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섬의 무늬

#3. 어중간해진다는 건

 

눈길 돌리는 곳마다 풍경이 아롱아롱 흐리다. 미겔은 이를 깔리마(Kalima)라고 불렀다. 언제부터일진 알 수 없지만, 사하라 사막이 제 몸을 동남풍에 조금씩 벗겨가며 섬을 감싸 왔다. 란사로테 섬에 내리면서, 카나리아 제도가 유럽보다 아프리카에 가깝다는 걸 실감했다. 스페인 내륙으로부터는 약 1,000km이지만 모로코로부터는 불과 100km 남짓이라는 걸 말이다.

 

우리가 숙소로 머문 곳은 티아구아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작은 시골 마을이다. 가옥은 대부분 1층이며 어디나 하얀 외벽에 초록색 대문을 달았다. 허허벌판 사막에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이 흔하다. 18, 19세기에 화산폭발로 섬의 상당 지형이 바뀌었다는데 지금도 활화산이다. 그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 섬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아마 이 마을은 연중 어느 때라도 외지인이 한 자리 수에 그칠 것만 같은 그런 조용한 동네다.

 

숙소 주인장 카를로스 아저씨는 필요한 게 있으면 대문에서 “카를로스, 카를로스”라고 부르기만 하란다. 주변에는 산책로와 농업 박물관이 있다며 꼭 한 번 찾아가보라고 일러줬다. 다음날, 동네 한 바퀴 돌 겸 자연스레 농업 박물관을 찾아갔다. 1840년부터 지금까지 쓰이는 실제 농가라고 한다. 집안 곳곳에 닭과 병아리가 돌아다니고 외양간에는 낙타와 염소가 여물을 먹는다. 그 옛날 농가의 살림살이와 건물 내외부 구조와 환경 등을 그대로 뒀다. 곳곳에 걸린 액자에는 마을의 지난 역사가 흑백으로 담겼는데 오래 머물진 않았다. 지금의 바깥 풍경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농가 한편에는 와인 양조장이 자리했다. 주변 포도밭에서 직접 수확하여 만든 와인이다. 바람이 강하고 비가 잘 내리지 않아 농사짓기가 쉽지 않은 섬이다. 포도 재배 방법이 다른 곳과 사뭇 다른 이유다. 여기서는 포도나무를 비옥한 화산재 토양에 묻고 그 주변에 돌담을 쌓는다. 이 돌담을 소코(Zoco)라고 하는데, 바람이 습기를 거둬가는 것을 막는다. 와인 시음을 권하기에 화이트 와인을 부탁했다. 술을 잘 알지 못함에도 텁텁한 기운 하나 없는 깔끔한 뒷맛이 한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실 술보다도 곁들여 나온 다과에 더 눈길이 갔다. 모호(Mojo)라는 카나리아 제도 특유의 소스와 함께 크래커에 치즈를 얹었다. 치즈도 여기서 직접 기르는 염소로부터 나왔다. 모호(Mojo)는 크게 붉은색을 띄는 모호 로호(Mojo Rojo)와 초록색을 띄는 모호 베르데(Mojo Verde)로 나뉜다. 모호 로호에는 파프리카 가루, 토마토, 홍고추 등이 들어가는 반면, 모호 베르데는 아보카도, 고수, 청고추 등 푸른색 채소와 허브로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보통 감자를 소금물에 껍질째 삶아서 모호에 찍어 먹는데, 파파스 아루가다스(Papas Arrugadas)라고 카나리아 제도의 전통 음식이란다.

 

미겔은 자신이 꿈꾸던 휴일이란다. 몇 찾아오지 않는 조용한 농가, 햇살 따듯한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며 한낮을 보내는 것 말이다. 아마 마을 분들은 박물관이 아니라 누구네 농가로 부를 것만 같다. 우리도 관광객이 아니라 옆동네에서 이따금 마실 오는 이웃으로 생각할지도.

 

한낮의 열기가 수그러들 쯤, 박물관을 나서 다시 동네산보를 이어갔다. 한 두 개의 언덕을 빼고는 나무도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 펼쳐졌다. 고개만 돌리면 해안에 자리한 이웃 마을도 눈에 훤히 들어왔다.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서 굽이치는지도 말이다. 사실 길을 벗어나도 별다른 장애물이 없어 어디로 걸으나 마찬가지였다. 그간 여러 사람이 다녀서 땅이 조금 더 탄탄할 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미겔이 문득 자신이 점점 아웃사이더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히피가 되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마드리드의 다른 친구들은 그럴 듯한 가정을 꾸리고 번듯한 직장을 다닌단다. 그에 비해 자신은 마흔이 넘도록 부동산, 잡지, 자전거, 관광홍보 등 이리저리 일을 옮겨가다가 출퇴근 개념을 상실한 프리랜서로 굳어지고 있단다. 이어서 그는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마 이런저런 여러 분야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을 거라고 뒤이었다. 취미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직업으로 삼기에도 애매한 지점에 말이다.

 

그럼에도 미겔은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거라고 말한다. 그때그때마다 괜찮은 선택을 했다며. 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럴 수 있다고. 가만 보면 어중간한 경계에 놓여 있는 이들은 나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럴듯한 시기에 그럴듯한 배경으로 졸업과 취직, 결혼을 이어가며 사회에 자리 붙여가는 사람들의 비슷비슷한 굴곡보다는 그 다채로운 빛깔이 좀 더 넓게 퍼져 있을 것만 같다.

 

 

어느덧 하얀 달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며 깔리마가 붉게 물들었다. 한낮이나 한밤보다는 이런 시간이 더 아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낮이 밤이 서로에게 고이 스며들어가는 시간에,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말이다.

글 이어보기

섬의 무늬

#1. 사전에 사과를

 

‘그란 카나리아로 이사했다. 남는 방이 하나 있다. 온다면 환영이다.’

 

“한국사람이구나?”

“아니, 스페인 사람.”

“오, 스페인 사람은 또 어떻게 만났대?”

 

글쎄, 복숭아랄까. 자세한 날짜나 장소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복숭아만큼은 확실하다. 5년 전, 여름방학을 틈타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그 어딘가다. 작은 개울 하나가 흘렀고, 미겔은 씻고 있던 복숭아 하나를 내게 건넸다. 별 말 없이 열흘 가량을 동행하고는 그는 회사로, 나는 학교로 복귀했다. 그 후로는 아주 이따금씩 이메일로 서로의 근황을 짤막하게 나눴다. 회사를 이직했다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다거나, 나라 경제가 망해가고 있다거나 등등.

 

3개월을 답했다. 무비자 체류 기한을 넘길 수는 없으니까. 다만, 왜 떠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냥' 혹은 '답답해서'다. 또 다른 월급살이를 하루빨리 찾아 연명해야 하는 일시적 백수에게는 아마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휴양지라니... 

​사실 어떻게든 그럴듯한 추임새를 넣어보려 했는데, 허사였다. 목적이라는 게 애초에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나타나는 쪽에 더욱 가까운 건지도. 아무튼 주변에서는 부럽다고만 하는데, 속내는 썩 그렇지 않다. 솔직해질수록 여행은 힐링보다는 도피나 망각을 닮아갔고 결국엔 ‘하아, 모르겠다’로 끝마쳤다.

 

제1식: 케이준 치킨을 곁들은 감자샐러드, 데친 야채와 밥을 곁들인 삼계찜, 라임향 리코타치즈 무스케이크, 버터, 소프트 롤빵.

제2식: 훈제 치킨 슬라이스를 곁들인 샐러드, 굴소스를 곁들인 에그누들과 생강소스 곁들인 볶은 닭고기, 오예스 초코렛 파이, 버터, 호밀롤빵.

 

하릴없이 기내식 리플렛을 읽다가 괜한 문구에 눈길이 머문다. ‘메뉴에서 뭔가 부족하면 우리는 사전에 사과드립니다.’ 재료가 부족해지기 전에 미리 사과를 드린다는 이야기인가 싶어 몇 번을 재차 읽었다. 맞다. 수면부족이 틀림없다. 기압차에 따른 두뇌활동 둔화인지도.

 

왼편에는 지젝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러시아 아저씨가 이륙할 때부터 잠에 시달렸다. 심지어 포크를 쥔 채 식사를 하다가도 꾸벅꾸벅 졸았다. 앞좌석에 닿을 것만 같은 아저씨 뱃살을 옆눈으로 흘끔 훔쳐보다 생각도 않던 화장실이 간절해졌다. 서울에서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마드리드, 마드리드에서 그란 카나리아. 거진 하루에 가까운 이동 시간 동안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여행을 떠나기 3일 전 타로를 펼쳤다. 딱히 기대할 바도 없지만, 궁금한 건 궁금하니까. 흐름을 살펴보니, 바보카드가 눈에 띈다. 구름 하나 없는 화창한 날씨, 어느 젊은이가 절벽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다. 소풍일까. 표정도 해맑고 몸짓도 가볍다. 아마 나는 곧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문을 열어젖힐 것이다. 신선한 만큼 무모한, 또는 무모한 만큼 신선한 문을.

 

대학교 때 어느 교수님은 자신이 겪은 혹은 지켜본 짤막한 일화를 거의 매수업마다 들려주셨는데, 하루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생은 어떤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뒤바뀐다고.

다행히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는 옆자리가 비어 있는 창가 쪽에 앉았다.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가 금세 점점이 박힌 무수한 불빛으로 넘실거렸다. 도시 하나 하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주황색 열대어처럼 그란 카나리아를 향해 헤엄친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니, 모르기 때문에 일단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나뿐만 아니라, 미겔을 비롯하여 이 떠남에 연루된 모든 이들에게도.

    

​하늘에는 별자리를 그려볼 만큼 무수한 별들이 오래 반짝였다.

글 이어보기

섬의 무늬

#2. 파도를 세어보는 시간

 

언제부턴가 바다 가까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이따금 마음 한 편 허전할 때 파도 소리 하나둘 세어보는 밤바다의 풍경을 말이다. 도시인으로서는 누구나 한 번쯤 품을만한 낭만일 것이다. 공항을 떠나는 차 안에서 혹시나 해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미겔은 대문에서 걸어서 5분이면 해변이 나온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그저 어느 작은 해변일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골목 하나, 정말로 집 앞에서 골목 하나만 돌면 바다가 보였다. 라스 칸테라스 해변이다. 도시와 바로 붙어 있을뿐더러, 한겨울에도 15도 이하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따듯한 날씨 덕에 북유럽 사람들이 많이 찾는단다. 3km 정도 길이의 해변 산책로에는 서핑, 일광욕, 거리 악사, 모래 조각 작품, 노천카페의 수다 등 해변의 고즈넉한 여유가 줄줄이 이어졌다.

 

가까이 살펴보면 해변은 ‘La Puntilla’, ‘Playa Grande’, ‘Playa Chica’, ‘Peña la Vieja’, ‘Puntabrava’, ‘La Cícer’ 등 다섯 곳으로 나뉘어 있다. 풍경이 눈에 익을 때쯤에는 저마다의 개성을 찾는 재미를 들렸다. 가령, ‘Peña la Vieja’에는 썩 괜찮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지, ‘La Cícer’의 파도는 다른 데보다 조금 더 거세네, 거리 음악은 ‘La Puntilla’에서 듣는 게 편하지 라는 식으로.

 

이 해변의 또 다른 특색은 ‘La Barra’로 불리는 화산암 위주의 암초 지형이다. 해안으로부터 일정 거리 떨어져서 길게 늘어져 있는데, 큰 파도를 막아줄뿐더러 물놀이하는 이들이 바다 멀리 떠내려가는 걸 잡아준다. 아마 글로벌 비영리단체 환경교육재단으로부터 해양 안전, 환경 관리, 수질 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블루플래그’를 받는 데 있어서 꽤 큰 공헌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어린아이부터 주름 가득한 노인까지 누구나 편히 바다에 몸을 적시며 머물렀다.

 

저녁 무렵에는 해변 왼편 끝에 자리한 대강당까지 걷곤 했다. 라스 팔마스에서 태어난 테너 알프레도 크라우스를 기념하는 클래식 공연장이다. 오스카 투스케가 건축했다는데 등대를 닮았다. 처음에는 멀리서 건물 경관조명을 보고는 실제 등대인 줄 알고 찾아갔을 정도다. 대강당 주변을 서성이다 도시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불빛이 점점이 모일 때면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파도를 세는 게 일상이 되어 갔다. 어딘가를 나서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해변을 곁에 뒀다. 대부분 흐린 날이었고 바람은 비스듬히 불어왔다. 파도가 부서지고 다시 밀려오는 걸 세어보며 섬의 저녁을 맞이했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섬이 무어라 말을 건네올 것만 같았다.

 

섬으로 떠나면서, 프랑수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종종 머릿속에 떠올렸다. 소년원을 빠져나와 길 아닌 길을 끝없이 달음박질하던 앙투안을 따라가 보려 애썼다. 그렇게 다다른 어느 해변, 앙투안은 바닷물에 몇 걸음 적시고는 이내 곧 돌아섰다. 아무 말 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의 눈빛이 깊숙이 번진다. 라스 칸테라스 해변을 홀로 묵묵히 걷다 보면, 때로 그날 앙투안이 마주한 파도가 여기에도 찾아왔을까 싶어 마음이 괜스레 일렁이다 먹먹해질 때가 있다. 

글 이어보기

꽃같은 인생

'엄마의 빗질과 머리끈' 카네이션:carnation

'엄마가 많이 늙었구나.'

매일같이 얼굴을 보니까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이듦'이었는데, 새삼 엄마의 세월이 빨리도 흘렀구나 느껴졌다.

늦은 밤, 자고 있는 엄마를 보니 눈덩이까지 내려앉은 주름이 그동안의 삶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 엄마가 젊었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내가 2학년 때 처음 머리를 스스로 묶었으니까) 엄마는 예쁜 머리끈을 자주 사서 머리를 묶어주셨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을 표현의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작고 앙증맞은 꼬마가 새겨진 머리끈,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작은 구슬이 달린 끈, 장식은 달려있지 않지만 형광색이 포인트인 긴 끈까지...

너무 세게 묶어서 종종 내 눈이 여우눈처럼 치켜올라가곤 했지만 내 전문 미용 선생님의 손길이 참 좋았더랬다.

예쁘게 묶인 머리를 보고 부러워하던 친구들도 많았다.(아마도 맞벌이 부모님을 둔 까닭에 상황상 단정한 빗질은 어려웠을 거다)

지금은 엄마 손은 다소 투박해졌고 쪼글쪼글하다. 내일은 왠지 엄마한테 내 머리를 부탁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어리고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30대다.

모정, 부인의 사랑.

카네이션의 꽃말이다. 우리집 곳곳에는 카네이션이 자리했다.

글 이어보기

꽃같은 인생

'슬프고 괴로운 사랑의 쓴맛' 아네모네 anemone : 바람꽃

배신, 속절없는 사랑, 기대, 사랑의 쓴맛...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을 사랑하기에 저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비록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슬프고 괴롭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저 말들의 공통점이라면 이뤄지지 않은 사랑, 혹은 이별 뒤 쌉싸름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이야기'는 아네모네를 더욱 사연있는 꽃으로 만들어준다. 

먼 옛날, 키프로스 섬에 살고 있는 키니라스 왕에게는 미르라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왕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미르라가 더 아름답다'고 말했고, 이 사실을 안 아프로디테는 미르라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저주를 내리게 된다. 

죄책감과 수치스러움, 절망감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던 미르라. 그녀의 자초지종을 들은 유모는 아무도 모르게 키니라스 왕과 동침하도록 뒤를 봐준다. 후에 미르라는 아이를 잉태하게 됐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미르라를 죽이려 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미르라는 신들에게 자신은 죽어도 좋으나 아이만큼은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는 이를 불쌍히 여겨 미르라를 몰약 나무로 만들어 산 목숨도, 죽은 목숨도 아닌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미르라는 요정들의 도움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아도니스'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맡겼고,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청년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페르세포네에게 아도니스를 빼앗으려 하지만, 페르세포네 역시 만만치 않게 아도니스를 사랑하는 상황. 

과정이야 어쨌든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건 신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일같이 함께 사냥에 나서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로디테는 잠시 아도니스의 곁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하필 그날 아도니스는 멧돼지에게 겁없이 덤벼들다 날카로운 엄니에 찔려 숨을 거둔다. 당시 아도니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멧돼지는 아프로디테의 전 연인인 전쟁의 신 아레스가 변화한 것이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흘린 붉은 피 위에 향기로운 신주 '넥타르'를 뿌렸고, 그 자리에서는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아네모네다. 

 

아네모네는 다른 말로 '바람꽃'으로 불린다. 아네모네라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anemos에서 유래됐다.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아도니스처럼 살짝 부는 바람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비록 꽃이 피어있는 기간은 짧지만, 그럼에도 아네모네는 피어있을 때만큼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하늘하늘 벨벳같은 꽃잎의 질감, 보기만해도 취하는 꽃잎의 색감... 한창 아름답게 피어있던 아도니스처럼.

 

*아네모네는 9~10월 가을에 심어져 이듬해 이른 봄에 꽃이 핀다.

글 이어보기

꽃같은 인생

'충분히 예뻐' 러넌큘러스 Ranunculus:개구리눈알

개구리 눈알처럼 꽃 얼굴이 동그랗고 큰 '러넌큘러스'의 꽃말은 '매력', '매혹', 그리고 '비난하다'다.

하늘하늘 거리는 꽃잎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꽃말처럼 꽃 자체가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희고 은은한 핑크 색상은 웨딩 부케로도 많이 쓰이는, 신부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꽃들 중 하나다. '하노이'라고도 불리며 꽃이 다른 색상보다 크고 풍성한 것이 특징.

또 다른 꽃말 '비난하다'는 의외이지만, 비난하는 사람에게 혹은 미워하는 사람에게 이 꽃을 선물하거나 받음으로써 마음속 앙금이 녹아내릴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최근 5개월 동안 운동에 나태해지고 먹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었는지 5kg이 늘고 말았다. 여자의 평생 숙제가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다. 원래도 몸무게에 민감했지만, 불어버린 몸무게를 보고 화가 치밀어올랐다. 1,2kg이면 열심히 운동해서 한 달 안에 돌려놓으면 돼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뜻밖의 숫자에 허탈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레프트 훅 라이트 훅, 양훅으로 머리통을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반격을 하고 싶지만,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그 무기력함은 곧 나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바뀌었다. 

일하기도 싫어졌고, 타인과 말을 섞는 것도 싫어졌다. 평소 좋아하던 쇼핑도 하기 싫었다. 사봤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일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남았던 화요일 오후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도착하는 큰 화원에 갔다. 

축축하지만 싱그럽고, 따뜻한 풍경일 것 같지만, 시끄럽고 분주한 꽃 도매점.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매력적인 노란 러넌큘러스와 디디스커스 한단씩을 샀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화해의 선물이었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은 버리는 게 어때?' 

왔다 갔다 왕복 두 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었지만, 손질해서 물병에 꽂아놓은 꽃들을 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리고, 움츠러들었던 내 마음이 조금씩 다시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올망졸망 작은 꽃들이 모여 피어있는 디디스커스와 풍성한 얼굴의 러넌큘러스로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화원으로 무작정 향한 내가 기특하다.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와 함께 하는 가을의 바삭함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10.24. 목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슬이는 혼자서 손을 허우적거리고 이불을 발로 차면서 20분 정도를 놀더니 하품을 했다.

졸리운가 보다. 엄마를 보면서 안아 달라고 잠투정을 한다.

이제 슬이는 이불을 덮어주면 발로 차고 옷소매를 입에 물고 빨면서 노는구나.

엄마가 딸랑이를 손에 쥐어주니 그것도 입에 가져가 빠는구나.

 

지금 슬이는 엄마 무릎에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한다.

엄마가 시를 (이해인 님) 읽어주니 엄마를 똑바로 쳐다본다.

두 귀를 쫑긋 새우는 것 같기도 하다. (민들레의 영토)

 

슬이는 푹 자고 난 아침에 엄마가 슬이를 보면서 다리를 만져주며 노래를 불러주면 기쁜지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단다. 엄마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가 보다고 엄마는 생각한단다.

 

연신 입을 벌려 웃는 네 모습 너무나 예쁘다.

그렇게 한 20,30분을 노래 부르고 나면 엄마 목도 아프고 슬이도 싫증이 나는 것 같아 엄마는 슬이를 안아준단다.

 

슬이는 엄마 품에서 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을 벌리고 오물오물거린다. 배냇짓을 한다.

입을 벌려 웃기도 하고 양 미간을 찡그리며 아픈 표정도 짓고 무엇이 슬픈지 흐느끼기도 한다.

 

이젠 엄마품에 안긴 슬이가 제법 무겁다.

슬이 속눈썹이 처음에는 작고 촉촉하게 젖어 잘 보이지 않더니 두 눈 감은 것을 보니 많이 자랐구나.

아빠 속눈썹을 닮아 길고 예뻤으면 한다.

 

2016.10.24 월요일 날씨 바람이 불지만 맑은 날.

 

백수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은 시간적 여유가 많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백수생활을 하면서 글을 못 올리고 있다. 어찌나 뭉그적+게으름이 심한지 내가 나에게 놀랄 지경.)

 

요즘 책을 읽을 때면 따로 찾는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서 책을 읽으면 내가 꼭 신선이 된 것 같아 풍류를 한껏 즐기며 풍경과 여유를 누린다. (누려~)

 

 

8월에는 지긋지긋한 폭염이 기승을 부려 괴롭게 했는데 이제는 제법 선선하다 못해 스산한 느낌이다. 이 정자를 가는 길에 나는 가을이 완연하게 다가왔음을 느낀다.

 

정자를 가는 길은 해가 뜨겁지 않은 시간에 집을 나와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짧은 다리를 건너, 바닥이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지나, 보라색 흰색 도라지 꽃밭을 넘어, 벚꽃나무가 양옆으로 가득한 길을 쭈욱- 걷다 보면 내가 책을 읽는 정자가 나온다.

 

봄에는 핑크 빛 연한 벚꽃들이 흩날리고 여름에는 푸르고 파란 싱그러운 잎을 보다가 이젠 바닥에 떨어진 낙엽 잎을 보니 가을이 왔구나, 했다.

 

정자 가는길 벚꽃나무 길

 

정자에 가는 길 늘어진 벚꽃나무 길을 걸을 때 나는 퍽- 즐겁다. 바닥에 흩뿌려진 총 천연 갈색 잎을 밟으면 아침에 가끔 먹는 씨리얼처럼 바삭거린다. 그 바삭 바스락 소리가 흥겨워 이리저리 밟으며 걸으면 길었던 10분이 금방 간다.

 

책 한 권, 물한병 달랑 들고 정자에 도착하면 오자마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다가 책을 읽고 또 졸음이 오면 잠을 자는 그야말로 이곳은 무릉도원, 유토피아가 따로 없고 나의 마음은 유유자적, 물아일체가 되어 한껏 다가온 가을의 바삭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보통 이상태ㅋㅋㅋㅋ(유유자적, 물아일체) 저 지금 취직했어요. 11/1일부터 일하기로 했습니다 ㅋㅋ

 

오늘은 엄마와 함께 정자를 찾아왔다. 짧은 다리를 건너 양쪽으로 늘어선 벚꽃나무를 지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보고, 벼베기가 한창 진행 중인 논을 보면서 그 길을 걸었다.

 

정자에 도착하니 엄마가 석양, 김인배 씨의 노래를 틀었다. 알록달록 고추장을 한껏 온몸에 바른 나뭇잎을 정자에 누워 바라봤다. 시를 들려줄 테니 제목을 맞춰보라고 하고는 엄마에게 석양 노래에 맞춰 시를 읽어드렸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 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서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란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시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1991년 오늘 엄마가 나에게 읽어 줬던 시를 

2016년 오늘 내가 엄마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완연하게 내게 다가온 가을은 내 마음을 바삭 바스락 하게 했다.

글 이어보기

서른.

어느덧 어른이 된 아이의 소토리

김훈 작가는 동인문학상 수상소감에 이런 말을 남겼다.

 

"생사의 급박함을 스스로 알아서 사람 모이는 대처에 나다니지 않고 혼자서 처박혀서 한 글 한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스물일곱이었을까. 이 문장을 읽을 즈음 나는 세상을 아는 척하며 사람 모이는 대처에 들어앉아 무리 속의 아늑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놈'이었다. 무엇이 중한지도 모른 채 목적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생사의 급박함에 허덕이며 한 무리의 일원으로서 여전히 희미한 삶의 목적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세상살이가 다 힘들다지만 그 중 가장 고된 것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무언가 의미 있는 것들로 채우며 버텨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퇴근 후 돌아온 내 작은 방에 어둠이 짙다. 애써 가라앉은 공기를 들추며 방 한 구석 책상 위에 노트북을 켰다. 저녁도 잊은 채 직장동료 덕분에 알게 된 옴니글로에 글을 끄적인다. 책 제목이란 것도 만들어 보고, 간략한 소개도 덧붙인다. 문득 내게도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글을 끄적이고 있었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깊이를 담지 못했어도 나름의 삶이 묻어나는 글을 쓰려 했었다. 내 글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세상을 다 알 것만 같던 나이, 서른.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번엔 여전히, 아직은 좁고 얕은 우주 속에서 헤메는 나와 대화하고 싶다.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려 한다.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나이가 들어도 힘 안 들이고 먹는 건 어려운 것 같아.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9.12. 목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슬이는 최초로 작은 엄마가 사다준 딸랑이를 손에 잡고서 간간히 몇 번 딸랑거렸다.

고사리 손으로 헐겁게 손에 딸랑이를 잡고 입 쪽으로 가져가니 가볍게 소리가 났다.

네 모습이 얼마나 예뻤던지 엄만 꼭 깨물어 주고 싶었단다.

이내 슬이는 피곤한지 손을 펴면서 딸랑이를 떨어뜨렸고 다시 손에 쥐어주니 싫어했단다.

 

저녁때 출생 신고를 하고 왔다는 아빠에게 얘기하니 흐뭇해하신다.

이모는 날이 갈수록 우리 슬이가 뽀얗게 되면서 이뻐진다고 하셨다.

엄마가 주는 우유 많이 먹고 어서어서 자라거라.

 

슬이 입술에서 한 꺼풀 껍질이 벗겨졌다.

젖꼭지를 빠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크는 동안 몇 번을 벗겨진다고 이모는 말씀하셨다.

우유를 먹는 동안 먹고 나면 네 이마엔 땀이 송송 맺히고 온 머리는 땀으로 젖어 있구나.

 

네 모습에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한모습을 본다.

본능적으로 빨아대는 네 모습을 보노라면 신기하다.

땀 흘리며 먹는 네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힘 안 들이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어서어서 크거라.

 

 

 

2016.09.09 금요일

 

백수가 된 지 9일 차.

부모님에 권유에 떠밀려 군청에서 열리는 작은 취업 박람회에 가게 되었다. 집과는 거리가 쫌 있지만 차를 타고 가기엔 가까운 거리여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날도 이쯤이면 선선하겠다 싶어 정장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옷을 입곤 집을 나왔다. 바람이 살랑살랑 머리칼을 건드렸다. 바람결에 시원 초록빛 잎을 흔들거리는 나무들이 파이팅을 하라고 네게 응원을 보내는 듯했다. 발걸음은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무거웠지만 내가 백수가 되어 이렇게 집에서 놀게 된 건 내 탓이거니 하고 입을 앙 다물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시골에서 열리는 취업 박람회는 박람회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많이 협소했다. 천막으로 칸을 나눈 곳에선 20여 개의 중소기업이 일렬로 줄지어 있었다. 면접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업 당 두 명씩 칸칸이 앉아 있었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 나는 입구에서 잠시 발을 주춤거렸다. 입구엔 주변 학교 고등학생들이 잔뜩 있었고, 안쪽엔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어딜 둘러봐도  20대 후반인 내게 맞는 직장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어떤 직업군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용기를 내서 입구에 발을 들였다.

 

초록색 조끼를 입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주머니가 얼굴을 갸우뚱- 하시더니 "학생?" 이렇게 물음표를 붙이면서 물으셨다. 나는 작게 아뇨-,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아! 기업에서 나온 분이시구나!"라고 말하시며 손에 들고 있던 팸플릿을 내게 건네주려다가 도로 가져가셨다. 나는 또 작게 아닌데요-,했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멋쩍은 듯 팸플릿을 아무 말 없이 건넸다.

 

입장하자마자 왠지 모르게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입장하는 그곳에서 엉거주춤 제대로 된 한발 자국을 떼지 못한 내가 손에 들게 된 팸플릿을 그 자리에서 열었다. 파란 팸플릿엔 참여한 기업 이름, 기업별 원하는 사람, 급여, 담당업무가 적혀있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20여 개의 기업들에 적혀있는 모든 업무를 눈으로 쭉- 훑고는 뒤를 돌아 그곳을 나왔다.

 

전 직장도 전전 직장도 서울에서 온라인 마케팅 일을 했던 내가 회계, 경리, 생산직 일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박람회장을 나온 것이다. 시골 취업박람회에서 큰 기대를 한건 아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안 간다고 할걸.

서울에서 내려오지 말걸.

 

등등 후회가 가을바람처럼 불어왔다. 너무 일찍 집에 들어가면 한소리를 들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집엘 들어갔다. 들고 간 이력서 그대로 가져온 나를 보고는 엄만 내게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했다. 절박하지 않은 건 사실인데.. 절박하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절박할수록 더더욱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거리는데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또 깨닫는다.

불안하다, 불안타.

그렇지만 그 불안함 때문에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은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걸까.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그래도 나 오늘은 엄마가 낳아준 보람이 있네.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8.31. 토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오늘은 우리 귀엽고  예쁘기만 한 슬이가 태어난 날이다. (3.5kg) (아침 7시 56분, 음력 7월 22일)

어제저녁, 무거운 배를 내밀고 여느 때와 다른 힘든 저녁을 준비하고 힘들게 저녁을 먹으면서 여느 때와 다름을 아빠와 얘기했고 급기야는 이슬이 비쳐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작은 이모네 집으로 택시를 타고 떠났다.

 

도착하니 10시가 넘어있었고 이모는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서 자고 오겠다고 했단다.

급히 이모께 전화하여 이모는 달려왔고 엄마는 아프고 힘든 진통을 시작했던 거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4.5분 간격으로 진통이 느껴졌고 이모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새벽 병원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밤중에 입원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 12시가 넘어 병원 문을 두드렸다.

간호원과 의사 선생님이 진찰을 했고 엄마는 꼬박 밤을 새우며 진통을 했고 아빠 또한 옆에서 힘겨워하는 엄마를 보면서 초조해했지만 아침 7시. 수술에 들어갔다.

 

엄마 아빠는 정상적으로 슬이를 낳고 싶었지만 골반이 벌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수술로 너를 낳은 것이다.

엄마가 마취에서 깨어난 것은 누군가가 입원실로 옮겨와서 엄마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아빠와 이모 말소리가 들리면서 엄마는 서서히 깨어났단다.

한참 후 아빠는 너를 안아 데리고 왔단다.

슬이 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엄마는 조금 서운 했단다.

이왕이면 시공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원하시던 아들을 낳고 싶었거든.

하지만 엄마는 건강하게 태어난 너에게 감사했고 열심히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슬이가 누구를 닮았을까?

엄마는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지만 알 수가 없더구나.

남들이 아빠를 닮았다니 그런가 보다 생각할 뿐이다.

슬아!

예쁘고 착하고 건강하게 커야 한다.

엄마 아빠의 가장 큰 바람이다.

엄마 아빠는 슬이를 사랑해!

 

 

2016. 8.31

 

태어난 지 올해로 벌써 9132일째 되는 날이다. 구천일이 넘게 살아왔는데 태어났을 때와 별반 다름없는 아무것도 없는 몸이 돼버린 날이었다.

두 번째는 열심히 다녀보자 으쌰 으쌰 했던 직장도 잃어버리고, 돼지 간 마냥 퍽퍽한 삶에 적응하느라 내 꿈은 어디로 갔는지 찾기도 전에 오늘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내 룸메이트는 매력 있고 착한 친구다. 창원에서 올라와 승무원 준비를 하다가 서울 근처에 취직이 돼서 일을 다녔다. 서울에 연고라곤 몇 없었고, 나도 서울살이 힘듦을 알기에 잠시 우리 집에 머물라고 했다.

크고 시원한 눈매, 긴 다리에 어여쁜 친구. 엄마와 떨어져 생활하기 시작한 힘든 서울 살이에 유일하게 내게 힘이 되어준 친구였다. 그렇게 취직이 된 친구가 백수가 된 내게 오늘 생일이라고 봉투를 내밀었다.

 

"생일 선물이야."

"웬 선물?"

 

백수가 되었다는 자괴감과 앞으로 살아갈 막막함에 생일이라는 큰 일 년의 이벤트 날이었음에도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생일선물을 누군가에게 주기에도 또한 받기에도 많이 커버린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생일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내 일을 하기에도 바빴고,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것도 민망했기 때문이다.

 

친구 회사 로고가 적혀있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에는 오만 원짜리 지폐와 A4용지로 만든 편지가 이었다.

오랜만에 받아 본 편지였다. 편지에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분명 더 좋은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자신이 백수였을 때 내가 힘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이 내게 힘이 되겠다고. 그러니 우리 잘살아보자고. 적혀있었다.

 

예쁜 얼굴과 정반대인 편지지 안의 초등학생 글씨를 보고 난 피식- 웃음이 일었다.

그제야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생일날 마사지받을래?"

"무슨 백수가 마사지야. 돈 아깝게 그거 돈으로 줘."

 

생일날 마사지를 받게 해주겠다는 룸메이트에게 무슨 마사지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러 버럭 했다.

백수 주제에 마사지가 가당키나 해? 당장에 생활비도 빠듯해서 걱정인데, 했다.

 

황금색 오만원 지폐를 보니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룸메는 봉투를 휙- 주고는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나는 친구가 준 오만원과 편지를 고이 지갑에 넣었다. 생일 선물을 돈으로 달라고 했던 내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영화도 보고 저녁까지 풀코스로 선물을 받은 나는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왔다.

아직도 머릿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공존하지만 회사를 관둔 오늘, 생일인 오늘, 부자처럼 큰 선물을 받은 오늘이 참 특별한 날이 되었다. 태어난 날, 새롭게 태어난 날. 난 또 다른 시작 점에 서있다.

 

엄마, 좋은 친구 덕에 그래도 나 오늘은 엄마가 낳아준 보람이 있네.

글 이어보기

유리병 편지

서른, 책갈피

 

 

 

 

    나의 전공은 철학. 이상하게도 나는 철학을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어떤 방법론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일들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그런 방법론. 그래서 철학이 좋았다. 대학생 신분이었던 4년,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던 2년 동안, 내 안에 움츠리고 있던 아집을 없애고 최대한 많은 색깔의 생각들과 표정들, 소리들을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비닐 장막 같았던 편견을 걷어내니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질문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은 가끔 날 보고 특이하다거나 웃기다고 말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이십대 초 ․ 중반, 가장 꽃다웠던 나의 청춘의 시기이다.
 
  원래 나는 국문과를 가려고 했던 여고생이었다. 다섯 살 때 밤새 책을 읽다가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난 적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반항기가 다분했던 나는 그 다음 날도 또 책상 밑에 기어들어갔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짜릿함을 선사해주었으므로, 그 정도 크기의 강압으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읽기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레 글쓰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고, 이것저것 끄적이는 습관이 생겼다. 작가가 되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고, 대학을 간다면 국문과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도 제법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대학 지원의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혹시 국문과에 가면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문학에 고정관념이 생기는 건 아닐까. 작품을 더 훌륭하게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고정된 시선을 가진 정답형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사실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고등학교 ‘문학 과목’에서는 그리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학생이기도 했다. 시와 소설에 정답이 있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는 아이, 그래서 객관식 시험에 꽤나 어려움을 겪는 아이였다. 고 3 말미, 나의 이러한 기질이 훌륭한 국문학도로 성장하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결국 철학을 전공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물론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4년 동안 나와 타인을 향해 끝도 없이 질문하고, 수많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또 반성하면서 좋은 정답보다는 좋은 질문에 천착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므로.
 
  서른이 된 지도 벌써 아홉 달. 사실 요즘 나는 슬프다. 눈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조금씩 건조해지는, 그런 신체적인 변화 때문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주 많이 슬프다. 타인의 말에 토를 달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사건이 벌어진 까닭보다는 결과에 나타난 수치들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채로 생존해야 한다. 무미건조하다. 힘이 든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삼십대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이 있다. 주변 눈치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내 식대로 살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누군가는 아직도 철이 덜 든 거냐고 나를 비웃겠지만.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비난받으며 철딱서니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 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질문이다.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나온 대사이기도 한데, 자기반성을 좋아하는 나는 스스로에게 종종 이 물음을 던진다. 이 말은 내가 과연 이 세상을 철들지 않고 살아가도 되는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고민의 끝에 언제나 따라붙는 나의 대답은, 결국 “YES”다. 가능하면 아주 오래도록 이 질문을,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서른의 한 가운데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는 핑계로 일상 곳곳에 책갈피를 끼워 둔다. 선언하듯 다짐하고, 꿈꾸듯 소망한다. 짧은 질문에 매달린 꿈들이 너무 많아 때론 버겁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내내 청춘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내 행복은 있지...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7.31. 수 비 옴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예슬, 우람  - 슬이의 친구

7월도 마지막이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는 슬이에게 견디다 못해 엄마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요즈음엔 엄마가 머리맡에 머리띠를 풀어놓고 잠이 들면 슬이는 일어나서 머리띠를 자기 머리에 꽂아도 보고 올려놓기도 하고 놀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엄마 머리도 잡아당기고 얼굴도 꼬집고 해서 엄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단다.

 

슬이가 머리띠를 가지고 놀다가 슬이 머리에 꽂으면 엄마가

'슬이 정말 예쁘구나' 해주면 좋아서 인지 아니면 쑥스러워서인지 슬인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한다.

 

오늘은 금요예배를 예슬이네 집에서 하는 날이라 슬이를 데리고 갔다. 우람이도 놀러 와서 셋은 같이 놀았다. 슬이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예슬이를 때리려 든다. 우유병, 심지어는 음료수 캔으로도 마구 때리려들어 엄마가 슬이를 혼내 주었단다. 처음엔 예슬이가 자꾸 슬이를 때려 예슬이를 혼내 주었더니 예슬이는 때리지 않더구나. 슬이는 자꾸 때리려 들어 엄마는 걱정이다.

 

집에 오는 길에 슬이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계속 엄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코도 맞대고 깔깔 웃으면서 긴 거리를 즐겁게 웃으면서 왔단다.

 

슬이가 다 큰 것 같아 엄만 무척 행복했다.

2016.06.18 눅눅한 더운 날 제가 쓴 글 입니다.

 

마을버스

여름 치고는 선선하게 느껴지는 구름 한 점 없는 평평한 날씨였다. 주말에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엘 내려가기로 했다. 집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그렇게 고속버스를 1시간 40분 정도를 타고 '증평'에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터미널은 예상외로 늘 북적인다. 시멘트가 벗겨져 비듬처럼 떨어지는 벽에 남아있는 온갖 낙서들. 초록색 등박이가 없는 의자가 줄지어 있고, 안에는 매점 두 개가 양쪽으로 포진되어 있는 곳. 이곳이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골 터미널이다. 그렇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터미널을 지나서 우체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탄다.

 

내가 좋아하는 마을버스는 굉장히 특이하다. 일반 시내버스와 모양은 같으나, 버스를 탈 때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타는 게 특징이다. 그러곤 아무도 돈을 내지 않고 앉아있는다.

 

대학생 때 서울 친구가 우리 집엘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이 마을버스를 같이 탔었다.

"왜 돈을 안내?"

그 친구의 놀란 표정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이 버스는 공짜야."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친구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내 말을 믿었다.

 

이 마을버스는 내릴 때 돈을 낸다. 운전을 해주는 아저씨가 일일이 손님을 기억해 거리마다 요금을 다르게 받는 것도 신기하지만, 다리 아픈 할매들의 큰 짐이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올라오며 그 짐들을 먼저 탄 사람들이 들어준다. 이 버스는 할머니들이 자리에 다 앉은 뒤에나 출발을 한다.

 

나는 이번에도 벨도 누르지 않고 버스아저씨에게

"저기서 내려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버스는 근처 버스정류장에 선다. 그제야 버스비를 결제하고는,

 

서울버스를 탔을 때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 "감사합니다."를 내리기 직전 버스아저씨에게 크게 말할 때 그때, 이 마을버스가 좋다.

엄마가 있는 집에 다 왔다는 설렘과 함께 무언가 뭉근한 시골 정이 이 버스를 내릴 때 내게 묻어나는 것 같아서.

 

▲우리집 담벼락에 핀 능소화

엄마의 밥 그리고 당면 김치찌개

 

"엄마 또 삼겹살이야?"

삼겹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지만 매번 저녁 삼겹살은 쫌 그렇다.

아침은 패스. 점심은 배달. 저녁은 삼겹살인 우리 집은.

참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식단이 쫌 그렇다.

 

맛있는 집밥이 먹고 싶어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요리는 입맛만 까탈스러워지고 엄마를 닮은 손맛 때문인지 일찍 요리사의 꿈을 접었다. 물론 요리를 배운 경험 때문에 요리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서도.

 

유일하게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열광하는 건 엄마의 밥과 당면 김치찌개다.

엄마의 밥은 말 그대로

흰 쌀밥.

반찬은 사와도 밥만은 꼭 금방 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울 아빠 덕에 엄마는 다른 건 안 해도 밥은 꼭 압력밥솥에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그 흔한 일반 밥솥 하나 없다.

 

 

압력밥솥에 물 맞추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일반 자동 밥솥은 물 넣는 선이 그어져 있어 그대로 넣고 취사만 누르면 되지만 압력밥솥은 일반 밥솥보다 물을 더 적게 넣어야 하고, 중간에 불 조절을 해줘야 하며, 불을 끄고 나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잘못하면 밑바닥이 타기도 쉽다.

 

아빠는 약간 진밥을 좋아하고 나는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기에 엄마는 일부러 압력밥솥에 들어가는 쌀을 기울여 놓는다. (한쪽은 높게 한쪽은 낮게) 그러면 높은 쪽 쌀은 고슬고슬해지고 낮은 쪽 쌀은 물이 더 많아 촉촉해진다. 입맛도 다른 아빠와 나에게 맞추기 위해 엄마도 여간 신경을 쓰는 거다.

 

두터운 돼지고기를 달달-볶아서 잘 익은 김치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마지막엔 다른 집에선 잘 넣지 않는 '당면'을 넣는 김치찌개. 팅팅 불어 김치찌개의 깊은 맛이 고대로 배어있는 당면에 식감 좋은 고기와 얼큰한 국물에 치익치익-압력밥솥이 만든 고소한 윤기도는 밥을 먹으면 그냥 게임 끝이다. 밥 한 공기 뚝딱. 그러고 나서 과일이랑 아빠가 손수 만든 막걸리를 한잔 하고 나면

아-! 있는 그 자리가 행복한 삶이란, 이런 거구나 한다.

작가 say: 수정본 입니다 :) 읽었던 분도 다시 읽어주시면... (굽신 굽신) 오늘도 너무... 덥네요... 시원한 회사가 짱인 것 같아요.... 전기료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집에서 에어컨을 트는게 너무 무섭네요.... ㅠㅠ 모두~ 오늘, 있는 자리가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나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6.12. 금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유림이 혜진이 보람이 - 이슬의 사촌
: 예슬 - 슬이의 친구

지난 월요일에 슬이와 엄만 강원도 외할머니 댁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슬이를 봐주어서 엄만 편하게 긴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단다. 요즘 한참 전국적으로 어린아이를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엄마도 바짝 긴장을 하고 긴 여행에 화장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은근히 걱정도 되었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엄마가 머뭇거리자 그 아주머니는 웃으시면서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해서 웃었단다.

 

슬인 낯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의 품에 안겨 올 때는 옆에 앉은 대학생 오빠의 품과 엄마 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울까지 왔고 또 뒤에 앉은 군인 아저씨들 품에서 있다가 오곤 했었다. 장난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주면 웃고 '짝짝쿵'하고 '곤지곤지'도하고 '잼잼'도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해대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곤 했단다.

 

슬인 얼마 전부터 '짜까짜까'라는 소리를 하루에도 수없이 해대면서 돌아다니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엄마가 생각하기엔 엄마가 슬이에게 시계를 보여주면서 시계 소리도 들려주면서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인다고 알려 준 것을 슬이가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슬인 할머니 댁에서도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짜까'를 해댔다. 그래서 외삼촌과 할머니는 그 소리가 재미있어서 '슬아! 짜까 짜까'하면 슬인 또 곧바로 '짜까'를 해대면서 놀았다.

 

할머니는 '짝짝쿵' '곤지' '잼잼'을 하면서 방긋방긋 웃는 슬이가 너무 사랑스러운지 슬이가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고 표현하셨단다.

 

슬인 할머니네 집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왔다. 마굿간에 메어있는 소와 송아지도 보고, 닭장에 들어있는 벼슬도 크고 뒤 꽁지도 큰 수탉도 보고, 장독대에 놓여있는 각종 장단지들도 보았단다.

 

밤에는 시골 곳곳을 개구리 울음소리가 '개골개골' 들려왔다. 유림이 혜진이 보람이 언니가 슬이를 둘러싸고 서로 만지고 건드리자 슬인 싫다고 짜증을 냈다. 슬이가 좀 컸다는 증거일까?

 

슬인 몇일 전부터 밥상에 손을 짚고 손으로 이것저것 마구 만지려 든다. 만지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면 소리를 마구 지르면서 양 날개를 치고 울어댄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여 엄마 아빠가 저지하려 들면 마구 악을 써댄다. 그것이 크는 과정인가 모르겠다.

 

시골에 갔다가 목요일날 왔다.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이라 예슬이네 집에 갔다가 예슬이 엄마가 슬이 머리를 잘라 주었다. 요즘 한창 유행인 '멕 가이버' 형 머리다. 뒷머리는 길게 기르고 귀를 둥그렇게 파는 모양이다. 머리를 깎고 나니 슬인 머슴 아이 같으다. 머리 깎기 전에 슬이가 졸렵다고 칭얼거려 입에 우유병을 물리고 슬이를 바닥에 앉혀 놓고 보자기를 씌워놓으니 슬인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앙증맞고 귀여워 모두들 웃었단다. 거의 머리 모양이 다 완성 될쯤 슬인 스르르 두 눈을 감고 엄마 무릎에 머리를 묻었다. 머리를 만져주니 잠이 왔든 모양이다.

 

집에 오늘 삼촌이 와 계셨다. 슬이 옷을 사 왔는데 남자 옷이었다. 그 머리에 그 옷을 입혀 놓으니 완전 남자아이였다. 슬아! 너무나 귀엽구나 사랑한다.

 

 

2016.6.22 수요일 제가 쓴 일기 입니다.

 

러브픽션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어. 처음에 불태웠다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남자와 미적지근했다가 서서히 그 남자에게 마음을 여는 여자. 남녀 간의 입장 차이가 느껴졌고, 예전에 봤을 때 지루했던 내용들이 이별 후에는 대사 하나하나가 와 닿더라.

"사랑한다는 말 말고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다른 말해줘""나는 너를 방울방울 해."

나는 공효진이 질투가 났어. 달달하고 방울방울 한 멘트를 듣고 싶었어. 그래서 나도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고,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였던것 같아.

 

그는 그렇게 나에게 사랑한다고, 딸기딸기포도포도해한다고 했어.

그는 그렇게 나에게 그만하자고, 헤어지자고 했어.

 

 

그게 끝이었어.

시차가 우리를 가로막았고, 살아감의 벅참이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했어. 내가 잘하겠다고, 내가 미안하다고, 우리 잘 견뎌보면 안 되겠냐고 묻고 또 물으면서 매달렸어. 나 자존심 다 던져버리고. 그는 헤어졌고, 나는 헤어지지 못했어. 동시에 헤어진다는 게 가능한 걸까? 아니,  그런 헤어짐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진심이었다면 동시에 헤어지는 게 불가능한 것 같아. 그리워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더 이상 그 생각에 아파하지 않을 때가 헤어짐이 온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그 이별의 치유 과정 앞에 있는 것 같아.

 

술을 마셨어. 많이 마신 것은 아니었는데, 금세 취해버렸고 잔뜩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며 집에 왔어. 집에 도착하니 눈물이 나왔어.

끝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속이 너무 안 좋았고, 계속해서 먹은 것들을 게워냈어. 그를 머릿속에서 비워내는 것처럼. 속이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는데도 잠이 오더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속이 아파도 잠이 오는 것처럼, 헤어짐이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아도 그냥 그렇게 살아지지 않을까. 아프고 힘들었었던 지난날의 사랑이 금세 미화돼서 빛바래 좋았던 기억으로 내게 남겨진 것처럼, 지금의 이별도 언젠가 "그때 그랬었지." 하며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다들 날 사랑하기만 하는 건 아닌가 봐.

 

다 같이 집에서 아빠가 만든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예전 이야기를 했던 날.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만났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엄마가 대답했지.

 

"아빠 회사 옆에 있는 회사를 엄마가 다녔는데, 아빠가 나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만나 달라고 졸랐지."

 

그때 아빠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암시롱도 아닌 척 과일을 먹었는데 엄마가 아빠를 보고 "맞지?"라고 물었을 때 나 되게 엄마가 부러웠다? 사실 이번에는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환경이, 시간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로 헤어진 거니까. 그와 나는 아닌 거겠지.

 

엄마가 아직 만나고 있냐고 물었을 때 "아니, 헤어졌어."라고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사실 괜찮지가 않아.

어릴 때의 나는 누구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투성이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게 날 더 힘들게 해.

 

길가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어느 그 순간순간에 이별이 내 삶 속에 끼어들어 나를 괴롭혀. 하루는 온전히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또 다른 하루는 하루 종일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 이별에 관한 글귀나 노래들이 전부 내 이야기 같고, 밤에 중간중간 일어나서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잠들어. 문자도 sns도 다 차단했다가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풀었다가를 반복해.

 

시간이 지나면 나 괜찮아 질까? 얼마나 지나야 괜찮아지는 걸까. 하루하루 그냥 버티면서 지내는 중이야. 하루에도 감정이 수십 번 바뀌어. 꼭 다중인격을 가진 사람처럼. 화가 나서 계속 욕을 하다가 우울해서 울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헤헤-웃기도 하다가 멍하니 정신을 놓아버리기도 해. 내가 미친 게 아닌지 무서워. 미쳤지 사실, 미쳤지. 끝이라는 데도 붙잡고 있는 내가 미치지 않고 뭐겠어. 다시 한번 붙잡아 볼까 생각하다가도 안될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해.

 

그가 보고 싶어. 그래서 너무 힘들어, 엄마.

마음의 고름이 있다면 이미 곪아 터진 듯해. 이렇게 터져버렸는데 이제 딱지가 앉으려면 내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뭐라도 하고 싶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게.

 

그때의 엄마도 아빠를 만나기 전에 나랑 비슷했겠지? 사소한 거에 상처받고 겁을 내고 아파하고. 저 일기 때의 엄마 나이가 나랑 비슷할 때니까. 엄마도 그랬겠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아프게 헤어지고. 그리곤 아빠라는 사람을 만난 거겠지? 나도 내 짝이 있을까? 오늘은 물음표가 많네. 나 오늘 좀 슬퍼.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난 잘생긴 남자가 좋아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7.8. 수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현준 - 이슬의 사촌
: 선영  - 이슬의 친구

 

지난 6日에 현준이 동생이 태어났단다. 여동생이다. 그래서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작은 외숙모께서 오셨고 슬이와 엄만 어제 병원에 들러 현준이네 집엘 갔었다. 이모 병실에 있는 컵에 담긴 물을 손으로 잡고 장난을 치려고 하기에 못하게 했더니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본 이모는 '슬이 성질이 보통이 아니네' 하셨단다. 슬이가 자꾸 떼를 쓰고 대들 듯이 마구 소리를 질러 엄만 가끔 민망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곤 한단다.

 

현준이 오빠네 집에 있는 조그만 자동차를 슬이 앞에 놓으면 발로 걷어 차곤 했다. 며칠 전부터 슬인 대변을 어른들처럼 되게 보았다. 전에는 묽은 변이었는데.. 슬이가 밥을 먹어서 인가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오빠들과 언니를 만났다. 슬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오빠들이 잡아주었다. 언니가 손을 내밀자 슬인 본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언니는 '얘가 분명 여자일 거라고 하면서 남자만 좋아한다고 끼가 다분하네' 해서 모두들 웃었단다. 

 

빽빽이 들어찬 지하철 안에 땀을 흘리면서도 슬인 칭얼거리지 않고 언니 오빠들과 놀면서 집엘 왔다. 그런 슬이가 무척 대견스러웠다. 슬이가 정말 착하다 싶어 엄만 많이 많이 칭찬해 주었단다.

 

오늘은 할머니와 외숙모가 집에 오셔 슬이와 놀아 주었다. 오후엔 선영이가 와서 같이 놀았다. 슬이 머리에 (앞부분) 작은 땀띠가 난 것 같아 걱정이다. 어떻게 보면 땀띠 같고 또 어떻게 보면 긁어서 발갛게 된 것 같고 그렇구나. 오늘도 무더운 날이었다. 선풍기를 꺼내놓으니 슬인 신기한지 만지려 든다.

 

 

2016.7.6 수요일 날씨 비올 것 같음. 제가 쓴 일기입니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내가 중학교 때 만들었던 작은 나만의 책을 발견했어. 그 책에서는 10년 전에 내가 쓴 나의 이상형에 관한 내용이 있었어.

 

 

첫 번째, 고기를 잘 굽고 과일을 잘 깎는 남자입니다. 

 

고기를 잘 굽는 남자는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인맥관계가 넓고 두터운 사람을 뜻합니다. 또한, 고기를 자신이 구우면서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솔선수범하고 생활력이 강한 남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과일을 잘 깎는 남자는 섬세하고, 집안일도 잘 도우며 많이 남을 챙겨주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는 남자입니다.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으려면, 피부관리와 몸매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자기 계발과 자기투자의 시간을 갖고 있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또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뜻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어디서든 믿음직스러우며, 맡은 일은 확실하게 끝내고, 똑 부러진 성격을 가진 남자를 뜻합니다. 그리고 피부가 좋으려면 담배를 안 펴야 하고, 담배를 안 피우면 건강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이유를 이렇게 정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책을 많이 읽고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지식이 풍부하고, 소통과 대화가 잘 됩니다. 책을 읽고 책 속의 내용을 실천하면서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고 시도하려는 사람입니다. 또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어느 정도 인격과 성품이 갖춰진 사람을 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배우자 선택 기준을 고기를 잘 굽고, 과일을 잘 깎는 남자.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는 남자. 책을 많이 읽고 시도하는 남자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10년 전에 내가 쓴 글을 읽으니까 되게 웃기다. 그때 이상형은 성격은 착하고, 얼굴은 잘생겼으면 좋겠고, 나를 엄청 사랑해주면서 돈을 많이 버는 남자가 이상형이었어. 내가 이 이상한 책을 만들고 엄마에게 가서 보여 줬을 때 엄마가

 

"너는? 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착하고 헌신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예쁜 사람이니?"

라고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못했어. 나는 그땐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내가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내가 아빠 때문에 화가 나서 너무 가부장적이라고 엄마한테 화를 내면서 아빠랑 어떻게 20년이 넘도록 같이 살았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아빠는 엄마가 못하는 기계를 고치는 일을 잘해. 그리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고, 또 내 사람은 끝까지 지킬 사람이야."라고 말했잖아.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엄마는 잘생기고 옷 잘 입고 돈 잘 벌고 그런 남자를 찾기보단 내가 싫어하는 걸 안 하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이 좋은 여자가 되라고 나에게 말했지.

 

내가 싫어하는 걸 안 하는 남자.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여자가 되라는 말. 생각해보면 그 두 말이 같은 의미인 것 같아.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해주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 것.

 

생각을 하니까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10년 전에 썼던 내 이상형처럼 나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좋은 여자가 되면.. 그럼.. 좋은 남자가 오겠지?

 

아, 그냥 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 그냥 그 자체로 좋아 죽을 것 같은 사람 어디 없나.

꼭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 오는 걸까.

 

근데 엄마 그거 알아? 아빠 예전 사진 보니까 엄청 잘생겼어. 심지어 남동생도 아빠를 똑 닮아서 잘생겼다고.

엄마도 외모를 본 것 같은데..?

 

난 엄마를 닮았나 봐.그냥 잘생긴 남자가 좋아.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나 혼자 밥 먹기 좋으면서도 싫어.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4.21. 화. 비 오는 날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예슬, 선영  - 슬이의 친구

 

밖에는 비가 내린다. 간간이 보슬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소낙비로 변해 큰 소리를 내며 쏟아지기도 한다. 슬인 아빠 옆에서 잠이 들었다. 슬이가 굉장히 졸려웠던 모양이다. 엄마 등에서 자다가 내려놓으니 뒤척이면서 엎어져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엎어서 재우려 하면 싫다고 하더니 그간 엎어서 기어 다닌 덕분인가?

 

예슬이가 놀러 왔다. 슬이 앨범을 예슬이 엄마가 보고 난 후 앨범 뚜껑을 주니 서로 빼앗고 뺏기지 않으려고 잡아당기곤 했단다. 슬인 슬이가 잡고 있고 예슬이가 뺏으려고 잡아당기니까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보곤 모두들 웃었단다.

 

다른 애들은 물건을 빼앗을 줄도 알고 또 빼앗기면 울지도 않는데 슬인 슬이 손에 있는 것을 조금만 잡아당겨도 금방 울어 대곤 한다. 엄만 가끔 슬이가 너무 여린 것만 같아서 은근히 걱정도 된다. 다른 애들에게 지고 맞고 다니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저러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싶기도 하고...

 

약은 거의다 먹어 가는데 슬인 여전히 콧물을 흘려댄다. 오른쪽 코에선 닦아도 닦아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나온다. 왼쪽에선 약간의 피가 섞여 나왔다.

 

슬이 입속에 손을 넣어보니 이젠 윗 이도 나올려나보다. 잇몸에 만져지는 것이 느껴졌다. 윗니가 나오면 침을 덜 흘린다고 하니 하루 바삐 윗 이가 나왔으면 싶다.

 

지난번에 선영이네 집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아주 귀엽게 나왔다.

슬아! 사랑한다.

 

 

 

 

2016.04.18 비 오는 날

 

벌써 혼자 생활을 한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혼자 밥 먹는 거야. 정말 초반에 혼자 먹을 때는 매일 김밥이나 떡볶이만 먹었는데 요즘은 혼자 국밥도 잘 먹고 그래. 혼자 밥을 먹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에겐 '혼자 밥 먹기'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 요즘은 '혼밥'이라고 해서 혼자 밥 먹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혼자 밥을 먹으니까.

 

혼자 먹는 건 메뉴 선택도 내 마음대로 해도 되고, 내가 워낙 빨리 먹는 편이잖아. 그래서 같이 먹는 사람을 신경 많이 쓰는 편인데 신경 안 써도 되고,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고 뭐 나름 좋긴 해.

 

레벨 1- 편의점에서 혼자 라면 먹기

레벨 2- 선불 식당, 푸드코트에서 먹고 싶은 걸로 골라서 혼자서 밥 먹기

레벨 3- 분식집이나 김밥집에서 혼자 먹기

레벨 4- 햄버거를 파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먹기

레벨 5- 중국집, 냉면집 같은 곳에서 혼자 먹기

레벨 6- 일식집, 전문 요릿집, 세련된 라멘집 같은 곳에서 혼자 먹기

레벨 7- 피자가게, 스파게티 전문점,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매장에서 혼자 먹기

레벨 8- 찜닭, 고깃집, 전골 요릿집 등에서 혼자 시켜먹기

레벨 9- 술집에서 혼자 마시기

 

이제는 '혼밥 레벨'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1단계부터 9단계까지 이렇게를 혼밥 레벨이라고 한데. 나는 레벨 7단계까지는 해본 것 같아. 8단계를 도전하고 싶지만 고기나 찜닭 같은 것들은 시작이 2인분부터라서 쫌 어렵더라고. 가끔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집에서 구워 먹는데, 냄새도 잘 안 빠지고 혼자 먹다 보니까 영~ 맛이 별로야.

 

그러다 보니까 외롭더라고. 남자친구가 필요한 그런 외로움 말고, 그냥 사람에 대한 외로움? 같이 밥 먹고, 같이 영화 보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픈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나름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안 그런가 봐. 주말에 집에서 누워있다가 생각해보니까 오늘 내가 한마디도 안 한 거 있지? 그렇다고 나가서 누구 만나기는 귀찮고.

 

배우 공효진 씨가 이런 말을 했는데 "저도 낯가리는 사람이거든요. 2,3년 사이에는 더 심해졌고요. 이제는 누군가와 친해 지려 노력하는 게 귀찮아졌고, 그게 너무 에너지 소비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는 새로운 친구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이것저것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싶고, 편한 사람만 같이 있고 싶고, 오히려 혼자 있는 게 더 마음 편할 때가 있어.

 

이제는 쫌 무섭달까? 혼자 밥 먹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여가시간을 즐기는 게 익숙해져 버렸더니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아.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단단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릴 때의 여린 게 남아있나 보다.

 

엄마 나 혼자 밥 먹는 거 좋으면서도 싫어. 난 변태인가 봐.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을게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5.13. 수 비 옴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선영  - 슬이의 친구

밖에는 비가 온다. 아빠는 하루 근무를 자청하고 일터로 나가셨다. 어제저녁 늦게 들어오시고 오늘 아침 일찍 나가신 거다.

 

그런데 슬이가 어젯밤에 자꾸 깨어나서 엄마는 물론 아빠도 깊은 잠을 못 주무시고 일터로 나가셨단다. 아침에 일어난 슬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슬아! 슬이가 밤에 깨지 않고 잘 자야지만 아빠가 잠을 푹 주무시고 그 다음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가볍게 출근을 할 수 있는 거다. 슬이가 자꾸 깨어나면 아빠가 주무시지 못하고 찌푸둥한 몸과 기분으로 출근을 하시게 되는 거야 그러면 아빠가 일을 하시는데 힘이 드는 거야. 슬이가 밤에 잠을 잘 자야되는 거다."

 

슬이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슬이에게 이야기했단다.

 

옆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점심을 같이 먹고, 시장에 가서 새우 껍질을 벗기고 새우 살을 주니 슬인 잘 먹었다. 선영이는 낯을 가리고 엄마하고만 놀려고 들고, 아빠께도 잘 가려들지를 않아 선영이 엄마를 힘들게 한다더구나. 슬인 선영이 엄마에게도 잘 가고, 잘 놀고, 잘 먹고 해서 엄만 기쁘다. 슬이가 있어서 인지 선영이도 잘 놀았단다.

 

슬인 이제 혼자서 밥상을 붙잡고 서고 또 혼자서 앉기도 하면서 논다. 한번 하고 나면 저렇듯 쉽게 하는 것을 무섭고 두렵고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면서 실망하고 그러는구나 싶다. 세상 모든 일들이... 슬이 행동을 보면서 엄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밥상을 붙들고 서더니 엄마 어깨에 손을 대고 엄마 등에 와서 얼굴을 묻고 무어라 중얼거린다.

 

슬아!

엄만 슬이를 사랑 한다.

 

 

2016.05.10 화요일 비 오는 날

페이스북에서 서울대 학생과 지방대 학생의 차이점이라는 글을 봤어. 서울대 학생은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 그만큼 노력을 했고, 노력을 하면 결과로 돌아오는 것을 입학을 통해서 깨달았기에 무슨 일을 하던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

 

물론 그 글 밑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있었고, 너무 일반화시킨 내용이라는 비판들도 있었지. 그 글을 통해서 나는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한 번이라도 이뤄서 성취감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정말 열심히 해본 게 있나?정말 힘들게 운동을 해보거나, 미친 듯이 한 가지에 몰두해서 끝을 본적이 있나?끝내고 나서 뿌듯함을 느껴본 적이 있나?" 아 드디어 해냈다" 성취감을 알게 된 적이 있나?

 

그런 감정은 해본 사람만 이 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어떤 것을 끝까지 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해보니까 사소한 것들은 있긴 하지만 확실하게 성공!이라고 내세울만한 것들이 없는 거야. 어렸을 때의 큰 꿈들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의 나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더라. 어느샌가 내 미래의 야망과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더라구.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고, 과거를 회상하는 횟수가 많아질 수록 어른이 된 거래. 난 어느새 어른이 되었나 봐. 하루하루의 현실에 안주하고 매일을 버티는 어른이 되었어. 어릴 땐 요리, 꽃꽂이, 여행, 서예 하루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던 내가 이제는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 조용히 넘기기를 기도하는 어른이 되었어.

 

그런 어른이 되기 싫어. 그래서 뭐든 도전해 보려고. 미친 사람처럼 몰두하고 끝까지 해보려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계속해보려고.

 

엄마 말대로 세상 모든 일들이 한번 하고 나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거니까. 무섭고 두렵다고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면서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내가 될게.

 

단 한 번이라도 정말 열심히해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미친 듯이 몰두해서, 성취감을 느낄 수있도록 끈기가 있는 내가될게.

글 이어보기

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어떤 책이든 책이면 다 괜찮지? 엄마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하루에 3권씩 두 달 내내 책을 읽은 적이 있었어. 나의 책 읽는 속도로 그렇게 책을 읽으려면 아침부터 새벽 2-3시까지 책을 읽어야 가능한데, 그렇게 두 달 내내 읽으면 약 180권 정도. 그런 식으로 중학교 2학년 때에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400권이 넘었으니까 공부는커녕 책만 주구장창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런데 그렇게 읽었던 책이 바로 '무협지'였어.

 

남동생도 읽지 않았던 무협지를 하루에 3권씩 두 달 내내 읽었던 거지. 엄마는 책을 먹던, 찢던 가까이하는 건 나쁘지 않다며 내가 어떤 책을 읽든지 별로 관여를 안 했잖아. 오히려 책 많이 읽는다고 칭찬을 했으면 했지. 하루는 학교 수업시간에도 몰래 읽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책을 빼앗겼던 적이 있어.

 

"누가 수업 안 듣고 책을 읽으래!"

나는 수업을 듣지 않았고, 혼나는 와중에도 머릿속에 무협지 다음 내용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혼나는 게 당연했어. 하지만 선생님은 그 뒷말로 어느 여자애가 이런 책을 읽냐며 혼을 내셨어. 이해가 되지 않았지. 여자애가 읽는 책이 있고, 남자애가 읽는 책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닌데.

 

그때 생각해보면 그렇게 혼난 것보다 책을 빼앗겨 다음 내용을 빨리 보지 못한다는 게 화가 났던 것 같아. 그렇게 [다시는 수업시간에 무협지를 읽지 않겠습니다]를 A4용지에 빽빽이 쓰고 나서야 책을 돌려받을 수 있었어.

 

10년이 지난 지금도 주변 여자친구들 중에 무협지를 좋아하는 친구를 찾지 못했어. 친구들 한테 무협지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거 막 싸우고 폭력적인 그런 내용 아니야?" "그런 건 남자애들이나 보지."라는 친구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굳이 무협지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아.

 

주변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눌땐 무협지 외에 내가 좋아하는 자기계발서 이야기나 누구나 좋아하는 작가 또는 유명한 작가 이야기를 하지.

 

남자가 순정만화나 연애소설을 읽으면 '변태'고, 무협지를 여자가 읽으면 '성격이 이상한 왈가닥'으로 보는 편견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서러워. 엄마였으면 그 책이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봤을 텐데.

 

 

와. 저 여자 무협지 읽네

지끈지끈한 머리를 부여잡고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드디어 기다리던 6시. 눈치를 보며 회사에서 퇴근한 나는 만화방에 들러 무협지를 한 아름 안고 집에 가는 길이었어.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지나가면서 내가 읽고 있던 책을 보더니 "와. 저 여자 무협지 읽네"라고 말했어. 그 함축적인 말에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멋있다' 그리고 '특이하다'. 왠지 후자일 것 같았지만.

 

나는 무협지 속에서 어떤 역경과 시련이 와도 이겨낼 수 있구나를 배웠고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계속해서 강해진다), 수많은 전쟁과 싸움을 통해서 남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무림의 고수들의 의와 정을 통해 정의로운 인생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고 하면 너무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그저 무협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시각을 쫌 버리고, 나의 취향을 존중해 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인데.

 

엄마는 매번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책에 편지나, 엄마가 읽고 난 뒤의 소감을 적어서 나한테 줬어. 기억나?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의 내용도 궁금했지만 엄마가 이 책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지가 늘 궁금했어. 그래서 난 엄마가 추천해 주는 책이라면 늘 끝까지 읽어서 엄마가 줄 친 부분, 맨 뒷장에 소감을 남긴 부분을 읽는걸 좋아했다? 엄마 덕분에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어떤 책을 읽어도 좋아해주고, 같이 읽어주고, 같이 생각을 공유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정말 기특하구나 하면서 매번 안아주는 엄마가 있어서.

 

글 이어보기

짧은 글 모음집:奇

비밀 일기장

 

비밀 일기장

 

아직 짐정리가 끝나지 않은 그의 서재로 들어선 그녀는 정리하다만 박스들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이내 밝게 웃으며 박스 하나를 밀어 책장 옆으로 옮긴 뒤 책을 꺼내 꽂기 시작했다. 그의 정리방법이야 익히 알고 있으니 대신 정리해주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자기가 와서 마저 하겠다고 했지만, 여기만 정리하면 다 끝나니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 정리를 하다가 문득 서재를 두리번거렸다. 곧 도착할 웨딩사진을 어디에 걸까 찾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비어있는 벽들을 보며 어찌 꾸밀지 고민하던 그녀는 갑자기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반가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 띵동!

 

“아. 왔나보다.”

 

후다닥 현관으로 달려가던 그녀는 발에 치이는 박스에 잠시 휘청거렸다. 그에 박스가 쓰러지며 안에 들어있던 책들이 쏟아졌지만, 일단은 반가운 택배가 먼저였다. 책이 가득한 박스에 부딪힌 발을 살살 털며, 현관문으로 다가가 택배를 받았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웨딩사진이었다.

 

앨범은 물론 크기별로 액자에 맞춘 사진도 들어있었다. 그녀는 앨범을 잡고 잠시 고민했다. 먼저 한번 볼까? 아니면 그가 오면 같이 볼까? 행복한 얼굴로 망설이던 그녀는 앨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다시 그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의 정리가 다 끝내 놓고 그가 오면 웨딩사진을 걸 생각이었다.

 

아까 쏟아진 책들을 다시 차곡차곡 쌓던 그녀의 눈에 가장 아래쪽에 깔려 있는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한손에 쏙- 잡히는 아담한 크기였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커버는 짙푸른 색의 두꺼운 양장이었다. 그의 집에 자주 놀러가고 서재 구경도 했었지만 이건 처음 보는 책이었다.

 

“최근에 산건가?”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제목이 적혀 있지 않았다. 책이 아니라 앨범이나 노트인 모양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망설이던 그녀는 조심스레 그 파란 책을 펼쳤다. 한 장, 두 장, 천천히 넘겨보았지만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매끈한 걸로 봐서는 새로 산 건 아니었다.

 

“잊고 안 쓴 건가?”

 

그녀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손에 든 빈 노트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때 등 뒤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와 그 파란 노트를 잡아챘다. 그녀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였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놀랬잖아. 왜 이리 일찍 왔어?”

 

그는 아무런 말없이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난히 무심한 그 눈빛에 그녀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머뭇거렸다. 그의 입매가 곱게 말려 올라가고 다정한 미소를 그려냈다.

 

“당신 도와주려고 일찍 왔지. 여긴 내가 정리할게. 나가서 쉬어.”

 

그는 파란 노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서 일으켰다. 그의 행동에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마지못해 거실로 나갔다. 그녀가 거실에서 쉬며 아까 받은 택배 상자를 정리하는 동안, 그는 서재의 문을 닫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정리를 끝내버렸다.

 

* * *

 

계절이 바뀌고, 그 파란 노트에 대한 기억이 흐려질 무렵. 그녀는 점심을 먹고 청소를 하려고 서재로 들어섰다. 책상을 닦고 책장의 먼지를 터는데 무언가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파란 노트였다, 표지도 두꺼워 쉽게 떨어질 책도 아니고, 허술하게 꽂혀있지도 않았다.

 

“흐음-.”

 

그녀는 묘한 기분에 물끄러미 짙푸른 책을 내려다보았다. 기척도 없이 다가와 책을 낚아채던 그의 손과, 낯설 만큼 무심했던 그의 표정이 떠올랐다. 책을 집어든 그녀는 의심이 더욱 깊어지는 걸 느꼈다. 책의 표지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이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노트에 왜 자물쇠까지 채워둔 걸까? 새파란 표지를 빤히 노려보던 그녀는 곧 책상 서랍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분명 어딘가에 열쇠가 있을 테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있을 테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물쇠까지 채울 이유가 없지 않는가?

 

‘이제 남도 아닌데.’

 

보지 못하게 자물쇠까지 걸어두니 더 수상했다. 왠지 꼭 봐야할 것 같은 의지까지 생겼다. 서재 안의 모든 서랍을 뒤지고 마지막으로 책상 서랍 중 하나만 남았다. 열쇠구멍이 있는 서랍에 바로 옆 칸에서 찾아낸 열쇠를 꽂으려는 찰나 현관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몇 시지?’

 

열쇠를 원래의 위치에 넣고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6시 30분. 걸레를 손에 들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서재를 나왔다.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퇴근한 그를 반겨주었다.

 

* * *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리고, 곤하게 잠든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천천히 이불을 걷고 방을 나와 서재로 향했다. 까치발로 서재에 들어선 그녀는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먼저 찾은 열쇠를 꺼내 서랍을 열었다.

 

- 찰칵.

 

서랍 안을 더듬는 그녀의 손끝에 작은 금속의 물체가 닿았다. 직감적으로 열쇠라는 걸 느낀 그녀는 곧장 잡아서 꺼냈다. 시리도록 반짝이는 은빛의 작은 열쇠였다. 녹슬고 오래되어 보이는 자물쇠의 짝이 맞을까 싶었다. 그녀는 그 열쇠를 쥐고 그 파란 노트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여기 있다.’

 

작고 오래된 자물쇠에 작고 반짝이는 열쇠를 끼워 살짝 돌렸다.

 

- 달칵.

 

자물쇠가 열렸다. 그녀는 자물쇠와 열쇠를 책장(冊欌) 한쪽에 내려놓고 책을 펼쳤다. 역시 아무것도 없는 백지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그녀는 눈썹을 찌푸렸다. 짜증스레 종이를 넘기던 그녀의 손끝에서 일순 따끔한 통증이 전달되었다.

 

“아야!”

 

종이에 베여 피가 망울지고 있었다. 손끝을 입으로 가져가던 그녀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작을 멈추었다. 베이면서 스며든 그녀의 피가 비어있는 백지에 퍼져나갔다. 그녀의 손끝에 망울져있던 피가 종이 위로 한방울 떨어지며 점점 더 붉게 물들였다.

 

“어?”

 

- 살려줘. 살려줘. 여보. 내가 잘못했어. 이젠 안 그럴게. 제발. -

 

- 아냐.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진짜야. 아무것도 못 봤다고. -

 

- 안 돼. 이러지마. 응?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그러니까...아악! -

 

계속해서 이어지는 절규와 비명과 애절한 외침. 노랗게 바래어 얼룩덜룩한 종이 위에 붉은 피는 한없이 퍼져나가며 처참한 광경을 그려냈다.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에 주체할 수 없는 공포감이 피어올랐다.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그녀를 붙잡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억울하다고, 위험하다고, 살려달라고, 머릿속에, 귓가에, 눈앞에,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맴돌았다. 겁에 질려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등에 누군가가 닿았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당신 안자고 여기서 뭐해?”

 

그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익숙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내쉬며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번쩍 드는 생각에 손에 들린 노트를 바라보았다. 백지였다. 아까의 그 핏자국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 피식.

 

멍한 얼굴로 굳어버린 그녀를 보며 그는 실없는 미소로 파란 노트를 낚아챘다.

 

“하여간, 궁금한 걸 그리 못 참아서, 이거 그냥 빈 노트야.”

 

그는 보란 듯이 노트를 들어 펼치며 파라락- 종이를 넘겼다. 그의 말대로 깨끗하게 비어 있는 백지뿐이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그는 한숨을 쉬며 노트를 그대로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잡으며 달랬다.

 

“우리 자기, 몽유병은 아닐 테고, 악몽이라도 꾼 거야?”

 

악몽? 꿈이라고? 그러기에는 그녀의 손끝에 아리한 통증이 미약하게 남아있었다.

 

“그만 나갑시다. 자야지 내일 또 눈을 뜰 거 아닙니까? 부인.”

 

“으, 응.”

 

그녀는 얼떨떨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머뭇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조용히 서재를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문이 닫히는 기척에, 책상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펼쳐져 있는 그 파란 노트에 붉은 핏자국이 떠올랐다.

 

- 어서와. 기다리고 있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