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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거닐다

오늘 감사했던 것 세가지를 고른다면?

 

"오늘 감사했던 것 3가지를 고른다면 뭘까?"

 

종종 수업시간에 아이에게 묻곤 한다.

 

그럼 아이는 매우 고민고민하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꺼내본다.


특히 '무언가'를 '이뤄낸'기억, 
혹은 '무언가'를 '받게 된'것들을 말이다.

 

'오늘 체육시간에 축구를 했는데 제가 골을 넣었어요.'

 

'엄마가 새 운동화를 사줬어요'

 

그렇게 한 두개를 얘기하곤 도저히 세번째 감사제목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럼 나는 운을 뗀다.

오늘 아침에 잘 일어났어?
네.

평상시와 달랐던 점이 있어?
음.. 오늘은 휴일이어서 늦게 일어났어요.
우와 평상시보다 좀 더 잠을 잘 수 있었구나~

 

그러면 아이는 곧 눈치채곤 이렇게 웃으며 말하곤 한다.
'오늘은 좀 더 늦잠 잘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아침밥은 먹었고?
네. 
맛있었어? 
맛있지는 않았어요.
누가 해주셨어?
엄마가요.
이야, 엄마가 해준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구나.

 

 

그럼 또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비록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뭐 어쨋튼 엄마가 밥을 차려주신것은 고마운일이네요.'

 

 

침대 이불이 정말 보송보송 해보이는데?
네 푹신해서 좋아요. 하하. 폭신한 이불이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인가요?
그럼~ 

 

 

처음에는 감사제목을 한 두가지 못나눴던 아이도

1년쯤이 지나면 꽤 많은 것들을,

새로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미' 있는 것들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아이가 일상을 감사함으로 나눌 땐 
참 감동적이다.

 

그래, 그렇게 우린 우리 주위에 있는

일상의 소소함을, 
그것들을 다시 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또 다시 잊고 정신없이 삶을 살다 이 수업을 통해 나 역시 다시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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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거닐다

비가 오는 밤이면

 

이렇게 오늘 밤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돌곶이역에서 살았던, 

아주 작았던 옥탑방이 생각난다.

 

다시 부모님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고,

하지만 당장 있던 곳에서 나가야 할 때.

 

가장 저렴한 곳을 고르고 골랐다.

서울에서도 저 윗동네,

상가건물 옥탑에 있었던 방 하나.

심지어는 방세조차 둘이 나눠 냈던.

 

그렇게 처음 만난 친구와 함께 옥탑방 생활을 했다.

 

그녀나 나나 아무 기댈곳 없이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발버둥치는 중이었다.

 

한번은 비오는 날, 둘이 조용히 앉아 옥상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전 비오는 날의 로망이 하나 있어요. 빗소리를 들으면서 와인 한잔 마시는거에요. 아직 한번도 마셔본 적은 없지만."

 

"그런 로망이라면 언제든 실현할 수 있죠! 우리 당장 와인 하나 사러 가볼까요?"

 

바로 이마트에 가서 점원의 추천을 받아 만 얼마짜리 와인 한병을 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에서 와인잔도 덤으로 준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와인잔이 아닌 샴페인 잔이었지만)

 

그녀나 나나 술이 약했다. 그저 와인잔에 반정도만 따르고는 비오는 옥상에 서서 한 두 모금을 마셨을 뿐이다.

 

그 이후로 비가 오는 밤이면, 우린 약속한 것도 아닌데 옥상에 나가 와인을 즐겼다. 비오지 않은 날엔 생각조차 나지 않던 와인을 말이다. 

 

우리가 즐길 수 있었던 유일한 사치였다.

 

정말로 무더웠던 여름이 그렇게 갔다. 

난 다시 집을 옮기게 되었고, 그 후로 우린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때의 기억이 따뜻하게 떠오른다.

 

정말 가난했던 20대의 어느 날, 

원룸에서조차 살 수 없었기에

좁은 옥탑방을 둘이서 공유하며,

 

비오는 날이면 즐겼던 

만 얼마짜리의 싸구려 와인 한 잔의 여유가

참 풍성했던 그 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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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이러니

#31

십 분 동안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쓰기.

 

몸이 차다. 그래선지 겨울이면 추위를 많이 타고 손발도 남들보다 많이 시려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맨발이다. 여간해서는 집에서 양말을 신지 않는다. 양말을 신으면 너무 답답하다. 마치 갑옷을 입고 있거나 내 발에 족쇄라도 채워놓은 것 같은 기분 마저 든다. 평소 넥타이 할 일이 있어도 웬만해서는 매지 않는 이유 역시 이와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알레르기 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내 고질적인 산만함과 허약한 집중력의 원인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환절기처럼 일교차가 큰 날씨 혹은 추위가 지속되는 겨울이면 비염은 버젓이 다시 고개를 든다. 참으로 집요하다.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게 무척이나 미안해지고 죄를 짓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구한테 미안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창조주 하나님? 아니면 운 좋게 만물의 영장이 된 인간 밑으로 무수히 얽혀있는 먹이사슬 안의 동물들? 그것도 아니라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미안하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을 참이다. 그런데 무심코 보게 되는 경우라던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사람은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법. 그럴 땐 그냥 재밌게 보면 된다. 인생을 걸만한 신념이나 소신 같은 것이 아닌 이상에야 자신이 뱉은 말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조금 가볍게 살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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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기

#1 여행.

연말에 남아있던 연차를 모두 소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주위 직장 동료나 상사분들은 연말인데 어디 놀러가냐고 필자에게 물었고, 그저 고향에 내려가서 쉬다가 온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들 신기한 듯이 필자를 쳐다보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기저기 다녀야 한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며칠 전, 휴가 일정을 공유하면서 들은 이야기다. 다들 휴가를 길게 쓰면, 으레 어느 나라를 여행할 계획이냐고 묻곤 한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가는 직장인들의 대다수는 해외여행을 계획한다. 특히, 아직 나이가 젊은 사람들일 수록 해외여행을 자주 간다. 아무래도 책임져야 할 것이 적을 수록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역시도 아직은 '젊은 사람' 축에 드는 보통 사람이다. 그러나 여행에서만큼은 철저하게 보통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다. 20살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해외여행 한번 안 가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심지어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중인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필자는 독특한 면이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회식이라던가 업무에서 벗어나는 시간에 회사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여행 이야기만큼은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닫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행한번 못갈 정도로 벌이가 시원찮은 건 아니다. 그렇게 높은 벌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 한몸 건사할 정도는 된다. 주변에 친한 친구나 후배들도 여행 한번씩은 잘 다녀오지만, 가끔씩 만나 이야기를 하면 필자는 여전히 독특한 캐릭터로 취급된다.

 

최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일이 잦다.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나아가 비교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여행을 예찬하며 해외로 향하게 된다. 해외가 아니더라도 여행을 가게 된다.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엔 해외에 나가지도 못했던 보통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매년 명절시즌이나 연말이 되면 다들 여행을 떠난다. 물론 그런 보통사람들 와중엔 필자와 같은 일부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행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며 여행을 예찬하곤 한다. 당장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봐도 예쁘고 화사한 필터로 찍은 여행사진들이 즐비하며, 해쉬태그에는 각종 유명 여행지 이름들이 즐비해있다.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면,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것일까? 아니다.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고역에 불과한 타향체험에 불과할 수 있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느냐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그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여행을 가는 시간보다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이 더 많기에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또, 여행을 가는 것보다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한다거나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여행의 효용가치를 비판한다거나 여행의 감동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특별한 일이 중요해 보이는 것 만큼이나 일상의 일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본인은 집에서 편히 쉬면서 늦잠도 자보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도 가며 일상 속의 행복을 누리고 싶지만, 뭔가 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묘한 압박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본인이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는 여행도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판단을 내릴 순 없다. 오로지 여행이라는 행위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만족만이 측정 기준이 될 것이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내가 만족한다면 굳이 여행을 안가도 된다. 여행에서 얻는 만족보다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던가, 따뜻한 장판에 몸을 지지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더 큰 만족을 줄 수도 있다. 이를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폭력일 수도 있다.

 

그런고로 필자 역시 연말에 긴 휴가를 고향에서 보내면서 딱히 무언갈 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집 근처 카페를 가거나, 평소에 보기 힘든 친구들을 만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필자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또한, 큰 만족감을 주고 있다.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면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이런 휴가를 통해 풀어버릴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엄청 특별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나만 만족하는 이런 휴가도 한번쯤은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조심스럽게 모두에게 추천해본다. 굳이 무언가 하지 않더라도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것들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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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2 - 5

285

 

 

 

언제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난 뒤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나는 미이라로 만들어버린 붕대를 조금씩 풀면서 점점 사람다운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 옆에서 노란 슬라임처럼 움직이고 있는 생물은 점점 위로 올라와 내 무릎을 점거했다. 그래도 정말 신기한 것은 이 녀석을 끌어 안았을 때만큼은, 그래도 기분이 좋다고나 해야 하나? 머리가 쾌적해진다고 해야 하나? 계속 끌어 안고 있어도 좋은 기분이 든다. 다우니 향도 나고...

 

“어이! 베니! 그 무릎은 짐의 자리이니라!”

 

아. 그러고 보면. 이름은 내가 지어줬는데 그 계기가 아무래도, 시나가 어떤 사람의 코멘트를 보고, 카시로 부르려고 하다가 레시아에게 사전차단을 당한 이후, 둘이 또 격하게 싸워서 잡화점을 날려먹었다. 결국 내가 이름을 짓기로 해서 ‘베니’가 되었지만, 베니는 은근히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으로 보면, 마치 애완견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베니는 차고로 내가 예전에 길렀던 강아지였지만...

 

“당장 비키지 않으면 페가수스 유성권을 사용하겠노라!”

 

“레시아. 그건 대체 어디서 계속 주워듣는 건지 몰라도 그건 다른 만화의 필살기잖아요.”

 

“밤에도 사용할 수 있다!”

 

“아니. 밤에 사용하면 100%로 죽겠죠.”

 

하얀 올빼미는 내 왼쪽 어깨에서 입을 열었다.

 

“베니가 온 이후로 마스터 옆에 있기 더욱 힘들어진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마스터는 베니를 한번 끌어안으면 놓지 않고 계속 그러고 계시니 말이죠.”

 

“그래도 각자 베니를 다 안아봤을 거 아냐?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해지는 그런 것. 대체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 어떻게 이런 효과가 나타나는지 몰라도, 끌어 안기만 하면 심신이 안정이 된다고 하면 되나? 여태 살아오면서 잡화점을 쭉 이어나가다가, 드디어 잡화점을 하게 된 의미를 찾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지금은 베니만 끌어 안을 수 있다면 확실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베니도 고무풍선에서 나올 법한 기이한 소리를 내며 기뻐했다.

...기뻐한 거 맞지?

 

갑작스레 마나의 반이 빠져나갔다는 의미는 레시아와 시나 중에서 한 명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는 소리인데, 뭔가 화가 잔뜩 난 레시아가 붉은 눈동자를 내 앞에 들이댔다.

 

“주인은 이걸로 얼마나 위안을 받는지 잘 모르겠지만, 짐에게도 어디 한번 줘보거라!”

 

거칠게 베니를 빼앗아 가면서 끌어안는 레시아는 순식간에 땅에 주저 앉더니.

 

“그렇군! 그대도 짐이 좋은 것인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대와 같이 짐을 행복해주는 자는 처음이로다!”

 

볼을 베니에게 비비면서 격렬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이 능력이 얼마나 무서운 능력인가에 대해 입증한 것은, 루나 또한 베니를 끌어 안았을 때 상당히 기뻐했고, 쇼콜라 씨도 살벌한 오러에서 상당히 평온하고 행복한 오러로 바뀌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능력.

 

이제는 마왕까지 함락을 시켜버린 능력인 만큼, 베니는 잡화점 멤버의 일부로 확실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어째서 베니와 말이 통하는 거지?

 

“아 행복하군. 정말 행복해서 이대로 잠들 것만 같노라.”

 

어느 사이에 쿠션이 되어버린 베니와 둥근 카펫에서 눈을 감으려고 하는 마왕 레시아. 연보라 빛의 머리카락이 카펫의 일부분에 넓게 퍼지면서...

 

“아니. 레시아. 바닥에서 자면 안 되요. 차라리 침실에 가서 자야죠. 게다가 지금은 고양이 모습이 아니고, 본 모습으로 고양이 행세하시면 안 된다니까요?”

 

“냥?”

 

“하지 말라고!”

 

레시아는 천천히 일어나면서 볼을 부풀리고는 입을 열었다.

 

“침실은 주인과 같이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던가?”

 

“왜 저하고 같이 들어가는 장소로 명명한 것인지 몰라도, 그건 확실하게 긍정적으로, 절대적으로도 아니라고 봅니다만?”

 

“주인과 낮잠을 같이 자본 기억이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다니.”

 

“댁은 올해에 처음 만났거든!”

 

2월 말에서 3월 초로 기억하는데...

 

“저는 마스터와 낮잠을 잔 기억이 없으니 지금 당장 같이.”

 

“이상한 곳에 투지를 발휘하지 말라고 시나.”

 

올빼미는 내 옆에서 말이 막힌 체 그저 가만히 있었다.

 

“와아. 카일!”

 

의자 뒤에서 루니아 누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내 목에 양 팔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오늘도 카일을 통해 충전해야지이.”라는 말과 함께 떨어질 줄을 몰랐다.

 

“루니아 누나는 대체 저를 통해서 뭘 충전한다는 거에요? 주기율표에 나와있는 원소 중 하나에요? 그리고 언제까지 안 놔줄 생각이에요?”

 

“세슘 충전할 때까지이?”

 

“세류 충전이겠지! 세슘은 충전을 하면 죽는 거고!”

 

“카일도 끌어 안을 때 좋은 기분이 드는 걸? 마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나가 기류를 형성해서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은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걸? 베니하고 비슷한 능력이잖아?”

 

“뭐 그건 얼핏 들어서 잘 알고 있지만, 베니 같은 경우는 잡화점의 벽난로 안에 있는 대결계의 영향을 받고 태어난 녀석이니까요. 아마 그 대결계가 담당하고 있는 부분은,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유지시켜주는 부분일 거에요.”

 

나와 싸웠을 당시에 어떻게 다른 사람의 기술과, 마법까지 복사를 해서 싸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베니는 상당히 안정화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왼손에 아직까지 붕대를 감고 있지만, 왼손에 있는 상처도 거의 다 아물어가는 시점에서, 그냥 이대로 붕대를 감고 다니면 흑염룡이 생길 것 같으니, 서서히 오른손으로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런 아메바 같은 단세포생물은 대체 뭘 먹고 사는 걸까아?”

 

루니아 누나는 내 뒤에서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지금은 슬라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위족 4개로 지탱하면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4족보행을 하고 있는 동물이다. 나중에는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를 시키려는 목적으로, 레시아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일 것?

 

“단 거 좋아해요. 베니는.”

 

사탕이나 케이크, 푸딩 그런걸 주면 매우 좋아하며 한 순간에 삼키고 분해해버린다. 영양분은 그리 많이 필요해 보이지 않지만...흐느적 흐느적거리며 레시아의 배낭처럼 등 뒤에 붙은 베니. 사물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할 무렵. 레시아는 확실히 기뻐하면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주인. 잠깐 외출하겠다!”

 

“다녀...잠깐! 무슨 외출이야! 그 모습으로 나갔다간 보통 사람들이 죽거나 심한 경우에는 침을 흘린다며! 지금 그 모습으로 Re: 파이론부터 시작하는 인간계침공을 작성할 생각이야!”

 

너무 기뻐해서 문제가 있기도 하다.

 

“아직 아버지는 왼손이 다 회복되지 않으셨잖아요? 그냥 그 상태로 놔두시는 것이 어때요?”

 

내 무릎 위에 앉은 카렌이

 

“아이! 깜짝이야! 이게 뭐야!”

 

너무 터무니 없이. 그리고 느닷없이 내 앞에서 말을 꺼내왔다. 여전히 붕대를 풀고 있는 왼손을 붙잡고는 다시 붕대를 감으면서 입을 여는 카렌의 말은 이러했다.

 

“정말 무식하게 사브르라고 하지만, 그걸 막기 위해서 일부러 왼손을 주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좀 더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요? 언제나 저의 여린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는 소리에요. 아니면 붕대를 빨리 푸는 이유가 뭔가요? 애인을 빨리 만날 생각인가요?”

 

“...애인?”

 

“아버지는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 이걸 이해한 사람은 태반이라고 봅니다.”

 

“뭔지 몰라도 독자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하지마.”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카렌이 매우 쓸 때 없는 소리를 한 것만 같았다. 카린 때와 모습이 거의 일치하는 카렌은 코발트 블루 색상의 머리를 포니테일로 유지하면서, 단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었지만, 애석하게도 이 아이의 포지션은 내 유전자를 사용한 호문쿨루스라면서, 태클 캐릭터가 아니기라는 점에서 보아. 그 기계에서 뭔가 오류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나를 억압하지 않고 좋은 환경에서 본성대로 지낸다면, 저런 성격으로 되어 다른 누군가가 나를 태클 걸겠지.

 

“어쩔 수 없어요. 제 담당이 명확하게 성인에 맞춰진 드립을 하는 역할이라...”

 

“오늘부터 호적에서 파면 되는 거냐?”

 

“농, 농담이에요!”

 

애초에 호적에도 쓰여지지 않았지만, 카렌은 계속 내 무릎 위에서 떠날 줄은 몰랐고, 루니아 누나는 내 뒤에서 계속 뭘 충전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제발 놔줬으면 좋겠다. 베니가 필요해.

 

“주인! 이거 보거라! 짐이 베니에게 간지럼을 태우는 기술을 교육시켰노라!”

 

“꺄하하하핫! 그만! 베니! 그만해! 아하하핫!”

 

루나에게 그런 걸 실험하지 마.

그 전에 교육하지마.

 

바닥에서 위족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베니의 간지럼 공격을 받으며, 쓰러져있는 루나의 표정은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과하면 괴롭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적당하게 루나를 제압한 베니는 마치 나에게 칭찬을 바라는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4개의 위족으로 내 주변을 계속 뛰어다니면서, 내 시선을 계속 주시하게 만들었으니까. 이쯤 되면 슬라임인지 아메바인지 혼동이 오는 그런 경우지만, 평상시에는 그냥 슬라임처럼 기어 다니는 것이 더 편한지 위족을 전부 감췄다.

 

약 5분간의 시간이 더 지날 무렵. 이제서야 오후 12시라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에, 1층에 마법진이 펼쳐지면서 마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여전히 마왕님이 쌓아놓은 잡일은 정말이지 많군. 이러다가 첩이 과로사를 해서 어디론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역시 이 스트레스는 베니를 끌어 안아야 치유가 되는 것이지만.”

 

마리아가 온 것과 동시에 베니가 점프를 뛰었다. 확실히 다른 잡화점 멤버에게 하루가 다르게 적응한 베니의 역할이라면, 고된 일을 끝마치고 왔을 때라고 해야 할까? 마리아는 금세 피곤한 표정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정말 베니 없으면 이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모르겠노라.”

 

베니는 마리아의 말에 기이한 소리로 응답을 했다.

 

“그런가! 역시 베니도 첩 없이는 못사는 건가!”

 

그러니까 어떻게 이야기가 통하냐고!

 

“늘 궁금한데. 저는 베니가 말하는 것은 고무풍선의 마찰음밖에 들리지 않는데요. 레시아나 마리아는 베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나요? 아무리 잡화점이 이세계인이나 다른 몬스터와 대화가 가능하게 해주는 통역기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베니의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거든요.”

 

“무슨 소리인가?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을.”

 

“모르는 거냐!”

 

“그래도 첩은 베니의 사념을 읽을 수 있으니, 이 아이가 답하는 것이 긍정인지, 부정인지는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보통 강아지들의 반응을 보면 잘 알지 않는가? 꼬리를 흔들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뻐하는 표정만 봐도,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을. 이 아이의 표정도 그렇지 않는가?”

 

아니. 저거 표정을 어떻게 읽냐고요?

 

“그건 그렇고 이번 백장미에는 베니도 출현시켜야죠오?”

 

잊고 있었다.

루니아 누나가 여기에 휴가까지 써서 온 진정한 목적을...

 

“제길! 또 그 저주받은 잡지를 찍기 위해 이곳에 휴가를!”

 

순식간에 의자에 일어나서 도망가려던 찰나에, 순식간에 루니아 누나에게 잡혀서 제압당했다.

 

“놔! 베니에게 만큼은 나의 참담한 꼴을 보여줄 수 없어!”

 

“무슨 소리인가 주인. 무궁무진한 주인의 반전매력을 베니에게 전부 보여주는 것도, 의외로 기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이미 좌표는 맞춰놨으니 마법진에 들어가면 촬영장으로 갈 것이다.”

 

“지금까지 시간을 끌은 이유가 그거냐! 안 돼! 끌고 가지마!”

 

나는 바닥에 최대한 밀착한 상태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루니아 누나는 그런 나를 뒷목으로 잡고 번쩍 들어서 마법진으로 끌고 갔다.

 

“12호도 수많은 독자들이 기대하고 있을 거에요오!”

 

 

“그런 거 기대 안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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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마다 베니 같은 녀석이 있으면, 오늘 일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좀 덜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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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2 - 4

284

 

 

 

불꽃이 튀어 허공에서 춤추며 무의미하게 사라졌다. 강철과 강철이 만날 때마다 그 수많은 불꽃은 허무하게 희생되고, 잡화점의 검은 나무 벽과 바닥을 채색하듯이 튀어가는 검은 점액과 붉은 피는 서서히 말라가기도 전에, 그 위를 덧칠하면서 계속해서 생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물며 지금이 4분밖에 지나지 않는 시간에 그 짧은 시간 동안, 작은 상처들이 이곳 저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했고, 내 앞에 있는 생물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크나큰 차이가 있다면, 저 생물은 자동으로 수복이 가능하고, 나는 피에 대한 권능이 아무것도 없으니, 튀어나간 피는 다시 내 몸 속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은빛 송곳의 시퍼런 날이, 붉은 피에 도취되어 붉게 달아오르고 있을 무렵. 다시 날아오는 공격에 허리를 숙이고, 피의 대가를 치르는 검이 다시 인간의 형태를 띈, 슬라임의 옆구리에 박힌 상태로 내 양 어깨를 노리기 위해, 다시 경화된 단검모양의 젤리가 쏜살같이 내려왔고, 내 왼손에 있는 단검으로 상대의 오른팔을 박아 넣고, 그 오른팔이 자연스레 상대의 왼쪽 손목을 내려찍게 만들었다.

 

“이래서야 감각도 없고 경직도 없는 호문쿨루스와 싸우는 것 같잖아!”

 

눈에서 빔이라도 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피융!

 

아니 쏴서 다행이 아니구나.

 

“애초에 눈에서 빔을 쏜다는 말에 의식하지 말라고!”

 

사실 빔이 아니라 나무 바닥을 꿰뚫을 정도로 경화된 상태로 나아간 것. 하지만 역시나 늘 생각해왔듯이,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 그것이 현실로 되어 이루어지니 조심해야 한...

 

잠깐? 생각?

 

“너도 내 독백 읽었냐!”

 

요즘 내 독백을 읽을 수 있는 다른 생명들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조만간 땅에 박혀있는 잡초마저 내 독백을 읽고 침을 뱉지 않을까 걱정이다. 거칠게 발로 차서 박혀있는 검이 2차적으로 데미지를 주고 있는 사이에, 나도 거리를 살짝 뒤로 떨어져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피의 대가가 활성화된 티르빙으로도 저 생물의 상처가 재생된다는 의미는, 분명 저 안에 어디 있을 법한 잡화점의 대결계 중에 하나가, 살아 숨쉬게 될 수 있는 코어 역할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잡화점 규칙의 8번째를 보면, 집안에는 대결계로 작동하는 물건이 숨겨져 있으니, 아이들에게 절대로 발각되지 말라고는 하지만, 대체 어떤 아이가 벽난로 쪽에 있는 대결계를...

 

아. 크리스마스에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대결계로 작동하는 물건이 숨겨져 있다고는 하지만, 설마 벽난로에 벽돌 중 하나는 아니겠지? 그보다 레시아와 시나가 내 쪽으로 공간이동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면, 나 혼자서 이걸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잖? 어라?”

 

내 앞에 있는 젤라티노...아니. 젤리인간의 무기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오른손에 초승달처럼 아름답고 유아한 곡검이 나타났다.

 

“저건 분명...”

 

나 또한 티르빙을 사브르 형태로 바꿔나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시아의 검술마저 따라 할 생각인가?”

 

확실히 레시아의 검술에는 매력이 올라갈수록 강해지는 그런 바보 같은 설정이 붙었지만, 이걸 좀더 구체화하고 서술해서 말하자면, 레시아의 검술은 하나의 춤사위와 같다. 시선을 빼앗고 사람의 넋을 놓게 만드는 검술. 그게 지금 내 눈 앞에서 실현하고 있었다. 오히려 레시아의 검술에 대처하는 방법은, 절대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을 하면 안 되는 무서운 검술.

 

목이 지금 당장이라도 떨어질 상황에서라도, 상대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보는 순간, 오히려 그 틈을 깊게 파고 들어 천계나 마계에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리라.

 

“제길. 어느 은행에서 일하는 검사의 심안도를 사용할 수 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나는 참철도를 사용할 수 없잖아?”

 

긴장을 풀기 위해 어처구니 없는 혼잣말을 흘려 보낸 뒤에, 겨우 채워졌던 마나를 다시 신경계에 과부화 하기 위해 온 몸으로 돌리기 시작하면서, 바람을 가르고 나에게 날아오는 시퍼런 날을 감지하는 것만으로, 내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여 튕겨냈다.

 

“내 앞에서 이미 지난 수를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더욱 상황만 악화될 뿐이야.”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앞에 모여드는 붉은 빛의 점멸하는 순간, 내가 폭발음과 함께 온 몸이 으스러질만한 충격을 받았다.

 

“커흑...! 마법...이라고?”

 

핏덩이를 토해내고 나서 겨우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나는, 마법까지 사용할 줄 아는 젤라티ㄴ...아니 그거 말고! 구미베어...도 아니고! 젤리인간 앞에서 입을 열었다.

 

“마법 데미지는 아니더라도...크으읏!”

 

충격으로 날아가서 부딪친 곳이 하필이면 거대한 유리조각이 있던 곳. 아슬아슬하게 급소는 빗나가서 반신 불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더 왼쪽으로 갔었다면 분명 척추가 무너져 내렸을 거란 생각에 머리가 잠깐 아찔해졌다. 몸을 더 움직이려고 하면 크나큰 고통이 온 몸을 억눌렀고, 젤리인간은 천천히 검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나는 거의 비어가고, 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다고는 한다면...

 

“강화.”

 

한 마디를 읊었다. 

내 시력을 최대한 강화를 하면서 대결계의 물품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만 해도 충분하다.

다른 신체에는 빛나지 않았지만, 정확히 두개골 쪽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화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째서 이런 도박에 과감해질 수 있는지 이제 알겠다니까. 이야기 전개야 내가 볼 수 있으니까 도박에 성공한 것을 예측할 수 있어도,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는 해도 죽고, 안 해도 죽으니까!”

 

젤리인간의 사브르가 내 목을 노리고 오는 것은, 내 왼손을 꿰뚫은 뒤에 붙잡아 봉쇄 시키고, 오른손에 마나를 한 가득 담아 강화된 시력으로 젤리인간 머리에 밝게 빛나는 핵을 향해 뻗어나갔다.

 

“쓸 때 없이 죽기 싫어서 하는 행동이었다고!”

 

아이언 클로 때와는 전혀 다르게, 단숨에 얼굴을 무너뜨리고 꿰뚫어서 밝게 마법진이 빛나고 있는 구체를 꺼내는 것에 성공했다. 경질화 되고 모습을 구성했던 젤리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철퍽!’하고 주저 앉으면서, 나 또한 지금까지 있었던 빈혈과 탈진으로 주저 앉았다.

 

“그건 그렇고...일단락 끝냈으니...이걸 되돌려야 하는데...”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내가 짜낼 수 있는 에너지는 여기까지인가?

모든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고작 바닥만이 나를 반겨줄 뿐이다.

 

“바닥...청소해야 하는데...”

 

***

 

다시 눈을 뜰 무렵에 보통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면, “맘마미아! 내가 살아있잖아! 이건 기적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면, 나와 같은 경우에는 검은 나무 벽을 확인하는 순간...

 

“살아있는 건 좋은데. 미이라 코스프레를 좀 많이 하는 것 같네.”

 

아무래도 신은 여기서 죽을 운명이 아니라고 전해주는 듯이, 아직까지는 내가 적절한 상황에 구출을 받았다는 사실에, 머나먼 행성으로부터 직수입해온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한숨이 어디 있냐고?

있을 수도 있지.

 

“마스터. 일어나셨습니까?”

 

하얀 올빼미가 내 머리 위에서 말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시나가 보고 있었어?”

 

“아뇨. 아까 전까지만 해도 냥캣이 마스터의 옆자리를 지켰습니다.”

 

“그것 그렇고. 여기는 마리아와 루시피나가 쉬는 곳이잖아. 원래 내가 이곳에 쉬면 안 되는 거 아냐?”

 

“모두 루나의 방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루니아는 마스터를 대신해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고, 쇼콜라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쇼콜라 씨가 옆에 있었다면 정말 무서웠을 거야.”

 

간병을 하면서 나에게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내가 쓰러지고 나서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쓰러지기 전에도 뭔가 이상했는데?”

 

시나는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왔다. 눈보다 하얀 백발과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벽안을 의식하게 만들 무렵.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나에게 모든 것을 보고했다.

 

“마스터가 잡화점에 홀로 들어가시자마자, 잡화점이 이 세계로부터 소실되었습니다. 시공간적으로 따지자면 이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순식간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시공간으로 동일한 위치에 없어서 귀환마법도 들지 않았고, 페어링 또한 끊어진 상태에서 약 5시간 뒤에 다시 잡화점이 나타났을 무렵에는, 거대한 중상을 입고 나타난 마스터밖에...”

 

“그럼 이곳은 파이론이 아닌 건가?”

 

“아뇨. 주인님이 들고 있던 대결계를 이루는 물건을 벽난로 쪽에 수복을 하고, 정문을 닫고 다시 열어서 본래 위치했던 그 장소에 위치했습니다. 잡화점이 자동으로 이동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위치에도 뭔가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안정을 취해가면서 쉬는 것이 답이다. 붕대가 약간 심하게 감겨있는 왼손을 바라보면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시나는 이거 언제쯤 나을 것 같아?”

 

“루니아의 특제 약품을 발라놨으니, 이틀 정도면 자연스럽게 움직이실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등에 있는 상처도 3일 정도면 회복을 하실 겁니다.”

 

내가 의식이 없었을 때 바르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직까지 욱신거리는 온 몸의 통증을 고스란히 받아가는 동안, 시나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고스란히 나를 껴안았다.

 

“시나?”

 

“가만히 있어주세요. 마스터. 지금 제 심신에 안정을 되찾고 있으니까.”

 

나는 그저 오른손을 옮겨서 시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런 몸으로는 떨쳐내지도 못해.”

 

시나는 작게 몸을 떨면서 이윽고 더 강하게 힘을 주면서 안았다.

 

“무서웠어요. 마스터. 조금만 늦었더라면 마스터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그 생각에...”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생각보다는 빠르게 행동하란 말이야. 그래도 지금 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뒤늦게 온 베가프가 축복을 내려서 그런 건가?”

 

시나는 다시 일어나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건...”

 

반 투명한 노란 젤리가 느닷없이 내 침실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 아니라! 저 생명체는 또 뭐야!”

 

아파 죽겠는데 소리지르느라 몸이 더 아파왔다.

 

“루니아가 만든 요리에서 나온 생명체인데, 이 아이가 핵을 오염시키며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마스터가 마지막에 어떻게 하셨는지 몰라도, 저의 권능을 이용해서 이 아이의 사악한 기운을 침식해서 없애버리고, 성향이 반전이 된 이 아이가 주인을 품어서 5시간 동안 죽지 않게 유지시켜왔습니다.”

 

아까 위에서도 5시간정도 잡화점이 소실 되었다고 했으니까...

 

-스믈스믈

 

노란 젤리처럼 흐믈흐믈하게 다가오는 생명체이지만, 내 몸에 수분도 묻지 않았고 뭐랄까 물풍선을 만지는 기분이랄까?

 

“그럼 내가 마지막에 사용했던 것은 시나의 권능이라고는 하지만, 그 때는 페어링이 끊어진 상태였잖아?”

 

시나는 잠깐 고민을 하고 난 뒤에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차원의 여신. 잡화점이 날아가던 장소에는 제가 마침 깨어나고 있던 장소였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여신’이 저를 대신해서 도와줬을지도 모르죠. 아까 안겼을 때 익숙함이라고나 할지...그리움의 잔재가 남아있었습니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건데?”

 

시나는 잠깐 복잡해진 얼굴을 보였다가 숨기고는, 그 노란 젤리를 들어서 끌어안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키워야지 뭐. 5시간동안 내 목숨을 유지해준 녀석이잖아.”

 

노란 젤리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가 마치 뭐랄까? 공기가 가득 찬 고무풍선들이 비벼지는 소리랄까?

 

“그럼 이 아이의 이름도 지어야겠군요.”

 

 

시나는 슬라임과 비슷한 생명체를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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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은 이렇게 위험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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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2 - 3

283

 

 

 

잡화점은 양 팔에는 기다란 촉수마냥 여러 다발이 달린 상태에서, 발은 계속 뭔가가 흘러내리는 듯한 검은 점액을 뒤덮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부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하고, 전설 속에서 나올법한 괴물은 파이론부터 시작해서 행선지를 보았을 때, 프리트론을 지나갈 동선을 띄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루니아 누나를 피해 도망간 것이, 최종적으로 프리트론에 있는 중앙 시장이라는 것이라 판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잡화점 안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안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알 방법이 없단 말이지.”

 

“없긴 왜 없는가? 수정구로 보면 된다.”

 

“아. 그거 좋네요.”

 

레시아는 아공간에서 수정구를 꺼내, 사건의 원인부터 되짚어 보기로 했다. 수정구에 녹화된 기록에 따르면, 루니아 누나는 요리를 끝마친 뒤에 카렌과 루나에게 먹여서 쓰러뜨린 뒤. 루시피나와 마리아가 루니아 누나에게 항의를 해서, 결국 루니아 누나는 활활 타고 있는 벽난로 쪽에 남은 음식을 버렸다. 그 후에 느닷없이 그 안에서 슬라임 같은 것들 것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이후에는 온갖 비명과 함께 영상이 깨져버렸다고...

 

“그러니까 이거 장르가 호러였나요?”

 

“벽난로부터 시작해서 잡화점을 장악한 것으로 보아, 벽난로 쪽에 있던 대결계를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 오염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 그 부분을 정화하면 된다는 소리네요. 그나저나 루니아 누나는 정말로 잡화점을 베놈으로 만들어 버린 걸까나...”

 

이럴 때 심비오트 복선이 회수될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잡화점의 너무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베가프마저 여우 귀와 꼬리까지 나와 반신격화가 된 상태였고, 지나가는 어린 아이마저 알 수 있는 “저는 사실 최종보스입니다.”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잡화점이 마을에서 탭 댄스를 출 때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니 저건 마리아가 말하기를 셔플 댄스라고 하던가? 아니 너무 사소한 것은 그만 생각하고...

 

“마스터. 지금 잡화점을 정화하기에는 너무 강합니다.”

 

“시나보다도 강한 거야?”

 

“거기에 질문을 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만, 지금 저와 냥캣이 힘을 합쳐도 2%정도는 부족합니다.”

 

얼마나 강한 거야?

아니면 루니아 누나로부터 “카일에게 음식을 꼭 먹이겠다.”라는 일념이, 설마 잡화점을 오염시켜버리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오랜만에 1면 신문에 다 나오겠군. 그러면...”

 

“잠깐 멈추거라.”

 

잡화점으로 뛰어나가려는 나를 갑자기 막는 레시아는, 나에게 한가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인은 지금 파이론에서도 대대적인 잡화점의 주인이다. 잡화점의 주인이 지금 잡화점과 대립을 한다고 할지라도, 지금 사람들과 병사들 사이에서는 주인의 얼굴을 진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오히려 주인을 역으로 치려는 움직임이 보일 수 있다. 혼란스러운 곳에서 과거의 망령이 나타났다는 듯이.”

 

“그럼 가면이라도 써야겠네요. 이제 와서 어릿광대가 나에게 준 가면을 써야 하는...”

 

“마스터. 그냥 카린으로 변하시는 것이.”

 

“아 좀! 이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기뻐하고 있는데 TS장르로 바꾸라고? 그 다음 나에게 뭘 요구할 거냐? 레시아가 지금 꺼내려고 하는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를 씌우려는 건 아니겠지? 제발 이번엔 내가 활약을 하던 말던 그게 중요하지 않고, 내 본래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다고!”

 

레시아는 뒤늦게 아공간으로 머리띠를 ‘스윽!’하고 감췄고, 나는 천천히 허리에 있던 마스크를 오랜만에 꺼냈다.

 

“다시 쓰니까. 마치 초능력 암살자가 되는 기분인데.”

 

오랜만에 써도 정확하게 잘 맞는 가면이 살짝 빛이 나자, 잡화점은 내 쪽으로 몸을 틀기 시작했다. 리베리티아 고원까지 우선 도망가기 시작하면서, 레시아와 시나 또한 나와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뛰기 시작했고, 잡화점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속력을 내면서, 나를 무자비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이 잡화점 왜 이리 빨라! 100M달리기를 9초 안에 뛸 녀석인가?”

 

“마스터. 4분도 안 돼서 따라 잡힐 것 같습니다.”

 

시나의 경고에 나는 잠깐 뒤를 돌아 손바닥을 잡화점 방향으로 돌리고, 거리가 거리인 만큼 손가락 한마디 정도 위로 올린 상태에서 마나 캐논을 발포했다. 바다 빛의 포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가, 잡화점의 정문에서 폭발이 일으켰다. 균형을 살짝 잃었는지 휘청거리다가, 오히려 더 광분한 상태로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 뭐 이리 튼튼하냐!”

 

“주인. 주인을 지킨 잡화점의 벽은 1만 대군의 호문쿨루스들이 합공을 해도 뚫지 못한 외벽이니라. 그 화력을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미약한 주인의 마법으로 흠집도 나지 않는다.”

 

“그거 정말 미안하네요. 미약한 마법이라!”

 

잡화점이 무슨 오토봇도 아니고, 나중에는 로봇으로 변신할 것도 아니지만, 왠지 이 모습을 보아하니 나는 이미 끝판 왕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미믹도 이 정도로 무섭지 않았는데 잡화점이 저러니...

 

“비행 마법을 배우지 않아서 한 자리에 묶을 수도 없고.”

 

“그러니 짐과 동화를 해서 마법소녀 카린으로...”

 

“아 시끄럽고!”

 

지금 나 혼자 엄청난 괴물을 혼자서 레이드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마 별 15개 만점 중에 20개 정도 되어 보이는 보스 레이드를 그나마 이기는 방법은...

 

“레시아! 내가 지나가는 땅에 타이밍을 맞춰서, 넓이는 2M 깊이는 3M정도로 파놓고 숨겨놔요!”

 

지형을 이용해서 넘어뜨리는 수 밖에 없다.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것은 모든 전략의 중심. 이 정도라면 아무리 저 거대한 잡화점이라고 할지라도, 오른쪽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쓰러질 거라 생각...

 

-슈아악!

 

했는데 엄청난 점프력을 돋보이며 함정을 피해가기 시작했다.

 

“아. 위험 감지도 잡화점이 했던 것 중에 하나였던가?”

 

나는 내 머리위로 하늘을 날듯이 뛰어오른 잡화점을 멍하니 지켜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빈틈이 없는 잡화점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시나는 내가 멈추자 내 왼쪽으로 활공을 하면서 천천히 가까워 지더니, 사뿐하게 내려 앉고는 사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스터. 전방에 방어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잡화점에서 나온 기묘한 촉수로부터 거대한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합니다.”

 

“아니. 저건. 마리아의 권능 중에 하나이지 않는가!”

 

곧 검은 에너지가 서서히 모이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대검 하나를 만들어내기 시작할 무렵. 나는 그 상황을 즉각적으로 이해했다. 거대한 대검이 나를 향해 순식간에 날아오는 것을 시나와 같이 방어마법을 나는 펼치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 잡화점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거의 복사했네요.”

 

잠깐?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주인! 바닥을 조심하거라!”

 

설마 새벽<Daybreak>마저!?

 

마나가 순식간에 고갈 되는 것을 느끼고는, 강력한 탈진 때문에 천천히 의식을 놓을 뻔했다. 숨이 순식간에 막혀서 숨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레시아와 시나가 나를 부르는 소리는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쓴 마법이긴 한데. 내가 직접 맞아 봤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는 마법이네...”

 

숨을 그나마 토해내고 입을 열었을 무렵에, 내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씌워지기 시작했다. 잡화점의 2층 창문이 천천히 가까워 지고 있고, 아직까지 가면을 쓴 나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래 인식에 오류가 생길 정도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 나를 잡화점에 집어넣고 그 무시무시한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주인. 잡화점의 정문이 열리려고 하는...!”

 

거대한 검은색 물질이 정문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대로 급류에 휘말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레시아와 시나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주인!”

“마스터!”

 

“제길!”

 

빠르게 레시아와 시나를 집어삼킨 잡화점은 다시금, 나를 밟기 위해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있었지만, 나는 가면을 벗어 허리에 다시 매달아 놓고, 머릿속에서는 과열이 된 상태로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이 배은망덕한 녀석! 주인도 못 알아보냐!”

 

정화는 둘째치고 우선 안에 들어있는 인원을 구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마나가 거의 거덜난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잡화점은 발을 다른 곳에 서서히 내려놓고 서서히 나를 붙잡기 위해, 왼쪽에 있는 거대한 촉수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티르빙을 타도로 변환시켰다.

 

“제길. 뭘 먹었는지 몰라도 정말 기분 나쁘네.”

 

아까 잡화점이 토해낸 검은색의 액체들을 힘껏 맞은 것도 있고,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이 안에 붙잡혀 있는 것을 생각하자니, 화가 치밀어 올라서 끝끝내 검을 뽑아 크게 휘둘렀다.

 

“이 모든 원흉이 휴가를 나온 루니아 누나로부터 생긴 것이, 정말 아이러니 하지만 그나마 파이론에서 멀리 떨어졌으니.”

 

검을 검집에 넣은 순간, 잡화점의 팔과 다리가 전부 절단이 되고, 내 앞으로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건 루니아 누나를 추궁해야 할 일이구나.”

 

대기에 있던 마나가 그래도 나의 뜻에 따라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다시 한번 크게 현기증을 느끼고 바닥에 검을 꽂아서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을 때. 잡화점의 문에서 방금 전에 잡혀 들어가던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 뜬금없는 전개에 당한 루시피나와 마리아, 최초의 피해자인 카렌과 루나 그리고...

 

“으우...기분 나뻐요오.”

 

의외로 의식이 빨리 깨어난 모든 일의 원흉 루니아 누나가, 바닥에 기어나오면서 검은색 점액투성이인 상태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루니아 누나의 요리가 범 우주적인 위험 레벨로 들어섰잖아요!”

 

“그래도 저는 카일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주지 않을까 해서어...”

 

“잡화점이 지금 파이론의 40%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겨우겨우 리베리티아 고원 방향으로 끌어들여서 막았는데, 뭘 맛있는 음식이에요! 당장 잡화점에게 사과하세요!”

 

“배 하면 안될까요오?”

 

“이 상황에서 말 장난이 나오냐! 어!”

 

“죄송해요오...후으으...”

 

루니아 누나는 주눅이 든 상태로 울먹거리고 있었다.

쇼콜라 씨는 없는 것 같으니 다행이고...

 

“으. 슬라임에게 30일 동안 속박당한 기분이었다. 첩은 이토록 무서운 경험은 살아생전에, 2만 5천 3백 2십하고도 7번째다.”

 

“그걸 대체 어떻게 다 기억해요...”

 

마리아도 눈을 뜨면서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면서 서서히 일어섰고, 내가 거기에 태클을 걸면서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까지 루나와 카렌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서 일어나기까지 조금 걸리니까 놔두고, 시나와 레시아는 다시 나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어왔다.

 

“주인. 저 안은 끔찍하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마스터.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거기서 뭘 봤는지 몰라도 이제 대강 끝난 것 같아요. 저는 벽난로 쪽에 있는 대결계 장치 좀 확인해보고 올게요.”

 

1층에 들어간 나는 주변이 진득한 검은색 젤리로 변한 것을 보면서, 안색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누가 자신의 집을 들어가는데 그 집 안에 온통 케첩이 있는 기분이랄까? 발을 들이기도 꺼려지는 공간에서 나 혼자.

 

-쾅!

 

어? 잠깐만? 거짓말?

이런 전개는 호러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전개잖아!

 

“이 녀석. 일부러 날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아직까지 정체불명의 슬라임 비슷한 괴상한 생명체하고, 2차전이 막 시작될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검은색의 인간처럼 생긴 무언가가 흐물흐물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그 안에서 뻗어나가는 날카로운 촉수들을 다시 타도를 뽑아 베어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나는 마나 없이 싸워온 용병이었다.

지금 마나가 없다고 해서 싸울 수 없는 것도 아니겠지.

 

양손을 은빛 송곳으로 바꾸며 나는 말했다.

 

“좋아. 제대로 해보자고.”

 

 

앞에 있는 녀석도 은빛 송곳처럼 비슷한 무기를 손에 달고, 나와 같은 자세를 취하며 서로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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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거지만...

이건 뭐 개판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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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2 - 2

282

 

 

 

다른 곳에서도 이제 연말을 맞이하여 많이 바쁘리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연말이기에 쉴 수 있는 곳도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 없이 항상 잡화점을 열어야 하는 운명이고,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하는 나의 모습에 내가 더 기겁을 할 정도. 대체 어디서 공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정량 공급만 하고 그 이후에는 자동으로 물품이 오지 않는다. 이 잡화점 안에도 미스터리가 가득 쌓여있지만, 밝혀낸 것은 아주 조금밖에 없는 이 기분.

 

“나중에는 이 잡화점이 후박사의 모험처럼 파란색 경찰박스가 되는 거 아니에요?”

 

“후박사의 모험이 아니라 닥터 후다. 그리고 짐은 잡화점이 시공간을 뚫고 외계행성으로 가는 것은 그리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잡화점 그 자체가 나중에 날아다니며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고 생각을 해보니, 그건 더욱 말도 안 되는 전개라고 생각을 하노라.”

 

레시아는 내 말에 꼬투리를 잡으면서도 자신의 꼬리를 다시 잡기 위해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런데 왜 혼자서 꼬리잡기를 하고 있는 거지?

 

“레시아. 어째서 자신의 꼬리를 쫓아서 놀고 있는 건가요?”

 

“주인도 알다시피 이 모습으로 이런 자연스러운 행동을 해야. 온 세상에 있는 고양이들의 귀여움을 전파할 수 있다.”

 

“마왕이 그거 전파시켜서 뭐에 써먹으려고! 고양이 홍보 대사냐!”

 

나중에 뭐 고양이 광고 찍을 거야?

 

“마스터. 저는 올빼미의 또다른 매력을 알리기 위해 북북춤을 추겠습니다.”

 

“시나는 그런 춤 하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시나가 이상한 것을 시전하기 전에 나는 사전차단을 했다. 그보다 북북춤은 그 할아버지가 추는 춤이잖아? 그거 춰서 뭘 발동시킬 생각이야?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을 때는 점차 졸음이 몰려올 시간이기에, 적절한 수면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 내가 자러간다고 하면, 예상하지도 못한 사고를 터트릴 가능성이 있는 레시아와, 시장에 같이 따라나선 루니아 누나가 존재한다.

 

시장에서 슬슬 돌아올 때이기도 하니까.

베가프 집에 잠깐 가야겠다.

 

“저는 베가프랑 점심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요.”

 

“알겠다. 주인.”

“알겠습니다. 마스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잘 다녀오라는 사역마들을 뒤로 한 사이에, 파이론에 돌아온 베가프의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당연히 은폐마법으로 나를 감추고 지나가면서,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은폐마법을 하나도 하지 않고, 파이론에서 사람이 밀집된 이곳을 걸어 다니면, 마녀사냥이라도 하듯이 나를 농기구와 횃불만으로 내쫓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모두가 문 앞에 짐승의 피로 십자가를 그려놓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겠지. 정말로 내가 무슨 죽음의 사자도 아니고...

 

나는 베가프의 집 앞에서 3번 노크를 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집 안에서 비교적 가까운 건너편에 “네에~”라고 응답을 했고, 다시 10초정도 기다리자 베가프는 문을 열었다.

 

“카일 어서와. 오늘은 무슨 일로 이곳까지 찾아온 거야?”

 

“죽음을 피하기 위해 찾아왔어. 그리고 낮잠을 좀 자려고.”

 

“죽음?”

 

베가프의 집에 들어가서는 문을 닫고, 현관을 지나 안방에 있는 쇼파에 벌러덩 누웠다.

 

“하. 이제야 뭔가 좀 안심이 되네. 정말 인생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이만 저만이 아냐.”

 

내 잡화점에서도 내부요인으로 천천히 쉴 수 없는 나의 일생에서, 가장 크나큰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휴식.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그런 행복함. 그리고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경 쓸 것이 없

 

“오. 카일이구먼. 오랜만이다.”

 

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백색의 구미호인 아랑이 나를 보며 인사했다.

 

“이제 현실에 실체화 할 정도로 힘이 강해진 건가요? 본래 의식세계에서만 살아가면서 현실에서는 절대로 실체화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베가프가 이곳저곳에서 돌아다니면서 신앙을 모아준 덕이다. 아우리스 교인으로 활동하는 베가프는 의외로 많은 귀부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니. 이는 아우리스를 신봉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베가프라는 한 남자를 추앙하는 마음이 나에게는 신앙이 된 것이다.”

 

한 때는 아랑을 베가프에게 그냥 맡기기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아랑과 베가프는 상호간의 도움을 주는 공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카일은 분명 이런 미천한 구미호를 전부 생각해서, 베가프와 연을 맺으라는 것이었지? 거기에 대해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뭐...고맙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 제안을 받아준 것은 아랑이니까요. 아랑의 결정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저는 감사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어요.”

 

어쨌든 아랑과 잠깐 이야기하는 중에, 두툼한 양고기를 베가프가 빵과 함께 테이블 위에 두고 있었다.

 

“사과소스네? 오랜만이네 이 요리.”

 

상큼하면서도 달달할 것 같은 사과소스가 가득 담긴 병 하나를 보고, 군침에 못 이겨 쇼파에서 다시 식탁으로 찾아갔고, 베가프는 조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때 카일의 몇 번째 부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루시피나 씨에게 레시피를 받았어. 아랑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해줘야겠다고 가끔가다 요리를 배웠거든.”

 

‘몇 번째 부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이 왜 나와?

 

“잠깐. 분명 루시피나와 약혼을 한 사실은 맞지만, 몇 번째 부인이라는 소리는 대체 어디서 나온 소리야?”

 

“뭐야?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어?”

 

마지막으로 따듯한 양고기 스프를 내 앞에 두고 나서, 베가프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요즘에 너를 아는 사람 대부분이, 네 주변에 있는 여성들을 순위를 먹여가면서 ‘누가 가장 카일을 먼저 함락시킬까?’라는 내기를 하고 있는 것.”

 

“요즘 내가 없는 곳에서 제대로 된 날벼락을 듣는 것 같아. 그렇지 않니?”

 

누가 먼저 시작을 했는지는 감이 잡히지 않지만, 그걸 선동하고 있는 인원은 대부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레시아 외에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선동하고 있겠지. 의외로 하멀 씨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깔아놓은 것일 수도 있기도 하고.

 

“그런 거 지금 생각해서 뭐하겠나. 그냥 밥이나 먹어야지.”

 

“그렇긴 하다. 주인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양고기를 먹도록 하라.”

 

“마스터. 체하지 않도록 꼭꼭 씹어서 드셔야 합니다.”

 

?

 

나는 테이블 밑에 시나와 레시아가 작은 접시에 양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천천히 사과소스가 담긴 병을 놓고나서 입을 열었다.

 

“저기. 레시아와 시나는 언제 여기에 있었어요?”

 

“방금 전에 공간도약으로 쫓아왔다.”

“저도 공간도약으로 마스터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또 어떻게 왔나 했네.

 

“아니! 잠깐만! 잡화점은 어떻게 하고 찾아온 거에요? 제대로 문단속은 했어요?”

 

“애석하게도 주인이 무의식적이며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일어나버려서, 짐과 비둘기는...”

 

“올빼미입니다.”

 

“어쨌든 주인과 특수한 페어링으로 이어져 있던 탓에, 주인의 위치로 곧바로 공간도약을 사용한 것뿐이다. 게다가 지금 잡화점을 찾아간다면 카렌과 루나링처럼 최후를 맞이하겠지.”

 

설마. 루니아 누나가...

요리를 한 건가.

당분간 집에 들어가면 안 되겠다.

 

“루니아 누나는 제가 어디로 갔는지 알던가요?”

 

“아니. 짐은 ‘주인은 외출중이다.’라고 말한 것뿐이지, 절대적으로 어디라고는 정확하게 말 한 적이 없노라.”

 

그럼 식사하는 동안에는 안전하다는 소리구나.

 

“마스터. 어째서 그런 위험한 생화학병기를 만들어내는 여성이, 잡화점에서 머물고 있는지 아직까지 이해가 안 갑니다.”

 

“휴가라서 그럴 거야.”

 

생화학병기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루니아 누나는 지금쯤 쓰러져있는 카렌과 루나를 보고 웃으며, “카일은 언제 올까나아?”라는 혼잣말을 흩뿌리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자. 순식간에 온 몸에서 소름이 돋기 시작하면서 주변이 한층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이거 장르가 호러인가?

어느 귀신을 만나도, 어느 살인마를 만나도, 지금 루니아 누나만큼 무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식사는 대략적으로 다 끝나고, 오랜만에 쇼파에서 늘어지게 누웠을 무렵. 레시아는 내 배 위에서 몸을 말아서 웅크리고 있었고, 시나는 내 왼쪽 얼굴에 가까이 있었다.

 

“아. 정말 이럴 때마다 늙는 다는 것을 느끼긴 하네요.”

 

“주인은. 지금 20세이지 않는가?”

 

“제 인생에서는 최대나이에요.”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늙어 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절대적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자신이 현 시점으로 보고 있는 그 순간이야 말로, 인생에서 최고 나이가 아니던가?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모두 최대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 해에 1년이 지나간다면, 21살에 내년의 최고 나이가 되겠지.

 

“주인은 너무 늙은 사고방식을 하는 것 아닌가? 독백에서도 이게 20살이 할 수 있는 독백인지 짐은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남의 독백을 몰래 읽지 말아주세요.”

 

“마스터는 비교적 일찍 철이든 것뿐입니다.”

 

“시나도 남의 독백을 몰래 읽지 마.”

 

나는 시나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한 뒤에, 잠깐 의식을 놓았는지 아닌지는 어설프게 잠이 들었을 무렵. 느닷없이 눈을 떴을 때는 베가프의 쇼파에서 기지개를 피고 있는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대략 4시간 정도 주인은 잠이 들어있었다. 이런 쇼파에서 편안하게 잘 수 있을 정도면, 주인은 왜 땅바닥에서 자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애초에 땅에서 잘 수 있으니까. 쇼파에서도 잘 수 있는 거라고요?”

 

“마스터의 얼굴이 좋아지셨습니다.”

 

근래 잠을 잔 것 중에 너무 편안하게 잤다.

 

하지만 주변에 들리는 비명소리와 더불어 병사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선, 이 집에서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겠는데.

 

“레시아. 왜 이렇게 밖이 시끄러운 건가요?”

 

“지금 잡화점이 뭐에 감염이 되었는지 몰라도, 지금 팔과 다리가 나온 체로 주인을 찾고 있다.”

 

“아. 그렇군요. 잡화점에 돌연변이가 일어날 정도면 정말 큰일이긴 하죠. 게다가 일반 병사나 그런 걸로는 절대로 막지 못할 텐데 말이죠. 대체 루니아 누나가 무슨 요리를 했는지 몰라도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도 동감합니다. 마스터.”

 

이 소식은 루니아 누나의 요리가 드디어, 자아가 붙어있는 무생물에게도 효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잡화점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날 뛰고 있을 정도로 분노를 할 정도면, 대체 뭘 어떻게 먹인 것일까? 아니면 벽난로에 음식을 죄다 집어넣은 건가? 그런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선 벽난로에 태우는 것이 아니라, 독극물 전문 처리반을 불러서 처리해야지. 그냥 강이나 풀에 버리게 된다면 커다란 환경오염

 

“이 아니라! 내가 왜 이렇게 태평하게 독백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잡화점이 뭐가 어떻게 됐다고요?”

 

“말 그대로 지금 ‘날 죽여줘...!’라는 움직임으로 활발하게 파이론으로 침공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어느 시공의 폭풍속으로 빨려 들여가서 정원의 괴물로 취직해버리기 전에, 지금 당장이라도 막아야 할 것 같다고 짐은 생각하다만?”

 

망할! 이게 무슨 하울이 살고 있는 움직이는 성도 아니고! 나는 어째서 평범하게 쉬지도 못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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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2월에 쓰던 그때의 텐션으로 돌아간 것 갔습니다.

허무맹랑하고 개그와 패러디로 떡칠하던 그 날.

[루니아가_만든_요리의_위험성.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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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별일 아닌 이야기

3년 후 만남

 항상 편지의 첫 시작은 안녕 자기였다. 

 

 3년, 사람에게 데인 후 딱히 누구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시간들 그렇게 3년 이란 시간을 홀로 보낸 후 

그 사람을 만났다. 지금은 과거가 된 이야기지만... 

난 그사람 아니 그녀를 만났다. 외로움에, 서로의 공통점에 이끌려 누가 먼저 사귀자는 말도 없이 우린 그렇게 만났다. 

강한 여자이지만 상처많고 외로움이 컸던, 혼자서 모든 것을 이겨내려 하지만 눈물이 많고 옆에 누가 있기를 바란 듯 하던 그녀를 만났다. 

 

 우린 그렇게 사랑했고 난 이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전해주고 사랑해 주었다. 그렇게 우린 서로 맞춰갔다. 난 언제나 그녀가 우선이였고, 그녀가 내 중심이였다. 아픔이 많은 사람이란걸 알기에 그래서 더욱 그녀의 곁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본다면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으니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던 군대문제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훈련소를 들어가기 한달 전, 난 오로지 그녀만을 보며 생활했다. 언제나 같이 있었고 언제나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부담이였을까? 훈련소를 다녀온 한달, 그 한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마음이 변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함께 있던 시간들 속에서, 그녀가 웃으며 말하던 순간들 속에서 진지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자기의 마음을 말했다. 하지만 바보 같았던 난 그저 흘러들었을 뿐 그 말들이 지쳐간다는 표현이였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없던 한달, 그녀의 마음은 변하였다. 당연히 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가 했던 말을 이해한다 말했지만, 난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점점 그녀가 날 멀리하는 기분만 들었다.

 

 그렇게, 그렇게... 또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난 스스로의 답답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 내 서운함 때문에 했던 스스로의 잘못을 사과 했다. 그렇게 사과를 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난 변하지 않았다 라는 대답이였다. 그리고 더이상은 너무 지친다는 말이였다. 난 내가 바뀌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물었다. 그녀는 보인다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헤어짐을 말한 날, 그녀는 내가 바뀔꺼라 생각도 하지않는다 말했다. 하지만 왜일까? 아직 그녀의 모바일 프로필, 배경사진 그리고 SNS의 사진들은 한장도 지워지지 않았다. 차분히 정리해 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그 곳에는 나와 함께 했던 순간, 내 눈에 비췄던 그녀, 그리고 내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난 스스로가 바뀌길 바랬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아직 그대로인채 우리의 관계만 바뀌었다. 

 

 편지의 첫 시작은 언제나 안녕 자기였다. 

이젠 그 안녕이 인사가 아닌 헤어짐을 뜻한 말 같다.  난 바뀌고 싶었다. 그녀를 위해서 함께 맞춰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녀가 나에게 돌아온다면... 이라고 생각한다. 둘이 함께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건 내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난,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응원한다. 꿈이있는 사람,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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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은 뛰지 않는다.

에리아(4)

 [아들까지 집을 나갔어.]

 술을 먹어 나사가 하나 빠져있을 그가 올바른 글씨로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지금이라도 뒤로 쓰러질 정도로 위태롭게 보임에도 술을 마실 수는 있는지 벌컥벌컥 들이키더군요.

 "왜? 설마 자네가 노력을 안 한다고 생각해서 나간 것은 아니겠지? 내가 아는 한 아내에 대한 사람은 누구한테도 뒤떨어지지 않는 걸 내가 알아."

 제 말에 고개를 젓더군요. 그러고는 다시 보드판에 무언가를 쓰더니 보여 주더군요.

 [난 포기했어.]

 저는 그 글에 소리를 치르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녀와 단둘이 있기 위해 왕궁의 제안을 걷어차고 숲속으로 들어가 살림을 차린 자네가? 하, 믿을 수가 없어."

 질 나쁜 농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사에 포기라고는 모른 그였기에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지요. 그의 뛰어난 연구들은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분야에 포기를 모르고 계속 전진을 한 것들뿐이었지요. 그렇기에 저는 그를 존경했고 동경했습니다.

 "농담이지?"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 눈빛을 외면하면서 헛웃음을 짓더군요. 그 모습에 저는 진심으로 그에게 화가 났습니다.

 "자네가 포기한다니. 진심이야? 나한테 불가능은 없다고 말했잖아. 모든 것에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고 말했잖아. 단지, 우리가 잠재하고 있는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당신이! 포기를 입에 내뱉는 거냐고!"

 저의 고함소리에 화기애애했던 술집이 한순간 얼어붙었습니다. 머리까지 후끈 달아오른 술꾼조차도 딸꾹거리며 톰과 제가 있는 테이블에 시선을 모았습니다. 엘프인 제가 화를 낸 것에 놀란 것인지, 단순히 술집에서 일어날 만한 일이 아님에 놀라 관심이 집중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딱히 관심도 없었고요. 그때의 저의 관심은 오직 내가 존경하는 톰이라는 인간이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인정하는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톰은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는 저를 비웃기라는 하는 듯 피식 웃었습니다.

 [나는 포기를 한다고 했지.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인정하지는 않았어. 불가능이란 없어. 모든 것에는 가능성이 있는 거야. 우리는 그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인걸.]

 그의 긍정적인 글에 약간은 화가 누그러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의 글을 보자 소화를 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불에다 기름을 붓더군요.

 [가능성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지. 아내의 병도 불치병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찾지 못한 것뿐이야. 하지만 그뿐일세.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난 그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고, 설사 그 가능성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건 얼마만큼의 희망인 거지? 고작 해봤자 0.1%의 가능성 아니겠나?]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며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언제부터 가능성이라는 것을 찾고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나. 나에게 자네라는 인간은 결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쪽이 아니었어.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자네였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그리 나약해졌나."

 제 말에 톰은 갑작스럽게 멱살을 잡았습니다.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쉽게 알 정도로 그와의 얼굴이 가까웠습니다.

 [이 일을 연구와 동일시하지 마. 이건 생명이 달린 문제라고. 내 아내의 생명이! 연구 때처럼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시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의 글에 저는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경솔한 발언이었습니다. 그 글대로 사건의 성질 자체가 틀렸습니다. 실패해도 자금과, 시간적 손실만이 있는 연구와는 다르게 혹시라도 잘못한다면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볼 수 없으니. 하지만 그리 이해하면서도 저는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자네라면 한계까지 몸을 깎아내어서까지 아내를 위해 최고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할 것 같았는데. 나의 과대평가였나?"

 제 말에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거칠게 멱살을 놓고는 술을 병째로 벌컥벌컥 마시고는 보드판에 글을 써서 보여줬습니다.

 [원래는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실마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결코 낙담하지 않았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곳을 걸어가는 게 나의 일상이었으니 새삼스럽지도 않았어. 내 아들 소벤도 엄마를 위해 의사에게 수소문해서 열심히 치료법을 찾는 걸 알고는 포기라는 한심한 단어는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장담했지. 하지만.]

 그는 공허한 웃음을 지으며 글을 써 내려 갔습니다.

 [아내가 이제 그만해달라고 말했어. 그만해도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만해달라고 말이야. 그저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어.]

 그 글을 보여줄 때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건강했었지만, 이제는 앙상해진 그 손으로 필사적으로 내 손을 꽉 잡으면서 말했어. 인제 그만 해달라고. 보고 싶다고. 내 얼굴을 보고 싶다고. 아들을 보고 싶다고. 그리고 외롭다고. 젠장.]

 "그래서 그만둔 거였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이기에.]

 "그건 가능성 이전에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것임을 자네는 알고 있겠지."

 당연히 그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포기라고는 모르는 남자이기에 저 같은 엘프보다도 명확히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아들을 잃어도 괜찮은 건가?"

 제 말에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들도 아내만큼이나 사랑하는 그였기에 이것이 쉬운 결정이 아님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자네는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잃을 거야.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지."

 [아들의 의견을 나는 존중할 걸세. 나라도 자신의 아내가 죽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모라면 경멸을 하겠지.]

 "그 사랑은 아무것도 보답을 받지 못할 걸세. 자신이 사랑했던 아들에게 경멸을 받을 것이고 심지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아내에게서도 보답은커녕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허덕일 거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곁을 지키려고 하는가?"

 [그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래.] 라는 글을 보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제 말에 어디 하나 잘못된 말은 없었기에, 그의 끝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길의 끝은 지독할 거야."

 그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아들의 동경하는 시선은 경멸로 바뀔 것이며,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곁에서 떠날 것입니다. 그 길은 오직 고독만이 남아 있을 그런 것일 테죠. 그것을 알 톰이 웃으면서 보드판을 보여 주더군요.

 [아들을 부탁하네.]

 

*

 

 "지금 생각하면 그는 단지 짜증나는 마음을 저에게 화풀이하고 저에게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려고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내의 곁에 있겠다고 했었던 그가 제 앞에 올 리가 없었을 테니 말이죠."

 톰을 존경하고 그의 고독한 길을 알고 있는 카리야라는 엘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엘프이기 때문일까요? 그 길의 끝에 도달해서 얻을 것이라고는 고독과 고통뿐인 곳임을 알고 있음에도 가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의 자문에 해피가 대답했다.

 "인간인 저도 잘 모르겠으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만, 제가 아니라 성녀라고 불린 엘프라면 알지도 모르겠군요."

 "이 마을을 만들었던 세레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녀라면 크로딘제국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성녀라는 이름으로 민심을 흔들었다는 죄목으로 즉결처형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결국, 그렇게 됐나요."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해피는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들을 것도 전부 들었으니 이만 가야겠군요."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달빛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군요. 꼬마! 그만 구경하고 이제 준비해라. 유언에 쓰여 있던 선물이 무엇인지 알았어."

 산뜻한 꽃의 향기를 감상하고 있었던 티아는 유언에 관해 알았다는 해피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해피는 이 일이 끝난다면 집에 꽃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유언에 관해 알았다는 해피의 말에 티아가 놀라지 않은 것에 반해 카리야라는 엘프는 꽤 놀라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분명 그의 말에 유언에 관한 것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놀랍군요. 분명 저는 도움이 될법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거로 아는데요."

 그의 말에 해피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이 답과 그 이야기와 관계하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제가 말했지요? 그저 좋아만 할 수는 없다고. 그건 그 이야기의 속사정을 알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이 달빛의 선물이라는 것과 기분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꽃이라 그렇습니다."

 성녀가 좋아했었던 꽃이었다. 꽃을 싫어했던 자신에게 꽃을 좋아하게 만들었던 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깨달았다.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은 마음을 후벼 팔뿐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궁금합니다."

 소벤이라는 영감은 그것을 보고 어떻게 반응을 할지.

 "정말이지. 톰이라는 자는 지독한 것을 남겼군요. 죽은 자라면 조용히 떠나야 할 것을. 하다못해 과거를 기억하게 할 것은 남겨놓지 말아야 하는 걸."

 "그의 상냥함을 욕하는 것입니까?"

 카리야의 말에 해피는 고개를 저었다.

 "결코, 톰이라는 인간의 상냥함을 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무런 각오도, 고민도, 갈등도 하지 않은 행위가 타인에게 독이 되는지 몰랐던 것이 틀렸습니다."

 해피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언가가 기억난 듯 과거에 테일러에게 보여준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하지만 한가지에는 화가 나는군요. 아무런 고민도 책임감도 가지지 않은 채 도움을 주려고 하는 무책임한 행위에 짜증이 치밀어 오릅니다. 멋대로 하수구에 건져 올린다 한들 더러운 놈이 깨끗하게 될 리가 없는데. 이미 나는 더러운 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동경하라 그러고 좋아하라고 말을 하는 무책임한 네가!"

 그는 이를 악물었다.

 세레나는 해피의 말을 듣고 미안하다고도 변명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야기한 것이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고 있음에도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같이 듣고 있던 카리야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카리야. 당신에게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헛소리가 나왔군요. 저희는 이만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가게의 일이 끝난다면 저도 그쪽으로 가지요."

 해피는 고개를 끄덕이며 티아를 데리고 가게를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해피는 간과한 사실을 하나를 기억했는데 영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에 데려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곤란한데."

 "왜 그래요? 해피씨."

 "영감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지를 않았어. 의뢰자의 아버지의 집 주소는 알면서 아들의 집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다니 아이러니 하군. 혹시 너는 알고 있는 거냐. 영감이 상당히 귀여워 해줬잖아."

 자신과는 명백히 태도가 다른 것을 고려하면, 티아에게만 따로 영감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줬을지도 몰랐다. 그건 그것대로 문제인가.

 "아니요. 그때 해피씨랑 이야기한 게 전부였어요."

 "그래?"

 해피는 한숨을 쉬며 다시 카리야가 있던 가게로 돌아가 소벤이 어디에 사는지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예상과 다르게 부정적이었다. 소벤은 정착하기보다는 떠돌아다니는 생활이라 자신도 모른다는 것이 카리야의 답이었다.

 "의뢰를 했으니 마을에는 있을 텐데."

 영감을 찾는 과정이 곤란한 것은 아니었다. 어제 당장에라도 바닥이 무너질 정도로 낡은 집에서 잠을 설친 티아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아침이라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리야의 가게에까지 무리해서 왔으니 체력이 부족할 터였다.

 "어, 너는 드워프 아저씨 가게에 있었던 여자 맞지?"

 해피가 영감에 대해 고민을 하는 동안 금발의 소년이 티아에게 말을 걸었다. 나이는 8살 정도로 보였는데 활기찬 어린이답게 활짝 웃는 미소가 어울리는 아이였다. 해피가 보거스라는 드워프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 아이이자 가게에 있던 티아와 만난 소년이었다.

 티아는 소년의 물음에 기쁜 목소리를 띤 채 인사를 했다.

 "안녕~"

 "저번에 급해 보이던 건 제대로 끝냈니?"

 "응. 해피씨가 훌륭하게 마무리했어."

 "해피씨?"

 해피라는 말에 소년은 고개를 기울였다.

 "넌 그때 그 아이군."

 "아, 아저씨가 해피였어요? 이름이 되게 특이하시네요. 저는 또 강아지 이름인 줄 알았어요!"

 "마지막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사실이 그런데요. 뭘. 히히."

 해피는 그러려니 했다.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혹시 소벤이라고 하는 할아버지를 알고 있나?"

 "네. 이 마을에 오실 때 환자를 돌보는 일을 도와주고 있으니 알고 있죠."

 소년의 대답에 해피는 의아해했다. 드워프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을 때 소년은 빵집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리 흔치 않은 일도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저번처럼 편지 한 장을 소벤에게 전해주면 좋겠군. 수당은 얼마나 바라지?"

 "음~ 아저씨는 돈이 많아 보이니까 은화 한 닢 어때요?"

 "상관없다. 그럼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마."

 해피는 늘 가지고 있던 주머니에서 편지와 펜을 꺼냈다. 간단하게 용무를 적고는 은화 한 닢과 함께 소년에게 주었다.

 "생각해 보니 아저씨의 이름을 저는 아는데 아저씨는 저를 모르네요. 불공평하니 저도 알려드리게요."

 해피는 아무런 가식도 없이 대답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본심은 아저씨의 딸 이름을 알고 싶은 거니까 사양하지 마시라고요?"

 친절하게도 소년은 해피의 본심을 정중하게 진심이 담긴 말로 화답했다. 진심이 담긴 말이라기보다는 본능에 충실했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그런 의미로 잘 부탁드립니다! 란이라고 합니다."

 소년의 자기소개에 티아도 성실히 답했다.

 "나는 티아라고 해."

 "통성명도 했으니 부디 보수에 기대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는데."

 해피의 말에 란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에~ 모처럼 다시 만났는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두터운 사이를 가르려고 하다니 정말이지 최악인 어른이에요!"

 "이름도 몰랐던 주제에 두텁기는 퍽이나 그렇겠군. 장난은 그만하고 이제 내 의뢰를 해결을 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란은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있다고 표현했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마치 돈을 받고 하는 일은 확실하게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할 건 한다고요! 그럼 난 성질 급한 의뢰인씨 때문에 먼저 가야겠네. 티아. 다음에는 부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

 "성문 밖에 있는 왼쪽 숲에 있는 가게에 온다면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야. 다음에 한번 놀러 와!"

 이미 인파 속으로 들어간 란은 편지를 가지고 있는 손을 위로 흔들어 대신 대답했다.

 "그래! 최대한 빨리 만나도록 할게!"

 인파 속에 묻혀 간신히 보였던 손도 보이지 않자 그가 소벤에게 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란이라는 소년이 해피의 일행에 벗어났음에도 강한 존재감과 활기찬 분위기의 잔향이 남아있어 몇 번 보지도 않은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상상이 되었다.

 "가자, 꼬마. 다시 그 집으로 느긋하게 가면 저녁쯤에 도착할 거다. 어제처럼 성문의 병사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겠지?"

 "아, 네."

 해피의 말대로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다양한 음식과 물건들이 모여 있는 상점가에서 티아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서 충분히 둘러볼 수 있게 했다. 그 옆에 있는 세레나도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해피씨! 해피씨! 이거 무진장 매운데 맛있어요!"

 "호? 그건 닭꼬치군."

 "네? 제가 알기로는 맵기는커녕 달달한 맛이었던 걸로 아는데요."

 "뭐, 니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도 닭꼬치의 대부분은 맵게 하기보다는 달달한 양념을 많이 쓰니까. 아무래도  매운 양념에 쓰이는 재료가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자연스럽게 순한 맛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거지."

해피는 티아가 들고 있는 꼬치의 고기 한 점을 뜯어먹었다. 말랑말랑한 껍질과 혀를 자극하는 매운맛이 잘 어우러져 있는 맛이었다.

 "그런데 해피씨."

 티아의 부름에 해피는 고개를 돌렸다.

 "뭐지?"

 "해피씨는 유언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했잖아요. 그럼 소벤의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겠네요?"

 그녀의 물음에 방금전만해도 티아의 옆에서 시시덕거리던 세레나의 얼굴이 썩 좋지 못했다.

 "적어도 나에겐 아니야. 하지만 영감이라면 모르지. 사실 그는 좋은 아버지였다고. 나에게 소중한 아버지였다고 그렇게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지. 하지만."

 톰이라는 인간이 좋은 아버지였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다를 것이었다. 비록 해피가 그를 경멸하더라도 소벤이라는 자는 감동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적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하겠지."

 "왜요?"

 "슬슬 영감탱이 아버지의 집으로 가자. 시간이 거의 다 되었어. 거기서 네가 확인해라. 너의 가치관을 가져라. 나와 같은 빈껍데기와는 달리 말이야."

 

***

 

 톰의 집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새벽 1시 전까지 오라고 했으니 당연했다. 어디까지나 지금 온 것은 성문의 병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빨리 온 것뿐이었으니.

 티아는 꽃집에 나오고 실컷 놀아서 그런지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해피는 톰의 집으로 가서 침대를 정돈하고는 그녀가 잠깐 눈을 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언장의 선물이 궁금한 걸요."

 "그건 새벽에 볼 수 있으니 자고 있어라. 시간이 되면 깨워주마."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잠깐만 잘게요. 하암~"

 "잘 자라. 꼬마."

 많이 피곤했는지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잠이 든 걸 확인한 해피는 세레나에게 물었다.

 "그가 좋은 아버지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나. 세레나."

 눈을 맑게 하는 초록색의 단발머리가 바람에 살랑였다. 언제나 활기차게 웃고 있는 평소와는 다르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만약 정말 그리 생각한 거라면 정말이지 너에게 실망했어. 너는 나에 대해 티끌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뭐, 그게 너 다운가?"

 피식하고 해피는 냉소를 지었다.

 "영감은 절대 행복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후회하고 좌절하고 쓴맛을 보겠지. 좋은 아버지라는 걸 알리고 싶다고? 그래서 뭐가 변하는 건데. 그가 좋은 아버지라고 해서 소벤이라는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선물은 받아야 의미가 있는 거야. 그리고 의뢰를 한 걸 생각하면 그 할아버지는 분명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은 걸 거야."

 "영감은 쓰디쓴 커피를 마시겠지. 달콤함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쓴 커피를 말이야. 그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괜한 오지랖이야. 우린 그저 의뢰의 내용만을 충실히 해야 했어. 그저 그 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만을. 그 속사정은 간섭하면 말았어야 했다고!"

 "해피.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는 거야. 그걸 부정하려 하지 마."

 세레나의 말에 해피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도 그 잘난 일반론을 말하는 거냐. 그래, 어디 한 번 확인하자고. 과거가 있어야 하는지."

 

***

 

 시간이 자정이 넘어가고 있을 때쯤 소벤이 톰의 집에 찾아왔다. 여전히 윤기를 잃은 머리카락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짐에도 강력한 위압감을 풍기는 패기 있는 모습이었다. 소벤은 몇 십 년 만에 돌아와 친근함이 드는 것인지, 낯선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인지 썩을 대로 썩은 나무판자들을 만졌다.

 "유언장에 대해 안다면 그저 알려주기만 하면 될 것을. 굳이 이런 늦은 시간까지 부른 이유가 뭔가?"

 소벤의 목소리에 깨어난 티아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옆에 있던 해피는 영감의 물음에 대답했다.

 "일단 첫 번째 대답을 하자면, 제가 쓸데없이 의뢰인님의 속사정을 알게 되어서 그걸 설명하려고 이렇게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답은 유언장에 남겨진 선물이라는 것은 새벽이라는 시간이 되어서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사정? 의외군. 내 눈엔 쓸데없이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무책임하게 버리고 갈 타입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영감의 말에 해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은 하지 않습니다. 뭐, 일이 어쩌다 보니 흘러 이렇게 되었군요. 자, 시간도 되었으니 슬슬 선물을 개봉을 하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른쪽에 언덕이 있으니 거기에서 보도록 하죠."

 해피의 말에 소벤은 군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해피를 따라 올라온 곳은 한 언덕이었는데, 수많은 나무와 잡초로 둘러 쌓여있는 톰의 집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해피는 소벤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버지를 원망합니까?"

 "그래. 설령 불치병이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네. 언제나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을 해내는 아버지였기에 배신감은 컸지."

 "그래서 아예 집을 나와 의사의 밑에 들어갔군요."

 소벤은 쓴웃음을 지었다.

 "애꿎게도 지금에 와서도 어머니에 대한 병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만을 잡았어. 최선을 다했는데도. 스승에게 맞고 동문에게 따돌림을 받고 핥으라면 핥고 그랬는데도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지. 앞을 향해 걸어갔는데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어. 자괴감이 들더군. 무엇을 위해 나는 의사가 되었는지."

 세상에 알려진 비극적인 이야기는 보통 해결책을 찾았으나 이미 상황은 손쓸 도리도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도 미화가 되어있는 이야기였다. 대부분 현실 이야기는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지금까지 노력해 온 신념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해피는 동정하지 않았다.

 해피는 말했다.

 "톰이라는 당신의 아버지는 결코 자의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벤은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만 듣지 못한 듯했다.

 "뭐?"

 "당신의 어머니께서 그저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여 옆에 있기로 했다고. 어쩌면 그도 사랑하는 여인과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태양은 없고 은은한 달빛만이 대지를 비추고 있음에도 소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어째서 말하지 않은 거지? 왜 그런 이유가 있었다고 그는 말하지 않은 거지! 이렇게 들으면 내가 아하고 감사하고 감동이라도 할 줄 알고 있는 건가!"

 해피는 분명히 부정했다.

 "그럴 리가. 당신의 아버지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정확히. 다만, 그것이 그의 바람이었겠지요. 말도 못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 언제나 밖을 동경하는 아이에게 방해하고 싶지 않았겠지요. 감사를 바란 것도 아니며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그것이 그의 바람이었겠지요."

 해피는 생각했다. 톰이 좋은 사람인지는 각각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누구보다도 이기적이라고. 타인의 생각은 고려도 하지 않고 빚을 만들고 행복하기를 원했다.

 "시간이 되었군요. 자, 앞을 보십시오. 이것이 달빛의 선물입니다."

 해피의 말에 소벤 그리고 티아도 앞을 보았다. 거기에 분명 숲과 잡초로만 무성해야만 했던 톰의 집이 한 종류의 꽃이 한가득 뒤덮여 있었다. 그것의 색깔은 눈부셨으나 동시에 강렬하지는 않았다. 달빛이었다. 그 색깔은 달빛이었다. 꽃잎 자체는 분명 무색임에도 불구하고 달빛을 받아들여 신비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그 하나만으로도 신비한데도 한 집을 둘러쌓고 있어 눈앞에 있음에도 이 광경이 환각이 아닌지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에리아."

 해피가 그 꽃의 이름을 말했다.

 "새벽 2시에 피어나는 마계의 꽃입니다. 생물의 체내 속에서 양분을 흡수하다 그 매개체가 죽으면 꽃이 피어나지요."

 해피의 말에 소벤이 물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나?"

 "예. 하지만 바로 죽을 정도로 흡수하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숙주의 생명에 위험이 가지 않을 정도만 빨아들이죠. 그리고 이 꽃은 능동적으로 사람에게 붙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먹히지 않는 이상 체내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마계에서조차 그리 쉽게 볼 수 없는 식물이고 그 희귀성과 아름다움에 상당히 값이 나가는 꽃이죠. 그렇기 때문인지 꽃말이 이렇더군요."

 본인의 의지로 먹고 그 위에 꽃이 피기에 그것을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라고. 에리아의 꽃말입니다."

 에리아의 꽃말을 들은 소벤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해피는 할 일을 끝내자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티아가 해피를 불렀다.

 "해피씨?"

 "영감의 옆에 있어도 좋아."

 "네."

 해피는 또 다른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뒤를 세레나가 쫓아오고 있었다. 혼자 있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붙은 유령이니 그러려니 했다. 

 "해피씨 아닙니까?"

 언덕에 올라가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해피를 불러 세웠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니 꽃집의 주인인 카리야였다. 그는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그 꽃을 볼 수 있군요. 톰이 아들에게만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먼저 보지 말라고 부탁을 했거든요. 하하."

 "에리아는 한 사람을 위해 보통 잠을 자는 새벽에 피어나니 당연하겠지요."

 "소벤은 어떻습니까?"

 해피는 그의 물음에 답하기는커녕 질문으로 받아쳤다.

 "당신은 과거가 쓴맛밖에 없는 놈이라도 얽매여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리 생각합니까?"

 "예."

 언덕에 다 올라오자 소벤을 가리키며 재차 물었다. 소벤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회감과 죄악감만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것을 보고도?"

 "예. 좋은 추억이 있었기에 후회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후회도 죄악감도 없었겠지요. 지금은 그것들이 그를 얽매이겠지만, 극복할 것입니다. 힘들다면 제가 도울 것이고요."

 "톰이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군요."

 "예."

 당연하듯 대답하는 카리야의 말에 해피는 냉소를 지었다.

 "웃기는 소리를.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설령 좋은 추억이 있기에 후회를 느낀다고 한들 그걸 느낀 것 자체를 부정할 수도 없는데. 당초 과거라는 것은 좋은 과거조차도 슬픔을 느낄 것입니다. 잠깐의 행복한 감정은 순간의 달콤함뿐이죠. 그 후로 느껴지는 건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덧없음만이 마음을 자리 잡지요. 그걸 얽매여도 좋다고 생각합니까?"

 카리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세레나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기지 마! 그가 좋은 아버지라고? 과거라는 쓰디쓴 것을 다시 추억시키고 이미 죽어서 책임도 못 지는 호의를 내거는 그가 좋은 인간이라고? 그래, 백번 양보해서 영감이 감동해서 운다고 하자. 하지만 그조차도 죄악감이 든 감동이겠지.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해피는 웃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는. 이건 영감에게 슬픔만이 남을 뿐이다. 영감은 시간이 지나 후회와 죄악감을 극복하고 이 순간을 달콤한 홍차를 마시며 이리 추억하겠지. 부정적이라면 아버지에게 좀 더 잘했어야 한다고. 긍정적이라면 아버지에게 감사했다고. 하지만 그 긍정조차도 이내 씁쓸함이 밀어닥치겠지. 받을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당신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뒤틀려져 있는 겁니까?"

 카리야의 물음에 해피는 그저 웃었다.

 "왜 나만 뒤틀려있다는 듯이 말을 하는 거지. 당신은 뒤틀려져 있지 않은 것인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 우리 모두 뒤틀려져 있기에 뒤틀려 있는 현실에 살고 있는 거야. 나도 당신도 영감도 심지어 티아 조차도 나사 하나가 빠져있기에 이곳에 존재하는 거라고!"

 정상인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현실 자체가 불확실하고 불안전 한데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정상일 리가 없는 것이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위협시키고 행복이라는 덧없음을 계속 추구하는 것들인데 비틀려져 있지 않는 것이 더 웃기는 소리였다.

 "당신은 그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 사는 겁니까?!"

 카리야의 물음에 해피는 순순히 대답했다.

 "몰라. 일단은 세레나라는 여자가 왜 그렇게까지 그 신념을 추구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기 때문이지만, 그조차도 확실하지는 않아."

 "그럼 어째서."

 "묻겠는데. 당신은 지금 사는 것에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분명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카리야는 입을 다물었다.

 "불확실한 거야. 살아가는 이유라는 건. 그렇기에 우리는 후회를 하는 거지. 마지막까지 와서 삶을 돌아보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을 하며 후회를 하는 거라고."

 해피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무엇 하나도 확신할 수 없어. 자신이 하는 일이 잘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고, 지금 느끼고 있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지 확신할 수 없고, 이 길이 옳았는지 확신할 수 없어. 심지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정말 자신이 진심으로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상황에 맞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어."

 해피는 그들에게 물었다.

 "이봐, 당신들은 외면하고 있지?"

 카리야와 세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 상관없어. 불확실함을 알고도 외면하는 그 모습은 정말 멋지니까. 그렇기에 나는 널 동경했겠지. 아무것도 보답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올곧은 신념으로 타인을 돕는 널."

 카리야는 말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 이쪽 이야기야. 미안. 괜한 화풀이로 당신을 곤란하게 만든 것 같네."

 "아니요. 당신의 본심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유언장의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죠. 해피. 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감히 과거를 긍정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저는 얽매이겠습니다. 설령 처음은 달콤하고 뒷맛은 쓴맛만이 남는 독한 것임에도 소중하기에."

 카리야는 그 말을 하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해피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것이 현실을 외면하는 선택이었지만, 그는 분명히 현실이 무엇인지 알고 외면하려 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를 부정할 권리는 없었다.

 세레나가 말했다.

 "해피. 나는 그래도 네가 과거를 받아들인다면 좋겠어."

 그녀의 말에 해피는 화가 나기는커녕 웃음만이 나왔다.

 "세레나. 기억하고 있겠지. 잠깐이나마 내가 꽃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그래, 이렇게 아름다운 저 달빛의 꽃이라면 아무리 무감각한 나 자신이라도 꽃을 아름답게 보게 되지. 좋아했어. 잠깐이지만 분명 꽃을 좋아하게 됐지. 하지만 그 꽃이 피로 물들여져 있다면 어떨까."

 세레나는 말이 막혔다.

 "동경하던 여자가 그 꽃의 위에서 피범벅으로 물들여져 있는 걸 좋아할 리가 없잖나."

 해피는 공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과거를 긍정하라니. 받아들이라니. 난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내가 너를 알 수 있게 되는 날이 죽기 전에 찾아오기는 할까."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길이 있기에 기껏 걷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 낸 길이 아니었고 아무런 의지도 없는 걸음걸이였다. 사는 의미가 있는지 모를 발걸음이었다.

"이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거지?"

 대답은 없었다.

 

 

 

p.s

에리아 에피소드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너무 놀아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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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엄마의 빗질과 머리끈' 카네이션:carnation

'엄마가 많이 늙었구나.'

매일같이 얼굴을 보니까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이듦'이었는데, 새삼 엄마의 세월이 빨리도 흘렀구나 느껴졌다.

늦은 밤, 자고 있는 엄마를 보니 눈덩이까지 내려앉은 주름이 그동안의 삶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 엄마가 젊었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내가 2학년 때 처음 머리를 스스로 묶었으니까) 엄마는 예쁜 머리끈을 자주 사서 머리를 묶어주셨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을 표현의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작고 앙증맞은 꼬마가 새겨진 머리끈,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작은 구슬이 달린 끈, 장식은 달려있지 않지만 형광색이 포인트인 긴 끈까지...

너무 세게 묶어서 종종 내 눈이 여우눈처럼 치켜올라가곤 했지만 내 전문 미용 선생님의 손길이 참 좋았더랬다.

예쁘게 묶인 머리를 보고 부러워하던 친구들도 많았다.(아마도 맞벌이 부모님을 둔 까닭에 상황상 단정한 빗질은 어려웠을 거다)

지금은 엄마 손은 다소 투박해졌고 쪼글쪼글하다. 내일은 왠지 엄마한테 내 머리를 부탁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어리고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30대다.

모정, 부인의 사랑.

카네이션의 꽃말이다. 우리집 곳곳에는 카네이션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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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슬프고 괴로운 사랑의 쓴맛' 아네모네 anemone : 바람꽃

배신, 속절없는 사랑, 기대, 사랑의 쓴맛...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을 사랑하기에 저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비록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슬프고 괴롭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저 말들의 공통점이라면 이뤄지지 않은 사랑, 혹은 이별 뒤 쌉싸름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이야기'는 아네모네를 더욱 사연있는 꽃으로 만들어준다. 

먼 옛날, 키프로스 섬에 살고 있는 키니라스 왕에게는 미르라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왕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미르라가 더 아름답다'고 말했고, 이 사실을 안 아프로디테는 미르라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저주를 내리게 된다. 

죄책감과 수치스러움, 절망감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던 미르라. 그녀의 자초지종을 들은 유모는 아무도 모르게 키니라스 왕과 동침하도록 뒤를 봐준다. 후에 미르라는 아이를 잉태하게 됐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미르라를 죽이려 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미르라는 신들에게 자신은 죽어도 좋으나 아이만큼은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는 이를 불쌍히 여겨 미르라를 몰약 나무로 만들어 산 목숨도, 죽은 목숨도 아닌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미르라는 요정들의 도움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아도니스'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맡겼고,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청년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페르세포네에게 아도니스를 빼앗으려 하지만, 페르세포네 역시 만만치 않게 아도니스를 사랑하는 상황. 

과정이야 어쨌든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건 신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일같이 함께 사냥에 나서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로디테는 잠시 아도니스의 곁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하필 그날 아도니스는 멧돼지에게 겁없이 덤벼들다 날카로운 엄니에 찔려 숨을 거둔다. 당시 아도니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멧돼지는 아프로디테의 전 연인인 전쟁의 신 아레스가 변화한 것이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흘린 붉은 피 위에 향기로운 신주 '넥타르'를 뿌렸고, 그 자리에서는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아네모네다. 

 

아네모네는 다른 말로 '바람꽃'으로 불린다. 아네모네라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anemos에서 유래됐다.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아도니스처럼 살짝 부는 바람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비록 꽃이 피어있는 기간은 짧지만, 그럼에도 아네모네는 피어있을 때만큼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하늘하늘 벨벳같은 꽃잎의 질감, 보기만해도 취하는 꽃잎의 색감... 한창 아름답게 피어있던 아도니스처럼.

 

*아네모네는 9~10월 가을에 심어져 이듬해 이른 봄에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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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충분히 예뻐' 러넌큘러스 Ranunculus:개구리눈알

개구리 눈알처럼 꽃 얼굴이 동그랗고 큰 '러넌큘러스'의 꽃말은 '매력', '매혹', 그리고 '비난하다'다.

하늘하늘 거리는 꽃잎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꽃말처럼 꽃 자체가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희고 은은한 핑크 색상은 웨딩 부케로도 많이 쓰이는, 신부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꽃들 중 하나다. '하노이'라고도 불리며 꽃이 다른 색상보다 크고 풍성한 것이 특징.

또 다른 꽃말 '비난하다'는 의외이지만, 비난하는 사람에게 혹은 미워하는 사람에게 이 꽃을 선물하거나 받음으로써 마음속 앙금이 녹아내릴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최근 5개월 동안 운동에 나태해지고 먹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었는지 5kg이 늘고 말았다. 여자의 평생 숙제가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다. 원래도 몸무게에 민감했지만, 불어버린 몸무게를 보고 화가 치밀어올랐다. 1,2kg이면 열심히 운동해서 한 달 안에 돌려놓으면 돼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뜻밖의 숫자에 허탈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레프트 훅 라이트 훅, 양훅으로 머리통을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반격을 하고 싶지만,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그 무기력함은 곧 나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바뀌었다. 

일하기도 싫어졌고, 타인과 말을 섞는 것도 싫어졌다. 평소 좋아하던 쇼핑도 하기 싫었다. 사봤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일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남았던 화요일 오후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도착하는 큰 화원에 갔다. 

축축하지만 싱그럽고, 따뜻한 풍경일 것 같지만, 시끄럽고 분주한 꽃 도매점.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매력적인 노란 러넌큘러스와 디디스커스 한단씩을 샀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화해의 선물이었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은 버리는 게 어때?' 

왔다 갔다 왕복 두 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었지만, 손질해서 물병에 꽂아놓은 꽃들을 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리고, 움츠러들었던 내 마음이 조금씩 다시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올망졸망 작은 꽃들이 모여 피어있는 디디스커스와 풍성한 얼굴의 러넌큘러스로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화원으로 무작정 향한 내가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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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2 - 1

281

 

티르의 본성이 아직까지 나오지도 않은 이런 불길함 속에서도

늘 위험이 도사리는 문제는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흔한 패턴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위험하고 스멀스멀 기어온 본능적인 무언가가.

-휴가를 나온 루니아를 본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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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저 놀러온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무렵. 12월의 2째주가 여전히 진행이 되었을 때, 루니아 누나는 휴가를 나왔다는 충격발언과 함께, 쇼콜라 씨와 같이 잡화점의 청소를 도와주고 있었다. 평화롭게 지내면 그만이라는 나의 일념에 한치 오차도 없이 가루까지 으깨버리는 루니아 누나의 등장만으로, 계속해서 긴장을 한 상태로 접어들 무렵. 검은 고양이 상태로 있는 레시아는 언제나 벽난로 근처에 포근한 듯이 몸을 말아서 엎드리고, 시나는 내 품안에서 고개만 내밀면서 전방만 주시했다.

 

루시피나와 마리아는 3층 청소를 하느라 바쁜 상태이고, 이렇게 북적거리는 잡화점을 보니, 활기차고 쓸쓸하지는 않는데, 지금 내 눈에는 언제 어디서 폭발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평화파괴범이라는 타이틀을 전부 달고 있었다. 이대로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이런 분위기도, 언젠가는 끝이 없는 줄타기만 타다 추락을 하겠지.

 

누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누려라.

이 말은 누군가가 했던 말 중 하나다.

지금 이 평화를 최대한 누리지 못한다면, 결국 무너지는 평화를 보며 천천히 쓰러지고 좌절을 하겠지. 마치 나처럼.

 

“마스터. 글의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아. 그건 지금 글쓴이가 워드로 쓰고 있지 않아서 그래. 지금 워드를 여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면서 한글로 대신 사용한다고 하더라고.”

 

“마치 도화지에서 대리석으로 옮겨지는 기분이군요.”

 

난 왜 이런걸 알고 있어야 하지?

그보다 도화지에서 대리석으로 옮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루니아 누나. 보통 휴가는 다른 곳에 먼저 가는 것이 좋지 않나요? 어째서 이런 곳에 청소하고 지내면서 휴가를 보내는 거죠?”

 

늘 그래왔듯이 나는 루니아 누나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본래 휴가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길든 짧든 업무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즐기고 싶은 일을 하면서, 꾸준하게 자신개발에도 힘을 쓰는 것. 진정한 휴가는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냥 10시간이든 20시간이든 1년이든 늘어지게 자는 것이 행복이라면, 휴가를 보내면서 그럴 수 있을 텐데, 여전히 잡화점에 와서 같이 보내려고 하는 행동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거야 이곳에는 카일이 있기 때문이랍니다아.”

 

“정말 심플하다 못해 사과를 깎고 ‘요리 완성!’이라고 외치는 기분인데요.”

 

“어머나? 사과를 깎아드려요오?”

 

“아뇨. 누나는 재료도 건들지 마세요. 재료를 만져서 돌연변이가 나오면 어떻게 해요? 심비오트라도 나오는 날에는 저희들이 전부 베놈처럼 변해버린다는 복선이 깔린다고요.”

 

재료도 만지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위험성을 보여주는 루니아 누나는, 오직 요리만큼은 내가 절대로 시킬 수 없었다. 다른 말로 보자면 “물에 한 방울도 묻게 하지 않겠다.”라는 멋진 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하면서까지 절대로 요리를 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이고 있었다. 다른 소설에서는 화학물질을 요리에 넣어서 주인공이 구른다고 한다면, 나 같은 경우는 음식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루니아 누나 때문에 굴려지기 십상이니까.

 

“그래도 누나의 영양식을 먹고 카일이 감기에서 나았잖아요?”

 

“아뇨. 말은 똑바로 하죠. 그때는 저를 죽이고 감기도 같이 죽였다는 말을 쓰셔야죠. 루니아 누나의 요리라면 정말 암세포마저 때려잡아 죽이게 생겼다고요. 물론 사람도 거기서 희생을 당하겠지만!”

 

루니아 누나는 포근한 얼굴로 “그런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풍성하면서도 웨이브가 화려한 루니아 누나의 머리카락은, 고개방향으로 천천히 이동을 했고, 나는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받아야 할 선물을, 미리 받는다는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기분의 한숨이냐고 구체적으로 묻는 사람이 가능한 없길 빌며, 아직까지 차에 담겨있는 따듯한 허브티를 마시려고 할 때. 잡화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 선생님 계십니까?”

 

붉은 머리의 남자는 아테리카 학원의 복장을 입은 체 입을 열며 나를 봤다.

 

“미안하게도 카린은 없다.”

 

“애초에. 남자라고 밝힌 사람은 선생입니다만? 그리고 저는 지금 카린 선생이든 카일 선생이든 도움이 필요해서 온 것뿐입니다.”

 

“도움?”

 

검성의 피를 이어받은 루크가 약간 비장한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났다. 게다가 루크 주변에 있던 여자애들마저 없는 것으로 보면, 스프린터 셀을 찍은 것인지는 몰라도,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을 한 뒤에 이곳으로 온 듯했다. 그래도 아테리카에서 짧지만 스승노릇을 해준 인연으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뭐. 스승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 말해봐.”

 

루크는 비장한 얼굴로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자의 넋을 나가게 하는 키스를 알려주세요!”

 

“푸핫! 콜록! 콜록!”

 

바닥청소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어쩌다가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지금 내 귀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 아니길 빌며, 나는 루크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그런 거 알아서 뭐하게!”

 

루크는 내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천천히 사정을 설명을 했고, 대략 간추리자면 마를렌, 파르시아, 아르메, 미야와 여전히 관계를 맺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니. 잠깐만. 진짜 내가 지금 이걸 왜 듣고 있어야 해?

 

“너희들의 문제는 너희들끼리 해결해!”

 

“하지만 카일 선생의 키스는 마왕도 홀려버린다는 소문이 있어서.”

 

누구야? 그거 퍼트린 녀석이.

 

“아무튼 키스네 뭐네 하는 것은 나에게 더 이상 묻는 게 아냐. 진실된 조언이 필요할 때 나를 찾아오는 것이 좋지. 아니 어쩌면 은빛 송곳니...아니, 로버트 씨라면 제대로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실습지향을 제대로 채택하고 있을 테니까. 지금 당장 편지를 써줄까?”

 

당체 제자의 연애관련 문제는 내가 왜 책임을 져야하는지 모르는 와중에, 루니아 누나는 느닷없이 내 목을 끌어안고 입을 열었다.

 

“키스의 교본을 알려줘야 제자가 따라하지 않겠어?”

 

“그만둬요. 대낮부터 이게 무슨 짓이에요. 청소년 앞에서 이상한 것 보여주려고 하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카일 선생.”

 

“안 한다고!”

 

제자와 루니아 누나가 좌우로 난리치는 모습에, 레시아는 어느 사이에 테이블 위에 올라간 상태로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소란이 말도 아니로군. 애초에 주인에게 멋대로 키스를 하려고 하지 말거라. 나중에 주인이 밤만 되면 알아서 해주거늘.”

 

“안 해주거든요!”

 

레시아에게 다시 소리치고는 목이 말라서 다시 허브티를 한 모금 마시고, 나는 루크에게 입을 열었다.

 

“애초에 남이 알려주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좋지 않아. 그래서 나도 너희들에게 기초만 알려주고 다른 것은 알아서 응용하라고 남기고 갔지. 그런데 아테리카에서 이곳으로 와서 하는 말이 당초에,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정신이 다른 행성으로 날아갈 것 같거든? 그러니까 다른 걱정거리가 있다면 그걸 위주로 나에게 말을 해줘.”

 

루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다음 말을 했다.

 

“밤에 사용하는 필살기에 대해...”

 

“진도가 너무 나가잖아! 청소년!!!”

 

엘리트라고 해서 그런 것까지 예습하려고 들지 마!

 

“아무래도 너희들의 연령으로는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냥 학원으로 다시 돌아가기나 해.”

 

“하지만 선생님!”

 

“난 오늘부터 선생을 그만두겠다! 루크!”

 

“주인. 애석하게도 석가면이 없노라.”

 

아무래도 다음부턴 그냥 가면을 들고 패러디를 해보도록 하자. 안 그러면 레시아의 날카로운 태클이 나에게 들어오니까.

 

“그래도 이런 사소한 문제로 나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면, 너도 어느정도는 여유를 되찾았다거나, 아니면 잘 어울리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안정적이라고 해야할까? 플러그가 뽑혔다고 해야 할까?”

 

“아니. 선생. 플러그가 뽑혔다는 표현은 그때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요즘 청소년들은 알 것 다 아는 시대니까.”

 

“시끄럽고. 너를 따라다니는 여성진들은 지금 네가 여기있는 사실은 모르는 건가?”

 

루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당장 여기서 자리를 뜨는 것이 좋아. 너에게 실프가 붙어있거든.”

 

하급 바람정령 실프.

분명 정령술은 아르메의 특기 중 하나였으니까.

 

-쾅!

 

잡화점의 문이 오랜만에 저 멀리 날아가기 시작하면서, 곧 이어 아르메와 파르시아, 마를렌, 미야가 루크를 발견했다.

 

“루크! 찾았잖아요! 겨울방학을 맞이해서 제 별장으로 가기로 했잖아요!”

 

미야가 루크의 팔을 끌고 질질 끌기 시작하고, 아르메와 파르시아가 각각 반대쪽 팔과 등을 끌어안아 옮기기 시작했다. 잡화점의 문은 나중에 마를렌이 가볍게 번쩍 들어서 그냥 붙여놓고 “실례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주인의 제자답지 않는가? 여자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아 하니.”

 

“전 휘둘린 적이...많구나. 저 녀석도 나름대로 고생이 많겠네.”

 

하얀 올빼미는 그 소란 속에서도 내 품안에서 눈을 감고 자고 있었고, 레시아는 작은 앞발을 슬쩍 핥다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인은 적정연령임에도 불구하고 왜 밤에 필살기를 사용하지 않는지. 그것이 짐은 살짝 궁금하다.”

 

“그거야 단순히 그걸 적나라하게 쓰는 순간, 사방팔방에서 잘려나가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수위가 있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늘 말했듯이 저는 제 안전이 제대로 확보하고, 잡화점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변했을 때까지는, 사적인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고요. 그보다 밤에 필살기 쓰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거론이 많이 되는 건가요?”

 

“일부 독자들은 주인과 대체 누가 이어지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걸 왜 레시아가 알고 있는 건데요?”

 

그러다가 레시아의 머리 위에 전구가 하나 불이 들어오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군. 주인은 결국 하렘왕을 노리기 때문에, 모든 여성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인가?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폭주한 히로인에게 엉망진창 당하는.”

 

“거기 망상 그만 집어넣어. 전에 간지럼 고문을 당했을 때가 생각나니까요. 억압되는 기억은 억압시켜놔야 트라우마가 안 되는 것 몰라요?”

 

루니아 누나는 옆에 수정구로 통해 그때 그 악몽을 보고 있었

 

“그런 거 보면 안 돼!”

 

“괜찮아요오. 이건 제가 잘 간직했다가 백장미 11호집에...”

 

“올리지 마!”

 

겨울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하면서도, 이렇게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늘 그렇듯이 마찰이 많아진다. 그래도 내 안에 불안함은 아직까지 가시지 않는 이유라면, 이런 일상이 나는 항상 깨져나가고, 다시 그 일상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그런 것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나는 이런 바보 같은 생활을 지켜 나아가야

 

“그나저나 마왕님. 저도 카일을 간지럼 태우고 싶은데요오?”

 

“윤허한다.”

 

“하지 말라고! 멋지게 독백으로 마무리 하려는 것마저 방해하려들지 말란 말이야!”

 

하려나? 갑자기 고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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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너무 많아요.

그만큼 늦게 써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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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1 - 9

280

 

 

 

뭐지?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다고? 루멘의 장례식을 보고 난 뒤에 또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던가? 아니면 이게 지금 극히 자연스러운 타이밍이라던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나만 모르는 것일까? 뭔가 할 이야기가 더 남은 것일까? 아니면 이게 이야기 32번째임에도 불구하고, 알게 모르게 건너 뛰어버린 것일까? 수 많은 고민과 문제점을 추측하느라 가속도가 붙어 과열되고 있는 뇌를 부여잡는 동안, 레시아는 카운터 위에서 고개를 들고 나를 보고 있었다.

 

“12월 2주차로 넘어가면서 주인의 뇌가 터지기 직전인 건가? 늘 그래왔듯이 주인은 쓸 때 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한 숨을 내쉬며 레시아가 나를 언짢은 눈으로 보고 다시 입을 열기를...

 

“다음 이야기의 진행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글쓴이의 소재가 떨어졌다는 것은 아니다만, 주인을 또 어떻게 굴릴지 지금 뇌 안에 있는 인격 A부터 Z까지 모아놓고 회의를 열고 있을 테니. 추후에 사전통보를 기다리면서 느긋하게 허브티나 마시는 것이...”

 

“잠깐. 어째서 내가 굴려진다는 전제로 이야기가 되는 거에요?”

 

“주인의 숙명이지 않는가? 마치 죠죠 1부에서 파문을 이용해, 자신의 숙적인 디오 브란도를 제거하기 위한 것도 숙명. 죠죠 2부에서는 기둥의 남자를 쓰러뜨리기 위한 것도 숙명. 모든 것은 숙명이라는 것 하나로 이어져 종말을 하는 것이다.”

 

“타고났을 때의 운명이 굴려진다는 것이라고 멋대로 지정하지마!”

 

검은 고양이는 꼬리를 살짝 살랑이다가, 이윽고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별의 아이는 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른 대륙으로 떠나간 건가요?”

 

“별의 아이는 가장 중요한 대륙에만 배정을 받아 움직이는 신의 사자로, 이 대륙에는 이미 필요가 없다기 보단, 이 대륙의 사명을 다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 것뿐이다. 분명 느닷없이 바다에서 솟아난 대륙인 리본 테라<Reborn Tera>로 떠나갔다. 증오스러운 나의 숙적인 데모르테 또한 이미 그 운명을 알고 있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고, 거의 죽을 때가 다 되면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오겠지.”

 

다음 계승식을 위해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건가.

 

“여기서 리본테라면 비공정으로 6개월을 가야 하는 거리잖아요? 반년 동안 VIP만 타는 비공정이 아니고서야. 거기서 6개월동안 생활하는 것도 거의 무리라고 보는데요?”

 

“그야 당연히 VIP전용 비공정을 태워 보냈노라. 별의 아이는 이 대륙에서는 신의 사자인 만큼, 교황 그 이상의 직위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는 루멘을 떠나 보내고 내 할일 다 끝나서, 다시 잡화점으로 돌아와 일을 한 덕에, 그 후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한들 무슨 이익이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아두면 아는 것만으로도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주인. 4연패 아니던가?”

 

아 제길.

잊고 있었다.

5연패 이후에는 간지럼 벌칙이 걸려있는 이후에, 레시아는 단 한번도 나를 봐주지 않고 가위바위보에서 이기기 시작하면서, 지금 지는 순간 말 그대로 거의 끝장나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마스터.”

 

시나가 나를 응원하러

 

“이번에 지시길 기원합니다.”

 

온 것은 아니구나. 최근에 시나도 나쁜 친구를 사귀어서 그런지, 성격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사고 방식이라는 것이 점점 바뀌기 시작한 것일까? 완전히 이 세상에서 적응이 되었다는 소식은 기쁘지만, 이런 식으로 적응을 하는 것은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제발 이번에는 무승부라도 만들어야 다음이 편할 텐데.

 

“이번만큼 강하게 압박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냥 한번 강하게 맞아서 쓰러지는 것이 더 깔끔하고 편했어. 이런 5연패 벌칙은 뭔가 무섭다고요?”

 

“뭔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확실히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만 다가서면 우리를 금방 밀어내는 성향이 보이는 것은 사실. 따라서 짐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론은 이런 식으로라도 가까워 지는 것이다. 짐과 비둘기의 특수한 연결은 서로 인연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강해지는 것. 사역마와 주인의 관계는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주지만, 특수한 연결고리는 호감도로 강해진다. 그거 있지 않는가? 호감도에 따라서 그래픽이 달라지는 게임.”

 

“왜 게임을 예로 들고 그래요? 아무튼 이제 그냥 막 나가자는 거잖아요. 당초에! 강제로 저를 간지럼 태운다고 호감도가 올라갈 사람으로 보여요?”

 

“주인은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여자에게도 철벽이라,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작전으로 해야 한다. 게다가 마리아의 꼬임에 넘어가는 주인에게는, 극히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행동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간지럼을 태운다는 것이다. 사설은 집어치우고 유언을 쓴다면 지금 써두거라.”

 

“어째서 유서를 쓰라는 거야! 애초에 내 부모님은 이미 날 죽은 사람 취급으로 했다고!”

 

“자랑스러운 짐의 딸 아이인 카렌이 있지 않는가?”

 

“냥캣. 카렌은 저의 자손입니다.”

 

레시아와 시나는 아직까지 카렌을 가지고 싸우고 있었던 건가? 좋아. 이렇게 싸우고 있을 때, 눈치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탈출하는 것이다! 그 장소에! 그 장소에만 가면!

 

-쾅!

 

잡화점이 자동으로 닫히다니!

 

“주인. 잡화점은 이미 닫혔다고?”

 

“하하! 사실 나의 도주경로는 3층이었던 것이”

 

-20초 뒤

 

“알겠어요! 제발 그만 쌓아 올려요! 안 도망가면 될 거 아니에요!”

 

잡화점에 있는 물건을 전부 다 나에게 달라붙게 만들어서, 나를 제압한 시나와 레시아는 도망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자마자, 모든 물건들을 전부 떨어뜨려놨다. 최강의 독을 지닌 황금개구리의 뚜껑이 열릴 뻔했을 무렵. 다행히 도중에 멈춰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니까...

 

“하하하! 사실 페이크다! 나의 도주경로를 위해 계단 바로 앞에서 멈춘 것! 따라서!”

 

-다시 20초 뒤.

 

“정말 미안하고 정말 잘못 했으니까. 정말 안 도망갈 테니까. 제발 그 뚜껑은 열지 말아주세요. 지금 개구리들은 전부 겨울잠 자고 있을 시기인데, 지금 열어서 깨워버리면 개구리들에게 민폐잖아요? 아니 그렇다고 뚜껑을 서서히 열려고 움직이지 마시고, 전 어린 나이에 죽기 싫다니까요? 아직 해봐야 할 경험도 많고, 배워야 할 지식도 많은데, 제가 죽으면 잡화점은 누가 키울 거에요? 제발 살려줘요. 우리 사이는 이 정도로 끝나는 사이가 아니잖아요?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저를 보시면 뭐라 생각하겠어요? 아니 부모님은 살아있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튼 제발 살려줘요!”

 

나도 지금 무슨 헛소리를 연달아가면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생존이 더욱 중요한 내 입장에서 뇌를 거치지 않고 단어를 날려보냈다. 레시아와 시나는 다시 염력을 풀고 나를 놔주면서, 나는 또 한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주인의 간절한 외침이 짐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이제 슬슬 가위바위보를 할 준비나 하거라.”

 

최고로 좋은 시나리오는 무승부로 끝내는 것이고, 어차피 져도 나는 도망가기만 하면 될 뿐이다. 최후의 파문을 짜낸 가위바위보를!

 

“가위!”

 

“바위!”

 

““보!””

 

나는 가위.

레시아는 바...바위!?

 

제길 큰일났다!

내 안에서 중요한 뭔가가 끊어지기 전에 빠르게 도망을 가는!

 

-또 다시 20초 뒤.

 

“음!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지금 그 황금 개구리의 동면을 풀어버리면, 저를 간지럼 못 태우잖아요? 레시아는 저에게 간지럼을 태우면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잖아요? 괴롭히기 위해 고문을 하려는 것뿐이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 뚜껑을 열지 마시고. 시나야! 그거 열면 안 되는 거야. 응 못써. 아무튼 그건 열지 말고 개구리에게 독살당하는 주인공으로 기억되기 싫다고요! 개구리 왕자에서 공주가 입맞춤 해서 왕자가 나온 것을 꿈꿔온 어린 여자아이가, 황금 독화살 개구리에게 입맞춤을 해서 죽은 사례도 있는데! 어째서 나는 사역마에게 이런 협박을 당해가면서 죽을 위기를 넘겨야 한단 말이야!”

 

결과적으로 나는 잡화점의 기둥에 양손을 포박당하며, 레시아와 시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레시아와 시나는 각각 본 모습으로 변하면서, 레시아는 능글맞은 눈빛을 하고 있었고, 시나는 흥미에 가득 찬 눈을 하고 있을 무렵. 나는 지금까지도 빠져나갈 수 있는 책략이 있는지 생각을 했다.

 

“주인. 여전히 이곳에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군? 따라서 주인이 생각하지도 못한 처형방법을 생각해냈노라.”

 

허리와 양손에는 간지럼을 태울 도구들이 한 가득 있었다. 가장 크게 무서운 것은 꿈속에서 봤던 검은 오일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잠시만! 저 검은 오일은 왜 아직도 있는 거에요!”

 

“릴리스에게 받아왔다. 그리고 간지럼을 태우는 기술도 전수 받았지. 간지럼만으로 천계와 마계를 들락날락하게 해줄 테니. 주인은 한 가득 기뻐하며 기대하는 것이 좋다.”

 

시나는 레시아의 말에 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벽색의 눈동자로부터 투지가 나타났다.

 

“잠깐! 멈춰요! 지금 이 상태로 오일을 바르고 시행한다면,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진다고요! 수위를 한 가득 올려서 해일을 일으킬 거에요? 그건 또 아니잖아요!”

 

레시아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건들이며, “음. 그렇군. 확실히.”라는 말과 시작으로 다음을 이어갔다.

 

“지금은 주인의 처음을 앗아가기에는 확실이 이른 시점이니라. 게다가 간지럼만 태우기 위해서 전신에 오일을 바르게 만들 생각이지만, 옷을 벗기기에는 좀 그렇군. 확실히 청소년이 보기에는 좋은 장면이 아닌 것이 맞다.”

 

후. 레시아가 그나마 생각이 깊은

 

“그럼 옷 입은 체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냥캣.”

 

“좋은 생각이다 비둘기여.”

 

너희들은 왜 그럴 때만 죽이 잘 맞냐고!

 

레시아의 붉은 눈과 연보라 빛의 얼굴이, 서서히 나에게 그늘로 만들면서 사형선고를 내리듯 입을 열었다.

 

“당분간 여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기뻐하기는 아직 이르다. 서비스 컷을 위해서 잠깐 일시적으로 여성으로 돌아가는 것도 주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굴욕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내 안에 항마의 축복을 빼낼 생각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내 안에 레시아나 시나가 들어가야 강제로 변하는 것일 뿐. 지금 둘이 간지럼을 집행한다고 하면, 어느 누가 들어가서.”

 

-철컥!

 

“어? 잠깐. 레시아.”

 

“레시아-13<Thirteen>이라 불러라. 아주 예전에 주인에게 사용하려던 여체화 탄환을 기억하는가?”

 

“그거 그냥 드립인 줄 알았는데 실존하고 있었냐!”

 

-탕!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눈을 뜨고 내 앞에 거울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카린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보다 서비스 컷을 위해 희생하라니? 그건 대체 무슨 말이야?

 

“여자끼리라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비둘기여. 옆구리와 겨드랑이 위주로 오일을 뿌리거라. 짐은 귀와 목을 위주로 천천히 내려갈 테니.”

 

“알겠습니다. 냥캣.”

 

오일이 잔뜩 뭍은 붓이라던가 빳빳한 깃털이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을 치지 못하고 발마저 고정된 상태로...

 

“루시피나! 지금 뭐 하는 거에요!”

 

“신랑이 기절한 동안 돌아와보니 뭔가 재미있어 보여서. 나는 신랑의 발바닥을 간지럼 태우라고 명령 받았거든.”

 

“그런 명령 받지 않아도 되거든요! 잠깐! 오지마! 이거 정말 부적절한 컨텐츠란 말이야! 안 되겠다! 킹 크림존!”

 

-시간을 지울 수 없습니다.-

 

“뭣이!?”

 

“짐 앞에 서는 자는 어떤 패러디를 쓴다고 해도, 절대로 사용할 수 없노라. 이것이‘골드 익스피리언스 레퀴엠’.”

 

“아니! 레시아가 하는 것도 패러디 거든요! 잠깐! 시나! 귀는 핥는 것이 아냐!”

 

“하지만 마스터는 츤데레라서 귀가 약하십니다.”

 

“그건 잘못된 정보라고 말했잖아! 그리고 루시피나! 허벅지로 손이 올라오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카린이 된 상태의 신랑의 다리는 뭔가 매끈하고 부드러운걸. 핥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핥으면 안...꺄핫! 레시아! 대체 어딜 만지는 거에요!”

 

“오. 주인은 의외로 좋은 걸 몸에 지니고 있지 않는가? 짐의 크기보다는 살짝 작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마음껏 주무를 수 있을 것 같다.”

 

“안 돼! 그만! 그만해! 그만 두란 말이야! 하지마아아아앗!”

 

 

그렇게 대략 2시간동안 손은 결박 당하고, 강제로 여체화가 된 상태에서 검은 오일 범벅이가 된 체, 철저하게 간지럼 고문을...그것도 너무 부적절하게 당해서, 하나하나 설명하면 큰일 날법한 수위를 가지고 있기에, 이 이상은 쓰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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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 뛰어달라는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카일이 굴려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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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31 - 8

289

 

 

 

자신과 가까이 지내고 있는 사람이 느닷없이 운명을 맞이한다면, 그거야 말로 비통하고 암울한 경우는 없을 거다. 사람의 죽음은 절대로 숭고하거나,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맞이해야 하는 마지막 종착지와 같으며, 아주 심플하게 말하자면 그냥 수명이 다 했으니 죽는 것뿐이다. 떠나 보내는 사람들의 아쉬운 마음을 모두 뿌리치고 나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실버 크라운에서 땅 속에 파묻혀버린 성 안에서 의식을 시작한다고 하니, 나는 밖에서 가만히 의식을 방해하는 적이 혹시나 올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밖에 나가서 멍하니 내 감시구역이나 보고 있었고, 새벽 12시가 되던 오늘 날에는 부상에서 회복한 루시피나가, 나를 대신해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실버 크라운은 이제 슬슬 영하권으로 슬슬 떨어지는 날씨를 맞이하여, 밤에는 건조한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가서 노출된 피부마다 가벼운 화상을 입게 만들기 좋은 정도. 결계가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루멘을 앞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괜히 다시 울적해졌다.

 

“마스터는 어째서 자진해서 경계를 서겠다고 한 건가요?”

 

“그야. 지금 계승식을 보게 된다면, 나는 그 루멘을 살리기 위해 도박을 하려고 해서 말이야. 누가 죽거나 죽어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절머리 나거든.”

 

하얀 올빼미가 내 어깨에 노란 발톱을 이리저리 옮겨서 내 얼굴 근처로 가까이 갔다.

 

“시나는 계승식을 지켜보지 않는 거야?”

 

“저도 마스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계승식을 그대로 본다면 저는 마스터처럼 느닷없이 도박을 걸어서, 루멘을 빛의 인도자로 만들려고 하겠지요. 하지만, 확실히 데모르테 여신이 말을 한 것처럼, 빛의 인도자의 의식은 그리 충동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늘 생각해왔지만 빛의 인도자를 만드는 의식은 어디까지나...”

 

시나는 내 얼굴을 그대로 보면서 말을 끊었다.

 

“제가 원하는 사람과 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살짝 뜸을 들인 이유는 무엇인지 잘 알겠다. 허나 입 밖으로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마음속에 묻어가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고, 나는 다시 감시구역을 천천히 보다가 밤하늘이 뭔가 이상해서 올려다 보게 되었다.

 

“별들이 움직이고 있어?”

 

“이전에 있던 별의 아이로부터 새로운 계승자에게 옮겨지기 때문에, 별들이 움직이면서 그 아이에 맞는 구조로 생성된다고 합니다. 물론 헤아릴 수 없는 별 중에서 단 몇 개만 움직이는 거지만, 실버 크라운에서는 별의 움직임이 자주 관측되는 곳이라고 하지요.”

 

시나의 말처럼 이 곳은 별이 빼곡하게 채워진 장소임과 동시에, 별 중에서 6개가 다른 자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천문학에서는 별이 이렇게 움직이는 경우는 전혀 없는 전례 중 하나지만, 고작 6개의 별이 다른 문양을 이루기 위해 눈에 보이는 속도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흔히 여행자들의 별이라고 알려진 북극성을 중심으로...

 

“루멘이 있었을 때의 북극성 중심으로 반지 모양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국자 모양으로 천천히 바뀌고 있어.”

 

물론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굉장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루멘이 수공예를 잘 한 것처럼, 이번 계승자는 가사를 잘 하는 계승자일 수도 있지 않는가. 각각 계승자의 상징을 비춰주는 변화를 감상하고 있던 찰나, 시나가 다급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스터. 전방에 거대한 생명체가 감지되었습니다.”

 

“전방? 거대한 생명체?”

 

서서히 다가오는 약진이 땅 아래에서 내 다리를 통해 감지되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인형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략 5M이상의 거인들이라면 다른 말로는 ‘자이언트’라고 한다. 보통 거인들이 움직이는 경우는 자신의 맘모스가 공격받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거인들에게 재빠르게 다가가서 불빛을 비추자, 거인들은 내 작은 움직임조차 그냥 넘기지 않고, 이내 자리에 멈추며 가만히 있었다.

 

“거인이여! 이곳에는 무슨 볼일인가!”

 

얼굴이 비추어지지 않았지만 거인은 그저 일어선체 말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일족은 먼 거리를 걸어 별의 인도를 받아, 계승자가 바뀌는 날에 이곳으로 돌아온다. 옛 계승자는 우리의 성에 안치 되어 정신적인 지주가 된다.”

 

“정신적인 지주?”

 

거인들이 하는 소리는 늘 그랬듯이 무슨 소리인지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말이라도 통하니까 정말 다행이지.

 

“그러니까. 너의 성 안에 루멘의 시신을 보관하겠단 소리로군.”

 

“그렇다. 고작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나, 온 우주를 담는 그릇은 우리 거인보다 더 커다란 그릇이며, 그 그릇을 숭배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거인들이 해야 할 일.”

 

굉장히 낮은 저음으로 대기를 울리고 있는 거인의 말에는, 예로부터 별의 아이 계승식이 진행될 때마다 나타나, 시신을 보관하는 전통이 있다고 추측했다. 게다가 거인의 일족이 아니라 성을 이루고 있는 한 국가의 방침이라면, 이것은 순순히 비켜줄 수 밖에 없다.

 

“좋다!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고맙다. 별의 수호자여.”

 

임시직이지만...

거인들은 다시 발을 맞춰서 땅을 흔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거인 4명이라면 인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남을 만하지. 하지만 계승식이 끝나고 시신을 받기 위해 이정도 규모로 올 줄은 몰랐어.”

 

“그들에게도 중요한 사명인가 봅니다. 마스터.”

 

그보다 거인들만이 사는 나라가 따로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이대로 아무일 없이 진행된다면 상당히 좋겠네.”

 

나는 다시 되돌아와서 내 자리를 지키기 시작했을 무렵. 이번에는 페어리들이 내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여왕인 티아 또한 나에게 나타나서 입을 열기를...

 

“오랜만이야 카일. 잘 지냈어?”

 

손바닥보다 더 작은 페어리들의 여왕인 티아는, 오랜만에 귀여운 외모로 단장을 하며, 작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인형처럼 손을 흔들었다.

 

“페어리가 이곳에 올 줄은 상상도 못했네. 게다가...”

 

옆에는 엘프들도 같이 동행하면서 세실리아와 멜로디 또한 내 앞에서 인사를 했다.

 

“임시직이지만 별의 수호자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군요. 저는 앞으로 태어날 별의 계승자의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찾아온 것뿐입니다.”

 

멜로디는 의식을 위해 입고 왔는지 달빛에 비추어진 은색의 얇은 면사포를 쓰고 왔으며, 세실리아는 대검만 들고 옆에 호위를 하러 온 듯했다.

 

“엘프와 페어리도 계승식에 찾아오나요?”

 

잠깐만. 이 계승식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종족이 찾아오는 거야? 동방박사인 줄 알았잖아?

 

“여기에는 루나링도 온다고 들었거든요. 별과 달은 땔래야 땔 수 없는 사이니까.”

 

루나를 루나링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면, 멜로디 또한 루나의 팬인 듯했다. 하긴 마왕을 사로잡은 아이돌인 만큼, 그 입지라던가 영향력이 뛰어나야지.

 

“음. 알겠어요. 우선 통과 시켜드릴게요.”

 

“그럼 수고하세요. 별의 수호자.”

 

멜로디와 엘프 정예병들은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고, 티아는 내 앞에 머물면서 입을 열었다.

 

“최근에는 내가 너무 바빠서 카일을 볼 시간이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좋아. 이래로 시간을 동결시켜서 영원히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나는 왜 손바닥보다 작은 페어리가 왜 이렇게 무서울까?

 

“그래도 지금은 나 또한 바쁜 시기이고, 요정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일어나서 거기에 가담하지 않으면 안 돼.”

 

“페어리의 여왕은 너 하나뿐만이 아니었어?”

 

“페어리들의 세계는 애석하게도 수많은 차원에서 존재하거든, 이곳에서는 여왕이라고 해서 나를 따르는 페어리들이 있지만, 말 그대로 나는 여왕벌이라고 보면 되고, 다른 벌집은 각각 다른 세계에 하나씩 존재해. 지금은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소리지.”

 

최근 전쟁을 하고 있어서 만날 시간이 없기도 하고, 페어리들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로구나. 물론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페어리를 전혀 볼 수 없다고는 하지만, 지금이 티아에게 있어서는 정말 중요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계승식에 참여하고 있는 거다.

 

“말 그대로 페어리들의 전쟁은 곧 차원 전쟁이구나.”

 

티아는 내 앞에서 투기를 뽐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지. 더 많은 곰인형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내서 막아야 해.”

 

“그래. 곰인형이 중요하지. 곰인형이 얼마나...잠깐? 뭐라고?”

 

내 귀가 잘못 됐나?

 

“곰인형. 이번에 우리들을 침략해 온 페어리들은 궁극적으로 특대 사이즈의 곰인형을 노리고 있어.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니. 비장한 얼굴을 하지 말고. 대체 곰인형이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야?”

 

“귀엽잖아?”

 

페어리들의 전쟁은 잘 생각해보면, 그냥 가만히 놔둬도 될 정도로 평화로운 전쟁인 것이 다른 없었다. 아니면 페어리들의 세계에서는 곰인형이라는 그 존재는, 뭐랄까. 재산적인 가치가 너무 커서, 그거 하나만 있으면 다른 페어리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것? 따라서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쨌든 나도 통과해도 돼?”

 

“그래. 통과해.”

 

작은 가루들이 빛나면서 티아의 행적을 남기고 있었다.

 

한 명은 장례식을.

또 다른 한 명은 탄생의 기념을.

밤 하늘에 별들마저 빼곡하게 모두 모아놓고,

의식이 진행될수록 더 많은 종족들이 몰려왔다.

 

“주인님! 오늘 루나 예뻐요?”

 

“그래. 예뻐.”

 

연분홍 빛의 토끼 귀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도, 달빛을 제대로 받기 위해 은색을 바탕으로 한 복장을 하고 왔으며, 밝은 표정을 하고 있는 루나는 내 칭찬을 듣자마자 나에게 달려와서 껴안았다.

 

물론. 저 뒤에 있는 약 몇 백의 몬스터들에게 살기를 받고 있는 것만 빼면, 그나마 좋은 상황이라고나 해야 할까?

 

“뒤...뒤에 있는 인원을 생각해서라도, 일단 놔줄래?”

 

내가 죽게 생겼거든.

 

“아! 죄송해요 주인님. 여기는 주인님의 집이 아니었죠?”

 

살기가 폭주하다 못해 지금 이 땅에서 나를 지워버리겠다는 의지가, 팬들에게서부터 나오고 있다고? 그런 발언은 좀 삼가 해주지 않겠어?

 

“저 인간. 죽인다.”

“루나링을 독점하게 둘 수 없다.”

“형벌이다! 형벌!”

 

살려줘. 이것들아.

 

“아무튼 주인님 고생하세요! 루나는 이만 통과할게요!”

 

“그래. 너의 팬 관리도 좀 하고...”

 

비어있는 성 안이 꽉 찰 정도로 가득 매워지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다. 가끔 나도 어린 생각이기는 하지만, 내가 죽었을 때는 과연 몇 명의 사람이 나를 찾아올까? 그리고 나는 몇 명의 사람들의 장례식을 가줘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계산을 하는 도중에, 아까 만났던 거인들의 양손에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루멘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명복을 빌어줄 수 밖에 없었고, 내가 안 보고 있어도 시나 또한 옆에서 침묵을 유지한 체 가만히 있었다.

 

“우리의 여행길에도 축복을 걸어다오. 별의 수호자여.”

 

“임시직이라서 실질적인 것은 잘 모르는데. 아. 맞아.”

 

나는 안리아스의 수정구 중에서 복사한 수정구를 거인의 손바닥에 올려놨다.

 

“이 수정구는 그대들의 여정을 기록해주는 수정구입니다. 물론 거인에게 맞는 사이즈는 없으니, 나중에 녹화한 것은 알아서 다른 수정구에 옮겨주시고 파기해주세요.”

 

“고맙다.”

 

 

짧고 굵은 감사의 인사가 한번 지나갔고, 데모르테의 약속대로 루멘의 영체는 천계로 잘 인도하겠다고 했으니. 천계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있다면, 다시 만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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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대타 서달라고 해서

우울한 마음으로 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