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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속의 마녀

#1화

 

 

“너희, 그거 들었어?”

 

“뭘?”

 

“마녀가 나타났대.”

 

“에이, 전설에나 있는 얘기지. 그런 걸 믿어?”

 

“진짜라니까?”

 

 

소녀들이 마을을 거닐며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떤다. 수다의 주제는 ‘마을에 마녀가 나타났다’는 ‘소문’.

소녀들은 막 소식을 접한 듯 했지만, 소문은 이미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 꽤 흥미로운 이슈로 자리잡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소문일 뿐이다, 전설일 뿐이다, 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설 속의 ‘라푼젤’과 같은 금발에 에메랄드 눈동자를 가진 마을의 소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 해가 지고 있어.’

 

‘금발을 가진 여자아이들은 조심하렴. 마녀가 찾아올 수도 있어.’

 

‘절대 숲 근처에는 가지 마. 마녀가 산대.’

 

 

+++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도 더뎌지고, 한때 불붙었던 소문도 잠잠해졌다.

그리고 사건은 아무도 모르게 터졌다.

 

 

“얘들아, 그거 들었어?”

 

“실종 사건 말이야?”

 

“그래, 그거. ‘전설’이 진짜였나 봐.”

 

 

여인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여인이었다.

마을의 그 어떤 여인보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여인. 평범하디 평범해서, 무리 속에 한둘쯤 없어도 크게 티나지 않을 그런 여인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사람이 없어지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대체 누가 사라진 거야?”

 

“그러고 보니 그렇네. 누구라더라...”

 

 

헤레.

그것이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

 

 

-사건 전날-

 

“슬란.”

 

“응, 헤레. 왜?”

 

 

헤레와 슬란이 골목 어귀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헤레는 딱히 그렇다 할 재주가 있는 것도, 화려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 소심하고 평범한 마을의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슬란은 헤레가 마을에서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사람으로 알고 지낸 지 7년 정도가 되는 오랜 친구였다. 여담으로 한 마디 붙이자면 헤레에게 슬란은 친구 이상이었지만, 슬란에게는 헤레가 좋은 친구, 딱 거기까지였다.

 

헤레는 여느 때와 같이 슬란과 함께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을 뗐다.

 

 

“요즘 ‘전설’ 이야기가 많이 돌더라.”

 

“그렇더라. 너도 조심해, 헤레.”

 

 

헤레는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향하는 걱정의 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그녀는 슬란을 참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헤레는 애써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괜찮아, 금발도 아니고, 눈동자도 에메랄드 색이 아니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살그머니 미소지은 슬란의 말에 헤레가 조심스레 슬란을 올려다봤다. 헤레의 볼에 남모를 홍조가 비쳤다.

슬란은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돈이 엄청 많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슬란 또한 헤레처럼, 평범하고 착한, 마을의 남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슬란은 헤레에 비해 많이 활발했고, 친구도 많았다는 것. 어쨌든 헤레는 슬란이 설렜다. 아마 어떤 모습이었어도 설렜을 거라고 생각했다. 헤레의 고요하고 행복한 상상이 이어졌다.

슬란이 생각에 잠겨 말이 없어진 헤레를 의아하게 여기고 그녀의 눈 앞에 손을 흔들었다. 헤레는 슬란의 손이 바로 눈 앞에 보이자 귀까지 붉어진 채 슬란에게서 몸을 떼며 고개를 저었다. 슬란은 그런 헤레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레는 얼굴이 타버릴 것만 같아 그에게서 몸을 돌려 버렸다. 뒤에서 슬란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런 상태론 돌아볼 수 없었다.

 

 

“헤레?”

 

“...아, 아, 나 이만 가볼게.”

 

“어, 그래. 또 보자. 엇, 헤이나!!”

 

“아, 슬란. 헤레도 안녕!!”

 

“......”

 

 

헤레는 자신에게 작별인사를 하다가도 다른 여인을 향해 웃어보이는 슬란의 태도에 착잡해졌다.

헤이나. 슬란과 교제하는 여자였다. 헤레는 그녀가 부러웠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여성스럽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헤이나는 사교성도 좋은 편이었고,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웃는 모습만큼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그걸 인정하기 때문에 헤레는 그녀가 부럽고, 밉고, 닮고 싶었다.

 

 

“응, 안녕, 슬란...”

 

 

헤레가 뒤늦게 슬란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은 없었다. 슬란은 이미 헤이나에게 달려간 지 오래였다.

슬펐다. 스스로가 싫었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도, 좋아한다고, 용기 한 번 내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도,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늘 겉도는 점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 포기하지도 못하는 미련함도.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생각에 이어 마음이 시려왔다. 아직 익숙해지기에는 먼 듯한 통증이 가슴을 쳤다.

 

 

 

 

+++

 

 

슬란과 헤어진 후, 헤레는 정처없이 앞만을 향했다. 끝의 끝까지 걷다 보면 감정이 조금 사그라질 것 같았다. 이럴 때 감정을 털어놓을 친구조차도 없다니.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소심하고 답답한 헤레의 성격을 버티지 못했고, 결국 그녀의 곁에는 슬란뿐이었다. 헤이나도 슬란과 교제를 시작한 후 길에서 헤레를 보면 종종 말을 걸곤 했지만, 슬란을 짝사랑하는 헤레에게 그런 헤이나의 모습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헤레는 헤이나에게도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했고, 헤이나가 헤레에게 접근하는 일도 점점 줄어갔다.

헤레는 그것조차 한심했다. 그래서 정말 하잘 것 없는 생각을 하며 앞만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와중, 바람과 함께 생각 하나가 흩날리듯 불어갔다.

 

 

‘설령 내가 사라져 버린다 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겠지.’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치우니 숲이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숲 근처까지 와 버린 모양이다. 잠시 멍하니 숲을 바라보던 헤레의 머릿속에 문득, 얼마 전까지 마을에 돌았던 흉흉한 소문이 떠올랐다.

 

 

‘마녀가 ‘전설’ 속의 ‘라푼젤’과 닮은 여자를 잡아간대.’

 

‘얼마 전에 그 마녀가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더라.’

 

‘마녀는 숲에 산대. 숲 근처는 위험하니 조심해.’

 

 

헤레는 소문을 떠올린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전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마녀가 노린다고 한 건 ‘금발’과 ‘에메랄드 빛 눈동자’,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인이니까. 고동색 머리칼에 평범한, 아니, 못난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안도감과 함께 비참함이 느껴졌다. 이어서 슬란이 생각났다.

너무도 좋아하는 그의 표정이, 그의 손짓이, 그의 목소리가-

 

 

‘헤이나!!!’

 

 

-설레는 표정으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헤레는 눈을 꾹 감았다. 아무리 떨치려 해도 슬란과 헤이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포기해야 하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안다. 알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에 괴로웠다.

후- 헤레가 하늘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기분이 끝도 없이 늘어졌다. 이러다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서 울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헤레는 숲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발걸음을 돌려 다시 마을로 향했다.

 

 

+++

 

 

“거기, 아가씨.”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석양이 낮은 건물들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그 아래 골목길에서, 노을보다 빛나는 주황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헤레에게 말을 걸었다. 뒤집어 쓴 로브 때문에 보이는 건 콧망울과 입, 턱, 그리고 흘러나온 머리카락뿐이었지만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더군다나 얼굴도 채 드러나지 않은 수상한 차림새였으니-에게 드는 경계심에 헤레가 뒷걸음질쳤다. 여자는 헤레가 뒷걸음질 치는 만큼 다가오며 말을 이어갔다.

 

 

“원하는 게 있지 않나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말을 못 하게 하는 주술에 걸린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괜히 울컥, 눈물이 차오르고 시야가 흐려졌다. 왜 나한테는 이런 일만 생기는 건지. 오늘따라 우울했던 기분이 여자를 기폭제로 순식간에 심장에 번져갔다.

 

 

“...그의 마음이라던가. 네가 가지지 못한 것.”

 

 

여자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음과 동시에 말투도 바꼈다. 하지만 헤레는 그것보다도 로브 아래로 묘하게 뒤틀려 올라간 입매가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여운 아이.”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여자의 말에 매료되는 기분이었다. 여자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인데도, 막연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 같았다. 다시금 슬란과 헤이나의 잔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전히 씁쓸했지만, 조금 전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아니,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잊어가는 것도 같았다. 슬란이 어떻게 생겼더라?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여자가 헤레에게 손을 내밀었다. 맞잡아주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헤레는 어떤 의심도 걱정도 없이, 영혼을 먹힌 사람처럼 여자의 손을 잡았다.

 

 

헤레는 최면에라도 걸린 듯, 한 발짝 여자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지니 늘어트린 로브 뒤에 감춰져 있던 여자의 눈동자가 보였다. 모든 것을 담았으면서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듯한, 영롱한 보랏빛이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여자가 헤레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동시에 여자의 새빨간 입술이 벌어지고 잔혹하리만치 달콤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그’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내게 오렴.”

 

 

그 말에 헤레가 고개를 떨궜다. 고여 있던 눈물이 투둑, 하고 신발 앞코와 땅을 적셨다. 샛노란 빛이 발밑에 피어올랐다. 그 빛에서 나온 작은 빛들이 하늘하늘 날아올라 두 사람의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라졌다.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도, 헤레도. 처음부터 그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던 듯, 두 사람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

 

 

-다음 날(현재)-

 

헤레가 사라진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실종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다급한 얼굴로 ‘누군가 사라졌다’며 사라진 사람을 찾는 데 정신이 팔린 듯했다. 슬란과 헤이나도 마을 어귀에서 ‘사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헤이나. 이번 실종 사건 말야.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렇게 작은 마을인데도, 누가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하지만 아무도 ‘누가’ 사라졌는지는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규모가 굉장히 작은 편이었고, 그래서 아무리 소심하고 말이 없던 사람이라도 이 마을의 구성원이었다면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리가 없었다. 설령 이름을 모르더라도, 그 존재와 공백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헤레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사람이 안 보이네?”

 

“누구?”

 

“헤...헤... 나랑 이름 첫 글자가 같았어. 너랑 친했던, 말수 적던 여자분 말야.”

 

“무슨 소리야, 헤이나.”

 

“응?”

 

“내가 아는 여자 중 이름이 ‘헤’로 시작하는 사람은 너뿐인걸.”

 

 

슬란이 단호한 얼굴로 헤이나에게 대답했다. 헤레는 있었다. 분명 존재했고, 7년이란 시간 동안 마을 사람 중 슬란과 제일 가깝게 지냈다. 슬란에게 있어서도 헤레는 좋은 친구였고, 헤이나 외에 가깝게 지낸 여자는 헤레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슬란은 헤레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헤이나는 단호한 슬란의 태도에 순간 멈칫했지만,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냐, 분명 누군가 있었어.”

 

“하하, 생각이 깊었던 거야. 내가 아는 마을 사람 중 사라진 사람은 없어.”

 

“하지만...”

 

“정말 사라진 사람이 있다면 나도 나지만 네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

 

 

헤이나는 뭐라고 더 반박하고 싶었지만, 슬란의 말이 맞았다. 이 마을에서 누군가 정말 사라졌다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정답이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사라진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헤이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슬란의 품에 기댔다. 뭔가 개운하지 못했지만, 달리 이 뭔지 모를 느낌을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그것보다 ‘조용한 마을에서 갑작스레 터진 사건 때문에 혼란스러워 착각을 일으켰다’는 쪽이 더 신빈성 있었다. 슬란은 품에 기댄 헤이나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헤이나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래, 아무도 사라지지 않은 거다. 설령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기억에 없으니, 이건 혼란스러움에서 비롯된 작은 착각일 거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다, 고, 헤이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이 마을을 덮었다, 붉디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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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속의 마녀

프롤로그

 

   「옛날 옛날에, 어느 마을에 화려한 금발에 투명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진 ‘라푼젤’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어요.

 

 

   라푼젤은 외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심성마저 고와 매일같이 마을 청년들에게 구애를 받고, 어른들에게는 예의바른 아이로 사랑받았어요.

 

 

   그런데, 라푼젤이 살고 있는 마을 옆에 위치한 음산한 숲에는 사악한 마녀가 살고 있었어요. 주황 머리에 보랏빛 눈을 가진 마녀는 아름답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라푼젤을 시기한 나머지, 어느 날 라푼젤을 납치해 높은 탑에 가둬 버렸어요.

 

 

   라푼젤은 매일 작은 창문을 통해 탑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탑에 걸린 마녀의 주술 때문에 아무도 라푼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게다가 라푼젤이 납치되던 순간을 기점으로, 마녀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주술을 걸어 아무도 라푼젤을 기억하지 못하게 했어요.

 

 

   시간이 흘러 외로운 라푼젤의 머리카락은 땅에 끌릴 만큼 길게 자랐고, 아름다웠던 눈동자는 빛을 잃어 탁하게 변했어요. 마녀가 일정 시기마다 식량을 구해다 준 덕분에 굶어 죽는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지만, 오랜 감금 생활에 지친 라푼젤은 마녀를 죽이고서라도 탑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어요.

 

 

 

‘이번에 마녀가 식량을 가지고 돌아오면, 마녀를 죽일 거야. 그리고 탑을 나갈 거야.’

 

 

   하지만 마녀는 어째서인지 돌아오지 않았고, 라푼젤은 식량마저 떨어져 버린 탑 안에서 마녀를, 복수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홀로 굶어 죽었어요. 절대 만나지 못할 ‘그녀’ -원래 쓰여진 것을 지우고 그 위에 내용을 덧쓴 듯하다-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외롭고 비참한, ‘진짜 라푼젤’의 이야기. 끝.」

 

   탁-.

   어두운 오두막 속에서 로브를 뒤집어 쓴 여자가 책을 덮고는 중얼거렸다.

 

 

   “웃기지도 않아.”

 

 

   여자는 ‘라푼젤’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박힌 낡은 책 표지를 조심스레 쓰다듬고는 창 밖을 바라본다. 얼핏 달빛에 비친 눈망울은 죽은 사람의 그것인 듯, 빛이라곤 없어 보였다. 힘없이 웃는 입꼬리마저 지쳐 보였다.

 

 

 

+++

 

 

“너희, 그거 들었어?”

 

“뭘?”

 

“마을에 마녀가 나타났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진짜라니까?”

 

“에이, 잠 덜 깼어? 전설에나 있는 얘기지.”

 

“그런가...”

 

 

   소녀들이 마을을 거닐며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떤다. 그 내용은 ‘마을에 마녀가 나타났다’는 것. 그 소문은 이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일부는 '전설'과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며, ‘전설’ 속의 그 ‘소녀’와 같은 금발에 에메랄드 눈동자를 가진 마을의 소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은 언제나 그렇듯, 예고도 없이 일어났다.

 

 

“아, 안녕, 슬란.”

 

“안녕, 헤레. 잘 지냈어?”

 

“으응...”

 

 

   마을의 그 어떤 여인보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여인이, 오히려 그 어떤 여인보다 주목을 받지 못한 여인이,

 

 

“저, 슬란, 있지.”

 

“응.”

 

“나, 사실, 널...”

 

“응?”

 

“...아니야.”

 

 

   그래, ‘헤레’가 사라졌다.

 

 

 

+++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명확했다. 하지만 단 하나, 질리도록 뚜렷한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아이야, ‘그’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내게 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