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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단상(斷想)

세잔의 화실에서 '보안'을 그리다

 

 

 

"과일들이 탁자에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화가 폴 세잔의 정물화는 이상했다. 미술에 전혀 아는 거라곤 1도 없는 나같은 사람에겐 더 그렇다. 내가 본 화가 세잔의 정물화는 원근법의 굴레를 벗어나 다른 시점으로 사물을 표현해서 그렇다나.....같이 그림을 본 친구가 답을 해줬다.

 

세잔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물그림에 관한 지배적인 태도를 버리고 대상의 본질을 깊이 사유했다고 한다. 당시 주류 미술계의 거센 비난 속에서도 사물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으로 사물의 변하지 않는 구조와 형상의 본질에 주목해 독자적인 화풍을 열었고 이후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보안을 주제로 하는 글에 왠 화가 세잔이냐고 물을 만하다. 각종 매체들에 넘쳐나는 보안담론의 지루함을 느낄 즈음, 사물 그 자체의 고유함과 진실에 천착한 세잔의 그림세계를 우연히 마주하며, 나는 보안에 관한, 그 근원에 대한 고민이, 보안을 업으로 하는 세계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범람하는 보안기술도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보안은 근원적으로, 본질적으로 두려움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이라는 인자가 없다면 보안이란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보안활동은 기술이기 이전에 어떤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우리네 삶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 말이다. 보안이 기업이나 조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업 세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보안은 인식하는 위협이 다르고 그 표현이 다를 뿐 결국 두려움의 처리방식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물리적보안이든 기술적 보안이든 관리적 보안이든 결국 어떤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기 위한 장치들일뿐이다.

 

보안은 추상이고 관념이고, 하나의 태도다. 보안기술은 추상이고 관념인 보안을, 구체화 시키는 도구일 따름이고, '보안한다'는 태도는 보안조직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개개 주체들의 문제다. 도구에 갇히지 말고, 그 본질과 우리의 일상을 주목해 보안의 외연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물화를 바라보는, 당대의 굳은 시선을 깨고 새로운 '바라보기'를 한 화가 세잔의 화실에서 보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인식의 확장을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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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1-10

"그렇게 걸어도 정말 괜찮으세요?
동이 틀 무렵, 크레누가 잠에서 깨기 전에 두 사람은 조용히 집을 나섰다.
"괜찮다니까, 조금 쉬면 될거야."
"나디아한테 칼은 왜 안 보여 주셨어요?
로메가스는 곁눈질로 발레트를 슬쩍 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괴로워하는 나디아의 얼굴이 발레트의 머리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또... 라고 했어.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 정찰병을 잡지 못했으니 시종과 연결짓는 건 어렵게 됐어요."
로메가스는 발레트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르며 그를 부축했다.
"당분간은 오스만과 접선하지 못할거야. 다행인건 우리는 시종의 정체를 알지만 시종은 기사단 중 누구에게 들켰는지 몰라. 시종이 첩자일까? 아니면 중간 하수인일까? 보키아와는 관련이 없는 걸까? 그 증거를 찾아내야 해!"
발레트는 걸음을 멈추고 작은 숨을 내뱉었다. 꿰맨 부위가 걸을 때마다 아파왔다.
"며칠 후에 임디나에서 큰 연회가 있잖아요. 기사단도 초대를 받았어요. 그때가 기회일지 몰라요."
"오늘은 쉬면서 생각을 해보자. 지금은 좀 누워야겠어."
두 사람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사단 숙소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미로같은 임디나의 좁은 골목에 서서히 아침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발레트와 로메가스가 집을 떠난 후 나디아는 가슴에 숨겨둔 작은 칼을 꺼냈다. 그녀의 시간은 고조 섬에서 멈춰있었다. 어머니와 오빠에 대한 죄책감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지난 5년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날은 생생하게 다가왔다.
칼에 찔린 발레트를 보았을 때 그녀안에 멈춰있던 시간이 깨어났다. 불타는 고향 마을의 한복판에 나디아는 서 있었다. 죽음은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며 그녀에게로 돌진했다. 고막을 찌르는 듯한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디아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죽음의 그늘에 드리워진 채 남겨진 자의 삶은 빈 껍데기 뿐이었다. 길게 뻗쳐진 손아귀는 그녀의 목을 짓눌렀다. 나디아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을 옥죄는 형체없는 실체와 마주했다.
나디아는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15살의 어린 소녀가 혼자라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깊고 어두운 곳에서 몸을 웅크린 채 누군가를 기다리며 소녀는 숨죽여 울고 있었다. 나디아는 소녀에게로 다가가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꼭 안아주었다.
나디아는 오빠가 준 칼에 소중히 입을 맞췄다. 그녀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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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0 - 11

563

 

 

 

“명계로 가죠.”

 

늦은 아침에 일어나 내 생각을 알렸다. 그 말을 듣고 레시아와 시나는 멍하니 날 보고만 있었고, 루시피나는 찻잔에 차가 넘치는 줄 모르고 계속 들이 부었다. 마리아의 입에서는 레몬 맛 사탕이 미끄러지듯 빠져 나왔고, 루니아 누나가 내 어깨를 붙잡아 흔들며 소리쳤다.

 

“어, 어째서인가요오! 아직 우리가 찍어야 할 백장미들이 많이 있잖아요오!”

 

“잠깐만! 그만 흔들어요! 어깨가 부셔지겠어!”

 

조용히 말하고 싶어도 고통으로 인해 데시벨이 올라가는 중이다. 노래 음역대가 약간 높은 내 목소리는 어느덧 한계를 돌파하여, 메조소프라노까지 치솟고 우주를 뚫고 가기 전에, 루비아가 루니아 누나를 뜯어 말렸다.

 

“언니. 그 이상 흔들면 카일의 어깨가 분자단위로 쪼개져요.”

 

“그치만! 그치만 루비아! 카일이 더 이상 백장미를 찍지 않는다고 하잖아요오!”

 

저기 있는 자매를 보았을 때 누가 언니고 동생인지 분별이 안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어깨가 진짜로 분자단위가 되어 온 우주에 흩어질뻔한 일이니까. 그리 오랫동안 생각하지 말자. 언제부턴가 백장미를 찍지 않으면 충격을 받아서 루비아에게 안겨 우는...척을 하는 게 버릇이 된 건가?

 

매번 흘깃 보고 있는 루니아 누나의 붉은 눈이 유난히 섬뜩하게 보였다.

 

“지금 카일 씨는 어떻게 하면 명계에서 촬영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니 안심하세요.”

 

“그, 그래! 맞아! 명계에서도 백장미를 촬영하는 거에요오! 저승으로 가는 스틱스 강 앞에서 찍으면 매우 몽환적인 분위기가 되니까 좋은 필름이...”

 

“누가 미쳤다고 거기까지 가서 여장을 할까 보냐!”

 

나를 소리지르는 만드는 재주를 지닌 자매였다. 아까 전에도 아파서 소리를 질렀는데, 태클을 걸기 위해 있는 힘껏 질러버렸다. 뭐, 중요한 것은 그 저주받을 백장미를 찍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염라대왕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가 되리라.

 

염라대왕이라는 자는 명계에 유일무이한 심판자도 된다. 사람의 업보는 일평생 쌓이고,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데.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하나하나가 전부 쌓인다. 나는 염라대왕 앞에 선다면 편히 환생을 하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니라 가는 방향을 찾는 거다.

 

“마스터. 명계와 사키엘의 문은 어떻게 연결하실 생각입니까?”

 

“나야 항상 다녀왔었잖아.”

 

루니아 누나의 음식이 명계로 가는 티켓이니까.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것만 수십 번이며, 루니아 누나가 요리를 계속 한다면 명계가 제 2의 고향이 될 뻔했다. 그 정도로 친숙하기에, 사키엘의 문을 연다면 명계가 나와 마중 나오리라 생각했다.

 

“기다리거라.”

 

검은 고양이의 말이 내 발을 붙잡았다. 고개까지 돌리게 만드는 근엄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으니...

 

“주인이 명계에 갔을 때는 의식만 갔기에 별 탈 없이 돌아온 것뿐이지. 산 사람의 몸으로 가면 곧바로 육신이 소멸하게 된다. 그러니 맨몸으로 들어가는 것보단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 않는가?”

 

“그래도 육체와 정신이 따로 분리된 상태로 오래있으면 위험하다고요?”

 

게다가 사람이 정신을 차리게 되면 말 그대로 밧줄에 묶여서 올라오게 되는 기분인데, 더 오래있겠다고 버티다가 밧줄을 끊어먹기라도 한다면, 영원히 현실세계로 못 돌아가게 되는 거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이득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대로 지금은 죽기 싫으니 레시아 말대로 다른 방법을 찾자. 명계에 살아서 들어가는데 육체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방법이라...

 

죽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에 산사람을 끼워 맞출만한 규칙이 없는 건가? 예외적인 방법이 있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 끝에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 왜 2층으로 올라가는가?”

 

예전에는 위험한 물건이 있어서 폭발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건드리지도 못했다면, 이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설령 지도 밖으로 날아갈만한 물품이더라도 사용하게 되어버렸다. 나는 상당히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잡화점 물품마다 품고 있는 강력한 독에 중독된 것이 아닐지...

 

세린에게 정신적인 검사를 요청해봐야겠다.

 

그러나 현재에 충실한 나는, 보류할 것은 안드로메다로 택배 붙여버리고 명계로 가는 참신한 물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과거 엘티노스도 명계에 가봤다고 하는데, 분명 죽어서 가는 방법이 아니라 살아서 가는 방법을 채택했을 거에요. 그것도 자신과 같이 여행하던 모든 사람들하고 갔다는 가설 하에, 거대한 힘을 지닌 물품을 사용했을 텐데...”

 

문제는...

 

“음. 잘 모르겠네요.”

 

잡동사니들이 한 가득 쌓여있는데 그 중에 어떤 물품이 명계로 가는 물품인가? 혹은 명계로 갈 때 진짜 도움은 주기나 할까? 거대한 의심의 산이 내 앞을 가로막고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 받는 기분이다.

 

아까 전에 신경 쓰지도 않았던 “섣부르게 건드리다간 다 날아간다.”라는 경고메시지가 머리 속에서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으니, 미약하게나마 손끝이 살살 떨리기 시작하면서, 레시아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어느 거에요?”

 

“짐이 어찌 아는가?”

 

“마왕이잖아요.”

 

“짐은 강대한 마왕이나 아는 것만 안다. 마족은 살아생전에 자동으로 지식이 쌓이긴 하지만, 이런 잡동사니를 쌓아놓으면 엘티노스도 찾아와서 뭔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여기에 있는 물품들은 레시아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란 소리구나. 이름이나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설명조차 되지 않는 물품이 대다수라, 건드려서 사고가 터져봐야 아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만일 이것들이 연쇄작용을 한다면...잡화점을 제외한 모든 것이 먼지로 되돌아갈지도 모르겠으나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명계에 가서 염라대왕을 만난다고 한들 무슨 이유로 설득을 시킬 것인가? 아직 주인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란으로 티타늄을 부수려는 격이다.”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에요?”

 

“짐이 던졌을 때 계란으로 바위를 폭발시켰기 때문이니라.”

 

어떻게 던져야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고...

 

그래도 레시아가 지적한 말처럼 사전준비가 아무것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짜고짜 명계의 최고 권위자를 무모하게 만나러 가겠다고 했으니, 만일 이 소식을 들은 저승사자가 있다면 소식을 들은 시점으로 24시간 내내 웃다가 3번정도는 질식사로 죽을 만큼 재미있는 말이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아마 있을지도 모르지...

 

“그것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네요. 지금 인간계와 천계, 마계가 뒤섞여서 잘 살아가다가, 유랑극단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날아간다고 한들, 명계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고 오히려 일거리만 늘어나게 될 테니 말이죠. 게다가 선악과 거짓말의 유무를 판단하는 염라대왕 앞에 제안을 하려면, 심증보단 확고한 물증이 필요할 지경이에요.”

 

보통 어린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를 한번에 구별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염라대왕은 누가 착한 영혼인지, 나쁜 영혼인지를 한 순간에 판별하여 형벌 밑바닥까지 구겨 넣는 능력자다.

 

염라대왕 앞에서는 모든 영혼들이 분리수거 당하기도 하고, 산 사람이 무턱대고 찾아와서 ‘내 말 좀 들어 보이소!’라고 소리쳐봤자 개죽음만 당하리라.

 

“굉장하네요.”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왔다. 하얀 올빼미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고, 어느 사이에 도착한 윈디 메르아가 잡동사니 산 안에서 물건을 마음대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시간에, 검은 고양이가 “무엇이 말인가?”라고 유일하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질문을 받은 입장이니 경쾌하게 입을 열도록 하자.

 

“생각을 해보세요.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명계가 비상이 걸리거나 제약이 걸릴만한 일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살아생전에 마족을 소환하는 경우도 있고, 신탁을 받아 신과 여신을 마주하는 경우가 있지만, 명계의 존재들은 오직 죽어서만 볼 수 있으니 말이죠.”

 

인간계는 인간들이 중점으로 살아가지만, 마계에 있는 마물들이 인간계로 빠져 나와 몬스터까지 공존하며 산다. 천계는 신과 여신, 창조주와 더불어 신탁으로 이어지거나, 신과 여신에게 선택을 받은 자만이 천사나 발키리가 될 수 있고, 그 이전에는 하얀 구체상태로 떠돌게 된다.

 

마계는 말 그대로 마물들의 세계로 다양한 종족들이 거기서 투쟁을 벌이며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었으나, 마왕의 통치와 마계공작 12명의 통솔아래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혀있지만, 아직까지도 야생상태의 몬스터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300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는 실베스 씨가 마왕이며, 그리티스 씨에게 들어본 바로는 천계와 전면전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받았다.

 

조용한 이유라면, 아마도 눈에 띄는 곳에서 싸우면 난장판이 되니까, 서로 구역을 정해놓고 싸우고 있으리라 본다.

 

그럼 명계는 어떨까?

그나마 요약해서 설명한 인간계, 천계, 마계와는 다르게 명계에는 염라대왕이 있고, 망각의 샘물이 있고, 뱃사공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오직 내 뇌에서 나온 추측일 뿐이다.

 

진실의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인간들 중에서 그 장소에 잠깐 다녀온 자들이 있으니, 이름도 거룩한 대마법사 엘티노스와 그의 동료들이다. 자서전에서는 죽을 수 없는 불사의 저주를 제거하기 위해 명계에 한번 가서 염라대왕에게 부탁을 했다고 하는데.

 

가장 놀란 것은 그 엘티노스가 부탁을 했다는 점이다.

 

언제나 어디 동내 건달 아저씨마냥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서 제발 저주를 지워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세상이 7개 조각으로 등분된다고 한들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농담은 이 정도로 하고, 염라대왕을 만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적혀있다.

위험한 일과 나는 멀리 떨어져야 할 관계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지내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꽤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성장하기 위해선 위험한 절벽도 극복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데...

 

“주인! 위험하다!”

 

“네?”

 

-피이이이이이잉!

 

귓가에 울리는 고주파가 쓸 때 없는 독백을 하지 말라며 뇌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는 초음파 공격한방에 모두가 귀를 부여잡고 쓰러지거나, 애석하게도 동물로 변신하고 있던 레시아와 시나는 귀를 제대로 막지도 못한 체 바닥에 쓰러져서 뒹굴기만 했고, 윈디는 바람을 이용해서 소리를 차단했는지, 혼자 멀쩡하게 돌아다니며 나에게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 들리는 게 함정이지...

 

“아아악! 빨리 꺼! 끄라고! 윈디!”

 

나의 비통한 외침은 거대한 굉음을 뚫고 간신히 뻗어나갔는데, 고개만 갸웃거리면서 호박 빛의 눈동자를 깜빡였다. 아까 내가 서술했던 것 중에 바람을 이용해서 소리를 차단했다고 말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도 소리쳐서 막으려고 했다니...

 

 

그날 이후 300년이 지난 미래에서 표류하고 있는 잡화점에 날아온 신문으로, ‘우주적 존재의 외침!’이라는 타이틀의 신문이 사방팔방에 퍼져나가고야 말았다. 멸망의 신호탄이라고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표정이 창문을 통해 훤히 잘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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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에선 명계로 가겠네요.

저도 과로사를 한다면 명계로 가겠죠.

 

...그래도 첫월급을 받았으니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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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단상(斷想)

이제 우리 말로 보안하자

 

영어 시큐리티(security)의 어원은 라틴어 명사로 세쿠리타스(securitas),  형용사로는  '벗어나다' 라는 뜻의 세(se)와 염려 ∙ 불안 ∙ 근심을 뜻하는 쿠라(cura). 세쿠라(secura)라고 한다. 그런데 라틴어는 지금은 학술언어나 종교언어 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언어이다. 기원전에  쓰이던 라틴어의 의미가 과연 오늘날과 같은 지키고 보호하는 우리가 말하는 보안과 같은 의미일까. 필자의 유치한 의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안이라는 말도 순수한 우리말은 아니다. 시큐리티(security)라는 외국어의 어원은 공부하는데, 보안의 순 우리말은 무엇이고 우리말이 있다면 우리말의 어원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말은 형용표현이 매우 발달한 언어다. 붉그레죽죽하다. 푸르딩딩하다. 누리끼리하다. 이런 표현을 외국어로 정확히 번역하기는 정말 어렵다. 이런 표현을 번역하려면 외국 사람들이 우리의 색감을 직접 ‘경험’한 후 그 느낌으로 외국어로 번역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 시티즌(citizen)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단어는 없다. 우리는 서구사회가 영주와 농노, 기사로 대표되는 중세봉건의 시대에 머물 때 이미 강력한 중앙집권의 발전된 국가체계를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왕의 신하로서 신민 또는 국가의 국민개념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는 아래로부터의 혁명, 도시의 인민들이 왕과 귀족들에 대항해 싸워 자유를 쟁취해낸 기억이 있다. 이 투쟁을 이끌었던 도시의 인민을 가리켜 시티즌(citizen)이라 한다. 시티즌은 자신의 주권을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낸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우리는 시티즌을 시민이라 번역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민은 ‘시에 속한 인민=시민’ 일 뿐이다. 우리가 시티즌을 정확히 번역하려면 프랑스 시민혁명의 역사와 그 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대체어를 찾아야 한다. 필요하면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그 뜻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만들었을 때에만 우리는 그 말과, 쓰임을 정확이 이해할 수 있다. 과연 시큐리티(Security)가 우리가 말하는 보안이라고 부르는 의미가 꼭 같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시큐리티와 우리의 ‘보안’은 비슷한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시티즌과 시민처럼 뉘앙스는 분명 다를 것이다.

 

우리와 서구세계는  가치관, 세계관이 다르며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이 다르며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대처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 그럼에도  수입한 개념은 별다른 반성적 사고 없이 우리의 삶 속으로 무비판적으로 들어온다. 문학영역에서 번역은 그냥 말하는번역이 아니라 제 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다. 외국문학의 제대로 된 소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창작되어야 한다. 시큐리티의 어원은 라틴어로 무엇이고 하는 건 알면 좋지만 몰라도 되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말로 사고하고 우리의 언어로 개념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의 언어를 상실한 시대,  말 찾기에서 우리의 보안은 한 단계 성숙해 질 것이다. 영어와 일본어 등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정보의 축적량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만큼 스스로 생산해 낸 지식이 많다는 소리다. 시큐리티와 보안 역시 우리가 생산해낸 말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지극히 한국적으로 보안의 개념을 사고해보자.  그래서 우리 문화의 맥락에서 우리의 보안을 생산해 보았으면 한다. 선진국이라는 것은 그 국가 스스로 생산한 지식이 많은 나라를 말한다. 우리 식으로 사고를 하고 지식을 생산할 수 있어야 우리도 선진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지식인이 아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요구한다. 진짜 한국적 보안은 무엇인가.   글로벌 보안은 이런 것이니 그걸 배우고 빨리 습득했다고  자랑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서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생산할 보안지식은 무엇인가를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진짜 우리 땅에서 우리  생각으로 보안을 생산해 낼 수 있다.

개념까지도 수입해 쓰면 안 돼지 않는가.   아직까지도 우리는 기술만 난무할 뿐 통찰과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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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단상(斷想)

직감과 경영

경영의 세계는 엄혹하다. 합리와 비합리의 경계가 모호하다. 잔잔한 바다를 순항하는 듯 보이지만, 바다는 언제나 거친 비바람을 품고 있다. 경영은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예상치 못한 바깥사정으로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 가장 ‘부조리’한 것이라고 했던 카뮈의 말처럼 이유도 모른 채 어느 순간 나락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위험에 빠진 경영은 판단의 시간이 부족하다. 막막하고 아연한 감정이 일렁인다. 경영자에겐 혼돈 속에 명운을 건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실패한 경영의 배후에 대해 지식인들은, 폭풍에 맞선 어부들의 사투와 같았을, 위기에 빠진 경영자의 목숨을 건 숨가빴을 시간을 두고 철 지난 조언을 하기도 한다. 경영전문가들의 현명한 조언이 담긴 책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그러나 때때로 현실에 반영되지 못한 경영서적은 서점과 도서관의 가득 찬 책장 한 켠에서 언제 신간에 밀려 창고로 혹은 폐지로 나갈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인간은 우매하다. 경영학을 십수 년을 공부하고도 자신이 실제 경영의 세계에 발딛여 놓으면 대부분 물속에 처음 들어간 것처럼 허우적거린다. 실제 경영의 세계는 위험투성이다.
 
경영의 현장에서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린 생존의 갈림길에서 경영자의 직감은 성패를 좌우한다.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라. 쉴 새 없이 회의를 하고 차가운 이성을 가진 머리로 정확한 판단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의식의 배후엔 직감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경영은 분석과 같은 차가운 이성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가슴이 이끄는 감정의 세계이기도 하다. 과반수가 지배하는 국회가 아닌 이상, 치열한 경영현장에선 경영자의 직감과 통찰이 지배한다. 그 직감의 정확도가 경영의 백미(白眉)다. 경영을 잘하려면 결국 오답을 피해나갈 수 있는 본능적인 직감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 필수다. 그러므로 어쨌거나 직감의 정확도를 올려야 한다.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였을 때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고 진상을 곧바로 느껴 앎. 또는 그런 감각. '직감'에 관한 국어사전 설명이다. “내 느낌은 이렇다”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의 의도는 이런 것 같아” 또 어떤 사안을 두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우리들은 ‘감’에 의존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전문가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넌 어떻게 생각해”하며 물어보고 결국 전문가의 말대로 판단을 해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직감이란 감각도 훈련이 필요하다. 왜냐면 오랜 경험의 축적으로 생긴 하나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결정의 망설임 앞에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직감적인 결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전에서 본능적인 슛을 성공시켜 승패를 가른 박지성 선수에게 물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직감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먼저 내 경험을 검증해야 한다. 동일한 경험은 거의 없다. 사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지역이라면 기온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다. 사람의 인식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사람의 감각은 자신이 들어야 하고, 봐야 하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발달한다. 부지불식 간에 특정 상황의 조건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갖다 붙인다. 직감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내 경험이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확보돼 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카트리나 태풍으로 루이지애나 대홍수라는 파국적 사태를 맞이한 당시 미국 국토안보부 통제국장 메튜 브로데릭의 실수는 정보의 편향된 취사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생각의 패턴이 문제였다.또한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올바른 조언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의 취사는 이해관계에 얽매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목적에 부합되는 정보만을 선택한다는 건 자신에게도 독이 되고 조직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반대의견을 수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그리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되, 의심하고 검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전문가는 존중해야 한다. 단 그들의 의견에 무조건 순종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권위에 주눅들지 말자는 얘기다. 다른 생각이 있으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 그렇다고 전문가를 무시하란 말은 아니다. 조언에 대한 어설픈 배척은 자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다름 아니다. 존중하되 그들의 의견을 그대로 믿어버리지는 말란 말이다. 만약 본인이 전문가라면 자신 스스로 전문가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현상에 대해 지금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오류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가 필요하다.경영의 핵은 의사결정이다. 갑자기 닥친 위험 앞에선 즉각적인 직감과 통찰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의 경험이, 타인의 전문적 조언이 상황에 적절한 것인지 의심하고, 검증하는 습관의 형성이  직감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편이다. 아울러 경영자만큼이나 위험의 한가운데 서있어야 하는 보안전문가들에게 정확도 높은 직감은 필수적인 소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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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단상(斷想)

사기꾼의 미끼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다. 보란 듯 성공해서 이름을 날리고 싶어 한다. 건전한 인정욕구는 목표를 향한 험난한 도전의 여정에 힘을 보태는 보약이다. 그러나 지나친 인정욕구와 공명심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 심리를 악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기는 사람의 감정을 흔듦으로서 시작한다. 지나친 인정욕구를 가진 이에겐 ‘존중하는’ 그 자체로 과시욕을 더욱 부추긴다.  때론 자존감을 의도적으로 훼손시킴으로써 스스로 과시욕을 일으키도록 유도한다. 고위 공직자 출신이나, 퇴직한 대기업 고위직 임원들의 심리적 상실감을 파고든다. 사회적 성공을 이룬 이들과 다른, 성공을 향한 꿈을 좆는 사람들에겐  그럴 듯한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접근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과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된다. 어깨동무하고 사진이라고 한 장 찍으면 소셜미디어에 한껏  자랑하며 올려댄다. 그 ‘높은’ 양반들 덕분에 마치 자신의 인생이 바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들은 표적이 된 대상에게 각종 모임과 만남의 기회를 계획적으로 만들고 때가 되면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 꾼들은 '근거없는 권위에 굴복'하는 자존감 약한 사람들에게,' 너의 인생을 바꿔 줄 거짓 희망' 이라는 미끼를 던졌고  나약한 표적은 불행히도 미끼를 물고 만다.

      사기는 사람의  욕망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은 마치 악마처럼 애써 숨긴 욕망의 문을 두드려  수면위로 불러낸다. 그들은 그저 욕망을 불러냈을 뿐이다. 미끼를 문 건, 욕망을 들킨 이들이다. 악마에게 호출된 나약한 인간의 욕망은 강렬하게 질주한다. 소중한 가정도 친구도 허리케인처럼 날려버린다. 태풍이 멎은 후엔 날아가 버리고 부셔진 것들을 보고 후회하겠지만.....

      요즘 세상엔 나이든 어르신들이 아니라면 소셜미디어 한 두 개를 안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소셜미디어 속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매일 매일 쏟아진다. 그 속엔 살아가는 데 유익한 이야기도 많고 피곤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재미있는 글과 그림도 많다.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올린 이의 숨긴 속마음이 들릴 때도 심심찮게 있다. 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말하고자 하는 말은 단 한마디다. “나는 인정받고 싶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걸 탓할 마음은 없다. 단지 그 욕망을 ‘누군가’이용할까봐 두렵다. 지나친 인정욕구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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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0 - 10

562

 

 

 

환영마법으로 특정인물만 속이려고 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사실 행여나 내가 없을 때의 행동방침에 대해 잡화점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고 내가 회유를 당하지 않았으나 납치를 당했을 경우, 다른 곳에서 시선을 이끌고 그리티스 씨나 시나에게 부탁해 내 위치를 찾고 구출하는 것. 내가 회유를 당하거나 세뇌를 당해 적의 편으로 돌아설 경우 즉시 말살하라는 방침이었다.

 

그렇게 다짐을 했었으며, 마리아가 내 그림자에 숨어서 다닌 것은 잡화점 멤버 쪽에서 나 몰래 보험을 들여놓은 셈이 되었으니까. 다만, 이 작전의 주요목적은 리제로트가 레이베리아에게 탈출소식을 알리고, 다른 방향에서 레시아가 사고를 터트린다면, 유랑극단이나 그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시나가 그 틈에 천계로 들어가서 상황을 훑어보며 나에게 보고를 해야 하지만...

 

“늦어서 걱정이네.”

 

5시간째 도착하지 않은 시나가 걱정되어 잠을 못 자고 있었다. 당연히 지금은 새벽 2시라서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니까 잘 수 없다는 말이 제대로 된 설명이지만, 사실상 손님이 오건 말건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고 싶었다. 뭐, 루비아에게 맡기고 자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카렌의 기억은 서서히 복구가 되어가려고 해도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걱정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리제로트나 레이베리아가 너무 손쉽게 놔준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생각의 늪에서 질식상태까지 다가가도 좀처럼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예측할 수도 없고,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뭘 알아야 찾던 말던 하지.

 

결과적으로 우리들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만큼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시나만 무사히 귀환을 해준다면 말이다.

 

“아무래도 천계에 잠입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아서라. 주인은 충동적으로 일을 그르칠 생각인가?”

 

“일을 그르치진 않아요. 다만, 걱정이 되는 것뿐인데...”

 

“흐응? 주인은 그 비둘기가 더 마음에 가는 건가?”

 

그리고 잠깐 동안의 정적. 검은 고양이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중얼거렸다.

 

“짐에게도 그 비둘기의 공백이 느껴지는군. 아무리 마왕이라도 익숙하지 않는 것은 예민하게 감지하는 듯 하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천계에 찾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거라. 그 비둘기는 짐이 인정한 라이벌이니 말이다.”

 

“라이벌로 인정하신 거에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시, 시끄럽다!”

 

검은 고양이가 다급하게 소리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귀여워서 쓰다듬고 싶으나 지금은 자제하도록 하자.

 

-손님 받아라!

 

잡화점은 오늘 전체적인 점검이 있을 예정인데, 대체 세린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알림음을 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따져야겠다. 손님은커녕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시나였지만, 무사히 도착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에서 느닷없이 미소가 사라지는 듯한 소식을 접해버렸다.

 

“마스터. 늦어서 죄송합니다. 수색해야 할 곳이 너무 넓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정보도 없었고 그 어떠한 장소에서도 다른 여신이나 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샤이어도 실종이 되었고 창조신마저 자리가 비어있었습니다.”

 

창조신마저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 사실에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천계에 레이베리아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 되는 건가? 엘티노스 어딘가 숨어있으니 때가 되면 알아서 오겠지만, 아우리스는커녕 창조신마저 사라지게 된 원인부터 추측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 많던 신이 안드로메다로 출장 간다고 메시지를 남기지 않지 않는가?

 

그렇다면...

 

“창조신마저 봉인 당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나마 안전한 곳은 명계인가...”

 

마계는 마왕이 다스리고, 천계는 최종적으로 창조주가 보살핀다. 하지만 창조주가 만들어도 독자적인 권력으로 질서를 지키는 세계가 바로 명계인데, 명계에 있는 염라대왕이 천계에 올라가지 못하는 영혼들을 거두어 여러 생물로 환생하게 도와준다.

 

당연히 죄값이 있다면 그것부터 치르게 되지만, 엘티노스의 자서전에는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그나저나 이 양반은 인간이었던 시절에 명계도 완주하고 온 건가? 스케일이 너무 크잖아?

 

“마스터.”

 

하얀 올빼미가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깃털을 쓸어 내리면서 머리 안에 있는 주판을 이리저리 치기 시작했고, 계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비어있는 왼손에 검은 고양이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주인. 저 비둘기만 쓰다듬지 말고...”

 

“올빼미 입니다.”

 

“어쨌든! 짐도 어서 귀여워하거라!”

 

어떤 마왕이 자신을 보며 “나를 귀여워해라! 명령이다!”라고 소리친다면 제보를 해주길 바란다. 레시아가 특수한 케이스인지, 요즘 마왕이 하나같이 전부 나사가 빠졌는지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아무리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하지만 응석을 너무 부린다. 레시아가 응석을 부리던, 시나가 더 적극적으로 귀여움을 받기 위해 다가가던, 계산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했다. 언제나 늘 그랬듯 생각의 늪에 또 잠기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머리까지 담그고 초마다 1M씩 떨어지고 있었다.

 

2M...3M...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나는 눈을 감았다.

 

어느 관점으로 관찰해야 할까?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생각을 하면 그 끝에는 결론이 도출되기 마련.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나갔을 때, 정신을 차려보면 결승선을 통과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지 않는가? 명계로 가려면 반정도 죽은 상태에서 딸아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위험도가 매우 높다.

 

그러면 명계를 살아서 가야만 하겠지.

살아서 명계로 가야 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하지만, 분명 엘티노스는 인간시절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자세한 방법이 자서전에 기술되지 않았기에 지금부터는 가설이 난무하는 실험대라고 보면 된다.

 

명계를 살아서 가기 위한 방법.

뱃사공을 이곳에 부르는 방법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명계로 가는 문을 수색하는 것뿐이다. 세 번째가 있을까? 있으리라 본다. 엘티노스에게 부탁해서 명계에 잠깐 산책을 나간다고 말하면, 분명 엘티노스는 “뭐 이러 정신 나간 녀석이 다 있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도 꽤 효율이 높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력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데, 역시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는 명계의 문을 찾아야만 하는가?

 

“사키엘의 문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가죠.”

 

“응?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마스터?”

 

잠깐? 시간이 얼마나 지났길래 내 이불자리에 레시아와 시나가 양 옆에 있는 거지?

 

“언제나의...”

 

“언제나가 아니잖아요! 젤나가 헛기침하는 소리 좀 하지 마요!”

 

“그래도 추운 겨울이니 꼭 붙어서 자는 게 좋지 않는가? 게다가 생각을 너무 오래했노라. 새벽 6시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생각을 하니, 결국 우리가 직접 이불도 펴주고 같이 붙어서 얼어 죽지 않게 도와주고 있지 않는가?”

 

잡화점에서 얼어 죽는 게 도롱뇽이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입니다만? 온도를 조절해주는 마법진이 날아간다면 모를까?

 

양 옆에서 샌드위치처럼 눌러오고 있으니 불편하긴 불편했다. 다만 수면 잠옷을 입은 것만으로도 불편함이 서서히 녹고 편안함이 오래 지속될 예정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꼭 있다. 이놈의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선처리라고 말해봤자 아주 기초적인 건데, 고개를 어딜 돌리며 자야 하는지 모른다는 소리다. 레시아 쪽으로 돌리다간 시나가 삐치고, 시나 쪽으로 보다간 레시아가 뒤에서 마법을 날린다.

 

그러니 나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천장만 뻐끔뻐끔 바라만 보는 붕어가 되어보자. 머리는 이미 잉어와 대화하고 있다. 앞으로의 대화는 잉어와 붕어만 써지겠지.

 

“주인?”

“마스터?”

 

“붕어.”

 

-파악! 퍼억!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충격이 배와 가슴을 각각 강타하자, 몸 속에서 거칠게 바람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기침을 했다. 다급하게 반쯤 일어서서 두 사람을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뭐 하는 거에요!”

 

“주인이 뜬금없이 붕어병에 걸린 줄 알았다. 실로 위험한 전염병이지 않는가? 붕어병에 감염되어 증상이 나오기 시작할 때. 때리면 치유되는 병이라 하여 절차에 따라 주인을 때려보았다. 어떤가?”

 

“뭐가 ‘어떤가?’에요! 한 순간에 요단강을 건너 스틱스 강까지 날아갈 뻔했는데! 그리고 시나!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잘도 데미지를 줬겠다?”

 

“저는 마스터를 존중하고 보필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붕어병에 대한 치료를 조사하던 중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토대로 절차에 따라 마스터를 때렸습니다. 치료를 위함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한다면 아마 수백 번 고쳐 죽어서 넋이 없으리라 생각하다만...

 

“아무튼 다음 계획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가?”

 

“아뇨. 처음부터 다 틀어져서 새로 짜야 할 거 같아요. 레이베리아가 설마 창조신까지 날려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엿장수에게 찾아가면 다시 얻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창조신이 얼마나 약하길래 자신이 죽을 뻔했던 사건마저도, 내가 해결했기에 넘어가던 상황까지 있었다. 창조신이 그저 이름만 드높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면, 이곳을 창조했을 때의 거대한 힘은 어떻게 써먹은 걸까?

 

“창조신부터 찾는 건 하지 말죠. 어쩌면 구해도 별 소득이 없을 테니까요.”

 

“이제 슬슬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저희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면, 가장 취약할 때 노리고 오겠지요.”

 

가장 취약할 때 노리고 온다.

모든 생물은 잠을 자고 있을 때 무방비 상태가 되곤 한다. 하지만, 잡화점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으니, 그 다음으로 취약한 부분을 찾는 것이 일이니까...

 

“외출할 때 앞으로 최소 2인 1조로 다니는 것을 권장하는 바입니다. 두 분은 다른 잡화점 멤버에게도 전해주시고, 윈디 메르아에게도 알려주세요.”

 

-부스럭 부스럭...

 

어라? 이불 위에서 뭐가 움직...

 

“카일 씨? 저에게 뭘 알려줘요?”

 

“우아아아아아악!”

 

-댕!

 

잠깐 5초동안 정신이 방전되었다가 눈을 떠보니, 윈디는 반대편으로 날아가 처박혀 있었고, 나는 어느 사이에 일어서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오른손에 프라이팬이 있는 걸 보아하니, 총알도 막는 내구도로 윈디를 홈런 시킨 모양이다.

 

바람의 정령왕이니 살았으리라 생각했는데, 데미지가 너무 큰 탓인지 한동안 작은 경련을 일으키며 고통의 신음을 길게 흘리고 있는 윈디 메르아. 과민반응을 한 내가 더 미안한 나머지 왼쪽 검지손가락으로 머리를 살짝 긁어 내렸다.

 

“저기. 윈디? 살아있지? 괜찮은 거야?”

 

나의 안부인사를 들은 레시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내 행동이 너무 쓸 때 없어 보인 거겠지. 실망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레시아의 작은 입이 열렸다.

 

“주인. 프라이팬으로 만루홈런을 날렸는데 괜찮은 거냐고 물어본들 응답할 리가 없다. 그 전에 난폭한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는가?”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기억용량이 떨어져서요.”

 

“아무래도 주인의 램을 32기가바이트로 바꿔야 할지어다.”

 

 

어째서 뇌 속에 그런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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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저는 다시 출발지점을 밟은 듯 합니다...

[월화수목금금금 야근 에디션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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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0 - 9

561

 

 

집에 풍선을 달아 하늘을 나는 것도 솔직히 말해 정상범위가 아니지만, 6층이나 되는 건물을 로켓을 달아 날아 올리는 그 자체도 말이 더 안 된다. 차라리 어디 타임로드처럼 파란박스 상태로 다니던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시공간마법에 대해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 상태인가? 하긴 유일하게 사용할 줄 알던 인간들이 전부 힘을 잃어버렸으니, 페어리들의 여왕인 티아 메르세데스에게 교육을 받아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차라리 개구리가 말하는 게 더 높을 지경이니까. 그래도 레인의 도움을 받아 극적인 탈출을 했으니, 레시아를 빠르게 찾아 지원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꼭 잡화점이 로켓마냥 날아다녀야만 할까? 그보다 분명 5층건물이라 들었는데?

 

“너는 무슨 이유로 층수가 바뀌는 거야? 3층만 있어도 대부분의 물품을 다 넣을 수 있는데? 그거 몰라? 잡화점의 안과 밖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 안이 더 넓다고. 6층까지 만들 정도로 좁지 않아.”

 

“카린 씨는 낭만을 모르네요. 하긴 지금은 아리따운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버려서 그런가요?”

 

“죽을래?”

 

명계에서 뱃사공을 하고 있는 딸에게 보내버릴라 보다. 기괴한 가면을 쓰고 히히하며 웃는 레인은 밖의 상황을 지켜보려고 하는지 창문을 열었다. 거친 바람이 잡화점 안을 다 휘젓고 다니는데, 어처구니 없는 건 정문을 열자 밑에 바로 건물 지붕이 보인다는 점과, 그래도 우리는 바닥에 붙어서 정문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마를 개조를 해야 저런 잡화점이 되는 걸까?

 

나중에 손님에게 대중교통서비스까지 운행해주려는 건가? 신나는 잡화점버스라는 식으로?

 

레인의 손에선 잡화점의 기둥을 붙잡고 있고, 손에는 황금빛이 꺼질 줄을 모르고 계속 나아갔다. 무기물에 해당하는 것들을 세상의 이치와 전혀 관계없이 무기로 만들어버리는 능력. 능력도 능력이지만 레인의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이 하나의 또 다른 무기로 만들어냈다.

 

“그런데...마리아? 아직 기억을 못 찾은 아이들을 이용해서, 사탕을 먹는 행동은 자제해주시죠?”

 

뒤에는 이미 받들어 모셔지고 있는 검은 달의 여왕이 존재했다. 잡화점에서 공백으로 덮어씌워진 소녀들의 기억을 다시 복구하고 있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아직까지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아이들을 멋대로 조종하고 앉아있는 중이다. 기억을 복구하는 것에 있어선 망각의 샘물로 인해 덧씌워진 부분만 벗겨내면 되지만, 작업이 잘못 되기라도 하면 일부의 기억이 날아가는 부작용이나, 자아가 다른 방향으로 삐뚤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시간이 좀 걸린다는 의미는 그것인데...

 

“한 사람의 기억을 복구하는데 20분씩이 걸리니까. 현재 30명정도 되는 사람을 죄다 복구해야 하니 지루해서 죽어버릴 지경이다! 그나마 꽃밭에서 놀아보는 것도 첩의 소원이었으니 지금이라도 넘어가달라!”

 

“아주 멋대로 난리를 치시는군요.”

 

한숨밖에 나지 않았다.

뇌를 포크로 직접 찌르는 고통이 선명하게 각인되고 있을 무렵. 화재에 휩싸인 도시가 붉게 발광하는 야경이 시야에 비춰졌다. 그리고 그 화재의 한 가운데에는 검은 고양이 하나가 지나가더니 그 뒤로 지나가는 모든 것이 다 붕괴되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건물 하나마저 검은 고양이 근처에 도달하지 못하고 소멸하며, 남은 건물 잔해 하나도 남김없이 날려보냈다.

 

그저 검은 고양이 하나가 모든 것을 어둠으로 잠식해버린다. 저게 13대 마왕의 클래스라면 클래스라고 설명하는 게 맞겠지. 기존에 있는 마왕보다 너무 월등한 능력을 자랑하는 만큼, 모든 것이 다 무너져내려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 범위는 너무 포괄적이라서 대륙 전체가 무너져내려도 할 말이 없으나, 지금 레시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게다가 각개격파를 하겠다던 레이베리아의 말과는 달리, 잡화점 멤버가 뭉치고 다니며 레시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옛날에 마왕을 실수로 불렀다는 죄책감이 이제서야 나타나는가?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저게 당연하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레인. 여기서 나는 내린다.”

 

“어라? 카린 씨! 낙하산은 가져가야죠!”

 

낙하산은 필요 없지. 레시아가 받아줄 테니까.

잡화점 정문을 거침없이 뛰어내리자 검은 고양이의 모습은 어느 사이에, 위압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바뀌어있었다. 연보라 빛 머리카락과 더불어 붉은 눈은 지나오던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더 강한 인상을 줬고, 근엄한 모습과는 달리 모든 이들을 매료하는 외모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은 어지간히 하늘을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짐은 비록 마왕이지만 하늘에서 무턱대고 떨어지는 사람을 자주 받아주지 않는다.”

 

레시아의 손에 검은 빛의 마법진이 나타나면서, 중력가속도를 타고 떨어지는 내 몸이 일순 천천히 흐르듯 땅에 내려가고 있을 때. 레시아는 두 팔을 뻗어 나를 살며시 받아줬다. 내 두 발이 땅바닥에 닫자마자 레시아에게 질문을 했다.

 

“시나는요?”

 

“천계에 입성했다. 그 전에 Yee.T 보드게임으로 모든 이들의 시선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은 하지 않는 것인가?”

 

“하고 싶어요?”

 

“짐이 1등인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구나. 아무튼 이 상황에 대해 수습을 할 준비를 해보도록 하자. 수습의 준비는 간단하게 없었던 일로 돌리면 그만이다. 없었던 일을 하기 위해 실행하려면 시간을 역행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아직 내가 불가능하니 레시아는 실제로 부수지 않고 눈속임을 시행했다.

 

레시아가 검게 덮고 있는 것은 파괴의 상징이 아니라, 환영 마법 중에 하나인데 보통 기상날씨를 알려주기 위해 비추는 용도로 사용한다면, 레시아는 아무래도 매우 강한 마왕이라서 한 평면이 아니라, 3차원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게다가 일반인들은 모두 이 상황에 대해 알 리가 없다. 그러니 지금 우리를 막으러 오는 자들은 거의 초능력자나 유랑극단 중에서도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간부들뿐이지.”

 

“복잡한 절차인데 잘 하시네요. 보통 일반인들이 평범한 삶과 같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환영과 그 외에 존재들은 불타고 종말이 찾아오는 환영을 동시에 구현하다니.”

 

“뭐. 이 정도면 간단하다. 잊었는가? 짐은 꽤나 강한 마왕이니라. 저런 절차가 2%정도 오차 나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마나 역류가 시작되긴 하겠지만, 그 이전에 마나역류의 조짐이 보이면 곧바로 캔슬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이런 괴물 같은 마법을 구현할 수 있는 이유라고 한다면, 짐 옆에는 유능한 마나 창고가 붙어있기 때문이니라.”

 

마왕치고는 너무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뒷머리까지 쓸어 내리기를 반복하니, 이제서야 내가 뭘 바라는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이제 본 모습으로 좀 바꿔주시죠. 볼일은 다 끝났으니까.”

 

이제 본래의 성별과 나이대로 돌아갈 시간이고, 잡화점의 주인인 카일로 되돌아갈 시간이다. 이제 이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건 사양하고 싶다. 가급적이면 영원히...

 

레시아가 손바닥을 마주치자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거대한 현기증이 일어나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본래의 모습, 본래의 성별로 되돌아가 있었다. 뭐 키는 한결같이 170은 못 넘는다고 해도, 변하기 전의 남성용 옷을 입고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자.

 

“그런데 이곳까지 오면서 유랑극단의 간부나 다른 초능력자들을 본 적이 없나요?”

 

“없다. 무식하게 조용해서 짐도 의문을 표하고 있노라.”

 

루니아 누나와 루비아도 레시아를 호위해서 왔다고 하지만, 그 어떤 적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레이베리아에게 정보가 흘러 들어간 것처럼 보였는데, 이곳에 먼저 도착해서 레시아와 싸워도 이상하지 않게 시간이 많이 흐른 뒤다.

 

빈집털이를 하기엔 잡화점 멤버들보다 잡화점이 더 강해서 불가능하고, 기습을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차단이 된다. 이 일을 벌써 알아차리고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까?

 

“설마 저들이 간파라도 한 것일까요? 이 환영마법이 보이는 사람들만 수색해내는 것에 대해 말이죠.”

 

“레이베리아라면 간파를 할 수 있어도 지금 한 명이 걸려든 것처럼 보이노라.”

 

“한 명이요?”

 

1명이라면 어릿광대일까?

맹수 조련사는 아직 유랑극단 가입유무에 대해 모르고, 리제로트라면 월터와 항상 같이 다니니까 2명이 되야 한다. 우선 가능성으로 가장 높은 건 어릿광대나 레이베리아인데, 장막을 거두는 순간 의외에 여성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이 현상은 거대한 마기가 안개처럼 퍼지는 환영마법이라니! 마법학파도 이제 머지않아 부흥하게 될...어라? 걷혔다. 어라라!”

 

밝은 회색 빛의 롱 웨이브가 달빛에 비춰졌고, 나를 바라보는 호박 빛의 눈동자가 반가운 기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300년 전에는 봉인된 이후에 한번도 못 보던 바람의 정령왕.

 

윈디 메르아가 내 눈앞에 곧바로 나타났...

 

“꺄아! 카일 씨! 너무 오랜만이잖아요! 300년 만인가? 500만년 만인가? 반가워요! 안아주세요! 쓰다듬어주세요! 아이언 클로 해주세요오오...으갸아아아악!”

 

“만나자마자 뭐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진정하라고!”

 

본 모습으로 돌아온 나는 반가운 얼굴을 보자마자 하는 일이 아이언 클로로 상대를 잠재우는 일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변하지 않는 윈디의 모습으로 인해 머리에 두통이 서서히 몰려왔다.

 

“이번엔 무슨 캐릭터로 유희를 즐기는지 설명해주실까?”

 

“아뇨. 이 세상은 마법사라는 직업이 도태되어있고 마법공학자가 큰 인기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바람의 마법사가 되어 세계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직까지 마법은 크나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이런 곳에 있었죠. 그나저나 죽은 줄만 알았던 카일 씨를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적인 거 같네요! 그 동안 왜 저와 이프리트를 부르지 않으셨나요? 네?”

 

이거 설명하기에는 말이 길어질 테니 요약해서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원래 300년전에 있어야 할 카일 씨가 멈춘 시간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그 반동으로 가속된 시간 속에서 표류를 했더니, 이곳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되네요. 그리고 유랑극단이 일을 벌이는데 아직까지 살아남은 자들이 있기도 하고요?”

 

“맞아.”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윈디를 보며 적어도 두통이 완화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다만...

 

“잠깐? 윈디. 너는 그럼 이곳에 떠돌아다니면서 유랑극단이 살아있다는 것도 몰랐단 거네?”

 

“바람을 속일 정도로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인가 보죠. 그런데 카일 씨? 생각보다 많이 바뀌었네요? 에너지의 흐름이라던가 상태 같은 거 말이에요. 이 정도의 힘이라면 저를 트럭 3대에 가득 채워서 소환하실 수 있으실 텐데?”

 

지금 충전되고 있는 창조주의 에너지를 말하는 건가? 아직까지 불안전하게 마기와 마나가 합쳐지기 시작했지만, 신성력까지 모이면 더 강력한 에너지로 돌변하여 내 체내에 깃들게 된다. 다만, 인간의 그릇으로는 그 힘을 버티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들만 조금씩 조금씩 찾아서 쓰는 중이다.

 

“마법이라기보단 신에 가까운 힘인데, 너를 트럭 3대에 가득 채워서 소환하다간, 내가 트럭 3대에 죽은 상태로 장례식장에 가겠다.”

 

정령왕을 소환한다는 그 자체부터가 뛰어난 정령사가 해야 할 일이지. 사실상 이프리트나 실피드인 윈디 메르아는 내가 소환해서 만난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유희를 즐기다가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이곳 근처에 유랑극단이나 너처럼 그 환영마법에 반응한 사람이 근처에 있어?”

 

 

조급한 마음에 다시 주제를 돌려서 윈디에게 질문을 돌리니, 좌우로 고개를 휘저은 윈디가 “아니요. 없었어요.”라며 부정을 표시했다. 아무래도 인생은 내 멋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저쪽에서 속임수를 간파하고 나를 따로 추적하지 않은 모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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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말도 일나가네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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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단상(斷想)

편견

영화 『내부자』 속의 안상구(이병헌 분)는 깡패다.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그리고 언론이 유착한 비리행위를 도왔던 깡패 안상구는 더 큰 꿈을 욕망하다 결국 버림받고 그들의 비리를 폭로한다. 그러나 정치권력과 재벌과 언론은 그가 깡패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킨다. 결국 깡패라는 선입견과 편견 덕에 그의 정의로운 고발은 오히려 그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파렴치한’으로 깊은 곤경에 빠뜨린다.


메시지가 맞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만약 메신저가 믿을 만하다면 메시지를 혼탁하게 하라. 정치적인 공방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라고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영화 속 장면과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비리의 주인공들은 흠집많은 메신저를 공격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편견’이라는 정서를 잘 활용했고 대중은 진짜 읽어야 할 메시지에 집중하지 않는 대신 ‘안상구는 깡패다’ 라는 사실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사회생활을 겪으며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자신에게 가지는 타인의 편견으로 불편했던 적이 있으리라. 학력이 이러니, 경력이 이러니, 어느 지역 출신이니, 등등. 사실 편견을 안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는 크고 작은 편견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편견은 학습의 산물이다. 지연, 학연, 혈연과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편견은 자연히 학습된다. 어느정도의 편견을 가지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부정적이지 않다면 말이다.

 

편견은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 어느 한편으로 깊게 뿌리박히고 고정된 생각의 경향을 가지는 정서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편견의 형성은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다. 가정과 출신지역, 출신학교 등 어떤 형태의 사회에서든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한 일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적 오랫동안 상호교감했거나, 비록 주관적인 감정이더라도, 자기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타인이나 타지역, 타집단에 비해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과 같은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 또는 괴리감에 의해서도  형성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편견은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서 대단히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며,  편견의 대상을 재평가할 만한 의미있는 의견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자기의 사고의 오류를 수정함에 인색하다.


이 편견이라는 정서는 어떤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동조될 때 위험하다. 즉 특정대상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이 큰 집단이나 개인의 의견이  그와 다른 의견과 상충될 경우, 다른 의견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다수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편견은 집단화되며 조직화될 수 있고, 그로인해  불안요인이 조성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편가르기'라고 해야 할까.


조직적이고 집단화된 편견은 위험하다. 어떤 현상에 대해 편견이란 정서가 뿌리박혀 있다면 경영이란 관점에선  사고의 유연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경영현장에서 조직의 '편견'은 한번쯤은 짚어봐야 할 문제다.

경영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의사결정을 함에 위험판단은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래서 경영자는 항상 냉정하되 유연한 사고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최고 경영자든 일개 부서의 부서장이든 편견을 가지면 위험을 판단하는데 장애요인이 안게된다. 위험요인을 판단함에 있어 위험하지 않다는 의견에 ‘왜’라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편견은 학습의 산물이다. 편견은 하나의 감정이다.  그렇기에 편견의 극복은 훈련으로 학습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보안경영은 모든 경영행위의 전방에 '안전하고자 하는 인식'을 배치하는 것이다. 보안은 위험관리다.  위험관리는 검증된 것이라도 되새겨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편견은 되새겨 보는 태도를 방해하는 감정이다. 위험을 다루는 보안인들에게 편견을 의심하는 태도는 두 번 말 할 필요없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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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1-9

거리도 잠든 깊은 밤, 검은 두 실루엣이 동쪽 해안가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디아가 본 게 확실할까요? 배교한 아랍인일 수도 있어요."
발레트의 뒤를 따르며 로메가스는 의심쩍은 어투로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나디아가 봤다는 초승달형의 칼이 마음에 걸려. 배교한 아랍인이 그것도 어부가 그런 칼을 갖고 다닐리가 없잖아."
발레트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던 나디아를 떠올렸다.
"그냥 장식품이 아닐까요?"
"말도 안돼. 귀족도 아니고 바다에서 그물질하는 어부가 장식으로 그런 칼을 찬다고? 보키아 시종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상해. 귀족의 시종과 어부가 뒷골목에서 만날 일이 있을까?"
발레트는 걸음을 멈추고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어부가 정말 오스만 정찰병일까요?"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약 정찰병이라면 오늘 밤 항구를 통해서 반드시 몰타를 빠져나갈거야."
두 사람은 스케베라스산 밑의 마르사 해안에 도착하자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바다는 잠잠했고 파도 소리만이 해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발레트는 바위에 등을 대고 모래 위에 앉았다. 한밤의 해안은 적막했고 축축한 공기가 그들의 주변을 둘러쌌다. 발레트는 작은 어떤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온 주의를 기울여 어둠 속을 주시했다. 밤의 차가운 기운이 그들의 몸에 스며들 때쯤, 서로의 숨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미세하게 들렸다. 발레트는 바위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검은 물결 사이로 쪽배가 노를 저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한 사내가 비탈길을 내려와 재빠르게 바다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발레트는 곧바로 뛰쳐나가 달리는 사내의 어깨를 잡아챘다. 사내의 몸이 돌려지는 것과 동시에 칼이 휘둘러졌고 발레트는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뒤이어 달려온 로메가스가 손쓸 새도 없이 모든게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사내는 이미 바다에 뛰어들어 엄청난 속도로 헤엄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로메가스가 뒤에서 발레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오스만 정찰병이 맞았어!"
발레트는 배를 움켜진 채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얼마나 다친 거에요? 어디 좀 봐요."
로메가스는 상처를 보기위해 무릎을 꿇었다. 발레트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괜찮아, 깊이 배이진 않았어. 엄청난 속도였어! 훈련받은 군인만이 할 수 있는.. 아주 민첩해. 나디아가 본 게 사실이었어! 로메가스!"
발레트는 흥분하여 소리쳤다.
"빠르긴 했지만 어두워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오스만쪽 사람이 확실할까요?"
발레트는 아무말없이 사내가 떨어뜨린 초승달 모양의 칼을 로메가스에게 건넸다.
"곧 시종에게 얘기가 들어갈거야."

 

 

탕!탕!탕! 고요한 밤을 방해하는 둔탁한 바깥 소리에 나디아는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탕!탕!탕! 거센 소리가 이어지자 나디아는 베게밑에서 칼을 빼내 옷안에 숨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누구시죠?"
"나디아, 문 좀 열어줘요! 로메가스에요."
다급한 로메가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디아는 급히 문빗장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나디아,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우선 눕힐 곳이 필요해요."
허리를 반쯤 굽히고 로메가스에게 기대어 있는 발레트를 보자 나디아는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나디아, 어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디아를 향해 로메가스가 재촉하며 말했다.
"이리로요."
나디아는 1층의 자신의 방으로 앞장서 갔다. 발레트를 침대에 눕인 후 로메가스는 나디아에게 럼과 물, 깨끗한 천을 부탁했다. 상처는 깊진 않았지만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위치였다.
"나디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발을 잡아줄래요?"
나디아는 떨리는 손으로 발레트의 발을 붙잡았다. 그녀는 발레트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시작할게요."
로메가스는 먼저 발레트에게 럼을 마시게 한 후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상처 부위에 럼을 부었다.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에요. 조금만 빗겨났어도... 어휴.. "
로메가스는 피가 묻은 손을 닦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마워, 로메가스."
발레트는 몸을 일으켜 피 묻은 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일어나시면 안되요."
로메가스는 침대에서 일어서려는 발레트를 저지하며 말했다.
"크레누씨가 일어나기 전에 여길 나가야 해."
발레트가 힘겹게 겉옷을 걸치려 할 때 문이 열리고 나디아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발레트를 다시 침대에 앉힌 후 수프 접시를 내밀었다.
"감자 수프에요, 몸이 따뜻해질 거에요."
나디아는 로메가스에게도 접시를 건넸다.
"고마워요, 나디아. 크레누씨는..."
"아저씨는 잠잘 땐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주무세요."
나디아는 걱정 말라는 듯 수프 그릇에 눈길을 주었다.
"나디아, 정말 고마워요. 기사단 숙소로는 갈 수가 없었어요. 발레트님이 다치신 걸 단장님이 아시는 날엔..."
로메가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봐, 로메가스.. 난 괜찮다니까.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하지 말라구."
발레트는 얼굴을 찡그린 로메가스를 향해 웃어 보였다. 나디아는 발레트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전한 경솔한 말로 인해 발레트가 다쳤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물밀듯이 차올랐다. 그의 피 묻은 셔츠는 5년 전 지옥같던 순간으로 그녀를 데려다 놓았다. 나디아는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어부가...아니었던 거죠... 내가 한말 때문에 당신이 다쳤어요..."
나디아는 여전히 발레트를 보지 못한 채로 괴로운 듯 이마에 손을 갖다 대었다.
"나디아,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 덕분에 더 큰일을 막을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신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전혀 알 수 없었을 거에요. 상처는 신경쓰지 말아요. 조금 긁힌 것 뿐이니까."
발레트는 부드럽게 말하며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로메가스에게도 어서 먹어보라고 권했다.
"난... 난 당신이 다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나 때문에 누군가가 또... 나 때문에..."
나디아는 혼란스러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몸을 떨었고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초조해 보였다.  발레트는 그릇을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나 나디아 앞으로 갔다.
"나디아, 날 봐요. 어제로 시간을 다시 돌린다해도 당신이 본 것을 내게 얘기하는게 옳아요. 절대로 당신 때문에 다친게 아니에요. 내가 방심한 거에요. 난 정말 괜찮아요. 이렇게 바로 걸을 수도 있잖아요."
발레트는 따뜻한 눈빛으로 나디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망울은 눈물이 고인 채 떨리고 있었다. 나디아는 발레트의 얼굴을 가까스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레트는 연신 괜찮다고 말하며 방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나디아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피 묻은 셔츠와 초승달 모양의 칼은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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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단상(斷想)

당신의 감정을 보안하라

행복한 하루되세요!

 

아침 출근 길, 간혹 받는 인사 메시지다. 메시지를 받아보다가 문득 ‘나의 하루’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나의 하루를 곱씹어 생각하면, 직장에서 일 하고, 친구를 만나고 하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분노, 경쟁심, 탐욕, 적대감, 기쁨 등등 매 순간 일어나는 숱한 감정에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 나의 ‘하루’가 좋았는지 안 좋았는지는 하루 동안 가졌던 감정이 결정한다. 결국 행복한 하루 되세요! 라는 말은 좋은 감정을 가진 채 전장 같은 일터에서 따스한 가정으로 웃음 가득 안고 돌아가란 말이다.

 

한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한없는 부정과 절망과 세상에 대한 증오를,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긍정하고 희망하고 사랑한다. 그 사람이 가진 감정이 곧 그 사람 자체다.

 

몇 년 전 무기거래상과 전·현직 장교들이 벌인 방산업체 비리사건과 같은 일명 군피아 사건, 첨단기술 해외유출 사건, 입찰비리·납품비리·인사 비리 등 각종 비리 사건에는 ‘모래 속에 진주 찾기’가 아니라 ‘모래찾기’만큼이나 쉽게 발견되는 문구가 있다. 바로 금품제공! 향응제공! 인간이 가진 탐욕이라는 본성을 이용하는 데 금품제공, 향응접대만큼 더 좋은 솔루션은 없나 보다. 금품과 향응제공은 오랜 세월을 독자들에게 읽히고도, 지금도 서점에서 팔리는 스테디셀러처럼, 탐욕의 시장에서 시대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팔리는 ‘사람 감정 흔들기’ 분야의 스테디셀러임은 분명하다. 비리의 주인공들은 탐욕이라는 감정을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했다.

 

금품과 향응제공에 절대 뒤지지 않는 솔루션이 또 하나 있다. 바로‘미인계’. 스파이 사건에서 미인계를 빼놓고 얘기하면 재미없다.

흔한 얼굴 사진 한 장 구하기 어려워 ‘얼굴없는 사나이’란 수식어가 붙었던 냉전시대 동독 비밀경찰기구 슈타지 대외정보부 HVA의 수장 마르쿠스 볼프 (Markus Johannes Wolf). 그는 1953년부터 1986년까지 그의 30여 년의 재임 기간 동안 서독과 서방세계에 4천여 명의 스파이를 심었고, 동독 스파이 권터 기욤을 서독으로 잠입시켜 시의원 당선은 물론 당시 서독총리 빌리 브란트의 최측근 보좌관까지 오르도록 육성하여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자신의 책상위로 퍼 나르게 했던 탁월한 정보본능을 가진 첩보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미인계, 즉 ‘허니 트랩(honey trap)’은 스파이 세계에서 사용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삼십육계’에도 미인계가 기록되어 있을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뤄지는 계략이다. 마르쿠스 볼프의 스파이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코 ‘로미오 작전’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접근하는 고전적인 미인계를 역발상한 ‘로미오작전’은 잘생기고 젊고 스펙좋은 남성을 이용하여 아데나워 서독총리의 여비서를 포함 서방세계의 정부기관 여성들에게 접근, 거짓된 사랑을 이용하여 정보를 입수하였다. 한 마디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숙주로 삼은 것이다.

 

여러 비리사건들과 스파이 사건들의 장치로 사용된 금품과 향응제공, 미인계는 결국 사람의 결핍과 같은 감정을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 그런 사건들 뿐인가. 사기, 폭력 등등. 사람 사는 세상에 많은 범죄는 한 걸음 더 걸어 들어가면 결국 사람의 감정이 출발지점이다. 사람은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싶어하며,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어 한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의 결핍. 그로 인한 공허함이라는 자리가 탐욕이라는 기회를 만날 때 사람은 ‘실수’하게 된다. 많은 부정행위와 범죄는 결국 사람의 감정에 관한 것이다. 감정처리를 잘 못한 가장 안 좋은 결과가 범죄인 게다.

 

범죄의 유혹을 벗어나는 길은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악한 감정의 박멸이 아니라, 일순간 일어나는 감정의 섬세한 자각과 통제의 기술이다. 유혹을 벗어나는 절대적인 답은 없다. 결국 당신의 감정을 '보안'하는 수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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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0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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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로트의 능력은 상대의 자의식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샘물마냥 덮어씌우고 새로운 명령을 집어넣는 것이니, 이제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을 무렵. 리제로트를 위한 함정이 다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은 여전히 존재했다. 세상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 세상이 잘못될 정도로 많은 문제점들. 리제로트가 언제 올지 나를 포함한 6명은 추측의 도가니에 빠져만 있었다. 저녁을 줄 때 한번 나타난다는 추측이 있고, 하룻동안 굶어도 사람은 죽지 않기 때문에 안 온다는 추측도 난무했다. 급기야 토론대회까지 열리면서 장식되어있는 또 다른 인형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소리 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간식을 줄 때 올 거라니까요!”

 

“아니! 분명 예쁜 옷을 입히려고 할 때 들어올 거야!”

 

뭐. 저 2개는 추가된 추측으로 생각해두자. 아무리 쓸 때 없이 난발을 해도, 다다익선이라는 말답게 많이 있으면 좋은 것뿐이니까. 결국 제대로 된 생각을 기대하지 말자. 마나가 천천히 모이고 있는 동안, 어처구니 없게도 정신연령이 평균 10대 초반의 그룹 사이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5명이 이야기 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레이베리아의 힘이 어쩌다가 이렇게 커졌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생각해봐라.

 

300년전에는 아우리스 여신도 함부로 싸우지 않던 타락의 마왕 레프리시아를 각개격파로 부술 생각을 한다는 의미는, 힘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성장이 가능했다는 소리가 된다. 아주 간단한 추측인데 내가 좀 더 똑똑하고 힘세면, “이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멋대로 저지르게 된다.

 

게다가 300년 뒤에는 이 대륙을 다스리는 여신인 아우리스와 생명의 여신 비니스, 운명의 여신 데모르테가 없는 이상.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천계에 있는 사람은 의식과 무의식을 다스리는 엘티노스와 빛의 추종자인 샤이어 둘 뿐이다. 하지만 엘티노스도 레이베리아에게 한바탕 봉인되어 먹통이 된 적이 있었고, 샤이어는 지금까지 시나와 소통을 하는지 안 하는지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 그렇다면 지금 이 대륙에 가장 강한 여신은 레이베리아가 된다는 소리인가?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응? 뭘?”

 

뜬금없이 내 앞에 앉아서 똘망똘망하게 눈으로 쳐다보는 소녀. 그보다 이름도 제대로 못 물어봤는데...

 

“사탕 중에 어떤 맛이 가장 좋으냐고 물어본 거야.”

 

“뭐, 질문의 방향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라 했으니 어쩔 수 없네.”

 

“첩은 레몬 맛 사탕이다! 그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지!”

 

당돌한 목소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들려왔다. 내 뒤에서 당당하게 서 있으면서도 레몬 맛 사탕이 좋다더니 포도 맛 사탕을 깨물고 있는 소녀. 정확히는 성인여성이지만 키가 작고 몸이 아담해서 자주 착각을 일으킨다. 연한 초콜릿 피부는 여김 없이 핥으면 녹는 게 걱정될 정도로 부드러워 보였다. 언제나 어른스럽게 보이기 위해 회색 원피스를 입고 베이지 색상의 롱 코트를 입었지만, 뒷머리를 짧은 것처럼 보이도록 묶어버린 헤어스타일 덕에 더 어린애처럼 보였다.

 

“마리아!? 여긴 어떻게 온 거에요!”

 

“음? 첩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카일...아, 지금은 카린인가? 어쨌든 그림자 속에 몰래 숨어서 상황을 좀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잡화점의 공동재산인 카일을 적의 손에 넘겨준다는 그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니라.”

 

마리아가 내 그림자에 숨어서 이곳까지 몰래 잠입했다는 소리가 되는데, 그 사실을 당연히 모르고 있었으니 어안이벙벙해서 방방을 타고 있는 기분이다. 음...다음부터 이런 표현은 쓰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아까 전엔 잘 봐뒀다. 은근히 그런 취미가 있을 줄은 상상도...”

 

“취미라고 하지 마시죠? 나 나름대로 필사적인 각오로 이들을 정신차리게 한 거니까.”

 

키득키득하고 웃는 마리아는 다시 뒷짐을 쥐며 빙글하고 돌았다. 자연스럽게 롱코트가 살짝 펄럭이며 내 앞으로 나왔다.

 

“과연. 자의식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그저 덮어씌워 명령만 다르게 내렸다는 건가? 예상하지도 못했지만 이걸 초능력이라고 부르기엔, 약간 고차원적인 기술이라 본다. 첩도 다른 사람의 정신에 침투하거나 덮어씌우기 위해선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야 하지만,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약간 오래 걸리나, 기존의 기억을 덮어씌우고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라...하긴 카린은 기존의 기억을 덮어씌우기엔 정신방어를 뚫기 힘들겠지. 인간의 눈은 아무리 오래 떠봐야 보통 1분도 넘기기 힘들다. 카린의 경우에는 7시간동안 눈싸움을 해야만 하는데, 오히려 이쪽에서 감아버리면 그만이니 효력이 없을 터. 따라서 망각의 샘물로 기존의 기억을 덮어씌우고 새로운 명령만 내린다는 선택지를 내렸다고 해석이 된다. 어떤가? 정신계열에 통달한 첩의 설명이?”

 

흑안을 반짝이며 만면의 미소가 퍼졌다. 뭔지 몰라도 어려운 설명을 한 거 같으니 박수를 치고 있는 소녀들과 아마 벙쪄있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고마워요. 마리아왜건?”

 

마리아의 설명이 너무 많아서 요약을 하자면, 리제로트의 능력은 내가 처음부터 언급한 그대로 기억을 덮어씌우고 새로운 명령을 내리는 타입의 세뇌에 가깝고, 눈을 마주해야 한다는 리제로트의 제약으론, 나의 정신방어를 뚫으려면 7시간동안 눈을 깜빡이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그래서 고안한 편법이 망각의 생물로 내 기억을 덮어씌우고, 새로운 명령을 걸어 인형으로 만든다는 거겠지.

 

요약을 해도 분량이 길어지니 어쩔 수 없지만, 5명말고도 이 방안에 있는 모든 인형들 전부, 새로운 명령이 쓰여져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리제로트가 말만하면 아마 움직이고 날뛰기 시작하리라.

 

“마리아가 여기에 있다는 건 레시아도 제 위치를 알고 있다는 소리네요?”

 

“그렇지. 하지만 적의 책략을 이용하는 것이야 말로 마왕군의 특기다. 비록 마왕님께선 수많은 인간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계시지만, 레이베리아인지 뭔지 하는 여신을 강림시키기 위해서 연극을 벌이고 있지. 게다가 지금쯤이면 레인이 이곳에 도착할 예정이니라. 그러니까 10초정도 남았군.”

 

“10초? 그 애가 어디 굴다리에서 사는 줄 알아요? 어찌 정확하게 10초안에 이곳에 도착하는 거에요?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레인이야 특이한 녀석이지 않는가. 잡화점 주인으로 링크가 걸린 카일이라면, 레인이 있는 잡화점 중추인격인 세린에게 감지가 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3초정도 남았군.”

 

마리아가 3초라고 직시하는 시점부터 2초의 시간이 남았고, 1초가 지나고 있을 때 불길한 소리와 함께 굉음이 건물을 처절하게 흔들었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가 날아가고 먼지가 방을 한 가득 채워나가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탄성을 질렀다. 사람이 아니라 집 하나가 떨어졌는데 거대한 복층으로 이루어진 건물 앞에 간판으로 “엘티노스 잡화점”이라 쓰여졌다.

 

그 안에서 거칠게 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항상 기괴한 검은 가면을 쓰고 나타나, 팔을 활짝 피며 소리를 지르는 남자.

 

“맘마미아! 이번엔 정확하게 운전했어! 듣고 있지!”

 

커다란 혼잣말이 모든 사람들을 밀쳐내듯 원맨쇼를 하고 있을 때. 두통을 느끼고 머리를 쥐어 잡은 내가 있었다.

 

“가끔 봐왔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이로군! 잡화점을 로켓으로 만들어서 날려보내는 미치광이라니! 첩이 이 세상을 지우지 않는 것이야 말로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배를 붙잡고 깔깔깔하며 웃어대고 있는 마리아. 세상이 멸망 당하지 않는 이유가 좀 이상하지 않나? 하나는 백장미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이고, 이번에 새로 갱신한 이유는 정신이 좀 이상함을 정직하게 뛰어넘는 사람이 재미있기 때문이라니...

 

“역시 내 주변사람들은 정상이 아냐...”

 

게다가 얼마나 기적적으로 착지를 했는지, 리제로트 때문에 인형처럼 되었다고 한들 살아있는 생명이었는데, 그 사이를 피해서 인명피해 하나도 없이 정확하게 착지했다.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고, 대각선으로 찍어서 내려왔으니, 아슬아슬하게 머리가 부딪치지 않았겠지.

 

“그나저나 여긴 어디에요? 인형의 집? 인형치고는 너무 생생한데요?”

 

“사람이야.”

 

“아하!”하고 이해하는 레인. 어라? 이건 원래 정상인 범주에서 이해하면 안 되는 거잖아? 보통사람들이라면 놀라야 정상일 텐데? 뇌를 뜯어서 검사를 해봐야 하나?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건데?

 

레인에게 있어선 모든 것이 호기심천국인지 가까이 가서 볼을 찌르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거부감 없이 행동하는 그 자체야 말로 정상은 아니었다. 저걸 보고 정상이라고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이 애들은 못 구하나요? 이대로 있으면 위험할 거 같은데. 딱 봐도 이제 천장이 붕괴하기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고요? 아까 착지하면서 불길한 소리가 났는데 예상으로는 이곳 기둥이 좀 약하긴 한 거 같아요.”

 

“이곳의 기둥은 날아오는 로켓 잡화점을 막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게 정상 아냐? 집이 천장에서 떨어졌는데 얼마나 놀라겠어!”

 

“음. 그런가요? 뭐 그건 대충 넘어가죠.”

 

자기 집에 이상한 잡화점이 하늘에서 내려와 괴멸시키고 간다는 그 자체를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그나저나 기프트피어스를 만드셨네요?”

 

“그야. 족쇄에 걸려있는 마법적인 처리를 해제하기 위해서지. 그보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전부 초능력자라서 나도 데려가고 싶지만, 하나하나 옮기기엔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렇네요. 카일...아니, 지금은 카린 씨라고 해야 하나요?”

 

“나는 이곳의 인형이 아니거든?”

 

“그럼 오란 씨로?”

 

“이름 가지고 장난칠래?”

 

바쁜 상황이 아니었다면 정강이를 차버렸겠지만, 망망대해만큼 넓은 인내심으로 한차례 넘어갔다. 급박한 상황이라면 지금쯤 리제로트와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들이닥친다는 소식인데, 마리아는 고개를 까딱이기 시작하더니, 앉아서 숨만 쉬던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마리아? 뭘 한 거에요?”

 

“뭐긴. 명령한 거다. 텅 비어버린 백지 같은 정신상태라 오히려 침투가 쉬워서 말이지. 이 아이들을 구출한다면 기꺼이 첩이 데려가겠다만?”

 

“다음 숙주로 누구 삼을지 고르면 안 되요.”

 

“쳇.”

 

선의에 감추어진 본심을 내가 말하자 마리아는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문을 막으려고 했을 무렵. 레인의 손에 나와 비슷한 모양의 볼펜을 닮은 무언가를 꺼내며 눌렀다.

 

-Oh! Yeeeeeeeees!

 

300년 뒤의 기프트피어스는 변함없다고 생각했지만, 초능력을 주로 사용하는 레인의 입장에선 기프트피어스를 사용하는 게 좀 신선했다. 마나를 사용할 줄 안다고 한들 마법이 아니라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것밖에 없을 터.

 

“네가 가진 기프트피어스는 마법수식이나 마법진이 없잖아?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그거요? 스포일러에요.”

 

가끔가다 생각하는 거지만 한 대씩은 때려도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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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당신은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