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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지 않는 자의 악몽

꿈 꾸지 않는 자의 악몽

 

무더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고, 달궈진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시간이 괴로울 정도다. 신호가 바뀌고 서둘러 반대편 길의 그늘을 향해 뛰었다.

 

끼익-. 쾅!

 

몸이 붕 뜬다.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먹먹하게 들리고, 도로를 지나는 차와 건너는 사람들이 멈춰 서는 게 보인다. 마치 슬로우 모션 같은 풍경이 아래로 내려앉으며 둔탁한 소리와 뒤늦은 통증이 밀려온다.

 

퍽-.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와 숨 막히는 통증에 시야가 흐려지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모호한 공간에 내가 존재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는 인식보다 눈이 먼저 떠졌다. 세차게 찌르는 조명에 눈살을 찌푸렸다.

 

“정신이 들어? 어때? 괜찮아?”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옆에서는 희연이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이었다. 그것도 아직 응급실인 것 같다. 고개를 슬쩍 내려서 살펴보니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에 깁스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싶어서 희연을 바라보았다.

 

“커브 길에 있는 신호등이라서, 커브를 돌고 나온 트럭이 제때 서지를 못한 거래. 팔하고 다리는 한 달만 입원하면 된다니까. 다행이야. 난 네가 어찌 되는 줄 알고...”

 

순간 든 생각은 다행이라는 것보다 오늘이 면접날이라는 거였다. 아쉬움을 애써 감추며, 훌쩍이는 그녀를 달래는 동안 간호사와 의사가 다가왔다. 일반병실로 옮기기 위해 이동하는 때에 연락을 받은 부모님이 오셨고, 희연에게 상황을 전해 들으시고는 다행이라며 안도하셨다.

 

* * *

 

한여름의 무더위도 물러가고 높고 푸른 하늘을 뽐내는 가을이다. 면접을 보고 도착한 약속 장소에는 희연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이미 그녀의 커피는 절반이 비어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별로. 면접은 잘 봤어?”

 

“응. 예감이 좋아. 잘 본 거 같아.”

 

확신에 차서 들떠있는 내 모습에 그녀는 작게 웃었다. 잠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페를 나왔다. 늦은 오후, 아직 저녁이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거리를 거닐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들어갔고,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하고 즐거운 데이트를 보냈다.

 

그리고 2주 뒤, 면접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입사한 후에는 누군가 준비해둔 것처럼 탄탄대로(坦坦大路)를 걸어 승승장구(乘勝長驅)하며 시간이 흘렀다. 매해 거듭 승진을 하고, 나름 결혼자금도 모았다 싶을 때 희연에게 청혼했다. 그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쁘게 수락해주었다.

 

* * *

 

무심결에 눈을 떴다. 창밖의 달빛에 천장이 희끄무레 보였다. 왜 갑자기 깬 걸까 싶은 생각의 대답처럼 갈증이 느껴졌다. 입맛을 다시며 일어나서 침실을 나와,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따르고 다시 넣었다. 차가운 컵을 들고 슬금슬금 거실로 나왔다.

 

이사 오고 1달 동안 열심히 집을 꾸민 아내 덕분에 넓은 거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늑한 Book Cafe와 비슷했다. 한쪽에는 책과 다양한 소품이 놓인 책장이 벽을 채웠고, 맞은편은 빔 프로젝트를 쏘아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두었다. 서재 겸 영화관인 셈이다. 거실을 둘러보며 물을 한모금 넘겼다.

 

“아빠?”

 

작은 기척에 뒤로 돌아보니 딸이 눈을 비비며 서있었다.

 

“우리 세연이 왜 나왔어? 잠이 안와?”

 

“응. 나 무서운 꿈 꿨어.”

 

아직 이사 온 집이 낯설어서인지, 세연이가 종종 자다가 깨고는 했다. 물 컵을 옆의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딸을 안아 올렸다. 고사리 같은 손이 뻗어와 목에 매달렸다.

 

“무서운 꿈 꿨어? 아빠하고 같이 잘까?”

 

“응! 아빠하고 잘래.”

 

빙긋 웃으며 아이방으로 들어갔다. 얇은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엷게 달빛이 들어왔다. 딸아이라고 방안은 온통 인형과 레이스, 프릴로 꾸며져 있었다. 세연이를 침대에 눕히고 옆에 누워서 다독이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자장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딸은 곤하게 잠이 들었다.

 

손끝으로 조심스레 머리를 넘겨주며 보송보송한 뺨을 매만졌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새삼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날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게 액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꿈을 꾼 게 언제였더라?’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곰곰이 되짚어 봐도 가물가물할 뿐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꿈도 제법 자주 꾸고는 했는데, 깨고 나면 제대로 기억나는 건 없어도 말이다. 딸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여보. 여기서 뭐해?”

 

“아. 세연이가 자다가 깨서, 다시 재우고 있었어.”

 

딸아이의 잠자리를 한번 살펴주고 조용히 나와서 아내와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넌지시 물었다.

 

“당신도 꿈 자주 꿔?”

 

“글쎄. 꿈이라는 게 깨고 나면 기억이 안 나니까. 잘 모르겠는데. 왜?”

 

“아니. 그냥. 마지막으로 꾼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나서.”

 

“꿈 안 꾸고 푹 자면 좋지 뭘.”

 

아내는 살풋 웃으며 투정부리듯이 품을 파고들었다. 그 말에 나도 쿡- 웃으며 눈을 감았다.

 

* * *

 

새하얀 방안에는 유리관처럼 생긴 투명한 캡슐이 줄지어 놓여 있다. 그 안에는 하나같이 잠든 것처럼 눈을 감은 사람이 누워있다. 양쪽 관자놀이에 두 가닥의 선이 붙어있고, 팔에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링거가 꽂혀 있다. 성별도 나이도 전부 다르지만, 딱 하나 공통적인 건 다들 행복한 표정이라는 것이다.

 

지잉-.

 

문이 열리고 2명의 의사와 한 중년 부부가 들어선다. 남의사는 중년 부부를 한 캡슐 앞으로 안내하고, 여의사는 차트를 들고 캡슐 사이를 누비며 상태를 체크한다. 아들이 누워 있는 캡슐 앞에 멈춘 부부는 한숨을 내쉬며 안을 들여다본다. 정말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지 평온한 얼굴이다.

 

그날, 트럭에 치여서 난 사고만 아니었다면,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 부인 쪽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캡슐의 상태를 체크하다가 그런 부부의 모습을 힐끗 거린 여의사는 쓴웃음을 감추려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도 이런 호사를 누리는 건 댁들 돈 덕분이지.’

 

흔히 말하는 금수저라도 되어야 이런 행복한 꿈이라도 꾸며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돈이 아니면 평생을 침대에 누워 신세한탄이나 하며 살게 될 인생이 바로 이 캡슐에 누워 잠들어 있는 이들이다.

 

간혹, 이 캡슐의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희소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선택은 2가지이다. 하나는 뇌사 판정을 통한 안락사, 또 하나는 꿈에서 깨는 것. 전자의 경우는 그 가상의 인생이 꿈이라는 걸 모르고 죽게 되지만, 후자는...여의사의 입매에 경멸 섞인 냉소가 어리다가 사라졌다.

 

‘차라리 죽여 달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들뿐이었지.’

 

꿈인지도 모르고 꿈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깨어나는 순간 겪어야하는 현실이 지독한 악몽이 될 테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지독한 악몽 말이다. 정작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꿈을 꾸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즉, 저 캡슐 안에 들어가는 순간, 꿈이 인생이고 현실이며, 현실이 악몽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