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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밤의 기록

남 같지 않은, 사사로운 감정이 얽힌 관계, 친구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 사람과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지금은 너무 우습다. 그때의 너와 나는 프레임 속에서 참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눈떠보니 어느새 4개월 차가 넘었던 회사 생활. 우리 팀에 신입이 들어왔다. 이력서를 봐도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우리 팀에서 유일한 여자였던 나에게 굳이 차 문까지 닫아줬다. 넌 예의가 몸에 배어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더 꼴사나웠을까. 참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 못지않게 각잡힌 생활과 웃음기 없던 너의 표정. 너의 포커페이스로 제나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1년이 지나도 어색함이 감돌았다. 동료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었다. 동갑내기였지만 다른 또래 직원들보다 너와 친해지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지금와서 들은 말이지만 그때 넌 이미 우리가 친했다고 생각했단다. 당시, 일할 땐 편했지만 둘이 남겨지면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어색한 빈틈이 싫어 할말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다 단둘이 외근을 가고 식사를 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팀장에 대한 너의 생각을 처음 들었다. 너도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너도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또래 직원들과 우린 거의 매일 술 한잔, 그 이상을 기울이며 닭발, 곱창, 회사를 맛보고 즐기고 뜯었다. 

 

적립식 통장보다 더 빠르게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날 너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친구"

일할 땐 우연이라도 손끝이 닿을까봐 거리를 두고 격을 차렸다. 그런 우리가 동료를 끝내고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니  동료 때보다 트러블은 더 많았다. 너는 스스럼없이 장난을 참 많이 쳤고 난 참 잘도 속았다. 화가 나 눈물이 나던 날도 있었다. 화해의 악수는 몇 번이나 했던지, 널 몇 번이나 때렸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그만큼 추억이 쌓여갔다. 그때쯤 나는 약간 우리의 관계에 혼동이 왔다. 친구나 되자고 시작한 관계에서 연인으로 질릴 만큼 만나 끝낸 관계가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예전엔 서로 다른 염색체 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서도 뻔한 멘트가 들렸다. 

"너희 둘이 그냥 사귀어. 언제 사귀니?" 

너와 나는 자연스러운 재치로 흘려넘기고 언제나 친구 관계를 운운했다. 그런데도 너는 매너와 장난이 적당히 양념된  행동으로 날 헷갈리게 했다. 여중, 여고를 나와 쉽게 선을 넘지 않는 나에겐 낯설었다. 여사친도 적지 않게 있는 너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다 함께 가까운 근교로 여행을 떠났다. 아직은 어색한 반말을 편한 척 주고받았다. 새벽녘, 동료들에게 별을 보러 가자고 졸랐다. 달을 보는 걸 좋아하던 너는 별을 보고 오랜만에 천진한 웃음을 보였다. 술기운도 있었는지 넌 잘 하지 않던 말도 했다.

"별 진짜 많다. 별 따줄까?"  

손발이 사라지는 말에 난 귀를 씻어냈다. 돗자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깔고 추위와 별을 안주로 소주 한 잔씩 기울였다. 소주병 아래에 핸드폰 빛을 조명삼아 불을 밝혔다. 라섹으로 눈부심에 약해진 터라 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너는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었다. 그러던 와중 동료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평소 아니라고 한 사람도 잘 맞는다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누가 봐도 우리에게 한 말이었다.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그땐 한번 쯤 이런 친구를 만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무수한 연상의 사랑에 지친 참이었고, 매섭게 겨울바람이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네가 우연히 던진 말에는 시가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우리의 화살은 서로를 조금씩 빗나갔다. 그럴수록 난 점점 막역해지는 이 관계가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날의 만남이 내 과거의 생각을 일깨웠다. 친구나 되자고 서로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사실, 처음의 목적은 나의 모태쏠로 친구 B의 솔로 탈출을 위해서였다. 그 친구가 소개팅은 어색하다며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제안했다. 그 모임이 반복되면서 우린 친해졌고 넌 내 친구 A에게 관심을 가졌다. 나에게도 썸인듯 아닌듯한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도 너와 친구 A의 관계에 더 신경이 쓰였다. 둘 다 나에게 가장 최측근이었다. 너는 버릇처럼 여자친구가 생기면 너와 연락을 자주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가 같은 염색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애초부터 하지 않도록. 그래서 난 둘은 절대 안 된다고, 다 같이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쯤 나의 썸남과 미묘하게 감정이 틀어지고 있었다. 잘 돼 가는 너와 친구 A를 보며 생긴 열등감도 없지 않았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자 너는 나를 푹 찔렀다.

"너 나 좋아했어? 이제 나 좀 풀어줘." 

 

내가 구속했는지 부터 먼저 생각했다. 평소 우린 장난처럼 주인과 강아지와 같은 역할놀이를 했다. 절대 변태적 성향은 아니다. 넌 내 앞에서 포커페이스를 풀고 모든 감정을 다 드러냈다. 스스로 널 비글이라고 칭했다. 우린 갑자기 만나 끌리는 데로 먹고,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내 마음대로 굴어도 너는 다 받아줬다. 그러던 와중 그 말을 들으니 사고가 정지했다. '내가 너를 좋아했던가?' 나마져도 나에게 의심이 들었다. 난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니 너와 다니는 일에 즐거웠다고 답했다. 사랑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싫은 게 내 마음이야."

 

이어서, "내가 당긴다고 올 것도 아니잖아."고 답했다. 너는 막역한 친구가 될수록 다른 관계로 발전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백번 맞는 말만 했다. 그리고, 내 친구 역시 우리의 시간들을 알기에 너와 관계발전에 망설였다. 너와 친구, 사이에 낀 나, 갈등은 깊어졌다. 난 너무 이기적이라 불편한 감정이 싫었다. 너와 내 친구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빌었다. 결국 너와 내 친구의 이야기는 시작되지 못했다. 

"안된다고 한 건데 내가 괜한 짓 했지. 안 만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의 모진 말에 난 면목이 없었다.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하고 있었다. 넌 아무렇지 않게 먼저 다가왔다. 평소처럼. 

 

회사 다닐 때부터 네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믿고 따르던 사수가 건강상의 문제로 그만뒀고 난 혼자 남았다. 사수가 그만두자 무능력한 사람이 팀장이 되었다. 난 팀장의 몫까지 하느라 지쳐갔다. 그럴 때마다 너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다. 원래는 직무가 달라 외근 때 말고는 도움받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넌 내 일거리를 차곡차곡 정리해주면서 언제나 뒤에 있었다. 늘어가는 나의 투정도 꾸준히 들어주었다. 사회에 나오고 다닌 첫 회사였다. 사회경험이 많던 넌 큰 힘이 되었다. 간과 쓸개를 빼도 회사를 나오면 역적이 되는 세상이다. 그동안의 고생이 무색하게 쫓겨나듯 나온 회사에 후폭풍이 더욱 심했다. 그럴 때마다 넌 내 자존감을 올려줬다. 너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넌  '네가 최고다, 예쁘다, 넌 어디 가든 잘할 거야'라고 툭툭 던지듯 말했다. 너도 나에게 너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쭙잖은 나의 위로에도 고마워했다. 

"1년 동안 이 회사에서 뭘 했나 싶어도 널 만나서 다행이야. 네가 좋은가 봐 친구로서."

매일 티격태격해도 너의 그 말에 고마웠다. 그래서 너와 친구 A의 일에 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시 둘이 연락할까 봐 난 아직도 걱정한다. 정말 난 못돼빠졌다. 

 

이젠 정말 편한 사이가 되었다. 너와 같은 소파에 다리를 엉켜 누워도 아무렇지 않다. 주변의 부추김에 혹시라도 너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좋은 친구를 잃기는 싫다. 그래서 더욱 너의 연애가 늦춰졌으면 한다. 못된 심보다. 이 사사로운 감정이 얽힌 복잡한 관계가 가끔은 지친다. 이제는 너를 내 욕심으로부터 놓으려고 이 글을 쓴다. 넌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 
"평생은 없어. 우리 관계도 평생 가지는 않을 거야. 죽어서라도."

평생이란 단어는 참 무모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긴 이 시간에 감사하며 살 것이다. 우리가 평생은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로 오래 남고 싶다. 너도나도 언젠가 좋은 사람 만나겠지. 최근 꿈에서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너를 봤고 너는 나에게 그를 소개했다. 내가 버릇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과 만나"라고 한 말이 이뤄져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이기적이다. 그래도 참 잘 어울렸다.  

 

모든 일에 끙끙대며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친오빠는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책에선 '난 단점 투성이 이야'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만든 것이라 한다. 나 역시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이기적이기에 우정이란 이름으로 너에게 모질게 굴어도 괜찮다고. 어쩌면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 스쳐 갔거나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관계를 깨기 싫어 나를 속이는 걸지도 모른다. 저 드라마 속 뻔한 남사친, 여사친처럼. 

 

인생이 뻔하지 않아서 '기대, 미래, 예측불허' 와 같은 단어가 생기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의 관계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너의 존재를 소중히 하며 너의 아픔을 더 달래주고 싶다. 내가 위로받은 시간만큼, 내가 가진 미안함만큼 너에게 보답하고 싶다. 아주 명확하면서도 아직 애매모호한 관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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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집

<겨울 안부>

 

안녕. 잘 지내니?

이르게 찾아온 겨울의 온도가 마치 재작년의 늦겨울 같아 네 생각이 났어.

그러다 너와 진지한 고민을 쏟아내던 때가 아득하게 느껴지길래 편지지를 꺼냈다.

잘 지내는 거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꾸만 묻고 싶어.

나는 사랑하던 사람과 마침표를 찍고 겨울을 맞았어. 물론 사랑하고 있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테니,

사랑하지 않아가던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후로도 잔잔히 일상을 살아가곤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때까지 몇 번의 쓸쓸한 연애를 하고 나니,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

 

기억나니? 우리 몇 년 전에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웠었잖아. 분명 똑같은 방법을 배웠는데도

너와 내 모습은 퍽 달랐었지. 나는 여기저기에서 더 쉽고 빠르게 하는 방법을 찾아 요령을 피웠지만

너는 거북이처럼 하나하나 느리고 정직하게 해나가더라. 미안하지만 사실 그런 너를 보며 답답하다고 생각했었어.

더 쉬운 방법으로, 더 멋진 결과물을 만든 내가, 너보다 더 세상을 잘 살아가겠구나라고, 감히 잘난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너는 요즘도 그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더구나. 나는 있지, 그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 요령만 잔뜩 부렸던 손가락이 부끄럽게 자판 위를 헤매고 있어.

 

이젠 너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지?

그래. 어쩌면 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듯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다 꺼내 보여주던 내 모습이 상처였던 그때부터 더 이상은 어설프게 헤메고, 허둥대고 싶지 않아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요령을 피운 거지. 나는 그저 사랑을 잘하고 싶었어. 다가가고 물러설 적당한 거리를 알고 있는, 더 쉽게 사랑하면서도 손해 보지 않고 이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인지 요즘 느릿한 정직함을 가진 네가 많이 생각나.

너라면 사랑도, 아니 사랑은 더욱, 헤매고 부딪히면서 구석까지 꼼꼼히 채워나가고 있을 거라 믿기에.

그런 너를 떠올리며 나도, 마치 처음부터 다시 사랑하는 사람처럼,

성실하게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야.

 

그립다. 네가 많이 보고 싶어. 예전 너와 나누었던 고민이 생생히 기억나는 건,

볼에 홍조가 필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그 마음이 여전히 반짝이기 때문이겠지.

모처럼 네게 편지를 쓰는 내 볼도 물들어 있어서, 꼭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를 써보내는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 보지 못했어도, 문득 붉게 생각나 주어서 고맙고,

아무렇지 않게 사랑을 담아 편지 보낼 수 있는 사람이어 주어서 고맙다.

어디서든 우리는 가까이에 있어. 잘 지내다 어느 겨울날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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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메리 고 라운드

 

 

 

 

 

    미영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녀가 전동 휠체어에 앉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듯 미끄러져 나아가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찬란한 미소를 사람들은 경이로운 듯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가 내 앞에 멈춰 서니 왠지 모를 우쭐함까지 느껴졌다. 미영은 만나자마자 예뻐졌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제법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듣는 칭찬이 싫지 않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그녀가 잘 안다는 파스타 집으로 향했다. 길 양 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내뿜는 초록빛이 내 안에 남아 있던 옅은 살얼음마저 녹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이 봄의 첫 날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소박한 식사로 온모밀을 주문했다. 테이블 위 작은 화분에는 흰 소국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딸 아이가 스파게티를 좋아해 이곳에 자주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늘 해 오던 일상의 의식儀式인 듯 국화 앞에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공기 정화 기능이 있대, 그녀는 한동안 먼지와 매연으로 더럽혀진 콧속을 씻어냈다. 내 친구와 그녀의 딸아이가 마주 보고 앉아 언제까지고 작은 화분 앞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상상을 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미영이 아이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나는 친구의 딸아이가 꽤 궁금했지만,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그녀의 집을 방문할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미영이 서운해 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밝고 명랑하며 아이 같은 순진함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만, 그런 성격 때문에 오랫동안 공들여 이야기해보지 않으면 좀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거듭되는 유산에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려 애썼던 것, 그래서 홀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만 먹으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왔던 것, 하지만 그녀보다 더욱 순진했던 남편은 세 번의 유산이 서른 살 여자에게 준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의 장애만을 탓하며 밖으로만 돌았다는 것 등등…. 어느 날 이혼녀로 나타난 미영은 그런 것들을 마치 진부하고 오래 된 전설처럼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나마 이혼 전에 아이를 입양하는 데 동의해준 건 정말 다행이라고, 하지만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으니 남편이 좀 더 믿음직한 가장 역할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자기의 오산이었다고, 그녀는 단단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영의 밝음은 아마도 선천적인 생명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말고 오늘은 우리 집에 한 번 가 보자.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어차피 오래도록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나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다양한 크기의 알록달록한 알이었다. 예쁘다, 개미만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미영이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그녀는 아이도 못 낳는 병신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며 폭언을 퍼붓는 시어머니와 그 뒤로 숨어 있던 맥 빠진 남편에게 악착같이 위자료를 받아내 이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 사람, 아마 무지 놀랐을 거야. 

 

  쓸쓸히 웃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도 이 친구가 악을 쓰는 모습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사실 아이 가져보겠답시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아내를 뒤로 하고 허구한 날 여기저기 팁이나 꽂아주던 사람에게 그 정도밖에 받아내지 못한 것이 억울한 일이었다. 남편과 함께였던 시절에는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다른 건 거의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미영은 아는 사람의 공방에서 알공예를 가르치며 바쁘게 생활해 나간다고 했다. 사회 시간에 부도를 펼쳐 놓고 ㅇ이나 ㅁ 같은 글자마다 샤프로 까만 칠을 하던 내가 선생님에게 걸려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으면 이내 끌려나오던 어린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넌 왜 걸렸어, 라 물으면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펼치며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내게 보여주곤 했었는데….

 

  그녀가 선물이라며 크고 둥그런 조명을 건넸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이런 동글동글한 것들이 바퀴가 되어 그녀의 삶을 멈추지 않고 굴러가게 해 준 거구나. 어린 날, 나는 미영이 나중에 커서 유명한 화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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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대화가 필요해

 

 

 

    낙심落心을 일상의 감정처럼 마음에 심고 살아가는 친구가 말했다. 왜 나는 생일까지 2월 29인 걸까. 나는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야'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녀의 기분은 단번에 나아지지 않았다.
 
  격언처럼 통용되는 문장 중 가장 잔인한 게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라고, 친구는 속삭였다. 시간이 우울감에 덮이고 쌓여서 보기 싫은 잡초가 수북해질 지 모른다고도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녹음기 하나를 사 주며 그런 뭉글거리는 마음들은 눌러담지 말고 여기에 녹음해두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 명확해서, 그 선명한 것들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우울증 같은 나쁜 질환에 걸리지 않을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어느 정도 위험 요소를 안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분명한 의견들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나 혹은 내 친구 같이 어렴풋한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다. 마음에 난 정전기 때문에 지금은 곧바로 떨쳐낼 수 없는 먼지일 지라도, 자꾸만 신경을 쓰고 손을 대면 분명 떨어질 테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보다 서로를 위로하는 찰나의 순간이 더 소중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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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Zine

27살, 친구 만들기 #2.

#2. 톰 소여의 모험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주저없이 톰 소여의 모험을 말한다.

비록 그 책이 어쩌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아동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고, 아이가 바라보는 어른의 세상을 풍자하는 책일지라도, 어린 나이의 내가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나를 노안 취급 (비록 스스로 느낀거지만)한 그 녀석은 전주가 고향이다. 녀석은 교육을 받고 전주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으며, 나는 천안으로 발령을 받아 천안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에 문득 메신저에서 보인 녀석의 이름. 가벼운 마음으로 안부 인사를 하고, 상사 뒷담화를 하다 보니 금새 친해져 말을 놓기로 했다. (역시 친해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의 험담이다)

 

나의 고향은 전라북도 익산이다. 익산과 전주는 차로 30분 정도만 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고, 어릴 적 전북대학교 앞에서 마신 막걸리는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전주가 녀석의 고향이고, 그 막걸리가 녀석이 좋아하는 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주는 한창 한옥마을로 인기가 치솟고 있었다.

 

"youth야, 전주 한 번 갈께. 맛집 안내해라"

"어 와라, 여기 좋은 곳 많다"

 

녀석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전주를 검색했다. 전주를 처음 가는 것은 아니다. 매년 전주 국제 영화제를 갔었고, 혼자 여행을 좋아하던 나는 몇 번이나 전주에 들렸었다. 물론, 전북대학교 앞에 있는 막걸리집을 잊지 않고 찾았다. 그러나 혼자 찾아간 여행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는 법. 그렇기에 현지인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든든함을 준다.

 

전주 영화제를 하는 주말이 왔고, 나는 전주행 기차에 몸을 태웠다. 내가 살던 익산을 지나고 도착한 전주.

역부터 기와 모양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역 앞에서 사진을 찍던 그 곳.

녀석과 만나기로 한 곳은 한옥마을이었기에, 나는 택시를 타고 한옥마을로 향했다. 

 

한옥마을에서 녀석을 만나 조그만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앞에 기린 모양의 조각이 있었고, 안에는 기린 인형이 많이 있던 카페였다. 그 곳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며, 그 동안 쌓아둔 이야기와 상사에 대한 뒷담화가 이어졌다. (다시 생각해도 친해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의 험담이다)

 

다시 톰 소여의 모험으로 잠시 이야기를 옮기자면 모든 줄거리는 '사건'에서 시작된다. 살인 현장을 목격하거나, 소풍을 갔다가 길을 잃거나, 동굴 안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등 다양한 사건이 새로움에 대한 전초가 된다.

 

그 날의 전주 여행이 그러했다. 녀석과 만나 커피를 마시고, 한옥마을을 거닐고, 경치 좋은 곳이 있다며 나를 등산시키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친구와의 약속이 갑자기 생각나 녀석의 친구를 부르고, 함게 저녁을 먹기까지.

작은 사건들이 즐거움을 만들고, 그 즐거움이 새로움의 전초가 됐다.

 

녀석은 그 날 두 개의 약속이 있었다. 하나는 나를 만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녀석의 또 다른 친구를 만나는 것이었다. 녀석이 두 약속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는지, 혹은 하나만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겹친 약속을 해결하는 순발력에 놀라웠을 뿐이다. 녀석은 친구를 불렀다. 그 친구는 거리낌 없이 한옥마을에 왔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순간을 기록하는 친구. 작은 프레임 안에 자신이 본 것을 담을 줄 아는 매력적인 친구였다.

 

그 날 우리는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전주시에서 노인 일자리 마련을 위해 한옥 마을에 만들어 놓은 한정식 식당이었고, 그 곳에서 푸짐한 음식과 함께 막걸리 한 잔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는 하루였다.

그리고 전주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가맥집까지 함께했다.

 

녀석과 헤어진 후,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에 다시 나와 영화제를 잠시 즐겼다. 그러던 중 대학 후배들을 만났고, 녀석들과 술 한 잔 더 걸치며 전주에서의 하루를 마무리 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초대해 하루라는 시간을 소비하기까지 그 안에서 수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밥은 무엇을 먹어야 하며,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하고, 어떤 신선함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 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즐거웠어, 여긴 정말 새로운 세계야"라는 대답을 듣기 위해 고민한 그녀석의 흔적이 너무 고마웠다.

 

톰 소여의 모험처럼 지금까지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

그 여행의 커다란 줄기를 만들어준 녀석은 27살, 새롭게 만난 내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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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Zine

27살, 친구 만들기 #1.

돌이켜보면 우리는 수 많은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간다.

그 중 '친구'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관계는 대부분 20살 전후로 형성되는 것 같다.

그 이후에 형성되는 관계에 있어 '친구'라는 단어를 붙이는게 가능할까?

 

어쩌면 바보 같은 질문일 수 있겠다.

남자들의 단순한 논리를 따르면 같이 술 한 잔 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간 안에서만 존재할 뿐, 그 이후에도 그 단어를 붙이기는 힘들다.

 

20대의 중반, 27살에 만난 친구, 오늘은 그 친구에 대해 적고자 한다.

무려, 3부작으로.

 

#1. 너 나를 놀린거지?

대학교 4년 + 군대 2년 + 휴학 1년, 7년이라는 시간을 거치고 취업한 회사.

지금은 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회사지만 당시에는 갓 태어난 신생회사였다.

이 곳에 입사를 하고 정확히 일주일 후 한 녀석이 교육을 받으러 왔다.

여자였고, 조용했고, 차분했던 녀석.

비슷한 시기에 함께 입사했던 탓에 친근감이 갔지만, 같이 마주칠 일이 없던 녀석.

 

직업 특성상 우리는 외근이 많았다. 포토그래퍼와 함께 촬영을 나가야 했고, 인터뷰를 해야 했고, 디렉션을 해야 했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원고를 써야 했기에 서로의 친밀도 보다는 정보 공유자로써의 역할이 중요했던 직업.

그래서 서로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서로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시간, 회식.

 

회사 생활에서 회식은 중요하다. 오랜 시간 공들여온 것들이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고민했던 것들이 한 순간 해결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녀석은 회식 중간에 왔다.

촬영이 늦게 끝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음날 교육이 끝나 짐을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다.

중간에 들어온 그 녀석이 앞자리에 앉았다. 사수였던 선배가 서로를 인사시켜줬다.

'youth'야, 얘가 'DoDo, Kim'이야.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서로가 인사를 하고, 술을 한 잔 마시고, 우리는 각기 다른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사수였던 선배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DoDo야, 너 몇살이랬지?"

"27살이요."

 

그 때 앞에 있던 그 녀석의 한 마디

"진짜요?"

조그만 눈을 정말 동그랗게 뜨고 놀라 묻던 한 마디.

동갑이라 반가워서 그랬다고 말했지만, 난 느꼈다.

 

너, 나를 놀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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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Zine

너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어

참으로 착하고 반듯한 친구가 있습니다.

천성이 착해 사람을 잘 믿어 배신도 많이 당하는 친구지만

그의 마음만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믿음이 가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반대로 재미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최고의 개그맨은 그 친구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수다가 끝이 없습니다.

 

또한 그녀석은 독특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임에도 '네일아티스트'라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각종 대회에서 수상도 하고, 학원 강사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언변이 뛰어나 영업 본부장까지 역임했던 녀석입니다.

 

그 친구에게 소개팅을 시켜줬습니다.

제 직장 동료의 친구인 그 여성은 정말 누가 봐도 예쁜 외모에

참 착한 인격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다만 낯을 많이 가리는 분이기에 단 둘이 하는 소개팅을 부담스러워했고,

주선자가 함께 하는 소개팅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와 제 직장 동료는 함께 소개팅 자리에 나갔습니다.

 

천성이 착한 친구,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재미있는 친구, 여성을 많이 만나는 네일아티스트, 영업 본부장까지 지낸 제 친구기에 그 자리는 한 없이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시간의 만남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저는 느꼈습니다.

'아.. 내가 내 친구를 하나도 모르고 있었구나'

2시간 동안 그녀석이 한 대화는 "아.. 그러시구나"와 "아.. 네.." 단 두 마디

 

10년을 넘게 알아온 내 친구에게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시간

소개팅이 끝난 후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그런 모습 처음이었어"

 

친구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미안"

 

저는 친구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술이나 한 잔 하자.."

 

소개팅이 끝난 후 친구와 갖게된 술자리에서 그는,

2시간 동안 하지 못한 말을 저에게 다 쏟아 냈습니다.

 

'넌 나에게만 재미있던 거였구나..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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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친구라는 이름으로_

어렸을 때에는 내 인생에 있어서 친구가 전부였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것 같고

힘이 있는 것 같았고, 그저 마음이 든든하고 좋았다.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즐거웠던 사춘기 시절까지 지나고

본격적으로 내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하다보면,

친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마련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불쑥 찾아가기는 커녕 연락도 뜸해지고,

친구들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시간들이 무색해질만큼

한달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사이로 전락해버리고,

둘만의 것을 공유하기보다

회사동료들과 회식하느라 정신없고,

어쩌다가 가끔 만나 반가움도 잠시

편한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불쑥 욱하는 감정이 올라와 마음 상하게 할 때도 있다.

 

그저 미안하다고 내가 요즘 힘들어서 그렇다고

잘못을 인정하면 친구도 이해를 해줄텐데,

쓸데없는 고집이

'내가 뭐! 나만 잘못했냐? 너도 잘못한 거 많잖아.' 라며

오히려 쏘아붙이기까지 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하게 될 때면

그동안 쌓아왔던 우정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내가 힘이 들 때, 손을 내밀어주던 친구가

어느 날 힘들다며 나에게 손을 건넸을 때,

부득이한 사정으로 친구의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외면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사람이 힘들 때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럴 때에는 나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힘들지만

친구의 손을 잡아 함께 걸어가야 한다.

나도 힘들다는 이유로

힘들어하는 친구의 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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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엄마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겁다

 

 

 

 

    엄마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겁다.

 

  "나이 먹어도 마음은 똑같아. 엄마도 옛날엔…" 언제나 같은 방식. 그럼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몸을 엄마 쪽으로 돌린다. '어디 한번 얘기해 봐, 내가 다 들어줄게' 라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거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모든 걸 이해하게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엄마'라는 이름표를 지우고, 그녀를 세 글자 독립적인 이름을 가진 여자로 생각하려 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다. "그렇구나, 엄마도 그랬어?" 정도가 반응의 최대치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격하게 감정이입을 하고, 심지어는 친구가 처한 그 상황에 나 자신을 대입시키기까지 한다. 잔뜩 부풀려진 상상 속에서 나는 친구처럼 큰 길가에 홀로 멍하니 서 있기도, 차가운 카페모카를 가장 아끼던 치마에 쏟아 쩔쩔매면서도 앞에 앉은 잘생긴 남자를 힐끔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그냥 듣는다. 색이 바랜 사진 속에 함께 뛰어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늘 즐겁지만, 싱겁게 끝이 나고 만다. 엄마는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다. 그런 뒤에 언제나 생각한다. 옛날 생각을 하면 엄마는 늘 아련하겠구나.

 

  엄마의 시시콜콜한 기억들에 대해 전부 곱씹어본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좋아하는 일본 작가의 책 속에서 내 또래의 딸은 뿌연 안개 속에 쌓인 듯한 분위기를 가진 엄마와 정말 '친구'가 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낮에 홀로 외출했던 엄마가 돌아오는 길에 머그컵을 딱 한 개만 사왔다고 하여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그녀 또한 '엄마'라는 이름표를 완전히 떼어버리지는 못했을테지만, 적어도 엄마와 진짜 '친구'가 될 마음가짐은 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늘 엄마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 별로 자신은 없다. 몸집이 나보다 훨씬 작아진 엄마 품에 안겨 밤마다 강아지마냥 낑낑거리고, 그걸 인생 최대의 낙으로 삼는 내가 '정말 친구인 엄마'를 원할 수 있을까.

 

 

 

* 본문 속에 언급된 책 : 요시모토 바나나, 『안녕 시모키타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