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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쉰다의 의미

마지막 숨

  2016년 겨울은 끔찍했다. 온통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생일상, 마지막 크리스마스, 마지막 새해.....

마지막인줄 알면서도 몰랐다. 외면하고 싶었으니까.

모든 걸 숨기고 있던 나의 아버지만이 마지막을 알고 있었다.

1년 반, 긴 시간 동안 엄마는 고통이 수반된 삶 속에 있었다.

한 평생을 고생만하다가 채 오십이 되기도 전에 얻어버린 암에 망연자실 할 법도 한데, 떠 안고 그저 살았다. 나는 그저 옆에 있었다. 발악하지도 않았고, 좌절하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그 암덩어리를 달고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움켜쥐고 있는 그녀 앞에서 숭고해졌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믿지 않았다. 내 아버지의 입에서 '사실은..'이라는 말이 나올 때도 믿지 않았다.

언제나 곁에 있을거라고 믿었으니까.

 

 첫 진단부터 6개월까지 못산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주차장에서 홀로 꺽꺽대며 울었단다.

그 말을 듣고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타박 할 수가 없었다.

더 길어진 시간동안 희망고문 당하며 홀로 감내했을테니까.

치료를 포기하라는 의사에게 따지려고 했던 나를 말리며 비밀을 털어놓는 아버지의 주름살이 눈에 보였다.

암세포는 엄마의 몸을, 아버지의 주름을, 나의 찢어지는 가슴을 갉아먹었다.

 

 그래, 사실은 내 가슴도 천갈래 만갈래 찢어져왔다.

의사의 표정을 통해, 엄마의 노래진 얼굴을 통해 느꼈으니까.

주변인들은 나에게 담담하다고, 담대하다고, 다컸다고 말했다.

아니다. 나는 그저 믿지 않았을 뿐이다.

내 손으로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내 손으로 구급차를 불러 엄마 옆에 있을 때도 머리 속은 비어있었다.

가슴에서만 '이건 아니야' 메아리가 퍼졌다.

 

 그렇게 우리엄마는 떠났다.

본인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요양병원 환자.

이 때문에 가지 않으려고 버텼던 요양병원을,

살고싶다고 갔던 우리엄마는 입원한지 열흘도 안되어서 떠나버렸다.

 

 나는 그제서야 발악했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마주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수렁으로 떨어졌다.

 

수렁 속에서 외쳐댔다. 허공에 대고.

 "엄마."

 "왜 그렇게 힘들게만 살았나요."

 "뭘 그렇게 악착같이 아껴왔나요."

 

허무했다. 엄마의 마지막 숨을 받아내고 나도 쉬고 싶었다.

결국 엄마는 살아가는 것이었을까. 죽어가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영원히 숨을 쉬어버린 엄마 앞에서 내 숨은 삶 앞에 유한했다.

 

우문을 마주한 내 삶에

현답이 있을까.

 

 영원한 숨의 쉼, 그종착지에 다다르기 전까지

유한한 숨의 쉼이 헛숨이 되지 않도록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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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쉰다의 의미

이별의 크기

사망.

장례.

입관.

발인.

 

지독히도 아파했던 글자들.

3일 사이, 뉴스에서 고인의 마지막이 쏟아져 나왔다.

안타까움에 눈물을 훔치고,

멍하니 손으로, 입으로 찾고 있었다.

선했던 그의 죽음 앞에 서있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별의 크기를 알기 때문에....

 

 

사람은 본인의 고통을 가장 고통스럽게 느낀다고 한다.

남이 칼로 찔리는 고통보다

내가 종이에 베이는 통증을 더 크게 느낀다더라.

사실, 나도 그래왔다.

1년 반의 투병생활,

죽음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 옆에서

나도 같이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장례식장에 서있던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그 말들이 미웠으니까.

'그래도, 돌아가실거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준비 할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가기전에 좋은거 많이 해드렸으니까.'

'그래도'에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괜찮지?'가 수반된 말에

나는 내 고통으로 나를 숨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웠고,

엄마가 떠난 자리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이 미웠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죽음들에도 눈 하나 꿈쩍 안했다.

내가 제일 아팠다고, 내가 제일 힘들었다고,

투정아닌 투정을 나에게 부려댔다.

내가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통 속에서 나를 꺼내올린건

엄마다.

 

형체도 없고, 말도 없는 우리 엄마.

홀로 찾은 엄마의 영원한 안식처에서,

참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스쳐가는 다양한 사람들.

그들은 나와 같이 울고 있었다.

저마다의 사연을 묻어놓고,

저마다의 눈물을 흘리며,

그 작은 네모칸을 쓰다듬고,

그 작은 꽃다발을 품에안고....

 

엄마만을 바라보았던 내 눈이

처음으로 이웃들을 향했다.

나의 이별,

엄마와의 이별,

그 못지 않은 이별들이

납골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평안하세요.

평안하세요.

평안하세요.

 

그저 입에서 맴도는 한마디는

오히려 나를 평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별의 크기는 없구나.'

 

실체가 없는 이별,

크기가 없는 슬픔인데도

나는 언제나 나의 이별에게

관대하게도 상대적 평가를 내려왔다.

 

이별의 실체를 알게되자,

세상 모든 죽음 앞에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아직 피지 못한 꽃들의 죽음.

오랜 고통 끝에 안식을 찾은 죽음.

꿈 속으로 떠난 듯한 죽음.

그리고....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죽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난 죽음.

갑작스레 떠나버린 죽음.

 

동일한 이별의 아픔 앞에 서있는

그들의 심정.

 

세상 모든 이별의 크기가 가늠이나 될까?

어리석은 답을 품고 살아왔던

나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이별의 크기는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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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철봉을 해야 해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들렀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목도 일자형으로 변형되었고 허리도 요추가 약간 디스크라고, 의사가 말했다. 오래 한 자리에 앉아있는 사무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런 거라고 했다. 어깨 활짝 피고, 허리 곧추 세우고, 다리 꼬지 말고 바르게 앉으면, 괜찮을 거라 했다. 나는 의사에게 몸의 오른편이 특히나 아프다고 했다. 목부터 허리, 심할 땐 발목까지. 의사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어깨를 펴고 두 팔을 내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의사는 내 오른 팔을 들어 살펴보더니, 이게 다 편 거냐고 물었다. 그제야 내 오른 팔이 굽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알고는 있었는데 그러려니 했다. 팔을 활짝 펴야 되는 일이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불편하진 않았다. 아니, 불편했던 적이 한번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에 배구로 시험을 볼 때였다. 토스를 할 때 팔이 펴지지 않아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공이 날아갔다. 연습해도 잘 되지 않아 성적도 B를 받았던 것 같다. 그때 말고는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옷 살 때 내 팔이 유독 짧은 것 같이 느껴질 때가 간혹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체구가 작아 팔도 그런가보다 했다.

 

의사는 도수치료와 운동을 권했다. 엑스레이를 봐도 뼈에는 이상이 없었고, 팔이 안 펴지는 건 어릴 적 자기도 모르게 다친 이후에 팔을 안쪽으로 굽히다보니 힘줄이 짧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근육에 긴장을 더하고 몸의 균형이 깨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도수 치료 내내 나는 고통스러웠고 평소에 아파야 했던 걸 짧은 시간에 몰아서 아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치료가 통증의 집합인가, 여길 정도로 시원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치료사는 도수 치료 후 나에게 적합한 운동으로 아령을 좌우 교대로 한쪽씩 들면서 곧게 걸으라 했다. 왼손으로 아령을 들 때는 아픈 줄 몰랐는데, 오른 손으로 아령을 들고 걸을 때는 팔꿈치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내 팔 안에 탄력성 없는 고무줄 하나가 힘겹게 늘어나는 것 같았다. 치료사는 내 오른 팔이 치료 이후에도 완벽하게 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신 허리 근육을 단련시키면 굽어진 팔로 인해 몸의 균형이 깨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물론 오른 팔에 대한 스트레칭도 적절히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팔이 펴지지 않는다니.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오른 팔이, 치료사의 말을 들은 뒤로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슬프기도 했다. 어제와 같은 팔인데,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당신은 언젠가는 죽습니다’라는 당연한 말을 들었는데, 문득 내가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슬픈 것처럼. 이제 오른 팔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영생을 꿈 꿨던 진시황처럼 오른 팔, 너를 펴보리라.

 

어떻게 하면 팔을 펼 수 있을까. 우선 치료사가 알려준 아령을 들고 걷는 연습을 했다. 남동생 아령 3kg를 집 안에서 좌우 교대로 들고 걸어 다녔다. 한 10분쯤 했을까, 아랫집 아줌마가 엄마 핸드폰으로 쿵쾅거린다고 무슨 일 있냐고 문자를 보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집 근처 놀이터의 철봉이었다. 철봉에 매달린다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을 테니깐. 그렇게 나는 철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낮에 방문한 놀이터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몇이 뛰어다녔다. 내가 놀이터로 진입하자 아이들 보호자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날 흘끔 쳐다봤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 한번 쳐다봤을 뿐 별 반응은 없었다. 나는 곧장 철봉 쪽으로 갔다. 내 키에 적정한 철봉 바에 매달렸다. 매달리자마자 팔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3초, 5초 정도 짧게나마 철봉에 매달리기를 10회 했다. 매달릴 때마다 오른 팔꿈치의 힘줄 하나가 늘어나면서 팔 전체에 날카로운 통증을 남겼다. 10회를 하고 쉬고 있는데, 양쪽 손바닥도 아려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하다가 한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손바닥이 아려서 도로 내려왔다. 팔에 근력이 없다보니 벌써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죽지 마!”

 

갑자기 등 뒤로 누가 소리치는 게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 어떤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 한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한테 얘기한 건가? 그리고 아이들하고 아줌마들은 언제 사라진 거지? 아저씨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학생, 죽지 마!”

 

나한테 하는 말이 맞았다. 내가 죽으려는 것처럼 보였나? 아저씨가 술을 마셨나? 뭔진 모르겠지만, 저 아저씨 이상해! 나는  아저씨가 쫓아올까봐 미친 듯이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기 직전 뒤를 돌아봤지만 아저씨는 전혀 쫓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나의 극적인 등장에 놀라, 무슨 일이 있냐고 했다.

 

“아니, 어떤 아저씨가, 나는 죽으려는 게 아닌데, 죽지 말라고, 막 소리를 지르더라고.”

 

거친 숨을 그대로 내뱉으며 대답했다. 엄마는 뭔 말이냐고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내 팔이 나도 모르게 구부러져서는 안 펴지는 게, 내가 죽으려는 생각이 없는데 죽으려는 절망적인 사람으로 보였다는 게 서글퍼졌다.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누군가 나를 꿇어앉히기라도 하듯 엄청난 무게에 눌려, 대문 앞에 그대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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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17. The Star

17. The Star

 

등교하기 전 이른 아침, 평소라면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혀 있을 카페가 불이 켜져 있었다. 입구에 라는 작은 명패가 달린 이 카페는 평소에 친구들과 심심풀이 삼아 타로 점을 보러오는 곳이다. 최근에는 시험기간이라서 자주 오지 못했는데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들어가 볼까?’

 

그렇지 않아도 시험이 끝나면 와볼까 싶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는 게 아닌 나 혼자서.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살짝 열리고 낯선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카페에서 주로 타로 점을 봐주는 언니도 아니었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해주는 오빠도 아니었다.

 

“들어올래?”

 

“네? 저요?”

 

얼떨결에 되묻는 나를 보며 그는 싱긋- 웃었다. 귀공자 같은 외모에 그런 살인적인 미소라니, 뺨이 화끈거린다. 이건 반칙이다. 그러면서도 발은 내 대답을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카페로 향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와 그를 따라서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최현, 여기 오너야.”

 

“아, 네. 네?”

 

엉겁결에 대답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은 미남이 카페 사장이라니, 소문으로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해야겠다. 그는 조용히 미소하며 카드를 골고루 섞었다.

 

* 점을 보기 전 카드를 골고루 섞는 걸 Shuffle이라고 한다.

 

‘언니는 주면서 직접 섞으라고 하던데. 조금 다르네.’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들었지만, 조금 의외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일렬로 쭉- 펼쳐놓고 말했다.

 

“딱 3장만 골라봐.”

 

“음-.”

 

나는 테이블 위에 일렬로 펼쳐져 있는 78장의 카드를 노려보았다. 마치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3장의 카드를 골라서 빈자리로 빼내었다. 그는 아직 뒷장을 보이고 있는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좌우는 상관없지만, 상하는 신중하게 정해서 뒤집어봐.”

 

가장 왼쪽에 있는 카드를 집어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드러난 카드는 [01. 마법사] 정방향이다. 다음은 위에서 아래로, 마지막 카드는 다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각각 [17. 별]과 [13. 죽음] 모두 정방향이었다. 마지막에 나온 카드에 시선을 고정하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저 카드가 모두 나쁜 건 아니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찝찝했다. 해골이 그려진 우중충한 그림이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거 같다. 눈동자를 굴려 힐긋 바라보았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며 그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을 속에 숨겨두고 있구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 알았을까? 부모님에게도 친오빠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속에만 숨겨두고 있었다. 놀란 내 눈을 보며 그는 마법사 카드를 가리켰다.

 

“마법사의 카드는 지식이나 지혜와 관련이 있지만, 속임수를 쓴다는 점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도 나오지. 반면, 지금은 또 다른 의미로 숨겨진, 잠재된 능력을 뜻하기도 해.”

 

“잠재된 능력이요?”

 

그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별이 반짝이고 있는 카드를 짚었다.

 

“네가 희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곱고 남자다운 손가락이 짚은 카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고 싶은 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성적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고 우선이다. 그 이유를 알고 있고 납득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겁나니?”

 

그림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얘기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친구들은,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지,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마법사 카드로 옮겨갔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의 말에 울적한 말이 조금 가라앉아 눈을 들어 작게 되물었다.

 

“정말요?”

 

“그럼. 다만...”

 

그는 가장 마지막, 해골이 그려진 카드를 짚었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성장하려면 이 고비를 반드시 넘겨야 해.”

 

“어떻게요?”

 

그는 팔을 테이블에 올려서 기대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상냥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숨기지 말고 알려야지. 설령 누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며 설득해야 해.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워나가야겠지.”

 

“꼭, 알려야 돼요?”

 

나를 마주한 미소가 한층 더 부드러워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배우기 위해서라도 알릴 필요가 있어. 너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나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

 

카드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보았다. 잿빛 머리의 노련해 보이는 마법사와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과 깃발과 방패를 든 해골, 필요한 건 용기와 노력과 배움이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렸다. 울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할 수 있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냐. 얼른 가 봐.”

 

그는 유리창 밖을 눈짓했다. 낯익은 여고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와 달려갔다.

 

“얘들아! 같이 가!”

 

“어? 너 왜 저기서 나와?”

 

“아침부터 커피 마셨어?”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 앞으로 내 운을 봤어.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씩- 웃으며 내가 꺼낸 말에 등굣길 내내 놀라기도 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은 금세 이런저런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나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은 달랐다. 현재 고3, 수능을 앞 둔 수험생이 갑자기 진로를 바꾼 것에 선생님은 크게 걱정하셨다. 심지어 엄마는 화를 내기도 하셨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왜 탄탄한 진로를 두고 그런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 거냐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된통 꾸지람도 들었다.

 

그럴 때면 힘이 되어주는 건 친구들이었다. 부모님도 언젠가는 이해하실 거라고,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마다 용기를 내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내 끈질긴 설득에 먼저 마음을 움직여주신 건 선생님이셨다.

 

“현재 네가 원하는 학과로 안전하게 지망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

 

선생님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길을 택할 수 있게 안내를 해주셨고,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걸 눈치 챈 오빠와 아빠가 엄마를 설득해주셨다. 덕분에 마지못해 내 선택을 인정해주셨지만, 시간이 지나서 수능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도 받으며 열심인 모습에 엄마도 천천히 나를 인정해주셨다.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대 중반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리를 잡고, 인정도 받으며 소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날 아침의 일이 떠오른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날 이후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할 때까지, 다시 보지 못했다. 소문은 여전히 무성하게 나 있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며 창문 너머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만, 확실하게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에도 미소만은 뚜렷하다는 느낌에 쿡- 하고 작게 웃었다. 동쪽 하늘에 새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 태양을 마주보며 눈이 다 감길 만큼 미소했다.

 

오늘 하루도 시작이다. 반짝이며 빛나는 꿈을 위해 달려갈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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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奇

새하얀 꿈

 

새하얀 꿈

 

17살 어느 날.

 

“계세요~?”

 

방안에 있던 난 내 방문을 열고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부터 환하게 비춰 들어오는 빛에 눈이 부셨다.

 

그 빛 속에서 현관에 서있는 사람이 흰 저고리에 흰 바지를 입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환하게 비춰드는 빛에 얼굴만은 보이지 않았다.

.

.

.

잠에서 깨고 꿈을 꾼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솔직히 그날이 17살 겨울방학 때였고, 1월 중순이었다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도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꿈만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오후 난 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신을 염하기 전에 할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영안실로 들어가셨다.

빈 장례식장에 홀로 앉아 있던 난 아침에 내가 꾼 꿈을 떠올려 보고 있었다.

 

새하얗고 눈부시던 빛과 하얀 한복을 위아래로 입고 있던 아저씨.

 

영안실에서 나온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편하게 쉬신 것 같다며 웃고 계셨다고 했다.

 

향을 피우고 상복을 입고 곧 도착 할 다른 형제들을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에게 난 아침에 꾼 꿈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꿈같은 걸 믿지 않는 아버지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도 그저 그런 꿈이었나 보다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3일 내내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맡았던 짙은 향내 때문일까?

출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결국 심하게 탈이 낙 말았다.

그런 내 엄지손가락을 아버지가 바늘로 따주시고 나서야 탈이 난 것을 모두 내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난 뒤 나는 어머니에게 그 날 내가 꾼 꿈을 말했다.

다 듣고 난 어머니께서 하신 말에 난 그 꿈이 할아버지를 마중 나온 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휴. 가시는 길에 큰손녀 어루만지고 가셨나 보네. 그래서 네가 탈이 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