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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하얀 겨울

 

 

 

하얀 겨울이었다. 갓 태어난 그녀의 눈에는 그것이 눈인지 먼지인지 구분될 필요가 없었다. 온 몸에 치닫는 감각만 상대하기에도 버거웠던, 한 아기의 어떤 날에 대한 이야기다.

 

따뜻한 자궁 안으로부터 차가운 병원 침대로 꺼내졌다가 이윽고 도착한 곳, 아기의 그 세 번째 장소를 사람들은 집이라 불렀다. 초가에 들어서며 아기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 날의 주인공이어야 함을 느꼈다. 한껏 동그랗게 뜬 눈을 굴리던 그녀는, 그러나 아구구구- 소리와 함께 어떤 바닥에 눕혀졌다. 산모가 너무 약해졌어. 어떡하누. 눕혀 눕혀. 뱃속에서 잠영하던 시절처럼 웅웅거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들만 귓가를 맴돌았다. 소리가 잘 들린다는 것과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건 다른 일이구나, 그녀는 한참 뒤 이 날을 회상하며 확신했다고 한다.

 

산모가 너무 약해졌다고 했지, 그럼 아기는 너무 강했던 걸까. 내 자리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는 그녀는, 방구석 한켠을 지정석으로 썼던 그 날의 행운을 잊을 수 없었다. 잠이 올 만도 했는데 아기는 웬일인지 잠들지 않았다. 그녀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경험하기엔 그 운이 너무 빨랐다며 웃었다. 성급한 행운을 거머쥔 아기는 모두에게 잊혀진 채로 하루 꼬박 방치되었다. 한참이 지난 뒤 낯선 우는 소리를 알아챈 어떤 어른이 자리를 살펴보았을 때, 아기의 등에는 커다랗게, 화마가 다녀간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아기는 자라서 말했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몸에 남아있는 자국처럼 마음에도 혼연히 남아 있다고. 버려졌던 그 몇 시간, 며칠의 기억이 평생을 방랑하게 한다고. 그 날은 집을 제 자리로 생각하지 못하고 살게 될 어떤 여자가 처음으로 그곳에 들어온 날이었다. 약하지만 따뜻한 자리가 필요했던 어머니와 강하지만 뜨거움을 견디기 어려웠던 아기의, 하얀 겨울이었다.

 

 

 

겨울에 태어난 내 어머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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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사막의 나비

사막의 나비

 

태양이 내려쬐는 뜨거운 모래 바다 위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날개를 가진 나비가 팔랑인다.

위로 올라가면 햇살이 뜨겁고 아래로 내려앉기에는 데워진 모래가 뜨겁다.

 

꽃도 없고 가지도 없으며 작은 돌멩이 하나 보이지를 않는다.

쉬어갈 곳을 찾지 못하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나비는 계속해서 허공을 헤엄친다.

 

수십, 수백, 수천…나비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날개가 남긴 흔적이 이어지며 쌓인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얼마나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한번의 날갯짓이 수만번의 흔적을 남길 때까지 쉼 없이 날아도 멈출 수가 없다.

쉬지 못한 날개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푸른 나비는 비틀거린다.

 

마침내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너덜너덜해진 날개로 식어가는 모래 위에 내려앉았을 때

차가워지는 모래를 따라 나비의 열기도 식어가고 불어오는 바람에 서서히 가라앉는다.

 

사구 속에 가라앉은 나비는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 새겨진 날개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모래 파도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뒤섞이며 휘몰아치는 푸른 날개의 잔상.

 

작은 나비 한 마리가 허공에 남긴 수천, 수만의 발자국이 모여 거대한 태풍을 이룬다.

마치 수천, 수만의 모래 알갱이가 모여서 사막을 이루듯이…

 

인터넷이라는 사막, 네티즌이라는 나비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며 쌓이고 쌓인 노력이 이루어낸 정보의 바다 인터넷.

하루 또는 1시간 만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보가 쌓이고 쏟아진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타고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며 흔적을 남긴다.

공감, 좋아요, 댓글, 하트, 별…무수한 날갯짓을 남기는 수많은 나비 떼.

 

무심코 남긴 작은 흔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을 선사하고

무심코 남긴 작은 흔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어 축복한다.

 

무수한 나비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때로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생명을 죽이기도 하는 나비의 날갯짓.

 

의미 없이 흘린 한마디가 이리저리 휩쓸리며 부풀려지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뼈와 살이 붙어 진실이 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무수한 무관심이 쌓이고 덮여 알려져야 하는 것들이 묻히기도 하고

거짓이 진실의 가면을 쓰기도, 진실이 거짓이라는 무덤에 들어가기도 한다.

 

마치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또는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날개의 잔상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신기루가 되어 눈을 어지럽힌다.

 

 

당신은 어떤 나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