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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奇

시궁창 같은 현실, 꿈같은 허상

가파른 오르막길에 자리한 달동네, 그 곳의 가장 꼭대기 계단 옆이 우리 집이었다. 해도 뜨기 전의 이른 새벽이 되면 어머니는 이미 집을 나서고 계신다. 우유배달, 신문배달, 낮에는 식당 설거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신다. 나와 여동생의 학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하셨다.

 

어머니가 어떻게 벌어온 돈인지 알기에 나와 여동생은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성적도 좋았고 학교에서의 평판도 좋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 항상 불안해야했다. 잊을 만하면 술냄새와 담배에 찌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나서 어머니가 숨겨둔 돈뭉치를 찾아내는 그 인간 때문에…

 

그날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던 중이었다.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뛰어서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다시 한 번 비명이 들렸다. 급히 뛰어가는 눈앞에 문을 열고 나온 아버지와 마주쳤다. 그 인간의 눈동자가 심히 떨리고 있었다.

 

손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팔꿈치 아래까지 시뻘건 피가 흥건했다. 그대로 도망치는 그 인간을 쫓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쓰러진 여동생과 어머니, 바닥에 고여 있는 피, 급히 119를 불렀지만 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난 목격자나 피해자가 아닌 용의자가 되었다.

 

내가 아니라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죽인 건 내가 아니라 그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하지만 그 인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잡히지를 않았고, 목격자도 없었다. 게다가 경찰은 사건을 빨리 끝내고 싶은 눈치였다. 끝까지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외쳐도 소용없었다. 돈 없고 힘없는 게 죄였다.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나날은 희망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잘 뿐이다. 순식간에 타버리고 시커멓게 남은 재처럼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그렇게 숨만 쉬며 살았다. 죽는 건 두렵지 않다. 하지만, 억울하다. 너무도!

 

“이봐, 편지다.”

 

“편지?”

 

교도관이 내미는 편지를 받아서 뜯었다. 새하얀 편지지에는 <D프로젝트 : 초대장> 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적혀있었다. 초대장이라니, 잘못 온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 적힌 이름은 분명 내 이름이었다. 죄수번호와 이름은 분명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갈 수도 없는 나를 말이다.

 

“대체 D프로젝트가 뭐야?”

 

퉁명스레 중얼거려도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편지지에도 자세한 내용 없이 그저 ‘당신에게 두 번째 인생을 드립니다.’라고만 되어있을 뿐이다. 두 번째 인생,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내 결백을 밝혀서 여기서 나가 새출발을 하게 해주겠다는 건지, 아니면…모르겠다. 다른 건 생각나지 않는다.

 

“두 번째 인생…”

 

가능할까? 그런 게? 나에게도 아직 기회라는 희망이 있는 걸까?

 

초대장에 서명을 하고 편지에 지명되어있는 교도관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불안하고 들뜬 맘으로 기다렸다. 누군가 날 찾아올까, 어떤 말을 듣게 될까, 얼마나 걸릴까, 새출발을 하게 된다면 뭘 할까,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수십, 수백, 수천, 수만의 생각이 돌풍이 되어 휘몰아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일주일, 열흘, 보름이 지나 한 달이 되었을 즈음. 어쩌면 그저 누군가의 장난이거나 헛된 기대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깊어졌다. 기대와 희망은 불신으로 얼룩져버렸다. 역시 나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새겼다.

 

이미 진작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고약한 장난에 울분이 생기는 걸 보면 그래도 미련이 남았던가 보다. 쓴물이 입 안 가득 퍼지는 기분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사형 집행날짜가 잡혔다는 말을 들었다. 문득 나를 위해 슬퍼해줄 사람은 없지만, 먼저 떠난 어머니와 여동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눈이 가려진 채 몇 년을 보낸 철창 안에서 나왔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울리는 복도를 지나고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 이대로 죽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아득한 정신으로 이제 곧 어머니와 여동생을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오빠. 오빠-!”

 

어딘가 앙칼진 반가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떴다? 죽지 않은 건가?’

 

눈앞에는 새초롬한 표정의 여동생이 교복을 입고서 팔짱을 끼고 눈을 흘기고 있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지? 더 자면 지각이거든~?”

 

내가 생각해도 놀랄 만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덩달아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동생을 빤히 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 사용하기에 적당한 크기의 방, 발치에는 깔끔한 옷장과 서랍장에 전신거울이 있고, 여동생이 서있는 뒤로는 책장과 책상, 방문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앉아있는 푹신한 침대!

 

침대의 왼편은 넓은 창문이 있고 옅은 하늘색의 얇은 커튼 너머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춰든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니면 여기가 천국인 건 아닐까?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고 어머니를 찾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서 부엌을 들여다본 순간 몸이 굳었다. 어머니가 단정한 차림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오빠, 왜 그래? 어디 아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여동생의 호들갑에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뒤돌아보았고, 등 뒤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냐? 무슨 일이야?”

 

“아빠, 오빠가 아까부터 이상해. 꼭 넋 나간 사람 같아.”

 

천천히 고개를 돌린 시야에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 나를 그 지옥으로 떨어뜨린 사람, 나의 아버지. 소파에 앉아있는 그의 손에는 아침신문이 들려있고, 안경을 낀 얼굴은 언제나 도박과 술, 담배에 찌든 모습이 아니었다. 너그럽고 온화한, 전혀 다른 분위기라 당혹스러웠다.

 

“괜찮은 거냐?”

 

혀가, 입술이 제대로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겨우 떠올린 대답을 간신히 내뱉었다.

 

“괘, 괜찮아요. 그냥, 그…악몽을 꿨어요.”

 

황급히 계단을 뛰어올라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쫓아 온 여동생의 재촉에 얼떨떨한 상태로 씻고 나와서 교복을 입고 가방을 챙겼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여동생과 나란히 집을 나왔다. 작은 마당이 있는 붉은 벽돌 담장의 2층 가정주택, 주변의 집들도 비슷하게 생겼다.

 

“오빠, 늦었어. 뛰어.”

 

“어? 응.”

 

상쾌하다. 보고 싶었던 여동생과 나란히 달리는 아침이 너무도 상쾌하다.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신나게 달리며 웃는 나를 보고 여동생은 다시 한 번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교문이 닫히기 직전,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교실에 들어서자 다들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며 반겨주었다.

 

꿈꿔왔던, 바라고 바래왔던 하루하루를 보내며 생각했다. 이게 나의 인생이라고, 이게 바로 나의 두 번째 인생이라고, 그 이전의 것은 악몽이었다고, 두 번 다시 그런 인생을 살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행복하고 즐겁게 열심히 살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 * *

 

투명한 뚜껑이 덮여있는 캡슐의 안에 한 남성이 누워있다. 캡슐 옆에는 작은 모니터와 입력장치가 연결되어 있다. 하얀 가운을 입은 한 여성이 긴장한 티가 팍팍 나는 남성 인턴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캡슐 옆면에 있는 명패는 안에 있는 사람의 신상정보에요. 이 사람은…누명을 쓴 사형수였군요.”

 

여자의 말에 남자의 입모양이 아-하고 작게 움직인다. 그때 삑- 소리가 나며 캡슐과 연결된 모니터가 깜빡거린다. 여자와 남자는 작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까만 화면에 녹색의 글자가 나타났다.

 

[ O.K ]

 

짧지만 확실한 의사전달, 여자가 설명하지 않아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은 가상세계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걸 말이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목숨을 잃느니, 바라마지 않던 이상향에서 한번의 인생을 더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비록 그 이상향이 허상일지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사실을 모른다면 그에게는 진실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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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지 않는 자의 악몽

꿈 꾸지 않는 자의 악몽

 

무더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고, 달궈진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시간이 괴로울 정도다. 신호가 바뀌고 서둘러 반대편 길의 그늘을 향해 뛰었다.

 

끼익-. 쾅!

 

몸이 붕 뜬다.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먹먹하게 들리고, 도로를 지나는 차와 건너는 사람들이 멈춰 서는 게 보인다. 마치 슬로우 모션 같은 풍경이 아래로 내려앉으며 둔탁한 소리와 뒤늦은 통증이 밀려온다.

 

퍽-.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와 숨 막히는 통증에 시야가 흐려지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모호한 공간에 내가 존재하는 건지도 알 수 없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는 인식보다 눈이 먼저 떠졌다. 세차게 찌르는 조명에 눈살을 찌푸렸다.

 

“정신이 들어? 어때? 괜찮아?”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옆에서는 희연이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이었다. 그것도 아직 응급실인 것 같다. 고개를 슬쩍 내려서 살펴보니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에 깁스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싶어서 희연을 바라보았다.

 

“커브 길에 있는 신호등이라서, 커브를 돌고 나온 트럭이 제때 서지를 못한 거래. 팔하고 다리는 한 달만 입원하면 된다니까. 다행이야. 난 네가 어찌 되는 줄 알고...”

 

순간 든 생각은 다행이라는 것보다 오늘이 면접날이라는 거였다. 아쉬움을 애써 감추며, 훌쩍이는 그녀를 달래는 동안 간호사와 의사가 다가왔다. 일반병실로 옮기기 위해 이동하는 때에 연락을 받은 부모님이 오셨고, 희연에게 상황을 전해 들으시고는 다행이라며 안도하셨다.

 

* * *

 

한여름의 무더위도 물러가고 높고 푸른 하늘을 뽐내는 가을이다. 면접을 보고 도착한 약속 장소에는 희연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이미 그녀의 커피는 절반이 비어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별로. 면접은 잘 봤어?”

 

“응. 예감이 좋아. 잘 본 거 같아.”

 

확신에 차서 들떠있는 내 모습에 그녀는 작게 웃었다. 잠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페를 나왔다. 늦은 오후, 아직 저녁이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손을 잡고 나란히 거리를 거닐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들어갔고,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하고 즐거운 데이트를 보냈다.

 

그리고 2주 뒤, 면접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입사한 후에는 누군가 준비해둔 것처럼 탄탄대로(坦坦大路)를 걸어 승승장구(乘勝長驅)하며 시간이 흘렀다. 매해 거듭 승진을 하고, 나름 결혼자금도 모았다 싶을 때 희연에게 청혼했다. 그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쁘게 수락해주었다.

 

* * *

 

무심결에 눈을 떴다. 창밖의 달빛에 천장이 희끄무레 보였다. 왜 갑자기 깬 걸까 싶은 생각의 대답처럼 갈증이 느껴졌다. 입맛을 다시며 일어나서 침실을 나와,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따르고 다시 넣었다. 차가운 컵을 들고 슬금슬금 거실로 나왔다.

 

이사 오고 1달 동안 열심히 집을 꾸민 아내 덕분에 넓은 거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늑한 Book Cafe와 비슷했다. 한쪽에는 책과 다양한 소품이 놓인 책장이 벽을 채웠고, 맞은편은 빔 프로젝트를 쏘아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두었다. 서재 겸 영화관인 셈이다. 거실을 둘러보며 물을 한모금 넘겼다.

 

“아빠?”

 

작은 기척에 뒤로 돌아보니 딸이 눈을 비비며 서있었다.

 

“우리 세연이 왜 나왔어? 잠이 안와?”

 

“응. 나 무서운 꿈 꿨어.”

 

아직 이사 온 집이 낯설어서인지, 세연이가 종종 자다가 깨고는 했다. 물 컵을 옆의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딸을 안아 올렸다. 고사리 같은 손이 뻗어와 목에 매달렸다.

 

“무서운 꿈 꿨어? 아빠하고 같이 잘까?”

 

“응! 아빠하고 잘래.”

 

빙긋 웃으며 아이방으로 들어갔다. 얇은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엷게 달빛이 들어왔다. 딸아이라고 방안은 온통 인형과 레이스, 프릴로 꾸며져 있었다. 세연이를 침대에 눕히고 옆에 누워서 다독이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자장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딸은 곤하게 잠이 들었다.

 

손끝으로 조심스레 머리를 넘겨주며 보송보송한 뺨을 매만졌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새삼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날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게 액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꿈을 꾼 게 언제였더라?’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곰곰이 되짚어 봐도 가물가물할 뿐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꿈도 제법 자주 꾸고는 했는데, 깨고 나면 제대로 기억나는 건 없어도 말이다. 딸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여보. 여기서 뭐해?”

 

“아. 세연이가 자다가 깨서, 다시 재우고 있었어.”

 

딸아이의 잠자리를 한번 살펴주고 조용히 나와서 아내와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넌지시 물었다.

 

“당신도 꿈 자주 꿔?”

 

“글쎄. 꿈이라는 게 깨고 나면 기억이 안 나니까. 잘 모르겠는데. 왜?”

 

“아니. 그냥. 마지막으로 꾼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나서.”

 

“꿈 안 꾸고 푹 자면 좋지 뭘.”

 

아내는 살풋 웃으며 투정부리듯이 품을 파고들었다. 그 말에 나도 쿡- 웃으며 눈을 감았다.

 

* * *

 

새하얀 방안에는 유리관처럼 생긴 투명한 캡슐이 줄지어 놓여 있다. 그 안에는 하나같이 잠든 것처럼 눈을 감은 사람이 누워있다. 양쪽 관자놀이에 두 가닥의 선이 붙어있고, 팔에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링거가 꽂혀 있다. 성별도 나이도 전부 다르지만, 딱 하나 공통적인 건 다들 행복한 표정이라는 것이다.

 

지잉-.

 

문이 열리고 2명의 의사와 한 중년 부부가 들어선다. 남의사는 중년 부부를 한 캡슐 앞으로 안내하고, 여의사는 차트를 들고 캡슐 사이를 누비며 상태를 체크한다. 아들이 누워 있는 캡슐 앞에 멈춘 부부는 한숨을 내쉬며 안을 들여다본다. 정말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지 평온한 얼굴이다.

 

그날, 트럭에 치여서 난 사고만 아니었다면,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 부인 쪽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캡슐의 상태를 체크하다가 그런 부부의 모습을 힐끗 거린 여의사는 쓴웃음을 감추려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도 이런 호사를 누리는 건 댁들 돈 덕분이지.’

 

흔히 말하는 금수저라도 되어야 이런 행복한 꿈이라도 꾸며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돈이 아니면 평생을 침대에 누워 신세한탄이나 하며 살게 될 인생이 바로 이 캡슐에 누워 잠들어 있는 이들이다.

 

간혹, 이 캡슐의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희소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선택은 2가지이다. 하나는 뇌사 판정을 통한 안락사, 또 하나는 꿈에서 깨는 것. 전자의 경우는 그 가상의 인생이 꿈이라는 걸 모르고 죽게 되지만, 후자는...여의사의 입매에 경멸 섞인 냉소가 어리다가 사라졌다.

 

‘차라리 죽여 달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들뿐이었지.’

 

꿈인지도 모르고 꿈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깨어나는 순간 겪어야하는 현실이 지독한 악몽이 될 테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지독한 악몽 말이다. 정작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꿈을 꾸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즉, 저 캡슐 안에 들어가는 순간, 꿈이 인생이고 현실이며, 현실이 악몽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