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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기

#0 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매서운 추위에 입고있던 외투를 다시한번 여미게 만드는 날씨다. 다사다난했던 올해도 그 끝이 보인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했고,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사다난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아무튼 필자 개인적으로는 힘든 한해였다.

 

부산과 창원에서 줄곧 생활해온 촌놈이 서울에서 직장을 구해, 본의아닌 상경을 하게되었으며, 보통사람들처럼 매일 아침 출근길에 사람들이 빼곡한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했다. 어쩌다보니 남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그나마 일하기 편해 보이는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으나, 필자도 어림없는 보통사람이었으니 남들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 채로 일하고 있었다.

 

운좋게 연말에 고향으로 내려와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노라면, 회사에서의 갑갑했던 기억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금도 그런 묘한 기분에 휩쌓인채로 글을 쓰고 있다. 물론, 02로 시작하는 서울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여느 보통사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걱정이 앞서는 직장인이다.

 

글을 쓴다라는 행위는 과연 어떤 행위 일까. 어떤 이에게는 아주 가치가 크고 숭고한 작업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이에게는 시간낭비에 불과한 작업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떠한 가치로 사람들에게 느껴지던지 모든 것들은 오롯이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받아야 할 평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에 드는 생각은 글쓰기라는 행위는 그리 거창한 것도, 소수의 엘리트들에게만 허용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보통사람인 필자가 글을 몇글자 끼적거리고 있는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야말로 누구나 글을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글쓰기는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제한된 특권이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사람들은 생업을 하느라 글을 따로 배우고 익힐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서방에서는 라틴어가, 동방에서는 한자가 지배계층의 특권을 공고히 하는데에 이용되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의 행위는 이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문맹률은 낮아졌으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리나라만 봐도 글못쓰는 사람의 비중이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극단적으로 낮아졌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행위는 무언가 보통사람이 하기엔 거리가 먼 것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소위 문학을 한다던가 작가라고 하면 '저 사람은 특별하다'라는 선입견에 휩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이 서서히 깨져만 가고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자가 밥 딜런과 같이 문학을 향유하는 계층이 넓어졌다. 물론,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다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향유층이 넓어지는 것을 나쁘게만 보진 않는다.

 

사실 문학이라는 것의 출발은 춤과 음악, 노랫말이 어우러진 원시종합예술행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에서 분화가 되기도 하고 어우러지기도 하며, 작금의 소설, 극 등의 장르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단순히 보는 문학이 아닌 듣는 문학의 비중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듣는 문학의 경우에는 휘발성이 높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구전되는 이야기에서 변형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고, 사라져버린 이야기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보는 문학이 대두되었을 것이다. 책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구비되는 이야기들이 기록되어지고, 고착화되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작성하는데에 오래 걸리고, 집중해야 하는 보는 문학을 향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보는 문학은 미디어의 한계로 인해 일방향적 성격을 나타낼 수 밖에 없다. 작가가 독자에게 책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열린 결말이라던가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면서 보완했다고는 하나 쌍방향적 소통이라기엔 부족했다.

 

이후에 발명된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의 대중매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방향적인 미디어로 우리는 글을 읽어왔던 것이다. 보통사람은 글을 수용하는 독자, 소수의 사람들은 글을 쓰는 작가로 고정된 업을 수행해 온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IT기술의 발전은 볼 수 있는 매체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불과 몇년 사이에 디스플레이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필자가 군 복무중일 때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이 막 생겼던 시기였다. 그런데 군복무를 마쳤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기기를 목적성에 맞추어 여러개를 구비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그야말로 N스크린 시대가 도래했다.

 

비단 IT기술은 하드웨어만이 발전하지 않았다. 각종 소셜미디어 서비스들이 오픈하면서 보다 쉽게 자신의 글을 남들과 공유하고 상호교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소셜미디어 역시 하나의 글쓰기 플랫폼이라 필자는 바라본다. 각 플랫폼마다의 특성이 있고, 이 특성에 맞는 글들이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이 또한 하나의 장르 분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과거에 비해 독립출판의 기회도 많아졌고, 보통사람이 글을 쓰는데에 투입해야 할 비용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이 얼마나 글쓰기 좋은 시대인가. 그야말로 글쓰기의 시대다.

 

옴니글로같은 글쓰기 플랫폼 서비스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보다 많은 보통사람들이 글쓰기를 즐기다보면, 언젠가는 마치 원시시대에 부족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나누었던 글쓰기가 가능해 지지 않을까 필자는 생각해본다.

 

추운 겨울 날, 보통 사람이 휴가를 맞아 고향에 내려와 쓴 최초의 잡기이다. 아무래도 보통사람이다보니 아는 것도 부족하고 글도 매끄럽게 쓰질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잡다한 것을 글로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