아네스 워코르

Nomen mihi est Ioannes.           노멘 미히 에스트 요아네스

Discipulus/Discipula sum.          디스키풀루스/디스키풀라 숨

Quod nomen tibi est?                쿼드 노멘 티비 에스트?

Te/Vos noscere gaudeo.            테/워스 노스케레 가우데오.

Vale/Valete!                               왈레/왈레테

 

단어의 숲

 

마지막으로 영어 단어들 중 오늘 배운 어휘를 뿌리로 삼는 단어들을 몇 개 소개해볼게요.

 

Salve 가 인사말인걸 보면 , salv- 로 시작하는 많은 영어 단어들이 평안, 안녕 등의 의미를 담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대표적으로 salvation (구원), salve (연고), salvage(인양)등이 있죠.

 

불리다 vocor의 경우도 부르다 voco에서 파생된 말인데, 역시 이에서 기원한 영어 단어들이 많죠. vocabulary(어휘), convocate(소집하다), vocation 같은 말은 부름 받음, 즉 천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요.

 

이름인 Nomen 은 화학을 하는 분들이라면 분자식의 이름을 정하는 방법으로 Nomenclature라는 단어를 보셨을 거예요. 작명법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noun(명사)도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해요.

 

discipulus/discipula는 딱 보면 disciple(제자/사도)와 discipline(규율/훈육)의 어원이 어디서 근거했는지 알 수 있죠?

 

알게 되다 noscere. 이걸 보면 영어 단어들 중 알다, 깨우치다의 의미를 담은 많은 단어들이 no-라는 어근을 공유하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란 걸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notion(생각), notice(알아차리다), ignorant(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notorious 같은 경우도 원래 의미는 '잘 알려진'인데, 지금은 나쁜 의미로 잘 알려진, 즉 악명 높은 이란 의미를 갖게 되었죠.

 

마지막으로 작별인사인 vale는 valere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는데 이는 강하다는 뜻입니다. 마치 작별이 건강해야 돼 하는 느낌 같죠? 여기서도 참 많은 단어가 파생됩니다. value(가치)라는 단어도, 더불어 evaluation(평가)도 이와 뿌리가 같으며, equivalent는 같은(equal)과 강한이 합쳐져 동등한 이라는 의미를, ambivalent는 양쪽/둘(ambi-)과 가치가 합쳐져, 양면가치의 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자 오늘의 라틴어 산책 즐거우셨나요? 다음엔 왜 be동사가 어쩔 땐 est이고, 어쩔 땐 sum 인지. 왜 학생은 남성이냐 여성이냐 따라 다른지. 라틴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소개해드릴게요. 그럼 모두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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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캔버스에 여백, 2018.

 

 

 

  회화에 있어 여백이란 배경을 그대로 비워둠으로써 캔버스 위 작은 설국雪國을 입맛대로 상상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또는 반대로 여백이 아닌 부분에 시선을 더 오래 두도록 유혹하기도 한다.

 

 

  실은 퇴근길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읽은 이 글 때문에 갑자기 든 생각이면서, 기어이 ‘상상력을 숨겨두고 살 만큼 마음이 메마른 사람은 되기 싫다’는 거창한 핑계를 내세우며 취미 미술반에 등록했다. 하지만 첫 수업이 있던 날, 비장한 표정으로 건물 앞에 다다른 나는 화실 문턱을 넘자마자 그만 머리에 피도 채 마르지 않은 여고생의 마음이 되고 말았다. 12년 만에 처음 잡아본 4B연필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희멀건 손가락과 흰 도화지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나는 이왕 철딱서니 없이 시작한 일, 첫 날엔 공쳐도 괜찮다며 철없는 자기위안에 빠져들기로 결정했다. 능청을 떨며 자분자분 주변을 살피니 화실의 모습이 꼭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붙이자면 『Hello Strangers』, 91×65.2cm, 캔버스에 유채, 2018. 정도가 어떨까.

 

  한 타임 당 예닐곱 명에 불과한 소규모 클래스였지만, 강사 1명이 2시간 동안 우리 모두의 그림을 꼼꼼히 돌봐주기엔 부족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인이 된 후의 첫 그림에 대한 살뜰한 보살핌을 바랐던 내게 선생님의 깃털처럼 가벼운 눈빛은 그다지 만족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감동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 4B연필에 뭐 사연이라도 있어요? 계속 노려보네. 낯설지만, 그보다 더 냉랭한 수업시간의 분위기를 단번에 풀어줄 만큼 다정한 목소리. 나는 그날 화실에서 진이를 처음 만났다.

 

  수업이 끝난 건 오후 4시가 갓 넘어 이른 시각이었지만 목을 축이기엔 커피보다 맥주가 나을 것 같아 근처 호프로 이동했다. 나보다 석 달 먼저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진이는 아버지를 그리는 게 목표라 했다. 가족애가 남다른가보다 싶어 나도 보조를 맞추려 우리 집 식구들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자 그는 술이 들어가서 말이 술술 나오냐며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뺨이 봉숭아처럼 물든 뒤에는 술잔에 술을 따르듯 자기 이야기를 술술 흘렸다.

 

  내가 아주 작았을 때 올려다본 아버지는 그냥 큰 사람이었어. 물론 모든 아버지들이 그런 경향이 있지만 내 아버지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그래보였지. 왜 그런 형용사 있잖아. ‘크다, 넓다, 단단하다’ 같은 말… 왜 사람이 나이 들면 잔뜩 쪼그라들고, 그래서 불쌍해 보이고, 연민을 자극하는 모든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어서 꼭 콩떡처럼 된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아직도 아버지는 그냥 대문자야. 저 혼자 우뚝 선 알파벳 대문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사람.

 

  하지만 자기의 주관을 갖고 붓칠을 할 수 있게 된 시기부터는 긴 면이 고작 41센티 정도 되는 화폭 안에도 그를 집어넣을 수 있다고, 심지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꼬마병정만큼 줄여서 그릴 수도 있다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병정만치 자그마하게 아버지를 그리면 그 옆엔 무얼 둘 거냐고 물었더니 아무 것도 두지 않는단다. 파란 하늘도, 깨끗한 물도, 보기 좋은 꽃도, 건강해 보이는 강아지도, 아내도 아들도 전부 그의 곁엔 놓고 싶지 않다고.

 

  술자리가 마무리되고 밖으로 나와 발을 내딛은 길 위에서 혀도 다리도 꼬여버린 진이는 비탈길을 비틀길이라 우겨대기 시작했다. 물기 가득한 그의 혀에서 툭 튀어나오는 오타誤打가 마치 내 심장 중앙에 콩 콩 점을 찍는 것처럼 느껴져서, 들키지 않으려 쿵 쿵 큰 보폭으로 앞서나갔다. 나는 진이가 좋았지만 당장 그걸 알리고 싶진 않았다. 그가 깨닫는 때가 온다면, 서로가 감춰둔 빈 화폭 위에 점 하나 찍어도 웃어넘길 수 있을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틀비틀 비틀길을 걷던 진이는 딱 한 잔만 더 하자며 나를 불러 세웠다. 오늘만 살 거냐고 묻는 내게 속 빈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소주잔을 앞에 두고 영 횡설수설하던 그는, 그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고 단단하기만 한 병정 곁에 꼭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면 하얀 눈밭을 선물해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진짜 눈을 줘야지. 스키장 같은 데서 퍼다가 부어버리는 건 안 돼. 그건 진짜 눈이 아니니까. 가짜 눈엔 붓질도 안 될걸. 내 여백을 그런 식으로 망칠 순 없지.

 

  그리고 그 위엔 옛날의 공기를, 그 공기 안의 기억과 기분과 마음 따위를 떠다니게 할 거라고.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라 물감으로 덧칠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거라고. 그래서 그걸 그릴 수 있게 될 때까지 비틀길을 넘어 화실에 다닐 거라고, 그는 말했다. 그럼 우리가 언젠가 화실에서 만날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 날이 너에겐 축일祝日이겠구나. 하얀 눈밭 위엔 네 숨, 엄마 숨, 날숨 그런 걸 올려둘 테니. 그럼 그 날 비로소 가족이 완성될 테니. 진이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연거푸 세 번이나 원 샷으로 소주를 들이켰다. 절대로 아버지를 따뜻하게 그릴 수 없는 사람. 하지만 그의 곁에 둔 여백을 세상 가장 오랫동안 지켜볼 사람. 나는 진이가 그릴 눈밭의 기온이 영하권으로는 내려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흰 여백에 쌓인 진짜 눈이 녹아버리면 다시 흰 물감으로 눈을 퍼와 노병老兵의 여백을 지켜줄 신병新兵의 모습을 상상했다. 짐짓 하품을 하며 빈 잔 위로 흘린 두어 방울의 눈물과 이게 바로 참이슬이라는 농담을 흘리는 진이의 한 마디를, 나는 그냥 흐르도록 두었다.

 

  어떤 남자에게 여백이란 희미해진 과거의 원망들을 캔버스 위에 까무룩 내려놓음으로써 더 이상 이슬에 취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도구로 쓰인다. 그게 아니라면, 실은 그 흰 벌판을 단 한 번도 가까이에서 마주하지 못한 아버지의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등바등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하얀 욕심 같은 것. 그의 여백이 완성되는 날, 나는 이런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여백』, 333×218cm, 캔버스에 수채, 2018.

 

 

 

 

                                                                  작년 겨울, 그림을 그리던 친구를 보며 썼던 <그 남자의 여백>이라는 글에

                                                                                                                조금 살을 붙여 다시 써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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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산책

Cur Linguam Latinam?

        간혹 영어로 적힌 글들을 읽다 보면, 같은 알파벳이지만 생소한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의 Carpe Diem. 현상 유지를 의미하는 Status Quo. 생물학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는 Homo Sapiens. 모 대학교의 로고에 조그마하게 박힌 Veritas Lux Mea도 있군요.

 

        교과서를 살펴보면 이런 생소한 말들이 더 자주 나옵니다. "예를 들어"를 의미하는 e.g. 는 exempli gratia의 줄임말이며, "다시 말하면"을 의미하는 i.e. 는 id est의 약자입니다. "잘 알아두어라"를 의미하는 n.b. 도 "기타 등등"을 의미하는 etc. 도 모두 nota bene와 et cetera의 줄임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어떤 언어이며, 어쩌다 영어에 이렇게 깊게 뿌리 박혀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영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요?

 

콜로세움에서 발견된 라틴어 비석. 지금 널리 사용되는 알파벳은
사실 영어 문자 체계가 아니라 라틴어 문자 체계, 즉 로마자다.

   

        이 언어의 정체는 바로 라틴어. 이제는 역사의 발자취로 사라진 고대 로마의 모국어입니다. 안타깝게도 라틴어를 공식적인 국어로 삼는 국가는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바티칸 시국에서는 중요한 가톨릭 의례에서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만, 다른 나라의 일상어처럼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조금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젠 사용하는 나라도 없는 언어를 왜 배워야 하나요?

 

        어리석게도 저는 이 질문에 대해 굉장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답을 붙잡고, 덜컥 라틴어 공부를 시작해버렸습니다. 예전에 Sogno di volare라는 곡을 접하고 가사가 너무 멋있게 느껴져서 이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열망이 막연하게 생겨났습니다. 마침 그 가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글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접하고, '르네상스 시대라면 라틴어겠지, 다빈치도 라틴어를 했었다잖아'라는 매우 빈약하고 어설픈 역사관으로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곡이 이탈리아어였음을 알게 된 것은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고 3일이 지났을 무렵. 하지만 라틴어 교재도 구매한 뒤라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라면 로마의 직계 후손과 같은 존재니까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가슴 속에 품은 채로요.

 

        물론 저처럼 충동적으로 언어를 시작하시는 분들은 적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 같은 바보가 세상에 여럿이 있으면 큰 일 날거에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언제 꽃을 틔울지 모르는 나무를 키우는 것 같아 오랜 시간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풋에 비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아웃풋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히나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처럼 큰 시장을 가진 언어도 아닌, 사어가 되어버린 라틴어는 노력 대비 결과가 영 시원치 않아 보입니다.

 

        사실 누구나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스피킹을 더듬는 분들이라면, 조금 더 유창하게 영어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피킹에 문제가 없으신 이들은, 이젠 작문도 독해도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감이 붙더라도,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계속해서 피어납니다. 왠지 지금 자신의 수준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는 것 같고, 그 경지로 온 몸을 부딪쳐보고 싶은 마음은 아마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친구부터, 미국에서 평생을 지낸 사람들까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밟고 계시다면, 언젠가 부딪쳐야 할 관문은 라틴어라고 저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원어민 수준으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중 대부분은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탄합니다. "한국어를 더 잘하고 싶어. 신문이나 뉴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러면 저는 조언합니다. 저는 그러면 한국어를 넘어서 한자를 공부해야 할 때라고. 영어, 더 나아가서 서구 언어에 라틴어의 위치가 그렇습니다. 정말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언젠가는 라틴어를 배워야한다는 것이, 라틴어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의 답변입니다.

 

        언어를 논하는데 문화를 배제할 수 없겠지요. 특히나 문화교류가 활발한 국가들일수록, 언어도 서로를 닮아갑니다. 중국과 오랜 시간 영향을 주고받은 한국과 일본도, 한자는 더 이상 필수 불가분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한자가 불편하다, 외울 것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문화라는 것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오늘부터 이전 문화로부터 독립이야! 이제 한자는 폐지하고 순우리말만 쓸 거야!"라고 할 수 없듯, 문화는 연속체이며 언어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라틴어 역시 이제는 2000여 년의 시간 동안 변화를 축적해 각기 다른 언어로 변모했지만,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등 다양한 서구 언어들이 여전히 눈에 띄게 공통점이 많은 이유는, 결국 이 언어를 쓰는 국가들이 로마 문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라틴어를 알아두면 유럽의 다양한 언어들을 배우는데 용이합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단말마, "Et tu, Brute?"
여기서 Brutus가 아니라 Brute인 이유는 문장 안에서 호칭으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라틴어를 배워야 되는 이유는, 라틴어는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구하고 찬란했던 역사를 품었던 로마제국은 동과 서로 분열되었고,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동로마, 이른바 비잔티움은 오스만 제국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됩니다. (사실: 비잔티움 몰락 당시에는 라틴어를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대 라틴어는, 서로마제국의 몰락 이후에 평민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로망스어로 분화되었으나, 여전히 가톨릭 문화에는 라틴어의 입지가 굳건했었습니다. 중세시대가 끝나고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면서, 인문학과 인본주의로 회귀하는 문화가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이 때 라틴어는 다시 한번 크게 각광을 받았으며, 그렇게 명맥을 이어 내려오며 발전된 라틴어는 이제는 수학, 과학, 신학, 법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 전반에 걸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미적분을 소개하는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역시 라틴어로 적혔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기원이 되는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 원리(Principle of Philosophy)또한 마찬가집니다. 생물 분류법을 창시한 칼 폰 린네는 라틴어를 사용해 분류했고, 지금까지도 생물 분류법에 사용되는 역, 계, 문, 강, 목, 과, 속, 종은 대개 라틴어를 기반으로 두고 있습니다. 해부학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명칭들도 라틴어에서 기반했고, 법조계에서도 라틴어로 된 표현들은 여전히 즐비합니다. 이렇게 라틴어는 수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 문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로 충분했나요? 그래 라틴어가 참 흥미가 가는 언어야, 근데 영 배울 자신은 안나. 굳이 배워야 할까?라는 의문이 드시나요? 부담 갖지 마세요. 저 역시 이제 겨우 라틴어를 배우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배우면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복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저는 지금까지 배운 걸 포스팅으로 정리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선 제 복습을 보시면서 공부하시고, 저는 여러분들께 더 정확한 설명을 드리고자 복습하는, 그런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 작은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만하면 개관으로 충분할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으로 여러분에게 건네는 라틴어로의 초대장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상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5.6번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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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16

허기가 진 인부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나디아는 한 명 한 명에게 포도주를 따라 주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날이었다. 스케베라스산이 펼쳐진 빌구의 성벽에서 인부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막바지 작업에 열중했고 나디아는 빵과 포도주를 챙겨 왔다. 지중해는 늘 그렇듯이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했고 하늘에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햇빛은 수면을 간지럽혔고 물결은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인부들은 포도주를 들이켰다.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고 양젖으로 만든 치즈는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혔다. 그들은 연신 싱글벙글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함선이다! 성 요한 기사단의 함선이 돌아왔다!"
인부 중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디아는 포도주 따르기를 멈추고 성벽 앞으로 걸어갔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 성 안나호의 붉은 십자가 깃발이 위풍당당하게 펄럭거리고 있었다. 나디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머리속은 오로지 마르삼세트 항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디아는 포도주 항아리를 내려놓고 성벽 아래로 뛰었다. 해안을 따라 달리며 그녀는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붉은 십자가 깃발은 그녀를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나디아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항구로 들어섰다. 십자가가 새겨진 기사단 망토를 본 순간 나디아는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다리가 세차게 떨렸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을 수 없었다. 마중을 나온 기사단원들과 부둥켜 안으며 기뻐하는 발레트를 보자 눈물이 가득 차 올랐다. 나디아는 가슴을 움켜잡고 가까스로 눈물을 삼켰다.
지아니는 천천히 땅을 밟았다. 그토록 꿈꿔온 순간이었는데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대로였다. 몰타의 색, 공기, 소리... 그리웠던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지난 5년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그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발레트, 수고했네.."
"단장님.."
릴라당은 발레트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아꼈다. 주름진 릴라당의 눈가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발레트는 스케베라스산을 올려다 보았다. 그는 처음 몰타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이제 몰타는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나디아!"
익숙한 그 이름에 발레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아니는 벌써 저만치 앞서 뛰어가고 있었다. 부두가 시작하는 곳에서 나디아는 몰타를 떠났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발레트는 나디아의 얼굴을 보자 세상을 다 담을 만큼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뛰었다. 기사단원들은 발레트의 모습을 우두커니 보고만 있었다. 마르삼세트 항은 만남과 헤어짐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처음의 설레임과 마지막의 서글픔은 항구에 늘 존재했다. 그러나 기다림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고 끝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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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15

며칠 동안 맹렬히 퍼부은 공격으로 튀니스의 길목인 라골레타 항구의 요새는 무너졌고 에스파냐 동맹군은 육지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승리의 기세는 에스파냐로 기울어졌다. 항구는 이제 에스파냐 동맹군의 함대가 장악하게 되었다. 바르바로사는 질겁하며 튀니스 성벽으로 도망쳐 버렸다. 튀니스는 호수 주변에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녹색의 도시라고도 불렸다. 호수 뒤편에는 길다란 성벽이 펼쳐져 있었다. 에스파냐 동맹군 앞에는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자리에 가만히 앉아 밖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포격은 멈췄다. 해적의 발길이 끊긴 것으로 보아 라골레타는 에스파냐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엄청난 긴장감을 동반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지상에서 어떤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앞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그것은 또아리를 틀고 혀를 내미는 뱀처럼 그들에게 공격적으로 다가왔다.
'덜컹'
덜그럭거리는 쇳소리에 발레트는 고개를 들었다. 검은 물체가 철창 앞에서 조심스레 자물쇠를 열고 있었다. 모두 떨리는 마음으로 의문투성이 침입자의 행동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발레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족쇄 찬 손을 꽉 쥐었다. 검은 실루엣이 몸을 굽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망토에 달린 모자를 내렸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어서 여기를 나갑시다."
남자는 빠르게 사람들의 족쇄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작은 쇳덩어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발레트는 손을 움켜 쥐었다 다시 폈다.
"자, 어서 나가야 해요."
남자는 주변을 살피며 사람들을 재촉했다. 발레트는 나가려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왜 우리를 풀어주는 거요?"
남자는 망토의 모자를 올려쓰며 말했다.
"나도 당신과 같은 기독교도요."
남자는 배교자였다. 에스파냐 함대가 라골레타를 공격하자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편을 바꾼 것이었다. 바르바로사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노예들을 죽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적들은 이미 요새 안으로 숨어 버렸고 배교한 남자는 지하 감옥에 있는 기독교 포로들을 풀어줄 수 있었다. 성벽 밖에는 에스파냐 동맹군이 자리하고 있고 해적들은 성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면 성 안에는 힘없는 주민들 뿐이었다. 발레트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병기창이 어디에 있소?"
해적을 상대하려면 무기가 필요했다. 포로된 기독교도 숫자가 많으니 무기만 있다면 승산은 있었다.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이쪽이요."
로메가스와 지아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심호흡을 한 후 벽에 붙어 살금살금 걸어갔다. 달빛은 일렬로 뛰어가는 그림자들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성벽 위에 서 있던 해적이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발레트는 손을 들어 뒷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거리 곳곳에 무장한 기독교 노예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둠이 빛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튀니스 성벽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에스파냐 동맹군은 성벽 위에 높이 들린 등불을 보았다. 거대한 성문이 열리고 동맹군은 기세등등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바르바로사는 어젯밤, 튀니스를 버리고 알제로 도망쳤다. 성 안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랍 주민들만 남아 있었다. 어제까지 족쇄 찬 노예 신분이었던 많은 기독교도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에 취해 있었다. 발레트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주위를 한바퀴 둘러 보았다. 로메가스는 손을 높이 들며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고 지아니는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있었다. 발레트는 손을 펼쳐 보았다. 손목에는 족쇄 찬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멀리서 붉은 십자가 망토를 두른 성 요한 기사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로메가스가 뛰쳐나갔다. 발레트도 그 뒤를 따라 달렸다.

 

 

군대에 이질이 돌아 알제로 도망친 바르바로사를 끝까지 추격하지 못한 카를 5세는 해적을 피해 도망친 하산을 튀니스의 허수아비 지도자로 복귀시키고 에스파냐 수비대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에스파냐로 철수 명령을 내렸다. 라골레타 항은 고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함선으로 가득 찼다.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안드레아는 북아프리카의 메마른 바람을 맞으며 항구를 거닐었다. 저 멀리 성 요한 기사단의 무장 상선 성 안나호가 보였다. 붉은 십자가 깃발은 바람을 반기며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이, 이게 누구야? 딴 사람이 되었는걸?"
깨끗해진 턱을 만지며 멋쩍어하는 지아니를 위아래로 훑으며 로메가스가 말했다. 옷을 갖추어 입고 머리와 수염을 자른 지아니는 다른 사람같아 보였다. 발레트는 환하게 웃으며 지아니에게 다가갔다.
"푹 쉬면서 영양을 섭취하면 몸은 원상태로 돌아올 거요."
발레트는 지아니의 건강이 염려되었으나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지아니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떤 말로도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마음이 들떠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몰타가 바로 앞이에요."
지아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발레트와 로메가스도 바다로 눈을 돌렸다. 모든 것을 감싸주는 푸른 세상이었다. 그리고 수평선 너머에 몰타가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남았어요. 그전에 우리끼리 회포를 푸는게 어때요?"
로메가스는 발레트와 지아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빙긋이 웃었다. 로메가스의 얼굴을 본 발레트와 지아니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로메가스도 뒤따라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항구가 떠나갈 정도로 한참을 웃어댔다. 한바탕 웃고 나니 발레트는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조금 더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세 사람은 십대 소년들처럼 떠들면서 항구의 주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에는 해군 복장을 한 남자가 그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발레트도 그를 지나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아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색으로 새겨진 십자가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안드레아는 지중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디아를 생각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성 안나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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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전

사진

 

사진 Photo

: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것

 

 

제주 여기저기를 다니며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보려고 노력해보다가 지금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내 카메라가 고가가 아니기도 했지만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가져도 절경을 사진 속으로 제대로 옮겨오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제주도에 내려와서 금방 깨달았다.

                                                                                              - 요조,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中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 갈 수 있는 곳에 가서 그 안에 있는 작고 평범한 것들을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때때로 사진을 찍는다. 풍경을 앞에 두고는 인증샷보다 풀, 꽃, 흙, 물 그대로를 담는다. 그렇게 찍힌 사진 속에 내 얼굴은 없지만, 기록 장치에 저장되기 전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가장 먼저 사진을 확인한 게 나니까. 그 정도로 충분하다. 잘 찍힌 사진을 확인하며 그 때 그 순간, 그 장소, 그 대상에 대한 나의 애정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전부를 옮겨올 수는 없지만, 사람에게 사진은 기억을 소환하는 가장 좋은 매개체가 되어주기에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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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3 - 4

587

 

 

 

어떤 삶을 살고 있던 나는 과연 정상을 위해 도약하는가? 아니면 절벽에서 추락하는가? 그걸 알아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걸 꿋꿋하게 보여주겠다고 절벽에서 밀어버린다면,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기분이 수 십 차례나 맴돌게 된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을 마주할 때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멋대로 사고하는 바가 있다.

 

그래도 지금은 내 멋대로라도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루니아 누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카일~ 아~”

 

“제가 먹을 수 있다니까요.”

 

“소녀는 언니가 받아주는 걸 먹어야 한답니다아!”

 

“남자거든요!”

 

정말로 중요한 듯하면서도 불필요한 포지션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통 4사분면으로 모든 기준을 나누는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사람의 기준은,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이익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합이 잘 맞아서 행복해야 한다. 반대로 가장 중요하지 않고 가장 불필요한 사람이라면, 손해만 있고 같이 있으면 매우 불편한 것. 그것들이 각각 1사분면과 3사분면에 속해있다고 했을 때. 루니아 누나의 경우는 확실하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받아먹고 있는 케이크가 내 입 안에서 뭉개지는 동안,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 빠져나가 여장을 풀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기로 하자.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이가 좋네요.”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비꼬는 말투겠지만, 앞에 루니아 누나와 루비아가 있는 한, 리제로트는 매우 부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홍조를 띠면서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세상 하나 없어져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평행세계 모두가 사라지니까, 지금 내 개인적인 감정에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참기로 하자.

 

얼마나 참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지금은 케이크를 받아먹으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고분고분하게 받아먹는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루니아 누나가 주는 케이크를 받아먹지 않으면, 커다란 사건 하나를 더 만드는 셈이 되니까, 얌전히 가만히 있는 것뿐이다. 사실상 케이크는 좋아하긴 하지만, 수틀리면 또 다른 난장판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 얌전하게...

 

“자. 아~ 하세요. 안 하면 또 다시 구속을 하고 질질 끌고 갈 겁니다.”

 

“루비아. 케이크를 준다면 준다는 건 고맙지만, 너도 좀 먹는 게 어때?”

 

“저는 이미 충분히 먹고 있습니다.”

 

아니, 절대로 충분히 먹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시켜놓고 나에게만 다 먹이고 있잖아. 초콜릿 케이크도 한 조각만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 접시만 5개가 쌓였다.

 

그리고...

 

“그 공허한 눈으로 먹고 있다고 말해봤자 아무도 안 믿거든! 너 여태까지 케이크조각 하나도 먹지 않고, 나에게만 퍼 먹이고 있잖아!”

 

“퍼 먹이다라는 표현은 너무 남성적이니, 여성스러운 단어로 떠 먹여준다는 표현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애초에 말하는 것에 대해 남성적과 여성스러움이 뭐가 중요해!”

 

“그렇게 제가 먹는 모습이 보고 싶다면 차라리 저에게도 떠먹여주시죠?”

 

“접시까지 다 넣어줄 테니 입 벌리고 있...크앗!”

 

살기를 감지한 것일까? 루니아 누나는 포크 뒷부분으로 내 이마를 때렸다. 다만, 내 주관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때렸다는 게 아니라, 강타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겠지. 뇌를 흔드는 충격이 아직까지 머리에서 뛰어 놀고 있는 동안, 매우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리제로트와 다른 손님들.

 

이게 뭐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상황인가?

 

“그래서 리제로트 양은? 우리 카일의 뭐죠오?”

 

“은인이에요. 적어도 제가 레이베리아로부터 살려줬죠. 그 이후에는 뜨거운 밤을 보낸...”

 

“그 어느 누구도 살려준 은인과 뜨거운 밤을 보내지 않아. 알아들어?”

 

“절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

 

“헛소리 말고! 제대로 이야기를 하란 말이야!”

 

소리지르는 것도 목에 한계가 있는데, 조만간 득음을 할 지경이다. 한숨이 기가 막히게 튀어나가는 동안 리제로트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당신의 친구는 당신의 은인에게 암살하려고 시도하잖아요?”

 

“네가 아이리스를 인형으로 만든 게 시작지점이잖아.”

 

“그때는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귀여우면 모두 인형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겠냐? 한숨이 한 가득 나오게 되는 답변을 들었지만, 리제로트는 잡화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인형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감도 살짝 맺히기 시작했다. 다만, 그런 일을 하기 전에 리제로트가 오히려 굴복하게 되지 않을까?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내가 걱정을 따로 안 해도 될 정도라니.

아니지. 내가 걱정을 끼치는 입장이었네.

 

“인형으로 만드는 게 무슨 재미가 있나요오?”

 

“그야 제 말에 복종하잖아요.”

 

잡화점에 돌아가기 전까지 한 번도 말을 섞지 않을 것 같은 루니아 누나가, 리제로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굴러오는 질문을 보기 좋게 받아 친 리제로트의 대답에, “흐응~ 그렇군요오.”라고 입을 열었다.

 

“말에 복종한다는 의미는 잘 알고 있는지요오?”

 

“말에 복종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제 명령에...”

 

“아뇨오. 당신은 타인의 진심을 여태껏 모르고 살아왔다는 말이에요오.”

 

얼어붙기 시작했다.

루니아 누나의 분위기는 항상 극과 극으로 나뉘어지는데, 이럴 때마다 항상 무서워 죽겠다. 천진난만하고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정도로 바보 같은 일을 벌여도, 루니아 누나의 본 모습을 보통 사람이 견딜 일은 없으니까.

 

리제로트가 쥐고 있던 컵이 살짝 떨기 시작했다.

 

“사람의 진심이 왜 필요한 거죠?”

 

“당신의 그 나락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함이죠오.”

 

나락 같은 삶이란 소리에 또 다시 리제로트는 흠칫하고 놀란다. 옆에 있던 월터가 그에 동요했는지, 얼어붙는 살기가 우리 주위를 몰아치기 시작했고, “월터. 가만히 있어.”라며 리제로트의 당돌한 한마디가 분위기를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다.

 

“조만간 싸움이 일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글레이프니르를 꺼낸 루비아 씨가, 다시 상황을 보고 서서히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그보다 그거 주머니에서 꺼내는 거였어?

 

그 밧줄이 그렇게 작은 주머니에 다 들어가던가?

 

“루비에몽이라고 불러주시죠.”

 

“남의 생각을 읽고 거기에 맞게 태클 걸어달라고 자신을 꾸미지 말라고!”

 

저럴 때마다 내 정신이 대나무 헬리콥터를 타고 저 멀리 날아간다. 그러나 내가 루비아와 대화를 주고 받아도, 루니아 누나와 리제로트는 서로 공방전을 하느라 바쁜데, 자세한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달그락!

 

“웃기지 마세요! 당신이야 말로 저에 대해 뭘 안다는 거에요!”

 

“저는 카일의 누나이기 이전에 기사단장이랍니다아. 많은 사람들을 봐오면서 이끌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요오. 당신도 근본적으로 착한 아이이긴 하지마안, 우리와 함께 걸어가기 위해선 자신의 능력을 버려야 해요오. 바로 저 뒤에 있는 집사 인형도 같이 말이죠오.”

 

태연하게 자신의 모든 힘을 포기하라는 루니아 누나. 그걸 부정하는 리제로트 사이에는 불길한 기운이 맴돌기만 했다.

 

“다른 이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조금 더 조용하게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일하는 종업원에게 한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

 

“그걸 줄이면 갑분싸가 됩니...”

 

“제발 내 생각 읽고 멋대로 입 열지 말아줄래!”

 

루비아는 내 생각 하나하나 전부 다 읽는 게 가능한 건가? 호문쿨루스의 특수능력이 언제부터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게 되었을까? 티르야 말로 최고의 연금술사다운 제작솜씨다.

 

“이건 티르와 관계 없습니다.”

 

“제발 같은 태클 3번 걸기 전에 자중할 수는 없는 거냐?”

 

“없습니다.”

 

“자중하라고!”

 

속도가 빠른 공방전은 이곳도 마찬가지. 각기 다른 토론대회나 만담대회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이쯤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게다가 나는 중대한 사명이 있으니, 이런 한가로운 곳에서 케이크나 강제로 받아먹으며 앉아있을 위인이 못 된다. 애초에 여장 당한 상태인데, 그 옷까지 저주받아서 벗지를 못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 저주를 풀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한단 말이지.

 

“저는 슬슬 자리에 일어나도 될까요?”

 

“안돼요오. 카일은 누나와 백장미를 촬영해야 한다고요오.”

 

대체 왜 백장미를 찍자고 하는 거냐.

 

“백장미를 찍기 전에 전 이 옷의 저주부터 풀고 싶다고요. 일단 저주를 풀어야...”

 

“다른 여성의류도 입기 때문이죠오?”

 

“아니라고!”

 

도대체 어떤 남자가 다른 여장을 하기 위해 저주를 푼다는 건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다. 그러니 루니아 누나의 사고방식은 정상범주에서 벗어나있다. 결국 비정상중의 비정상은 루니아 누나인...

 

-파악!

 

“켁!”

 

뭔가가 빠르게 날아와 내 머리를 힘껏 때렸다. 가만히 보니까 별이 5개정도 떠있는 걸 보면, 어디 돌침대가 생각나는데...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는 언제까지나 정상이랍니다아. 오히려 카일이 비정상이 아닐까요오? 자신의 귀여움을 멀리 퍼트릴 생각을 하지 않고, 숨기시려고 하시다니이...혹시! 즐길 사람만 즐기라는 뜻의 배려인가요오?”

 

“호수 같은 배려 좋아하시네! 어떻게 자매끼리 남의 생각을 읽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에 능통한 것부터가 비정상이거든요!”

 

애초에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비정상이라는 소문이 들리긴 했는데, 루니아 누나 또한 붉은 눈을 가지고 있다. 모두 주변에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을 보면, 거기를 멀리하고 집을 가까이 하는 편이 좋다.

 

“붉은 눈을 가진 사람은 천성적으로 착하고 자유롭기 때문에, 가까이 해도 좋답니다아~”

 

“내 생각 좀 그만 읽어!!!”

 

본래 독백은 남들에게 읽히라고 하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이...

 

“그전에 리제로트에게 무슨 의도로 그런 말 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지금 싸우자는 의도는 아니라고 보는데요.”

 

“싸워도 득이 없는 건 저 소녀도 잘 알고 있답니다아. 다만, 저는 카일에 대해 1%라도 위험을 없애기 위해 그리 말한 것이지요오.”

 

나를 생각해서 말했다는 말은 진심이겠지.

이전에 리제로트는 나를 납치했던 전과가 있으니까, 더 이상 나에게 위험이 되지 않도록 인형들을 포기하라는 것. 아마 인형을 만드는 그 자체를 포기하라는 거니까, 자신의 초능력을 포기하라는 셈이 된다.

 

내가 알던 인형사 사브누아는 영혼을 집어넣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리제로트는 인간의 영혼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영혼이 없을 때야 말로 가장 순수해! 그러니 귀여운 아이들을 순수한 채로 남아야 한다고!”

 

영혼이 없는 게 순수해?

그러니까 아무것도 담지 않은 그릇자체가 보기 좋다는 건가?

 

“그건 꽤 기발한 헛소리네.”

 

저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자동반사마냥 튀어나갔다.

 

“영혼이 없는 상태가 가장 순수하다고? 그래서 내 딸을 그렇게 만들었냐!”

 

그저 본능적으로 외친 소리. 다른 시간대일지 몰라도 카렌을 지키지 못했던 무기력한 자신. 그리고 엉망이 된 카렌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분노가 리제로트에게 단번에 몰아쳤다. 오늘의 일을 과거까지 끌고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내 분노에 반응한 마나들이 주변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넌 정말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의뢰를 들어주기 위해 이곳에 있지만, 말 한마디를 듣고 내가 정말 무르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잘못하지 않았다는 듯한 그런 소리를 한번만 더 하면...

 

내 분노를 마주한 리제로트에게 성큼 다가가선 나지막하게.

그리고 최대한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내 모든 걸 걸고 너 하나만큼은 꼭 죽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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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 회사는 쉬는 날이 없을까요?

요즘은 그나마 페이스 조절을 하는 거 같았는데,

일정이 당겨진 거 비해, 다른 업체에서 아직까지 일할 준비가 안 되었다니...

 

조만간 백수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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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

오늘이 지나야

그대 혼자 놀이터에서 뭐 하나요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고 울고있어요

그대 이야기 들어줄게 내게 와요

 

가능한 한 내게 말해주면 좋겠어

내가 멍청해서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요

 

위로가 필요한 날이라면

토닥토닥 안아주고

밤새도록 하소연 들어줄게요

 

그대 슬픈 기억 모두 다 내가

삼킬테니 눈물 가득한 눈빛으로 보지말아요

삶이란게 원래 그래요

세상 내가 가장 불행한 것 같아도

 

그대 곁에 언제까지나 내가 있을게

혼자 흔들리게 두지 않을게요

기운내요

오늘을 살아야 내일이 오잖아요

 

 

많이 힘들었죠

부은 두 눈에 헝클어진 머리

당장이라도 잡지 않으면

안 괜찮을 것 같아

 

몸 마음이 지친 날이라면

스르르르 기대봐요

그대만의 배게가 되어줄게요

 

그대 슬픈 기억 모두 다 내가

삼킬테니 눈물 가득한 눈빛으로 보지말아요

삶이란게 원래 그래요

세상 내가 가장 불행한 것 같아도

 

그대 곁에 언제까지나 내가 있을게

혼자 흔들리게 두지 않을게요

기운내요

오늘이 지나야 내일이 오잖아요

 

 

누구나 각자의 이유로

아픈 삶을 살아가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요

살다보면 살아있어 고마운 순간이

꼭 올거랍니다

 

그대 슬픈 기억 모두 다 내가

삼킬테니 눈물 가득한 눈빛으로 보지말아요

삶이란게 원래 그래요

세상 내가 가장 불행한 것 같아도

 

그대 곁에 언제까지나 내가 있을게

혼자 흔들리게 두지 않을게요

기운내요

오늘을 살아야 내일도 살잖아요

 

 

# 모두들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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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전

평화

 

평화 Peace

: 갈등 없이 평온하고 화목함

 

 

평화는 눈이 내리는 걸 지켜보는 거야. 평화는 누군가를 아프게 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평화는 네 자신의 모습 그대로인 거야.

                                                                                              - 토드 파, <평화 책(The Peace Book)> 中

 

 

 

 

포털 사이트에 평화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최상단에 연관검색어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름이 함께 묶여 뜬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던 금단의 선. 그 모호하면서도 진하디 진한 선을 손잡고 넘나든 남과 북 두 정상의 몇 걸음이 평화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했나 보다.

 

사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것은 유일한 개인으로서 내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는, 매우 유의미한 행위다. 내가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나누며 산다. 언제든 선을 그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

 

하지만 선을 긋는다는 것은 그 선 너머에 존재하는 누군가에 대해 알아가기를 멈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선을 거두는 순간 관심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시의時宜를 잃은 관념이 생긴다. 현재와 미래가 포함되지 않은 관념은 딱딱하게 굳어져 곧 편견이 된다. 무관심의 밭에서 자의적 기준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라난 편견은 이미 그어놓은 선 위로 더 진하고 더 강력한 선을 덧그린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은 지우기가 힘들어진다. 선 위에서 경쟁과 갈등을 즐기지만, 반복되는 전쟁은 때때로 나를 지치게 한다.

 

평화는 바로 그 균열에서 싹을 틔운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싸움은 견딜 수 있지만, 삶 전체가 온통 갈등으로 범벅이 된다고 상상하면 두렵고, 외롭고, 암담해진다. 선을 긋고 나에 대해 골몰함으로써 내가 특별하다는 사실에 대해 충분히 인지했다면, 선을 지워도 그 사실은 변함없다는 것 역시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애정과 확신을 가진 사람은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 아닌 타인을 적으로 삼는 일 따위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그리고 사실, 세상에 완벽하게 갈라져 있는 건 없다. 바다가 끝나는 곳을 땅이라 부르고, 땅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바다가 펼쳐진다. 평화의 실마리는 생각보다 원초적인 것에서 발견되곤 한다. 확실하고 단단한 내 바운더리를 벗어나 그동안 시선이 닿지 않았던 곳을 내다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떠도는 소문이 아닌, 나 자신을 믿고 미지의 것을 경험해보려는 용기.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땅 위에서 별다른 게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언가 다른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 마지막으로 미지의 것을 마침내 발견했을 때, 눈에 비치는 그 대상을 다른 판단이 끼어들 새도 없이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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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전

부정하다

 

부정하다 否定--

: 어떤 것을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거나 옳지 않다고 반대하다

 

 

생은 자기완성을 위하여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다.

                                                                                       - 함석헌, <함석헌 전집 2 : 인간혁명의 철학> 中

 

 

 

 

엄마의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진 뒤부터 우리는 교환일기를 쓰고 있다. 중학생 때 친구와, 대학생 때 남자친구와 함께 써본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어렵다. 과거 그들과의 일기가 긍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요즘 우리의 노트에는 반쯤 그늘이 져 있다. 우울감에 물든 엄마는 펜 끝에 대롱대롱 검은 잉크와 더 검은 생각을 매달고 지낸다. 과거에 대한 회한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든다. 어제의 어둠은 오늘을 뛰어넘어 며칠, 몇 달, 몇 년까지 자기영역을 확대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딸의 애정 어린 희망은 거센 자기 부정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엄마의 담장을 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담장 너머를 엿본다. 검은 잉크는 언젠가 다 쓰기 마련이고, 그걸 다 쓰고 나면 새 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푸른 바다를 닮았거나 소나무 냄새가 나는 잉크를 넣어버릴 생각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긍정도 부정만큼이나 힘이 강하다는, 설익은 믿음 하나로 견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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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14

튀니스는 해안에서 이어지는 내륙 호수 기슭에 위치한 도시였다. 마그레브 끝단에 형성된 이곳은 옛 카르타고 시절부터 북아프리카의 무역 중심지로서 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수많은 민족이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힘을 겨뤘고 무수한 통치자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좁은 해협을 따라 반나절이면 몰타에 다다를 정도로 유럽과 가까웠기에 오스만은 바르바로사를 지원해 주었고 바르바로사는 오스만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며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실현해 나갔다. 카를 5세는 북아프리카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트리폴리에 이어 튀니스가 함락되자 그들의 만행을 더 이상 못 본 체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지중해의 패권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튀니스는 철옹성같은 성채였다. 성벽 앞으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호수가 있어 해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해적들은 포로로 잡은 노예들을 성벽 지하 깊숙한 감옥에 던져 두었다. 그들은 우리에 갇힌 짐승을 대하듯 하루에 한 번 철창 문을 열고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가축처럼 노예 시장에 세워 큰 돈을 받고 노예 상인에게 팔아 버렸다. 철창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의 눈은 공포심으로 가득했다. 날마다 꾸는 악몽으로 사람들은 서로에게도 적대감을 품었다.
지하 감옥은 어둡고 축축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거나 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이곳에서 먹은 거라고는 빵 한 조각이 다였다. 발레트는 다리를 끌어당겨 두 팔로 무릎을 감쌌다. 소름끼치는 차가운 공기가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족쇄를 찬 손과 발은 점점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발레트는 맞은편에 앉은 지아니를 보았다. 지아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초록 눈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 했다. 5년간의 갤리선 생활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지아니의 몸은 젊은 성인 남자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그는 다른 노예들과는 달랐다. 그에게 절망이나 원망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지아니에게는 어떤 압력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발레트는 나디아에게도 오빠와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쾅! 저 멀리서 어렴풋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레트는 벽에 귀를 갖다대었다. 로메가스가 다가오려하자 발레트는 손을 들어 막았다. 소리는 전보다 더 크고 가깝게 들려왔다. 쾅! 발레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로메가스와 지아니도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대포 소리는 분명하고 선명하게 튀니스를 뒤흔들었다.
"함대가 왔어! 에스파냐에서 함대가 왔어. 로메가스!"
발레트는 로메가스에게 소리치며 그를 얼싸안았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눈물을 흘렸고 신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발레트는 지아니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힘껏 서로의 어깨를 잡았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말소리가 감옥 밖으로 빠져나갔다. 발레트는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했다. 그들은 성벽 아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족쇄 찬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에스파냐군이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해적들에 의해 모조리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에스파냐 함선은 항구의 요새에 무차별적으로 포를 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성벽이 뚫리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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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전

지금

 

지금 Now

: 말하는 바로 이때

 

 

마치 내 안으로 여행이라도 떠난 듯이, 내 마음속 아득한 곳에 있는, 내가 지금 느끼는 단조로움과는 매우 다른, 오래된 시골집의 단조로움을 기억한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는지 아니었는지 말해야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거기서 살았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였다. 그 삶과 지금의 삶은 비교 불가능한 다른 삶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中

 

 

 

 

오래된 친구와 만날 때면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가 좋았어”라는 말.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연신 잔을 채우고 이리저리 신나게 부딪쳐도, 어쩐지 그 말은 뼛조각처럼 마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나를 찌른다. 왜 우리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때’를 ‘좋았다’고 말하며 그리워하는 걸까. 영 마음이 불편한 까닭은, 그 말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자기긍정이 아니라 지금의 자기 자신을 반대편에 올려놓고 둘을 저울질하다 결국 지나간 시간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버리는 이상한 계산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1년 전, 그리고 오늘의 ‘그때’가 가리키는 시점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겹쳐지면서도 분리되어 있다. 어찌됐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지금’도 얼마 후면 ‘좋았던 그때’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손에 쥐고 있어 언제나 가벼운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을, 비교도 경쟁도 없이 온전히 긍정할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