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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연작

 

 

 

 

    아버지는 본인이 보내지 못한 편지가 있는데, 그것은 연작聯作이라 말했다. 그러니 그걸 받게 되면 정성을 다해 간직해줘야 한다고도 덧붙였는데, 어머니는 그가 말하는 연작이 하나의 편지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맡아 쓴 것인지, 아니면 혼자서 매일 밤 종이를 펼쳐 문장 하나씩을 적어 백 개의 속삭임을 만들어낸 것인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편지는 어디에 있냐고 스물아홉의 그녀가 물었을 때, 글쎄 품 어딘가에 넣어두었는데 그 품이 어느 품인지를 모르겠다고 서른하나의 그는 말했다. 술에 취해 돌아온 날이면 베갯속을 뒤적거리며 “편지가 있지 편지가…” 웅얼거리던 아버지 때문에 계절마다 옷장을 뒤집고 엎어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쓰지도 않은 걸 썼다고 한 게 아니냐며, 종종 그가 잠든 틈을 타 정수리를 톡 손으로 때렸다고 했다.

 

  결국 편지는 어느 블랙홀 같은 품에 빨려 들어가 일흔 여덟의 그녀가 숨을 거둘 때까지 손바닥 위로 전달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마지막 날까지 나보다 먼저 간 그 사람이 쥐고 간 편지를 참 읽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희미한 목소리가 어디까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마음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했을 지도 모르는 그 편지 앞까지 갈 수 있다면 꼭 그리 되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저히 편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는, 어쩌면 아버지가 편지지 위에 투박한 글씨로 어머니의 이름을 따 연작涓作이라 적어놓았던 건 아닐까, 그에게 연이라는 글자가 너무 벅차서 차마 그 다음 글자를 적지 못하고 마음에 줄줄 매달아놓고 살았던 게 아닐까, 이따금 상상하며 그들을 추억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친구가 두 분을 추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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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의 시/소설/편지/기타

Part 1-01편 [시]

{공지}

안녕하세요~!! 만다린입니다.

아닛~!!이럴수가~제가 저번주 토요일에 깜빡 잊고 못 썼네요ㅠㅠ(수요일,토요일에 꼭 쓸게요!!)

*아, 그리고 업로드요일은 수,토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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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점심,저녁

시간은 24시간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힘들다

'아,오늘도 하루를 살아야 한다니'

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의미있는 날들도 있고

인생의 끝을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고

한순간에 망한 사람, 한순간에 기회를 잡아 성공한 사람이 있다

 

이 하루, 순간이 없다면

나는 존재할까

 

한번쯤은 하루를 멈추고

쉬고싶은 날들도 있겠지만

다음 하루, 날들을 위해서라면

오늘도 나는

일하고, 공부한다.

 

 

 

작가의 말: 우리는

                항상 힘들지만 막상 내일을 위해서라면 이 힘든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다음날에는 다 괜찮을거라고,

                우리 모두 힘내서 화이팅~!!! 이라고 생각해요@ㅋㅋㅋ

                감사합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Have a Goo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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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내가 사랑했던 당신, B.E.S.T

이 세상이 다 변한다고 해도, 당신만큼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내 곁에 없는 당신이지만

같은 하늘아래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연이라도 마주칠 수 있으니

그 때 당신을 마주쳤을 때,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당신은 정말로 멋있었다.

내가 충분히 반할만큼.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어도, 충분히 그대에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정말 멋졌다.

 

내가 먼저 당신의 핸드폰 번호를 물었고

당신도 웃으면서 번호를 알려줬었지.

 

서로 연락을 자주 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호감, 그 후에는 정신없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당신에게 빠져들었었다.

그 때의 우리는 대화가 아주 잘 통했었다.

 

당신과의 만남과 연락은 늘 설레고 행복했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면서

부러워하기도 했었고, 우린 언제나 함께였었다.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밤새 얘기하면서

달콤한 사랑도 많이 속삭였던 그 때의 우리였었다.

절대로 변하지 말자며 수많은 약속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얘기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이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이 나 버렸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잘 통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우리는 왜 인정하지 못했을까?

 

처음부터 당신과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늘 행복하기만을 바라던 당신과는 달리,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당신과 함께 나누길 바랐었는데

당신은 귀를 닫아버리고, 입도 닫아버리곤 했었지.

 

그런 당신에게 너무 서운했던 나는

더 어리광을 피워댔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당신은

시종일관 묵언했었지.

 

나는 당신에게 많은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냥,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되는 거였는데,

속상한 마음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

 

왜,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면 나에게 차가워지는 거냐고.

 

한참동안 말이 없던 당신은 대답했다.

 

왜 굳이 힘들다는 얘기로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데이트를 망쳐 놓는 거냐며

오히려 내게 반문하며 지겹다고 했던 당신.

 

당신의 지겹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발끈했는데,

당신은 내게 더 냉정하게 얘기했었다.

 

“네가 누군지 나는 모르겠다.”

 

그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처음엔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었던 내가 좋아서

당신이 나를 정말 닮고 싶었기에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었고,

앞으로 나와 함께 꿈꾸는 미래가 너무 즐겁고

행복할거란 기대에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왜 항상 만날 때마다 힘들다고 어리광 피워대며

나의 우울한 감정을 당신에게까지도 옮기는 거냐고.

 

나는 연인사이에 힘들다고 얘기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물었지만, 당신은 내가 너무 어린 것 같다고만 말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대화가 되질 않았었지.

겁이 많은 나는, 그 후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고

그런 날 당신은 어떻게든 다시 잘 지내보자며 타이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계속 껴안고

힘들어하다가 술에 의존한 채 취하면 울면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은 한숨만 내쉴 뿐, 아무런 답이 없었지.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고,

늘 서로에게 지쳐있던 상황에서 나는 또다시 사랑에 상처받고 싶지 않아

계속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한 없이 다정다감했던 당신은,

이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나에게 냉정해졌고

나는 또다시 애써 밝은 척, 당신의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해보았지만, 이미 늦었던 것이다.

 

당신은 내게 이별을 고했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당신의 마지막 한마디에 나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졌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에게 나는 여자가 아니라며 잔인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당신.

 

하필이면, 그 날 비가 무척 많이 오던 날이었지.

우산을 쓰고 빗소리에 묻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한동안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그 다음에는 분노로 바뀌었고, 미친 듯이 화가 나서

당신을 참 오랫동안 괴롭혔었다.

 

나랑 헤어지고, 당신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수시로, 구질구질하게 매달려보기도 했고,

온갖 심한 막말도 거침없이 해대면서도

마음속 한 구석에는 다시 돌아 와주길 바라고 또 바랐었는데

나에게 돌아온 건 당신의 무응답.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당신은 칼같이 나를 잘라냈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정말 안 되겠구나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당신과의 사랑이 끝이 나고, 시간은 정말 빠르게도 흘러가더라.

허무하게 당신과의 사랑이 끝난 게 아쉬워서 인건지

그동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달콤한 미래에 기대가 너무 커서

미련이었던 건지는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더라.

 

난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한다는 사실.

아직도 당신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당신을 아직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늦었다는 걸 알지만

한번쯤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긴 하다.

 

만약, 다시 되돌아간다면,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조금은 더 생각해봐야 하는 아직은 풀리지 않는 숙제를 껴안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

 

그 때, 당신이 나빴던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기에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사랑하고 있을 땐,

서로에게 거짓 없이 진실 된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생각하진 않기로 한다.

당신도 충분히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테니까.

워낙, 힘든 거 내색하지 않던 당신이었으니까.

 

비록, 짧은 사랑을 했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당신과 만날 수도 연락도 할 수 없지만

처음처럼 당신은 여전히 멋있는 사람으로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항상 당신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많이 의지했고, 진심으로 당신과의 행복한 미래가 이뤄지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당신이니까.

 

나도 당신을 내 마음속에서 잘 떠나보내고

행복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가끔씩은 그 때의 우리가, 당신이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만

또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겨둬야지.

 

당신은 정말 최고로 멋있었고

한없이 다정다감하고 늘 진실 된 사람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그 모습이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딱 한 가지, 변했으면 하는 건

앞으로 누군가와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면

힘들다고 말하는 상대방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당신이 되었으면 하는 것.

 

그 부분만 변화된다면,

아마 당신은 최고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사랑했던 당신, B. E. S. T!

 

이제는 각자의 길 위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길 바라면서 이제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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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미답[前人未踏]

마지막 편지 : 나미야 잡화점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 나미야 잡화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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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서른, 책갈피

 

 

 

 

    나의 전공은 철학. 이상하게도 나는 철학을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어떤 방법론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일들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그런 방법론. 그래서 철학이 좋았다. 대학생 신분이었던 4년,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던 2년 동안, 내 안에 움츠리고 있던 아집을 없애고 최대한 많은 색깔의 생각들과 표정들, 소리들을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비닐 장막 같았던 편견을 걷어내니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질문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은 가끔 날 보고 특이하다거나 웃기다고 말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이십대 초 ․ 중반, 가장 꽃다웠던 나의 청춘의 시기이다.
 
  원래 나는 국문과를 가려고 했던 여고생이었다. 다섯 살 때 밤새 책을 읽다가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난 적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반항기가 다분했던 나는 그 다음 날도 또 책상 밑에 기어들어갔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짜릿함을 선사해주었으므로, 그 정도 크기의 강압으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읽기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레 글쓰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고, 이것저것 끄적이는 습관이 생겼다. 작가가 되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고, 대학을 간다면 국문과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도 제법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대학 지원의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혹시 국문과에 가면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문학에 고정관념이 생기는 건 아닐까. 작품을 더 훌륭하게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고정된 시선을 가진 정답형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사실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고등학교 ‘문학 과목’에서는 그리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학생이기도 했다. 시와 소설에 정답이 있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는 아이, 그래서 객관식 시험에 꽤나 어려움을 겪는 아이였다. 고 3 말미, 나의 이러한 기질이 훌륭한 국문학도로 성장하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결국 철학을 전공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물론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4년 동안 나와 타인을 향해 끝도 없이 질문하고, 수많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또 반성하면서 좋은 정답보다는 좋은 질문에 천착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므로.
 
  서른이 된 지도 벌써 아홉 달. 사실 요즘 나는 슬프다. 눈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조금씩 건조해지는, 그런 신체적인 변화 때문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주 많이 슬프다. 타인의 말에 토를 달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사건이 벌어진 까닭보다는 결과에 나타난 수치들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채로 생존해야 한다. 무미건조하다. 힘이 든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삼십대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이 있다. 주변 눈치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내 식대로 살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누군가는 아직도 철이 덜 든 거냐고 나를 비웃겠지만.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비난받으며 철딱서니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 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질문이다.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나온 대사이기도 한데, 자기반성을 좋아하는 나는 스스로에게 종종 이 물음을 던진다. 이 말은 내가 과연 이 세상을 철들지 않고 살아가도 되는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고민의 끝에 언제나 따라붙는 나의 대답은, 결국 “YES”다. 가능하면 아주 오래도록 이 질문을,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서른의 한 가운데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는 핑계로 일상 곳곳에 책갈피를 끼워 둔다. 선언하듯 다짐하고, 꿈꾸듯 소망한다. 짧은 질문에 매달린 꿈들이 너무 많아 때론 버겁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내내 청춘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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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K에게

 

 

 

 

 

 

    서른이 된 내가 이제서야 K에 대해 운을 뗀다는 것, 이상하게 마음이 움찔거린다. 소년 K를 바라보고 있던 그 시절의 나는 너무도 작은 꼬마였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았던 아이.
 

  그래서 그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랐다. 한참을 망설이다 주루룩 울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날 내 눈물 속에는 슬픔보다는 두려움이 더 가득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 일어나버렸다는 것, 그래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안정한 심리상태로 며칠을 지냈다.
 

  이젠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 말랑하던 마음의 속살은 단단하게 굳어버렸지만, 운명처럼 갑작스레 마주친 그를 바라보며 나는 옛날의 그 꼬마로 돌아가 또 엉엉 울어야만 했다. 2016년 봄, 내가 흘린 눈물 속에는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복잡한 의미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K.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진다. 잊고 살았던 소중한 무언가를 먼지 쌓인 상자 속에서 꺼내든 것처럼. 그 먼지 때문에 코가 시큰해지고 연신 재채기가 난다 해도 다시는 놓고 싶지 않은 마음.
 

  K는 내가 참 순수했던 그 옛날 '아주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이 크기를, 양을, 무게를, 얼마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정말 그냥 '많이'라는 단어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는 우리가 함께 있던 동네를 떠나 또 다른 인생의 경로를 만들어왔고, 나는 그의 그림자를 내게서 조금씩 지워갔다. 잘 살겠지, 잘 살 거야, 하다가도 가끔 그에 대한 소식이 어렴풋하게나마 들려오면 덜컹덜컹 몸 속 어딘가에서 쇳소리가 나는 듯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두 눈으로 보지 못한 K라 사실은 조금 멀게 느껴졌었다. 그런 그를 다시 보게 되다니. 다시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방향을 찾는다. 그의 자취를 눈매와 향기, 목소리로 천천히 되짚어 본다. 소년과 남자의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K. 이가 빠졌다며 바보처럼 웃던 말간 얼굴의 어린 K를 떠올리면 또다시 폭풍우가 몰아닥치기도 한다. 옛날처럼 "K야!"라고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올 것만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습관, 그리고 그토록 소중했던 그의 노래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래도, 이제는 아는 것이 더 많아진 어른이니까, 만약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나는. 거뜬히. 기꺼이. 


  어느새 남자가 된 소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른이 된 꼬마는 괜시리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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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글로

청혼의 고백#외전:유준&진세 이야기(2/2)

 

굳이, 글로

 

청혼 이야기
외전:유준&진세 이야기

​(2/2)

 

 

 

시간은 멈추지도 않고 흘러 어느덧 유준과 진세가 알고 지낸 지 1년이 지난-한국에 돌아온 후 반년이 지난- 여름.
유준은 진세의 연락을 받고 인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진세는 유준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항상 이랬다. 늦는 법이 없었다. 유준은 손을 흔들며 진세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여, 진세, 살 빠진 거 같다?”

 

“피이, 며칠 전에도 봤으면서.”

 

“오, 이 옷 뭐야. 못 보던 건데? 예쁘다. 잘 어울려.”

 


진세는 유준의 칭찬에 순간 얼굴을 붉혔다. 심장이 뛰었다. 눈치도 없게, 유준이 알이챌까봐 걱정될 정도로 뛰었다. 하지만 진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메뉴판을 내밀었다.

 


“...크흠. 오늘은 내가 살 거야. 골라.”

 

“비싼 거 시킨다?”

 

“그, 그래, 그럼. 시키던지.”

 

“풋.”

 

“왜!! 뭐가 웃겨?!!”

 

“아냐, 아냐. 크큭... 난 이걸로. 너는?”

 


생각해 보면, 진세는 그날따라 거의 하지 않던 화장도 하고, 평소 때 캐주얼하게 입던 의상도 바꾸고, 헤어스타일도, 악세서리도, 무엇 하나 평소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날따라 유준은 진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진세를 똑바로 보면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서, 자기도 모르게 좋아한다고 무드없이 말해버릴 것만 같아서. 이때까지 본 것 중 가장 예쁜 진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진세도 안 하던 화장도 하고, 한껏 차려입고 유준을 만나러 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세는 여름인데도 설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미묘함 속에서 조금 어색했던 식사 후, 그들은 카페로 향했다.

 


“여기도 내가 살게.”

 

“오늘 이진세 돈 좀 쓰는데? 무슨 날이야?”

 

“...응. 중요한 날이야.”

 


진세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공기마저 설레고 간지러웠다.
유준은 그런 진세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얼굴이 뜨거워지자 괜히 헛기침을 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주문한 음료와 케잌이 나왔다. 하지만 진세는 음료를 휘휘 젓기만 하고 도통 마시지를 않았다. 그건 케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두근거려서, 속이 울렁거려서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다.

 

유준은 그런 진세가 의아했다. 이러지 않았는데.

 


“무슨 일 있어? 잘 먹질 않네.”

 

“오빠.”

 


그 때,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진세의 단호한 눈빛이 유준을 똑바로 향했다. 유준은 그런 진세의 시선에 눈을 마주하면서도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진세는 늘 이랬다.
뭔가 결심이 서면 바로 말해버리는 타입이었고, 말하기 전에는 항상 지금과 같은 눈빛으로 상대를 빤히 바라봤었다. 유준은 그런 진세의 결심과 시선이 좋으면서도 쑥스러웠다. 나이가 서른이 되어 가는 와중에 이런 감정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진세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오빠.”

 

“...어, 말해.”

 


진세의 볼에 홍조가 눈에 띄게 번지고 있었다.

 


“좋아해요!!!”

 


유준은 하마터면 마시던 음료를 뱉을 뻔했다. 저 한 마디는 자신이 줄곧 진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데 오히려 진세에게 그 말을 듣다니. 이건 꿈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이 아닌 것만 같았다. 사실은, 꿈 따위가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진세는 귀까지 붉어졌으면서도 유준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안절부절 못하고, 쿵쾅거리며 요란스레 뛰는 심장에 어찌할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유준도 마찬가지였다. 진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목까지 붉어진 채 진세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얼마간의 침묵 후, 유준의 입이 열렸다.

 


“좋아해.”

 


진세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꿈같아서, 확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꿈이라도 좋을 정도로 간지럽게 다가오는 유준의 그 말이 너무나도 좋았다.

 

유준은 그런 진세의 기대에 부응하듯,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이제는 마음을 표현하는 걸 숨기고 참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꿈 따위가 아니라는 게 좋았다.

 


“좋아해, 진세야.”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진세야. 좋아해.”

 


어느새 둘은 테이블 위에서 손을 맞잡고 있었다.
유준도 진세도, 벅차도록 설레는 마음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둘은 이미 많이 닮아 있었다. 미소도, 마음도, 서로를 바라보면 느껴지는 간지러운 그 기분마저도.


조금은 더운 기운이 남아 있는 늦여름이었다.
유준에게는 스물 아홉의 늦여름.
진세에게는 스물 넷의 늦여름.
같으면서도 다른 시간 속에 그들은 함께 존재했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정말- 세지 씨랑 정하 오빠 결혼식 진짜 예뻤어.”

 

“그렇지? 보는 사람이 다 흐뭇해지더라니까.”

 


어느새 세지와 정하의 결혼식도 3개월 전의 일이 되었다.


유준과 진세는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세지와 정하의 결혼식 날 찍은 사진들과, 얼마 전 정하에게서 받은 태아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가만히 사진들을 들여다보던 진세가 커피를 마시는 유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부러워.”

 


갑작스런 진세의 말에 유준은 사진에게서 진서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유준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황급히 다시 사진을 쳐다보믄 진세. 유준은 그런 진세의 옆얼굴이 귀여운 듯, 피식, 웃어 버린다.

 

 

 

 

그새 더워진 날씨에 긴 머리카락을 올려묶은 진세의 목선이, 목선을 타고 흘러내린 잔머리가 가만히 유준의 눈에 담겼다.

 


“뭐가 부러워, 결혼식?”

 

“으응, 그것도 그렇고, 그냥 다 부러워.”

 

 

 

 

“세지 씨도, 정하 오빠도, 정식으로 사귄 건 5년이라고 했지만 그 전에 알고 지낸 시간까지 합치면 7년이나 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은 게 신기하고 부러워.”

 


꿈꾸는 소녀처럼 발그레한 표정으로 말하는 진세. 유준은 진세를 빤히 바라본다.

 

유준은 세지와 정하의 결혼식 이후, 진세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진세의 말처럼 그 둘의 결혼식에 감명을 받은 건지는 몰라도, 최근에는 진세를 쳐다보면 자꾸만 그 날의 기억에서 세지와 정하가 아닌, 자신과 진세가 주인공인 결혼식을 떠올리곤 했다.

 

 

 

 

유준이 팔을 뻗어 귀까지 붉어진 채 괜히 사진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진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진세의 괜한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우리도 그러면 되지.”

 

“...응.”

 


진세의 볼에 번진 홍조가 짙어지면, 유준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가 그려진다.

 

 

 


“우리도 이제, 결혼하자.”

 

“응... 응?!!”

 


갑작스러운 유준의 결혼하자는 말에 멍하니 대답하던 진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유준을 바라봤다. 품 안에서 고개를 드니 유준의 얼굴이 코앞까지 와 있었다. 짖궂은 미소를 띈 유준에 짧게 숨을 들이키고 고개를 내리는 진세. 유준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 끅끅거리며 웃는다.

 

 

 

 

유준은 진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짧게 입맞춤을 한 후 다시, 진세를 조금 더 꼭 끌어안고 고백했다.

 


“결혼, 하자, 우리도.”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유준에게는 진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유준의 시선이 닿아 있는 진세의 목이 조금 붉어졌고, 자신에게 기댄 진세의 몸에서 두근거림이 느껴졌으니까. 아, 후자는 진세가 아니라 자신의 설레임일지도 모른다, 고 유준은 잠깐 생각했다.

 


“오빠. 난 오빠가 좋아.”

 


진세가 뜬금없이 고백을 해 왔다.

 

 

 

 

유준은 말없이 옅게 웃었다.

 


“나도 네가 좋아.”

 

 

 


카페 창가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여름 햇살과 시원한 카페 안의 공기 사이에서 두 사람의 미소가 잔잔하게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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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글로

청혼의 고백#외전:유준&진세 이야기(1/2)


굳이, 글로

 

청혼 이야기
외전:유준&진세 이야기

(1/2)

 

 

 

20XX년 여름. 외국의 한 도시.

 


“아, 미치겠네.”

 


캐리어를 옆에 두고 계단에 주저앉은 유준이 한 손으로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긴다. 유준은 조금 전, 사무실에서의 대화가 떠올랐다. 생각하면 할수록 열받는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기숙사 등록하려고 하는데요.’

 

‘오늘은 안 됩니다. 개강 일주일 전부터 받아요.’

 

‘네? 아니, 뭐...!!! 그게 말이 돼요? 학교에서 방을 못 준다니요!!’

 

‘...저한테 말씀하셔봤자...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오세요.’

 


사무실 직원은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고서는 나가보라는 듯, 조용히 문을 가리켰었다.

 

유준은 다시금 열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런 직원의 태도도 가히 열받는 일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무거운 짐까지 가진 채 난생 처음 와보는 타국의 도시에서 딱히 괜찮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게 더 싫었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으려 해도 방학 기간이라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것 때문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갑자기 유학을 간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일을 하면서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고,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그는 프리랜서라 회사의 존재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회사의 요구가 뭔가 불만스러웠다.


그러다 갑작스레 사춘기 때 들었던 생각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고, 이왕 떠나는 거 조금 새로운 환경에서 일이든 공부든 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유준은 잠시 모든 일을 중단하고 자비 유학을 선택하게 됐다. 하지만 꿈꾸던 유학길의 첫 단추부터 뭔가 애매하게 틀어져 버렸다.

 


“성질을 죽이던 해야지, 하...”

 


유준은 고개를 숙이고 팔로 머리를 감싸안았다.
가만히 있으니 더 더운 것 같았다. 최대한 즐거운 상상을 해 보려 해도 이거다 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유준의 시야에 작은 샌들과 발이 보였다.

 


“저기... 한국인이세요?”

 


유준이 머리를 감싸안은 팔을 풀고 고개를 들자, 왠 여자가 서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를 굳이 쭉 당겨묶은. 그리고 여자의 옆에는 유준과 같은 큰 캐리어가 있었다. 유준은 캐리어를 발견하곤 여자가 자신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네, 자비 유학생이에요. 바로 다음 학기부터 시작하는데 방이 없다고... 아, 주유준입니다.”

 

“하, 더워. 아, 네. 전 이진세라고 해요. 스물 셋이구요.”

 

“아... 전 스물 여덟이요.”

 


유준의 나이 고백에 손부채질을 하던 진세의 시선이 똑바로 유준을 향했다.
유준은 왜인지 그 올곧은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어서 괜히 허공을 쳐다봤다.

 

진세는 그런 유준을 빤히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진세는 바로 전 학기에는 한 학기 내내 일을 했고, 방학 동안 기숙사 방을 미리 잡아두고 짐을 천천히 옮길 계획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런데 얼마 전 방학 동안 방에 짐을 두고 여행을 다녀온 지인의 방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범인은 금방 잡혔다지만 진세는 그래도 불안했다.

 

그런데 주유준. 이 사람이 있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던 진세는 이내 답을 찾은 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유준에게 말했다.

 


“방 없다고 그랬죠? 그럼 개강까지 제 방에서 지내요.”

 

“네...?”

 


유준은 거침없는 진세의 말에 굳은 듯 멍해졌다.

 

그리고 30분 후.
유준은 말 그대로 진세의 기숙사 방에 와 있었다. 진세의 방에는 그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옷가지나 책들이 있었지만, 뭐랄까, 상당히 어수선했다.

진세는 캐리어 속 물건들을 옷장과 책상에 대충 정리한 후 멍하니 있는 유준에게 다가왔다.

 


“저기.”

 

“네? 네..."

 

“당분간 이 방 써요. 학기 시작하려면 2주 정도 남았으니까. 그 때까지 쓸 수 있어요.”

 

“아, 저, 감사한데요. 그럼 진세 씨는...”

 

“...풋.”

 


유준은 다시 멍해졌다.
땀이 조금 난 진세의 얼굴과 당황하며 되묻는 유준에 풋, 하고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표정. 왠지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하, 걱정 마세요. 전 친구랑 밖에 살고 있거든요. 짐이 많아서 나눠 옮기는 것 뿐이에요.”

 

“아, 네... 그렇구나...”

 

“사실 남아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도난 사고도 일어난 적 있거든요. 저야 뭐, 그렇게 비싼 물건은 없지만, 그래도 빈 방에 물건 쌓아두는 게 조금 찝찝해서요. 아, 여기 열쇠요.”

 

“그렇군요. 아, 감사합니다.”

 


진세가 주머니를 뒤적여 꺼낸 열쇠를 유준에게 건넸다. 유준은 서둘러 진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열쇠를 가방 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유준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던 진세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는 거에요. 방학 끝날 때까지 유준 씨가 있을 곳을 제공해 드리는 대신, 유준 씨는 제 방을 지켜주는 거에요. 서로 윈윈하는 결과가 될 거 같아서요.”

 

“...아, 그렇죠. 진세 씨. 정말 감사합니다. 곤란했었는데.”

 

“풋, 아니에요.”

 


또, 웃었다.
진세의 그 가벼운 미소가 유준에게는 납덩이라도 얹힌 것처럼 묵직하게 느껴졌다.

 

당시 유준에게는 비밀이었지만, 진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다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많다는 이 남자는, 순진한 건지 뭔지 나이에 비해서도, 날카로운 인상에 비해서도 너무 귀여운 점이 많았다.
그리고 진세는 그런 유준의 반응에 심장이 간질거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럼, 식사나 하러 갈까요? 밥 땐데.”

 

“네, 그래요.”

 

“말 편하게 해요. 다섯 살이나 오빠잖아요.”

 

“아, 어, 응, 그래. 너도 편하게 해. 정말 고마워.”

 

“응... 좋아!!”

 


그 날부터 유준의 속에는 진세가 박혀서 빠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둘은 연락을 이어갔지만, 유준은 나이도, 현실도, 괜히 겁이 나서 진세에게 먼저 연락 한 번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세가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 왔기에 크게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말하지도 못할 마음이 커지기만 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진세는 진세 나름대로 답답했다.
사실 유준이 먼저 연락해 주길 바랬는데 이 바보같은 남자는 겁만 내고, 자꾸 뒤로 숨기만 하고, 결국 진세가 먼저 연락을 취해서 만남을 이어갔지만 어딘가 아쉬웠다. 그와의 관계에 대해, 확실하게 매듭을 짓고 싶었다.

 

미묘한 그들의 감정선은 그렇게 6개월 동안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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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잘 지내고 있나요?

살아가면서 그리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요.

학생 때 친했던 친구들이 성인이 되면서

서로 바빠지기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면서

만날 수 없을 때, 가끔 그 때를 생각하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그때의 친구들.

 

옛 애인과의 애틋한 사랑을 나누다 한 순간의 오해와 실수로

잘못판단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날들을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과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그리움만

가슴에 남는 나날들이 우리들에게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운 마음에 연락을 하고 싶지만 연락처를 몰라

SNS에 들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창에 그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보고

똑같은 이름들의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뜨는데

정작 그 사람의 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 같고,

혼자 그리워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이 마음 어떻게든 풀어보려 예쁜 편지지를 사고

정갈한 글씨로 편지를 써보지만

보낼 길이 없는 아쉬운 마음을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그리워했냐는 식으로

현실로 돌아와 바쁘게 살아가는 나날들.

 

그러다가 한 번씩은 불쑥 나타나는 그리움들.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아쉬운 마음 달래려 또 다시 편지지를 꺼내

보내지 못할 편지를 써내려가는 이런 내 마음을 그들은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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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의 고백#정하 이야기

 

굳이, 글로

 

청혼의 고백
정하 이야기

 

 


딸랑-

 

“아, 뭐 이런 데로 부르냐, 이것들은.”

 


새카만 밤, 야구모자를 눌러 쓴 한 남자가 투덜거리며 작은 호프집에 들어선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이내 일행을 찾은 듯 안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한정하야. 뭐 때문에 불렀냐니까? 뭔데 그렇게 숨겨!!!”

 

“야, 주유준, 재빈이 오면 얘기할 거라니까. 엄청 급하네, 진짜.”

 

“진짜 더럽게 비싸게 구네. 근데 서재빈 이 새낀 왜 안 오냐.”

 


구석 테이블에서는 남자 두 명이 대화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 유준은 삐친 듯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입을 쭉 내밀고 중얼거렸고, 유준과 반대로 처진 눈매의 남자, 정하는 그런 유준을 보고 피식, 웃어 버린다.

 

재빈은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작게 혀를 차고는 성큼성큼 다가가 냅다 남은 자리에 앉았고,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놀란 듯 정하와 유준은 토끼눈을 한 채 재빈을 바라본다.
재빈은 태연히 술을 주문한 후 유준을 향해 말한다.

 


“이 새끼 왔다, 이 새끼야. 무슨 일인데?”

 

“...그래, 왔냐, 이 새끼야. 정하한테 물어봐.”

 

“정하, 무슨 일?”

 

“다들 기대하시라. 서프라이즈가 있다.”

 


정하는 가방 속에서 자칫 엽서처럼 보이는 작고 새하얀 종이를 꺼내 유준과 재빈에게 내민다.

 


“...이게 뭐냐.”

 


정하에게 묻는 유준의 눈매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정하는 우선 읽어보라는 듯 말없이 종이를 가리켰고, 유준과 재빈은 찬찬히 종이를 훑어본다.

 

하지만 이내 재빈은 당황스러운 표정-이라기 보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듯 하다.-으로 종이를 조심스레 테이블에 올려 두고는 턱을 괴고 종이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재빈이 올려둔 하얀 종이는 심플하지만 은은한 프린팅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앞면 가운데에는 금색과 은색이 섞인 듯 오묘한 색으로

 

신랑 한정하
신부 윤세지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유준은 한동안 조금 멍하니 종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한다.

 


“...그 뭐냐, 축하한다. 세지 씨랑 결혼하는구나, 드디어.”

 

“고맙다. 야, 청첩장 잘 나왔지? 예쁘지?”

 

“어. 근데 식은 어디서 하냐?”

 

“우리 부모님 댁. 거기 마당이 있는데, 조금 커서 간단하게 식 하려고. 사람도 많이 안 부를 거야. 너네는 꼭 와라.”

 


들떠 보이는 정하의 설명에 유준과 재빈은, 피식 미소지었다.

 


“그래. 진짜 축하한다, 자식아. 죽고 못 살더니 드디어 하는구나.”

 

“고맙다, 자식아. 너도 빨리 해라.”

 

“안 그래도 요즘 얘기 중이야.”

 


재빈은 둘의 결혼 얘기에 끼지 않았다. 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헤어진 그녀가 떠올라 버렸다.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유도 제대로 모른 채 차이고 말았다. 친구의 좋은 소식에 이러면 안 되지만, 괜히 열이 받았다. 술이 고팠다.

 

그 때, 유준이 술잔을 드는 재빈의 팔을 잡았다.

 


“야, 혼자 마시면 안 돼지. 자, 한정하의 결혼을 위하여!!!”

 

“아, 뭘 또 이런 걸 해. 괜찮아.”

 

“내가 안 괜찮거든? 서재빈, 가자, 한정하의 결혼을, 위하여!!!”

 


재빈은 웃었다. 유준은 날카로운 인상에 평상시 말도 툭툭 내뱉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참 속이 깊고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지금도 자신을 배려해 준 것이리라.

 

재빈은 벌떡 일어나서는 웃으며 잔을 들었다.

 


“어이구, 그래, 한다. 위하여!!!”

 


호프집 구석 자리, 소중한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는 두 남자와 친구들의 축하에 행복한 표정을 짓는 한 남자가 술잔을 기울인다.

 

얼마나 마셨을까, 테이블 위에는 빈 잔이 몇 번이나 쌓였다가 치워진다. 안주도 마찬가지. 하지만 세 남자는 취하지도 않는 듯, 기분 좋은 얼굴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테이블을, 유준을 향해, 웨이브진 긴 머리칼의 여자가 다가왔다.

 


“저기, 오빠.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번호 좀 주실 수 있어요?”

 

“네, 저요...? 으어억!!! 하, 깜짝이야. 이진세, 너 여기서 뭐 해? 집 간다며?”

 

“...왜 이렇게 놀라? 그냥. 집 가는 길이었어. 그러다 보이길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유준 옆으로 정하와 재빈이 여자, 진세에게 인사를 건넨다. 진세도 해맑은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인다.

 

진세는 유준의 여자친구로 활발하고 싹싹한 성격 때문에 몇 번 만난 적은 없지만 정하, 재빈과도 잘 지내고 있었다.

 


“우리 이렇게 구석에 있는데 또 어떻게 찾았대.”

 

“사람이 많이 빠져서 잘 보였어. 여기 좀 앉았다 가도 돼요, 오빠들?”

 

“그럼. 한 잔 할래? 500 하나 시켜줄까?”

 

“꺄-. 좋죠!! ...어, 이거 뭐에요? 정하 오빠, 결혼해요?”

 

“응. 너도 유준이랑 같이 와.”

 

“우와아.”

 


진세는 정하의 청첩장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다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정하에게 묻는 진세.

 


“정하 오빠는 세지 씨랑 어떻게 만났어요? 저번에 우리 오빠한테 듣긴 했는데, 아무래도 당사자에게 듣는 게 더 실감나니까요.”

 

“음, 얘기 못 해줄 건 없지. 좀 지루할 수 있는데 괜찮아?”

 

“네!!”

 

“음... 아무튼 첫만남도 아직 엄청 생생해. 7년이나 지났는데.”

 


진세는 흥미로운 동화를 기다리는 꼬마처럼 두 눈을 빛내며 숨죽이고 있었다. 그 옆의 유준과 재빈은 몇 번도 더 들은 이야기라 크게 흥미가 없는 듯 했지만, 그 같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처음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쑥스러워하는 정하의 얼굴은 참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정하는 술기운이 조금 올라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추억에 온전히 잠기고 싶은 건지, 살짝 눈을 감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막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었고, 세지는 딱 2학년 때라 어학연수니, 교환학생이니, 뭐 그런 거랑 진로에 대해 한창 고민하던 시기였어. 어쨌든 나는 그 때 복학 직후라 만날 사람도 딱히 없고, 공강 시간 떼울 장소도 마땅찮아서 가지도 않던 카페를 갔어. 그 날따라 익숙치도 않던 카페가 왜 그렇게 가고 싶던지.”

 

 

 

 

“세지가 내 주문을 받았었어. 좀 멍한 표정이더라. 아파 보이기도 하고, 피곤해 보이기도 했어. 금방 내가 시킨 아메리카노가 나오고, 나는 그걸 들고 창가 자리에 가서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 지루해도 할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모자를 고쳐 쓰려다가 모자를 떨어트린 거야. 아끼던 모자라 당시에는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모자가 떨어진 게 참 고마워. 마침 청소를 하며 지나가던 세지가 내 모자를 밟아 버렸거든.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지 내 모자를 밟은 줄도 모르는 것 같더라고. 아끼던 모자를 밟은 여잔데도 귀엽다는 생각부터 들더라.”

 

 

 

 

“그래서 내가 세지를 불러 세우고 모자 얘길 했더니, 뒤늦게 발견하고는 사색이 돼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라고. 너무 당황하길래 괜찮다고 했더니, 또 날 멍하니 쳐다보는데 그 표정이 너무 예뻐서 나도 아무 말 못 하고 쳐다봤지. 그런데 시간을 확인하더니, 지금 자기가 강의가 있어서 가 봐야 하니 나중에 연락드리겠다며 번호를 알려 주더라구.”

 

 

 

 

“그 뒤는 뭐, 예상할 수 있을 거야. 괜찮다고 했는데도 죄송하다고, 밥을 사겠다며 연락하고, 만나고, 그러다 친해지고, 안 지 3년째 되는 해에 내가 고백했어. 사실 고백하던 날 예상과 달리 갑자기 비가 와서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지가 울더라고. 고맙다고. 자기도 날 너무 좋아한다고. 그런 세지가 참 사랑스러워서 많이 벅찼어. 그냥, 그런 흔한 이야기야.”

 


얘기를 끝낸 정하는 살며시 눈을 떴다. 진세는 어딘가 홀린 듯, 발개진 볼을 하곤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내,

 


“정말 멋져요, 오빠!!! 이야기가 너무 예뻐요.”

 

“그래? 하하, 고마워.”

 

“세지 씨는 정말 행복한 여자에요.”

 

“...고마워.”

 

“진심으로, 결혼 축하드려요, 오빠.”

 


진세의 말에 잠깐 멍했던 정하도, 유준과 재빈도 웃었다.
작은 호프집 안, 구석 자리, 세 명의 친구와 한 명의 여자, 정말 ‘사랑’을 하는, 할 사람들.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나가는 밤마저 아름다웠다.

 

-

 

1달 후.

 

한 주택 마당에서 하객도 많지 않고, 다소 조촐하지만 세상 어느 부부보다 행복한 결혼식이 진행됐다. 세지는 새하얀 원피스를 차려입었고, 정하는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상태였다. 그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세지의 볼은 연한 붉은빛 홍조를 띄고 있었다.

 


“아- 두 사람 눈빛이 너무 뜨겁네요. 그럼 뭐, 다 건너뛰고 뽀뽀로 끝냅시다.”

 

“뭐?!!”

 

“키스는 너무 야해 보이잖아. 그럼 신랑 신부, 뽀뽀 가겠습니다.”

 


짖궂은 사회자, 유준의 말에 세지와 정하는 새빨개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본다. 어쩔 줄 몰라하는 정하 앞으로 다가온 세지가 까치발을 들고 눈을 감는다. 그런 세지를 잠깐 멍하니 바라보던 정하는 머리 끝까지 붉어진 채 조심스레 세지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맞춘다.

 

입을 맞추는 순간, 하객으로 온 친구들이 준비한 폭죽이 터지고, 노을 사이에 반짝이와 꽃잎들이 흩날린다. 그리고 사방에서 친구들의 진심을 담은 축하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그 마법같은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정하가 갑작스레 세지를 번쩍 안아들었고, 세지는 정하의 품에 매달려 아이같은 웃음소리를 낸다. 어디서 들리는 건지, 어느새 마당에는 잔잔한 음악이 깔렸지만, 정하에게는 들킬까 두려운, 아니, 오히려 세지에게도 들렸으면 하는 설레는 고동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7년간의 긴 시간을 함께 해준 그대에게.
앞으로의 평생을 함께 해줄 그대에게.
내가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 편지를 바칩니다.

 

한정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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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의 고백#세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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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의 고백

세지 이야기

 

 

 

한 카페 앞 거리,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가만히 하늘을 바라본다. 여자는 전체적으로 성숙한 스타일이었지만, 표정만큼은 처음 사랑에 빠진 그 날처럼 수줍어 보였다.

바람이 머리칼을 간지럽히고, 살짝 눈을 감았다 뜬 여자는 바로 앞 카페로 들어선다.

 

 

딸랑-

 

“어서 오세요.”

 

“네, 으음...”

 

“어, 윤세지, 여기야, 여기!!”

 

 

카운터로 걸어가며 두리번거리는 여자를 향해,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여자가 반가운 얼굴로 손짓한다. 여자, 세지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음료를 시키고 그녀들이 앉은 테이블로 향한다.

 

 

“유현아, 지예야, 오랜만이야. 요즘 자주 못 봤지.”

 

“알긴 아는구나.”

 

“그보다 세지야, 준비는 잘 돼 가?”

 

 

여자의 인사에 퉁명스레 대답라는 보이쉬한 단발머리의 유현. 그리고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는 듯, 동그란 눈을 빛내는 귀여운 인상의 지예.

세지는 유현의 반응에도 마냥 기분이 좋은 듯 웃고만 있다가, 지예의 질문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손바닥만한 하얀 종이를 꺼내 테이블에 놓는다.

 

 

“오? 청첩장 나온 거야?”

 

“응, 어제 뽑았어. 예쁘지? 예쁘지?”

 

“우와, 예뻐, 세지야.”

 

 

지예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는 세지가 내민 청첩장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청첩장은 수수한 듯 하면서 고급스러워 보였다.

앞면에는 금색과 은색이 뒤섞인 듯한 오묘한 빛깔로

 

신랑 한정하

신부 윤세지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라는 글귀가, 뒷면에는 결혼식 시간, 장소 등이 간략히 적혀 있었다.

 

 

“음? 여긴 어디야? 위치가 주택가 같은데. 너네 신혼집?”

 

 

유현은 청첩장을 살펴보다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한 듯, 청첩장 뒷면 ‘장소’ 란을 가리키며 세지를 쳐다봤다. ‘장소’ 란에는 예식장 이름이 아닌 왠 사택 주소가 적혀 있었다.

 

 

“오빠 본가. 주택인데 마당이 좀 큰가 봐. 거기서 간단하게 식 하려고.”

 

 

세지의 설명에 유현과 같이 옆에서 얘기를 듣던 지예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세 여자는 한동안 청첩장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세지는 친구들의 질문에 한결같이 들떠 보이는 얼굴로 대답했고, 친구들도 세지의 행복해 보이는 표정에 덩달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가만히 청첩장을 들여다보던 유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세지 네가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어, 유현이 분위기 잡는다.”

 

“그래. 기회 흔치 않으니까 잘 들어. 어쨌든, 나는 좋은 사람은 다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에 참 좋은 사람인 네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앞으로 더 행복하길 바래.”

 

 

세지는 조금 놀란 듯 했다. 그도 그럴 게, 원체 시크한 성격의 유현에게서 다정한 말을 듣리간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행복하길 바랬다’니. 그런 말을 유현에게 들으니 더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유현아. 나 진짜 행복해. 정말 고마워.”

 

“응... 그래. 크흠.”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는 유현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세지는 왠지 마음이 아릿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자신의 행복을 인정받는 순간 그 행복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다가와서 눈가가 찡했다.

 

 

“...세지, 울어? 울지 마...”

 

“뭐야. 감동받았냐?”

 

“...고마워, 유현아, 지예야. 둘 다, 너무 고마워.”

 

 

기분 좋은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릿했다.

세지는 생각했다.

 

정말, 자신은 눈물겹게 행복한 존재라고.

 

-

 

“그럼 나 먼저 가볼게. 너희도 조심히 들어가.”

 

“응, 다음에 봐. 유현아.”

 

 

카페를 나선 후, 세지와 지예는 택시를 타야 하는 유현을 먼저 보내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지예는 문득, 세지의 연애담이 궁금해졌다. 지예는 세지를 안 지 2년이 조금 넘었지만, 직업 특성상 외국에 나가야 할 일이 많아 그런 얘기를 자주 듣지 못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세지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그 사람과, 둘의 이야기가.

 

 

“세지야.”

 

“응?”

 

“너 정하오빠랑 얼마나 만났어? 5년이었나?”

 

“응. 선후배로 2년, 연인으로는 5년, 도합 7년.”

 

“와, 오래 사귀었네.”

 

“응. 그래도 너무 좋아. 보면 볼수록 좋아.”

 

 

지예는 세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항상 이랬다. 정하오빠를 얘기하는 세지의 표정과 목소리는 항상 같았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사랑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설레임 가득한 얼굴. 꿈꾸는 소녀같은 표정.

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누가 먼저 좋아했어?

 

“음, 오빠가 조금 먼저 좋아한 거 같기도 하고... 동시에 좋아하게 된 거 같아. 깨달은 건 좀 뒤였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좋아했어. 몰랐던 거지.”

 

 

 

 

“오빠도 그랬어.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대화를 해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많이 헷갈렸다고. 그런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거든. 아마, 서로 첫눈에 반한 게 아닐까 싶어.”

 

“동화같네. 정말 멋지다. 첫만남, 기억나?”

 

“그럼. 어제 일처럼 생생해. 우리는 캠퍼스 내 카페에서 처음 만났었어.”

 

 

세지는 사르르 눈을 감았다. 그냥 상상해도 얼마든지, 몇 번이고 되새길 수 있었지만,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게 좋아서 눈을 감고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어학연수를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고, 오빠는 막 제대하고 학교에 다시 적응하려는 쑥맥 복학생이었어. 사실 첫만남이 그렇게 동화같진 않았어. 우리는 각자 현실을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오빠는 아메리카노 하나 시키고 창가 자리를 차지하더니 한동안 카페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는 사람이 적은 틈을 타 카페 청소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오빠가 날 부르는 거야. 왜 그러나 했더니, 내가 실수로 떨어진 오빠 모자를 밟고 있더라고."

 

 

세지는 키득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난 너무 놀라서 사과를 했고 오빠는 괜찮다며 사람 좋게 웃었는데, 모자 없이 훤히 드러난 그 짧은 머리카락이 너무 귀여운 거야.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좋아한 거 같아. 그냥 눈치를 못 챘었던 거야.”

 

 

 

 

“그리고 뭐, 그 뒤는 뻔해. 난 마침 강의 시간이 돼서 우선 번호를 주고 나왔지. 그 후로 연락하고, 밥 사겠다고 만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고. 그리고 3년째 되는 해에 오빠가 빗속에서 고백했을 때, 벅차다는 말이 뭔지 알겠더라구. 바로 승낙하고 많이 울었어. 정말 너무 기뻤거든. 정말... 기뻤어.”

 

 

 

 

[이번 역은 ㅇㅇ역, ㅇㅇ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그냥 그럴게 된 거야. 그럼 나 먼저 갈게, 지예야.”

 

“아, 응. 다시 한 번 축하해, 세지야. 결혼식 날 봐.”

 

 

세지는 거듭되는 지예의 축하에 웃어보인 후 지하철에서 내렸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세지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

 

1달 후.

 

한 주택 마당에서 진행된 조촐한 결혼식. 새하얀 원피스를 차려입은 세지와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정하가 작은 단상 앞에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정하는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목까지 붉어져 있었다.

 

 

“아- 두 사람 눈빛이 너무 뜨겁네요. 그럼 뭐, 다 건너뛰고 뽀뽀로 끝냅시다.”

 

“뭐?!!”

 

“ 키스는 너무 야해 보이잖아. 그럼 신랑 신부, 뽀뽀 가겠습니다.”

 

 

짖궂은 사회자의 말에 세지와 정하는 새빨개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이내 세지가 먼저 정하의 앞으로 다가가 까치발을 들고, 그런 세지의 모습에 터질 듯한 얼굴을 한 정하가 조심스레 세지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맞춘다.

 

그 순간 하객으로 온 친구들이 준비한 폭죽이 터지고 노을 아래 반짝이와 꽃가루가 휘날린다. 그 절경 속에서 정하가 세지를 안아들고, 세지는 정하를 붙잡고 까르르, 아이처럼 웃는다. 누가 틀었는지 잔잔한 음악이 깔렸지만 세지의 귀에는 자신의 심장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7년간의 긴 시간을 함께 해준 그대에게,

앞으로의 평생을 함께 해줄 그대에게,

내가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 편지를 바칩니다.

 

윤세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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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의 고백#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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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의 고백

#프롤로그

 

 

 

한 주택의 마당에서 조촐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참여한 하객도 많지 않고 신랑 신부도 기본적인 격식만 차린 예복 차림이었다. 가운데 놓인 작은 단상에서는 젊은 남자가 사회 겸 주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남은 건 마지막 질문 뿐.

 

 

“신랑 한정하 군, 신부 윤세지 양을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질문을 받는 신랑, 정하의 표정은 어딘가 벙쪄 보였지만 곧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당연합니다!!”

 

 

정하의 다소 긴장한 듯한 대답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고, 정하는 멋쩍은 듯 작게 웃었다.

이어서 같은 질문이, 세지에게도 이어졌다.

 

 

“신부 윤세지 양, 신랑 한정하 군을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세지는 정하보다는 차분하게, 하지만 역시 설레임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을 하고는 대답했다.

 

 

“네,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작게 환호성이 들렸다.

이어 세지와 정하는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두 사람 다 볼이 붉어져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사회자는 장난스레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아- 두 사람 눈빛이 너무 뜨겁네요. 그럼 뭐, 다 건너뛰고 뽀뽀로 끝냅시다.”

 

 

“뭐?!!”

 

 

“ 키스는 너무 야해 보이잖아. 그럼 신랑 신부, 뽀뽀 가겠습니다.”

 

 

사회자는 세지와 정하의 당혹스러운 얼굴도 무시한 채, 연신 방글방글 웃으며 ‘뽀뽀’를 외쳐댔다.

 

세지와 정하는 민망함에 부모님들께 시선을 돌렸지만,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후딱 끝내버려.’라며 입모양으로 말을 전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에 한숨을 쉬고 만다.

 

그 반응에 얼굴을 붉히던 세지가 결심을 굳힌 듯, 눈을 감고 까치발을 든다. 정하는 그런 세지의 행동에 목까지 시뻘개지면서도 조심스레 세지의 어깨를 잡고 살짝, 입을 맞춘다.

 

팡- 팡-

 

그들의 입맞춤과 동시에 하객으로 온 친구들이 폭죽을 터뜨렸다. 반짝이 사이사이에 꽃잎도 섞여 떨어지고 있었다.

 

세지와 정하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얼굴을 떼지만 따스하게 노을진 하늘과, 노을과 함께 흩날리는 반짝이와 꽃잎에 이내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찰칵-

 

그들의 벙찐 표정은 그 순간을 노린 한 친구의 카메라에 담겼고, 그 직후 그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로 바뀌었다.

 

 

“야, 축하한다!!!”

 

“너네 정말 잘 어울려, 축하해!!”

 

“나도 결혼하고 싶다, 야!! 보기 좋다!!”

 

“평생 행복해라!!!”

 

“아직도 뽀뽀만 해도 그렇게 좋냐, 잘 살아라!!”

 

 

누가 틀었는지, 타이밍 좋게 마당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음악 사이로 여기저기서 진심이 전해지는 축하의 말들이 들려온다. 정하는 아이처럼 좋아하는 세지를 안아올렸고, 세지는 정하에게 매달려 까르르 웃음지었다.

 

고급 예식장에서 많은 하객을 모시고 진행하는 화려한 결혼식은 아니지만, 세상 어떤 결혼식보다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 자리에, 그들이 있었다.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행복에 가득찬 표정을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