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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BREAK TIME

 

 

 

 

    철부지 시절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에게 절교 선언을 해본 적은 있지만 다 큰 뒤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D는 말했다. 사랑이야 피고 지는 계절이 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우정이 식을 리가 없지 않겠냐고, 혹시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거냐고 그녀가 물었을 때, 그런 거 없다고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아서며 내가 본 D의 마지막 얼굴은 몹시 창백했다. 꼭 SNS 안에서 마주하는 낯선 그녀의 셀카처럼.

 

  누군가에게 참담함이라는 감정을 안겨줘야 한다는 사실은 더없이 미안했지만, 나도 친구와 헤어진다는 게 익숙지는 않아서 애인과 헤어질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망설이며 흘려보내야 했기에 고통스러웠다. 이 고통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건 D 아니면 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추억의 일부를 잘라냈다.

 

  D와 내가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언제였을까. 고개를 들면 아무리 먼 곳을 바라보아도 그저 칠판뿐이었던, 누가 누구와 사귀는 것이 좋을까 라든가 급식을 전교에서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어떻게 하면 야자시간에 들키지 않고 G의 작품집을 돌려볼 수 있는가에 대해 몰두하던 시절, 우리는 분명 행복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미용실에 앞머리를 자르러 갈 때도 함께였고, 수업시간 껌을 씹다 들켜 교무실로 불려간 나를 문 밖에서 기다려준 것도 그녀였다. 약속을 한 건 아니었지만 D가 나에게 뭔가를 해주면 나도 D에게 뭔가를 해줬다. 호의好意를 선의善意로 갚아나가며, 우리의 우정은 계절과 분기를 뛰어넘었다. 아마도 함부로 애틋하게, 영원永遠을 확신했던 것 같다. 그 마음은 밀가루를 흠뻑 뒤집어쓰며 바보같이 웃던 졸업식에서 가장 반짝였고,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 통화하는 시간이 늘어난 대학 시절에도 유지되었다. 비록 환경은 조금 달라졌지만 숨을 쉬고 내뱉는 하늘은 같다고 생각했으므로.

 

  하지만 어느 해 D가 휴학을 하고 세계 일주를 하는 동안 내가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졸업논문을 쓰는 시기가 찾아오면서 연락이 가로막힌 우리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으로 근근이 관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그 그리움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거두어질 마음이라 여겼고, 장거리 우정은 애틋함을 먹고 자라 더욱 각별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오판이었고 자만이었음을 시인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귀국 후 다시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진로에 대한 길고 긴 방황의 터널 안으로 발을 들였다. 때때로 우리는 만나서 파스타를 먹고 커피를 마셨지만, 언제나 시차적응이 되지 않은 사람들처럼 졸린 눈을 하고 있었다. D가 조별과제 핑계로 약속을 파하면 서운함보다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내가 몸살 때문에 다음에 보자고 전화를 걸었을 때,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조금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받던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녀가 졸업 후 공시생 생활에 뛰어들고, 내가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이 되어 서툰 비즈니스 영어로 메일을 쓰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함께 있을 때보다 멀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의 생일에도 기프티콘으로 축하인사를 대신하는, 그런 사이.

 

  여전히 우리는 동창들 사이에서 베스트 프렌드로 회자되고 있겠지만, 나는 이 허울 좋은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관계에 대한 의무감과 우정에의 환상은, 사실은 먼지 몇 톨도 안 되는 것이면서도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으니까. 의무적인 만남과 주기적인 연락은 마치 내 감정이 때가 되면 전송되는 자동이체 공과금 같았으니까.

 

  버거워진 관계까지 짊어져야 어른이라는 결론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이 들 때 제동 걸 줄 아는 용기를 두고 아이 같다 평가하는 세상이라면, 나는 이번 생에는 기꺼이 어른에서 다시 아이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