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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일상

마법사의 심부름

마법사의 심부름

 

넓고 넓은 사막

황금빛 모래가 파도치는 곳

 

맑고 맑은 오아시스

별빛이 찬연한 깊은 밤하늘

 

하늘하늘 나풀나풀

무지개를 담은 칠흑의 깃털

 

“그래서 그 깃털은 어디에 쓴다고?”

 

“모르셔도 됩니다.”

 

가늘어진 눈으로 미심쩍게 흘겨보는 에녹의 시선에 피쿠스는 미간을 찡그리고 입술 씰룩이며 대답했다.

 

“스승님의 프라이버시라서요.”

 

피쿠스의 스승이자 궁중 수석마법사 풀크리오 다우리스의 프라이버시라는 핑계에 에녹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표정을 풀었다. 피쿠스는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햇빛이 내려쬐는 모래 위에 발을 내딛었다. 조금의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는 무심한 동작이다.

 

“저, 조금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햇빛을 막기 위해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뒤로 돌아보는 세 사람의 모습에 베르첸은 혼자만 지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체력이 좋은 에녹과 몸이 가벼운 라비에라는 이해할 수 있지만, 책상 앞에 앉아서 책과 마법만 파고드는 피쿠스마저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도착해서 쉬죠.”

 

그렇게 말하는 피쿠스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동정이 느껴졌다. 베르첸의 고개가 힘없이 끄덕여지고 네 사람은 다시 발을 움직였다. 푹푹 찌는 열기에 한손으로 땀범벅이 된 얼굴을 훔쳐내는 베르첸에게 라비에라가 슬쩍 다가와 생글거렸다.

 

“왜 예배를 빼먹었을까 후회하고 있지?”

 

베르첸은 짓궂은 라비에라의 시선을 회피하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딱히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

 

베르첸은 이른 아침 졸음의 유혹에 넘어가 예배를 빼먹고 공원의 나무그늘에서 몰래 잠이나 자려다가 피쿠스와 충돌, 뒤를 쫓아온 에녹과 라비에라까지 마주치며 거의 끌려온 셈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갑자기 사막을 걷고 있는 베르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듯 라비에라를 바라보았다.

 

“그보다 안 덥습니까?”

 

“더워.”

 

라비에라는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대답을 했고, 베르첸은 머쓱하니 앞서가고 있는 피쿠스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라비에라는 작게 키득거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피쿠스는 원래 지구력이 좋아. 게다가 저 로브에는 안쪽에 마법이 걸려있어서 체온이 유지되거든.”

 

베르첸은 의혹이 가득한 시선으로 에녹과 라비에라의 로브를 번갈아보았다. 그런 시선에 라비에라는 그저 싱긋- 미소했고 베르첸은 억울하고 분하고 황당함이 뒤섞인 헛웃음을 토했다.

 

“허, 허. 그럼 저만 더운 겁니까?”

 

발끈한 베르첸의 작은 외침에 피쿠스는 한숨을 쉬었으며, 라비에라는 꿈틀거리는 입술을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돌렸고 에녹은 실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갑자기 포복절도하며 웃는 라비에라의 반응에 베르첸의 표정은 멍하게 바뀌었다.

 

“라비에라하고 내꺼에는 그런 마법 없어, 베르첸. 그녀는 원래 더위에 강한 것뿐이야.”

 

놀림을 당했다는 깨달음에 그렇지 않아도 열이 오른 베르첸의 얼굴이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마냥 벌겋게 달아올랐다. 베르첸의 분노라는 이름의 화산폭발을 피해 라비에라는 잽싸게 그늘을 향해 달려갔다.

 

“가장 뜨거운 사막이라는 별명이 그냥 생긴 건 아닌가 보네. 베르첸이 화도 다 내고~”

 

“더운 건 딱 질색입니다.”

 

베르첸은 그대로 땀에 묻혀 녹아버릴 기세로 축 늘어지며 울퉁불퉁한 나무에 기대어 후드를 뒤로 젖혔다. 후끈한 피부에 서늘한 냉기가 닿으며 한결 시원하게 숨통이 트였다. 에녹은 주저앉은 베르첸의 옆에 서서 물통을 꺼내어 한모금 마시고 땀의 축복을 가득 받은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는 사이 피쿠스와 라비에라는 수풀너머로 보이는 오아시스를 향해 다가갔다. 무더운 사막 속에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차갑게 품어진 오아시스에는 구름하나 없는 하늘이 그대로 투영된다. 발을 디디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미세한 파문 하나 없이 고요하다.

 

“거울이 따로 없는 걸. 여기서 밤까지 기다리면 돼?”

 

“간단하게 준비 좀 하고요.”

 

피쿠스는 왼쪽으로 몸을 틀어 수풀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오아시스 주변을 도는 동안, 겉으로는 태연하게 바위나 나무에 마법 문자를 적으면서 속으로는 에녹 몰래 빠져나오지 못한 스스로에 대해 연민의 한숨덩어리를 키우고 있었다. 피쿠스가 오아시스를 한바퀴 돌아 일행이 있는 곳에 왔을 즈음 해가 저문다.

 

“베르첸씨,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사막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노을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던 베르첸은 고개를 내리며 조금 어리둥절하게 피쿠스를 바라보았다.

 

“아, 네. 괜찮습니다.”

 

“그럼...”

 

피쿠스의 로브 안자락에서 하프가 나오는 광경에 베르첸의 눈이 커다래졌다. 구불구불한 넝쿨이 우아하게 세공되어있는 하프는 순백의 은빛으로 반짝이며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구조가 단순하며 휴대하기 편한 크기의 하프를 피쿠스는 당연하다는 태도로 베르첸에게 건네었다.

 

“악기 연주에는 자신이 없어서 말입니다. 해가 지고 나면 한곡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라비에라에게 향하는 피쿠스의 시선, 베르첸의 연주 실력이야 이 나라 백성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으니 수긍할 수 있지만, 라비에라는 뒤이어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에 흠칫했다.

 

“나도 뭐 도울 게, 있는 거야?”

 

“노래라면 제가 부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수컷이 와야 해서 말이죠.”

 

“풉. 큭.”

 

에녹은 입을 막으며 라비에라를 외면했고 베르첸은 농담이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피쿠스와 라비에라를 번갈아보았다. 라비에라는 새침하게 표독스러워진 눈초리로 뒤돌아서 웃고 있는 에녹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격렬하게 알려주지 않으셔도 안다고요. 제가 음치인거!”

 

에녹은 웃음의 여운이 남은 채로 피쿠스를 바라보며 염려스레 말했다.

 

“그랬다가 오던 새도 다시 날아가 버리는 거 아냐?”

 

베르첸과 에녹의 반응에도 피쿠스는 홀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팔짱을 끼고서 살벌하게 에녹을 노려보는 라비에라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라비에라씨의 노래 실력이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목소리만 빌리겠다는 겁니다.”

 

원래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담담하게 목소리만 빌리겠다는 피쿠스의 발언에 라비에라는 부글거리는 활화산 같은 눈동자로 얼굴을 들이댔다. 그녀의 뜨거운 열기에 피쿠스는 움찔하며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오호~ 목소리만~? 어떻게 빌리겠다는 건데?”

 

피쿠스는 자신이 뭔가 실수를 했나 생각하며 서녘에 걸린 태양을 힐끔거리고는 라비에라에게 목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라비에라는 미심쩍은 눈으로 피쿠스의 손바닥에 있는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목에 걸고만 있으면 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걸고만 있으라고?”

 

“예.”

 

라비에라는 목걸이를 집어서 천천히 목에 걸었다. 피쿠스는 그녀가 목걸이를 제대로 착용한 것을 확인하고 해가 지평선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옆에서는 베르첸이 하프의 현을 조율하고 있고 에녹은 느긋하게 앉아서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

 

짙푸른 어둠 속에 하나 둘 별빛이 모습을 드러내고 뜨거운 모래는 창백하게 식어간다. 피쿠스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바위며 나무에 새겨진 문자가 빛을 발하고 모래에 남은 열기가 하늘로 증발되며 차갑게 얼어붙는다. 얼음입자가 밤하늘로 피어오르며 반짝인다.

 

“베르첸, 연주 부탁합니다.”

 

“어떤 곡으로 할까요?”

 

“어떤 곡이든, 가능하다면 로맨틱한 걸로...”

 

베르첸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다정한 멜로디가 서서히 울려 퍼진다. 피쿠스는 라비에라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 검지를 갖다 대며 당부했다.

 

“이제부터 노래가 끝날 때까지 절대 입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라비에라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피쿠스는 손가락을 떼며 짧게 시동어를 걸었다. 목걸이에 박힌 펜던트가 은은하게 빛나고 피쿠스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목소리에 다들 감탄하고 말았다. 심지어 라비에라는 그녀 자신의 목소리임에도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막아야했다.

 

부드럽고 다정하고 상냥한 목소리, 달콤하다 못해 에로틱하기까지 하다. 라비에라는 미묘한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며 양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에녹은 팔에 오소소- 팔에 돋아난 소름에 멋쩍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손으로 팔을 문질렀다. 반면에 베르첸은 그야말로 황홀한 표정으로 신들린 마냥 하프를 연주했다.

 

마법사 중에 음치는 드물다했던가? 길고 긴 주문을 박자에 맞춰 고저에 맞춰 영창하기에 음치였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고쳐진다고 하던가? 에녹은 그런 소문인지 사실인지 모호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밤하늘을 향해 목소리를 뽑아내고 있는 피쿠스를 바라보았다.

 

“라비에라, 자네 목소리가 이리 고왔나?”

 

에녹은 멜로디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감탄하며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타인의 기교와 발성을 통해 듣게 된 본인의 목소리에 라비에라는 무어라 말해야할지, 기묘한 기분을 쉽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으음...”

 

무언가 상당히 낯간지럽고 무안한 기분이란, 라비에라는 마치 첫키스라도 당한 숫처녀가 된 것 같았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이어지는 하프 연주는 가늘고 빠르게 바뀌었고 그에 맞추어 피쿠스의 노래도 한층 음이 높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밤하늘에 오색찬연한 빛의 장막이 펼쳐지고 커다란 날개의 소리가 들려온다.

 

커다란 새의 기척에 머리를 뒤로 젖혀 올려다보았지만 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아니, 밤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찬란한 장막이 잘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일렁이는 흔적을 눈으로 쫓으며 피쿠스는 오아시스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베르첸은 하프 연주가 흐트러지지 않게 주의하며, 에녹과 라비에라는 새가 도망가지 않게 긴장하며 피쿠스의 뒤를 쫓아 오아시스로 향했다. 날개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새의 모습이 확연히 보일 즈음, 탐스런 검은 깃털의 새는 밤하늘을 수놓은 오색빛깔을 그대로 담고서 수면에 내려앉았다.

 

작고 동그란 머리에 고아하게 뻗어서 목뒤로 흘러내리는 머리의 깃과 깊고 어두운 수면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꼬리의 깃털은 여신의 은총이라도 받은 게 아닐까 싶은 매혹을 뿜어낸다. 피쿠스는 목소리를 잔잔하게 바꾸며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가 뺐다. 에녹은 그의 손에 들린 게 잡초인줄 알고 놀랐으나, 다시 살펴보니 귀하디귀한 약초임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삼켰다.

 

쌉쌀하고 향긋한 약초의 향이 바람을 타고 부리에 닿는다. 피쿠스의 노래는 속삭이듯 낮아져있고 하프의 멜로디는 졸리운 고양이마냥 나른하다. 새까만 밤의 거울 위로 잘게 파문이 일고 새는 미끄러지듯이 피쿠스 앞으로 다가온다. 그 즈음 피쿠스는 손짓으로 라비에라를 부르고 그녀에게 약초를 쥐어준다.

 

피쿠스의 노래는 멎었고 하프의 멜로디는 가녀리게 이어진다. 라비에라의 손에 쥐여진 약초를 모두 먹은 새는 다시 밤하늘로 날아올라 저 멀리 사라지고, 빛의 장막이 걷힌 수면 위에는 그 흔적만이 남았다. 피쿠스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둥실둥실 떠있는 깃털들을 회수했다.

 

“설마 그 오루스 입니까?"

 

베르첸은 눈을 반짝이며 살랑살랑 날아온 깃털을 잡아 주머니에 담고 있는 피쿠스에게 다가갔다.

 

“네. 그 오루스 맞습니다.”

 

밤의 여신이 아끼는 애조(愛鳥) 오루스. 그 전설의 새였다는 사실에 베르첸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라비에라는 멍하니 넋을 놨으며 에녹은 짧게 휘파람을 부는 것으로 자신의 감상을 더했다.

 

“그래서 그 깃털의 용도는? 여전히 말 안 할 테지?”

 

피쿠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라비에라의 목에서 목걸이까지 회수한 뒤 곧바로 마법 스크롤 하나를 꺼내어 찢었다. 시야가 어지러워지는가 싶더니 곧 낯익은 대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런 장소 변화에 휘청이는 몸을 가누며 베르첸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허? 갈 때는 왜 걸어간 겁니까?”

 

“스크롤이 하나 밖에 안 남아서요.”

 

그 대답에는 하나를 더 만들 시간이 촉박했다는 뜻도 담겨있었다. 아마 에녹에게서 도망치느라 시간이 없었을 테다. 피쿠스는 그대로 스승의 침실로 쳐들어가 심부름의 결과를 보고했고, 베르첸은 궁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몰래 숙소로 돌아가다가 발각되고 말았다.

 

덕분에 베르첸은 반나절동안 스승의 잔소리를 들어야했으며, 에녹은 여왕에게 호출을 받고는 새로 임명된 교사와 2주간 근신하며 수업을 받을 것을 명령받았다. 방랑벽이 있는 왕자에는 고문과 같은 명령이었다. 그리고 피쿠스는 깃털의 절반을 숨겨두고서 스승과 흥정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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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의 시/소설/편지/기타

Part 1-02 편 [시]

{공지}

안녕하세요 만다린입니다.

또다시 업로드를 하게 되었네요

이번에도!! 시입니다. 다른 걸 쓰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ㅠ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짧은 글이라도 1시간 이상 들어간답니다.ㅠㅠㅠㅠㅠ)

이번주 토요일에는 <만다린의 경제/금융/정치 탐구> 를 올릴 예정입니다.(May be...ㅠ)

주제는 최순실 비선실세(?) 입니다. (사건정리). 과연 이 사건이 언제까지 갈것인가? 참 궁금하네요.

부주제는!!!!

박근혜 대통령도 together 했기 때문에 같이 쓰도록 하겠습니다ㅋ

감사합니다.

P.S. :질문이거나 건의, 글을 써 주었으면 하는 것은 댓글에 올려주시면 다음주 토요일에 확인하고 답글을 달아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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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우주>

이 세상에서 내 눈에 매일 매일 비치는것

가장 푸르고 아름다운 것

위에서 보면 마을이 정말 작아보일수있게 하는 그곳

누워서 보면 하늘은 정말 푸르다

내가 왕복우주선을 타야지만 갈수있는 그곳

미래에는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정말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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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쓰는 편지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었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었다.

 

길가에는 소복소복, 온통 눈 쌓여가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방황하던 내 발걸음은 누군가의 발자취를 좇으며 어딘가로 향했다.

 

익숙한 등굣길에서 그 어느 날처럼, 그 어느 때처럼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함께 서 있는 나를 만났다. 뭐가 그리도 좋았던지 우리는 그저 웃고, 떠들고, 웃고 또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온 세상의 눈을 녹여버릴 듯 따듯하다. 마치 방황하는 나를 어루만져주고 쓰다듬어주듯이 아늑하기만 하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돌이켜 봤다.

 

우리는 언제나 학교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언제나 밤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녀는 내게 그 모든 것의 이유가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푹푹 찌는 여름에도 칼바람이 불어치는 겨울에도 틈만 나면 광장에서 서로를 기다렸다.

 

아니, 대부분 내가 그녀를 기다렸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고 싶었으니까. 기다림은 남자에게 있어서 특권과도 같은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 이유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내게 물어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에게 서로의 존재는 당연했기에.

 

아직도 기억이 나는 어느 날이 있다. 지독하게도 추운 겨울이었다. 10대의 마지막 관문을 무사히 넘긴 선배들이 사라진 학교에서 텅 비어버린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우리들의 발버둥이 한창이던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원래부터 몸이 약했던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더 두꺼운 마스크에 새하얀 장갑까지 끼고 있었다. 목소리도, 행동도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고 생각은 했지만 별 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평소보다 더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평소와 다르던 그녀는 결국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가던 중에 갑자기 쓰러져버렸고, 뒤늦게 그 장면을 목격한 나는 수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그녀를 품에 안고 양호실로 달렸다. 유난히 넓었던 학교에서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달리고 또 달렸다.

 

언제고 그녀가 알아주기를 바랐었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나는 한 번도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친구들 사이에서 지나가는 이야기나 소문으로 들었을 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감싸주고 싶었다. 항상 변함없는 따스함으로 나를 감싸주는 그녀처럼 나도, 모두에게 아픈 아이라는 낙인이 찍힌 그녀를 감싸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별 문제없이 여느 날처럼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행복의 끝은 정해져 있고 기쁨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처럼 짧게만 느껴진다.

 

우리를 질투한 시간은 곧 다가올 졸업이라는 끝맺음을 핑계로 우리를 갈라놓기 위해 끊임없이 예고장을 보내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는 변함없었고, 서로와 각자를 믿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배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예고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그 거친 파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을. 그 모든 일들이 지나가는 동안 그저 가만히 그 순간을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코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머리와 어깨 위로 소복하게 쌓이는 눈들 사이에서 혼자만 코끝을 스치는 눈꽃이 꼭 소리 없이 찾아왔다가 흔적도 없이 떠난 그녀 같았다. 어느새 운동장 한 가운데로 들어선 나의 귓가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다시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인다.

 

그녀의 웃는 얼굴.

 

그녀의 눈매, 그녀의 눈썹, 그녀의 입가, 표정, 목소리, 습관, 말투까지.

그녀는 언제나 그대로다.

 

길지 않은 삶이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계절을 보내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만남이든 이별이든 그것 또한 언제고 반복될 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났던 것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기필코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 믿는다.

 

어느새 자라고 자라버렸지만 여전히 방황하는 내 발걸음을 이끄는 건 언제나 단 한 사람뿐이다.

 

모든 것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기만 하다. 기분 좋은 질투를 하던 매점 아줌마도, 그녀가 좋아하던 따듯했던 율무차도, 학교 전체를 시끌벅적하게 울리는 아이들의 말소리도, 그 사이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까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그녀는 기억할까? 그녀도 나처럼 아직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초연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마지막까지 스스로 정했던 아름다웠던 한 소녀는 저 바다 어딘가에 뿌려졌고, 지금도 바람을 타고 세상 어딘가를 끊임없이 돌아다닐 것이다. 똑 부러지던 꿈처럼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보고 느끼고 있을 거라 믿는다.

 

터져 나오는 슬픔을 인내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어대던 그 날의 내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꼭 오늘처럼 퉁퉁 부어버린 눈을 하고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던 10대의 끝자락의 나와 어느새 20대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는 이렇게 또 다시 만났다.

 

그 날도 눈이 내렸었다. 하지만 그 날도 무심코 떨어진 눈꽃이 코끝을 스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스쳤겠지. 10년 뒤의 나는 오늘 내 코끝을 스쳤던 눈꽃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꼭 오늘처럼.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