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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10. 운명의 수레바퀴

10. 운명의 수레바퀴

 

타로 카드에서 10이라는 숫자와 함께 표기되는 카드

운명의 수레바퀴. 운명, destiny!

 

사람들은 운명이라는 말에 매혹되면서도 경계하고 희망하며 원망한다.

왜일까? 운명이라서? 피할 수 없어서?

 

숫자 10은 완성된 숫자, 가득 채워진 숫자라고도 한다.

즉 하나의 단계, 하나의 주기가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타로에서 이 10번째 카드가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이다.

 

하나가 끝난 것, 가득 채워진 것

그래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뜻한다.

준비되어있기에 진화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져도 제대로 잡지를 못한다.

설사 잡았다하더라도 제대로 활용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자

잡은 기회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자에게 주어진다.

 

무슨 뜻이냐고?

 

생각지도 못하게 복권에 당첨된 이가 있다.

복권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첨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복권 당첨자가 술과 도박

유흥으로 그 많은 당첨금을 탕진하는 것이다.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만큼의 당첨금을 말이다.

 

그렇기에 운명의 수레바퀴는 양면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기회가 행운이 될지 불행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굴러갈지는

결국 그 주인에게 달린 것이다.

 

즉,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지 타인의 잘못으로 떠넘기지 마라.

그 결과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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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17. The Star

17. The Star

 

등교하기 전 이른 아침, 평소라면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혀 있을 카페가 불이 켜져 있었다. 입구에 라는 작은 명패가 달린 이 카페는 평소에 친구들과 심심풀이 삼아 타로 점을 보러오는 곳이다. 최근에는 시험기간이라서 자주 오지 못했는데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들어가 볼까?’

 

그렇지 않아도 시험이 끝나면 와볼까 싶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는 게 아닌 나 혼자서.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살짝 열리고 낯선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카페에서 주로 타로 점을 봐주는 언니도 아니었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해주는 오빠도 아니었다.

 

“들어올래?”

 

“네? 저요?”

 

얼떨결에 되묻는 나를 보며 그는 싱긋- 웃었다. 귀공자 같은 외모에 그런 살인적인 미소라니, 뺨이 화끈거린다. 이건 반칙이다. 그러면서도 발은 내 대답을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카페로 향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와 그를 따라서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최현, 여기 오너야.”

 

“아, 네. 네?”

 

엉겁결에 대답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은 미남이 카페 사장이라니, 소문으로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해야겠다. 그는 조용히 미소하며 카드를 골고루 섞었다.

 

* 점을 보기 전 카드를 골고루 섞는 걸 Shuffle이라고 한다.

 

‘언니는 주면서 직접 섞으라고 하던데. 조금 다르네.’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들었지만, 조금 의외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일렬로 쭉- 펼쳐놓고 말했다.

 

“딱 3장만 골라봐.”

 

“음-.”

 

나는 테이블 위에 일렬로 펼쳐져 있는 78장의 카드를 노려보았다. 마치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3장의 카드를 골라서 빈자리로 빼내었다. 그는 아직 뒷장을 보이고 있는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좌우는 상관없지만, 상하는 신중하게 정해서 뒤집어봐.”

 

가장 왼쪽에 있는 카드를 집어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드러난 카드는 [01. 마법사] 정방향이다. 다음은 위에서 아래로, 마지막 카드는 다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각각 [17. 별]과 [13. 죽음] 모두 정방향이었다. 마지막에 나온 카드에 시선을 고정하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저 카드가 모두 나쁜 건 아니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찝찝했다. 해골이 그려진 우중충한 그림이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거 같다. 눈동자를 굴려 힐긋 바라보았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며 그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을 속에 숨겨두고 있구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 알았을까? 부모님에게도 친오빠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속에만 숨겨두고 있었다. 놀란 내 눈을 보며 그는 마법사 카드를 가리켰다.

 

“마법사의 카드는 지식이나 지혜와 관련이 있지만, 속임수를 쓴다는 점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도 나오지. 반면, 지금은 또 다른 의미로 숨겨진, 잠재된 능력을 뜻하기도 해.”

 

“잠재된 능력이요?”

 

그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별이 반짝이고 있는 카드를 짚었다.

 

“네가 희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곱고 남자다운 손가락이 짚은 카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고 싶은 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성적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고 우선이다. 그 이유를 알고 있고 납득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겁나니?”

 

그림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얘기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친구들은,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지,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마법사 카드로 옮겨갔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의 말에 울적한 말이 조금 가라앉아 눈을 들어 작게 되물었다.

 

“정말요?”

 

“그럼. 다만...”

 

그는 가장 마지막, 해골이 그려진 카드를 짚었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성장하려면 이 고비를 반드시 넘겨야 해.”

 

“어떻게요?”

 

그는 팔을 테이블에 올려서 기대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상냥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숨기지 말고 알려야지. 설령 누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며 설득해야 해.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워나가야겠지.”

 

“꼭, 알려야 돼요?”

 

나를 마주한 미소가 한층 더 부드러워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배우기 위해서라도 알릴 필요가 있어. 너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나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

 

카드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보았다. 잿빛 머리의 노련해 보이는 마법사와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과 깃발과 방패를 든 해골, 필요한 건 용기와 노력과 배움이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렸다. 울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할 수 있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냐. 얼른 가 봐.”

 

그는 유리창 밖을 눈짓했다. 낯익은 여고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와 달려갔다.

 

“얘들아! 같이 가!”

 

“어? 너 왜 저기서 나와?”

 

“아침부터 커피 마셨어?”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 앞으로 내 운을 봤어.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씩- 웃으며 내가 꺼낸 말에 등굣길 내내 놀라기도 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은 금세 이런저런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나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은 달랐다. 현재 고3, 수능을 앞 둔 수험생이 갑자기 진로를 바꾼 것에 선생님은 크게 걱정하셨다. 심지어 엄마는 화를 내기도 하셨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왜 탄탄한 진로를 두고 그런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 거냐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된통 꾸지람도 들었다.

 

그럴 때면 힘이 되어주는 건 친구들이었다. 부모님도 언젠가는 이해하실 거라고,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마다 용기를 내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내 끈질긴 설득에 먼저 마음을 움직여주신 건 선생님이셨다.

 

“현재 네가 원하는 학과로 안전하게 지망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

 

선생님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길을 택할 수 있게 안내를 해주셨고,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걸 눈치 챈 오빠와 아빠가 엄마를 설득해주셨다. 덕분에 마지못해 내 선택을 인정해주셨지만, 시간이 지나서 수능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도 받으며 열심인 모습에 엄마도 천천히 나를 인정해주셨다.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대 중반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리를 잡고, 인정도 받으며 소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날 아침의 일이 떠오른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날 이후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할 때까지, 다시 보지 못했다. 소문은 여전히 무성하게 나 있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며 창문 너머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만, 확실하게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에도 미소만은 뚜렷하다는 느낌에 쿡- 하고 작게 웃었다. 동쪽 하늘에 새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 태양을 마주보며 눈이 다 감길 만큼 미소했다.

 

오늘 하루도 시작이다. 반짝이며 빛나는 꿈을 위해 달려갈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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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엄마의 보리

 

 

 

 

    엄마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물론 나 또한 내가 그녀의 운명 또는 운의 방향을 정확히 짚어 주었고, 그래서 그것을 꼭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 슬며시 카드를 꺼내 놓은 이유는 오랜만에 본 그녀의 얼굴에서 슬픈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된 아들이 엄마에게 대놓고 고민이 있는지 물어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니, 꼭 서른이 아니더라도 그런 말은 정말 하기 힘들다. 자식은, 특히 아들은 그렇다. 엄마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둘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편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영 모른 체 할 수는 없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상자 안에서 카드를 꺼냈던 것이다. 카드만큼 누군가가 내게 고민을 털어 놓기를 껄끄럽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근데 아들, 이거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사실 큰 수확은 없었다. 아들에게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듯, 엄마에게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나 보다. 엄마는 카드점을 보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멀뚱멀뚱, 자신의 손으로 뽑은 카드에 그려진 그림만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의미 풀이가 모두 끝난 후에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그림이 다 똑같아 보여."였다.
 

  무엇이 잘 안 맞는다는 걸까. 나는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에게 의미를 바꾸어 말한 카드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점괘의 기반을 나타내는 세 번째 카드였다. 엄마는 무지개 속에서 10개의 컵들이 나타나는, Ten of Cups 카드를 뽑았다. 무지개 아래로 펼쳐진 평원에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그들 주변에는 춤추는 어린아이들이 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 카드는 실제로도 평온함과 만족스러움을 뜻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 카드를 역방향으로 뽑았다. 뚫어져라 그림을 살피던 엄마는 카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아마도 카드의 방향이 바뀌면 의미도 바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리라. 만약 그 사실을 알고 카드를 돌렸더라도, 나는 엄마의 행동을 제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엄마가 앉아 있던 자리는 이미 식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온기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엄마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주던 그 무언가가 사라진 게 분명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생활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번에도 그만큼 가져갈 거지?"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커다란 원통 용기 안에 보리알을 쏟아 부으며. 나는 슬쩍 카드를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재미있니?"
 

  그녀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처음이어서,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을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채 그만 두고 타로 점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로도, 엄마는 내게 한결같았다. 나를 죽일 놈 취급하지도, 철이 없다고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그 전까지는 별다른 사고 없이 자란 괜찮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온전히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를 이해한 그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자식이 자기 자신에 대한 부모의 애정도를 확인하는 방법은 딱 하나, ‘간섭’이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간섭에 대해서는 치를 떨지만, 막상 간섭의 대상이 되지 않는 날이 오면 가슴에 드리우는 서운함의 그을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다.


  "난 줄곧 그런 생각을 했어. 혹시 네가 어렸을 때 본 그 무당 때문이 아닌지…."
  "엄마, 내가 하는 일은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그래, 말하자면 상담 같은 거예요. 나는 지쳐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는 것뿐이에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방에 놓을 에어컨을 장만하기 위해 처음 타로카드 이벤트를 기획했을 때,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학 축제 이틀 전 대자보를 붙이던 내게 말을 건넨 H를 축제 첫 날 좌판에서 고객으로 다시 만났을 때도, 나는 그저 사흘 동안 그 돈을 벌 수 있을 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마 세 달 뒤 이루어진 H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그녀가 내게 타로카드 동호회 가입을 권유했을 때에도, 그 다음 해 본격적으로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해보자고 결심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나를 찾는 고객이 처음 다섯 명에서 스무 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어느 날,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약한 뿌리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뿌리는 일부러 물이나 거름을 주지 않아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나는 점점 더 깊어지는 뿌리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신념이나 좌우명이 적힐 자리를 빈 칸으로 놓아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가끔 꿈을 꿔. 네가 기절하는 모습을 보면,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온 몸에 돋은 소름이 가시질 않아."


  나는 작은 내 몸에 소금이 마구 뿌려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커다란 대접에 가득 담긴 소금은 여간해서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적이 흐른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춘 것 같다. 그들의 얼굴이 점점 잿빛으로 변해간다. 반면에 나는…. 목울대가 뜨겁고 아랫도리가 묵직해진다. 손끝으로 턱을 쓸어보니 까끌까끌한 것이 만져진다. 이제 무당은 나보다 머리 하나 쯤은 작다. 하지만 새하얀 얼굴은 여전히 무서워서, 나는 그녀가 던지는 소금을 맞고 서 있다.


  "자, 평소보다 조금 넉넉히 넣었어."


  멍하니 보리로 가득 채워진 병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엄마는 정성들여 공수한 보리로 내게 남아 있을 무언가를 깨끗이 씻어주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소금인지, 아니면 악한 기운인지는 알 수 없다.

 

 

 

 

※ 예전에 썼던 <흙과 소금>이라는 제목의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진 '서른들'이 참 많아서, 적어놓고 싶은 글도 참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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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愛

06. The Lovers

 

06. The Lovers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예?”

 

지금 내 앞에서 생글거리는 얼굴로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하는 여자는 이 타로 카페 의 점원이다. 가끔 재미 삼아 여자친구와 몇 번 들린 적이 있는 카페인데. 최근 연애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 나에게 점괘는 알려주지 않고 갑자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구속’ 또는 ‘속박’ 이라고 하죠. 붙잡고 싶고 붙잡히고 싶은 그런 인간의 마음이 표현된 단어죠.”

 

“그야 사랑하면 함께 있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예. 맞아요.”

 

내 대답에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여자를 향해 난 조금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지금 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심정이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느긋한 얼굴로 말했다.

 

“사랑하기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그야...”

 

당연한 게 아니냐는 말을 하려던 난 말을 흐리며 새삼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여자는 조금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한 말을 자연스레 풀어놓았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다툴 이유도 헤어질 이유도 없겠죠.”

 

“예. 그렇죠.”

 

여자의 말에 난 마지못해 조금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말 그대로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다툴 일도, 질투할 일도, 불안해할 일도 없으니 헤어질 이유도 없을 거라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랑하기에 함께 하고 싶고 같이 하고 싶고 나만 봐주었으면 싶은. 그런 마음이 상대를 구속하게 되고 속박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잖습니까.”

 

“예. 당연한 거예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여자의 태도에 난 대체 내가 왜 이런 말장난을 하고 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점괘가 어찌 나왔든 그냥 나갈까 싶은 생각으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여자는 마치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라는 듯이 가늘게 뜬 눈으로 웃으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당연하기에 당연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죠.”

 

“그건 또 무슨 궤변입니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변화하게 되죠. 어느 한쪽만의 변화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상당히 역동적인 변화죠. 흔히 ‘서로 닮아간다.’라고 하지만. 글쎄요. 정말 닮아가는 걸까요?”

 

‘구속’과 ‘속박’을 말하더니 이제는 ‘변화’라고 하는 여자의 말에 난 도대체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에 여자는 크고 동그란 눈이 반달이 될 정도로 생긋- 웃더니 말했다.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속박’을 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거죠.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으로 만드는 거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변화된 모습’ 속에 나에게 익숙한 모습을 바라는 마음이 투영되어 서로 닮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기며 여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는 듯이 맞받아쳤다.

 

“그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심지어 짝사랑도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게 짝사랑입니다. 설마 그저 바라만 보는 그런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내 말에 여자는 그런 뜻이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는 이내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 중 ‘06. The Lovers - 연인’ 카드를 검지로 짚으며 말했다.

 

“사랑과 연인의 뜻하는 이 카드는 그저 단순한 사랑이 아닌 ‘조화’와 ‘화합’을 나타내기도 해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 서로 조화를 이루고 화합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하죠.”

 

여자의 손끝에 놓인 ‘06. The Lovers - 연인’ 카드를 바라보며 나는 그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기다리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연인들은 크고 작은 다툼으로 서로의 다른 점을 파악하고 그걸 고쳐나가는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게 되죠. 마지 두 개의 서로 다른 돌멩이가 서로 부딪히며 둥글게 깎여 나가듯이 말이에요.”

 

“하지만 서로 다투지 않는 연인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 경우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 고칠 점을 찾는 상당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조화를 만들어가는 경우죠. 하지만 그 결과는 다르지 않죠.”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결과 말입니까?”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난 다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변하지 않으면 조화를 이룰 수가 없잖습니까.”

 

“서로가 변하지 않은 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그건 어떤 의미로는 진정한 천생연분이겠죠. 마치 처음부터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톱니바퀴 같은 그런 인연이니까요.”

 

“그런 천생연분은 평생 못 찾을 가능성이 더 높죠.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은근히 불평 섞인 내말에 여자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런 여자의 태연자약한 태도에 난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때로는 변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죠. 변하지도 않고 변화를 요구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말하려던 나는 이내 말문이 막혔다. 바로 그런 사람이 지금의 내 연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무언가 변화할 것을 요구한 적이 없으며 나로 인해 변화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 난 테이블 위에 펼쳐진 내 점괘를 외면하며 불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서 헤어지라는 겁니까? 변화하지 않으니 조화를 이룰 수 없고 인연이 아니라는 말이군요.”

 

“사랑하지 않으세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오는 여자의 말에 난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 이러고 앉아서 지금 설교 아닌 설교를 듣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냔 말이다.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만 봐주었으면 좋겠고,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날 사랑해주었으면 싶고, 분명 옆에 있는데도 언제든지 떠나버릴 것 같은 모습에 불안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날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내 옆에서 날 보며 웃다가도 가끔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난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런 내 귓가에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구속’이라고 했죠. ‘연인’ 카드의 역방향의 의미는 잘못된 관계, 지나친 애정, 혹은 뒤틀린 애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 말에 난 눈을 떠 테이블 위에 놓인 ‘연인’카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정방향’이었다. 안도하는 심정이 담긴 내 시선에 여자는 살풋- 웃었고 그 기척에 난 조금 멋쩍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간절하게 원하기에 변질되기도 쉬운 마음이 바로 ‘사랑’인거죠. 사랑하기에 ‘구속’하고 ‘집착’하고 ‘변화’를 바라게 되는 거죠.”

 

“그 말은 다른 것들보다 사랑이 먼저라는 말입니까?”

 

내 말에 여자는 그렇다는 듯이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내 반응에도 여자는 전혀 지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기분 나쁘지도 않은 듯이 상냥한 미소로 말했다.

 

“맞아요. ‘구속’하고 싶은 마음도 ‘변화’를 요구하게 되는 마음도 ‘사랑’이라는 마음에 뒤따라오죠. 사랑하지 않는다면 ‘구속’하지도 않을 테고 ‘변화’를 요구하지도 않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이죠.”

 

“대부분의?”

 

무언가 조금 묘한 어감에 난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여자의 말을 되뇌듯이 중얼거렸고 여자는 이제 거의 끝나간다는 듯이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아주 당당히 ‘구속’과 ‘변화’를 요구하죠. 나를 사랑한다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듯이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그저 ‘사랑’만을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까? 바로 ‘그녀’처럼?”

 

뭔가 알 것 같다는 듯이 되묻는 내 모습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구속’도 ‘변화’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싫었다면 진즉에 날 떠났을 것이다. 싫어하는 것을 감추지 못할 만큼 솔직한 성격이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그녀는 적어도 날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여자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두 번째로 내게 묻는 여자의 질문에 난 그제야 속 시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날 사랑한다면 말이죠.”

 

내 대답에 여자도 나와 똑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내 곁에 있어준 그녀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면 나 또한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 마음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런 확신에 상쾌한 기분으로 카페를 나온 나는 전화를 걸었다. 어쩐지 그녀가 가끔씩 그런 표정을 지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뚜~~~ 달칵.

 

> 응.

 

“우리 여행갈까? 재작년 휴가 때 다녀오고 못 간 거 같은데.”

 

“정말? 그래도 돼?”

 

내 말에 그녀는 정말 반가운 기색으로 되물었다. 전화기 너머의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이 갈 정도로 좋아하는 목소리에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내내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한 건 생각도 못하고 엉뚱한 생각만 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새삼 그녀가 나에게 어떤 사랑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응.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까. 어디 가고 싶은 곳은 있어?”

 

내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들뜬 목소리로 고민하듯이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그 소녀 같은 목소리에 난 마냥 웃으며 사무실까지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사무실까지 걷는 내내 마치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통화를 하며 올려다본 하늘은 내 마음 마냥 눈부시도록 새파란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