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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기다림

기다림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에 안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딸~ 보연이 아줌마가 맛있는 거 사준댄다. 같이 밥 먹게 이리로 와.”

 

이전에 살던 집에서 위층에 살며 친하게 지내던 아주머니가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고, 엄마가 알려준 장소는 이사를 오기 전에 살던 동네의 한 버스 정류장이었다.

 

“혼자 올 수 있지? 옷 따뜻하게 입고, 조금 있다가 봐.”

 

“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두꺼운 잠바를 챙겨 입고 아파트를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가장 먼저 온 버스를 타고 빈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여러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익숙한 동네의 모습이 나오고 나는 당연히 여기서 엄마가 있는 장소로 버스가 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상각과 달리, 버스는 다른 길로 지나쳐 다음 동네로 가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버려서 차창 밖을 보다가 아저씨를 보다가, 그렇게 머뭇거리다 빨간 버튼을 누르고 내렸다. 이미 엄마가 기다리는 동네를 한참 지나쳐버린 버스에서 내려 근처에 보이는 공중전화부스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엄마에게 휴대폰이 없었기에 엄마가 일하시는 직장으로 전화를 했고, 주인아주머니가 받으셨다.

 

“아줌마, 저희 엄마 지금 거기 있어요?”

 

“아니. 이미 퇴근했는데.”

 

그때의 내가 울고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어디서 기다리는데 버스가 그리로 안 가더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아고~ 그 버스 거기 안가지. 거기 가려면 좌석버스 98번 타야지.”

 

마침 그때 98번 버스가 정류장으로 오는 게 보였다. 난 급히 전화를 끊었다.

 

“지금 버스와요. 98번, 끊을게요.”

 

대답도 듣지 않고 수화기를 걸어두고 뛰어가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내리는 문 바로 앞의 빈자리에 앉아서 다시 차창 밖을 내다보며 안도했다. 이 버스는 이제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갈 거라고, 곧 엄마와 아줌마를 만나서 맛있는 걸 먹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98번은 엄마와 시내를 갈 때에 타던 버스였고, 익숙한 거리의 모습이 계속해서 차창 밖으로 지나쳐갔다. 하지만 버스는 다시 되돌아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동네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멀어지며 시내로 달렸고, 나는 조그만 더 가면 되겠지, 조금만 더 가면 될 거야, 그런 생각으로 초조하게 앉아있었다.

 

차창을 내다보며, 운전기사 아저씨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마침내 시내에 도착한 버스가 백화점 앞의 기점을 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할 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에서 나온지 거의 3시간이 넘어서야 엄마가 기다리는 정류장의 맞은편에 내릴 수 있었다.

 

건널목 앞에 서고, 버스가 지나간 뒤 신호가 바뀌었다. 추운 한겨울의 해가 저무는 어슴푸레한 날에, 건널목 건너편에 엄마가 보였다. 발을 동동 구르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엄마를 부르며 뛰어갔다.

 

“엄마-!”

 

엄마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제야 오냐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하고 한참을 기다렸다고, 기다리다가 너무 안와서 아줌마는 그냥 가버렸다고 하셨다. 나는 그제야 버스를 잘못타서 바꿔 탔는데 시내까지 갔다가 다시 오더라는 말을 했다.

 

“건너서 타야지.”

 

“그치만, 엄마하고 탈 때는 안 건넜잖아.”

 

“그때는 기점에서 타서 그런 거고, 오늘은 건너서 탔어야지.”

 

혼자서는 처음 탔던 버스였기에 되돌아올 때는 건너야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다. 괜히 억울해서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다물고 볼을 퉁퉁- 불렸다. 엄마는 그래도 무사히 와서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웃으셨던 것 같다. 결국 맛있는 저녁은 보지도 못하고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끝이 찡- 하다. 버스 안에서 내가 마음 졸인 만큼, 기다기고 있던 엄마도 얼마나 맘을 졸이셨을까 싶어서, 그러다 어린 애 혼자 버스를 탔는데 기점을 돌 때까지 내리지를 않았으니, 버스 기사 아저씨는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했을까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길가다 모르면 바로 물어보게 된 것이,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든, 아저씨에게 물어보든, 편의점이나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보든, 혹은 버스를 타며 기사아저씨께 물어보든, 길을 모르겠다 싶으면 일단 물어보는 것이다.

 

또 그렇게 헤매면 안 되니까, 어디를 어떻게 가든 집에는 돌아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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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Hug

 

 

 

 

    당신을 처음 안았던 날이 생각난다. 그땐 몰랐지만 하늘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파랗게 빛났고, 나는 기쁨에 겨워 웃어야 했지만 그저 목청껏 울었다. 붉은 앵두가 맺힌 두 뺨을 어루만지는 당신의 손은 조금 깔끄러웠던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싫어서 운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아직 웃는 법을 몰랐을 뿐이다.

 

  구르는 게 재주여서 방바닥을 쓸고 다니다가도 툭, 마지막에 만나는 건 당신의 종아리였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쪽에는 늘 당신이 있었으며, 간을 볼 때만 빼고 모든 건 내 입에 가장 먼저 들어갔다. 그땐 맛있다는 걸 충분히 알았는데 왜 반대로만 말했는지, 나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단 것들을 내 걸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달나라 계수나무 맨 꼭대기에 매달린 초콜릿이라도 따다줄 것만 같은, 당신이 있었으니까.

 

  처음 배가 아팠던 날, 잔뜩 날이 서 있던 나에게 도착한 편지를 잊지 못한다. 축하한다는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서랍 깊숙한 곳에 쑤셔 넣었으나, 밤마다 그걸 몰래 꺼내보았다는 걸 당신은 알까. 당신을 닮아 고운 글자들이 희미해질까 봐 꿈에서는 줄곧 니스 칠을 했다.

 

  지금 한 뼘이나 아래에 당신이 서 있다. 나는 왠지 당신을 안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한다. 시간에 낙엽이 쌓이는 동안 불쑥 커진 나와 서서히 작아진 당신의 그림자를 키 재보며, 이제는 별도 달도 따다줄 이가 내 쪽이 되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사실은 여전히 당신에게 안기고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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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엄마의 빗질과 머리끈' 카네이션:carnation

'엄마가 많이 늙었구나.'

매일같이 얼굴을 보니까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이듦'이었는데, 새삼 엄마의 세월이 빨리도 흘렀구나 느껴졌다.

늦은 밤, 자고 있는 엄마를 보니 눈덩이까지 내려앉은 주름이 그동안의 삶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 엄마가 젊었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내가 2학년 때 처음 머리를 스스로 묶었으니까) 엄마는 예쁜 머리끈을 자주 사서 머리를 묶어주셨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을 표현의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작고 앙증맞은 꼬마가 새겨진 머리끈,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작은 구슬이 달린 끈, 장식은 달려있지 않지만 형광색이 포인트인 긴 끈까지...

너무 세게 묶어서 종종 내 눈이 여우눈처럼 치켜올라가곤 했지만 내 전문 미용 선생님의 손길이 참 좋았더랬다.

예쁘게 묶인 머리를 보고 부러워하던 친구들도 많았다.(아마도 맞벌이 부모님을 둔 까닭에 상황상 단정한 빗질은 어려웠을 거다)

지금은 엄마 손은 다소 투박해졌고 쪼글쪼글하다. 내일은 왠지 엄마한테 내 머리를 부탁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어리고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30대다.

모정, 부인의 사랑.

카네이션의 꽃말이다. 우리집 곳곳에는 카네이션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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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와 함께 하는 가을의 바삭함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10.24. 목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슬이는 혼자서 손을 허우적거리고 이불을 발로 차면서 20분 정도를 놀더니 하품을 했다.

졸리운가 보다. 엄마를 보면서 안아 달라고 잠투정을 한다.

이제 슬이는 이불을 덮어주면 발로 차고 옷소매를 입에 물고 빨면서 노는구나.

엄마가 딸랑이를 손에 쥐어주니 그것도 입에 가져가 빠는구나.

 

지금 슬이는 엄마 무릎에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한다.

엄마가 시를 (이해인 님) 읽어주니 엄마를 똑바로 쳐다본다.

두 귀를 쫑긋 새우는 것 같기도 하다. (민들레의 영토)

 

슬이는 푹 자고 난 아침에 엄마가 슬이를 보면서 다리를 만져주며 노래를 불러주면 기쁜지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단다. 엄마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가 보다고 엄마는 생각한단다.

 

연신 입을 벌려 웃는 네 모습 너무나 예쁘다.

그렇게 한 20,30분을 노래 부르고 나면 엄마 목도 아프고 슬이도 싫증이 나는 것 같아 엄마는 슬이를 안아준단다.

 

슬이는 엄마 품에서 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을 벌리고 오물오물거린다. 배냇짓을 한다.

입을 벌려 웃기도 하고 양 미간을 찡그리며 아픈 표정도 짓고 무엇이 슬픈지 흐느끼기도 한다.

 

이젠 엄마품에 안긴 슬이가 제법 무겁다.

슬이 속눈썹이 처음에는 작고 촉촉하게 젖어 잘 보이지 않더니 두 눈 감은 것을 보니 많이 자랐구나.

아빠 속눈썹을 닮아 길고 예뻤으면 한다.

 

2016.10.24 월요일 날씨 바람이 불지만 맑은 날.

 

백수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은 시간적 여유가 많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백수생활을 하면서 글을 못 올리고 있다. 어찌나 뭉그적+게으름이 심한지 내가 나에게 놀랄 지경.)

 

요즘 책을 읽을 때면 따로 찾는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서 책을 읽으면 내가 꼭 신선이 된 것 같아 풍류를 한껏 즐기며 풍경과 여유를 누린다. (누려~)

 

 

8월에는 지긋지긋한 폭염이 기승을 부려 괴롭게 했는데 이제는 제법 선선하다 못해 스산한 느낌이다. 이 정자를 가는 길에 나는 가을이 완연하게 다가왔음을 느낀다.

 

정자를 가는 길은 해가 뜨겁지 않은 시간에 집을 나와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짧은 다리를 건너, 바닥이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지나, 보라색 흰색 도라지 꽃밭을 넘어, 벚꽃나무가 양옆으로 가득한 길을 쭈욱- 걷다 보면 내가 책을 읽는 정자가 나온다.

 

봄에는 핑크 빛 연한 벚꽃들이 흩날리고 여름에는 푸르고 파란 싱그러운 잎을 보다가 이젠 바닥에 떨어진 낙엽 잎을 보니 가을이 왔구나, 했다.

 

정자 가는길 벚꽃나무 길

 

정자에 가는 길 늘어진 벚꽃나무 길을 걸을 때 나는 퍽- 즐겁다. 바닥에 흩뿌려진 총 천연 갈색 잎을 밟으면 아침에 가끔 먹는 씨리얼처럼 바삭거린다. 그 바삭 바스락 소리가 흥겨워 이리저리 밟으며 걸으면 길었던 10분이 금방 간다.

 

책 한 권, 물한병 달랑 들고 정자에 도착하면 오자마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다가 책을 읽고 또 졸음이 오면 잠을 자는 그야말로 이곳은 무릉도원, 유토피아가 따로 없고 나의 마음은 유유자적, 물아일체가 되어 한껏 다가온 가을의 바삭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보통 이상태ㅋㅋㅋㅋ(유유자적, 물아일체) 저 지금 취직했어요. 11/1일부터 일하기로 했습니다 ㅋㅋ

 

오늘은 엄마와 함께 정자를 찾아왔다. 짧은 다리를 건너 양쪽으로 늘어선 벚꽃나무를 지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보고, 벼베기가 한창 진행 중인 논을 보면서 그 길을 걸었다.

 

정자에 도착하니 엄마가 석양, 김인배 씨의 노래를 틀었다. 알록달록 고추장을 한껏 온몸에 바른 나뭇잎을 정자에 누워 바라봤다. 시를 들려줄 테니 제목을 맞춰보라고 하고는 엄마에게 석양 노래에 맞춰 시를 읽어드렸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 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서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란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시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1991년 오늘 엄마가 나에게 읽어 줬던 시를 

2016년 오늘 내가 엄마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완연하게 내게 다가온 가을은 내 마음을 바삭 바스락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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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나이가 들어도 힘 안 들이고 먹는 건 어려운 것 같아.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9.12. 목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슬이는 최초로 작은 엄마가 사다준 딸랑이를 손에 잡고서 간간히 몇 번 딸랑거렸다.

고사리 손으로 헐겁게 손에 딸랑이를 잡고 입 쪽으로 가져가니 가볍게 소리가 났다.

네 모습이 얼마나 예뻤던지 엄만 꼭 깨물어 주고 싶었단다.

이내 슬이는 피곤한지 손을 펴면서 딸랑이를 떨어뜨렸고 다시 손에 쥐어주니 싫어했단다.

 

저녁때 출생 신고를 하고 왔다는 아빠에게 얘기하니 흐뭇해하신다.

이모는 날이 갈수록 우리 슬이가 뽀얗게 되면서 이뻐진다고 하셨다.

엄마가 주는 우유 많이 먹고 어서어서 자라거라.

 

슬이 입술에서 한 꺼풀 껍질이 벗겨졌다.

젖꼭지를 빠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크는 동안 몇 번을 벗겨진다고 이모는 말씀하셨다.

우유를 먹는 동안 먹고 나면 네 이마엔 땀이 송송 맺히고 온 머리는 땀으로 젖어 있구나.

 

네 모습에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한모습을 본다.

본능적으로 빨아대는 네 모습을 보노라면 신기하다.

땀 흘리며 먹는 네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힘 안 들이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어서어서 크거라.

 

 

 

2016.09.09 금요일

 

백수가 된 지 9일 차.

부모님에 권유에 떠밀려 군청에서 열리는 작은 취업 박람회에 가게 되었다. 집과는 거리가 쫌 있지만 차를 타고 가기엔 가까운 거리여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날도 이쯤이면 선선하겠다 싶어 정장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옷을 입곤 집을 나왔다. 바람이 살랑살랑 머리칼을 건드렸다. 바람결에 시원 초록빛 잎을 흔들거리는 나무들이 파이팅을 하라고 네게 응원을 보내는 듯했다. 발걸음은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무거웠지만 내가 백수가 되어 이렇게 집에서 놀게 된 건 내 탓이거니 하고 입을 앙 다물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시골에서 열리는 취업 박람회는 박람회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많이 협소했다. 천막으로 칸을 나눈 곳에선 20여 개의 중소기업이 일렬로 줄지어 있었다. 면접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업 당 두 명씩 칸칸이 앉아 있었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 나는 입구에서 잠시 발을 주춤거렸다. 입구엔 주변 학교 고등학생들이 잔뜩 있었고, 안쪽엔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어딜 둘러봐도  20대 후반인 내게 맞는 직장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어떤 직업군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용기를 내서 입구에 발을 들였다.

 

초록색 조끼를 입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주머니가 얼굴을 갸우뚱- 하시더니 "학생?" 이렇게 물음표를 붙이면서 물으셨다. 나는 작게 아뇨-,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아! 기업에서 나온 분이시구나!"라고 말하시며 손에 들고 있던 팸플릿을 내게 건네주려다가 도로 가져가셨다. 나는 또 작게 아닌데요-,했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멋쩍은 듯 팸플릿을 아무 말 없이 건넸다.

 

입장하자마자 왠지 모르게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입장하는 그곳에서 엉거주춤 제대로 된 한발 자국을 떼지 못한 내가 손에 들게 된 팸플릿을 그 자리에서 열었다. 파란 팸플릿엔 참여한 기업 이름, 기업별 원하는 사람, 급여, 담당업무가 적혀있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20여 개의 기업들에 적혀있는 모든 업무를 눈으로 쭉- 훑고는 뒤를 돌아 그곳을 나왔다.

 

전 직장도 전전 직장도 서울에서 온라인 마케팅 일을 했던 내가 회계, 경리, 생산직 일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박람회장을 나온 것이다. 시골 취업박람회에서 큰 기대를 한건 아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안 간다고 할걸.

서울에서 내려오지 말걸.

 

등등 후회가 가을바람처럼 불어왔다. 너무 일찍 집에 들어가면 한소리를 들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집엘 들어갔다. 들고 간 이력서 그대로 가져온 나를 보고는 엄만 내게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했다. 절박하지 않은 건 사실인데.. 절박하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절박할수록 더더욱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거리는데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또 깨닫는다.

불안하다, 불안타.

그렇지만 그 불안함 때문에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은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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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그래도 나 오늘은 엄마가 낳아준 보람이 있네.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8.31. 토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오늘은 우리 귀엽고  예쁘기만 한 슬이가 태어난 날이다. (3.5kg) (아침 7시 56분, 음력 7월 22일)

어제저녁, 무거운 배를 내밀고 여느 때와 다른 힘든 저녁을 준비하고 힘들게 저녁을 먹으면서 여느 때와 다름을 아빠와 얘기했고 급기야는 이슬이 비쳐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작은 이모네 집으로 택시를 타고 떠났다.

 

도착하니 10시가 넘어있었고 이모는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서 자고 오겠다고 했단다.

급히 이모께 전화하여 이모는 달려왔고 엄마는 아프고 힘든 진통을 시작했던 거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4.5분 간격으로 진통이 느껴졌고 이모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새벽 병원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밤중에 입원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 12시가 넘어 병원 문을 두드렸다.

간호원과 의사 선생님이 진찰을 했고 엄마는 꼬박 밤을 새우며 진통을 했고 아빠 또한 옆에서 힘겨워하는 엄마를 보면서 초조해했지만 아침 7시. 수술에 들어갔다.

 

엄마 아빠는 정상적으로 슬이를 낳고 싶었지만 골반이 벌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수술로 너를 낳은 것이다.

엄마가 마취에서 깨어난 것은 누군가가 입원실로 옮겨와서 엄마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아빠와 이모 말소리가 들리면서 엄마는 서서히 깨어났단다.

한참 후 아빠는 너를 안아 데리고 왔단다.

슬이 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엄마는 조금 서운 했단다.

이왕이면 시공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원하시던 아들을 낳고 싶었거든.

하지만 엄마는 건강하게 태어난 너에게 감사했고 열심히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슬이가 누구를 닮았을까?

엄마는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지만 알 수가 없더구나.

남들이 아빠를 닮았다니 그런가 보다 생각할 뿐이다.

슬아!

예쁘고 착하고 건강하게 커야 한다.

엄마 아빠의 가장 큰 바람이다.

엄마 아빠는 슬이를 사랑해!

 

 

2016. 8.31

 

태어난 지 올해로 벌써 9132일째 되는 날이다. 구천일이 넘게 살아왔는데 태어났을 때와 별반 다름없는 아무것도 없는 몸이 돼버린 날이었다.

두 번째는 열심히 다녀보자 으쌰 으쌰 했던 직장도 잃어버리고, 돼지 간 마냥 퍽퍽한 삶에 적응하느라 내 꿈은 어디로 갔는지 찾기도 전에 오늘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내 룸메이트는 매력 있고 착한 친구다. 창원에서 올라와 승무원 준비를 하다가 서울 근처에 취직이 돼서 일을 다녔다. 서울에 연고라곤 몇 없었고, 나도 서울살이 힘듦을 알기에 잠시 우리 집에 머물라고 했다.

크고 시원한 눈매, 긴 다리에 어여쁜 친구. 엄마와 떨어져 생활하기 시작한 힘든 서울 살이에 유일하게 내게 힘이 되어준 친구였다. 그렇게 취직이 된 친구가 백수가 된 내게 오늘 생일이라고 봉투를 내밀었다.

 

"생일 선물이야."

"웬 선물?"

 

백수가 되었다는 자괴감과 앞으로 살아갈 막막함에 생일이라는 큰 일 년의 이벤트 날이었음에도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생일선물을 누군가에게 주기에도 또한 받기에도 많이 커버린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생일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내 일을 하기에도 바빴고,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것도 민망했기 때문이다.

 

친구 회사 로고가 적혀있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에는 오만 원짜리 지폐와 A4용지로 만든 편지가 이었다.

오랜만에 받아 본 편지였다. 편지에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분명 더 좋은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자신이 백수였을 때 내가 힘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이 내게 힘이 되겠다고. 그러니 우리 잘살아보자고. 적혀있었다.

 

예쁜 얼굴과 정반대인 편지지 안의 초등학생 글씨를 보고 난 피식- 웃음이 일었다.

그제야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생일날 마사지받을래?"

"무슨 백수가 마사지야. 돈 아깝게 그거 돈으로 줘."

 

생일날 마사지를 받게 해주겠다는 룸메이트에게 무슨 마사지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러 버럭 했다.

백수 주제에 마사지가 가당키나 해? 당장에 생활비도 빠듯해서 걱정인데, 했다.

 

황금색 오만원 지폐를 보니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룸메는 봉투를 휙- 주고는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나는 친구가 준 오만원과 편지를 고이 지갑에 넣었다. 생일 선물을 돈으로 달라고 했던 내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영화도 보고 저녁까지 풀코스로 선물을 받은 나는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왔다.

아직도 머릿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공존하지만 회사를 관둔 오늘, 생일인 오늘, 부자처럼 큰 선물을 받은 오늘이 참 특별한 날이 되었다. 태어난 날, 새롭게 태어난 날. 난 또 다른 시작 점에 서있다.

 

엄마, 좋은 친구 덕에 그래도 나 오늘은 엄마가 낳아준 보람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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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엄마의 보리

 

 

 

 

    엄마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물론 나 또한 내가 그녀의 운명 또는 운의 방향을 정확히 짚어 주었고, 그래서 그것을 꼭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 슬며시 카드를 꺼내 놓은 이유는 오랜만에 본 그녀의 얼굴에서 슬픈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된 아들이 엄마에게 대놓고 고민이 있는지 물어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니, 꼭 서른이 아니더라도 그런 말은 정말 하기 힘들다. 자식은, 특히 아들은 그렇다. 엄마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둘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편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영 모른 체 할 수는 없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상자 안에서 카드를 꺼냈던 것이다. 카드만큼 누군가가 내게 고민을 털어 놓기를 껄끄럽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근데 아들, 이거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사실 큰 수확은 없었다. 아들에게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듯, 엄마에게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나 보다. 엄마는 카드점을 보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멀뚱멀뚱, 자신의 손으로 뽑은 카드에 그려진 그림만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의미 풀이가 모두 끝난 후에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그림이 다 똑같아 보여."였다.
 

  무엇이 잘 안 맞는다는 걸까. 나는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에게 의미를 바꾸어 말한 카드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점괘의 기반을 나타내는 세 번째 카드였다. 엄마는 무지개 속에서 10개의 컵들이 나타나는, Ten of Cups 카드를 뽑았다. 무지개 아래로 펼쳐진 평원에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그들 주변에는 춤추는 어린아이들이 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 카드는 실제로도 평온함과 만족스러움을 뜻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 카드를 역방향으로 뽑았다. 뚫어져라 그림을 살피던 엄마는 카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아마도 카드의 방향이 바뀌면 의미도 바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리라. 만약 그 사실을 알고 카드를 돌렸더라도, 나는 엄마의 행동을 제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엄마가 앉아 있던 자리는 이미 식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온기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엄마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주던 그 무언가가 사라진 게 분명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생활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번에도 그만큼 가져갈 거지?"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커다란 원통 용기 안에 보리알을 쏟아 부으며. 나는 슬쩍 카드를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재미있니?"
 

  그녀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처음이어서,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을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채 그만 두고 타로 점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로도, 엄마는 내게 한결같았다. 나를 죽일 놈 취급하지도, 철이 없다고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그 전까지는 별다른 사고 없이 자란 괜찮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온전히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를 이해한 그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자식이 자기 자신에 대한 부모의 애정도를 확인하는 방법은 딱 하나, ‘간섭’이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간섭에 대해서는 치를 떨지만, 막상 간섭의 대상이 되지 않는 날이 오면 가슴에 드리우는 서운함의 그을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다.


  "난 줄곧 그런 생각을 했어. 혹시 네가 어렸을 때 본 그 무당 때문이 아닌지…."
  "엄마, 내가 하는 일은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그래, 말하자면 상담 같은 거예요. 나는 지쳐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는 것뿐이에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방에 놓을 에어컨을 장만하기 위해 처음 타로카드 이벤트를 기획했을 때,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학 축제 이틀 전 대자보를 붙이던 내게 말을 건넨 H를 축제 첫 날 좌판에서 고객으로 다시 만났을 때도, 나는 그저 사흘 동안 그 돈을 벌 수 있을 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마 세 달 뒤 이루어진 H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그녀가 내게 타로카드 동호회 가입을 권유했을 때에도, 그 다음 해 본격적으로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해보자고 결심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나를 찾는 고객이 처음 다섯 명에서 스무 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어느 날,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약한 뿌리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뿌리는 일부러 물이나 거름을 주지 않아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나는 점점 더 깊어지는 뿌리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신념이나 좌우명이 적힐 자리를 빈 칸으로 놓아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가끔 꿈을 꿔. 네가 기절하는 모습을 보면,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온 몸에 돋은 소름이 가시질 않아."


  나는 작은 내 몸에 소금이 마구 뿌려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커다란 대접에 가득 담긴 소금은 여간해서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적이 흐른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춘 것 같다. 그들의 얼굴이 점점 잿빛으로 변해간다. 반면에 나는…. 목울대가 뜨겁고 아랫도리가 묵직해진다. 손끝으로 턱을 쓸어보니 까끌까끌한 것이 만져진다. 이제 무당은 나보다 머리 하나 쯤은 작다. 하지만 새하얀 얼굴은 여전히 무서워서, 나는 그녀가 던지는 소금을 맞고 서 있다.


  "자, 평소보다 조금 넉넉히 넣었어."


  멍하니 보리로 가득 채워진 병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엄마는 정성들여 공수한 보리로 내게 남아 있을 무언가를 깨끗이 씻어주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소금인지, 아니면 악한 기운인지는 알 수 없다.

 

 

 

 

※ 예전에 썼던 <흙과 소금>이라는 제목의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진 '서른들'이 참 많아서, 적어놓고 싶은 글도 참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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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내 행복은 있지...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7.31. 수 비 옴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예슬, 우람  - 슬이의 친구

7월도 마지막이다.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는 슬이에게 견디다 못해 엄마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요즈음엔 엄마가 머리맡에 머리띠를 풀어놓고 잠이 들면 슬이는 일어나서 머리띠를 자기 머리에 꽂아도 보고 올려놓기도 하고 놀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엄마 머리도 잡아당기고 얼굴도 꼬집고 해서 엄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단다.

 

슬이가 머리띠를 가지고 놀다가 슬이 머리에 꽂으면 엄마가

'슬이 정말 예쁘구나' 해주면 좋아서 인지 아니면 쑥스러워서인지 슬인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한다.

 

오늘은 금요예배를 예슬이네 집에서 하는 날이라 슬이를 데리고 갔다. 우람이도 놀러 와서 셋은 같이 놀았다. 슬이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예슬이를 때리려 든다. 우유병, 심지어는 음료수 캔으로도 마구 때리려들어 엄마가 슬이를 혼내 주었단다. 처음엔 예슬이가 자꾸 슬이를 때려 예슬이를 혼내 주었더니 예슬이는 때리지 않더구나. 슬이는 자꾸 때리려 들어 엄마는 걱정이다.

 

집에 오는 길에 슬이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계속 엄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코도 맞대고 깔깔 웃으면서 긴 거리를 즐겁게 웃으면서 왔단다.

 

슬이가 다 큰 것 같아 엄만 무척 행복했다.

2016.06.18 눅눅한 더운 날 제가 쓴 글 입니다.

 

마을버스

여름 치고는 선선하게 느껴지는 구름 한 점 없는 평평한 날씨였다. 주말에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무엇보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엘 내려가기로 했다. 집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 그렇게 고속버스를 1시간 40분 정도를 타고 '증평'에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터미널은 예상외로 늘 북적인다. 시멘트가 벗겨져 비듬처럼 떨어지는 벽에 남아있는 온갖 낙서들. 초록색 등박이가 없는 의자가 줄지어 있고, 안에는 매점 두 개가 양쪽으로 포진되어 있는 곳. 이곳이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골 터미널이다. 그렇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터미널을 지나서 우체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탄다.

 

내가 좋아하는 마을버스는 굉장히 특이하다. 일반 시내버스와 모양은 같으나, 버스를 탈 때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타는 게 특징이다. 그러곤 아무도 돈을 내지 않고 앉아있는다.

 

대학생 때 서울 친구가 우리 집엘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이 마을버스를 같이 탔었다.

"왜 돈을 안내?"

그 친구의 놀란 표정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이 버스는 공짜야."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친구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내 말을 믿었다.

 

이 마을버스는 내릴 때 돈을 낸다. 운전을 해주는 아저씨가 일일이 손님을 기억해 거리마다 요금을 다르게 받는 것도 신기하지만, 다리 아픈 할매들의 큰 짐이 앞문이 아닌 뒷문으로 올라오며 그 짐들을 먼저 탄 사람들이 들어준다. 이 버스는 할머니들이 자리에 다 앉은 뒤에나 출발을 한다.

 

나는 이번에도 벨도 누르지 않고 버스아저씨에게

"저기서 내려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버스는 근처 버스정류장에 선다. 그제야 버스비를 결제하고는,

 

서울버스를 탔을 때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 "감사합니다."를 내리기 직전 버스아저씨에게 크게 말할 때 그때, 이 마을버스가 좋다.

엄마가 있는 집에 다 왔다는 설렘과 함께 무언가 뭉근한 시골 정이 이 버스를 내릴 때 내게 묻어나는 것 같아서.

 

▲우리집 담벼락에 핀 능소화

엄마의 밥 그리고 당면 김치찌개

 

"엄마 또 삼겹살이야?"

삼겹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지만 매번 저녁 삼겹살은 쫌 그렇다.

아침은 패스. 점심은 배달. 저녁은 삼겹살인 우리 집은.

참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식단이 쫌 그렇다.

 

맛있는 집밥이 먹고 싶어 고등학교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요리는 입맛만 까탈스러워지고 엄마를 닮은 손맛 때문인지 일찍 요리사의 꿈을 접었다. 물론 요리를 배운 경험 때문에 요리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서도.

 

유일하게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열광하는 건 엄마의 밥과 당면 김치찌개다.

엄마의 밥은 말 그대로

흰 쌀밥.

반찬은 사와도 밥만은 꼭 금방 한 것을 먹어야 한다는 울 아빠 덕에 엄마는 다른 건 안 해도 밥은 꼭 압력밥솥에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그 흔한 일반 밥솥 하나 없다.

 

 

압력밥솥에 물 맞추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일반 자동 밥솥은 물 넣는 선이 그어져 있어 그대로 넣고 취사만 누르면 되지만 압력밥솥은 일반 밥솥보다 물을 더 적게 넣어야 하고, 중간에 불 조절을 해줘야 하며, 불을 끄고 나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 잘못하면 밑바닥이 타기도 쉽다.

 

아빠는 약간 진밥을 좋아하고 나는 고슬고슬한 밥을 좋아하기에 엄마는 일부러 압력밥솥에 들어가는 쌀을 기울여 놓는다. (한쪽은 높게 한쪽은 낮게) 그러면 높은 쪽 쌀은 고슬고슬해지고 낮은 쪽 쌀은 물이 더 많아 촉촉해진다. 입맛도 다른 아빠와 나에게 맞추기 위해 엄마도 여간 신경을 쓰는 거다.

 

두터운 돼지고기를 달달-볶아서 잘 익은 김치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마지막엔 다른 집에선 잘 넣지 않는 '당면'을 넣는 김치찌개. 팅팅 불어 김치찌개의 깊은 맛이 고대로 배어있는 당면에 식감 좋은 고기와 얼큰한 국물에 치익치익-압력밥솥이 만든 고소한 윤기도는 밥을 먹으면 그냥 게임 끝이다. 밥 한 공기 뚝딱. 그러고 나서 과일이랑 아빠가 손수 만든 막걸리를 한잔 하고 나면

아-! 있는 그 자리가 행복한 삶이란, 이런 거구나 한다.

작가 say: 수정본 입니다 :) 읽었던 분도 다시 읽어주시면... (굽신 굽신) 오늘도 너무... 덥네요... 시원한 회사가 짱인 것 같아요.... 전기료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집에서 에어컨을 트는게 너무 무섭네요.... ㅠㅠ 모두~ 오늘, 있는 자리가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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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나 회사 관둘까?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년 4월 8일 목요일 비 오는 날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 이름 - 이슬
: 선영 - 슬이의 친구

 

아침부터 날씨가 쌀쌀하고 흐리더니 드디어 비가 내린다.

 

엄마는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빤 슬이를 보행기에 짚고 서게 하며 아빠가 천천히 밀면서 한 발 한 발 발 띄는 연습을 시켰단다. 덕분인지 오후에 선영이가 놀러 왔었는데 엄마가 슬이 손을 잡아준 오른발을 냉큼 들었다가 놓는다. 왼쪽 발은 아직 힘든지 띄지를 못하는구나.

 

슬이는 앉아있고 슬이 앞에 과자봉지를 놓아주니 그것을 잡으려고 한 손을 땅에 집고 또 다른 손은 앞으로 내밀며 번갈아 몇 번을 해보았지만 턱없이 손이 닿지 않자 포기를 하고 다른 것을 만지며 논다.

 

너무 힘이 들었는지 아랫도리를 다 벗겨 놓았는데도 머리가 땀에 촉촉이 젖었단다. 오늘 아침 슬인 6시에 일어났다. 엄마가 잠결에 '바스락'소리를 듣고 눈을 뜨니 슬인 머리가 요 밑으로 내려가 있고 파우더 통은 이미 엎질러져 있고, 엄마 머리핀을 잡으려고 두 손을 뻗고 있었다. 슬인 아직 기어 다니지는 못하고, 배로 밀고 뱅뱅 돌면서 이곳저곳을 두루 다닌다.

 

선영인 무엇이 즐거운지 슬이를 보더니 자꾸 '깔깔' 거리며 웃었다. 저녁때 엄마가 슬이에게 초콜릿을 주었다. 슬인 입속에서 오물오물 거리면서 맛있게 먹었다.

 

 

 

2016년 4월 8일 금요일 날씨는 맑은데 아직은 추움

 

엄마, 나 회사 관둘까?

처음엔 계속해서 좋은 직장, 이름 있는 직업, 복지가 좋고, 어디 가서도 떵떵거리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 서울에 혼자 떨어져서 생계만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을 받아가면서 정직원이 될지 안 될지 고민하면서 이 일을 하는 게 맞는지 매일 생각해. 보통 회사 들어가면 인턴부터 시작해서 통과하면 계약직이고 또 언제 계약이 연장될지 조마조마한 상태에서 정규직이 되기를 기다리잖아. 그렇게 정규직이 되면 다행인데, 잘리면 또 다른 일을 구해야 하고, 그 또 다른 일은 또 계약직이고.

 

엄마 그거 알아? 내가 어디서 본 건데 '인턴'이라는 뜻이 '인'간을 '턴'다는 뜻 이래. 웃기지? 요즘 내 친구들은 인턴 하고, 또 다른 인턴을 하고, 또 인턴을 하더라고. 그걸 '메뚜기 인턴'이라고 한데. 요즘 참 재미있는 말들이 많은 것 같아.

 

어제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바다로 돌아간 청년들'이라는 내용이 나오더라고. 25살 청년이 가업을 이어받아서 전복을 양식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 그 25살 친구가 그러더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일보다는 70-80년 기술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고"

 

그 말을 듣는데 나 울컥-했어. 도시에서 지방대 출신인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회사도 마땅하지 않고, 월세에 학자금 대출에 생활비에.... 나도 집에 내려가면 월급을 조금만 받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혼자 나와 사니까 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더라. 나, 이 작은 지하방에서 울면서 고민했어. 집으로 내려갈까? 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내 미래가 암울한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 엄마.

 

계속 돈만 쫒아가다 보니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옮겼어. 경력도 얼마 없고, 나이도 애매하다 보니까 월급이 더 적어졌어. 그래서 돈 좀 아껴보겠다고 요즘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녀.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간신히 엄마가 준 김치랑 김만 싸서 출발하지만 그래도 뭐 일은 재미있어! 다행히도.

 

아직 수습기간이라 월급에 80%밖에 받지 못하는데, 이번 달은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여기는 작은 회사라 수습만 잘 끝나면 바로 정직원이래.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 월급이 170인 사람이 서울에 집을 사려면 137년이 걸린데.... 

 

 

 

 

 

나 어릴 때 걷기 위해서 한 발 한 발 노력했던 것처럼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까? 오늘이 내가 처음 초콜릿을 먹은 날이라고 그랬잖아. 오물오물거리면서 맛있게 초콜릿 먹었다고. 어릴 적 처음 맛본 초콜릿 맛처럼 그런 달달한 앞날이 올까?

 

그래도 나 엄마 딸이니까. 뭐든 열심히 해볼게.

언제나 내편인 엄마! 오늘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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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나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6.12. 금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유림이 혜진이 보람이 - 이슬의 사촌
: 예슬 - 슬이의 친구

지난 월요일에 슬이와 엄만 강원도 외할머니 댁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슬이를 봐주어서 엄만 편하게 긴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단다. 요즘 한참 전국적으로 어린아이를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엄마도 바짝 긴장을 하고 긴 여행에 화장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은근히 걱정도 되었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엄마가 머뭇거리자 그 아주머니는 웃으시면서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해서 웃었단다.

 

슬인 낯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의 품에 안겨 올 때는 옆에 앉은 대학생 오빠의 품과 엄마 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울까지 왔고 또 뒤에 앉은 군인 아저씨들 품에서 있다가 오곤 했었다. 장난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주면 웃고 '짝짝쿵'하고 '곤지곤지'도하고 '잼잼'도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해대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곤 했단다.

 

슬인 얼마 전부터 '짜까짜까'라는 소리를 하루에도 수없이 해대면서 돌아다니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엄마가 생각하기엔 엄마가 슬이에게 시계를 보여주면서 시계 소리도 들려주면서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인다고 알려 준 것을 슬이가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슬인 할머니 댁에서도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짜까'를 해댔다. 그래서 외삼촌과 할머니는 그 소리가 재미있어서 '슬아! 짜까 짜까'하면 슬인 또 곧바로 '짜까'를 해대면서 놀았다.

 

할머니는 '짝짝쿵' '곤지' '잼잼'을 하면서 방긋방긋 웃는 슬이가 너무 사랑스러운지 슬이가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고 표현하셨단다.

 

슬인 할머니네 집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왔다. 마굿간에 메어있는 소와 송아지도 보고, 닭장에 들어있는 벼슬도 크고 뒤 꽁지도 큰 수탉도 보고, 장독대에 놓여있는 각종 장단지들도 보았단다.

 

밤에는 시골 곳곳을 개구리 울음소리가 '개골개골' 들려왔다. 유림이 혜진이 보람이 언니가 슬이를 둘러싸고 서로 만지고 건드리자 슬인 싫다고 짜증을 냈다. 슬이가 좀 컸다는 증거일까?

 

슬인 몇일 전부터 밥상에 손을 짚고 손으로 이것저것 마구 만지려 든다. 만지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면 소리를 마구 지르면서 양 날개를 치고 울어댄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여 엄마 아빠가 저지하려 들면 마구 악을 써댄다. 그것이 크는 과정인가 모르겠다.

 

시골에 갔다가 목요일날 왔다.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이라 예슬이네 집에 갔다가 예슬이 엄마가 슬이 머리를 잘라 주었다. 요즘 한창 유행인 '멕 가이버' 형 머리다. 뒷머리는 길게 기르고 귀를 둥그렇게 파는 모양이다. 머리를 깎고 나니 슬인 머슴 아이 같으다. 머리 깎기 전에 슬이가 졸렵다고 칭얼거려 입에 우유병을 물리고 슬이를 바닥에 앉혀 놓고 보자기를 씌워놓으니 슬인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앙증맞고 귀여워 모두들 웃었단다. 거의 머리 모양이 다 완성 될쯤 슬인 스르르 두 눈을 감고 엄마 무릎에 머리를 묻었다. 머리를 만져주니 잠이 왔든 모양이다.

 

집에 오늘 삼촌이 와 계셨다. 슬이 옷을 사 왔는데 남자 옷이었다. 그 머리에 그 옷을 입혀 놓으니 완전 남자아이였다. 슬아! 너무나 귀엽구나 사랑한다.

 

 

2016.6.22 수요일 제가 쓴 일기 입니다.

 

러브픽션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어. 처음에 불태웠다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남자와 미적지근했다가 서서히 그 남자에게 마음을 여는 여자. 남녀 간의 입장 차이가 느껴졌고, 예전에 봤을 때 지루했던 내용들이 이별 후에는 대사 하나하나가 와 닿더라.

"사랑한다는 말 말고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다른 말해줘""나는 너를 방울방울 해."

나는 공효진이 질투가 났어. 달달하고 방울방울 한 멘트를 듣고 싶었어. 그래서 나도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고,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였던것 같아.

 

그는 그렇게 나에게 사랑한다고, 딸기딸기포도포도해한다고 했어.

그는 그렇게 나에게 그만하자고, 헤어지자고 했어.

 

 

그게 끝이었어.

시차가 우리를 가로막았고, 살아감의 벅참이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했어. 내가 잘하겠다고, 내가 미안하다고, 우리 잘 견뎌보면 안 되겠냐고 묻고 또 물으면서 매달렸어. 나 자존심 다 던져버리고. 그는 헤어졌고, 나는 헤어지지 못했어. 동시에 헤어진다는 게 가능한 걸까? 아니,  그런 헤어짐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진심이었다면 동시에 헤어지는 게 불가능한 것 같아. 그리워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더 이상 그 생각에 아파하지 않을 때가 헤어짐이 온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그 이별의 치유 과정 앞에 있는 것 같아.

 

술을 마셨어. 많이 마신 것은 아니었는데, 금세 취해버렸고 잔뜩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며 집에 왔어. 집에 도착하니 눈물이 나왔어.

끝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속이 너무 안 좋았고, 계속해서 먹은 것들을 게워냈어. 그를 머릿속에서 비워내는 것처럼. 속이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는데도 잠이 오더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속이 아파도 잠이 오는 것처럼, 헤어짐이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아도 그냥 그렇게 살아지지 않을까. 아프고 힘들었었던 지난날의 사랑이 금세 미화돼서 빛바래 좋았던 기억으로 내게 남겨진 것처럼, 지금의 이별도 언젠가 "그때 그랬었지." 하며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다들 날 사랑하기만 하는 건 아닌가 봐.

 

다 같이 집에서 아빠가 만든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예전 이야기를 했던 날.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만났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엄마가 대답했지.

 

"아빠 회사 옆에 있는 회사를 엄마가 다녔는데, 아빠가 나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만나 달라고 졸랐지."

 

그때 아빠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암시롱도 아닌 척 과일을 먹었는데 엄마가 아빠를 보고 "맞지?"라고 물었을 때 나 되게 엄마가 부러웠다? 사실 이번에는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환경이, 시간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로 헤어진 거니까. 그와 나는 아닌 거겠지.

 

엄마가 아직 만나고 있냐고 물었을 때 "아니, 헤어졌어."라고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사실 괜찮지가 않아.

어릴 때의 나는 누구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투성이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게 날 더 힘들게 해.

 

길가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어느 그 순간순간에 이별이 내 삶 속에 끼어들어 나를 괴롭혀. 하루는 온전히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또 다른 하루는 하루 종일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 이별에 관한 글귀나 노래들이 전부 내 이야기 같고, 밤에 중간중간 일어나서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잠들어. 문자도 sns도 다 차단했다가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풀었다가를 반복해.

 

시간이 지나면 나 괜찮아 질까? 얼마나 지나야 괜찮아지는 걸까. 하루하루 그냥 버티면서 지내는 중이야. 하루에도 감정이 수십 번 바뀌어. 꼭 다중인격을 가진 사람처럼. 화가 나서 계속 욕을 하다가 우울해서 울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헤헤-웃기도 하다가 멍하니 정신을 놓아버리기도 해. 내가 미친 게 아닌지 무서워. 미쳤지 사실, 미쳤지. 끝이라는 데도 붙잡고 있는 내가 미치지 않고 뭐겠어. 다시 한번 붙잡아 볼까 생각하다가도 안될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해.

 

그가 보고 싶어. 그래서 너무 힘들어, 엄마.

마음의 고름이 있다면 이미 곪아 터진 듯해. 이렇게 터져버렸는데 이제 딱지가 앉으려면 내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뭐라도 하고 싶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게.

 

그때의 엄마도 아빠를 만나기 전에 나랑 비슷했겠지? 사소한 거에 상처받고 겁을 내고 아파하고. 저 일기 때의 엄마 나이가 나랑 비슷할 때니까. 엄마도 그랬겠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아프게 헤어지고. 그리곤 아빠라는 사람을 만난 거겠지? 나도 내 짝이 있을까? 오늘은 물음표가 많네. 나 오늘 좀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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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난 돈 먹는 하마야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8.19. 수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선영 - 이슬의 친구

선영이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왔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약간 춥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는 길에 아주머니 들께서 집 앞에 나와계시면서 슬이를 보더니 머리핀 꽂았다고들 하자 슬이가 그 아주머니들을 향해 손을 마구 흔들어 대는 거다. 그러자 아주머니들도 손을 같이 흔들자 슬인 박수를 마구 쳐댔다. 

 

오후에 아빠가 출근을 하셔서 엄마랑 슬이랑 같이 밖을 나섰다. 아빠는 출근을 하시고 슬이와 엄만 은행에 들렀다. 슬이 앞으로 조그마한 적금을 만들었다. 이젠 슬이 통장도 생긴 거다. 

 

슬인 구멍이 있는 나무토막에 볼펜을 집어넣었다 뺐다 하면서 놀고 있다. 아침에는 뚜껑을 가지고 그 구멍에 넣으면서 놀자 아빠가 슬이를 칭찬해 주었단다.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놀다가 부엌 바닥으로 떨어뜨리자 옆에 있는 부채 손잡이를 거꾸로 잡고는 그 열쇠를 잡으려고 엎드려서 계속 시도를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 모습을 보면서 슬이가 머리를 쓴다고 칭찬을 했단다. 

 

노트 속에 있는 엄마 지갑을 꺼내서 종이돈은 구겼다 뺐다 다기 집어넣다 하면서 흐트러 놓는다. 전화카드, 주민등록증까지 꺼내서 이리저리 만져본다. 종이돈이 빳빳하니까 구기기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2016.8.18 목요일 숨 막히게 더움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잔인한 여름을 보내고 있어.

어릴 땐 마냥 내가 잘될 줄 알았어.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화려하게 돈도 많이 벌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면서 살 줄 알았어.

 

우리 집에서 일하시는 분 중에 명문대를 나온 분이 있었잖아. 나는 어릴 때 왜 저렇게 좋은 대학을 나와서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

"그 나이 먹고 아르바이트라니"라며 못된 소리를 속으로 했던 것 같아. 

 

사촌언니가 공무원을 8년 준비하다가 결혼을 했을 땐, 왜 저런

"멍청한 짓을 하나. 이젠 취직하긴 글렀네."라며 비하했었어.

 

사촌오빠가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도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했었어.

 

그런데 삶은 참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아.

꼭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잘 사는 건 줄로 알았던 내가, 사회에 나가면 금방 성공하고 원하는 일로 돈을 많이 벌줄 알았던 내가, 절대 저 사람들처럼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내가,

어느새 삶에 타협점을 찾고 있더라.

 

예전엔 '이게 하고 싶다' '저게 하고 싶다' 분명했었는데  이젠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원하는 곳은 취업이 안되고, 급한 데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싫은 일을 하다가 금방 회사를 관둬버리고.

빚은 많고 하고 싶은 건 모르겠고 내가 무엇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지 의문이야.

 

가끔 엄마에게 내가 묻잖아.

"엄마는 어떻게 50년을 살았어?"라고.

 

엄마는 그러면,

"글쎄 살다 보니 벌써 50년을 살았네"하지.

 

난 늘 생각해. 나도 엄마처럼 남편을 만들고, 아이를 만들고, 집을 가지고, 그냥이 아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뛰고 걷고 이야기하며 차곡차곡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나도 '글쎄 살다 보니 50년을 살았네, 60년을 살았네, 70년을 살았네'할 수 있을 것 같아. 차곡차곡 쌓이는 적금처럼 지금 이 힘든 시기도 인생의 경험처럼 쌓여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나이를 많이 먹고도 당당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8년 동안 미친 듯이 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하고 싶은 일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길.

 

나는 내 미래가 그렇게 되길 희망해.  

 

-엄마의 돈 먹는 하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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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나 예뻐지고 싶어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년 4월 17일 금요일 맑은 날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예슬, 선영 - 슬이의 친구
: 수정, 수연 언니 - 사촌언니 
: 호영이 - 사촌동생

 

바람이 몹시 불었다. 마치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것 같다고 예슬이 엄마와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금요예배가 있는 날이라 선영이 엄마와 예슬이 집으로 갔다. 화요일엔 수정이 언니에 집엘 갔었다. 셋째 작은엄마가 아기를 낳아서 그곳에 갔었단다. 호영이는 작은 아빠를 많이 닮았더구나. 슬이 사촌동생이 태어난 거다.

 

수정이 수연이 언니는 슬이가 예쁘다고 자꾸 만지려고 했단다. 슬인 혼자서 놀고 싶은데 자꾸 언니들 만지니까 싫다고 칭얼거렸단다. 수연이는 슬이가 신기한지 살짝 만져보기도 하고 껴안아도 보고 아무도 몰래 슬이 머리를 '쾅' 때리기도 해서 슬이를 울리곤 했다.

 

그곳에 슬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슬이가 남자냐고 물었단다. 얼굴이 넙적하고 짧은 머리인 네가 남자로 보였는가 보다.

 

수요일엔 할머니가 오셨단다. 삼촌 방을 구해주러 오신 거다. 할머니와 함께 방을 얻으러 버스를 타고 가는데 슬인 뒷자리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와 같이 '까르르-'하며 웃는 바람에 모든 사람들이 다 슬이를 쳐다보면서 천진스러운 네 모습에 모두들 웃었단다.

 

2016년 4월 14일 목요일

 

왜 난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얼굴이 넓적한 건 여전할 걸까? 그래도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서 머리는 열심히 기르는 중이야.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전에 내가 하던 일이 '인사' 쪽이었잖아. 근데 면접을 진행하시던 면접관님이 직원 면접을 보시더니 "쟤는 너무 뚱뚱해서 맞는 옷이 없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그 말에 요즘은 취업하려면 외모도 가꿔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조건의 사람이면 이왕 이쁜 사람이 좋은 것 같아. 그래서 요즘은 취업 성형도 많이들 하잖아.

 

언제였더라. 동상이몽이라고 부모와 자녀의 입장을 알아보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에서 예뻐지고 싶어 하는 고등학생이 나왔어. 이미 수차례 성형수술을 한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할 수만 있다면 여러 군데 성형하고 싶다'고 말했어. 성형 비용을 마련하려고 따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 요즘 고등학생, 중학생 들도 반 학생 30명 중에서 적어도 2명 이상은 성형수술을 했다네. "세상은 외모지상주의고, 나는 거기에 맞춰 나갈 뿐이에요."라고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어. 나도 모르게 공감이 되더라고.

 

텔레비전 속에도 예쁘고, 피부도 좋고, 몸매도 좋은 연예인들이 나오면 나는 자주 그들과 나를 비교를 해. 나는 왜 이렇게 얼굴이 크지? 나는 왜 이렇게 몸매가 안 좋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자꾸 성형을 하고 싶은 거 있지.

 

사실 저번 주에 나 보톡스 맞았다? 아는 언니랑 같이 병원에 가서 나는 이마에 보톡스 맞고, 그 언니는 v라인 주사를 맞았어. 금요일 저녁에 회사 퇴근 후에 간 거였는데 사람이 30명은 병원에 있더라고.

 

엄마가 그랬지. 자연 모습 그대로도 이쁘다고 자신의 장점을 생각하라고. 근데 요즘 나는 자꾸 자존감이 떨어져.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내면이 아니라 보이는 모습인 것 같아서.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또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몸매가 좋은지.나도 모르게 세상에 기준에 나를 맞춰가는 것 같아.

 

그래도 나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거야.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아. 나의 큰 이, 반 곱슬머리, 갈색 눈, 넓적한 얼굴, 긴 턱을 사랑할 거야. 이것들은 결함이 아니라, 나의 일부이니까.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생겼다면 세상이 얼마나 이상하겠어. 사람들이 모두 자기다워짐으로써 세상이 더 흥미로워지고 생생해졌으면 좋겠어. 나 매력 있는 여자가 될래. 나도 엄마처럼 당당하게 살아갈게.

예쁘게 낳아줘서 고마워 엄마.

 

-엄마의 고슴도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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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난 잘생긴 남자가 좋아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7.8. 수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현준 - 이슬의 사촌
: 선영  - 이슬의 친구

 

지난 6日에 현준이 동생이 태어났단다. 여동생이다. 그래서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작은 외숙모께서 오셨고 슬이와 엄만 어제 병원에 들러 현준이네 집엘 갔었다. 이모 병실에 있는 컵에 담긴 물을 손으로 잡고 장난을 치려고 하기에 못하게 했더니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본 이모는 '슬이 성질이 보통이 아니네' 하셨단다. 슬이가 자꾸 떼를 쓰고 대들 듯이 마구 소리를 질러 엄만 가끔 민망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곤 한단다.

 

현준이 오빠네 집에 있는 조그만 자동차를 슬이 앞에 놓으면 발로 걷어 차곤 했다. 며칠 전부터 슬인 대변을 어른들처럼 되게 보았다. 전에는 묽은 변이었는데.. 슬이가 밥을 먹어서 인가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오빠들과 언니를 만났다. 슬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오빠들이 잡아주었다. 언니가 손을 내밀자 슬인 본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언니는 '얘가 분명 여자일 거라고 하면서 남자만 좋아한다고 끼가 다분하네' 해서 모두들 웃었단다. 

 

빽빽이 들어찬 지하철 안에 땀을 흘리면서도 슬인 칭얼거리지 않고 언니 오빠들과 놀면서 집엘 왔다. 그런 슬이가 무척 대견스러웠다. 슬이가 정말 착하다 싶어 엄만 많이 많이 칭찬해 주었단다.

 

오늘은 할머니와 외숙모가 집에 오셔 슬이와 놀아 주었다. 오후엔 선영이가 와서 같이 놀았다. 슬이 머리에 (앞부분) 작은 땀띠가 난 것 같아 걱정이다. 어떻게 보면 땀띠 같고 또 어떻게 보면 긁어서 발갛게 된 것 같고 그렇구나. 오늘도 무더운 날이었다. 선풍기를 꺼내놓으니 슬인 신기한지 만지려 든다.

 

 

2016.7.6 수요일 날씨 비올 것 같음. 제가 쓴 일기입니다. 

 

책상 정리를 하다가 내가 중학교 때 만들었던 작은 나만의 책을 발견했어. 그 책에서는 10년 전에 내가 쓴 나의 이상형에 관한 내용이 있었어.

 

 

첫 번째, 고기를 잘 굽고 과일을 잘 깎는 남자입니다. 

 

고기를 잘 굽는 남자는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인맥관계가 넓고 두터운 사람을 뜻합니다. 또한, 고기를 자신이 구우면서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솔선수범하고 생활력이 강한 남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과일을 잘 깎는 남자는 섬세하고, 집안일도 잘 도우며 많이 남을 챙겨주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는 남자입니다.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으려면, 피부관리와 몸매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자기 계발과 자기투자의 시간을 갖고 있는 남자라는 뜻입니다. 또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뜻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어디서든 믿음직스러우며, 맡은 일은 확실하게 끝내고, 똑 부러진 성격을 가진 남자를 뜻합니다. 그리고 피부가 좋으려면 담배를 안 펴야 하고, 담배를 안 피우면 건강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이유를 이렇게 정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책을 많이 읽고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지식이 풍부하고, 소통과 대화가 잘 됩니다. 책을 읽고 책 속의 내용을 실천하면서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고 시도하려는 사람입니다. 또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줄 알고 있는 사람이고, 어느 정도 인격과 성품이 갖춰진 사람을 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배우자 선택 기준을 고기를 잘 굽고, 과일을 잘 깎는 남자. 피부가 좋고 옷을 잘 입는 남자. 책을 많이 읽고 시도하는 남자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10년 전에 내가 쓴 글을 읽으니까 되게 웃기다. 그때 이상형은 성격은 착하고, 얼굴은 잘생겼으면 좋겠고, 나를 엄청 사랑해주면서 돈을 많이 버는 남자가 이상형이었어. 내가 이 이상한 책을 만들고 엄마에게 가서 보여 줬을 때 엄마가

 

"너는? 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착하고 헌신하고 집안일도 잘하고 예쁜 사람이니?"

라고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못했어. 나는 그땐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내가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내가 아빠 때문에 화가 나서 너무 가부장적이라고 엄마한테 화를 내면서 아빠랑 어떻게 20년이 넘도록 같이 살았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아빠는 엄마가 못하는 기계를 고치는 일을 잘해. 그리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고, 또 내 사람은 끝까지 지킬 사람이야."라고 말했잖아.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엄마는 잘생기고 옷 잘 입고 돈 잘 벌고 그런 남자를 찾기보단 내가 싫어하는 걸 안 하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이 좋은 여자가 되라고 나에게 말했지.

 

내가 싫어하는 걸 안 하는 남자. 그리고 나 자신이 먼저 좋은 여자가 되라는 말. 생각해보면 그 두 말이 같은 의미인 것 같아.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해주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이에게 하지 않는 것.

 

생각을 하니까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10년 전에 썼던 내 이상형처럼 나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좋은 여자가 되면.. 그럼.. 좋은 남자가 오겠지?

 

아, 그냥 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 그냥 그 자체로 좋아 죽을 것 같은 사람 어디 없나.

꼭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이 오는 걸까.

 

근데 엄마 그거 알아? 아빠 예전 사진 보니까 엄청 잘생겼어. 심지어 남동생도 아빠를 똑 닮아서 잘생겼다고.

엄마도 외모를 본 것 같은데..?

 

난 엄마를 닮았나 봐.그냥 잘생긴 남자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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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나 혼자 밥 먹기 좋으면서도 싫어.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4.21. 화. 비 오는 날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예슬, 선영  - 슬이의 친구

 

밖에는 비가 내린다. 간간이 보슬비가 내리더니 갑자기 소낙비로 변해 큰 소리를 내며 쏟아지기도 한다. 슬인 아빠 옆에서 잠이 들었다. 슬이가 굉장히 졸려웠던 모양이다. 엄마 등에서 자다가 내려놓으니 뒤척이면서 엎어져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엎어서 재우려 하면 싫다고 하더니 그간 엎어서 기어 다닌 덕분인가?

 

예슬이가 놀러 왔다. 슬이 앨범을 예슬이 엄마가 보고 난 후 앨범 뚜껑을 주니 서로 빼앗고 뺏기지 않으려고 잡아당기곤 했단다. 슬인 슬이가 잡고 있고 예슬이가 뺏으려고 잡아당기니까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보곤 모두들 웃었단다.

 

다른 애들은 물건을 빼앗을 줄도 알고 또 빼앗기면 울지도 않는데 슬인 슬이 손에 있는 것을 조금만 잡아당겨도 금방 울어 대곤 한다. 엄만 가끔 슬이가 너무 여린 것만 같아서 은근히 걱정도 된다. 다른 애들에게 지고 맞고 다니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저러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싶기도 하고...

 

약은 거의다 먹어 가는데 슬인 여전히 콧물을 흘려댄다. 오른쪽 코에선 닦아도 닦아도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나온다. 왼쪽에선 약간의 피가 섞여 나왔다.

 

슬이 입속에 손을 넣어보니 이젠 윗 이도 나올려나보다. 잇몸에 만져지는 것이 느껴졌다. 윗니가 나오면 침을 덜 흘린다고 하니 하루 바삐 윗 이가 나왔으면 싶다.

 

지난번에 선영이네 집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아주 귀엽게 나왔다.

슬아! 사랑한다.

 

 

 

 

2016.04.18 비 오는 날

 

벌써 혼자 생활을 한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혼자 밥 먹는 거야. 정말 초반에 혼자 먹을 때는 매일 김밥이나 떡볶이만 먹었는데 요즘은 혼자 국밥도 잘 먹고 그래. 혼자 밥을 먹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에겐 '혼자 밥 먹기'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 요즘은 '혼밥'이라고 해서 혼자 밥 먹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혼자 밥을 먹으니까.

 

혼자 먹는 건 메뉴 선택도 내 마음대로 해도 되고, 내가 워낙 빨리 먹는 편이잖아. 그래서 같이 먹는 사람을 신경 많이 쓰는 편인데 신경 안 써도 되고,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고 뭐 나름 좋긴 해.

 

레벨 1- 편의점에서 혼자 라면 먹기

레벨 2- 선불 식당, 푸드코트에서 먹고 싶은 걸로 골라서 혼자서 밥 먹기

레벨 3- 분식집이나 김밥집에서 혼자 먹기

레벨 4- 햄버거를 파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먹기

레벨 5- 중국집, 냉면집 같은 곳에서 혼자 먹기

레벨 6- 일식집, 전문 요릿집, 세련된 라멘집 같은 곳에서 혼자 먹기

레벨 7- 피자가게, 스파게티 전문점,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매장에서 혼자 먹기

레벨 8- 찜닭, 고깃집, 전골 요릿집 등에서 혼자 시켜먹기

레벨 9- 술집에서 혼자 마시기

 

이제는 '혼밥 레벨'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1단계부터 9단계까지 이렇게를 혼밥 레벨이라고 한데. 나는 레벨 7단계까지는 해본 것 같아. 8단계를 도전하고 싶지만 고기나 찜닭 같은 것들은 시작이 2인분부터라서 쫌 어렵더라고. 가끔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집에서 구워 먹는데, 냄새도 잘 안 빠지고 혼자 먹다 보니까 영~ 맛이 별로야.

 

그러다 보니까 외롭더라고. 남자친구가 필요한 그런 외로움 말고, 그냥 사람에 대한 외로움? 같이 밥 먹고, 같이 영화 보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픈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나름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안 그런가 봐. 주말에 집에서 누워있다가 생각해보니까 오늘 내가 한마디도 안 한 거 있지? 그렇다고 나가서 누구 만나기는 귀찮고.

 

배우 공효진 씨가 이런 말을 했는데 "저도 낯가리는 사람이거든요. 2,3년 사이에는 더 심해졌고요. 이제는 누군가와 친해 지려 노력하는 게 귀찮아졌고, 그게 너무 에너지 소비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는 새로운 친구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이것저것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싶고, 편한 사람만 같이 있고 싶고, 오히려 혼자 있는 게 더 마음 편할 때가 있어.

 

이제는 쫌 무섭달까? 혼자 밥 먹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여가시간을 즐기는 게 익숙해져 버렸더니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아.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단단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릴 때의 여린 게 남아있나 보다.

 

엄마 나 혼자 밥 먹는 거 좋으면서도 싫어. 난 변태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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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을게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5.13. 수 비 옴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선영  - 슬이의 친구

밖에는 비가 온다. 아빠는 하루 근무를 자청하고 일터로 나가셨다. 어제저녁 늦게 들어오시고 오늘 아침 일찍 나가신 거다.

 

그런데 슬이가 어젯밤에 자꾸 깨어나서 엄마는 물론 아빠도 깊은 잠을 못 주무시고 일터로 나가셨단다. 아침에 일어난 슬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슬아! 슬이가 밤에 깨지 않고 잘 자야지만 아빠가 잠을 푹 주무시고 그 다음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가볍게 출근을 할 수 있는 거다. 슬이가 자꾸 깨어나면 아빠가 주무시지 못하고 찌푸둥한 몸과 기분으로 출근을 하시게 되는 거야 그러면 아빠가 일을 하시는데 힘이 드는 거야. 슬이가 밤에 잠을 잘 자야되는 거다."

 

슬이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슬이에게 이야기했단다.

 

옆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점심을 같이 먹고, 시장에 가서 새우 껍질을 벗기고 새우 살을 주니 슬인 잘 먹었다. 선영이는 낯을 가리고 엄마하고만 놀려고 들고, 아빠께도 잘 가려들지를 않아 선영이 엄마를 힘들게 한다더구나. 슬인 선영이 엄마에게도 잘 가고, 잘 놀고, 잘 먹고 해서 엄만 기쁘다. 슬이가 있어서 인지 선영이도 잘 놀았단다.

 

슬인 이제 혼자서 밥상을 붙잡고 서고 또 혼자서 앉기도 하면서 논다. 한번 하고 나면 저렇듯 쉽게 하는 것을 무섭고 두렵고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면서 실망하고 그러는구나 싶다. 세상 모든 일들이... 슬이 행동을 보면서 엄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밥상을 붙들고 서더니 엄마 어깨에 손을 대고 엄마 등에 와서 얼굴을 묻고 무어라 중얼거린다.

 

슬아!

엄만 슬이를 사랑 한다.

 

 

2016.05.10 화요일 비 오는 날

페이스북에서 서울대 학생과 지방대 학생의 차이점이라는 글을 봤어. 서울대 학생은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 그만큼 노력을 했고, 노력을 하면 결과로 돌아오는 것을 입학을 통해서 깨달았기에 무슨 일을 하던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

 

물론 그 글 밑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있었고, 너무 일반화시킨 내용이라는 비판들도 있었지. 그 글을 통해서 나는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한 번이라도 이뤄서 성취감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정말 열심히 해본 게 있나?정말 힘들게 운동을 해보거나, 미친 듯이 한 가지에 몰두해서 끝을 본적이 있나?끝내고 나서 뿌듯함을 느껴본 적이 있나?" 아 드디어 해냈다" 성취감을 알게 된 적이 있나?

 

그런 감정은 해본 사람만 이 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어떤 것을 끝까지 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해보니까 사소한 것들은 있긴 하지만 확실하게 성공!이라고 내세울만한 것들이 없는 거야. 어렸을 때의 큰 꿈들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의 나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캄캄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더라. 어느샌가 내 미래의 야망과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더라구.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고, 과거를 회상하는 횟수가 많아질 수록 어른이 된 거래. 난 어느새 어른이 되었나 봐. 하루하루의 현실에 안주하고 매일을 버티는 어른이 되었어. 어릴 땐 요리, 꽃꽂이, 여행, 서예 하루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던 내가 이제는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 조용히 넘기기를 기도하는 어른이 되었어.

 

그런 어른이 되기 싫어. 그래서 뭐든 도전해 보려고. 미친 사람처럼 몰두하고 끝까지 해보려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계속해보려고.

 

엄마 말대로 세상 모든 일들이 한번 하고 나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거니까. 무섭고 두렵다고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면서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내가 될게.

 

단 한 번이라도 정말 열심히해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미친 듯이 몰두해서, 성취감을 느낄 수있도록 끈기가 있는 내가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