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문득, 거닐다

평생을 기다린 커피 한 잔

 

까페에서 책을 읽다가 한 일흔쯤 되신 할머니께서 내 앞에 오셨다. 

 

"저기, 옆에 앉아도 될까?"

"아, 네 물론이죠~"

 

그리고는 서로 각자 일을 했다. 

난 마저 책을 읽고, 할머니는 자신의 빵과 커피를 드시고.

 

할머니께서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 30분쯤 후, 할머니께서 일어나시길래 조심히 가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제서야 할머니를 제대로 볼수 있었는데 옷도 곱고, 예쁘게 꾸미신 모습이었다.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이,

 

"실은 말여, 생전 처음 이렇게 혼자 와서 커피를 마셔보는겨. 

 

평생 세 딸들을 키웠고, 또 지금까지도 나이 많이 드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어라."

 

요즘 몸이 아파 병원엘 갔더니 

의사 선생님 왈,

 

"한 평생 그렇게 누군가의 뒷바라지만 하시니 그런게 아니겠어요? 

혼자 좋은데 가서 커피도 한잔 마셔보세요."

 

그래서 용기내어 오셨다고. 

 

혼자 앉아있긴 좀 쑥스러워

조심스레 내 옆자리를 물어 앉으신거다. 

 

할머니는 잠깐의 이 시간동안 어떠셨을까. 

 

어쩌면 평생에 걸쳐 이렇게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한 평생 남을 위해 살아오신,

하지만 이제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위해 용기를 내신 할머님의 뒷모습은

 

내 안의 무언가를 울컥이게 하더라.

글 이어보기

짧은 글 모음집:雜

악마의 유혹

악마의 유혹

 

사각사각, 타닥타닥, 새하얀 백지를 채우며 충혈 된 눈을 부릅뜨며 버텨본다.

 

‘안 돼, 더 이상은 안 돼, 참아야 하느니라!’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자판을 두들긴다. 그러다 어김없이 몇 줄을 넘기지 못하고 막히는 통에 애꿎은 책상을 두들긴다. 톡톡- 토독, 나도 모르게 리듬감이 실리는 소리에 불안한 마음이 드러나고 만다. 그와 동시에 아주 간절하게 생각난다.

 

“한 잔만 더 마실까...?”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책상 한편을 바라본다. 텅텅 비어있는 컵에서는 아직도 달콤한 향이 피어오른다. 코끝을 스치는 그 향기에 결국 참지 못하고 컵을 손에 들고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한잔만, 딱 한잔만...”

 

작은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다. 물을 데우는 동안 믹스커피를 하나 꺼내어 뜯고 컵에 쏟아 넣는다. 자잘한 소리를 내며 커피 알갱이와 새하얀 프림, 설탕이 사르륵 흘러나와 컵 바닥을 가린다.

 

“하아- 향 좋다.”

 

쌉쌀하고 달콤한 이 향기, 물이 끓고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주전자 주둥이를 컵 안으로 기울이며 따뜻한 물을 채운다. 향이 더욱 진해지고 달콤한 유혹이 잔을 채우는 걸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누나, 벌써 몇 잔째야?”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뜨끔해서 주전자를 내려놓고 살포시 고개를 돌렸다.

 

“한잔만...딱 한잔만 더 마실게. 응?”

 

“1시간 전에도 그렇게 말했으면서, 안 돼!”

 

“헹!”

 

양손으로 컵을 쥐고서 종종걸음으로 잽싸게 방으로 도망치자, 못마땅하다는 듯이 뒤따라온다.

 

“누나- 줄이기로 했잖아?”

 

“줄였어. 줄였다고, 어제 보다 한잔 덜 마셨다니까.”

 

의자에 앉아 따끈한 커피를 홀짝거리며 올려다보았다. 차마 빼앗지는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내 앞에 구부리고 앉아서 또 잔소리를 한다. 하루에 4잔 이상은 금지라고,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 넘기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 따악- 꿀밤이 날아온다. 하지만 어쩌라고, 이 악마적인 유혹은 도무지 뿌리칠 수가 없는 걸...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한 잔의 커피만 있으면 시작될 수 있었던 우리의 관계들

늘 가는 카페가 있었다.

집 근처에서 어떤 음식을 먹던 후식으로는 그 카페에 들러 음료를 마셨다. 왜 그곳에서만 먹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음료가 맛있었고, 카페 언니가 친절했으며, 나의 유형이 C형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사람들을 크게 A형, B형, C형으로 구분 지었다. 

A형은 트렌드 세터로, 새로운 기기나 유행하는 옷들을 먼저 구입하고 사용하는 사람들로 원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B형은 유행을 따라가지만 이것저것 가격을 비교해 보고 가장 적절한 때에 적당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유행을 따르는 타입이다. 

 

마지막으로 C형은 늘 같은 곳, 같은 음식을 추구하며 한 번 마음에 들면 왠만에서는 잘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는 유형 C형이다.

 

늘 그 카페에 갔고, 늘 같은 음료를 마셨고, 자리가 허락된다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 카페에는 고등학교 친구와 방문한 적도 있고, 대학 선배와 들렀던 적도 있으며, 남동생을 데리고 갔고, 전전 남자 친구와도 갔었고, 회사 동료랑도 가고, 최근 남자친구랑도 갔으며, 집에 놀러 왔던 친구들을 끌고 갔던 적도 있고, 혼자서도 잘 들렀다. 매일 그 카페 앞을 지나갔고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방문할 정도로 그 곳을 애정 했다.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 카페에서는 늘 청포도 주스 아니면 자몽주스를 마셨다. 매번 갈 때마다 청포도와 자몽 사이에서 고민을 했지만 보통 대부분 청포도를 마셨다.

 

청포도 주스에 물을 섞지 않고 달달구리한 시럽을 조금 넣어 만든 주스는 걸쭉하게 갈려진 포도를 목에서 넘길 때 참 좋았다. 상큼한 맛과 향이 입안으로 들어올 땐 내 기분 또한 상콤해졌다. 

 

날카롭고 예민한 내가 그 카페에서 좋은 기분으로 좋은 음료와 좋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여낙낙해졌다.

 

그래서 그곳을 사랑했고, 내 앞에 앉은 이들과의 수다를 사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카페가 사라졌다. 단골이었던 나도 카페가 사라지는 날 딱 하루 전에 그 소식을 들었다. 카페 언니도 갑작스럽게 건물주로 인해 문을 닫는다고 했다. 다른 곳 오픈을 하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연락처를 남겼다. 그렇게 다음날 카페가 없어졌다. 

 

 

카페가 있을 땐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지인들을 불러 그 곳에 갔었다. 하지만 그렇게 카페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이상하게도 오롯이 누군가와 공유 되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졌다. 

 

아무도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살다보면 그런 날이 온다. 일상에 지치고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일과 사람에 힘들고 지칠 때. 

 

2년간 내 삶에 스며들었던 집 근처 카페가 사라질 때처럼, 한순간에 먼지 처럼 사라지고 싶은 그런 날이 온다.

 

"그냥 모른 척 지나쳐 주세요" 그렇게 원하다가도 "나 좀 바라봐 주세요, 나 이렇게 힘들어요" 하는 양쪽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빙빙 도는 안부 전하고, 별 영양가 없는 수다 떨고 집에 돌아오면 기가 빨리고 피곤하기만 한 만남.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게 에너지 소모처럼 느껴지고, 예전 만큼 재미도 없고. 그러니 외로우면서도 점점 사람을 피하게 되는. 

 

카페가 사리지고 난 뒤부터 나에게 생긴 병이자면 병이었다.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말도 하지 않았더니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나에게 모든 이와의 관계가 조금씩 흐려졌다. 친한 친구들, 사랑하는 남자, 가까웠던 회사동료, 나를 챙겨주는 모든 이들에게서 나는 흐릿해졌다. 

 

현재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음에도. 

한순간에 카페가 없어진 것처럼 내 사람이라고 생각 되는 모든 이들에게서 내 존재가 사라질까 두렵다.

 

 

그 자리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 

아직 누군가와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곳에서의 커피 한잔은 좋은 사람들과 수다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다시 수다가 그리워 지는 지금, 나에게는 보석같은 커피 한잔이 필요하다. 

글 이어보기

짧은 글 모음집:愛

나쁜놈, 못된놈

 

나쁜 놈, 못된 놈

 

오전 9시. 노트북과 핸드폰, 열쇠를 챙겨들고 방을 나섰다. 문을 잠그고 가벼운 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바로 아래층의 302호 문 앞이다. 언제나처럼 익숙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 띵동.

 

문이 열리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부스스한 머리에 잠이 덜 깬 얼굴, 어제도 뒤척이다가 늦게 잠든 게 분명했다.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하품까지 한다. 그 모습이 어린아이 마냥 귀엽다.

 

“어제도 늦게 잤어?”

 

“응. 나 씻고 나올게.”

 

당신은 졸린 얼굴로 눈까지 부비며 그대로 화장실로 향한다. 난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폰을 내려놓았다.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주스를 꺼내서 컵에 따랐다. 그리고 작은 주전자에 물을 받아 물을 끓인다. 씻고 나오면 분명히 커피부터 찾을 테니 말이다.

 

‘얼마나 됐더라.’

 

반년 가까이 된 거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씻고 간단하게 챙겨서 이곳으로 내려온다. 그럼 당신은 여전히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날 반겨준다. 당신이 씻는 동안 나는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하고, 부글부글- 물이 끓는다. 빈 컵에 작은 아메리카노 스틱을 뜯어서 넣고 불을 끈 뒤 물을 부었다.

 

“향은 좋아.”

 

하지만 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컵의 절반 정도를 채운 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컵에 넣었다. 컵이 가득 찰만큼, 한 10개는 넣은 거 같다. 얼음이 컵에 부딪히며 짤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 와중에도 입매는 나도 모르게 싱긋거리고 있다. 매일 반복되고 있는 이 일상이 싫지가 않다.

 

테이블 위에 간단한 아침식사를 차려놓으니, 그 앞에 앉은 당신이 말간 얼굴로 생글거리며 웃는다. 입안에 고소하게 구운 빵을 한입 우물거리며 종알거린다.

 

“아침 잠 방해받는 건 별로지만, 그래도 네가 아침 차려주는 건 좋네.”

 

“아침에 방해받기 싫으면 일찍 일어나. 침대에서 폰 만지작거리며 늦게 자지 말고.”

 

“시이-러!”

 

그리고는 히죽- 웃는다. 꼭 말괄량이 동생 같다. 간간이 이야기를 나누며, 농담도 하고, 평소와 같은 아침식사가 끝나면,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펴고 서로 마주 앉는다. 약간은 즐겁게 모니터를 바라보는 당신은 아마도 웹툰을 보고 있는 걸 테다. 살풋- 웃음을 지어내고 어제 저장해둔 리포트를 열었다.

 

한참 자료를 찾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중에 익숙한 자판소리가 들렸다. 눈을 힐끗 돌려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의 어린아이 같던 모습은 없다. 당신의 눈은 모니터를 응시한 채 차분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은 빨라졌다, 느려졌다, 간혹 멈추기도 한다.

 

‘옆에서 불러도 모르겠네.’

 

빤히 쳐다보아도 모를 것이다. 아니. 이미 빤히 쳐다보고 있지만, 전혀 모르는 눈치다. 평소에는 그렇게 소녀 같은 당신이 일에 집중하는 그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실감하게 되는 그 거리감에, 시간의 차이에 가슴이 저려온다.

 

그래. 그런 걸 테다. 나에게 예뻐 보여야 할 이유도, 내가 남자로 보일 이유도 없기에, 언제나 그렇게 부스스한 차림으로 아무런 경계도 없이 문을 열어주는 거겠지. 그게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매번 이렇게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기가 힘들다.

 

문득 내 시선이 느껴진 걸까? 시선을 돌려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아무것도 아냐. 아. 누나 얼음 더 줄까?”

 

“응!”

 

컵 두 개를 들고 일어나 싱크대에 놓고, 냉장고를 열어 주스와 얼음을 꺼냈다. 등 뒤에서는 다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자리에 앉으며 얼음이 가득 담긴 컵을 건네주니, 양손을 뻗어서 생글거리며 받는다. 컵을 잡아든 그 손이 참 작고 희다.

 

“고마워.”

 

차가운 얼음 하나를 입에 물고, 다시 모니터를 향하는 당신의 표정이 바뀐다. 태연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으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여태 내가 본 당신의 표정은 웃거나, 졸리거나, 일할 때의 표정 말고는 없다.

 

‘울거나 화내는 건 못 봤어.’

 

내 시선은 모니터 속의 자료에 가있지만, 머릿속의 뇌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신도 울까?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할까? 죽을 만큼 울기도 할까?

 

당신도 화를 낼까?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낼까? 미친 듯이 화를 내기도 할까?

 

왜 갑자기 그런 당신의 모습이 궁금하지? 왜 그런 당신의 모습이 보고 싶지?

 

울며, 화내며, 감정이 무너져 내린 당신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당신이 갖고 싶다.

 

나 정말 나쁜 놈이다. 나 정말 못된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