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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소녀와 고양이와 나비

소녀와 고양이와 나비

 

5월의 늦은 오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뽀얀 먼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방금 막 옷장정리까지 끝낸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상자를 뜯어서 그 안에 든 물건들을 꺼냈다. 누렇게 바래고 각진 부분이 헤진 일기장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졸업 앨범들이 상자 밖으로 나왔다.

 

그대로 정리함에 담아 옷장에 넣어둘까 하다가 유난히 볼품없고 닳아버린 일기장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노트였지만 어린 시절의 가장 힘들었던 때를 담아둔 타임캡슐이며, 주저앉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그래도 일어서기 위해 다시 열어보고는 했던 상처투성이 기억 보관함이었고, 어느새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과거의 기록이었다.

 

그래서일까? 잊고 지내다 오랜만에 보게 된 모호한 반가움에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며 망설이다가 일기장을 펼쳤다. 처음부터 한장 한장 넘기던 일기장의 삐뚤빼뚤하던 글씨들은 점차 또박또박해졌고 유쾌하고 즐겁던 내용들은 우울하고 분한 내용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서 낯설면서도 낯익은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때의 난 말수도 적었고 내성적이다 못해 겁도 많았었다. 미움 받기 싫었고 그래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싫다는 소리도 하지 못했다. 잘 웃는 만큼 잘 울기도 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약하고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친구들의 그저 가벼운 장난과 농담으로 시작된 행동들은 점차 심해졌고 단순히 장난이나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친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그걸 알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려서 학년이 바뀌고 졸업을 하고 다시 입학을 해도 항상 반복되어 언제나 날 외롭고 괴롭게 만들었다.

 

「밉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왜냐고 물어봤더니 이유 같은 거 없단다. 그냥 보기 싫단다.」

 

「왜 나만 힘들어야해? 왜?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은데! 왜 나만?!」

 

「그냥 선생님한테 말할까? 아님 전학 갈까? 그냥 뛰어내려버릴까?」

 

물음표 옆에 종이가 살짝 울어있었다. 방울방울...얼룩진 종이. 번져있는 잉크.

 

말할 용기가 없어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대들 용기도 없어서. 그저 혼자 앓으면서 삭혔을 뿐이었다. 그땐 그렇게 참기만 했다. 그렇게 잘 웃고 잘 울던 난 변해갔다. 겉으로는 잔뜩 움츠린 채 마음속에는 미움을 채우며 가시들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그 가시들이 나에게도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렇게 상처 위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나도 강해질 거야! 그 고양이처럼! 더 이상 당하지만은 않을 거야!」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이 꾹꾹 힘주어 눌러쓴 글씨.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던 날이었다.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또 다시 반복될 외로움과 괴로움이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인 채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게 집근처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어느 집의 담장 위에 고양이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었다.

 

‘싸우는 건가?’

 

가만히 보니 한 마리는 짙은 잿빛 털에 덩치도 좋고 풍채도 좋은 성묘였고 한 마리는 노란 줄무늬 곳곳에 자잘한 상처들이 나있는 아직 어린 고양이였다. 자세를 바짝 낮춘 채 송곳니를 드러내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는 건 어린 고양이 쪽이었다. 오히려 아직 어린 녀석의 독기에 잿빛 고양이가 당황한 듯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춤거리고 있었다. 두 고양이 사이에 있는 건 작은 소시지 조각 하나.

 

‘누가 준건가? 아님 흘렸나?’

 

“하갹!!!”

 

다시 들려오는 살벌한 울음소리. 결국 잿빛 고양이가 뒤로 물러났다. 어린 고양이는 잽싸게 소시지를 입에 물고 담장에서 내려와 날 한번 흘겨보더니 당당한 걸음으로 저만치 사라져갔다. 그때였다. 그렇게 자신의 몫을 챙긴 녀석의 너무나도 당당한 그 뒷모습에 내안에 숨겨두었던 가시들이 날 찌르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해 그 날카로움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난 나를 지키기 위해 가시로 무장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까칠하고 예민하며 나밖에 모르고 거절과 거부만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마치 독불장군처럼 말이다.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의 위에 서기 위해서. 독종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게 강해지는 거라고 믿었다.

더 이상 날 놀리거나 괴롭히는 아이들이 없었기에 그게 정답이라고 믿었다.

그 가시로 인해 나에게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것이 옳은 거라고 말이다.

 

‘바보 같았지. 외로움에 외로움이 더해진 줄도 모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다시 한장 한장 일기장을 넘길 때 작은 발소리가 들리더니 부드럽고 따뜻한 털뭉치 두 마리가 다가왔다. 쓴웃음을 짓고 있던 난 어느새 기분 좋은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때마침 펼쳐진 페이지.

 

「어쩌면 난. 여전히 가시만 잔득 세운 채 내가 강해진 거라고 착각하는 어린아이인 것은 아닐까?」

 

3학년이 되던 첫날. 이제 고 3이 되었으니 더 독하게 맘먹고 공부만 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하교를 하던 길이었다. 갑자기 다급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을 텐데. 그땐 왜인지 모르게 그 울음소리에 이끌리듯이 발길을 옮겼다. 어느새 도착한 곳은 정확히 2년 전. 잿빛 털의 고양이와 노란 줄무늬의 어린 고양이가 소시지 조각 하나를 두고 싸우던 그 골목이었다.

 

‘어? 여기는...?!’

 

우연인지. 우연을 가장한 또 다른 무엇인지. 무언지 모를 묘한 기분에 난 발걸음을 멈추고 울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두 고양이가 마주보고 다투었던 그 담장 아래에서 울고 있는 건 노란 줄무늬 고양이였다. 분명 그때 당당하게 소시지를 물고 걸어갔던 그 어린 고양이였다. 다만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번듯한 성묘가 되어 마치 도와달라는 듯이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혹여나 놀라서 도망이라도 갈까 싶어 조심스레 다가가던 나는 노란 고양이 등 뒤에 축 늘어져 있는 잿빛 털의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힘없이 누워 있는 그 모습이 걱정되어 다가가니 노란 녀석이 나를 경계하면서도 마치 봐달라는 듯이 옆으로 살짝 비켜주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애옹. 아옹’ 거리는데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애처롭던지. 난 나도 모르게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던 잿빛 고양이를 안아들고 동물병원으로 달렸다. 그런 내 옆을 노란 녀석이 놓칠세라 따라붙으며 쫓아왔고 그 울음소리에 감염이라도 된 듯이 내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렸다.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조금만 버텨줘! 제발!’

 

동네에 있는 동물병원까지는 달리기로 5~10분정도 걸린다. 그동안 내 품안에는 가쁜 숨을 내쉬며 눈도 뜨지 못하는 작은 생명체가 안겨있었다. 평소 운동하고 담 쌓고 지낸 내 체력을 원망하며 턱까지 숨이 차오르게 달린 나는 동물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로 돌진해 간호사 언니 품에 잿빛 고양이를 안겨주었다. 나에게서 고양이를 건네받은 간호사 언니는 깜짝 놀라며 다급히 의사선생님을 부르면서 병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친 고양이를 안고 오느라 엉망이 된 교복에 눈물범벅인 내 얼굴을 보며 또 다른 간호사 언니가 수건과 물을 건네며 달래주었다. 잠시 후 간신히 진정한 나는 병원 문 밖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의 끝에서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발견한 간호사 언니가 병원 문을 열었다. 그 틈으로 노란 녀석이 뛰어 들어오더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병원 안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저 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모습에 난 새삼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비벼 눈물을 닦아내었다. 간호사 언니는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앉으며 두 마리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인지를 물었다. 난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으며 두 녀석을 처음 본 날부터 방금 전의 일까지 천천히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간호사 언니는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노란 녀석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어쩌면 다친 고양이가 아직 어렸던 저 노란 고양이를 보살펴준 건지도 모르겠네.”

 

“보살펴준 거라고요?”

 

의아한 듯이 되묻는 내 말에 간호사 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끔 길냥이들 중에서 다 큰 성묘가 아직 어린 길냥이들을 돌봐주기도 하거든. 그래서 은혜를 갚으려고 그렇게 울었던 게 아닐까?”

 

간호사 언니의 말에 난 새삼스레 신기하고도 묘한 기분으로 끙끙거리며 병원 안쪽의 수술실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노란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2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담장 위에서 작은 소시지 하나를 두고 마주 서있던 두 고양이를 말이다.

 

‘그때 일부러 양보해준 거였을까? 자신보다 어리고 약해보여서?’

 

그 순간 난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강해진다는 건 으르렁대고 사나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하고 어리고 더 어리석은 이들을 돌보며 양보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딱딱하고 날카로워서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여유로워서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그런 거라는 걸 말이다.

 

그런 생각에 나는 여전히 착각 속에 빠져있는 어린아이 그대로인데 오히려 그때의 노란 고양이가 나보다 더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잿빛 고양이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그렇게나 울어대며 도움을 청하는 모습은 여전히 가시를 잔득 세운 채 아무도 다기오지 않길 바라는 나와 너무나 대조되어 보였다.

 

얼마 후 치료를 끝내고 나온 반백의 수의사 선생님은 아마도 큰 개한테 물린 것 같다며 출혈이 심하기는 하지만 일찍 데려와서 치료도 잘 끝났고 건강한 녀석이라 금방 나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나에게 혹시 키울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서 치료를 끝내고 입양을 보내도 괜찮을지를 물어보셨다. 어쨌건 잿빛 고양이를 안고 온 사람이 나였기에 먼저 물어봐주신 것이다.

 

그러시면서 여전히 카운터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노란 고양이를 보시더니 두 마리가 꽤나 친한 모양이구나 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푸근해보였다. 그 모습에 잠시 망설이던 나는 집에 가서 한번 물어보겠다고 혹시 괜찮으면 노란 고양이도 맡아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수의사 선생님은 물론 간호사 언니들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본 엄마는 엉망이 된 교복과 퉁퉁 부은 내 눈을 보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내 팔을 붙잡고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난 괜찮다며 다친 건 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 팔을 잡고 있던 엄마 손을 잡으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할 말이 있어. 근데 듣고 나서 화내면 안 돼. 응? 화내지 마. 응?”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마주앉아 여태까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있었던 일들과 두 고양이를 보며 내가 했던 생각들과 내가 했던 행동들을 털어놓았다. 혹여나 혼이 날까 꾸중을 들을까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천천히 머뭇거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엄마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내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천천히 나를 안으며 말했다.

 

“이 미련한 것아. 왜 말을 안했어. 엄마가 몰랐잖아. 왜 그랬어. 엄마 미안하게. 우리 딸 왜 그랬어.”

 

“엄마 미안해. 말 안 해서 미안해.”

 

그렇게 모든 걸 다 털어놓은 나에게 엄마는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사람이 아무리 미워도 그렇게 독불장군처럼 혼자 사는 게 아니라며 엄마보다 먼저 나에게 그걸 알려준 그 고양이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난 엄마와 함께 그 동물병원에 갔고 잿빛 고양이의 치료비를 지불하려는 엄마에게 수의사 선생님은 괜찮다며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어제 내 이야기를 들어준 간호사 언니에게 들었다며 나와 두 마리의 고양이가 인연이 있는 것 같으니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겨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이다.

 

- 우당탕!

 

내가 일기장을 보며 과거에 빠져있는 사이 녀석들이 뭔가 또 사고를 친 모양이다.

 

“에휴. 요 애물단지들!”

 

일기장을 도로 상자 안에 넣고 작은 거실로 나온 나는 지네들이 놀다가 떨어뜨린 소리에 놀라 벽에 기대어둔 쿠션 사이로 숨어있는 녀석들을 발견하고는 키득거리며 웃고 말았다. 그렇게 잠시 웃던 난 테이블 아래로 떨어진 두꺼운 전공 교재들을 주우며 한숨을 쉬었다.

 

“이걸 여기다가 둔 내 잘못이지. 그래도 안 다쳐서 다행이네. 이거 꽤 무겁단 말이야.”

 

전공 서적들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다 창가를 바라본 나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옅게 웃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올려둔 작은 화분 위에 어느새 노오란 나비 한 마리가 사뿐히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던 걸까? 어쩐지 반가운 마음에 조용히 화분으로 다가가는 내 뒤로 고양이다운 발걸음을 뽐내며 묵이와 황이가 살그머니 따라왔다.

 

‘예뻐라. 노란 날개가 반짝거리네.’

 

날다가 지쳐 잠시 쉬려고 왔을까? 작고 동글동글한 날개를 몇 번 파닥이던 나비는 그 노오란 날개를 눈부시게 반짝이며 다시 푸른 하늘 속으로 날아갔다. 나비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날갯짓이 너무나 상쾌해서, 날개를 타고 들어온 푸른 바람에 마음이 벅차올라 한참을 그렇게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