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인문학 사전

부정하다

 

부정하다 否定--

: 어떤 것을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거나 옳지 않다고 반대하다

 

 

생은 자기완성을 위하여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다.

                                                                                       - 함석헌, <함석헌 전집 2 : 인간혁명의 철학> 中

 

 

 

 

엄마의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진 뒤부터 우리는 교환일기를 쓰고 있다. 중학생 때 친구와, 대학생 때 남자친구와 함께 써본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어렵다. 과거 그들과의 일기가 긍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요즘 우리의 노트에는 반쯤 그늘이 져 있다. 우울감에 물든 엄마는 펜 끝에 대롱대롱 검은 잉크와 더 검은 생각을 매달고 지낸다. 과거에 대한 회한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든다. 어제의 어둠은 오늘을 뛰어넘어 며칠, 몇 달, 몇 년까지 자기영역을 확대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딸의 애정 어린 희망은 거센 자기 부정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엄마의 담장을 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의 끝에서 희망은 담장 너머를 엿본다. 검은 잉크는 언젠가 다 쓰기 마련이고, 그걸 다 쓰고 나면 새 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푸른 바다를 닮았거나 소나무 냄새가 나는 잉크를 넣어버릴 생각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긍정도 부정만큼이나 힘이 강하다는, 설익은 믿음 하나로 견뎌본다.

글 이어보기

너무한, 밤의 기록

남 같지 않은, 사사로운 감정이 얽힌 관계, 친구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 사람과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지금은 너무 우습다. 그때의 너와 나는 프레임 속에서 참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눈떠보니 어느새 4개월 차가 넘었던 회사 생활. 우리 팀에 신입이 들어왔다. 이력서를 봐도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우리 팀에서 유일한 여자였던 나에게 굳이 차 문까지 닫아줬다. 넌 예의가 몸에 배어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더 꼴사나웠을까. 참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 못지않게 각잡힌 생활과 웃음기 없던 너의 표정. 너의 포커페이스로 제나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1년이 지나도 어색함이 감돌았다. 동료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었다. 동갑내기였지만 다른 또래 직원들보다 너와 친해지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지금와서 들은 말이지만 그때 넌 이미 우리가 친했다고 생각했단다. 당시, 일할 땐 편했지만 둘이 남겨지면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어색한 빈틈이 싫어 할말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다 단둘이 외근을 가고 식사를 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팀장에 대한 너의 생각을 처음 들었다. 너도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너도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또래 직원들과 우린 거의 매일 술 한잔, 그 이상을 기울이며 닭발, 곱창, 회사를 맛보고 즐기고 뜯었다. 

 

적립식 통장보다 더 빠르게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날 너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친구"

일할 땐 우연이라도 손끝이 닿을까봐 거리를 두고 격을 차렸다. 그런 우리가 동료를 끝내고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니  동료 때보다 트러블은 더 많았다. 너는 스스럼없이 장난을 참 많이 쳤고 난 참 잘도 속았다. 화가 나 눈물이 나던 날도 있었다. 화해의 악수는 몇 번이나 했던지, 널 몇 번이나 때렸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그만큼 추억이 쌓여갔다. 그때쯤 나는 약간 우리의 관계에 혼동이 왔다. 친구나 되자고 시작한 관계에서 연인으로 질릴 만큼 만나 끝낸 관계가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예전엔 서로 다른 염색체 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서도 뻔한 멘트가 들렸다. 

"너희 둘이 그냥 사귀어. 언제 사귀니?" 

너와 나는 자연스러운 재치로 흘려넘기고 언제나 친구 관계를 운운했다. 그런데도 너는 매너와 장난이 적당히 양념된  행동으로 날 헷갈리게 했다. 여중, 여고를 나와 쉽게 선을 넘지 않는 나에겐 낯설었다. 여사친도 적지 않게 있는 너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다 함께 가까운 근교로 여행을 떠났다. 아직은 어색한 반말을 편한 척 주고받았다. 새벽녘, 동료들에게 별을 보러 가자고 졸랐다. 달을 보는 걸 좋아하던 너는 별을 보고 오랜만에 천진한 웃음을 보였다. 술기운도 있었는지 넌 잘 하지 않던 말도 했다.

"별 진짜 많다. 별 따줄까?"  

손발이 사라지는 말에 난 귀를 씻어냈다. 돗자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깔고 추위와 별을 안주로 소주 한 잔씩 기울였다. 소주병 아래에 핸드폰 빛을 조명삼아 불을 밝혔다. 라섹으로 눈부심에 약해진 터라 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너는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었다. 그러던 와중 동료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평소 아니라고 한 사람도 잘 맞는다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누가 봐도 우리에게 한 말이었다.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그땐 한번 쯤 이런 친구를 만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무수한 연상의 사랑에 지친 참이었고, 매섭게 겨울바람이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네가 우연히 던진 말에는 시가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우리의 화살은 서로를 조금씩 빗나갔다. 그럴수록 난 점점 막역해지는 이 관계가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날의 만남이 내 과거의 생각을 일깨웠다. 친구나 되자고 서로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사실, 처음의 목적은 나의 모태쏠로 친구 B의 솔로 탈출을 위해서였다. 그 친구가 소개팅은 어색하다며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제안했다. 그 모임이 반복되면서 우린 친해졌고 넌 내 친구 A에게 관심을 가졌다. 나에게도 썸인듯 아닌듯한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도 너와 친구 A의 관계에 더 신경이 쓰였다. 둘 다 나에게 가장 최측근이었다. 너는 버릇처럼 여자친구가 생기면 너와 연락을 자주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가 같은 염색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애초부터 하지 않도록. 그래서 난 둘은 절대 안 된다고, 다 같이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쯤 나의 썸남과 미묘하게 감정이 틀어지고 있었다. 잘 돼 가는 너와 친구 A를 보며 생긴 열등감도 없지 않았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자 너는 나를 푹 찔렀다.

"너 나 좋아했어? 이제 나 좀 풀어줘." 

 

내가 구속했는지 부터 먼저 생각했다. 평소 우린 장난처럼 주인과 강아지와 같은 역할놀이를 했다. 절대 변태적 성향은 아니다. 넌 내 앞에서 포커페이스를 풀고 모든 감정을 다 드러냈다. 스스로 널 비글이라고 칭했다. 우린 갑자기 만나 끌리는 데로 먹고,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내 마음대로 굴어도 너는 다 받아줬다. 그러던 와중 그 말을 들으니 사고가 정지했다. '내가 너를 좋아했던가?' 나마져도 나에게 의심이 들었다. 난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니 너와 다니는 일에 즐거웠다고 답했다. 사랑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싫은 게 내 마음이야."

 

이어서, "내가 당긴다고 올 것도 아니잖아."고 답했다. 너는 막역한 친구가 될수록 다른 관계로 발전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백번 맞는 말만 했다. 그리고, 내 친구 역시 우리의 시간들을 알기에 너와 관계발전에 망설였다. 너와 친구, 사이에 낀 나, 갈등은 깊어졌다. 난 너무 이기적이라 불편한 감정이 싫었다. 너와 내 친구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빌었다. 결국 너와 내 친구의 이야기는 시작되지 못했다. 

"안된다고 한 건데 내가 괜한 짓 했지. 안 만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의 모진 말에 난 면목이 없었다.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하고 있었다. 넌 아무렇지 않게 먼저 다가왔다. 평소처럼. 

 

회사 다닐 때부터 네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믿고 따르던 사수가 건강상의 문제로 그만뒀고 난 혼자 남았다. 사수가 그만두자 무능력한 사람이 팀장이 되었다. 난 팀장의 몫까지 하느라 지쳐갔다. 그럴 때마다 너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다. 원래는 직무가 달라 외근 때 말고는 도움받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넌 내 일거리를 차곡차곡 정리해주면서 언제나 뒤에 있었다. 늘어가는 나의 투정도 꾸준히 들어주었다. 사회에 나오고 다닌 첫 회사였다. 사회경험이 많던 넌 큰 힘이 되었다. 간과 쓸개를 빼도 회사를 나오면 역적이 되는 세상이다. 그동안의 고생이 무색하게 쫓겨나듯 나온 회사에 후폭풍이 더욱 심했다. 그럴 때마다 넌 내 자존감을 올려줬다. 너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넌  '네가 최고다, 예쁘다, 넌 어디 가든 잘할 거야'라고 툭툭 던지듯 말했다. 너도 나에게 너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쭙잖은 나의 위로에도 고마워했다. 

"1년 동안 이 회사에서 뭘 했나 싶어도 널 만나서 다행이야. 네가 좋은가 봐 친구로서."

매일 티격태격해도 너의 그 말에 고마웠다. 그래서 너와 친구 A의 일에 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시 둘이 연락할까 봐 난 아직도 걱정한다. 정말 난 못돼빠졌다. 

 

이젠 정말 편한 사이가 되었다. 너와 같은 소파에 다리를 엉켜 누워도 아무렇지 않다. 주변의 부추김에 혹시라도 너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좋은 친구를 잃기는 싫다. 그래서 더욱 너의 연애가 늦춰졌으면 한다. 못된 심보다. 이 사사로운 감정이 얽힌 복잡한 관계가 가끔은 지친다. 이제는 너를 내 욕심으로부터 놓으려고 이 글을 쓴다. 넌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 
"평생은 없어. 우리 관계도 평생 가지는 않을 거야. 죽어서라도."

평생이란 단어는 참 무모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긴 이 시간에 감사하며 살 것이다. 우리가 평생은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로 오래 남고 싶다. 너도나도 언젠가 좋은 사람 만나겠지. 최근 꿈에서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너를 봤고 너는 나에게 그를 소개했다. 내가 버릇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과 만나"라고 한 말이 이뤄져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이기적이다. 그래도 참 잘 어울렸다.  

 

모든 일에 끙끙대며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친오빠는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책에선 '난 단점 투성이 이야'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만든 것이라 한다. 나 역시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이기적이기에 우정이란 이름으로 너에게 모질게 굴어도 괜찮다고. 어쩌면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 스쳐 갔거나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관계를 깨기 싫어 나를 속이는 걸지도 모른다. 저 드라마 속 뻔한 남사친, 여사친처럼. 

 

인생이 뻔하지 않아서 '기대, 미래, 예측불허' 와 같은 단어가 생기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의 관계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너의 존재를 소중히 하며 너의 아픔을 더 달래주고 싶다. 내가 위로받은 시간만큼, 내가 가진 미안함만큼 너에게 보답하고 싶다. 아주 명확하면서도 아직 애매모호한 관계에서. 

글 이어보기

소품집

<겨울 안부>

 

안녕. 잘 지내니?

이르게 찾아온 겨울의 온도가 마치 재작년의 늦겨울 같아 네 생각이 났어.

그러다 너와 진지한 고민을 쏟아내던 때가 아득하게 느껴지길래 편지지를 꺼냈다.

잘 지내는 거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꾸만 묻고 싶어.

나는 사랑하던 사람과 마침표를 찍고 겨울을 맞았어. 물론 사랑하고 있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테니,

사랑하지 않아가던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후로도 잔잔히 일상을 살아가곤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때까지 몇 번의 쓸쓸한 연애를 하고 나니,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

 

기억나니? 우리 몇 년 전에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웠었잖아. 분명 똑같은 방법을 배웠는데도

너와 내 모습은 퍽 달랐었지. 나는 여기저기에서 더 쉽고 빠르게 하는 방법을 찾아 요령을 피웠지만

너는 거북이처럼 하나하나 느리고 정직하게 해나가더라. 미안하지만 사실 그런 너를 보며 답답하다고 생각했었어.

더 쉬운 방법으로, 더 멋진 결과물을 만든 내가, 너보다 더 세상을 잘 살아가겠구나라고, 감히 잘난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너는 요즘도 그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더구나. 나는 있지, 그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 요령만 잔뜩 부렸던 손가락이 부끄럽게 자판 위를 헤매고 있어.

 

이젠 너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지?

그래. 어쩌면 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듯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다 꺼내 보여주던 내 모습이 상처였던 그때부터 더 이상은 어설프게 헤메고, 허둥대고 싶지 않아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요령을 피운 거지. 나는 그저 사랑을 잘하고 싶었어. 다가가고 물러설 적당한 거리를 알고 있는, 더 쉽게 사랑하면서도 손해 보지 않고 이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인지 요즘 느릿한 정직함을 가진 네가 많이 생각나.

너라면 사랑도, 아니 사랑은 더욱, 헤매고 부딪히면서 구석까지 꼼꼼히 채워나가고 있을 거라 믿기에.

그런 너를 떠올리며 나도, 마치 처음부터 다시 사랑하는 사람처럼,

성실하게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야.

 

그립다. 네가 많이 보고 싶어. 예전 너와 나누었던 고민이 생생히 기억나는 건,

볼에 홍조가 필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그 마음이 여전히 반짝이기 때문이겠지.

모처럼 네게 편지를 쓰는 내 볼도 물들어 있어서, 꼭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를 써보내는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 보지 못했어도, 문득 붉게 생각나 주어서 고맙고,

아무렇지 않게 사랑을 담아 편지 보낼 수 있는 사람이어 주어서 고맙다.

어디서든 우리는 가까이에 있어. 잘 지내다 어느 겨울날 또 만나자.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2017년 참 고마운 나날들이여~

2017이 끝나간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2017년의 마지막 날. 

2017년에는 무슨일들이 있었는지 쭉 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들만 가득했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남자친구와의 결혼.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꿀맛같은 신혼생활을 즐기던 중 찾아온 아기 천사까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던 2017년을 보내면 새로운 한 해가 찾아온다. 

 

다가올 2018년에는 예쁜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며,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에게도 행복만이 늘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바래본다. 

하루하루 열심히 즐기며 행복하게 지내려 노력했더니 정말 행복한 일들이 가득했다.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다. 인생은. 그리고 그 날의 기분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일들이 가득 찾아오지만, 불행하다 느낀다면 불행만 가득 찾아올 것이다. 

매일 행복하다, 주문을 외운다면 정말 행복한 일들이 소소하게 찾아오기 마련인 것을 나는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하루하루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분명 정말 소중한 선물이 가득 찾아올거야. 

그러니까,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가 되어야지, 다짐해본다.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너를 떠나 더 행복한 곳으로

 

네 옆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마냥 늘 웃고 행복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온 세상이 너로만 가득차 있던 그때의 나는, 그저 철부지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세상이 너였을 때, 넌 너의 세상의 전부가 다른 것이었지. 

그렇게 우린 엇갈리고 엇갈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지쳤었지. 

 

대화를 해도 무색해질 만큼 서로의 의견과 생각이 너무나 달랐었던 우리의 앞에 결국 이별이란 게 놓여있더라. 

나는 널 붙잡으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넌 이미 저 멀리 떠나버렸구나. 

 

나는 너를 떠나 더 행복한 곳으로 갈거야. 

그게 어디든, 내 세상의 전부였던 널 버릴거야. 

난 다시 태어나 훨훨 자유롭게 날아갈거야. 

나를 옭아매던 너의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질거야. 

 

이제 나는 홀로서기를 준비하려 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모든 걸 찾을거야. 

그래서 나는 결국 행복해질거야. 

나만이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더 많이 웃을거야.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

 

뉴질랜드에서 그렇게 오래 살아도 바닷가에 가서 일광욕만 하고 돌아오던 때가 있었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끈적거리고 모래가 사방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 싫어

그저 조신하게 그늘에 앉아 바다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만 구경했었지.

 

그런데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바다에 들어가기 싫어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바다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고,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뜨거워진 모래가 따뜻해 몸에 모래들을 묻히며 뒹굴거리고, 

썬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면서도 신경질이 아닌 해맑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여름만 되면 "바다가자!" 를 외쳐대기 시작하며

깊은 물까지는 무서워 들어가진 못하지만 파도를 타면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는 예쁘다. 아름답고, 찬란하다. 

서핑하는 사람들도 있고, 부기보드타며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는 자유롭고 자유롭다. 

 

사람은 점점 달라지는 게 맞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늘 그 자리에 머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게 알게 모르게 변해간다. 

변해가는 과정을 그저 즐겁게 받아들이면 정말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힘들때면, 꿈이 나를 일으켰다.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가능성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을 때.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다름아닌

늘 희망을 이야기하고 꿈을 꾸며 늘 당차게 살았던 나의 지난날의 일기들이었다. 

 

일기장을 펼쳐 부지런히 그동안 나의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갔고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을 때.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면서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늦은 밤, 나는 글이 쓰고 싶어졌고 바로 노트북을 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지 적어내려가기 시작했고 그 글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희망을 갖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비록,

늦었다고 생각했었던 지난날의 불완전한 생각들과 마주할 나에게 두렵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넌 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노력하면 반드시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그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을 믿고 굳건하게 너의 그 길을 걸어가라고 응원하면서 말이다. 

글 이어보기

너무한, 밤의 기록

가을, 햇살이 울던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이렇게 전해드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며칠 전, 시집 한 권과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원고지 모양의 편지지에 자필로 눌러쓴 시인의 편지였다. 지난가을 초입에 독립출판을 주제로 한 프리마켓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시인이 파는 엽서 몇 장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엽서에 문제가 있어 다시 보내준다고 했다. 재인쇄 후 연락한다길래 잊어버린 채 몇 주를 기다렸다. 엽서가 결국 제대로 인쇄되지 못해 편지와 함께 시집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저 문장을 보자 마음 속 덮어두었던 감정이 떠올랐다.  

 

좋은 사람들과 청평으로 여행을 갔다. 전날 밤, 별이 빽빽이 박힌 하늘을 봤다. 그렇게 많은 별은 오랜만이었다. 또 우연히 혼자서만 두 번의 별똥별을 봤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 시각이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말에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오빠랑 차를 몰고 천천히 내려갔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우린 말이 없었다.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차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심해 속으로 몸이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꿈도 없는 맑은 잠을 잤다. 지방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 댁에 들렸다. 할머니 댁은 꽤 분주했다. 살아생전 할머니를 도우셨던 요양사분이 집을 정리하고 계셨고, 할머니 친구분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고모는 내려오고 있냐, 너희는 어디서 왔냐, 집은 어떻게 정리할 거냐 등 참 사소하고 평소 오지랖이라고 느꼈던 질문에 정신없이 대답했다. 그 와중에 창가에 햇빛을 보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인형이 눈에 띈다. "너거 할머니 저거 참 좋아했는데. 매일 춤을 추댄다고."

할머니는 저 친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멀리 있어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다는 자식들의 뻔한 레퍼토리가 머리 속에서 웅웅 맴돈다. 우리도 그랬구나. 

 

장례식장 입구 모니터엔 할머니 이름과 함께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상복을 갈아입고, 손님을 받으며 점점 실감했다. 3일의 장례는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장례 동안 여러 번의 충격이 여진처럼 밀려왔지만 흔들리지 않고 꽤  잘 버텼다. 손님들은 올 때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 수백 번을 물었고 아버지는 수백 번을 답했다. 손님맞이를 하다 이튿날, 입관식이 있었다. 몇달 만에 마주하는 할머니였다. 평소 같은 얼굴에 깊은 잠을 주무시듯 미동이 없었다. 할머니의 품에 노잣돈을 넣고 식어버린 다리를 꾹꾹 주물렀다. 고모는 할머니 생신상에 미역국 몇 번 올리지 못했다고 오열했다. 울음 섞인 장송곡이 장례식장에 메아리처럼 울린다. 고모의 울음을 이어받아 다음 입관식에서 옆집 가족의 울음이 메들리처럼 이어진다. 

 

장례의 중반쯤, 큰어머니는 그러셨다. 앞으로 울 날이 더 많다고 계속해서 죽상으로 있는 건 아니라고. 사촌 언니는 지난 추석 때 할머니와의 통화를 잊지 못했다. 반갑게 통화 후 끊으면서 할머니는 '한 달 후에 보자'는 말을 남겼다. 거짓말처럼 한 달 후 모두가 모였다. 몇 년을 보지 못했던 친인척을 다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마지막으로 화장터에서 한 줌 재로 남은 할머니를 마주하며 보내드렸다. 화장터 옆 칸에는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화구로 들어가는 관을 붙잡고 붙잡는다. 화장 후 제를 지내며 3일 동안 우리를 도운 병원 측 장의사는 한마디로 장례의 끝을 알렸다. "저희 OO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이 다음에도 저희 병원을 찾아달라는 뜻으로 들리는 건 뭘까. 노래방에서 1시간이 끝나고 조심히 돌아가라는 멘트가 생각난다. 장의사의 마음이 이해도 되고 3일간의 식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말라가는 눈물 자국 위에 웃음이 피식 났다. 

 

장례를 마치고, 할머니 사진과 유골함을 들고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3일 전 집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왔음에도 매캐한 냄새가 집안을 채웠다. 허전한 빈 침대, 말라버린 고추, 가지, 호박들, 주인없는 마당에 나른한 잠을 자는 길고양이들. 사진을 들고 마당 한 바퀴를 죽 돌았다. 집을 나오는데 담벼락에 개나리를 발견했다. 새롭게 싹이 나는 것도 있었고, 활짝 핀 뒤 지고 있는 꽃도 있었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아 코끝이 시큰한 계절이었다. 

 

할머니는 잠자리에서 조용히 떠나셨다. 할머니는 가난한 가정에서 부모 곁을 떠나 어릴 적부터 대감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라왔다. 그 집에서 몸이 조금 불편한 둘째 아들과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새벽같이 밥을 하고 집안을 돌보되 본인의 위치는 숨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과한 행복감을 표현하셨다. 힘들게 자란 만큼 우리에게도 그런 점을 요구했다. 윗사람 혹은 남자 어른에겐 '네'만 하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남자가 위다. 어릴 땐 그런 말들과 요구가 참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그러한 삶이 가엽다. 그만큼 효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이 많이 허하다. 첫 월급으로 사드린 신발도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시는지. 더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의 눈가엔 항상 눈물이 말라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 끝에 머문 먼 산을 보며 고향을 떠올리는 걸까. 어린 시절을 그리는 걸까. 거친 손바닥을 한 번이라도 더 쓸어볼걸, 할머니가 가자는 곳 한 번 더 갈걸. 할머니의 모습이 잔상이 되어 맴돈다. 

 

지금 내 마음이, 시인이 보낸 편지의 첫 문장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여 참 죄송할 따름이다. 장례가 다 끝나고 서울에 올라와서 쉬는데, 아이폰에서 옛날 사진이 떴다. 아이폰은 '몇 년 전' 사진들을 가끔 보여주곤 한다. 거기에서 할머니와 생신 때마다 가던 여행 사진이 보였다. 가을 억새와 함께 가족은 환하게 웃고 있다. 

 

할머니는 잔치국수를 참 잘 말아주셨다. 라면보다 간단히 만드셨다. 어릴 적 할머니 손에서 컸다.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어 펑펑 울었다. 할머니는 달래주면서 얼른 잔치 국수를 말아주셨다. 참 편하고 맛있게 먹던 그 음식은 손이 많이 간다. 채소를 하나씩 다듬어서 일일이 볶고 육수도 따로 내야 하고, 면도 따로 삶아야 한다. 그만큼 정성을 필요로 한다. 매일 할머니의 마음과 손길을 먹고 살았다. 지금 그 잔치국수가 어느 때보다 너무 그립다.

볕 좋은 날에 떠난 할머니가 그곳에선 매일 잔치 같은 나날이길.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다는 건

2000년, 12월 초.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왔을 때,

'과연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에서 적응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보다는, 그저 설레고 마냥 기분 좋았던 어렸던 나에게 환상을 심어줬었지. 

한국은 추운 겨울이었던 12월이 뉴질랜드에서는 여름이라는 것도 마냥 신기했고,

길거리에는 동양인보다 서양인이 당연히 많았던, 조금은 아니 많이 낯설었던 뉴질랜드의 삶이 시작되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어떤 환상적인 일들이 일어날까? 늘 기대했던 나에게 큰 시련이 다가온 것은, 

영어의 A도 모르고 무작정 학교부터 입학한 것이었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굉장히 큰 벽이었고,

그 벽을 뛰어넘기엔 의지가 없었던 나에게 낯선 외국인들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자꾸 말을 걸어오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으면 영어가 빨리 늘었을텐데

파란 눈동자를 가진 그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에 도망만 쳤던 나.

결국, 영어를 배우기 좋은 환경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며 영어를 소홀히 했었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뉴질랜드에서 살면 현지인처럼 영어 진짜 잘 하겠어요~"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현지인처럼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답니다. 얼마나 노력을 했고, 얼마나 공부를 했느냐에 따라 틀려요~ 오래 살았다고 해서 무조건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예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2017년 12월 초, 

17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뉴질랜드의 여름은 여전히 아름답고 예쁘다. 

바닷가에 놀러가기 딱 좋은 요즘, 언제 바다 놀러가지? 생각에 들떠있다. 

영어공부는 늘 해야하는 일, 여전히 영어는 어렵지만 사는 데 지장없으면 됐지, 뭐. 

 

이제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저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자. 

지금 이 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으니까. 

 

 

 

글 이어보기

나에게 쓰는 편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식를 낳고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게 되는 건 자식에 대한 것들이 아닌 부모에 대한 것들이다.

내 아이의 습관이며 행동이며 모든 것들이 역설적으로 언젠가의 먼 과거를 그려보게 만든다.

미소 한 번, 옹알이 한 번에 이토록 행복해하는 자신을 보며 내 부모도 이랬을 거라 생각하면 가끔씩 시야가 흐려지기도 한다.

휴대폰도 없고 TV도 흔치 않았던, 좁은 사글세방이 유행처럼 번지던 그 시절. 나를 재우기 위해 온 집에 불을 끄고 울던 아이를 달래던 젊은 나의 부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잠들어가는 나를 바라보며 수없이 많은 꿈을 꾸고 야심찬 미래를 설계해나갔겠지. 어쩌면 죽을 때까지 떠오르지 않을 나의 갓난이 시절을 내 아이를 통해 어렴풋이 그려본다.

그래. 정말 이상하게도 자식을 기를 수록 늘어가는 건 부모에 대한 것들 뿐이다. 돌아볼수록 스스로가 원망스러운 기억들만 늘어나서일까?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는 말이 새삼스레 와 닿는다.

내 아이가 이런 후회를 하며 눈물을 흘린다면 나는 뭐라고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괜찮다고 안아주며 웃어줄 것 같다. 
그들이 언제나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말 할 용기는 나지 않지만 이렇게나마 글을 쓰면 마음 속의 뭔가가 해소되는 기분이다.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부디 오래 오래 곁에 머물러 주세요.함께한 시간에 비해 제 기억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 지는 몰라도 지난 시간보다 더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12월의 어느 어두운 날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아. 유난히 추웠고 새벽에는 눈도 펑펑 쏟아지더라.

그날따라 늦게까지 잠이 오질 않았어.

집 앞에 나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소복히 쌓인 눈을 밟으며 발자국을 남겼어.

그러다 네 생각이 났어. 같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고.

그 어두운 밤에 홀로 밖에 있으니 점점 무서워져서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어.

확인해보니, 너였어. 

 

'어두운데 위험하게 혼자 청승떨고 있냐?'

 

응?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널 발견했어.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 서서 널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또 문자가 온거야.

 

'가만히 서서 뭐하냐, 나 안 반가워? 다시 갈까?'

 

치...너가 오면 되잖아! 저 멀리에서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너.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한 걸음, 또 한걸음 너와 가까워진다.

넌 빨리와서 안기라고 제스처를 취하지만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다.

난 그게 괜히 얄미워 천천히 한걸음씩만 너에게 간다.

몇걸음만 더 가면 널 안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난 멈춰서서 널 바라봤어.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는 너는 말해.

 

"거기서 뭐하고 있어? 어서 안겨!"

 

그 말에 나도 말해.

 

"너가 와서 나 안아주면 되잖아."

 

사랑앞에서 너와 나는 항상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려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곤 했지.

그 놈의 기선제압이 뭐라고?

 

결국, 넌 끝까지 먼저 나를 안아주지 않았고 그런 네가 너무 미워서 뒤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 

내가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넌 잡지 않더라, 나를. 내심 기대했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여자가 삐져서 뒤돌아가면 남자는 백허그해주며 달콤한 말도 잘해주던데. 

 

그 날, 하루종일 널 기다렸는데 결국 넌 나에게 오지 않더라.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린 사랑에 너무 허무해진 밤이었어.

 

12월의 어느 어두운 밤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사랑앞에서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안타까웠던 날이었어.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연애 말고 남들의 연애이야기에 더 관심이 간다.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어떤 게 좋아서 사귀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냥 듣고 있으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안부를 물었을 때,

“헤어졌어.” 라는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이 이상해진다.

 

이유가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다가 다시 재회한 두 사람이 보였고,

‘둘이 다시 사귀나 보네.’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참동안 연락도 하지 않았고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싶었다.

 

잊어갈 때쯤, 우연히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커플 기억나? 나도 얼마 전에 알게 된 건데, 그 여자애 죽었대.

완전 충격적이지 않아? 더 충격적인 건 자살이라는 거지.

자세한 얘기는 모르겠는데, 하도 연락이 안 돼서 집에 찾아가니까 그렇게 됐대.

완전 소름 돋지 않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럼, 그 남자애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 둘이 헤어졌나?

전에는 다시 만나고 있던 거 같았는데, 둘이 무슨 일이 있었나?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지만 함부로 입을 열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얘기를 들은 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자는 내내 꿈속에서는 그 커플이 재회하던 그 날이 자꾸 되풀이되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일어나 멍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목이 말라 물 한잔을 마셨다.

갑자기 무언가 끼적이고 싶어졌다.

책상에 앉아 수첩과 펜을 꺼내들어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쓴다.

누구에게 쓰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이 울지 마.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술 좀 적당히 마시고 고민 있으면 오래 생각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욱하는 성질머리도 고쳐야 하고 말이지.”

 

결국, 나에게 쓰는 편지를 끼적이고 해가 뜨는 걸 보고나서야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올빼미형 인간인가? 잠시 짧게 생각하다

이불의 촉감이 너무 부드러워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여자를 보았다.

 

“이제 아픈 사랑 따위 하지 말고, 언제나 행복하길 바래. 안녕.”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기죽지 말 것.

“절대로 고개를 떨어뜨리지 마라. 고개를 치켜들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라!” -헬렌 켈러

“만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온다!” -제임스 딘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랄프 왈도 에머슨

 

<1>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다.

눈치를 많이 보고, 싫어도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도 많은 울보였다.

친구들이 놀리거나 때리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보처럼 울음이 터져버렸다.

또한,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기라도 하면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우물쭈물.

목소리도 작아 주변에 친구들이 안 들린다고 놀리기라도 하면

눈물이 터져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만큼 굉장히 소극적인 아이였다.

 

<2>

친구들에게 편지 써 주는 걸 좋아했다.

말로 얘기하면 되는데 굳이 편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예쁜 편지지에 적어 주면 친구들은 좋아했다.

친구들의 좋아하는 모습이 좋아 계속 예쁜 편지지에 예쁜 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주곤 했다.

비밀 얘기 또한 적어주면서 어린 마음에 그 비밀이 영원히 지켜질 줄 알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아이들은 비밀얘기로 놀려대기 시작했고,

처음 느껴보는 배신감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되었다.

 

<3>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어울리길 원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다.

사람들 무리에 섞여 있으면 존재감이 없는 아이로 늘 구석진 자리를 좋아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받기 싫었다. 홀로 외딴섬에 걸어 들어갔다.

외딴섬에서 나오고 싶은데 아무도 내가 외딴섬에 홀로 들어가 있는 줄 모른다.

나에게 관심 좀 가져줘.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어줘. 난 지금 외로워.

 

<4>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글을 끼적이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소설도 썼다가, 수필도 썼다가,

누군가에게 보내지도 못할 편지도 쓰며 글쓰기 실력을 키워나갔다.

어떤 글은 굉장히 괴팍했고, 어떤 글은 감수성이 풍부했고,

또 어떤 글에는 분노가 가득 들어 있었다.

모든 글들은 내 안의 또 다른 내 이야기들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눈치 많이 보며 늘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글 쓰는 일은

또 다른 세계 속으로 나를 안내했고 드디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았다.

빈 종이에 펜만 있으면 내 세상이 펼쳐졌다.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5>

나를 잃으면,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타인들도 나를 무시하기 마련이다.

절대 나를 잃으면 안 된다.

나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라.

내가 나를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무시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자.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찾으며 살아가자.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홀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도록!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풀라. 

 

당신이 어떤 일에 성공하면 몇 명의 가짜 친구와 몇 명의 진짜 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기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솔직하라. 

 

오늘 당신이 하는 좋은 일이 내일이면 잊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라. 

 

가장 위대한 생각을 갖고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작은 사람들의 총에 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 

 

당신이 몇 년을 걸려 세운 것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 

 

당신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질투를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라. 

 

당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세상과 나누라. 

언제나 부족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것을 세상에 주라.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본부 벽에 붙은 시-

 

위에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얼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사용하는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일단 첫번째에서부터 '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 말이 돼?' 를 떠올렸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을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배신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절대 용서 못한다로 결론이 났으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

나도 어차피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알아서 잘 살아가면 되는것이며....

 

내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면 어떤 의도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굳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란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 공감이 되는 글귀.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그 기준을 똑바로 세워서 살아간다면 크게 어렵게 살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쉽지 않다는 것이 참...아이러니 할 뿐이다. 

그래도 인생은 한 번뿐인데, 최대한 즐겁게! 행복하게 !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정말 즐거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