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짧은 글 모음집:奇

골목길을 돌면

 

골목길을 돌면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아주 가끔 강변도로를 지날 때면 불쑥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저 어두운 강물 건너에는 내가 아는 그런 세상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세상일까?

 

‘어차피 답은 빤한데 말이야.’

 

강 건너 저편이나 지금 내가 있는 이편이나 뻔하고 빤한 세상.

별다를 것도 없고 특이할 것도 없는 세상.

 

‘그래도 아주 가끔은 묘하단 말이지.’

 

멍~하니 저 검은 강물 너머에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 건너에는 어쩌면 내가 모르는 그런 세상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분이 들고는 했다. 흔히 말하는 이질적인 느낌. 마치 어린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 때 느끼는 그런 막연한 호기심과 설레임과 두려움.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살아가는 게 바빠서 가슴 한구석에 가라앉아 잊어버린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쓸데없는 망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릴 때가 되었다. 내가 내린 택시에는 또 다른 손님이 자리를 잡았다.

난 횡단보도에 서서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택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아...춥다.”

 

중얼거리는 내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 머리에는 아까의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골목길, 다리, 건너편...그런 곳이 이계와 이어져있다는 건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지. 실제로 있을 리가 없는...’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피식- 거렸다.

그런 소설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글쎄? 이런 지겨운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에휴. 뭔 한심한 생각인지.’

 

그렇게 정신을 차린 난 내가 걷고 있는 골목길이 내가 알던 그 길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아보았다.

 

“어? 잘못 왔나?”

 

다시 되돌아가려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건 잘못 온 정도가 아니다.

내가 걸어 온 방향도 내가 걸어가던 방향도 옆으로 새는 골목 없이 쭉 뻗어 있는데 끝이 안 보인다.

 

“뭐야?”

 

더 이상한 건 길 양옆의 집들에 불이 다 꺼져 있는데도 길은 훤하게 보인다는 거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을 알게 되자 겁이 났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앞을 봤다.

 

‘어쩌면 저 끝까지 가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 또각또각...

 

인적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골목길에 내 구두소리만 홀로 울리기 시작했다.

 

‘제발!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골목길이 끝나기를 바라면 대체 얼마나 걸었을까?

발뒤꿈치는 얼얼 해오고 볼이 얼얼한 걸 봐서는 눈물도 나는 것 같다.

 

‘엄마...’

 

이건 본능인가보다. 나도 모르게 엄마 생각이 난다. 그때 저 앞에 누군가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저기요. 잠시 만요.”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쫓아가 불렀다. 뒤돌아보는 남자 앞에 멈춰선 나는 가빠지는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에요? 제가 길을 잘못 든 거 같은데...”

 

나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리더니 다시 걸어갔다.

난 그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다 다시 쫓아가 붙잡았다.

 

“저기요. 여기가 어디냐니까요? 예?”

 

“...”

 

올려다보는 나와 한참 눈싸움을 하던 남자는 곧 손을 들어 내 등 뒤를 가리켰다.

 

“앞으로 10보, 좌로 7보, 우로 5보, 뒤로 돌아 3보, 다시 우로 8보, 뒤로 2보, 좌로 4보.”

 

“예?”

 

남자의 대답에 여긴 샛길 하나 없는 골목인데 대체 무슨 소리냐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를 돌아본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맙소사! 왜 지나오면서 전혀 보지 못한 거지?’

 

“이게 무슨?!”

 

여태껏 걸어오면서 전혀 보지 못했는데.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는 수많은 골목에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놀란 얼굴로 멍하니 서있자 남자는 다시 한 번 길을 알려주었다.

 

“앞으로 10보, 좌로 7보, 우로 5보, 뒤로 돌아 3보, 다시 우로 8보, 뒤로 2보, 좌로 4보. 그러면 다시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골목길을 돌아 걸을 때는 함부로 한 눈 팔지 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나를 두고 남자는 다시 쭉 뻗은 골목길을 말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난 내 기억력이 그렇게 좋았나 싶을 만큼 남자가 알려준 대로 정확히 세면서 걸었다. 그 남자는 마치 내 보폭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좌, 우, 앞, 뒤의 방향에는 해당되는 골목길이 딱 맞게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너무나도 낯익은 골목으로 돌아오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눈물이 나왔다.

덕분에 난 코를 훌쩍이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누굴까?’

 

그날 밤 잠자리에 든 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남자를 궁금해 하다 잠이 들었고 결국 꿈까지 꾸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무슨 내용의 꿈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난 그 이후로 골목길과 다리를 지날 때는 절대 그런 망상 따위를 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