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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인사

인사, 때로는 용기가 필요한 것

 

퇴근시간, 막 도착한 버스는 만원이다. 차례차례 카드를 찍고 타는 사람들에게 운전기사님이 직접 인사를 건넨다. 항상 나오는 음성이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기계가 고장이 난 모양이다. 꾸역꾸역 밀려 타며 겨우 자리를 잡고 손잡이를 잡았다.

 

피곤함에 늘어져서 2정거장 정도 지났을 무렵, 내리는 손님에게 건네는 아저씨의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말에 메아리가 돌아온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앳된 여학생의 목소리가 답한다. 순간 드는 어라? 싶은 심정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 지나는 정거장마다 기사님은 여전히 인사를 하시고, 타시는 분들 중에도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받으신다. 덩달아 뒷문에서도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등의 인사가 들려온다.

 

무언가 뭉클했다.

 

내려야할 정거장이 다가오고 뒷문으로 다가가며 생각했다. 나도 인사해야겠다고, 뒤이어 버스가 멈추고 막상 쑥스러워지는 기분에 겨우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입 밖으로 꺼내었다. 문이 열리고 내리면서 뭔가 수줍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누군가 먼저 하기 전에는 아무도 하지 않던 인사를 단 한사람이 먼저 했을 뿐인데 다들 자연스레 인사하는 모습이, 더불어 인사를 받으면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하는 것임에도 기사님이 하신 인사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고 타던 모습이 같이 떠올랐다.

 

누군가 먼저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하지 않았을까?

 

버스 기사님이 건네는 인사를 왜 당연하게 생각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며 새삼 처음으로 기사님의 인사에 같이 인사하고 내린 그 여학생이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하지 않을 때에 먼저 할 수 있는 용기, 그게 비록 한마디의 인사일지라도...

 

어쩌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이런 인사 한마디가 누군가에는 큰 힘이 될 수도 있고, 의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치 혀가 칼이 되기도 하고,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은 인사 한마디가 사막에서 일어난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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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운명의 수레바퀴

10. 운명의 수레바퀴

 

타로 카드에서 10이라는 숫자와 함께 표기되는 카드

운명의 수레바퀴. 운명, destiny!

 

사람들은 운명이라는 말에 매혹되면서도 경계하고 희망하며 원망한다.

왜일까? 운명이라서? 피할 수 없어서?

 

숫자 10은 완성된 숫자, 가득 채워진 숫자라고도 한다.

즉 하나의 단계, 하나의 주기가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타로에서 이 10번째 카드가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이다.

 

하나가 끝난 것, 가득 채워진 것

그래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뜻한다.

준비되어있기에 진화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져도 제대로 잡지를 못한다.

설사 잡았다하더라도 제대로 활용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자

잡은 기회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자에게 주어진다.

 

무슨 뜻이냐고?

 

생각지도 못하게 복권에 당첨된 이가 있다.

복권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첨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복권 당첨자가 술과 도박

유흥으로 그 많은 당첨금을 탕진하는 것이다.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만큼의 당첨금을 말이다.

 

그렇기에 운명의 수레바퀴는 양면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기회가 행운이 될지 불행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디로 굴러갈지는

결국 그 주인에게 달린 것이다.

 

즉,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지 타인의 잘못으로 떠넘기지 마라.

그 결과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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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The Star

17. The Star

 

등교하기 전 이른 아침, 평소라면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혀 있을 카페가 불이 켜져 있었다. 입구에 라는 작은 명패가 달린 이 카페는 평소에 친구들과 심심풀이 삼아 타로 점을 보러오는 곳이다. 최근에는 시험기간이라서 자주 오지 못했는데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들어가 볼까?’

 

그렇지 않아도 시험이 끝나면 와볼까 싶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는 게 아닌 나 혼자서.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살짝 열리고 낯선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카페에서 주로 타로 점을 봐주는 언니도 아니었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해주는 오빠도 아니었다.

 

“들어올래?”

 

“네? 저요?”

 

얼떨결에 되묻는 나를 보며 그는 싱긋- 웃었다. 귀공자 같은 외모에 그런 살인적인 미소라니, 뺨이 화끈거린다. 이건 반칙이다. 그러면서도 발은 내 대답을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카페로 향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와 그를 따라서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최현, 여기 오너야.”

 

“아, 네. 네?”

 

엉겁결에 대답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은 미남이 카페 사장이라니, 소문으로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해야겠다. 그는 조용히 미소하며 카드를 골고루 섞었다.

 

* 점을 보기 전 카드를 골고루 섞는 걸 Shuffle이라고 한다.

 

‘언니는 주면서 직접 섞으라고 하던데. 조금 다르네.’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들었지만, 조금 의외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일렬로 쭉- 펼쳐놓고 말했다.

 

“딱 3장만 골라봐.”

 

“음-.”

 

나는 테이블 위에 일렬로 펼쳐져 있는 78장의 카드를 노려보았다. 마치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3장의 카드를 골라서 빈자리로 빼내었다. 그는 아직 뒷장을 보이고 있는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좌우는 상관없지만, 상하는 신중하게 정해서 뒤집어봐.”

 

가장 왼쪽에 있는 카드를 집어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드러난 카드는 [01. 마법사] 정방향이다. 다음은 위에서 아래로, 마지막 카드는 다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각각 [17. 별]과 [13. 죽음] 모두 정방향이었다. 마지막에 나온 카드에 시선을 고정하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저 카드가 모두 나쁜 건 아니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찝찝했다. 해골이 그려진 우중충한 그림이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거 같다. 눈동자를 굴려 힐긋 바라보았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며 그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을 속에 숨겨두고 있구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 알았을까? 부모님에게도 친오빠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속에만 숨겨두고 있었다. 놀란 내 눈을 보며 그는 마법사 카드를 가리켰다.

 

“마법사의 카드는 지식이나 지혜와 관련이 있지만, 속임수를 쓴다는 점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도 나오지. 반면, 지금은 또 다른 의미로 숨겨진, 잠재된 능력을 뜻하기도 해.”

 

“잠재된 능력이요?”

 

그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별이 반짝이고 있는 카드를 짚었다.

 

“네가 희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곱고 남자다운 손가락이 짚은 카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고 싶은 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성적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고 우선이다. 그 이유를 알고 있고 납득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겁나니?”

 

그림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얘기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친구들은,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지,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마법사 카드로 옮겨갔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의 말에 울적한 말이 조금 가라앉아 눈을 들어 작게 되물었다.

 

“정말요?”

 

“그럼. 다만...”

 

그는 가장 마지막, 해골이 그려진 카드를 짚었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성장하려면 이 고비를 반드시 넘겨야 해.”

 

“어떻게요?”

 

그는 팔을 테이블에 올려서 기대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상냥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숨기지 말고 알려야지. 설령 누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며 설득해야 해.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워나가야겠지.”

 

“꼭, 알려야 돼요?”

 

나를 마주한 미소가 한층 더 부드러워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배우기 위해서라도 알릴 필요가 있어. 너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나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

 

카드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보았다. 잿빛 머리의 노련해 보이는 마법사와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과 깃발과 방패를 든 해골, 필요한 건 용기와 노력과 배움이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렸다. 울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할 수 있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냐. 얼른 가 봐.”

 

그는 유리창 밖을 눈짓했다. 낯익은 여고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와 달려갔다.

 

“얘들아! 같이 가!”

 

“어? 너 왜 저기서 나와?”

 

“아침부터 커피 마셨어?”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 앞으로 내 운을 봤어.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씩- 웃으며 내가 꺼낸 말에 등굣길 내내 놀라기도 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은 금세 이런저런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나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은 달랐다. 현재 고3, 수능을 앞 둔 수험생이 갑자기 진로를 바꾼 것에 선생님은 크게 걱정하셨다. 심지어 엄마는 화를 내기도 하셨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왜 탄탄한 진로를 두고 그런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 거냐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된통 꾸지람도 들었다.

 

그럴 때면 힘이 되어주는 건 친구들이었다. 부모님도 언젠가는 이해하실 거라고,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마다 용기를 내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내 끈질긴 설득에 먼저 마음을 움직여주신 건 선생님이셨다.

 

“현재 네가 원하는 학과로 안전하게 지망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

 

선생님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길을 택할 수 있게 안내를 해주셨고,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걸 눈치 챈 오빠와 아빠가 엄마를 설득해주셨다. 덕분에 마지못해 내 선택을 인정해주셨지만, 시간이 지나서 수능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도 받으며 열심인 모습에 엄마도 천천히 나를 인정해주셨다.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대 중반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리를 잡고, 인정도 받으며 소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날 아침의 일이 떠오른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날 이후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할 때까지, 다시 보지 못했다. 소문은 여전히 무성하게 나 있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며 창문 너머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만, 확실하게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에도 미소만은 뚜렷하다는 느낌에 쿡- 하고 작게 웃었다. 동쪽 하늘에 새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 태양을 마주보며 눈이 다 감길 만큼 미소했다.

 

오늘 하루도 시작이다. 반짝이며 빛나는 꿈을 위해 달려갈 하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