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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지진계

 

 

 

  어른들의 "나이 들어도 마음은 언제나 같아" 라는 말을, 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겉모습이 변하는 만큼 안에 있는 것들도 조금씩 바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 편견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 있었다. 몇 년 전, 독립잡지를 취급하는 홍대의 작은 서점을 구경하다가, 그 안에서 음악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매거진을 읽느라 한참 동안 서 계신 노년의 한 신사분을 보았다. 마치 오래된 그리고 단단한 고무나무처럼 우뚝 선 그 신사가 왠지 신기했던 나는 덩달아 곁에 선 채로 책장을 군데군데 찔러보던 중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분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이런 곳에 자주 오냐고, 나는 가끔 온다고. 당시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독립잡지를 발간해보자는 목표를 두고 있었던지라 서울에 있는 독립서점들을 종종 순회하는 편이었다. 내 사정에 대해 말씀드리자 눈을 반짝이던 그 신사는, 그런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곳에 모이는 것 같다며, 사실은 자신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무얼 만들고 싶은 거냐고 되묻는 나에게, 본인은 평생 동안 좋아하는 가수들의 LP를 모았으며 그 옛날 노래들이 죽고 난 뒤에도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감탄했다. 그의 음악적 소양이 얼만큼 깊은지를 확인해서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취향이 변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취향을 죽을 때까지 유지할 것임을 밝히는, 노신사의 스스로에 대한 애정에 존경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스스럼 없이 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취향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한없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얼마 전, 21년 전부터 좋아해온 가수의 라이브 공연에 다녀온 나는 2003년 전 발매됐던 앨범의 타이틀곡이 2018년에 다시 들어도 내 마음을 뒤흔든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학창시절 은색 CD 플레이어와 함께 마치 분신처럼 들고 다니며 닳도록 들었던 그 앨범은, 언제나 같은 반 남자애들이 야자시간에 빌려달라고 성화였기에 내 자랑거리였다. 내 어깨를 수직상승하게 했던 명작. 음원 재생목록에 한 곡 반복을 걸어놓고, 나는 어린 나와 지금의 내 모습을 동시에 그려보았다. 그리고, 잠들기 직전 그 노신사를 떠올렸다.  만약 그를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겠다고 다짐했다. 서로가 좋아해온 노래를 바꿔 듣자는 인사.

 

  안녕하세요. 그 노래들이 당신 마음의 지진계에 얼마만큼의 진동을 기록하는지, 그 떨림은 어디로부터 시작돼 어디로 전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당신의 노래가, 당신의 취향이, 당신의 마음이… 아니, 당신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