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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 탈출을 향해서

비상구 : 탈출을 향해서

 

하얀 바탕에 초록색의 그림.

계단에서 문에서 흔히 보이는 비상구 표지판이다.

 

그런 표지판에 지금 내 눈 앞에 수십 개가 있다.

수십 개의 표지판 아래는 똑같은 모양의 문도 수십 개가 닫혀있다.

 

그 광경에 당황한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그 웅성거림을 잠재우며 벽에 걸린 스피커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 여러분.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이제 보시다시피 여러분의 앞에는 비상구가 남아있죠?」

 

그의 말대로 비상구가 코앞에 있다. 이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어느 게 진짜인가 말이다! 그런 생각을 꿰뚫듯이 말이 이어진다.

 

「이중에 진짜 비상구는 단 하나입니다. 더불어 지나갈 수 인원은 단 3명!

그 3명이 지나간 뒤에는 모든 비상구가 자동으로 폐쇄됩니다. 흥미진진하죠?」

 

곳곳에서 욕설이 들려온다. 흥미진진하다니! 누가?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단 3명만 나갈 수 있다는 말이잖은가.

 

「탈출을 하려면 어느 게 진짜인지 알아야겠죠? 힌트를 드릴까요?」

 

너무나 즐겁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질문에 성난 목소리들이 튀어나온다.

당연히 힌트를 주어야 맞지 않나, 모든 표지판과 문이 똑같이 생겼는데.

 

「흐음. 어디, 어떤 힌트를 드릴까나?」

 

사람들은 힌트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단 3명만이 이곳을 나갈 수 있다.

힌트를 듣고 누구보다 먼저 진짜 비상구를 찾아야한다.

 

「아하! 열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순간 정적이 넘실거리며 춤을 추었다. 이윽고 그 정적을 깨뜨리며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무슨 힌트가 그 따위냐며 버럭- 외침이 늘어간다.

 

「정말로 그것 말고는 달리 드릴 힌트가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말이죠.」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에 누군가 안간힘을 짜내어 질문을 던졌다.

만에 하나 가짜를 열면 어떻게 되느냐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대답이 흘러나온다.

 

「그야 당연히 여러분은 스스로가 지은 죗값을 치르게 되겠지요.」

 

억울하다. 난 죄가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정말로 억울하다.

그런 소리 없는 외침이 들리기라도 한 듯이 스피커에서 나온 말이 귀를 파고든다.

 

「여러분의 가장 큰 죄는 태만(怠慢)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이곳에서는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정말 속이 다 시원하답니다.

물론 그 수단과 방법은 제쳐두고 말이죠.」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걸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게을렀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 지쳐 그렇게 살다보니 게을러진 것을, 그게 죄란 말인가? 죽을죄란 말인가?

 

「단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였으니, 그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답니까?

문을 여는 게 두렵다면 영원히 이곳에 있으세요.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스피커가 꺼지고 간절하게 또는 애타게 그를 부르는 외침이 터져 나온다.

죽기 살기로 정말 생애 처음으로 안간힘을 다해 여기까지 왔다.

 

나는 바로 앞에 보이는 문으로 다가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덜덜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 한참을 그대로 서서 망설였다.

 

주변에서는 나처럼 문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도 있고 하나의 문을 두고 다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사람 수만큼 딱 맞는 문의 개수에 다들 문손잡이를 잡고 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끼익- 잠금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천천히 열리는 문밖의 희미한 빛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한걸음 내딛었다.

 

여기서 무사히 나간다면, 살아서 나간다면 이제는 그리 살지 않으리라.

매 순간 미련과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살리라!

 

열 걸음 남짓, 빛이 나를 감싸고 나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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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flower

초록+싱싱

 

초록이,싱싱이라 부르는 식물들을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함께 한지도 7개월째이다.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말이 꼭 그들을 위해 누군가가 흘린것 같다.

소리없이 아름다운 존재의 힘으로 시들어져가려는 한 생명체의 불꽃을 되살리기도 한다.

그들이 머금고 있는 초록의 생생한 생명에너지를 보노라면,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무엇또한 꿈틀 반응한다.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다.저절로 미소지어진다.자신을 부지런하게 만든다.

때론 오랜만에 본 벗처럼 활짝 반기고 관심을 가지다가도,때론 오래된 부부처럼 당연시 여기며 바라보지

않을때도 있음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한다. 변덕스러운 마음의 발동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들의 생김새를 보고 있으면,그 어떤 뛰어난 재단사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예술적인 컷과 디자인에 감탄밖에 할 것이 없다. 그들과 함께하는 흙이 풍기는 냄새는 또 어떻단 말인가. 각 종 매연과 인공적인 향수로 인해 찌들어져가는 코의 감각에  신선한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것만 같다. 물을 주면 더 짙어지는 흙의 냄새를  1g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코를 바짝 갖다대며 킁킁거리기도 한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로,현재 자신이 머무는 공간의 공기,온도,습도 등 상태의 적절함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이 싱싱하면 그 공간이 쾌적하다는 신호이다.

그들이 시들하면 그 공간이 불쾌적하다는 신호이다.

공간의 신선도 및 자신의 성실도 체크기가 따로 없다.

 

지난 주말,그들의 친구,가족,친지들쯤 되는 이들이 모여있는 화훼시장을 방문했다.

발을 딛는 순간,엄청난 싱그러운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큰 축복의 세례를 받은 이의 기분이 이러할까?

이파리들은 마치 참기름이나 바른듯 윤기가 흐르다 못해 넘쳐보였다.

자신의 공간에 있는 초록이와 같은 종의 초록이의 넘치는 때깔에 혹해 발이 멈춘다.

 

"여기 무슨 기름바르신거예요?"

"물 뿌려서 그래요"

"아.....(똑같이 물을 주는데,때깔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뭐지?)"

.....

"이파리 끝이 변하는 건 왜 그런가요?"

"물을 안주거나,햇빛이 부족하면 그럴수 있죠"

"음,물도 주고 햇빛도 보게끔 했는데..."

"그건 본인 생각이고,식물들 입장에선 충분하지 않을수 있죠"

"아......(!!!)"

.....

조금 사이즈가 있는 초록이가 눈에 들어온다.

우뚝한 나무기둥에 달려있는 새초롬한 초록 이파리들이 참 사랑스럽다.

이름하여 행복한 나무라고 한다.오호~

근데 삐쭉하고 홀로 키가 조금 큰 이파리를 가리키며

"이거 어때 보여요?"

"예뻐요"

"근데 우리는 이런걸 잘라줘요"

"오잉~왜요?"

"혼자만 이렇게 자란것보다 다른것들과 함께 자라라고,그게 더 이쁘거든요"

"아......(!!!)"

 

그렇게 초록이들을 통한 성찰과 깨달음의 시간들을 보내고

유혹적인 때깔을 지닌 초록이와,행복한 나무를 부둥켜 안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머무는 공간으로 모셔왔다.더 울창하고 근사해진 302호이다.

덕분에 팔에 근육이 생긴듯 하다.여러이유로 자신을 건강하게 해주는 초록이 싱싱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