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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무늬

#4. 포장을 풀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 어딘가 꾸깃꾸깃 뭉쳐 있던 기억들이 천천히 일어선다. 여행이라는 핑계로 잠시 가려놓은 이야기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줄거리일까. 어디서부터 놓쳤을까. 나는 이 이야기 어디쯤 있는 걸까. 그 다음은 어디로 이어질까. 아무튼 눅진한 곰팡이가 소복히 피었을 것만 같은, 우리 사회 저 어둔 장막에도 이제 볕이 서서히 가닿기 시작했다. 3월, 드디어 봄이 왔다고들 한다.

 

라스 팔마스에는 카사 데 콜론(Casa de Colon)이 있다. 콜럼버스 박물관이다. 라스 팔마스와 콜럼버스의 첫 만남은 1492년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1차 항해에서 여기 라스 팔마스에 머물렀다. 연이은 원정에서도 카나리아 제도는 배를 정비하고 물자를 공급하는 기착지로서 활용됐다고 한다. 박물관 1층에는 콜럼버스가 탄 배의 모형과 선실 내부, 항해물품 등을 전시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까지의 항로와 그 배경 및 일정을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다.

 

예상은 했었지만, 박물관은 카나리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지하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물을 모아 놨고, 2층에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몇몇 그림과 카나리아 제도의 지도 및 모형 등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박물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쩌면 정반대로 콜럼버스의 홀로코스트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인디언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자기들의 왕국과 땅, 자유, 목숨, 아내 그리고 집을 유린당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스페인 사람들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로 죽어가고, 말발굽에 뭉개지고, 칼로 동강나고, 개에게 먹혀 찢기고, 산 채로 묻혀 죽고, 온갖 고문으로 고통 받는 가운데… ‘생존자들은’ 산으로 도망가서 굶어죽었다.”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에 동참한 스페인의 역사가 라스 카사스의 증언이다. 그러나 카사 데 콜론에서 이는 사실관계를 논하기에 앞서 그 누구도 묻지 않고 그 누구도 답하지 않는 ‘없는 이야기’다.

 

여기 카나리아 제도의 원주민, 관체족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겪을 고난을 한 발 앞서 겪었다. 총칼을 앞세운 학살, 전염병 창궐, 강제 노동, 자원 착취, 종교와 법률과 언어의 강요 등 ‘콜럼버스의 교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말이다. 이제 이 섬에서 그들 존재의 흔적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기억도 함께 말이다.

 

사실은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실수는 없었다고, 실패도 잘못도 없었다며 애써 눈감아보려는 그런 시도 말이다. 그것이 죄책감이라면 아마 더욱 간절해질 것이다. 맥락이 다를 순 있지만 언제부턴가 지나간 모든 순간이 의미 있다거나 필요했다는 등의 긍정 어린 말이 거북해졌다. 뭐랄까, 애써 포장한다는 느낌일까. ‘그것들’을 작은 상자에 고스란히 담아 마트료시카처럼 더욱 큰 상자에 수차례 옮겨 담고 각종 리본 장식과 포장지로 꽁꽁 싸맨다. 누가 보더라도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심지어 포장한 사람도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아주 가끔 마음을 톡 하고 놓아본다. 허송세월도 많이 했고, 무의미한 순간도 있었고, 없었으면 좋을 뻔한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이다. 맞아, 그땐 내가 잘못했지라며. 그러면 억지로 쥐어짜낸 의미나 변명이 이내 고개를 숙이며 후드득 떨어진다. 그렇게 드러난 그 앙상하고 볼품없는 생의 무늬가 차라리 한결 편해 보일 때다.

 

카사 데 콜론에서 돌아오는 길, 포장을 싸기보다는 풀어가는 데 익숙해지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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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무늬

#1. 사전에 사과를

 

‘그란 카나리아로 이사했다. 남는 방이 하나 있다. 온다면 환영이다.’

 

“한국사람이구나?”

“아니, 스페인 사람.”

“오, 스페인 사람은 또 어떻게 만났대?”

 

글쎄, 복숭아랄까. 자세한 날짜나 장소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복숭아만큼은 확실하다. 5년 전, 여름방학을 틈타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그 어딘가다. 작은 개울 하나가 흘렀고, 미겔은 씻고 있던 복숭아 하나를 내게 건넸다. 별 말 없이 열흘 가량을 동행하고는 그는 회사로, 나는 학교로 복귀했다. 그 후로는 아주 이따금씩 이메일로 서로의 근황을 짤막하게 나눴다. 회사를 이직했다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다거나, 나라 경제가 망해가고 있다거나 등등.

 

3개월을 답했다. 무비자 체류 기한을 넘길 수는 없으니까. 다만, 왜 떠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냥' 혹은 '답답해서'다. 또 다른 월급살이를 하루빨리 찾아 연명해야 하는 일시적 백수에게는 아마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휴양지라니... 

​사실 어떻게든 그럴듯한 추임새를 넣어보려 했는데, 허사였다. 목적이라는 게 애초에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나타나는 쪽에 더욱 가까운 건지도. 아무튼 주변에서는 부럽다고만 하는데, 속내는 썩 그렇지 않다. 솔직해질수록 여행은 힐링보다는 도피나 망각을 닮아갔고 결국엔 ‘하아, 모르겠다’로 끝마쳤다.

 

제1식: 케이준 치킨을 곁들은 감자샐러드, 데친 야채와 밥을 곁들인 삼계찜, 라임향 리코타치즈 무스케이크, 버터, 소프트 롤빵.

제2식: 훈제 치킨 슬라이스를 곁들인 샐러드, 굴소스를 곁들인 에그누들과 생강소스 곁들인 볶은 닭고기, 오예스 초코렛 파이, 버터, 호밀롤빵.

 

하릴없이 기내식 리플렛을 읽다가 괜한 문구에 눈길이 머문다. ‘메뉴에서 뭔가 부족하면 우리는 사전에 사과드립니다.’ 재료가 부족해지기 전에 미리 사과를 드린다는 이야기인가 싶어 몇 번을 재차 읽었다. 맞다. 수면부족이 틀림없다. 기압차에 따른 두뇌활동 둔화인지도.

 

왼편에는 지젝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러시아 아저씨가 이륙할 때부터 잠에 시달렸다. 심지어 포크를 쥔 채 식사를 하다가도 꾸벅꾸벅 졸았다. 앞좌석에 닿을 것만 같은 아저씨 뱃살을 옆눈으로 흘끔 훔쳐보다 생각도 않던 화장실이 간절해졌다. 서울에서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마드리드, 마드리드에서 그란 카나리아. 거진 하루에 가까운 이동 시간 동안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여행을 떠나기 3일 전 타로를 펼쳤다. 딱히 기대할 바도 없지만, 궁금한 건 궁금하니까. 흐름을 살펴보니, 바보카드가 눈에 띈다. 구름 하나 없는 화창한 날씨, 어느 젊은이가 절벽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다. 소풍일까. 표정도 해맑고 몸짓도 가볍다. 아마 나는 곧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문을 열어젖힐 것이다. 신선한 만큼 무모한, 또는 무모한 만큼 신선한 문을.

 

대학교 때 어느 교수님은 자신이 겪은 혹은 지켜본 짤막한 일화를 거의 매수업마다 들려주셨는데, 하루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생은 어떤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뒤바뀐다고.

다행히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는 옆자리가 비어 있는 창가 쪽에 앉았다.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가 금세 점점이 박힌 무수한 불빛으로 넘실거렸다. 도시 하나 하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주황색 열대어처럼 그란 카나리아를 향해 헤엄친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니, 모르기 때문에 일단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나뿐만 아니라, 미겔을 비롯하여 이 떠남에 연루된 모든 이들에게도.

    

​하늘에는 별자리를 그려볼 만큼 무수한 별들이 오래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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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Lab Origin Series

맨 박스(MAN BOX)

두 번째 판타지 랩 연구 주제는 맨 박스(Man Box)이다. 맨 박스라는 말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개념은 단순하다. '남자다움'의 굴레, 남자라면 ~해야 한다 식의 말들의 보관함이다. 예를 들면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는 감정을 숨겨야 한다. 남자는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 등의 사회가 암묵적으로 남자에게 요구하는 명령들이다.

 나는 한 권의 책을 보고 맨 박스에 대해 알게 되었고, 거기서 수집한 정보와 연구실에서 읽었던 책들, 그리고 나의 경험을 섞어 글을 써보려 한다. 과거 독일은 나치즘에 빠져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범죄를 저질렀다. 지금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 치부하는 우생학이라는 기준을 가져와 사람들을 학살하고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라 치켜세우며 우월감에 젖기도 하였다. 하지만 독일은 패망하였고, 이후 독일은 총리가 희생자들의 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등 지난날의 만행을 잊지 않고 반성하였다. 맨 박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과거 독일의 나치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라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맨 박스가 나치즘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에 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맨 박스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우리 스스로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맨 박스의 폭력성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맨 박스와 나치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맨 박스와 나치즘의 공통점에는 '전체주의'와 '악의 평범성'에 있다. 

전체를 위해서라면 개인 따위는 희생당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 그것이 전체주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맨 박스에는 어떻게 전체주의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을까? 맨 박스가 보이는 전체주의의 모습은 ‘남자다움’을 강요하고 각자의 개성을 억압하는 맨 박스의 특징에서 보인다. 남자라면 모두가 남자다움을 추구해야만 한다. ‘남자다움’은 남자에게 있어 하나의 진리와도 같은 것이며, 맨 박스에 딴지를 거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각자가 추구하는 개인의 특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해야만 한다. 남자들은 맨 박스라는 통일된 기준을 가지며 살아가야 한다.

 이 말이 폭력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맞다. 이 말은 굉장히 폭력적인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말들을 우리도 알게 모르게 받아들이고 학습하고 다시 가르친다. 왜? 우리의 삶 속에 맨 박스가 뿌리 깊게 자리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한 남자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졌다. 넘어진 아이는 무릎의 상처를 보고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 주변 어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어서 뚝해, 남자가 이런 걸로 우는 거 아니야.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우는 거야. 남자는 힘이 들어도, 슬퍼도, 아파도 눈물을 보여선 안 되는 거야.라는 식으로 오히려 아이를 다그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아이를 다그치는 이유는 아이의 행동이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니까. 만일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였다면, 어땠을까?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안아주지 않았을까? 남자도 눈물이 나는 순간이 있다. 남자도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 아니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남자들에게 그렇게 요구하고 당연히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입은 피해는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 다들 그렇게 크는 것이라 말하며 책임을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유별나게 딴지를 거냐며 언성을 높일 것인가? 지금 우리의 모습이 나치즘에 빠졌던 독일의 행동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맨 박스라는 기준을 지키기 위해, 이런 개인들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런 변명은 오히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강도의 차이는 무의미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 보자. 끔찍한 범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악인들만이 저지를까? 답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아니다. 평범한 우리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우리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즉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이히만 재판으로 널리 알려진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전범재판이 있었다. 

이를 관찰하고 기록한 한 철학자가 남긴 한마디, 우리는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의 탄생이었다. 

나치가 자행한 반인류적인 범죄도 이상한 사람만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제도를 갖고 운영한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별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맨 박스도 ‘악의 평범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맨 박스 품고 있는 차별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유리천장, 가사는 여성의 영역이라는 생각, 아이의 교육은 엄마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등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맨 박스를 한 요소인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방식이 우리 삶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가 아닐까. 한 안타까운 예로 얼마 전 있었던 강남역 사건을 들 수 있다. 어떤 정신병자에 의해서 한 여성이 살해당한 범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정신병자만의 문제일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맨 박스의 저주가 한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그 범인의 무의식 속에 있던 여성은 남자보다 아래라는 생각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하위에 있다는 생각과 그저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그 뒤틀린 생각을 문제 삼아야 한다. 그 뒤틀린 생각의 배경에 있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남자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행동으로 옮길 것을 강요한 맨 박스를 비판해야만 한다.

 우리는 흔히 남자아이에게 남자가 강하니까 여자를 지켜 줘야만 해. 

계집애처럼 질질 짜지 말고 뚝. 

뭐냐 그 소녀 감성은! 

등의 말을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 말들은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다. 마치 남자가 여성의 위에 존재하는 것임을 아이에게 끊임없이 세뇌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보아야만 한다. 

이런 말들은 아이의 입장에서 언어폭력이자 아동학대이지 않을까? 

왜 남자아이는 자신다움을 배우기 전에 남자다움을 배워야만 하는가? 

만약 남자아이가 집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면 혹시 우리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일까? 

왜 남자아이는 무리 지어 밖에서 놀아야만 하는 걸까? 

왜 어린 시절 집에서 혼자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이상한 것일까? 

남자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놀면 안 되는 것일까?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와 함께 소꿉놀이를 하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동인 것일까?라고. 

이와는 별개로 우리의 맨 박스는 남자들은 또 한 가지 실수를 하도록 유혹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남자다움’이라며 치켜세우는 것이다. 많은 여자와 관계를 했다는 것이 남성들 사이에서는 업적으로 여기게 하고, 여성과 관계를 해보지 못한 남자를 무시하는 경향을 만든다. 이런 생각의 기반에는 역시 남성이 여성의 위에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만약 당신에게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다른 남성들이 위의 생각을 가지고 당신의 누이를 바라본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끔찍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누이들은 어떨까? 당신이 느끼는 그 감정보다도 더 당신의 누이들은 더 큰 공포감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강남역 사건 이후 사건 현장 주변의 출구에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었었다. 그 한 장 한 장의 종이에는 피해자의 명복을 비는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비틀리고 잔인한 생각에 대한 절규와 비판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우리 중 일부는 그 행동들을 비판했다. 사건의 피해자가 잘못한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고 한 사람도 있었고, 이와 상관없이 여성을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 포스트잇을 붙이는 사람 등 자신의 어긋날 신념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참한 상황이 발생하도록 만든 우리에게도 책임은 분명 존재한다. 여기서 ‘맨 박스’의 개념을 알고 있고 모르고 있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맨 박스’의 핵심 개념인 ‘남자다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과, 그 ‘남자다움’이 잘못된 것이라 말한 것이 너무 늦었다는 점에서 반성을 해야만 할 것이다. 

맨 박스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리가 맨 박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맨 박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맨 박스 속에 담긴 행동이나 말을 할지도 모른다. 괜찮다. 우리는 이제 맨 박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디뎠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맨 박스를 탈출하는 방법은 당신의 성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만약 당신이 남성이라면 주변의 여성들에게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평소 맨 박스로 인해  입는 피해에 대해 물어보면 된다. 아마 당신은 당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례를 듣게 될 것이다. 많은 예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천천히 한 가지 한 가지씩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차별을 없애 가면 된다. 그리고 늘 깨어있어야만 한다. 우리의 무의식중에 자리한 맨 박스가 당신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고 사는 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맨 박스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도, 말을 조심하지 않는다면 행동이 변하지 않고,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세상은 바뀔 수 없게 된다. 이런 기본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싶다면 스스로 공부하고 활동해보는 것을 조심스레 추천해본다. 당신의 작은 몸짓 하나가 당신의 부인이나 딸, 그리고 누나나 동생이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테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라면 주변의 남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주변의 남성들은 당신이 겪고 있는 피해를 잘 알고 있지 못한다. 당신이 겪었던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특히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당신의 이야기에 아버지와 오빠 동생 그리고 남편과 아들은 조금은 놀랄 수도 있지만,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된다면 그들은 맨 박스의 억압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당신의 작은 실천으로도 당신 주변의 남성들은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은 참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고 있었으면 한다. 

위에서는 ‘남자다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분명 ‘여성다움’에 대한 편견과 억압도 분명 존재한다. 성별에 따라 이러이러해야만 한다는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간단하다. 당신이 당신다움을 찾고 마음껏 뽐내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개성으로 인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다 아름다워진다. 

성별에 따라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는 당신의 개성을 억압하려는 망령들의 외침일 뿐이다. 

당신 스스로 자신을 가두려 하지 마라. 

당신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당신은 자유로울 때 가장 빛이 난다. 

잊지 말자. 

우리는 아름답게 빛을 내며 살 의무가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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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의 경제/금융/정치 탐구

만다린의 경/금/정 161123 탐구 #4


안녕하세요~ 만다린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경/금/정 탐구를 하게 되었네요.

어제 저는 공지를 올렸었죠?

그래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간단간단하게 적도록 할게요^^

스똬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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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제

-특별한 일이 없는 거 같습니다만은  내년 1월달에 미국대선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씨가 제 45대 대통령에 제임할때가 가장 위혐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코스피/코스닥지수가 내릴 수도 있지요.

2.금융

-이 분야도 지금으로서 외관상 봤을 때는 별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만간에 미국이 금리인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도 물가가 올라가고 외국에도 물가가 올라갑니다. 물가 상승은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보다 더 많은 지출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죠.(또 다른 주제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아 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3.정치

-아~ 이 분야는 좀 많군요. 이제 4차인가? 5차인가? 100만 촛불시위가 있었습니다. 근데 그걸 아직도 씹고있는 대통령! 정말 연우님 말대로 그 국민이 국민이 아닐수도 있겠네요.ㅎ

점점 화제 분위기가 사라져가는 것은 기분탓? 검찰총장님~대통령과 한패 되지 말고 잘 좀 해주세요!!

글구 대박인 것은~ 저번주 일요일에 1차 수사 발표있었잖아요? 그때 대통령을 공범자라고 써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는... 그런 소리가...

그리고 그 길라임인가 그것도 그렇고 JTBC에서 젤 먼저 밝힌 '박태환과 김연아' 선수도 최순실 게이트 피해자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어떻게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서 찍혔다고 할수있나고요?

(물론 팬은 아닙니다만은)

아무튼 이런 일이 있었네요.저는! 탄핵을 바랄 뿐입니다.ㅇㅅㅇ

혹시 동감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hands up~손을 들어주세요*^_^*

감사합니다.

 

작가의 말

혹시 다들 방송국 뭐 보시나요? 저는 JTBC만 보는데... 다른 방송사들은 다 사실만을 말하지 않는거 같아서요.

JTBC는 정부에서 안 건드린다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저는 이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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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의 경제/금융/정치 탐구

만다린의 경제/금융/정치 탐구

{공지}

안녕하세요 만다린입니당

오늘은 정치만ㅋㅋㅋ 하도록 할게요. 글을 보고 의견이 어떤지 말해주세요. 댓을 달아드릴게용^^

그럼 시작하도록 할게요. (다음주 토요일 글업합니다.)/업로드: 수and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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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최순실 비선/ 박근혜 대통령 부정의혹(?!?!)

 

이 사건은 처음에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가 이대를 특별로 들어갔다는 사건에 의해서 학생들이 일어난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박 대통령이 최씨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대로 따라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설문을 보기 전에 최씨가 연설문을 받아서 고치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대통령도 잘못한거 많습니다.

1. 세월호 7시간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때 박대통령은...밑기지 않겠지만 그때 보톡스를 맞을려고 프로폴린이란(일종의 마약 마취제) 것을 맞았는데 그거맞는다고 그 7시간동안 아~무것도 안했다고 합니다.

 

2.국정교과서 편찬은 왜 하는가

   >설마 자기 아빠때문에, 자기아빠가 교과서에 나쁘게 나오니깐 그것때문에 하는가

 

등이 있습니다. 기억이 다 안나서...ㅠㅠ

 

아무튼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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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생각할수록 어이없네요. 저는 요즘 일어나고있는 촛불집회를 응원합니다.

                근데 정말 하야할 생각은 없나봐요.ㅎㅎㅎ

                우리의견은 다 무시하는 건가;; 공약때 '국민을 위하겠습니다' 라는 문장은 어디갔는지;;

                글구 공약으로 걸었던 신공항 배치 그것도 인청공항 확장으로 되고

                이게 다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대박인 사진 하나 보여드릴게요. 뉴욕 타임즈에 나온건데

                박대통령 머릿속에 최씨가 떡하니 자리잡고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박이죠.

            

 

                 아;; 사진 첨부를 할려고 하니 안되네요....

                사진이 궁금하시다면 밑에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보내드리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사진 첨부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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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집

무제 1.5

세월은 갔고 계절도 흘렀다. 양장을 차려입은 두 여인은 빈집이 되어버린 오래된 한옥을 떠나왔다. 기차를 타고 달려온 곳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효원은 경애의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철제가방을 들고선 산등성이를 넘고 넘어 풀밭을 지나 무덤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진 곳에 가방을 두었다. 경애는 의아한 눈빛으로 효원을 올려다보았다. 효원은 경애의 손을 다시 한 번 꽉 잡고선 얕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미소를 보자 경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인사드려, 경애야" 

엉거주춤 인사를 올렸다. 무덤 옆 양지바른 곳에 둘은 한 자매처럼한적한 시골 풍경을 바라보았다. 효원은 경애를 보지 않은 채 먼 허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 봉긋한 두 무덤은 경애의 부모님의 무덤이었다. 젖먹이 시절 효원의 집으로 온 경애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느 집의 자식인지 그 어느 것도 궁금해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효원의 어미인 명월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경애의 어미와는 둘도 없는 사이였다. 스무 살, 시리도록 추운 겨울날 보따리 하나 들고 집을 나와 기생생활을 한 명월은 경애의 어미와의 소식은끊어진 지 오래였다. 첩실로 들어가 살아갈 때 즘, 체구가 작은 갓난애 하나와 아직 덜 만든 배냇저고리와 함께 노란 종이에 꾹꾹 눌러쓴 먹이 번진 편지와 함께 명월에 전달되었다.

 

젖도 제대로 못 물린 것인지 앙상한 아기는 명월의 얼굴을 보고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명월은 가슴속 뜨거움이 치밀어 올랐다. 친구의 편지를 읽고 나서야 이 아기가 자신의 친구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선 명월은 가엾은 경애를 가슴에 품고서 하루를 울었다. 반나절은 불쌍하고 가엾은 아이의 운명의 울음 지었고 반나절은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울음 지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양지바른 곳에 친구를 묻어주는 일밖에 없었다. 그렇게 옛 동무를 보내고 나니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를 빼다 박은 이 아이를 친구의 이름인 경애라고 지었다. 명월은 아기에게 맑고 고운 목소리로 '경애야'라고 불러보았다. 


마음속 경애는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요동쳤다. 경애를 호적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딸처럼 키웠다. 경애는 명월에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효원에게 이 사실을 말한 것도 효원이 머리가 크고 자란 다음에 마음에 담아둔 말을 꺼냈다. 효원은 담담히 받아드렸다. 파란 하늘이 머리 위로 지나간다. 새소리가 들려온다. 경애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새소리가 들려온다. 경애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효원은 묵묵히 경애를 꼭 안아주었다. 눈물이 얼굴에 마를때 쯤 경애는 부모님에게 큰 절을 올렸다.경애와 효원은 두손을 마주잡고선 산을 내려갔다. 별이 아름답게 박힌 하늘을 바라보며 이루지 못할 소원들을 빌어본다.

 

작은 방안에 둘은 얼굴을 맞대고 누었다. 효원은 경애의 머리칼을 살포시 넘겨준다. 자매같은 두 사람이 마주잡은 두 손을 놓치지 않고 잠을 청한다.

 

헤어짐을 앞둔 사람의 마음은 막막하지만 셀렘을 앞둔 사람의 마음은 하늘을 걷는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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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지독한 장마는 창가에 비친 아씨의 우는 얼굴이 웃는 얼굴처럼 보일 만큼 일렁거릴 만큼 쏟아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아씨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경애는 지금 아씨에게 내리고 있는 장마에 우산도 피난처도 되어줄 수가 없었다. 아씨의 장마는 여름날의 장마보다 써늘하고 눅눅하고 아렸을 것이다. 경애는 처마 밑에 앉아 일렁거리는창호지 속 아씨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고왔던 아씨의 얼굴은 분첩이 녹아 굳었고 연지는 번져 버렸다. 하얀 소매는 눅눅해 져버려 단내도 아닌 것이 밤꽃 냄새도 아니오 묘한 향이 돌았다. 장마가 그칠 때 즘에서야 아씨의 창호지의 문틈이 열렸다. 경애가 생각했던 아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한복 빼고는 입은 적이 없던 양장을 차려입고 무거운 가채를 내려놓고 허리선 만큼의 머리 길이로 잘라 버렸다. 방안에는 아씨의 거뭇한 머리카락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씨의 손에는 가방이 하나 있었다. 아씨는 한참을 문틈에 서서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더니 경애를 향해 돌아섰다. 검은색 양장을 경애에 손에 들려주고선 아씨는 경애에게 바람과 풀잎이 들을 소리 정도로 경애에게 첫마디를 꺼내었다. 

" 경애야, 이걸로 갈아입고 짐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하자구나 " 

경애는 서둘러 별채로 이동하였다. 처음 입어 보는 검은 양장 옷이 낯설기도 참으로 낯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롭고 기분도 좋았다. 그동안 입고 있었던 꼬질꼬질하고 색이 바래 버린 노래진 한복을 개어 한쪽 구석으로 놓았다. 얼마나 많이 입었으면 치마 밑단은 헤져 버렸다. 경애는 거울 속에 비친 양장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선 나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경애를 보는 아씨는 장마가 끝나고 처음으로 짓는 미소였다. 경애는 방안에 별거 없는 옷가지들과 돈들을 분홍색 보자기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거울에 보고선 신발을 신으려 고개를 내렸을 때는 자신의 꼬질꼬질한 신발은 어디 가고 예쁜 서양식 신발이 놓여 있었다. 그걸 보고 경애는 아직 마르지도 않은 땅을 하얀 양말을 신고 아씨에게 달려갔다. 

그런 경애를 보며 아씨는 기분 좋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 경애야, 하얀 양말이 흙탕물 때문에 흙 양말이 되어버렸구나, 이거 참 " 
" 아씨, 이게 참말로 저한테 주는 거 맞는 거지요? 이렇게 이쁜 신발은 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거네요. 이리 이쁜 걸 어찌 신고 다닌다 말인에유….넘 고마워서 눈물 나려고 하네요"


한 겨울, 병판, 늙은 호래비는 병으로 세상을 떴고, 15년 동안 참고 누르고 있었던 정실부인은 명월을" 우리 이쁜 경애 얼굴에 눈물 자국 묻으면 안 되지 그만 그치거라" 
" 그런데, 임 서방 아저씨도 꽃분어매도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어제부터 보이지도 않는다고요, 아씨는 아시는 거 없어 유? 지는 무지해서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커 보였던 집이 더 커 보이구먼요, 이제 아씨도 저도 가버리면 이 집은 어찌 돼요?" 

아씨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랬다. 이미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임 서방도 꽃분어매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어제부로 다 이 집을 떠나보낸 것도 아씨였다. 아씨는 그들의 노비 문서도 태워버리고 그들에게 자그마한 돈을 손에 쥐여주고선더 나은 세상에서 이런 좁은 곳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곳에 정착할 만한 돈 정도를 주었다. 아씨는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더는 낡아빠지고 섞어 버린 조선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이 변화하면 자신도 변화해야자신도 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북적북적북적 북적 되었던 곳이 자신과 경애밖에 없다는 것이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처리할 것이 있었다. 면사무소에 들려 경애를 자신의 친동생으로 호적을 바꾸었다. 비어 있던 곳에는 경애의 이름이 채워졌다. 처음에는 되지 않을 것 같은 호적등록도 조그마한 돈을 쥐여주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금세 풀려버렸다. 경애를 데리고 아씨는 산등성이를 올라타 도착한 곳은 다름이 아닌 아씨의 어머니의 산소였다. 경애는 아씨 어머니의 산소에서 훌쩍훌쩍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경애에게 아씨의 어머니는 친어머니와 다름없는 분이었다. 

아씨의 어머니인 명월은 한양에서 제일 간다는 기생이었다. 그녀를 보러 오는 사내들이 도성 밖에까지 이어진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명월은 병판의 손에 의해서 화초를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첩실로 들어가 효원을 낳았다. 병판은 효원을 참으로 아끼었다. 첩실의 아이였지만 누구보다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효원을 온실 속의화초로 키우려고 하였다, 하지만 명월의 생각은? 달랐다. 명월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옛날의 조선이 아녔다. 조선은 열강에 의해서 문을 열어 버렸고 외세의 의해서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있었다. 명월은 알았다. 여자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라고 그래서 명월은 효원을 사내아이만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여 학문을 가르치고 산수도 가르쳤다. 그래서 효원은 바느질만 하는 여인이 아니라 신여성이 될 수있었다.  한겨울, 별채로 내쫓고 말았다. 명월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 늙은 홀아비 같은 양반이 만수무강하지는 않을 거리고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병판 몰래 돈을 모으고 자신이 살 구멍을 만드는 그런 암고양이 같은 여자였다. 별채로 쫓겨나 버린 명월은 농사를 시작하여 수확을 일어 냈고 그걸로 부를 축적을 할 수 있었다. 명월은 고양이 같은 여자였다. 자신이 꼬리를 내려야 할 때는 끊임없이 내리고 또 올려야 할 때는 올리는 눈치가 빨랐고 계산이 잘 돌아가는 여자였기에 그 홀아비 같은 병 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고양이 같았던 명월은 병이 들고 들어 노쇠해진 늙은 암고양이는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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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제비 다방

좋아하는 영화들이 많다. 최근에 본 영화들도 있고 옛날에 본 영화들도 있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영화들도 있고 많은 카메라안에서 담겨진 영화들은 많다. 그 중에서 좋아하는 영화는 얼마나 있을까, 그 중에서도 감명있게 본 영화 중 하나인 미드나잇인 파리를 오늘 다시 한번 보았다. 참 멋진 영화이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예술이 꽃 피며 아름다웠던 시대로 가서 허밍웨이,피카소, 달리 ... 참 멋진 영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보다 보니 우리도 저런 영화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관통했다. 격동의 시대였던 일제강점기 속에서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작품들이 놓여져있다. 그 중에서 나는 이상을 좋아라한다. 사실 이상은 제비다방이라는 다방을 운영했었다. 서울에 이상의 제비다방이 놓여져있다. 우디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 처럼 화려한 공간이 아니지만 그 시대 속에서 다른 것들이 섞여 놓여진 그 다방에서 여러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이 앉아 있다고 생각만 해도 참 아찔한 상상이지 않는가, 만약 그 속에 내가 있다면 정말 어떨떨 할꺼 같다. 모던보이인 백석까지 그 공간에 놓여 있다면 아, 그건 정말 황홀한 상상이지 않는가, 아픈 시대였고, 고통의 시대였지만 그 시대 속의 문학은 아름답게 피어났다. 말로는 잘 표현을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 함부로 말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그런 작품이 만들어진다면,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이다.

 

머릿속의 수 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레코드 판을 만지고 있는 한 지식인과, 서로 글에 대해 토론을 하는 지식인들과 , 고뇌의 빠져 있는 지식인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묻어본다. 묻고 또 묻어 결국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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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의 경제/금융/정치 탐구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정-경-금 일어난 일 한줄소개

1.삼성전자 갤럭시 노트 7 생산 중단. 판매 끝

   또 갤럭시 노트 7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리콜에서 임종으로 한달 반밖에 안된 휴대폰이 사라졌다.

   이번 임종(휴대폰의?) 으로 삼성과의 대결구도에 있는 애플과 구글이 서로 경쟁(?)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이 처음으로 휴대폰을 내놓았다.)

 

2.월요일 2016 노벨상 수상자 수상소감 발표(수상)

  일본과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자의 차이가 많이 난다.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화이팅!!!!!

 

3.법인세 올리기 대작전, 세계는 내리는데 우리나라만 올린다?

  법인세의 대부분은 0.1%의 기업이 낸다.(70%~75%) 우리나라가 법인세를 올리려고 하는데에 있어서 우려의 목소   리가 크다. 우려의 목소리가 큰 이유는 법인세가 올라가면 투자가 감소하고 신규채용도 없어져 일자리문제가 좀 더 심   각해진다고 볼 수있다. 따라서 법인세를 올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될수있다고 볼수있다.

  (세금 문제도 포함.)

 

 

3가지.

 

작가의 말: 다들 잘 계신가요? 경제,금융,정치(?)에 대한 글 1가지씩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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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내가 사랑했던 당신, B.E.S.T

이 세상이 다 변한다고 해도, 당신만큼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내 곁에 없는 당신이지만

같은 하늘아래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연이라도 마주칠 수 있으니

그 때 당신을 마주쳤을 때,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당신은 정말로 멋있었다.

내가 충분히 반할만큼.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어도, 충분히 그대에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정말 멋졌다.

 

내가 먼저 당신의 핸드폰 번호를 물었고

당신도 웃으면서 번호를 알려줬었지.

 

서로 연락을 자주 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호감, 그 후에는 정신없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당신에게 빠져들었었다.

그 때의 우리는 대화가 아주 잘 통했었다.

 

당신과의 만남과 연락은 늘 설레고 행복했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면서

부러워하기도 했었고, 우린 언제나 함께였었다.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밤새 얘기하면서

달콤한 사랑도 많이 속삭였던 그 때의 우리였었다.

절대로 변하지 말자며 수많은 약속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얘기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이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이 나 버렸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잘 통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우리는 왜 인정하지 못했을까?

 

처음부터 당신과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늘 행복하기만을 바라던 당신과는 달리,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당신과 함께 나누길 바랐었는데

당신은 귀를 닫아버리고, 입도 닫아버리곤 했었지.

 

그런 당신에게 너무 서운했던 나는

더 어리광을 피워댔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당신은

시종일관 묵언했었지.

 

나는 당신에게 많은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냥,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되는 거였는데,

속상한 마음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

 

왜,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면 나에게 차가워지는 거냐고.

 

한참동안 말이 없던 당신은 대답했다.

 

왜 굳이 힘들다는 얘기로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데이트를 망쳐 놓는 거냐며

오히려 내게 반문하며 지겹다고 했던 당신.

 

당신의 지겹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발끈했는데,

당신은 내게 더 냉정하게 얘기했었다.

 

“네가 누군지 나는 모르겠다.”

 

그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처음엔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었던 내가 좋아서

당신이 나를 정말 닮고 싶었기에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었고,

앞으로 나와 함께 꿈꾸는 미래가 너무 즐겁고

행복할거란 기대에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왜 항상 만날 때마다 힘들다고 어리광 피워대며

나의 우울한 감정을 당신에게까지도 옮기는 거냐고.

 

나는 연인사이에 힘들다고 얘기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물었지만, 당신은 내가 너무 어린 것 같다고만 말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대화가 되질 않았었지.

겁이 많은 나는, 그 후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고

그런 날 당신은 어떻게든 다시 잘 지내보자며 타이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계속 껴안고

힘들어하다가 술에 의존한 채 취하면 울면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은 한숨만 내쉴 뿐, 아무런 답이 없었지.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고,

늘 서로에게 지쳐있던 상황에서 나는 또다시 사랑에 상처받고 싶지 않아

계속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한 없이 다정다감했던 당신은,

이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나에게 냉정해졌고

나는 또다시 애써 밝은 척, 당신의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해보았지만, 이미 늦었던 것이다.

 

당신은 내게 이별을 고했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당신의 마지막 한마디에 나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졌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에게 나는 여자가 아니라며 잔인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당신.

 

하필이면, 그 날 비가 무척 많이 오던 날이었지.

우산을 쓰고 빗소리에 묻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한동안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그 다음에는 분노로 바뀌었고, 미친 듯이 화가 나서

당신을 참 오랫동안 괴롭혔었다.

 

나랑 헤어지고, 당신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수시로, 구질구질하게 매달려보기도 했고,

온갖 심한 막말도 거침없이 해대면서도

마음속 한 구석에는 다시 돌아 와주길 바라고 또 바랐었는데

나에게 돌아온 건 당신의 무응답.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당신은 칼같이 나를 잘라냈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정말 안 되겠구나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당신과의 사랑이 끝이 나고, 시간은 정말 빠르게도 흘러가더라.

허무하게 당신과의 사랑이 끝난 게 아쉬워서 인건지

그동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달콤한 미래에 기대가 너무 커서

미련이었던 건지는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더라.

 

난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한다는 사실.

아직도 당신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당신을 아직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늦었다는 걸 알지만

한번쯤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긴 하다.

 

만약, 다시 되돌아간다면,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조금은 더 생각해봐야 하는 아직은 풀리지 않는 숙제를 껴안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

 

그 때, 당신이 나빴던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기에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사랑하고 있을 땐,

서로에게 거짓 없이 진실 된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생각하진 않기로 한다.

당신도 충분히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테니까.

워낙, 힘든 거 내색하지 않던 당신이었으니까.

 

비록, 짧은 사랑을 했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당신과 만날 수도 연락도 할 수 없지만

처음처럼 당신은 여전히 멋있는 사람으로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항상 당신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많이 의지했고, 진심으로 당신과의 행복한 미래가 이뤄지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당신이니까.

 

나도 당신을 내 마음속에서 잘 떠나보내고

행복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가끔씩은 그 때의 우리가, 당신이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만

또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겨둬야지.

 

당신은 정말 최고로 멋있었고

한없이 다정다감하고 늘 진실 된 사람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그 모습이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딱 한 가지, 변했으면 하는 건

앞으로 누군가와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면

힘들다고 말하는 상대방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당신이 되었으면 하는 것.

 

그 부분만 변화된다면,

아마 당신은 최고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사랑했던 당신, B. E. S. T!

 

이제는 각자의 길 위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길 바라면서 이제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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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시작점에 서다!

내 나이 만으로 이제 꽉 서른이다.

서른 살이면 꽤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깨닫는다.

 

스무살까지는 부모님의 보호아래 살았다면,

스무살부터 10년이란 세월을 나는 무얼 하며 살았을까,

되돌아 보게 된다.

괜찮은 인생을 살았던 10년은 분명 아니었다.

실수도 많았고, 상처도 많았으며 불안했던 나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기를 거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10년이란 세월동안 방황도 많이 했지만,

분명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10년이란 세월동안 나는

배운 것들이 그래도 많다는 것을 느낀다.

잘못된 선택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나는 한뼘 더 성장을 했고,

어떤 선택을 하든 책임을 져야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으니

나쁘지 않던 방황이었고,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몇 십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앞으로 나는 몇 십년이란 세월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야만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그냥 이렇게 되는대로 살아가기엔 나는 아직 너무도 젊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의지대로 내 선택으로 살아가는 앞으로의 나날들이

나는 잔뜩 기대가 된다.

설렘으로 가득찬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기억하고

열심히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분명 좋은 날 또한 오지 않을까?

 

그 좋은 날이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삶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겠노라 다짐한다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을 사랑하자.

아직 서른 살밖에 안됐으니까.

 

서른, 이제 정말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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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까마귀 엄마

 

까마귀 엄마

 

“응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어디서 들리는 걸까?

 

“응애”

 

대답이라도 하듯이 다시 들려오는 울음소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찾아가 본다.

 

-폴짝폴짝...푸드덕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잘 짜여진 대바구니가 놓여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하얗고 보드라운 천에 갓난아기가 싸여 있었다. 늙은 까마귀는 바구니의 손잡이 위에 앉아 가만히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아기의 새파란 하늘빛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까마귀를 향해 웃었다.

 

아기의 그 새파란 눈을 가만히 마주보던 까마귀는 훌쩍 날아가더니 어디선가 새알을 하나 가져와 아기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아주 조금씩, 혹시나 아기가 먹다가 체할까 조심스레 흘려 넣었다. 그렇게 한 알, 두 알, 마지막 세 번째 알을 가져왔을 때 아기는 까마귀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마치 자신의 것인지 안다는 양 달라는 듯이 내밀어진 그 작은 손에 까마귀는 구멍을 뚫은 세번째 알을 쥐어주었다.

 

그 이후 까마귀는 자신이 보모라도 된 양 아기를 돌보았다. 시간이 흘러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까마귀는 나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기가 자라 옹알이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까마귀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기가 더 이상 옹알이가 아닌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까마귀도 사람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 *

 

“저쪽이다 잡아!”

 

남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하얀 천이 나풀거리며 잔디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하얀 천을 뒤집어 쓴 까마귀가 도망치고 있었다.

 

“이놈의 까마귀가 어디 감히 여사제님의 옷을 훔치는 거냐!”

 

“거기 서라. 옷 도둑놈아!”

 

- 퍼억!

 

입에 물고 있던 옷이 나부끼다 눈앞을 가리자 까마귀는 결국 나무에 부딪쳐 나뒹굴었다. 그런 까마귀를 둘러싸는 사람들, 손에 뜰채를 든 사람도 보이고 몽둥이를 든 사람도 있었다.

 

“좋았어! 어디 맛 좀 봐라!”

 

“저놈 봐. 저 와중에도 입에 문 옷은 안 놓는데?!”

 

“그래봐야 독 안에 든 쥐야! 날지도 못하는 것 같잖아?!”

 

몽둥이가 막 까마귀를 내려치려는 찰나! 갑자기 앙칼진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둬! 우리 엄마한테 뭐하는 짓이야!”

 

주변 덤불에서 갑자기 달려 나와 몽둥이를 휘두르던 남자에게 달려든 건 작은 소녀였다.

 

“이 꼬마가 뭐라고 하는 거야! 저 까마귀가 네 엄마라고?”

 

소녀에게 밀쳐진 남자는 소녀를 밀어냈다. 소녀는 까마귀 앞을 막아섰다. 마치 까마귀를 지키겠다는 듯이 말이다.

 

“까마귀보고 엄마라니. 실성한 거 아냐?”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근처 마을에 사는 아이인가?”

 

갑자기 나타난 소녀와 소녀가 한 말에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한 여인이 다가왔다. 새하얀 사제복에 하얀 피부, 밝은 금발의 기품이 느껴지는 온화한 표정의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소녀와 까마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마치 소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궁금하다는 눈이었다.

 

소녀의 등 뒤에서 사람들을 주시하며 움츠린 까마귀.

그런 까마귀를 지키겠다는 듯이 가로막고 있는 소녀.

그리고 신중한 눈빛으로 까마귀와 소녀를 살피는 여인.

 

“아이야, 그 까마귀가 어찌 너의 엄마란 것이지? 너는 인간이고 네 뒤에 있는 것은 까마귀인데. 까마귀가 인간인 너를 낳았다는 거니?”

 

“날 낳은 게 누구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날 키워준 건 내 뒤에 있는 엄마라고요!”

 

소녀의 대답에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녀의 말대로라면 저 까마귀가 소녀를 돌봐주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저 늙은 까마귀가 어린 소녀를 키웠다는 말은 그리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엄마라고? 까마귀가 아니라?”

 

“그래요! 엄마에요! 엄마. 그렇지? 엄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왜 아무 말도 안하는 거야?!”

 

소녀의 말에 까마귀는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여인의 눈에는 어쩐지 곤란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결국 참다못한 소녀가 까마귀를 돌아보고는 재차 불러댔다.

 

“엄마. 왜 아무 말도 안 해! 뭐라고 말 좀 해봐!”

 

그 모습에 여인은 까마귀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었다.

 

“혹시 이 아이가 곤란할까봐 그러는 건가요?”

 

그런 여인의 모습에 까마귀는 주저하듯이 고개를 주춤거렸다. 여인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여인의 근처에서 보다 못한 사람들이 뜰채를 휘두르며 나서려고 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 까마귀의 부리가 움직이고 그 부리에서 나온 건 '까악'거리는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허스키하고 거칠지만 분명 사람의 말이었다.

 

“그야 곤란하니까. 난 당신들의 옷을 훔쳤고, 난 까마귀이니까. 당신들은 이 아이를 나에게서 떼어놓을지도 모르니까.”

 

아이를 떼어놓을지도 모른다니. 이건 정말 엄마가 아이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무슨 소리야. 이 사람들이 엄마와 나를 왜 떼어놔! 그리고 이 옷 아직 입을 만한데 옷은 왜 훔쳤어? 나중에 낡은 옷 내놓을 때 하나 가져오면 된다니까! 왜 그랬어?”

 

울먹거리는 소녀의 말에 까마귀가 한 대답은 사람들의 손에 들린 뜰채와 몽둥이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오늘이 너를 만난 지 12년이 되는 날이니까. 깨끗하고 좋은걸 주고 싶었어.”

 

까마귀는 소녀에게 생일 선물을 주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서 신전에서 빨아 널어놓은 옷 중에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가져가려 했는데. 그 옷이 하필 여사제의 사제복이라 사람들에게 쫓기게 된 것이다.

 

‘정말로 저 까마귀가 이 아이의 엄마구나. 신이시여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군요.’

 

“저 옷은 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사제복이니까요. 하지만 깨끗하고 좋은 옷이라면 다른 것도 있어요. 그러니 나와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여인의 말에 아이는 까마귀를 품에 안은 채 여전히 경계하며 두리번거렸다. 까마귀는 여인에게 정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우릴 해치지 않을 거야? 이 아이를 뺏어가지 않을 거야?”

 

“네. 약속하죠. 당신들을 해치지도 떼어놓지도 않겠습니다.”

 

* * *

 

여사제를 따라 신전의 복도를 걷던 소녀는 열려진 문 앞에 멈춰 섰다. 소녀가 멈춘 곳은 신전의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는 어머 어마한 양의 책들이 있었고 소녀와 까마귀는 처음 보는 책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책장 사이를 누비며 책을 뺐다 넣었다하며 구경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여사제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까마귀는 소녀에게 글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하였고 소녀도 글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소녀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글자를 배우지도 않았는데 쓰기도 하고 읽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에 여사제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고 수도의 대신전에 까마귀와 소녀의 일을 보고했다.

 

얼마 후 대신전에서 보낸 사제와 마법사 길드에서 보낸 마스터들이 신전을 방문했다. 그들은 까마귀와 소녀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아마도 이것이 누군가의 마법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었다. 그 마법이 신성마법인지 마법사의 마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녀에게 걸린 마법이 소녀를 발견한 까마귀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까마귀는 소녀와 함께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날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과 소녀는 마법으로 인해 굳이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되고 익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갓난아기에게 이런 마법을 걸어 숲속에 버려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소녀와 까마귀는 서로에게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 늙은 까마귀가 정말로 소녀의 어미가 되었다는 것. 그것만큼은 그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사제의 배려로 신전에서 지내게 된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사제가 되길 원했다. 그날 까마귀가 여사제의 옷을 훔친 것이 마치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여사제는 소녀가 사제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

 

소녀가 20살이 되어 여인이 되던 날 성인식과 함께 정식 사제가 되었다. 소녀의 사제명은 ‘도노두아’ 이곳의 말로는 ‘축복받은 아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여사제는 까마귀에게도 이름을 주었다. ‘카르두아’ ‘축복받은 까마귀’ 라고 말이다.

 

* * *

 

“엄마. 저 다녀올게요.”

 

카르두아를 향해 웃는 소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다. 새하얀 정식 사제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여인이었다. 카르두아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그 눈은 그때처럼 새파란 하늘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보고 싶을 거야.”

 

보고 싶을 거라는 말에 도노두아는 환하게 웃으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도노두아는 내심 아쉬웠다. 같이 갈수 있다면 좋을 텐데. 대신전에서는 까마귀를 들일 수 없다하여 도노두아만 가게 된 것이다.

 

“응. 나도.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올게요. 사제 신고만 하고 바로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도노두아는 카르두아를 안고 있는 여사제에게도 인사를 건네었다.

 

“다녀올게요. 스승님.”

 

마차에 올라탄 도노두아는 신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카르두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카르두아 역시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노두아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듯이. 절대로 잊을 수 없다는 듯이.

 

* * *

 

도노두아가 정식 여사제 신고를 위해 수도의 대신전으로 간지 며칠쯤 되었을까. 여사제는 창가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카르두아를 보았다.

 

“카르두아? 뭐하는 거야?”

 

“나는 법을 떠올리고 있어.”

 

그 말에 여사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날수 있어? 당신 못 날잖아?”

 

“날수 있게 될 거야.”

 

최근 들어 신전의 수도사들이 요즘 들어 창가에서 날갯짓을 하는 카르두아를 자주 보았다고 했다. 그게 나는 연습을 하는 거였을까? 도노두아를 보러가기 위해서? 여사제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재차 물었다.

 

“날수 있게 되면 어딜 가려고?”

 

“보러 갈 거야. 내 아이.”

 

“기다리면 올 텐데?”

 

“안 돼. 늦어.”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늦다니? 무슨 뜻일까? 그러고 보니 수련사들이 최근 들어 카르두아가 가끔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도 하였다. 여사제는 정말 불안했다. 카르두아가 날게 되면 그대로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을까봐. 도노두아가 슬퍼하게 될까봐.

 

* * *

 

“스승님. 저 왔어요. 다녀왔어요.”

 

신전 도서관의 문이 열리며 도노두아가 뛰어 들어왔다. 여사제는 읽고 있던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고는 어딘가 슬퍼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도노두아를 반겨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스승님도요.”

 

도노두아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사제를 그런 그녀를 보며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스승님. 그런데 엄마는요? 아까부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요. 어디 계신 거예요?”

 

여사제는 살포시 한숨을 쉬며 슬픈 표정으로 도노두아를 바라보았다.

 

“도노두아. 카르두아는 돌아갔어요. 원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여사제의 말에 도노두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무슨...말씀이세요? 엄마가 돌아가다니요? 어디로요? 어디로 가셨는데요?”

 

새파란 하늘빛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하얀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여사제는 마음이 아팠다. 갓난아기 때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을 모녀를 이렇게 헤어지게 한 게 마치 자신의 잘못 같았다. 대신전에 한번이라도 더 부탁해 볼 것을...카르두아를 새장에 넣어서라도 같이 보낼 것을...괜스레 자신의 잘못 같았다.

 

“도노두아. 어제 카르두아는 숲속을 향해서 날아갔어요. 혹시나 해서 방문도 창문도 덧문까지 다 닫아두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자신의 몸집만한 석상으로 덧문까지 부셔버리고는 날아갔어요. 미안해요. 도노두아. 미안해요.”

 

도노두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잊은 채 숲속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오늘이 도노두아의 20번째 생일인데. 자신의 생일날 항상 옆에 있어주던 엄마가 더 이상 자신의 곁에 없는 것이다.

 

도노두아는 그 자리에서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을 잊은 채 날아가 버린 엄마를 원망하며 그리워하며 한참을 울었다. 문득 신전 앞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뒤이어 한 수련사가 도서관으로 황급히 들어오며 말했다.

 

“여사제님. 도노두아. 카르두아가 돌아왔어요! 지금 앞마당에...”

 

수련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노두아는 이미 일어서서 앞마당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한 엄마가 돌아온 것이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안 올 줄 알았는데. 너무나 보고 싶었던 엄마가 돌아온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최고이자 가장 사랑하는 엄마였다.

 

환하게 햇살이 비치는 신전 앞마당. 그곳에 카르두아가 있었다. 많이 지쳐 보이는 모습으로 부리에는 커다란 대바구니를 물고는 그렇게 지쳐 쓰러져 있었다. 도노두아는 카르두아를 품안에 안아들었다. 도노두아의 품에서 카르두아는 아끼고 아껴두었던 마지막 말을 꺼냈다.

 

“사랑하는 내 아이. 네가 먹어 버린 게 내 마지막 알이었지만 괜찮아. 네가 내 아이니까. 내 사랑하는 아이. 20번째 생일 축하해.”

 

늙은 까마귀 카르두아는 그 말을 끝으로 사랑하는 아이의 품안에서 마지막 숨을 쉬었다. 카르두아가 가져온 대바구니에는 20송이의 새하얀 장미가 담겨있었다. 20송이 순백의 장미는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 찬란한 햇빛 아래 너무나 아름답고 향기롭게 빛나고 있었다. 카르두아를 안은 도노두아의 새파란 하늘빛 눈에서는 눈물이 반짝이며 흘러내렸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