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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무늬

#3. 어중간해진다는 건

 

눈길 돌리는 곳마다 풍경이 아롱아롱 흐리다. 미겔은 이를 깔리마(Kalima)라고 불렀다. 언제부터일진 알 수 없지만, 사하라 사막이 제 몸을 동남풍에 조금씩 벗겨가며 섬을 감싸 왔다. 란사로테 섬에 내리면서, 카나리아 제도가 유럽보다 아프리카에 가깝다는 걸 실감했다. 스페인 내륙으로부터는 약 1,000km이지만 모로코로부터는 불과 100km 남짓이라는 걸 말이다.

 

우리가 숙소로 머문 곳은 티아구아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작은 시골 마을이다. 가옥은 대부분 1층이며 어디나 하얀 외벽에 초록색 대문을 달았다. 허허벌판 사막에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이 흔하다. 18, 19세기에 화산폭발로 섬의 상당 지형이 바뀌었다는데 지금도 활화산이다. 그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 섬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아마 이 마을은 연중 어느 때라도 외지인이 한 자리 수에 그칠 것만 같은 그런 조용한 동네다.

 

숙소 주인장 카를로스 아저씨는 필요한 게 있으면 대문에서 “카를로스, 카를로스”라고 부르기만 하란다. 주변에는 산책로와 농업 박물관이 있다며 꼭 한 번 찾아가보라고 일러줬다. 다음날, 동네 한 바퀴 돌 겸 자연스레 농업 박물관을 찾아갔다. 1840년부터 지금까지 쓰이는 실제 농가라고 한다. 집안 곳곳에 닭과 병아리가 돌아다니고 외양간에는 낙타와 염소가 여물을 먹는다. 그 옛날 농가의 살림살이와 건물 내외부 구조와 환경 등을 그대로 뒀다. 곳곳에 걸린 액자에는 마을의 지난 역사가 흑백으로 담겼는데 오래 머물진 않았다. 지금의 바깥 풍경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농가 한편에는 와인 양조장이 자리했다. 주변 포도밭에서 직접 수확하여 만든 와인이다. 바람이 강하고 비가 잘 내리지 않아 농사짓기가 쉽지 않은 섬이다. 포도 재배 방법이 다른 곳과 사뭇 다른 이유다. 여기서는 포도나무를 비옥한 화산재 토양에 묻고 그 주변에 돌담을 쌓는다. 이 돌담을 소코(Zoco)라고 하는데, 바람이 습기를 거둬가는 것을 막는다. 와인 시음을 권하기에 화이트 와인을 부탁했다. 술을 잘 알지 못함에도 텁텁한 기운 하나 없는 깔끔한 뒷맛이 한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실 술보다도 곁들여 나온 다과에 더 눈길이 갔다. 모호(Mojo)라는 카나리아 제도 특유의 소스와 함께 크래커에 치즈를 얹었다. 치즈도 여기서 직접 기르는 염소로부터 나왔다. 모호(Mojo)는 크게 붉은색을 띄는 모호 로호(Mojo Rojo)와 초록색을 띄는 모호 베르데(Mojo Verde)로 나뉜다. 모호 로호에는 파프리카 가루, 토마토, 홍고추 등이 들어가는 반면, 모호 베르데는 아보카도, 고수, 청고추 등 푸른색 채소와 허브로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보통 감자를 소금물에 껍질째 삶아서 모호에 찍어 먹는데, 파파스 아루가다스(Papas Arrugadas)라고 카나리아 제도의 전통 음식이란다.

 

미겔은 자신이 꿈꾸던 휴일이란다. 몇 찾아오지 않는 조용한 농가, 햇살 따듯한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며 한낮을 보내는 것 말이다. 아마 마을 분들은 박물관이 아니라 누구네 농가로 부를 것만 같다. 우리도 관광객이 아니라 옆동네에서 이따금 마실 오는 이웃으로 생각할지도.

 

한낮의 열기가 수그러들 쯤, 박물관을 나서 다시 동네산보를 이어갔다. 한 두 개의 언덕을 빼고는 나무도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 펼쳐졌다. 고개만 돌리면 해안에 자리한 이웃 마을도 눈에 훤히 들어왔다.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서 굽이치는지도 말이다. 사실 길을 벗어나도 별다른 장애물이 없어 어디로 걸으나 마찬가지였다. 그간 여러 사람이 다녀서 땅이 조금 더 탄탄할 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미겔이 문득 자신이 점점 아웃사이더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히피가 되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마드리드의 다른 친구들은 그럴 듯한 가정을 꾸리고 번듯한 직장을 다닌단다. 그에 비해 자신은 마흔이 넘도록 부동산, 잡지, 자전거, 관광홍보 등 이리저리 일을 옮겨가다가 출퇴근 개념을 상실한 프리랜서로 굳어지고 있단다. 이어서 그는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마 이런저런 여러 분야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을 거라고 뒤이었다. 취미라고 하기에도 뭐하고 직업으로 삼기에도 애매한 지점에 말이다.

 

그럼에도 미겔은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거라고 말한다. 그때그때마다 괜찮은 선택을 했다며. 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럴 수 있다고. 가만 보면 어중간한 경계에 놓여 있는 이들은 나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럴듯한 시기에 그럴듯한 배경으로 졸업과 취직, 결혼을 이어가며 사회에 자리 붙여가는 사람들의 비슷비슷한 굴곡보다는 그 다채로운 빛깔이 좀 더 넓게 퍼져 있을 것만 같다.

 

 

어느덧 하얀 달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며 깔리마가 붉게 물들었다. 한낮이나 한밤보다는 이런 시간이 더 아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낮이 밤이 서로에게 고이 스며들어가는 시간에,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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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전에 사과를

 

‘그란 카나리아로 이사했다. 남는 방이 하나 있다. 온다면 환영이다.’

 

“한국사람이구나?”

“아니, 스페인 사람.”

“오, 스페인 사람은 또 어떻게 만났대?”

 

글쎄, 복숭아랄까. 자세한 날짜나 장소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복숭아만큼은 확실하다. 5년 전, 여름방학을 틈타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그 어딘가다. 작은 개울 하나가 흘렀고, 미겔은 씻고 있던 복숭아 하나를 내게 건넸다. 별 말 없이 열흘 가량을 동행하고는 그는 회사로, 나는 학교로 복귀했다. 그 후로는 아주 이따금씩 이메일로 서로의 근황을 짤막하게 나눴다. 회사를 이직했다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다거나, 나라 경제가 망해가고 있다거나 등등.

 

3개월을 답했다. 무비자 체류 기한을 넘길 수는 없으니까. 다만, 왜 떠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냥' 혹은 '답답해서'다. 또 다른 월급살이를 하루빨리 찾아 연명해야 하는 일시적 백수에게는 아마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휴양지라니... 

​사실 어떻게든 그럴듯한 추임새를 넣어보려 했는데, 허사였다. 목적이라는 게 애초에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나타나는 쪽에 더욱 가까운 건지도. 아무튼 주변에서는 부럽다고만 하는데, 속내는 썩 그렇지 않다. 솔직해질수록 여행은 힐링보다는 도피나 망각을 닮아갔고 결국엔 ‘하아, 모르겠다’로 끝마쳤다.

 

제1식: 케이준 치킨을 곁들은 감자샐러드, 데친 야채와 밥을 곁들인 삼계찜, 라임향 리코타치즈 무스케이크, 버터, 소프트 롤빵.

제2식: 훈제 치킨 슬라이스를 곁들인 샐러드, 굴소스를 곁들인 에그누들과 생강소스 곁들인 볶은 닭고기, 오예스 초코렛 파이, 버터, 호밀롤빵.

 

하릴없이 기내식 리플렛을 읽다가 괜한 문구에 눈길이 머문다. ‘메뉴에서 뭔가 부족하면 우리는 사전에 사과드립니다.’ 재료가 부족해지기 전에 미리 사과를 드린다는 이야기인가 싶어 몇 번을 재차 읽었다. 맞다. 수면부족이 틀림없다. 기압차에 따른 두뇌활동 둔화인지도.

 

왼편에는 지젝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러시아 아저씨가 이륙할 때부터 잠에 시달렸다. 심지어 포크를 쥔 채 식사를 하다가도 꾸벅꾸벅 졸았다. 앞좌석에 닿을 것만 같은 아저씨 뱃살을 옆눈으로 흘끔 훔쳐보다 생각도 않던 화장실이 간절해졌다. 서울에서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마드리드, 마드리드에서 그란 카나리아. 거진 하루에 가까운 이동 시간 동안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여행을 떠나기 3일 전 타로를 펼쳤다. 딱히 기대할 바도 없지만, 궁금한 건 궁금하니까. 흐름을 살펴보니, 바보카드가 눈에 띈다. 구름 하나 없는 화창한 날씨, 어느 젊은이가 절벽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다. 소풍일까. 표정도 해맑고 몸짓도 가볍다. 아마 나는 곧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문을 열어젖힐 것이다. 신선한 만큼 무모한, 또는 무모한 만큼 신선한 문을.

 

대학교 때 어느 교수님은 자신이 겪은 혹은 지켜본 짤막한 일화를 거의 매수업마다 들려주셨는데, 하루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생은 어떤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뒤바뀐다고.

다행히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는 옆자리가 비어 있는 창가 쪽에 앉았다.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가 금세 점점이 박힌 무수한 불빛으로 넘실거렸다. 도시 하나 하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주황색 열대어처럼 그란 카나리아를 향해 헤엄친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니, 모르기 때문에 일단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나뿐만 아니라, 미겔을 비롯하여 이 떠남에 연루된 모든 이들에게도.

    

​하늘에는 별자리를 그려볼 만큼 무수한 별들이 오래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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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파도를 세어보는 시간

 

언제부턴가 바다 가까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이따금 마음 한 편 허전할 때 파도 소리 하나둘 세어보는 밤바다의 풍경을 말이다. 도시인으로서는 누구나 한 번쯤 품을만한 낭만일 것이다. 공항을 떠나는 차 안에서 혹시나 해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미겔은 대문에서 걸어서 5분이면 해변이 나온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그저 어느 작은 해변일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골목 하나, 정말로 집 앞에서 골목 하나만 돌면 바다가 보였다. 라스 칸테라스 해변이다. 도시와 바로 붙어 있을뿐더러, 한겨울에도 15도 이하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따듯한 날씨 덕에 북유럽 사람들이 많이 찾는단다. 3km 정도 길이의 해변 산책로에는 서핑, 일광욕, 거리 악사, 모래 조각 작품, 노천카페의 수다 등 해변의 고즈넉한 여유가 줄줄이 이어졌다.

 

가까이 살펴보면 해변은 ‘La Puntilla’, ‘Playa Grande’, ‘Playa Chica’, ‘Peña la Vieja’, ‘Puntabrava’, ‘La Cícer’ 등 다섯 곳으로 나뉘어 있다. 풍경이 눈에 익을 때쯤에는 저마다의 개성을 찾는 재미를 들렸다. 가령, ‘Peña la Vieja’에는 썩 괜찮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지, ‘La Cícer’의 파도는 다른 데보다 조금 더 거세네, 거리 음악은 ‘La Puntilla’에서 듣는 게 편하지 라는 식으로.

 

이 해변의 또 다른 특색은 ‘La Barra’로 불리는 화산암 위주의 암초 지형이다. 해안으로부터 일정 거리 떨어져서 길게 늘어져 있는데, 큰 파도를 막아줄뿐더러 물놀이하는 이들이 바다 멀리 떠내려가는 걸 잡아준다. 아마 글로벌 비영리단체 환경교육재단으로부터 해양 안전, 환경 관리, 수질 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블루플래그’를 받는 데 있어서 꽤 큰 공헌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어린아이부터 주름 가득한 노인까지 누구나 편히 바다에 몸을 적시며 머물렀다.

 

저녁 무렵에는 해변 왼편 끝에 자리한 대강당까지 걷곤 했다. 라스 팔마스에서 태어난 테너 알프레도 크라우스를 기념하는 클래식 공연장이다. 오스카 투스케가 건축했다는데 등대를 닮았다. 처음에는 멀리서 건물 경관조명을 보고는 실제 등대인 줄 알고 찾아갔을 정도다. 대강당 주변을 서성이다 도시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불빛이 점점이 모일 때면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파도를 세는 게 일상이 되어 갔다. 어딘가를 나서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해변을 곁에 뒀다. 대부분 흐린 날이었고 바람은 비스듬히 불어왔다. 파도가 부서지고 다시 밀려오는 걸 세어보며 섬의 저녁을 맞이했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섬이 무어라 말을 건네올 것만 같았다.

 

섬으로 떠나면서, 프랑수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종종 머릿속에 떠올렸다. 소년원을 빠져나와 길 아닌 길을 끝없이 달음박질하던 앙투안을 따라가 보려 애썼다. 그렇게 다다른 어느 해변, 앙투안은 바닷물에 몇 걸음 적시고는 이내 곧 돌아섰다. 아무 말 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의 눈빛이 깊숙이 번진다. 라스 칸테라스 해변을 홀로 묵묵히 걷다 보면, 때로 그날 앙투안이 마주한 파도가 여기에도 찾아왔을까 싶어 마음이 괜스레 일렁이다 먹먹해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