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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fix you

 

 

 

 

    우리는 어제의 날씨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범한 소나기가 내렸다고 하기엔 빛에 비친 빗방울이 너무 환했다. 내가 지내는 이 곳에서는 여우가 호랑이에게 시집 가는 날 구름이 흘리는 눈물이었고, 너는 그것을 마녀가 버터를 만들 때 내리는 마법이라 했다. 나는 왜 버터에 요술 같은 빗물이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고 너는 구름이 남의 결실에 왜 재를 뿌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좀 더 심플한 형식은 어떨까, 쨍한 하늘에 잠깐 내리다 그치는 비라고. 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낭만을 더하면 어때, 예를 들어 가장 행복한 순간 우연히 비친 찰나의 설움처럼. 너는 시인은 되기 싫다고 했다.

 

  치아도 시력도 교정이 되는데 왜 우리의 언어는 하나로 겹쳐지지 않을까.

 

  여우비 내리는 날 숲에 간 소년과 여우볕 드는 날 호숫가로 향한 소녀는 나무 뒤로 지나가는 행렬을 슬며시 굽어보았고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적었다. 행렬의 일행들의 손에 들린 것이 술통인지 호롱불인지, 시집을 가는 것이 사람인지 여우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볕과 빗방울이 만나 맺은 일곱 빛깔 열매도 알아챌 수 없었으니, 그들이 본 것은 반쪽 아니 반의 반쪽짜리 진실이었을 것이다.

 

  사실은 교정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동일선상에 놓인 숫자를 근거로, 너와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같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나는 ‘왜 우리가 맞지 않을까’에 대한 바보 같은 생각을 그만 멈추기로 했다. 멀리 버터를 만드는 네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