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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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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는 어떻게든 회유를 했으니 상관은 없고 지금은 검은 높새바람의 공중요새에서 에밀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토끼 인형으로 가득한 에밀리의 방은, 정말 살아 움직일 것 같은 토끼 인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작은 무릎 위에서는 하얀 토끼 하나가 에밀리의 사랑을 받는 듯이 우월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인형주제에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하고 있다니.

 

그 옆에는 페트리가 차를 나에게 내밀면서 말을 걸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에밀리 님께서는 철저하게 어떻게 하면 모든 지도자들을 자신의 밑으로 둘지, 생각을 하고 계시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말을 걸고 건드려도 응답을 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나중에 오시는 게 어떨까요?”

 

“얼마나 걸릴 거라고 예상하는데?”

 

여전히 명상하고 있듯이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무 말 없이 2시간이 지났다고 했지만, 페트리가 말한 정보로는 최소 30분에서 최대 6시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그럼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예민하게 구는 상황인 것 같은데. 그래도 조용하게 명상을 하듯이 있는 모습을 본다면, 별의 아이답게 천체를 돌려서 진리를 파악하듯이, 이 세계도 큐브퍼즐처럼 끼워서 돌리고 맞추고 있었다.

 

“카일 씨. 예정대로 하멀 수사관에게 가는 건 어때요?”

 

“카일. 졸려.”

 

정령계로 역소환 된 이프리트와 윈디 메르아를 다시 소환했지만, 이런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좀 많이 들게 했다. 당연히 나와 계약을 맺어서 내가 부르면 오는 것이 정령들이지만, 이 정령왕들은 자기 멋대로 밖에서 뛰어 놀 수 있으니, 여전히 잡화점에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에밀리의 무릎에 하얀 토끼인형이 있다면, 내 무릎 위에는 이프리트가 베개로 삼아 누워있는 모습.

 

내 뒤에서 윈디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주위를 산만하게 만드는 1등 공신의 역할을 맡았는지. 아니면 뭘 잘못 먹었길래 에너지가 넘치는 바람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토끼인형들을 이리저리 만지고 보면서 나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윈디. 너 그것만 59번 말한 거 알고 있어?”

 

“그럼 60번을 채우도록 하죠. 예정대로 하멀 수사관에게 가는...으읍 으으읍읍!”

 

결국 아이언 클로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양손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윈디의 입을 가리고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압박용이라고 해야 하는 게 좋겠지. 적당하게 1분동안 압박을 주자 축 늘어진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건어물...아니. 윈디를 무시하고 이프리트의 머리를 빗으로 천천히 쓸어 넘기기 시작했다.

 

레시아와 시나의 경우에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잡화점을 지킨다고 했지만, 레시아의 경우에는 마계에 있는 군대를 소집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리라.

 

“아무래도 윈디의 말처럼 하멀 씨부터 찾아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이제 다 해결했거든.”

 

토끼안대에 가려져있으니 전혀 눈치를 못 챘지만, 지금 퍼즐을 다 풀었는지 토끼인형을 무릎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나 봐? 하늘에서 뭐라도 쏟아져 내려온 거야?”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지. 그건 둘째치고 곧바로 본론으론 넘어가서, 우리들은 지금 여신으로부터 한 지역을 몰살시켜도 눈감아준다는 물품을 얻어놓은 상태야. 다만 귀속이 되어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가장 은밀하게 움직여줘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네. 하지만 곧 필요 없어질 것 같은데?”

 

에밀리의 말에 내 귀가 살짝 움찔거린 것 같았다. 곧 필요 없어진다는 말을 해석하자면, 우리 누구나 다 알 수 있듯이 켈모리아가 아리엘을 마신으로 각성시킨다면, 모든 천계와 마계가 파멸을 막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니까. 굳이 카멜롯을 지금 당장 지도밖에 지워버리려는 나의 의도라면, 초기진압이라는 말이 더욱 더 큰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필요 없어질 거라는 말은 내가 실패한다는 소리인가?

 

“내가 초기진압에 실패한다라는 소리야? 아니면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아리엘이 각성을 한다는 소리야?”

 

“둘 다 아냐. 아리엘은 이미 각성한지 오래였고, 카멜롯 전체는 그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지. 애초에 이 허무맹랑한 상황에서 진실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은 하멀과 나 밖에 없어.”

 

하멀 씨와 에밀리 밖에 없다는 말이라면? 진실과 똑바로 마주할 수 없다는 소리인가?

 

“레이베리아의 힘을 이어받았으면 지금 초기 진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너무 늦어버린 뒤라서 말이지. 이런 아슬아슬한 경계를 만약 카일이 스스로 깨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카일이야 말로 영웅이 되는 거지. 우리는 위험하니까 깨어나지 않는 척. 인지하지 않는 척을 하고 있어도. 카일은 그런 참혹한 현실을 받아드릴 이유는 없잖아?”

 

무슨 소리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뭔가 뒤틀려 있는 장소에 있다는 소리일까? 아리엘이 각성한지 이미 오래라면 지금 당장 막아야 할 텐데.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이게 가상의 세계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

 

“바보 같은. 그럴 리가 없잖아? 현실인지 꿈인지 확인하고 싶으면, 동전이라도 돌려보던가?”

 

그럼 대체 뭘 대한 인지라는 걸까? 뭘 깨어나야 한다는 소리지? 나는 머리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는데, 에밀리는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확실히 별의 아이가 유별나다고 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어린애는 주스를 마셔야 하는 나이인데, 차를 마시면서 즐기고 있는 모습에 이질적인 기분이 내 등을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선문답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뭘 조심하라는 거야? 뭘 인지하고 뭘 깨어나야 한다는 건데?”

 

“공포야.”

 

공포?

 

“카일은 공포에 대해서 똑바로 마주봐야 제대로 된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지금 당장 켈모리아를 처단해야 할지. 아니면 카멜롯 그 자체를 날려야 할지. 선택은 카일의 몫이지만 이번엔 제대로 해결해주길 바래.”

 

“이번엔?”

 

에밀리가 말하는 것은 하나하나 숨겨진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반인의 청각으로 받아들이면서 뇌에서 아무리 집어봐도, 그에 근접한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별의 아이라서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의 모든 이치를 보게 되는 것일까?

 

내가 답답해 하는 것은 이프리트를 통해 할 수 있었는데.

 

“카일? 무릎 떨지마. 자는데 방해돼.”

 

“이제 낮이니까 좀 일어나요. 이프리트.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나의 일생에 있어서 잠은 중요해.”

 

여전히 오랜지 빛의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 중 하나인 내 무릎을 베고 다시 자려고 했지만….

 

“이프리트. 동화할 준비나 하세요. 이 장소에서 곧 나가야 하니까.”

 

“알았어. 대신 5시간만 더.”

 

“놓고 가기 전에 당장 안 일어나!”

 

소리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에밀리는 휘파람으로 분위기를 쓸어 내렸다. 그 휘파람에 멈춘 나는 서서히 에밀리를 올려다 보았고, 언제부터인가 내 앞에 서있는 에밀리는 조용히 이프리트에게 손을 뻗어내면서, 다음과 같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다른 정령왕에 비해서는 너무 어리니까. 카일이 잘 보듬어 줘야 한다고?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카일이 혼자 독점하는 것은 너무하지만, 그래도 엘티노스 잡화점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로 엘티노스의 이름을 이어받겠다면, 카일 옆에 붙어있는 모든 사람들을 굽어살펴야 한다고? 그러니 이프리트가 응석을 부린다면 받아줘야 하고, 마왕과 빛의 여신이 밤자리를 요청한다면 그걸 피하지 말라고? 그 외에도 주변 여성들에게 좀 자비를 준다면, 이번 일은 매우 쉽게 진행이 될 거라 생각해.”

 

“느닷없이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는데?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발언 아냐?”

 

“그것도 다 필요한 수단이야. 카일 씨는 일이 유연하고도 빠르게 진행되면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에 대한 제시를 한 것뿐이지. 여전히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카일 씨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부탁을 하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에밀리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이유라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겠지.

 

“유연하게 일이 진행되면 좋아하지만, 너도 아직까지 어리다고 생각해.”

 

이프리트와 윈디를 동화시키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앉아있을 때는 에밀리와 비슷비슷한 키로 있었지만, 역시 일어나보면 나의 키가 더 컸다.

 

“작전이 잘 먹히는 것은 매복이 있다는 거야. 내가 안심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전에, 차라리 내가 고생을 하고 말지. 그리고 비장의 카드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사람이 이기는 거야.”

 

어린애에게 충고를 하는 심정으로 말했지만, 에밀리가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그러면 카일 씨가 항상 바라는 이상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으면 알아서 하도록 해. 확실히 어린애의 충고를 듣는 것은 어른으로서 할 게 못 되지?”

 

그 말을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나보다 강한 사람들은 사방에 널려있으니, 힘 차이로 인한 무력함으로 내 발이 무거워진 것은 아니고, 차라리 에밀리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휘어잡았다.

 

공포와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부터, 아리엘은 이미 각성한지 오래라는 말. 차라리 모르고 진행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은 말밖에 없었다.

 

“하긴, 켈모리아가 내가 간 이후에는 곧바로 아리엘을 각성시킬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평화롭게 지내고 있단 말이야? 뭐 부셔지는 일도 없고, 잡화점에는 공격도 들어오지 않았지. 오히려 천계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여신들을 진정시킨 것밖에 없어.”

 

“그게 뭐가 이상한 건가요? 카일 씨?”

 

윈디의 질문에 대답이라고 한다면...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이야. 마신을 각성시켰다면 이곳이 먼저 난장판이 되어야겠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니까. 그게 더 어처구니 없다는 소리가 되는 거야.”

 

아니면 지금 아리엘을 통제하지 못하는 켈모리아가 일시적으로 봉인한 상태라던가. 머릿속에서 모든 에너지를 활용해서 추측이란 추측은 다 뽑아내고 있었다.

 

“너무 미래에 있는 일을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아까 전에 그 별의 아이가 하는 말도 그렇고, 그냥 잡화점 안에 있는 다른 분들에게 부탁해보는 것이 어때요?”

 

“내가 부탁할 일은 따로 있어.”

 

“좀 더 중요한 일을 부탁하라는 소리에요. 예를 들어서 적진 한가운데에 정보를 꺼내오거나,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1성구부터 7성구까지 다 모아서 신룡을 부른다거나.”

 

“그 사람들이 다른 차원에 가면 난장판이 될 것 같으니, 그런 일은 시키면 안 돼. 아무래도 하멀 씨가 좀 더 쉽게 알려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는 프리트론으로 가야 할 것 같으니 부탁할게 윈디.”

 

 

천칭들의 모임에 모여드는 지도자들을 규합하고 통제하는 일은, 에밀리가 알아서 해줄 것이니. 에밀리와 하멀 씨가 인지하고 있는 위협에 대해 묻기 위해, 떨어지는 빗물과 함께 땅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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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서 그나마 덥지 않은 듯한...아 에어컨을 틀었구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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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Think & Write

동물농장 #1: 조지 오웰

#George Orwell: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와 같은 성이고 신화의 에릭과 같은 이름이다. 왜 몃진 본명을 두고 필명을 썼을까?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한 자료를 살펴보니 다른 직업을 전전하며 간간히 책을 내기 시작할 때 명료한 문체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책 내용이 논란을 일으켜서 본명 썼다가는 본인과 가족이 피해를 입을까 봐 겁이 나서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국 백인이지만 인도에서 태어나서 두 살 때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오웰은 자기 가족의 계급을 'lower-upper-middle class'라고 표현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위키피디아에서는 '상류 중산층 하급계층'이라고 번역했다. 최상류층은 아니지만 최상류층처럼 살고자 했던 계급이랄까? 오웰은 사립학교에 입학한다. 고등학교는 심지어 '이튼'이다. 어릴 적 나름대로 부족함 없이 자랐던 어린 오웰은 그 사립학교에서 '가난한' 학생으로 취급받는다. 공부도 167명 중 138등을 할 만큼 형편없었다. 영국이란 나라를 아는가? 잘 사는 계급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나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도 부자였던 적이 사십 평생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직도 로얄 패밀리. 백작, 공작 이런 게 있지 않나? 이튼에 다니는 아이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재정적 지원이 있고 친천들도 다 부자란다. 지들끼리 있는 거지. 그리고 그게 너무 당연하다. 하긴 우리나라도 점점 그러고 있다. 특목고, 자사고에 가면 지하철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 모르는 고딩들이 있다고 하지 않나? (사실 탈 필요도 없고. 앗, 어떤 이미지가 생각난다. 만 원짜리 몇 장을 티켓 판매기 slot에 한꺼번에 넣던 그 어르신.) 그들만의 리그. 거기에서 오웰은 무시당하고 낙담하고 피해의식을 가지고 반항적이고, 즉 '작가' 조지 오웰로서 성장하게 된다.  찰스 디킨스의 불운한 어린 시절이 [올리버 트위스트]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승화되었듯이 오웰의 절망과 피해의식은 훗날 사회 부조리를 용감하게 고발하는 날카롭고 재치 넘치는 걸작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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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2

460

 

 

 

아우리스와 비니스는 잡화점 안에서 느긋하게 앉아있는 데모르테를 바라보며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본래 데모르테를 붙잡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내가 한 말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아내기 위해 자문을 구하는 것인데. 금기를 어겼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있는 데모르테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해 예지를 해달라고? 아까 전에는 잡화점을 부셔가면서까지 난동을 부리더니, 이번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거 아냐?”

 

“시끄럽다. 우리도 지금 귀중한 것이 걸려있기 때문에, 앞으로 마신이 깨어나고 벌어질 일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귀중한 것은 카일의 싸인이 담긴 백장미 최신화인 거야?”

 

“이번에 카일의 간곡한 부탁과 공물로 너의 죄를 감형하는 것이니까, 마신이 깨어났을 때 무슨 일이 터지는지 알려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300년간 지상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봐주지. 그러니 운명의 여신인 데모르테여. 미래를 밝혀보아라.”

 

비니스가 아우리스를 대신하여 데모르테에게 재촉하듯 입을 열었지만, 여전히 300년씩이나 지상에 내려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한지 자연스럽게 제안을 하기 시작하고….

 

“300시간. 300시간이면 가능할 것 같아. 300년은 너무 하잖아? 카일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을 보게 될 거라고?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말이지?”

 

“왜 저를 보면서 그런 소리를 내뱉는 거에요. 우선 저는 관여하지 마시고 세분께서 알아서 맞춰주세요. 밖에 나가서 무너진 잔해나 쓸어 담아야 하니까. 시나와 레시아는 잠깐 저와 같이 이야기 좀 하죠.”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는 총총 걸음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뒤에서 들려오는 루니아 누나의 목소리로는“별거 아니지만 쿠키를 만들어보았어요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저게 말로만 듣던 죽음의 협상인가.

 

“주인이 루니아에게 요리를 시킬 줄은 몰랐노라.”

 

“정확하게는 데모르테가 이 일을 전부 예지를 하고 루니아 누나에게 시킨 거겠죠.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해결할 문제가 또 하나 있어요.”

 

3명의 상위 여신이 잡화점에서 비밀리에 회의를 하는 동안, 무너진 잔해와 땅은 천천히 복구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벽의 달밤이 아직까지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 밖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한 명의 여신이 안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사실 후드에 가려져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모습으로부터 안쓰러울 정도로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걸 추측했다.

 

“거기서 뭐해요?”

 

“데모르테가 무사히 천계로 올라가주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카일이 보여준 협상은 저에게 꽤나 흥미를 가져다 준 요소이기도 하며, 이후 천계에는 더욱더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다만, 인간계에서는 아리엘이라는 소녀가 마신의 그릇이 되어 마신이 깨어난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문이군요? 어째서 당신은 아리엘을 직접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던 거죠?”

 

2쌍의 날개를 지닌 여신은‘어째서’라는 말을 사용하여, 아리엘을 직접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조를 했다. 그 외에도 어차피 천계는 상관이 없지만 인간들은 모조리 혼돈의 도가니로 가도 내 알 바는 아니라는 뉘앙스까지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인간과 절대 친하지 않은 여신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는데.

 

아리엘을 왜 보호하지 않은 가에 대해 물어봤으니, 내 나름대로의 대답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아리엘을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와중에, 마신이 되어 잡화점부터 날아가면 안 되기 때문이니까요. 마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영혼으로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이미 시체협회에 있는 집단자살의식으로 거의 맞춰진 상태였고 1개의 영혼만 남았어요. 지금쯤이면 켈모리아가 그 사람까지 죽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아직 깨져나가지 않는 이유라면...글쎄요. 뭔가 더 필요하다는 소리인 거 같은데.”

 

그보다 켈모리아가 도망칠 장소를 제거하는 것이 1순위다. 아리엘을 데리고 와서 보호를 한다면 우리가 오히려 발을 묶이는 형태가 된다. 언제 각성할지 모르는데 각성하는 순간 무슨 일이 터지기도 전에 잡화점이 날아갈지도 모르니까. 혹은 파이론이 지도에서 지워지는 끔찍한 순간을 한번 더 맞이하면 안 되니까.

 

“마신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마도서가 필요하지. 마침 별의 아이가 잘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혹시 데모르테 대신 운명의 여신으로 된 거에요?”

 

“아니. 카일이 하멀을 알고 있고 에밀리를 알고 있다면, 과거에 카일이 얻었던 금단의 마도서를 둘 중 한 명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하멀을 자주 만나지 않고 에밀리를 만나는 것으로 보면, 에밀리에게 마도서를 줬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나는 운명의 여신이 아니라 레이비스 가문이 숭배하는 여신이야. 이름은 들어봤겠지?”

 

레이베리아가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너는 내 힘을 받는 걸 거부했다고 들었어. 아무리 루니아가 양녀라고 해도 그녀는 레이비스 가문이니. 평민인 너는 귀족의 이름을 따는 것이 좋다고 보는데?”

 

“저는 어처구니 없게도 잡화점에 귀속된 몸이거든요.‘카일 레이비스’라기보단...제가 네이밍 센스가 없어도 아마‘카일 엘티노스’로 되야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위대한 영웅은 천계로 가서 신이 되어있고, 그의 이름을 널리 기리기 위해 성을 꼭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엘티노스라는 성을 사용할 거에요. 그러니 루니아 누나의 경우에는‘루니아 엘티노스’가 되는 경우겠죠.”

 

“흠~ 잘 빠져나가는구나. 확실히 엘티노스의 말대로 너에게는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은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엘티노스가 자신의 이름을 너의 성으로 쓰는 것은 반대할 것 같은데?”

 

“그건 제가 어떻게든 납득시켜봐야죠.”

 

검은 고양이는 앞발로 내 볼을 툭툭 건드렸다. 건드릴 때마다 숨겨진 손톱이 살살 긁고 있었는데...

 

“주인. 그러면 짐은 레프리시아 엘티노스가 되는 것인가? 주인은 성이 없어서 간편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뒤에 글자가 달리는 것도 숙명인가 보군?”

 

“아니. 레시아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럼 마스터. 저는 람파시나 엘티노스로 호적에 써놓으면 되는 것인지요?”

 

“어째서 이럴 때만 둘이 호흡이 잘 맞는 건데. 서로 싸우면서 말이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할 때. 천천히 밖으로 나오고 있는 아우리스와 비니스는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데모르테와 회의를 했는데. 우리는 카일이 이번 한번은 다른 구역에서 난동을 부려도 눈을 감아 줄 것이다. 다만, 딱 한번뿐이고 그 이상은 인간들의 불만이 이곳까지 오기 때문이니, 실수 없이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니 이 팔찌를 받고 우리들과의 언약을 어기지 말아다오.”

 

“그런데 이 팔찌는 뭐에요? 매우 위험해 보이는데?”

 

아우리스가 말을 끝마치고 내가 질문을 했을 무렵. 비니스 여신이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레테의 단검과 교환할 물건입니다. 딱 한번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그 팔찌 안에 모두 담아놨으니까요. 저의 권능이 담겨있는 팔찌이며, 그 팔찌를 착용하고만 있어도 신벌의 대행자라는 뜻이 됩니다.”

 

팔랑크스는 이 팔찌를 착용한 적이 없었는데. 신벌의 대행자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내가 받은 팔찌는 본격적으로 다른 대륙에 공격을 나가거나 침략할 때, 단 한번만 천계에서 개입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라 할 수 없다는 소리라면.

 

“고맙습니다. 성원에 힘입어서 꼭 성공하도록 하죠.”

 

“당연히 성공해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이 세계는 파멸을 맞이할 테니까요.”

 

아우리스와 비니스, 레이베리아가 순서대로 천계에 올라가는지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심판자와 발키리가 모조리 사라지듯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한숨이 한 가득 몰려오고 여신들에게 받은 팔찌를 아공간 속에 넣어 보관을 한 뒤에서야. 일단락 마무리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주인은 뒤에 엘티노스라는 성을 붙이고 싶은 건가?”

 

“그럼 어떻게 해요? 딱히 좋은 성도 생각나지 않는데.”

 

여전히 이름에 관련된 이야기로 물고 늘어지는 레시아와 시나는 나를 따라 잡화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정문을 열었을 무렵. 쓰러져 있는 데모르테와 왼손에 들려있는 것은 무시무시하게 요염한 빛을 띠고 있는 무지개 색의 쿠키였다.

 

“그러니까 대체 이걸 먹는 이유가 뭐냐고...”

 

아직까지 산처럼 쌓여있는 무지개 빛 쿠키를 베어 물고 있는 루니아 누나는, 나에게 권유하듯 한 손으로 쿠키를 들면서 오른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나는 배고프지 않아서 먹지 않겠다고 자연스럽게 후퇴했다.

 

“그런데 루니아 누나. 데모르테가 왜 그 쿠키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거에요?”

 

“그거는요오. 데모르테의 예지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으로 만들 것이 필요하다고 했어요오.”

 

“무슨 수면침에 맞아야 추리를 푸는 탐정도 아니고, 의식을 잃어야 예지를 발현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무시무시한 거 아니에요? 그 전에 지금 의식을 잃은 건지, 아니면 스틱스 강에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당연히 천계의 존재는 불멸의 존재라서 어떻게든 돌아오겠지만, 여신마저 날려버리는 루니아 누나의 요리실력은 매번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카일은 단 한번의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 거에요오?”

 

“그걸 좀 생각해봐야죠. 어떻게 해야 이 일을 단 한번에 끝낼 수 있는지. 우선 팔찌를 받아서 막말로 카멜롯 그 자체를 지워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지금 잘못한 것은 켈모리아 하나뿐이니까. 켈모리아에게 항복을 받아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제거를 하기 위해서, 검은 높새바람의 힘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엘티노스도 만나러 가야하고요.”

 

엘티노스를 내가 스스로 만나러 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내일 당장 최후의 결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문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무지개 빛의 쿠키를 먹고 싶지는 않으니. 직접 천계로 가거나 이곳에 엘티노스를 불러야 하는 것이 옳은 방법.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찾아갈 수 없는 이유라면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며, 내일 아침에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자. 켈모리아의 입장에서는 내가 급하게 뛰어가다가 넘어지길 바라는 상황이니까.

 

“생각을 해보니까. 2층과 3층에 있는 물품도 전부 확인해봐야겠네요. 이 상황에서 좋은 물품이 존재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안 좋은 상황을 전부 역전시켜줄 수 있는 물품도 있을 거에요.”

 

엘티노스 잡화점에 있는 모든 물건은 위험하기도 하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관을 하고 봉인을 하는 거지만, 이것들을 적절하게 사용만 할 수 있다면 저주받은 물품에서, 유능한 물건으로 바뀌기도 하니까.

 

 

제발 내일 별일 없이 아침 해를 맞이하기를 바라며, 조용히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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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엔비디아 지포스 데이에 가게 되어서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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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1

459

 

지금 당장 부수러 가야 하지만 절차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 절차를 밟는다면 공식적으로 나에게 검이 쥐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절차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부수러 가야 하지 않을까?

-잡화점 안에서 시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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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모리아가 다른 일을 꾸미기 전에 카멜롯을 공격하고 싶은 것은 맞지만, 지금 당장 공격하기에는 많은 장해물이 존재했다. 내가 멋대로 가서 때려부수면 세상으로부터 적이 되어버리기에, 머리 위에 슬라임 비슷한 베니를 올려놓으면서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고 있어야 했다. 여전히 공격적인 분노는 가라앉았지만 불안감은 계속되었으니까.

 

“주인은 탈출할 구멍은 남겨놓고 있는 건가?”

 

“탈출할 구멍이라뇨?”

 

“주인이 새벽에 말한 것처럼 켈모리아의 자작극으로 인해 세계가 망해버린다면, 주인은 탈출할 구멍이 있느냐는 소리다.”

 

“그때는 잡화점이 알아서 하겠죠. 아니면 마리아가 다른 차원으로 인도할 거에요. 하지만 저는 탈출하는 것보단 지금 이 곳을 정상적으로 막아내는 것이 좋다고 봐요. 만약 아리엘이 마신이 되는 그릇이라면, 분명 마신이 되어서 켈모리아가 자멸하게 만들어야 하겠지만, 땅의 정령왕까지 저주로 속박해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걸 보면, 켈모리아가 강한 이유는 모든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힘을 흡수한 것이겠죠.”

 

베니는 머리 위에서 기이한 마찰소리를 냈다. 켈모리아가 나에게 보낸 기괴하면서도 익숙한 광기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항상 이상한 말만 늘어놓고 이 세상의 균형이 잘못 되었다는 말을 하는 바보 같은 천사가 있었는데.

 

“레시아가 봤을 때는 이 세상의 균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짐의 선생님은 다른 관점에서 보라는 말을 이어받아 노력하고 있노라, 따라서 지금 주인의 질문을 대답하자고 하면, 아주 기본적인 생태계와는 전혀 다르긴 하지. 본래 짐과 같은 마왕이 인간계와 전쟁을 벌이고, 인간은 단합되어 상부상조하는 경제순환을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니. 경제구조까지 들어가면 더 복잡해지니까. 지금은 단순히 잘못됐냐고 묻잖아요?”

 

“잘못되었다. 그렇지만...”

 

검은 고양이는 즉답을 하며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짐은 이렇게 잘못된 세계가 오히려 가망이 더 높다고 보고 있노라. 천계와 마계가 인간계에 조금씩만 간섭하고, 마계와 인간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여전히 마계로 오고 있는 인간은 마족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 마계에서 인간계로 떠난 이들은 인간의 기술을 배우러 가지. 언젠가는 마족이 잠재적인 적이 아니라, 단순한 종족으로 분류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걸 위해서라도 짐은 꾸준히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고 있노라.”

 

레시아가 선생님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바늘이 내 심장을 찌르고 양심을 찌르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 그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옆에 있는데 말이지만, 아무래도 레시아가 제대로 성장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무심코 나는 검은 고양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주인? 갑자기 왜?”

 

“아뇨. 그냥 무심결에 쓰다듬어보고 싶었어요. 좋은 사람이었나 보네요.”

 

“물론 추억 속에 있는 사람이니라. 지금은 약속을 저버리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남자들은 한번 약속을 하면 죽어도 지키지 않는 것이 남자인가? 짐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뭐라 말도 안되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공식이 그때 성립되었노라.”

 

무의식적으로 레시아와 눈이 마주치기 힘들어서 다른 방향을 억지로 보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레시아와 같이 있을 때, 그 바보 같은 선생님을 두 번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과거에 있으면서 어린 레프리시아에게 좋은 경험뿐만이 아니라, 나쁜 경험까지 한 가득 얹어버렸다.

 

“그래도 주인은 그 선생님보다는 약속을 잘 지키니 좋은 사람이니라.”

 

제발 그런 말 나에게 하지마. 죄책감이 올라오다 못해 저 하늘의 별 중 하나가 될 것 같으니까. 아무튼 다른 주제의 돌려야 하니...

 

“그런데 주인. 나중에 짐이 개인적으로 의뢰를 할 것인데 부탁해도 되겠는가?”

 

“설마 그 선생님을 찾는다는 의뢰는 아니겠죠?”

 

“어떻게 알았는가?”

 

“아니 대체 왜 그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 거에요?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지났는데요? 거의 50년정도 지났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레시아는 앞발을 핥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찾고 싶다. 적어도 선생님의 묘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노라. 그러니 이 일이 끝나도 주인은 절대로 쉴 생각하지 말거라, 사람을 찾는 일은 어느 한 장소를 지도에서 지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니 말이다.”

 

“알았어요. 찾는데 도와드리죠. 설마 잡화점 멤버가 의뢰를 할 줄은 몰랐지만, 최대한 도와드리긴 할게요.”

 

이 일이 끝나고 당장 어디론가 적당한 곳에 찾아가서 이름없는 묘를 만들어야겠다. 돌무덤을 놓고 그냥 대충 여기라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그보다 내가 내 무덤을 만들겠다는 생각부터 잘못된 거 아냐?

 

“오랜만에 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주인과 선생님을 비교하면 닮은 구석보다는 다른 구석이 너무 많다.”

 

“다르다고요?”

 

과거에서는 나보다 강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건 둘째치고, 남들에게는 강하다는 인상을 남겨야 하는 것도 있고, 그때 당시에는 정말 마음먹는 것에 달렸다는 말이 통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내 멋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아무래도 다르게 보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선생님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셨지만, 철저하게 움직이는 계획을 순식간에 생각해냈다. 그러니 지금 선생님과 주인을 두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분명 짐은 선생님을 따라갈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남자다.”

 

레시아도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

뭐 그건 상관없지만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감이라는 걸지도 몰라. 게다가 지금 당장 켈모리아로부터 공격이 올 수 있는 이 상황이라면,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이 맞을까?

 

과거로 시간여행 할 때의 나를 되찾아야 하는 걸까?

 

“마스터. 돌아왔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내 어깨 위에 하얀 올빼미가 올라왔고, 흥미로운 대답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시나에게 질문을 했다.

 

“수고했어. 시나. 그래서 아우리스 여신은 뭐라고?”

 

“우선. 우리가 데모르테를 숨겼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중죄라면서, 천계가 이곳을 향해 공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켈모리아가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네.

 

“그래서 그 공격은?”

 

“지금입니다.”

 

“아직 저녁도 못 먹었는데 정말 갑작스러워서 손님도 맞이 못하겠...”

 

-콰아아앙!

 

집 전체가 폭음과 동시에 지진이 울려 퍼졌다. 위에서는 검은 날개를 펼친 데모르테가 “음, 벌써 들켰나? 예정보다 좀 빠른데?”말을 뱉었는데, 검은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여유롭게 나왔다면, 지금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것 아닐까?

 

“뭐. 천계의 법에서는 지금 당장 데모르테를 잡아놓는 게 중요할 테니까요. 그런데 사키엘은 대체 왜 만난 거에요?”

 

“영겁의 노래에 쓴 보석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 것뿐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사키엘이 말하기를 마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이미 여신들 사이에서 입이 오르고 내리고 있었다는 것. 당연히 아우리스와 비니스 여신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걸 주도한 것은 당연히 켈모리아라는 말이었지. 그만큼 과거와 현재에 영향이 너무 많아.”

 

“아니 무슨 그림자 분신술 쓰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현재에 있는 사람이 동시에 과거에도 영향을 끼치는 거에요? 트리니티처럼 분신을 하면 모를까...아, 이런. 그렇구나.”

 

이제서야 내 기억 속에 잠깐 출타했던 그 천사의 이름이 생각났다. 트리니티는 3명의 분신을 나누지만 켈모리아의 성격이라던가 그게 매번 바뀐 이유라면, 지금 있는 켈모리아는 켈모리아 2라고 지칭하는 게 더 좋을 정도.

 

“트리니티라면 주인이 이미 죽인 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천계에 있는 존재는 불멸의 존재들이잖아요. 초월체로 변하기 전에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영혼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다른 이에게 흡수 된 거에요. 거기에 켈모리아 특유의 정신이상증세와 같은 성격이 합쳐지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겠죠. 그런데 그건 또 의문이라면, 켈모리아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진행해온 걸까요?”

 

-콰아앙!

 

“밖에 있는 사람들부터 진정시켜야겠네. 이거 원...”

 

다시 진동이 울리고 흙먼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창밖에는 수많은 심판자와 발키리가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정문을 열고 나가면서 나 혼자 나갈 거라는 말과 함께, 문을 닫고 앞에 보이는 아우리스와 비니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잡화점에 공격을 하는 건 좀 아니라고 보는데요?”

 

부족한 자신감은 언제나 나를 나락으로 떠밀어야 생겨날 테니까, 지금 목숨을 걸고 협상을 하려면 나 혼자 나가는 것이 맞겠지.

 

성녀의 몸을 빌려오지 않았기에, 거대한 로브와 날개만 달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단지 아우리스와 비니스 여신을 분류하는 방법이라고는, 로브에 새겨진 문양이 새의 날개처럼 하나만 있는 것이 아우리스, 그리고 양쪽 날개 사이에 지팡이가 세워진 듯한 문양은 비니스의 표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담긴 음성이 아우리스의 후드 속에서 뿜어져 나왔으나.

 

 

“데모르테를 숨겨주는 중죄를 저질렀으니 이는 처벌받아야 마땅...”

 

“그 전에! 사키엘의 소식으로 듣자니 여러분들은 마신을 만들자는 말이 오고 갔다면서요? 그 바보 같은 보석 하나로 어떻게 마신을 만드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키엘을 지금 당장 풀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아우리스의 말을 끊어버리고 막 나가는 나를 막으려면, 옆에서 레시아와 시나의 중재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나오지 말라고 했으니, 감속 없이 무한한 가속으로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계속 가져와야 했다.

 

“네가 지금...”

 

“알아요. 알고 있어요.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정말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사키엘을 풀어줘야 지금 강림하려고 하는 마신을 제압할 수 있는 열쇠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우리스 여신님께도 들어봐야 할 것이 있는데, 어째서 마신을 만들어내는 것에 찬성을 한 거죠?”

 

밖에서는 50명의 천계에서 파견 사람들 앞에서 아우리스 여신에게 당당히 질문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그건 켈모리아의 제안이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비니스도 그렇고 레이베리아도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그 말을 허락한 적이 없어.”

 

“그럼 아리엘의 등장은 여신님들도 다 몰랐다는 소리군요?”

 

“아리엘?”

 

“지금 그 켈모리아가 아리엘을 이용해서 마신을 부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 망각의 여신인 레테의 단검까지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오래된 계획을 숨겨오고 있었다는 거죠. 지금 당장 데모르테를 잡아서 봉인하려고 하기 전에, 진짜 적을 먼저 봐줬으면 좋겠습니다만?”

 

아우리스는 4쌍의 날개를 한 가득 펼치면서 입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성질을 건드리면 곧바로 포화마법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이었지만, 모습에도 굴하지 않고 똑바로 들었다.

 

“인간이여. 그대는 무엇을 걸고 그 말에 책임을 지겠는가?”

 

“백장미를 걸죠.”

 

아우리스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비니스 여신을 향해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장미를 걸겠다는데 어쩌지? 이번 신작은 천계에서 찍으라고 할까?”

 

“아우리스...”

 

비니스 여신이 한숨 가득한 말로 아우리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비니스 여신님. 트리니티에 대한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사실 저는 여신님을 많이...그것도 아주 많이 의심을 해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흑막이 비니스 여신님이라는 생각에 말이죠.”

 

“그래서 지금은 어떻습니까?”

 

담담하게 나에게 물었으니 대답하면 될 뿐이었다.

 

“지금은 켈모리아를 공격하는 것에 있어서, 아주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비니스 여신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기리라 봅니다. 한 때, 제가 비니스 여신님의 봉인을 풀어주고, 비니스 여신님은 죽어가는 저를 도와줬으니, 지금이야 말로 인간인 제가 여신님께 부탁을 들여도 되겠지요?”

 

비니스 여신은 잠깐 아무런 말 없이 나에게 다가가더니.

 

“레테의 단검을 주신다면 제가 그 도움에 응하겠습니다.”

 

 

거침없이 아공간 손을 넣어 레테의 단검을 꺼내고, 천천히 비니스 여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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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죽을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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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8

458

 

 

 

옛말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 곱게 정신이 나가면 괴짜고, 나쁘게 정신이 나가면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는 소리가 있다. 당연히 이건 내가 2분전에 생각을 했으니 옛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노아스를 앞에 두고 윈디와 이프리트가 애먹고 있었다. 땅과는 상성이 그리 좋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이 도서관의 구조가 켈모리아에게 유리한 지형이라서 그런 걸까?

 

“정령들은 정령들끼리 놀아야지. 안 그러겠어?”

 

“노아스에게 저주까지 걸을 정도라면 켈모리아 씨가 시체협회의 회장자리에 있는 건가요?”

 

“이 정도의 저주술사라면 가능하지. 그런데 의외인걸? 어째서 지금의 카일에게는 저주가 걸리지 않는 걸까? 지금도 계속 시도를 하고 있지만 걸리지 않네. 이번에는 어떤 무시무시한 물품을 가져온 걸까?”

 

“어릿광대의 가면이에요.”

 

“그래서 옷이 바뀌지 않았구나. 이번에는 인어공주 복장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인어공주든 인어왕자든 우선 제가 말한 질문에 충족하지 않은 답변을 하셨어요. 지금 시체협회회장의 자리는 켈모리아 씨가 가지고 있는 거죠?”

 

켈모리아 씨는 여전히 느긋하게 가만히 서있을 뿐. 그 이유라면 내가 티르빙을 무기로 변환시키지 않은 이유일까? 그저 이게 대화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나도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을 텐데.

 

“당연하지. 엘티노스가 이루지 못한 업적 중에선 남을 가르치기 싫어하기 때문에, 어느 협회든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니까. 그걸 정복하기만 한다면 나는 엘티노스의 모든 업적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어.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저주술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라 그런지,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보지 않아. 오히려 겁을 먹고 벌벌 떨고 있지. 나의 분위기에 맞추려고 열심히 아양 떠는 사람들을 보면 한숨밖에 안 나와. 그래도 카일과 아리엘은 나를 제대로 봐주니까 좋아해♥”

 

이 정도면 정말 병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그러면 슬슬 칼을 뽑아줄래? 아니면 질문이 더 남아있는 걸까?”

 

“이프리트! 실피드! 돌아와!”

 

이프리트와 실피드를 내 옆으로 다시 두면서, 의아해하는 켈모리아의 표정을 바라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되었어요. 켈모리아 씨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비틀린 길을 걷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요?”

 

“내 길은 전혀 비틀리지 않았어. 카일. 너의 관점을 적용해서 나에게 잘못 되었다는 하지 말아줘. 적어도 나의 관점에서 생각을 좀 해보고 나서 입을 열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거나, 내가 조금 더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걸? 아리엘은 그걸 위한 제물일 뿐. 마신의 힘을 봉인하고 소란을 끝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더욱 더 올라갈 수 있어.”

 

대체 이 바보 같은 말은 어떻게 들어야 잘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켈모리아 씨. 지금 아리엘의 잠재능력을 얕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 애는 이곳으로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마법 무투회까지 나갈 정도로 바보 같은 괴물이라고요. 거기에 마족으로 만들고 이제 모든 것을 다 파괴하는 마신이 된다면, 아주 그냥 세상을 다 날리고 싶다고 하지 그러세요? 정말 켈모리아가 마신이 된 아리엘을 이길 수나 있겠어요?”

 

“괜찮아. 내가 아니면 검은 높새바람이 알아서 해주겠지? 아니면 잡화점의 해결사라고 불리는 카일. 네가 보여줄 수 있잖아? 당연히 지금은 나를 뛰어넘어가야 아리엘을 막을 수 있을 걸?”

 

“엘티노스 때문에! 그딴 업적 때문에! 차원 하나가 박살 날 위험이 있는 그 바보 같은 일을 실행하겠다고!”

 

결국 머리에 분노만 가득 차버린 목소리가 전부 가라앉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티르빙을 귀걸이에서 빼낸 뒤에 롱소드로 변환시키기 시작했다.

 

“켈모리아 씨를 보니 한 가지 말은 맞는 것 같네요.”

 

“어느 거?”

 

“바보는 죽어야 낫는다는 거요!”

 

내 목소리가 주변을 울려 퍼지기 시작했을 때, 이프리트와 윈디. 진명을 말하자면 실피드가 나의 감정에 호응을 해주듯이 거대한 불길과 강한 태풍으로 주변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카일의 고유마법은 무서워. 다른 이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마나를 산화시키는 마법. 그래도 지금 당장은 나에게 위협이 아주 조금은 되는 거 같아. 그래도 그건 잘 알아야 해. 카일은 검사의 길 최상급이 아니라는 것과 최상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마왕이 잠재되어있던 마나를 깨워버리는 바람에 그 기회가 영원히 날아갔다는 것.”

 

“그러면 켈모리아는 검을 쓸 줄 알아요?”

 

“그야 못하지. 엘티노스도 검은 다루지 못했다고 나왔거든.”

 

그런 세심한 것도 따라 하는 건가?

 

“그래도 모든 길은 하나로 이루어져있다는 말을 들은 나는, 검사의 길 최상급 혹은 달인의 경지로 올라가기 전에, 마법사의 길을 모두 돌파한다면 모두 똑같아진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권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에 하나는 육체만 단련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내공심법이라고 불리는 마나연공법을 수행하기도 하지.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하나는 상처가 많고, 다른 하나는 상처가 적은 거요?”

 

“땡! 육체만 단련한 사람은 전사, 내공심법을 단련한 사람은 마법사로 치부할 수 있다는 거야. 내공심법을 연마하면 어느 사이에 속성이 붙지. 빙백신장은 하란국에서 무공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 눈에는 마나를 이용한 마법일 뿐이야. 엘라임의 주인인 해연의 경우도 같은 것이지. 전사의 길을 걷고 있다가 정령사로 변환된 경우지만, 조금이라도 마법이 들어간다면 우리는 전부 마법사 종류로 치부하고 있어.”

 

“느닷없이 그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뭔데요?”

 

켈모리아는 천천히 손을 내뻗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나를 자각한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마법사라는 거야.”

 

-파아앙!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내 앞을 몰아치면서 온 몸을 뒤흔들었다. 마나를 산화시키는 새벽<Daybreak>이 켈모리아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내 마나를 모조리 고갈시켰고, 이프리트와 실피드는 내 마나가 사라지는 바람에 정령계로 날아가버렸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티르빙은 귀걸이 형태로 강제 귀환을 당한 상태에서, 겨우 벽을 등지고 넘어지지 않은 나는, 속이 뒤틀려서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고통을 꾹 눌러 참고 말했다.

 

“제길...! 어떻게!”

 

“당연하지. 나는 마법의 지배자거든. 모든 마법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참된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 마법 무투제에 억지로 널 끌어드린 이유라고 한다면, 너의 마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지. 특이한 체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너의 체질은 주변 마나를 모으는 거야. 사방팔방에 퍼트리고 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터져 나온 마나들이 내 몸을 집어 던지듯 저 멀리 날려버렸다. 유리창이 깨져나가도 상관없을 법한 무시무시한 속도인데, 정작 유리에 부딪쳤을 때는 흠집도 없이 멀쩡했고, 오히려 충격으로 몸을 보호해줄 마나도 없어서 뼈가 으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도서관 안에서 싸우는 그 자체가, 켈모리아의 손바닥에서 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으니, 지금 이곳을 당장 탈출하고 싶어도 긴급귀환까지는 좀 오래 걸린다.

 

“마나가 다 없어진 마법사들은 그저 일반인에 불과하지. 너의 경우는 조금 더 단련한 일반인일까?”

 

“제길!”

 

주변에 있는 연필이라도 거꾸로 잡아서 오른팔로 휘둘렀지만, 켈모리아의 왼팔이 내 팔꿈치를 쳐내고 정권이 내 가슴을 강하게 가격했다. 숨도 못 쉬고 다시 날아가는 내 몸은 처절하게 바닥을 구르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 시간도 주지 않고 켈모리아의 매끈한 다리가 내 얼굴로 날아왔다. 보나마나 마나를 힘껏 담아 파괴력을 올린 돌려차기인데, 마나로 보호받지 않는 팔로 방어하다가 내 오른팔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듣기 좋은 비명이야. 조금 더 울어볼래? 에잇!”

 

팔이 내려간 것과 동시에 얼굴에 다시 날아드는 발차기를 맞고 내 머리가 부디 제대로 목 위에 붙어있길 빌며 눈이 번쩍한 사이에 쓰러져 있는 나를, 광택이 나도록 잘 닦여있는 바닥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팔이 부러져서 어떻게 하지? 우리 카일?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이상 마법사로 익숙해진 카일이라면 대비책이 없을 것 같은데? 그 잘난 탈출은 어떻게 할거지?”

 

“괜히 이사벨 씨가 당신을 보며 분노하는 것이 아니었어. 지금 이렇게 보니까 에밀리의 말도 맞았고! 다만, 그 잘난 탈출은 지금 보여주지.”

 

으름장을 하게 만드는 타 들어가는 듯한 목을 겨우 뱉으며 피까지 쏟아냈다. 입에 비릿한 향이 나고 의식이 점점 깨어나가는 기분. 남은 마나를 사용해서 내 신체를 24시간 전 멀쩡한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유를 너무 부려도 좋지 않죠. 안 그래요?”

 

품속에 있는 가면을 의식하면서 천천히 오른손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결국 제 형태를 갖춘 가면은 눈, 코, 입이 기괴하게 비틀린 형태였고, 나에게 딱 맞는 가면을 쓰면서 천천히 귀환하기 시작했다.

 

“켈모리아!”

 

뒤에 아리엘의 눈망울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이상한 괴한이 침입한 것과 그걸 막는 켈모리아가 멀쩡하게 있는 것뿐이겠지.

 

“내일은 당신의 야망도 끝이야. 이걸로 완벽하게 적으로 돌아섰어. 언젠가는 카멜롯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움직이기 전에, 내가 모든 것을 전부 박살낼 테니 각오해둬.”

 

“그거 기대하고 있을게. 지루했던 쾌락주의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크리스마스인걸?”

 

“켈모리아? 이게 무슨 소리에요? 그리고 저 가면 쓴 남자는 카일 씨 맞죠? 왜 둘이서 싸우고 있는 거에요?”

 

혼란을 겪고 있는 아리엘의 모습을 뒤로하고 잡화점에서 나를 소환하는 소환진이, 내 발밑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다시 반전이 되기 시작하면서 잡화점에서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바닥에 손을 뻗어 지탱하고 순서대로 왼발부터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주인?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지금까지 볼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지고 있노라.”

 

검은 고양이 하나가 내 표정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하얀 가면에 가려져 있으니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내뿜고 있는 분위기가 주변에게 퍼지고 있는 모양.

 

“진짜 적은 켈모리아로 고정하고 지금부터 계획을 짤 겁니다. 그러니 레시아, 시나 모두 잡화점 멤버 전원 오늘 새벽에 소집해주세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들어야 할 것이며, 이 날 이후로 잡화점이 모든 사람의 적이 될 각오까지 해야 할 겁니다. 검은 높새바람 중에 아무나 한 명도 불러주시고요. 아니, 멜로디 씨를 잡화점에 초대하세요.”

 

“주인은 카멜롯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생각인가?”

 

“마스터. 조금 더 냉철한 사고로 진행하길 부탁합니다. 지금의 방식은 마스터가 완전히 악역으로 몰리는 길입니다.”

 

“악역이고 나발이고 상관 없어! 지금 당장 그 광기를 끝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어갈 거야!”

 

“적어도 여신을 설득하는 건 어떠신지요? 지금 마스터가 수정구에 녹화한 것들을 모두 보여주는 겁니다.”

 

 

시나의 말을 듣고 잠깐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그 의견에 동의를 하듯 하얀 올빼미에게 보라는 듯이 내 손 위에 수정구를 올려놓자. 천장에서 날아와 수정구를 낚아채고는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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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바로 다음이 최종화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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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프란치스카의 공개일기

5시간 논 유정이 생일 파티 [2017. 0617. 토]

나는 유정이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다섯 시간 동안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지우, 가연이, 세은이, 동현이, 환이도 생일 파티에 초대 받았다.

 

처음에는 핼로팡팡에 갔다. 헬로팡팡은 쑥고개에 있는 어린이, 아기들을 위한 키즈 카페이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는데 아주 신나는 곳이어서 금새 적응이 되었다. 우리는 트렘폴린에서 누가 누가 높이 뛰는지 시합이라도 하듯이 천장을 향해 힘껏 몸을 뻗어 뛰었다. 땀을 뻘뻘 흘릴만큼 열심히 놀았다. 동현이가 힘껏 공중으로 뛰어 오르다가 내려올 때 잘못 헛디뎌서 넘어졌다. 다행히 동현이 다리가 조금 아팠을 뿐 부러지거나 삐지 않았다. 1시간 정도 마음껏 뛰어 놀던 중 치킨과 피자를 먹으라고 유정이 엄마가 부르셨다. 나는 너무 신나게 놀던 나머지 배고픔도 잊어버렸지만 치킨과 피자를 보는 순간 와락 배가 고프고 입에 침이 고였다. 유정이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 유정이가 생일 촛불을 불자마자 나는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헬로팡팡에서 2시간 반 정도 놀았을 때 우리는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그 노래방은 유정이 할머니가 운영하시며 옛날 신림 9동에 위치했다. 우리는 트와이스 노래를 제일 많이 불렀다. 특히 T.T 노래는 그 중에서 내가 가사를 잘 알아서 내가 마치 아이돌이 된 듯 큰 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노래를 자기가 먼저 부르려고 티격태격 거렸다.

 

한참 재미있어 할 때 집으로 가야 된 게 너무 아쉬웠다. 내 생일파티 때에는 유정이와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서 일곱 시간을 놀고야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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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Think & Write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by 알랭 드 보통(2016)

#The Course of Love: 오리지널 제목을 번역하여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저자가 결혼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썩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접해서였을까, 이 장편소설은 저자가 그 전 에세이에서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소설로 풀어낸 것이구나 생각했다. 사랑은 '점(intervals)'이 아니라 '선(continuation)'이며 낭만주의적 강렬한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 서로 맞춰 발전해 나가야 하는 제도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현실에서 사랑은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라는 진부한 문구와 함께 클라이막스에서 끝나는 영화와 소설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지속되어야 하는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의 유기체이다. 영화와 소설에서 극적으로 묘사하여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집어넣는 사랑은 한낱 'the course of love'의 작은 단편이자 러브스토리의 시작일 뿐, 진정한 '러브'에 대한 '스토리'는 그 다음부터라는 냉소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이야기.

 

이미 결혼생활 15년이 넘는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앉았는지 모르겠다며 툴툴댔지만 '독서토론'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위해 짜증을 꾹 참고 끝까지 읽은 결과 이 책은 내게 툭~ 하고 생각 돌맹이를 던져 주었다. 팍팍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쿨하게 보여줘서 속이 시원하다? 나중에 딸내미가 결혼을 하려고 할 때 꼭 읽게 해야겠다? 아님 지금도 계속해서 my course of love에 파트너로 열심히(?) 살고 있는 내 남편에게 권해야겠다? 

 

#낭만을 뛰어넘어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96 페이지 첫 번째 단락. "삶의 추함을 인정하고 낭만주의를 뛰어넘어 짧고 뜨거운 사랑을 일생으로 확장하는 일에는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일상의 삐긋거림은 맹독으로 작용하기 쉽지만 성찰에 담그면 묘약으로 연금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결혼이 아닌 '양육'에 대해 반추했다. 라비와 커스틴 이야기에서 언급되지만 아이는 결실을 이룬 사랑의 절정이라고나 할까? 다들 그러지 않나?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며 결실은 아이라고. 결혼처럼 출산과 육아 또한 사랑의 감동적인 열매라는 생각은 아마 출산 후 일주일 정도일 것이며 아이가 자라면서 아주 간헐적으로 느끼는 행복과 만족감 덕분일 것이다. 육아라는 현실의 민낯은 그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고통스러우며 오해와 실망, 바닥으로 내닿는 피로와 우울감으로 점철된다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엄마로서 내 아이와의 관계는 사랑과 헌신 위에 있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는 않는다. 완벽하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솔직히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내가 아이를 위해 경력의 황금기를 발로 뻥 차버리고 전업엄마로 눌러 앉았다는 사실은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출산에 이어 두 번째 기적이다. 아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고 짠해지는 낭만적인 사랑은 내 마음 아래에 든든히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기 시작했다. 육아 역시 시간과 함께 지속되고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변함과 함께 확장 또는 조정되어야 하므로 그 역시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반석 위에 나는 육아에 대해 어떤 철학을 세울 것인가?

 

"엄마가 너를 무척 사랑하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충실하는 데에도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하자. 내가 너만을 위해 내 남은 인생을 올인할 수는 없지 않니? 너도 엄마의 무조걱적인 헌신이 전부라는 생각은 내려놓는 것이 어떨까? 낭만으로만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길고 깊으며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하구나. 엄마는 엄마 인생을 충실히 살고, 너는 너의 인생을 충실히 사는 거지. 가끔 함께 하며 순도 100%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하자꾸나. 언제나 손을 뻗으면 우리는 손이 닿는 곳에 있어. 격이 없이 만나고 기쁘고 힘들 때 두 배로 축하하고 네 배로 위로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함께 하며 기나긴 인생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는 여행의 동반자라고나 할까?" 열 살 짜리에게 너무 어렵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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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될 줄 알았지

퇴사 후 남미 여행, 과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까?

약 오년 하고도 반년을 일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 두게 되었다. (뭐, 짤렸다고 해도 무방하다.)

첫 직장인데다 나는 유난히 모난 성격이라 지난 오년 반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전세 자금으로 받은 사내 대출 상환만 마무리되면 퇴사를 하리라 벼르고 있던 터였다.

 

마침 사업부 철수로 본사 발령이 떨어지면서 이때다 싶어 1등으로 퇴사 의사를 밝혔다.

말이 씨가 되었다며 S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실은 웃펐지만) 어쩜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수가 있을까?

스스로 그만 둘 용기는 없으니, 제발 회사가 날 좀 짤라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하던 나였다.

 

마음 같아선 한 2년 세계일주라도 다녀오면 좋겠지만,

워낙 박봉이었던지라 퇴직금도 쬐끄만해서 남은 빚을 갚고 나니 별로 남는 돈도 없었다.

앞으로 몇 년 안엔 결혼도 하고 싶으니, 빚을 낼 수도 없고.

 

그래도 이런 하늘이 내린 기회를 버릴 순 없어서

그토록 염원하던 아프리카와 남미, 교토 한 달 살기를 두고 고민하던 중에

얼마 전 모로코에 남편과 다녀온 친구가 여자 혼자는 좀 성가실 것 같다, 라고 해서

남미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남미라고 성가시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나름 열심히 여행을 다녔는데 아직 아메리카 대륙을 밟아보지 못한 터,

트럼트 할아버지 때문에 입국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뉴욕도 들르기로 했다.

 

2014년 터키로 떠나던 날, 라운지에서 꽃보다 청춘 페루편을 보면서

언젠가는 페루도 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 말은 씨가 되니 열심히 말하고 다니자.

다음은 아프리카, 다음은 아프리카, 다음은 아프리카.

 

아무튼 조금 쉬다가 여행 준비를 해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나! 네상에나! 남미 여행의 성수기는 12월에서 2월 사이, 즉 여름 시즌이란다.

제일 가고 싶은 우유니 사막의 우기는 3월까지라고 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부랴부랴 카약을 돌리고 서점에서 가이드북 두 권을 사고 남미 여행 카페에 가입했다.

일단 급한 건 볼리비아 비자를 준비해야 하는 건데, 맙소사, 황열병 예방 접종이 필수라고?

그것도 출국 최소 10일 전에는 접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안 맞으면 볼리비아에 못 간다고.

 

니들 포비아가 있는 나는 남미의 소매치기나 강도보다 주사가 더 무섭다.

그래도 어쩌겠어, 우유니를 위해서라면 까짓거 기절 좀 하면 되지, 뭐.

동료 디자이너는 "에디터님은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주사에 대한 공포를 이겼네요" 라며 웃었다.

 

남들은 몇 달 간 준비해서 떠나는 남미 여행을 한 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준비해서 떠나려고 한다.

나는 이제 스물다섯 살이 아니어서 여기저기 허락 받을 사람도 많았고

또 원래도 그랬지만 이젠 나이 인센티브까지 더해서 체력이 완전 바닥인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힘들었던 회사 생활이지만, 오늘 문득 블로그를 보다 보니

회사에 들어오기 전보다 회사를 다니면서 다녀온 여행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고맙다, 덕분에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어서.

마지막 선물로 이렇게 두근거리는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줘서 지-인짜 고맙다!

(나는 곧잘 여행 다니려고 일한다는 말을 하곤 했었는데 그게 정말이었다)

 

엄마는 "넌 커서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라며 혀를 찼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된 것도 기가 찰 텐데,

퇴직금을 탈탈 털어 여행을 가겠다는 서른 두 살 딸을 쉬이 이해해준 부모님께 감사를 전한다.

잘난 딸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뭐라도 되지 않겠냐며,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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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7

457

 

 

 

카멜롯에 있는 마법학원장인 켈모리아 마그누스. 이사벨 씨의 여동생이기도 하고, 지금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모든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지배자이기도 한다. 마나의 양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많고, 마력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껏 켈모리아 씨가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멜롯에 머물고 있었지만, 이 사람이 진정으로 숨기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오늘 나를 찾아온 이유는 매우 심각한 문제야. 너무 심각해서 우리 둘 다 고민으로 1주일을 보내야 할 정도지. 그렇지 않아?”

 

“켈모리아 씨는 계속 시간여행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시공간마법마저 사용할 줄 아는 켈모리아라면, 분명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갈 수 있지만, 내가 보았을 때는 꽤 많은 시간이 켈모리아의 몸에 새겨졌다. 신체적인 나이야 계속 백업을 해서 그 전에 있던 시간으로 맞추면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 경험으로 누적된 시간은 계속 쌓이기 마련.

 

“카일은 이 대륙에서 단 2명밖에 없는 유일한 시공간술사였지. 모두가 술을 마시러 나가거나, 약속이 있어서 나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카일의 눈은 역시 속이지 못하겠네.”

 

여전히 웃으면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켈모리아 씨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품기 시작하며 도서관에 앉아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마법학원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준비된 커피와 서류의 산을 보고 노선을 약간 이탈하도록 하자.

 

“그래서 아리엘은 어디 있죠?”

 

“그 애는 마법기동반들과 같이 야외에서 바비큐파티라도 하고 있을 꺼야. 고기를 먹고 싶으면 그쪽으로 가도 상관은 없지만, 지금은 나에게 볼일이 있던 거 아냐? 아리엘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요염하게 살기를 품으며 웃고 있는 켈모리아 씨에게 느끼는 공포감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살인마에게 쫓기는 쪽이 조금이라도 덜할 정도. 마치 독사 앞에 있는 쥐마냥 나도 모르게 몸이 수축되려고 했지만, 이성이 곧바로 바로 잡으면서 다시 마주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죠? 과거와 미래를 다녀오면서 계속해서 수정해야 할 것이 있던가요? 마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처럼?”

 

“그러면 시간의 파수꾼들이 찾아와서 존재를 소멸시키려고 할 거야. 아무리 나라도 그런 배짱은 부리지 못해. 하지만 시간여행을 함으로 나의 예지가 맞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있지. 어쩌면 지금이 시간에서 또 다른 나는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

 

“준비?”

 

켈모리아는 천천히 일어나며 어깨가 파인 하얀 드레스를 이끌고 다리를 움직였다. 거리는 나와 정반대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창문에 시선을 돌리고 입을 열기를...

 

“지금은 내가 숨겨놨던 레테의 단검을 찾았겠지? 다만, 그 날은 널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역시 제가 기억을 잃은 이유는 켈모리아가...”

 

“착각을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내용 중에서,‘나는 딱히 너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그리고‘네가 다시 찾아간 집단자살의식에 휘말렸다는 것’이지. 내가 파릇파릇한 용병이었던 시절에, 레테의 단검인지도 모르고 상자 하나를 들고, 옛 시체협회 건물에 찾아갈 무렵, 나는 이미 그 안에서 저주를 걸고 있었어. 당연히 과거로 시간을 여행했던 시절이니까.”

 

“그럼 아까 봤던 죽지도 못하는 그 사람은?”

 

“어라? 만난 거야? 시체협회장을? 그들이 이상한 의식을 하려는 이유가 마신을 소환하기 위함이었지만, 아직은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반만 성공하게 만든 거야.”

 

창문 밖에서 비춰지는 켈모리아 씨의 얼굴에는, 붉은 입술이 서서히 호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리엘이 말했던가? 켈모리아 씨는 쾌락주의자라고.

 

“꼭 그럴 이유라도 있는 거에요?”

 

“당연하지. 몰래 천계로 들어가서 영겁의 노래까지 훔치고, 상급신인 엘티노스의 눈을 피해서 은밀하게 움직였어야 하니까. 아무튼 그런 집단자살의식은 한 명만 죽지 못한 체, 겨우겨우 자신의 자아를 유지해 나아가며 살아가는 마신 후보.”

 

“아리엘이군요. 그 아이가.”

 

그 집단자살의식은 강력한 존재를 부르기 위한 것. 희생을 한 고귀한 영혼들이 하나로 뭉쳐서 강력한 영혼으로 다시 탄생을 한다. 만일 그 의식에 영겁의 노래까지 사용했다면 신적인 존재로도 만들 수 있겠지.

 

어쩌면 에밀리가 나에게 미끼역할이 나와 아리엘이라는 이유도, 지금은 켈모리아가 저지르고 있는 알 수 없는 일에 일부러 휘둘리는 미끼역할인 걸까?

 

“그러면 마신 아르트리옴은 대체 누구죠?”

 

“그거야 당연히 아리엘이 만들어낸 환상의 존재지. 레이나 때문에 억지로 폭주를 해서 느닷없이 다른 세계와 충돌할 뻔한 대재앙 이후로 나타났는데, 사실은 마신이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엘의 힘이 너무 강해서 계속 존재하려고 하는 걸 보면, 아리엘의 또 다른 인격체 중 하나. 그게 아니라면, 초기에는 가족에 대한 열망이 컸던 아리엘이, 적어도 자신을 위로해줄 상냥한 오빠를 원했을지도 모르지. 아리엘이 아르트리옴을 보는 조건은 좀 우울하고 슬픈 기분일 때만 나오니까.”

 

“허구의 존재를 현실로 불러온다니? 그게 말이 되는 일이에요? 그 정도면 창조신과 비등비등한 수준이잖아요!”

 

“창조신과 비등비등한 수준이 아냐. 지금 지하에 있던 그 남자가 죽으면 창조신의 자리를 갈아치워도 될 정도지. 그런데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켈모리아에게 살기와 적의가 가득 느껴지지만 공격을 하지 않고 계속 질문만 해왔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또 꾸미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켈모리아가 질문한 다음 내용으로 대부분이 해소 되었으니까.

 

“엘티노스는 기괴한 존재도 쓰러뜨렸다고 했어. 그걸 뛰어넘으려면 내가 마신을 쓰러뜨려야 하겠지? 아니면 봉인이라도 시키던가 말이야. 하지만 그 전에 뛰어넘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너를 먼저 제거해야겠지?”

 

켈모리아의 눈이 살짝 번뜩이자마자 내 다리가 자동으로 옆으로 뛰게 만들었다. 내가 있었던 자리는 염동파가 한번 휘저어버린 이후로, 어마어마한 홈이 생겨버렸을 때도 아주 여유롭게 말하고 있었다.

 

“언니를 뛰어넘은 것까지는 확실하게 했으니까. 다만, 패배의 낙인으로 침묵의 저주를 걸었는데, 어느 사이에 풀려서 당황하고 있었거든 그래서‘누가 이런 일을 한 걸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 카일이라는 생각을 했어.”

 

어느 사이에 다가와 주먹을 휘두르는 켈모리아. 주먹에 담긴 마나와 속도 그리고 모습을 보아하니 이사벨 씨의 마법과 같았다. 공간을 접어도 켈모리아는 같이 접어서 따라오고, 시공의 눈을 개안해도 켈모리아 또한 똑같이 대응을 할 수 있다.

 

그럴 바에는.

 

-팍!

 

“어라?”

 

“마나를 제거해도 아픈 건 여전하네!”

 

-파앙!

 

새벽<Daybreak>을 내 온 몸에 두르며 보호막처럼 씌우고, 켈모리아의 마나가 주먹에서 흩어지는 틈으로 나 또한 주먹에 마나를 한 가득 담고 턱을 올려 쳤다. 레시아에게 항상 맞아온 어퍼를 날리다 보니, 깔끔한 타격과 함께 공중으로 붕 떠버린 켈모리아는 이윽고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 위로 추락했다.

 

켈모리아가 당황한 사이에 꽂아 넣은 카운터라 정신을 못 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멀쩡하게 일어나 먼지를 털고 있었으니 이프리트와 윈디에게 슬슬 말을 걸었다.

 

“애석하게도 항마의 축복은 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냐. 게다가 그런 저출력으로는 상처도 입히지 못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싫구나? 티르빙으로 무기를 변환하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니까. 정말 재미없는 남자야.”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가면 되잖아요. 이런 일을 왜 하려는 거에요? 도대체 엘티노스가 켈모리아의 인생에서 뭐길래? 그 사람을 뛰어넘기 위해서 억지로 마신까지 만들어가면서 싸우려는 이유가 뭔데요!”

 

“그거야 말로 진짜 쾌락이 아니겠어? 육체적인 관계는 일시적인 쾌락일 뿐이지만, 성취감이라던가 정신적인 쾌감은 육체보다 수십, 수백에 가까운 배율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열심히 마법에 대해 공부를 해왔던 거고, 언젠가는 내가 짜놓은 연극의 끝으로 나를 영웅이라 칭송할 사람들에게 받는 그 눈빛과 환호성으로 마무리가 될 거야. 내가 모든 마법을 지배했다는 그 이유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날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카일도 내가 무서운 거야? 언니는 내가 무섭다고 하던데?”

 

“무섭다면 어쩔 건데요? 그보다 그게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거 맞아요? 그냥 어린아이가 삐뚤어져서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려는 거잖아요? 그런 일을 해서 꼭 다른 이들에게 칭송을 받아야만 하겠어요? 엘티노스라는 자를 뛰어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면서, 여러 가지 바보 같은 일을 일부러 벌이면서까지?”

 

광소에 젖은 듯한 켈모리아는 웃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만 표정이 더욱 괴기하게 바뀌면서 이윽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그거야 말로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의미가 되는데! 오늘 카일은 머리가 너무 잘 돌아가는 걸? 레이나 남편에게 레이베리아의 힘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통찰력이 너무 뛰어나는 거 아냐?”

 

윈디와 이프리트에게 힘을 빌리기 시작한 이후, 모든 방향에서 떠돌고 있는 무시무시한 손들이 나를 노리고 있을 때. 불의 갑옷은 내 몸을 휘감고, 바람의 장화는 나의 발을 가볍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항복을 한다면 평생 여자로 살게 되는 저주를 걸고 끝내줄게. 어여쁜 아이를 수집하는 것도 하나의 취미니까.”

 

“평생? 미쳤어요? 차라리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말지.”

 

허공에 떠 있는 손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다가, 나를 향해 손바닥을 활짝 펴더니 느닷없이 날아오는 것은 마나를 한 가득 품은 광선이었다.

 

아무리 봐도 반지름이 5cm정도 되어 보이는 포격마법이 내 주위를 휘몰아치기 전에, 바람의 장막이 굴절시켜서 모조리 빗나가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특종이야. 그렇지 않아? 이프리트?”

 

“그러게. 실피드. 설마 노아스의 계약자가 이렇게 악심을 품을 줄은 몰랐어. 이 일을 어떻게 해명할거지?”

 

노아스라면 땅의 정령왕인데?

그 계약자가 켈모리아라고?

 

한편으로는 켈모리아의 옆에서 바닥이 올라오기 시작했을 무렵. 고운 인상의 여성체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품은 듯한 온화하고 조용한 모습. 말을 거의 안 하는 성격인지 아무런 말도 없이, 이프리트와 윈디를 바라보며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너의 주인이 이런 길에 빠지는 것을 마냥 지켜볼 것도 아니잖아? 뭐? 계약은 이행되는 거라고? 이 바보 같은 정령왕이 이상한 곳에 성실해가지고!”

 

“노아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계약은 파기해줘.”

 

뭐 정령들만 알아듣는 그런 텔레파시든 광선이든 뭐든 이야기 하라고 하고, 소환자가 악한마음을 품었을 때, 정령왕이 그걸 묵인하는 일은 없을 텐데. 아냐...혹시?

 

“켈모리아. 당신. 노아스에게 무슨 저주를 심어놓은 거죠?”

 

저주술사인 켈모리아가 무슨 일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 이미 시공간을 초월하면서 모든 마법에 능통하기에, 정령왕은커녕 신에게도 저주를 걸 수 있을법한 존재일 테니까.

 

“마음을 허락할 때야말로 사용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저주야. 노아스는 영원히 나의 노예와 같은 거라고? 그렇지? 노아스.”

 

 

인간형으로 된 노아스의 볼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보자마자, 이 사람은 절대로 살려놔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주술사에게 관심을 끌면 안 된다는 말부터, 켈모리아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당부까지 한 에밀리의 말은, 지금까지 모두 나에게 잘 맞는 조언임과 동시에, 그 조언을 모두 무시를 하자마자 이런 상황까지 나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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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아리엘은 밖에서 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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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6

456

 

 

 

집단자살로 이루어낸 의식은 영적인 에너지를 뭉쳐서 영웅을 만들기 위함. 그렇다면 지금 그 에너지는 누구에게 들어가서 영향을 주고 있을까? 아니, 후보라면 이미 하나가 있던가? 또 여김 없이 카멜롯에 가야 하겠군.

 

“주인? 어제는 많이 피곤했는가?”

“마스터는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니 건들이면 안 됩니다. 냥캣. 저번에 상이라고 저희들에게 귀 마사지와 귀청소를 풀코스로 해주시고, 고생한 페트리에게도 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무리가 있는 것은 당연...”

 

“아니. 제가 멍하니 생각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피곤한 거는 아니에요. 뇌는 오히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레시아와 시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어올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이제 슬슬 임계점이 다가오기 시작했으니 고백하려고 한다.

 

“제 팔을 억지로 팔베개로 쓰는 거 슬슬 그만두지 않을래요? 다 자란 모습으로 팔 하나씩 피가 통하지 않게 저려오는 고문이라면 완벽하게 성공했으니까. 이제 슬슬 동물의 형태로 돌아가세요.”

 

“짐은 그냥 고양이 귀만 사용해도 좋은 건가?”

 

“수인 말고! 검은 고양이로 돌아가라고요! 지금 팔이 숨을 못 쉬어서 죽으려고 하잖아요!”

 

“마스터. 저는 그럼 양팔을 날개로 변환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내 팔이 편해지는 게 아니잖아!”

 

사역마와 주인의 관계는 원래 척하면 척하는 관계가 아닌가? 좀 쉽게 말하자면 같이 지내온 세월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두 사람은 그냥 자신의 욕구만 충족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크다. 모두가 일어나서 이미 일하고 있는 시간에, 팔이 저려서 양쪽에 있는 사역마들을 모조리 일으켜 세우고, 서서히 더워지는 날씨를 의식해서 반팔로 된 셔츠를 입었다. 무난하게 검은색으로 된 옷을 입은 이후에, 아주 천천히 상황에 대해 예상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은 400번 이상 빛의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인이 그렇게 고민하는 것은 처음 본다.”

 

“오늘은 이프리트와 윈디하고 다녀올 테니 두 사람은 집을 지켜요. 페트리는 검은 높새바람으로 제 말을 전하러 갔으니 나중에 돌아올 거에요.”

 

윈디와 이프리트는 이름을 거론할 때부터 동화하고 있었다. 더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긴 바지와 부츠를 천천히 옮기면서 프리트론으로 이동했다. 바람의 정령왕인 윈디...진명으로는 실피드라고 하는 것이 좋지만, 어쨌든 내 시야는 단숨에 좁혀오기 시작하면서 20초정도 기다리니 아테리카 학원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두 발로 이곳에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손을 빌릴 수 밖에 없겠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올라가고 있지만...

 

[카일. 많이 조초해 보여.]

 

[초조해 보이는 거겠죠. 레테의 단검을 습득하고 돌아온 기억의 일부 중에 한가지 거슬리는 기억이 떠올라서요. 그래서 사실 확인을 위해 이사벨 씨에게 가는 겁니다.]

 

“선생님?”

 

학원장실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 위쪽 계단에서 의외로 잘 어울리는 청녹의 오드아이를 지닌 남학생이 나를 내려다 보았다.

 

“오랜만이야. 그 동안 키가 커지긴 했구나.”

 

“선생님이 작아진 거 아니에요?”

 

“이 자식을 그냥...아니, 지금 이사벨 씨는 어디에 계신지 알아?”

 

말을 들은 루크는 즉답을 하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지금은 휴식을 하고 계시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니! 선생님! 올라가면 안 된다니까요!”

 

루크가 뜸을 들인 것이 이상해서 계단을 올라가고, 위에는 학원장실이라고 크게 적혀있는 문 앞에 노크를 했다. 무겁게 3번을 두드려 내가 왔다는 것을 알렸지만, 아무런 말이 없어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실례할게요. 이사벨 씨.”

 

“......”

 

손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뚫어져라 보고만 있는 이사벨 씨의 행동이 이상해서, 뒤늦게 나를 따라온 루크에게 물어봤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어째서 “아! 카일 선생이군! 오늘 연봉협상 하러 온 건가! 기대하고 있었다고!”라며 밝게 골치 아픈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제갈량이 아니라면 자신의 수명을 더 늘리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을 사람인데 말이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저번에 급하게 외출을 하는 것 같더니, 저렇게 된 상태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안에만 계세요.”

 

“그래? 그거 좀 이상하네. 이사벨 씨가 저주를 걸릴 사람이 아닌데. 가장 다행인 것은 이사벨 씨가 영창이나 입력대사를 넣지 않아도 되는 마법사인 것뿐인가?”

 

모든 저주가 시전자에게로 반사가 되는 어릿광대의 가면을 건네주고 말해보라고 했다.

 

“아아. 오! 이제서야 목소리가 나오는 군! 고맙네 카일 선생.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에 휘말렸는데...”

 

“켈모리아 씨가 공격한 거죠?”

 

“그건 어찌?”

 

“뭐, 평상시에 켈모리아 씨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서로 싸우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보니 전혀 다른 경우인가 보네요.”

 

말을 들은 이사벨 씨는 루크에게는 나가 있으라고 했다. 소년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학원장실에서 나갔고, 주변에 침묵마법을 깔아서 혹시 몰라 루크나 다른 이가 듣는 것을 방지한 이사벨 씨는 나에게 가면을 돌려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켈모리아라고 단정을 짓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애석하게도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이런 결투장을 받으면 언제든지 나와야 하는 것이라네. 당연히 카일 선생도 받아봤겠지?”

 

“아뇨. 그 종이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는데요?”

 

“기묘하군. 분명 켈모리아는 카일 선생에게도 보냈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말이지?”

 

“저희 잡화점은 스팸편지를 안받거든요.”

 

“스팸?”

 

“아뇨. 그런 게 있어요. 마리아가 진짜 나에게 쓸 때 없는 말을 알려줘서, 그걸 이곳에서 쓰게 만들다니...”

 

나도 모르게 다른 차원에 있는 단어를 말했지만, 확실히 말해서 그 편지는 스팸편지라고 분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잡화점에도 편지를 받는 편지함이 있지만, 매번 확인을 해도 최근에는 채워지지 않고 계속 비어있는 상태.

 

“아무튼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에요.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겠다면 제가 지금 시체협회 건물에 다녀온 일화를 말씀드릴 텐데. 들으시겠어요?”

 

이사벨 씨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곧은 갈색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고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으니, 어떠한 말이 자신의 귀에 들려와도 충격을 받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 성원에 힘입어 집단자살의식을 시작으로 아직 제물 하나가 죽지도 못하고 살아있어서, 아직까지 의식을 끝마치기 위해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

 

다만, 레테의 단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줘도 나중에 다시 까먹어버릴 것 같으니까. 물론 레테의 단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는 싶은데, 그걸 또 보여달라고 말하면 보여주다가 기억을 잃고, 다시 레테의 단검을 보여달라는 무한반복은 하기 싫었다. 대신 물품이라고만 말했다.

 

“따라서 지금 켈모리아 씨에게 가보려고 합니다.”

 

“어째서?”

 

“과거에 물품을 주문한 사람이 켈모리아 씨니까요.”

 

***

 

내 돌아온 기억이 자연스럽게 켈모리아 씨를 저격하듯 떠나지 않았다. 내가 용병을 뛰고 있던 시절에 분명 만난 적도 있었고, 내 등에 단검을 찍어버린 것도 켈모리아 씨였다. 카멜롯 마법학원에 찾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와중에...

 

“카일 씨는 이럴 때만큼은 정말 생각도 안하고 돌격하는 거 아냐?”

 

“토끼 잠옷을 입고 밖에 나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에밀리. 아니면 뭐냐. 너도 달에 가서 아이돌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나처럼 귀여운 소녀가 아이돌을 한다면, 모두의 마음을 현혹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여신처럼 신봉하게 되거든.”

 

“아니. 그럴 일은 절대로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너는 외모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도중에 에밀리가 창을 겨누며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어디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고 있는 별의 아이에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나를 막는 거야? 아니면 조언을 해주러 온 거야?”

 

“둘 다. 레테의 단검을 소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가냘픈 내가 두 다리를 땅에 맞대고 있는 거잖아?”

 

“그럼 너의 목적은 나를 막는 거나 조언이 아니라, 그냥 레테의 단검을 회수하러 온 것뿐이잖아. 하지만 이건 네가 브류나크로 날 찌르던 지지던 볶던 줄 수가 없어. 이제서야 잃어버렸던 기억이 조금씩 수복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켈모리아에게 찾아가서 이게 무슨 일인지 따져야 할 것 같거든.”

 

“그래? 그럼 거기서 죽나 지금 죽나 별 상관은 없겠네?”

 

강한 벼락이 경고라도 주는 듯 내 바로 앞에서 떨어졌다.

 

“마지막 기회야. 카일 씨. 이 벼락을 맞고 여태까지 기절하지 않은 생물은 없어. 그만큼 내가 위력을 관리하고 있을 때. 순순히 꺼내는 것이 좋을 걸?”

 

“아까와도 말했듯이 지지던 볶던 못 준다고 했어. 그리고 이건 잡화점에서 봉인해야 할 물건이야. 너희들이 무슨 꿍꿍이로 레테의 단검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날벼락을 맞아도 켈모리아와 무슨 말이라도 섞어야겠어.”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카일 씨는 고집이 너무 강해서 지금 죽을지도 모르니까. 힌트를 주면 좀 이해하기 쉬울까?”

 

“힌트?”

 

힌트를 준다는 것은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의미.

 

“의식을 부수려면 아직 살아있는 그 사람을 정화하면 그만이야. 카일 씨의 친구인 베가프 추기경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때? 레테의 단검이 없는 시체협회...정확하게는 시체협회의 건물은 아니었지. 그래 마신을 모시는 건물 안에서 정화를 한다면 좋은 결과를 맞이할 거야. 그럼 이제 보상으로 레테의 단검을 줄래?”

 

“역시 레테의 단검은 안 되겠어. 대신 마도서를 주도록 할게.”

 

나의 제안에 “마도서?”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라졌다는 금단의 책이잖아! 으음~ 어쩔 수 없네! 그걸로 봐줄게. 그런데 그게 왜 카일 씨의 손에 들어온 거야? 심연의 도서관에도 없는 물품인데?”

 

“뭐. 어쩌다 보니.”

 

마도서를 넘겨주고 겨우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상대하는 소녀는 오라클의 최고봉인 별의 아이였다. 그러니까. 내가 레테의 단검 대신 이걸 줄 것이라는 예지를 보고?

 

“너 설마! 이걸 노리고 일부러!”

 

“아하하! 이미 마도서는 내가 가져갔지롱~ 카일 씨?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식으로 나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별의 아이를 상대로 너무 식상하게 대하는 거 아냐? 레테의 단검을 줬다면 의아했겠지만, 다행히 예상대로 마도서를 얻었으니 이만 비켜줄게~ 그런데 내가 말한 경고에 위반된다고?”

 

“저주술사에게 눈에 띄지 말라는 거지? 그건 솔직히 나와 상관없는 말이야. 지금은 가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럼 켈모리아로부터 살아 돌아와!”

 

 

한 손에는 백은의 창과 다른 손에는 과거에서 아스모데우스의 보물창고로부터 꺼내온 금기가 가득 적혀있는 책을 작은 손으로 들고 있는 어린 소녀를 보고, 나도 내 갈 길을 가기 위해 윈디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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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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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5

455

 

 

 

잡화점에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건물 안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유라면, 이곳에 유물이 더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지만, 모든 층을 전부 둘러보아도 유물은커녕, 네크로맨서에게 잘 어울리는 마도서 하나 찾아볼 수도 없었다. 유적탐사를 나온 것도 아니지만 이사라도 갔는지 협회 건물 안에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야외의 환경을 생각하자면 사람이 살 곳은 아니지만, 이곳은 철저한 방어술식으로 다양하게 밀봉을 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최소 간부들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맞는데...

왜 지금은 아무도 없는 걸까? 깊게 파고들면 위험하다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함정이라던가 그런 것도 없어 보여서, 이곳에 조금 더 머물다가 갈 생각이었다. 모든 층을 둘러보아도 없다면 이곳에 지하로 이어진 비밀장소를 찾을 수 밖에.

 

“청사진도 없는데 지하에 비밀장소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하는가?”

 

검은 고양이는 여전히 페트리 품 안에서 얌전히 질문을 했고, 나는 그 누구도 인정할만한 이유를 꺼냈다.

 

“그야 이렇게 수상해 보이면 비밀장소가 하나씩은 있을 것 같잖아요?”

 

“아까 위에 있는 독백은 분명 그 누구도 인정할만한 이유를 꺼낸다고 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짐을 납득시킬 수 없으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 때문에 일이 틀어지는 전개가 너무 많이 있노라. 주인과 비둘기는...”

 

“올빼미 입니다.”

 

“어쨌든 잡화점으로 신속하게 돌아가서 루니아가 요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를 맡을지어다.”

 

지금은 루시피나와 루니아가 전부 외출 중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돌아가서 요리를 감시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레시아의 걱정은 내가 또 무슨 일을 벌일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나는 일을 수습하는 사람이지 벌리는 사람이 아니다. 여태까지 대부분의 사건은 내가 휘말려서 해결해온 것이 많기에, 이번 일이 터져도 내가 사고를 터트린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휘말리는 것뿐. 좋아. 이렇게 가자.

 

“설마 저 멀리 먼 세계관에 있는 천사석상이 찾아와서 눈을 깜빡일 때마다 꺼림칙한 모습으로 다가오겠어요? 지하를 잘 살펴본다면 그리...”

 

/조용하게만 있으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거야. 저주를 감행하는 저주술사들에게 관심을 띄고 싶지는 않겠지?/

 

“카일 씨! 찾았어요! 정말 지하에 비밀장소가 있어요!”

 

페트리가 지하에 비밀장소가 있다는 사실은 말에 내가 이긴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에밀리의 경고 때문에 그리 좋은 얼굴로 마주보기 힘들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면서 페트리에게 칭찬을 해야 했지만, 아까 기묘한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도 어떤 건지 모르겠고, 게다가 이 장소를 전체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비워버리면서, 시체협회 안에 있는 네크로맨서들도 전부 이사라도 갔는지 없고.

 

심지어 이곳에 남아 연구라도 해야 하는 고위 간부라는 것도 없다.

 

“그럼 그 지하에 있는 비밀의 방 같은 장소는, 무언가가 봉인 되어있다는 징조가 보이네.”

 

“마스터? 지하에 무언가가 봉인 되어있다니?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 지금 이곳은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의식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어도, 봉인이 되어있는 장소라는 건 확실해. 그러니 우리에게 선택지가 있다면 가거나, 아니면 영원히 이 공간을 봉인시켜야 해.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 적어도 이곳에 있는 사람에게 말이지.”

 

페트리는 “그럼 너무 위험한 거 아닐까요? 저 슬슬 집에 가고 싶은데...”라며 약한 소리를 내뱉었고, 레시아와 시나의 경우에는‘까짓 것 그냥 가자.’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페트리는 그 공간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려줘.”

 

“으에? 정말로 들어가실 생각이에요? 거기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요?”

 

“레시아와 시나가 알아서 할 거야.”

 

“주인도 같이 책임을 지는 거다만?”

 

아무튼 지금은 모 아니면 도라는 형식에 맞게, 페트리가 이어준 연결통로 끝에는 참혹한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들 전부 죽어있어?”

 

시나와 동화를 한 나는 그 밑으로 빠르게 내려가서 붉은 로브와 금색으로 치장되어있는 시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레시아에게 끌려가서 강제로 이곳 밑으로 내려온 페트리는 울상이 되어버렸고, 시나가 주변을 확인했는지 나에게 입을 열었다.

 

“모두 죽어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의지로 집단자살을 한 겁니다.”

 

“집단 자살을 했다고?

 

“기, 기록에는 봄으로 넘어가기 전에 의식을 실행해야 한다고 쓰여져 있어요. 으아앙! 여기 있기 싫어! 너무 무서워! 카일 씨! 당장 돌아가요! 제바아아알!”

 

내 바지까지 붙잡고 흔들며 눈을 가린 앞머리 밑으로 눈물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시아에게 어떻게든 진정시키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페트리에게 철저한 정신교육을 시켜야 할 차례인가?

 

“페트리. 이들의 희생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그렇게 울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날리지마.”

 

“그래도...”

 

페트리의 고개가 잠깐 시체를 보더니.

 

“으아아앙! 역시 너무 무서워!”

 

나중에 유령이나 귀신이라도 나오면 기절하는 거 아냐? 어쨌든 달라붙은 페트리를 억지로 끌고 가서 백골이 되기 직전인 시체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봄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기록된 일지를 한 손으로 넘겨보고 있었는데.

 

“이들은 벌써부터 신인류가 실패할 것을 알고, 트리니티의 명을 따라 준비하고 있었던 거네. 세상을 어지럽히고 싶으면 길가에 쓰레기 하나 버리는 것도 어지럽히는 건데. 어째서 이렇게 복잡하고 위험한 일을 감행하는 지 모르겠어.”

 

“마스터. 그런데 이들의 집단자살은 의식과 무슨 관계입니까?”

 

나는 잠깐 생각하고 있었으나, 레시아는 시나의 말에 즉답을 했다.

 

“영혼이다. 그들의 영혼을 하나로 규합하면 초월적인 사람이 태어나지. 이건 네크로맨서 뿐만이 아니라 신성한 사제들도 매우 위급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니라. 집단으로 자살을 하게 되면 모든 영혼들이 하나로 뭉치는 의식이 되고, 짧은 기간 안에 초월적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지. 주로 영웅들을 만든 방식이 희생과 관련이 있노라.”

 

“그렇다고 멍청한 귀족처럼 지금 태어난 아이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애초에 응집된 초월적인 영혼들은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 있고, 시공간도 뚫어서 적합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니 이 의식으로 인해 다른 이의 몸 속으로 이미 들어갔다면, 가장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겠지. 아마 이걸로 존재하지 않는 마신 아르트리옴을 이곳에 강림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러니까 세상을 파괴하려는 순수한 목적을 지닌 마신을 불러오기 위함이네요? 그보다 존재하지 않는 마신이라니? 처음부터 없었던 마신이에요?”

 

“그게 아니다. 마신 아르트리옴의 육체가 봉인을 당했는데, 그 위치를 몰라서 영혼상태로 떠돌아다니고 있기에 ‘존재하지 않는 마신’이라는 이명이 붙는 것이니라. 완전히 없었다면 주인의 꿈에서 바보 같은 양과 함께 나타날 리가 없노라.”

 

“그렇...잠깐?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기억을 몰래 들췄다. 불만이 있는가? 원래 부부는 비밀이 없어야 하느니라.”

 

완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레시아의 말에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다음부터는 내 허락을 맞고 기억을 들추라고 해야겠다. 사생활적인 요소들이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것은 기분 좋지 않으니까.

 

“꺄아악! 카일 씨! 살려줘요! 시체가!”

 

뒤를 돌아보니 꿈틀거리며 페트리에게 다가오는 시체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미 성대가 없으니 가래가 끓는듯한 소리를 냈는데, 페트리가 있는 위치까지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고, 마법방패를 쌓아서 상항을 좀 지켜봤다.

 

“레시아? 저거 사념으로 해독할 수 있어요?”

 

“운이 좋게도 짐은 마왕이니라. 지금 사념으로 들려오는 것으로 보면 의식은 실패했다고 하더군.”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짐이 보기에는 반 정도는 성공했는데, 남은 반이 실패했다고 했으니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없는 저 몸으로 의식을 끝마치려고 하는 것이다. 애초에 누가 저주를 걸었는지 몰라도, 꼭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야만 죽는 저주이니라.”

 

앙상하게 썩어가는 손이 마법방패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부식되기 시작했다. 이미 기능을 잃어버린 마법방패는 깨져버리고 티르빙을 꺼내 검면으로 쳐서 날렸다. 저 멀리 벽에 날아갔지만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난 시체를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면 지금 저 사람을 제가 죽이면 의식이 완료 된다는 소리잖아요? 페트리! 공간을 닫고 레시아는 잡화점으로 긴급귀환 해주세요!”

 

뒤틀린 발을 이리저리 강하게 굴러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타이밍이 좋게도 레시아가 잡화점으로 긴급귀환을 하면서, 검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우연히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지역은 더 이상 가지 말죠.”

 

“너무 무서웠어요...훌쩍!”

 

자신의 손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닦으면서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검은 고양이는 내 바지를 붙잡고 올라와서 입을 열었다.

 

“주인. 짐은 열심히 주인의 부탁을 들어줬노라. 그러니 이제 짐에게 보상을 줄 시간이 아닌가?”

 

“망할...아니, 그, 그래야죠. 일단 저는 밖에 나가서 남은 일 처리를 해야 하니까. 그 전에 이 나무상자부터 한번 풀어보죠.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꽤 중요한 물품이니까.”

 

“좋다. 짐은 느긋하게 기다리도록 하지. 오늘은 루시피나가 가져온 드라고니스 특제 입욕제를 사용해야 하겠노라. 비둘기도 따라 오거라 짐을 씻어줄 사람이 필요하니라.”

 

내 몸에서 뛰쳐나온 시나는 “저는 올빼미 입니다. 그리고 씻어줄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라면서 검은 고양이의 뒤를 따라가는 하얀 올빼미의 모습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때. 붉은 줄로 묶인 상자를 보며 잠깐 생각을 했다.

 

분명 붉은 줄은 나무 상자 안에 있는 것을 봉인하기 위함이지만,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경우에는 사브누아가 자신의 연인을 자동인형 안으로 넣기 위해,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했으니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붉은 줄에 손을 가져가자마자 건드린 것만으로도 모조리 풀려버린 줄에 당황했다.

 

“이건 마치 빨리 꺼내달라는 것 같네요.”

 

페트리가 옆에서 상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지 쓸 때 없는 소리였지만, 의외로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지금 이 안에 있는 물품은 무엇인지 꺼내보았는데, 순식간에 일부의 없어야 했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 들어왔다.

 

“맞아. 이건‘레테의 단검’이야. 잠깐만? 어떻게 내가 이걸 잊을 수 있었지? 내가 이걸 잊어야 할만한 이유라도 있나?”

 

“혹시 기억을 잃기 전에 있었던 장면이 충격적이어서 스스로 찌른 것이 아닐까요?”

 

“스스로 찔러? 그럼 내가 뭘 본 건데?”

 

조금이라도 보면 죽거나 미치거나 심하면 침을 너무 많이 흘리는 존재라면, 이 단검을 찔러서 망각을 하는 것이 좋지만, 내가 용병활동을 하고 있을 당시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게다가 레테의 단검의 경우에는 찌르는 것 말고도 빛을 반사시켜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기만 해도 일부의 기억을 날릴 수 있는데. 은색의 번개모양처럼 각이 지며 내려오는 레테의 단검이 너무 강력해서, 소유자를 제외하고 모든 이들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

 

“제가 뭐라 했나요?”

 

페트리는 레테의 단검의 검면을 보다가 반사되는 빛에 기억을 잃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레테의 단검도 아공간에 집어넣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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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너무 바빠서 이틀에 한번씩 써야 일정을 다 소화할 수 있더군요.

새벽에 아버지가 끌고 나와서 적당한 곳에 내려주고, 걷기 운동이든 달리기 운동이든 하고 있습니다.

집에 너무 있는다고 강제로 밖에다 투척하시고 있거든요.

그래서 집에 오면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아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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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집

초여름, AM 1:30의 바람

잠을 자고 싶지 않다. 먹는 거는 싫은데 마시는 건 또 마시고 싶은걸.. 믹스커피를 시원하게 탔다. 방으로 들고 와 헤드셋을 끼고서 인디음악을 들어본다. 잔잔한 것이 참 좋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옆에 뚫린 창문을 보았다. 붉은빛의 십자가가 밝게 빛이 난다. 까만 밤, 까맣다고 하기보다는 진한 남색의 천공의 홀로 빛나는 십자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모기를 싫어해서 방충망은 꼭 해 놓는 사람인데 오늘따라 새벽 공기가 너무나도 좋다. 얼굴 표면에 닿는 바람의 느낌도 차가운 듯 시원한 듯 너무 강하게 불어서 싫지도 않은 그런 바람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한다. 지금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좋다. 행복이라는 것은 항상 큰 것에서 오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이렇게 사소한 하나까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전날은 너무 힘들었다. 근래 들어서 모든 것이 다시 무기력해지기 시작하였다.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자꾸만 다른 탓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참, 거지 같다고 생각하였다. 자꾸만 남탓으로 돌릴 때마다 끝에는 자기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인정하기 싫은 건지 아니면 기대고 싶은 건지, 위로받고 싶은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우주의 만물을 아는 것보다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아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라는 짧은 생각을 해본다. 입맛도 도통 없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가 않다. 정말 억지로 이어나가는 인간관계가 보였다.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는 자신을 본다. 눈물이 많아진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종교를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댈 곳이 필요하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기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 분명 그 사람들도 힘들고 말 못 할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새벽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는 바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공기를 살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사서 냉장고에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다는 헛된 상상을 해본다. 적당한 커피의 맛, 달지도 쓰지도 않은 적당한 맛과 적당한 바람, 그리고 적당한 노래 모든 것이 완벽해서 행복하다.
  
고마워, 바람 그리고 새벽

 

* 정말 오랜만에 들려 글을 쓰는 것 같네요.. 요즘에는 책도 자주 못 읽고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날들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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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프란치스카의 공개일기

시각장애인 체험 [2017.0612.월]

고정욱 작가님의 [안내견 탄실이]를 읽고 내가 속한 독서토론모임에서 시각장애인 

체험을 했다. 우선 우리는 두 명씩 짝이 되었다. 원래 다섯 명인데 짝을 이루기 위해 

하율이  엄마도 함께 했다. 하율이와 하율이 엄마가 1조, 성재와 창래가 2조, 나와 

윤영이가 3조였다. 302동 앞 광장에서 만나 조를 이루어 계단을 내려갔다. 처음에는  

윤영이가 눈을 가리고 내가 윤영이를 안내했다. 나는 윤영이에게 어디에 계단이 있는지, 어디에서 코너를 돌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되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줬다. 기둥이 앞에 있을 때 나는 나름대로 윤영이가 기둥을 피하도록 

세게 잡아당겨야 했는데 너무 살짝 잡아당겨서 결국 윤영이가 기둥에 살짝 박아

버렸다. 반대로 내가 눈을 가렸을 때에는 부딪힐까봐 겁도 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몹시 답답했다. 또한 안내견 탄실이에 나오는 예나가 이렇게 힘든 일을 겪었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윤영이가 나를 잘 안내하다가 내 앞에 놓인 계단을 상세하게 말해 주지 않아서 자칫 앞으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아주 위험천만했다. 휴... 이번 시각장애인 체험을 통해 나는 그들이 무서움을 느끼고 너무나 많은 힘든 일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나는 앞으로 장애인을 만나면 친절하게 불편함 없이 잘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