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유리병 편지

대화가 필요해

 

 

 

    낙심落心을 일상의 감정처럼 마음에 심고 살아가는 친구가 말했다. 왜 나는 생일까지 2월 29인 걸까. 나는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야'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녀의 기분은 단번에 나아지지 않았다.
 
  격언처럼 통용되는 문장 중 가장 잔인한 게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라고, 친구는 속삭였다. 시간이 우울감에 덮이고 쌓여서 보기 싫은 잡초가 수북해질 지 모른다고도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녹음기 하나를 사 주며 그런 뭉글거리는 마음들은 눌러담지 말고 여기에 녹음해두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 명확해서, 그 선명한 것들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우울증 같은 나쁜 질환에 걸리지 않을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어느 정도 위험 요소를 안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분명한 의견들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나 혹은 내 친구 같이 어렴풋한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다. 마음에 난 정전기 때문에 지금은 곧바로 떨쳐낼 수 없는 먼지일 지라도, 자꾸만 신경을 쓰고 손을 대면 분명 떨어질 테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보다 서로를 위로하는 찰나의 순간이 더 소중한 까닭이다.

 

글 이어보기

바닥이라는 감정

부재의 공간

부재의 공간              

​ 뭐,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가 싫냐.

깡통같은 내 머리 속엔 온통 나태한 생각들로만 가득했다. 구제불능이야- 하면서 누워있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러다가 숨 쉬는 법까지 잊어버릴까 두렵기도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내 머리는 부재의 공간이다. 나태함을 밀어내고 나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미련도 없다. 그저,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문 밖 거실에선 다른 가족들이 분주하다. 아침만 되면 전쟁터가 따로 없는데, 고작 문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이렇게 평온하다.

 

"둘째는 아직 잔대?"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나는 짐짓 모른체 눈을 감는다. 뭐라도 해야지, 일어나서 나가든 공부를 하든. 생산적인 걸 해보자. 마음 속 소리도 무시한다. 이런게 나태함인가 싶다.

 

나태함이고 뭐고 무시하자.

 

모든 것에는 틈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에도 틈이 있고 사물에도 틈이 있다. 나는- 내 인생의 틈을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 부재의 공간이 시간이 지나 모두 메워지게 되면, 나는 다시 달리거나 뜀박질하거나 속력을 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