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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아직은,

그녀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남자는 잠든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창백한 새벽빛이 여자의 얼굴을 더욱 하얗게 만들어, 기력이 쇠한 환자처럼 보였다. 입가에 생긴 주름은 언제부터였을까.

지난 밤 저녁 식사를 하고, 매번 그러던 대로, 자주 들르던 모텔을 찾았다. 방에 들어오고 얼마 안 있어 침대 맡에 앉은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남자의 움직임을 쫓으며 노려보았다.

“나를 무시하는 거니?”

등 뒤에서 들리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뒤를 돌아봤다.

“뭐라고?”

“아니, 어떻게 내가 경쟁 PT에서 떨어졌다는데, 위로 한 마디 안 해줄 수가 있어? 내가 그 PT 때문에 한 달을 꼬박 고생한 걸 잘 알면서.”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뭘 놓친 거지? 식사하면서 경쟁 PT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함께 안타까워한 것 같은데. 뭘 더 했어야 했나?

“미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마음과는 다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여자가 화가 나서 내뱉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여자의 이야기 속 다양한 화제가 다 남자와 상관있는 것 같진 않았다. 한참동안 말을 하던 여자는 그 사이에 스스로 화가 누그러져, 평소의 나긋한 어조로 “당신이 나를 존중했으면 해.”라고 했다. 남자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여자를 걱정하는 마음은 저녁 식사를 할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연인들의 익숙한 행동 패턴. 우리는 이렇게 별 거 아닌 일로 날 세우고 화해하고 잠드는 건가. 언제부터? 개별성을 가졌던 우리가 언제부터 이름이 필요 없는 흔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된 것일까.

오년 전 처음 만난 여자는 생명력 그 자체였다. 살아갈 날을 많이 가진 사람이 온 몸으로 여과 없이 품어내는 싱그러운 생기, 남자는 여자의 생기에 끌렸다. 자신의 기억으로 오년 전의 남자 또한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때 여자는 남자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남자는 그게 자신의 매력을 한층 높이는 것 같이 들리곤 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알려줄 것들이 더 많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사랑 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여자는 남자를 선생님으로 부르지 않았고, 사랑 받기보다는 존중 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좋은 아내가 되었을 테지만, 아이를 원치 않는 나와 결국 헤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어둡고 나약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했을 수도, 지금도 이렇게 나에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것처럼.

그녀의 생기에 반했던 나는? 그녀 가까이에서, 지금보다 더 강렬하게 그녀의 생기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겠지. 지난 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어디 있는 걸까, 한숨을 내쉬면서. 지금 우리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거 아닐까?

먼 데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사이렌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다시 멀어진다. 여자가 뒤척이다가 남자에게 다가와 남자를 품에 안는다. 여자의 체온이 남자에게 전해져온다. 햇빛이 좀 더 밝아져 여자를 환하게 비춘다. 그래,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