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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愛

2월 14일

2월 14일

 

인터넷에서는 초콜릿 만드는 법, 초콜릿 파는 장소, 초콜릿 예쁘게 포장하는 법, 연인에게 인기 있는 선물 리스트 또는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가 물결치며 떠다니고, 지하철 편의점 가판대는 물론 걸에서 꽃다발을 들고 오가는 이들이 종종 눈에 보이기도 한다.

 

2월 14일, 대체 누가 만든 걸까? 아니. 그 유래에 대한 속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굳이 고백의 날이 되어버린 이유가 무얼까? 누가 2월 14일을 연인의 날, 고백의 날, 초콜릿의 대환장 파티로 만들어버린 걸까? 괜스레 심통이 난다.

 

세상에 나만 빼고 전부 커플인 것 같은 이 기분을 어찌할까 싶은 생각으로 속으로 투덜거렸다. 나도 초콜릿 좋아하는데, 나도 고백 받는 거 좋아하는데, 나도 사랑받고 싶은데, 결국 마지막에 달아서 나오는 건 한숨이다. 하하호호 웃으며 지나가는 이들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음을 옮겼다.

 

‘집에나 가야지.’

 

그런 생각에 저만치 보이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람하고 부딪쳤다.

 

- 퍽. 와르르르...

 

바구니에 담겨있던 초콜릿이 그대로 쏟아지는 광경에 난 눈을 크게 뜨고 놀라서 굳어버렸다. 금박지에 싸인 작고 동그란 초콜릿이 데굴데굴 구르며 길바닥을 굴렀고,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은 무심결에 밟았다가 깜짝 놀라더니 황급히 도망간다. 상대방은 허탈한 얼굴로 멍하니 초콜릿과 나를 번갈아보았다.

 

“하아...”

 

힘없이 한숨을 내쉬는 그 모습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땅에 떨어진 초콜릿으로 손을 뻗었다.

 

“죄송합니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내 잘못이려니 하는 맘에 짧게 사과하고 초콜릿을 줍기 시작했다. 나와 부딪친 그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허리를 숙이고 초콜릿을 주워 바구니에 담았다.

 

“아닙니다. 제가 급하게 나오느라 부딪친 거니까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하는 모습과 달리 목소리는 맥이 빠져서 기운이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에 선물할 초콜릿이었던 모양이다. 괜히 더 불편해진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사람들 발에 밟힌 몇개를 빼고 거의 대부분의 초콜릿이 바구니에 담겼다. 간혹 지나가다가 주워주시는 분도 계셨다.

 

‘생각보다 많이 안 상했네.’

 

“그럼 전 이만.”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어색하게 인사하고 재빨리 버스정류장으로 뛰었다. 그런 내 등 뒤로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며 빈자리를 찾아 앉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괜히 나 때문에 차이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급하게 나오다가 부딪친 만큼, 약속시간에 늦어서 차인다거나, 운 나쁘게도 성하지 못한 초콜릿이 눈에 띠어 차인다거나, 설마 그런 일이야 있을까? 라며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눈을 감았다. 내릴 곳이 종점이기에 맘 편히 눈을 붙였다.

 

* * *

 

그녀는 아주 곤란하다는 눈으로 바구니와 나를 번갈아 보며 입술을 떼었다.

 

“혁아, 나...”

 

“알아. 나도 아는데, 그냥 말이라도 하고 싶었어. 이기적이라고 나쁜 놈이라고 해도 돼. 그냥, 그냥. 말도 못하고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그래서 그런 거니까. 그대로 잊어버려도 돼. 단지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아주 잠깐만이라도 내가 누나를 사랑했다는 것만, 그것만이라도 말하고 싶었어.”

 

착잡하게 가라앉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힘겹게 웃으며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나 누나를 사랑해. 그래서 행복하기를 바랄 거야. 그러니까 행복하게 살아줘.”

 

팔짱을 낀 채 시선을 내리는 그녀의 발 앞에 달콤한 초콜릿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내려놓고 뒤돌아섰다. 입술을 꾹 깨물고 현관을 나와 대문을 지나 길을 걸었다. 몇 년을 앓아온 짝사랑을 고백도 하지 못하고 끝낼 수 없어서였다. 가로등이 켜진 길을 걸으며 후련한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눈물을 참으며 내리막길을 내려와 편의점 앞을 지날 때였다. 터덜터덜 걷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는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어? 아까...”

 

편한 츄리닝 차림에 패딩 점퍼를 입은 그녀는 초콜릿을 사서 나오다가 부딪친 그 사람이었다. 나만큼이나 놀란 얼굴로 뻘쭘하게 굳어버린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그러다 그녀의 손에 들린 비닐봉투에 비친 맥주 캔에 시선이 닿았다. 살금살금 다가오듯 그녀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저, 혹시...차였어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서 시선을 올려 눈치를 살피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맥주 혼자 마실 거예요?”

 

“네?”

 

“같이 마실 사람 없으면 나하고 같이 마셔줄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그녀를 마주보며 씩- 웃고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맥주 2캔을 사서 나왔다. 그리고는 멀뚱멀뚱 서있는 그녀에게 눈짓하며 익숙하게 앞장섰다.

 

“저쪽 놀이터에서 마시면 되겠네요.”

 

“네, 뭐...”

 

텅 비어있는 놀이터에는 가로등만 환하게 빛나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덩그러니 매달려있는 그네를 한자리씩 차지하고서 나란히 앉아 각자 맥주 캔을 땄다.

 

- 딱! 치익.

 

맥주를 한모금 쭉- 들이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둥그런 보름달이 떠있다.

 

“잊어버려요.”

 

불시에 툭- 튀어나온 그녀의 말에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서는 멋쩍은 투로 말을 이었다.

 

“아니, 뭐. 초콜릿이 조금 엉망일 수도 있는 거고, 어쩌다보면 조금 늦을 수도 있는 거고...그...”

 

말을 끊고서 슬며시 내 눈치를 살핀다.

 

“별거 아닌 걸로 차인 거면 그냥 잊어버리라고요. 더 좋은 사람 만날 수도 있잖아요?”

 

멍하니 듣다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설마, 그쪽하고 부딪친 것 때문일까 봐서 그러는 거예요?”

 

“아니, 뭐.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맘에 걸려서...”

 

눈을 돌려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면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그런 내 반응에 그녀의 볼이 발갛게 변하더니 연거푸 맥주를 들이마신다.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투덜거림에도 한참을 웃고 나서야 맥주로 목을 축였다. 착잡한 심정도 물러갈 만큼 말끔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네. 맞아요. 늦어도 한참 늦어서, 더 늦기 전에 청산했어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맥주가 줄어드는 만큼 대화는 늘어갔다. 달이 중천에 다다르고 4개의 캔이 깔끔하게 비워졌을 때, 그녀의 집 앞에서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 14일, 내 손에는 또 다시 초콜릿이 가득한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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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진심

이 세상에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선물을 줄 때도 왠지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고

선물을 받을 때에도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선물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

 

굳이 비싸지 않아도 진심이 담겨 있는 선물은

상대방과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준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마트료시카 목각인형을 선물받았던 적이 있다.

그 때에는 나에게 왜 굳이 필요없는,

아무 쓸모도 없는 이 인형을 주었을까 의문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뜻을 알아버렸다.

그 당시에는 그저 머쩍게 웃으며 나에게 건넸던 인형을

이사하면서 그냥 두고 나와버렸고

그 후에 잊어버렸는데 뜻을 알고 나니

'아, 내가 정말 사랑받고 있었구나.'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선물이었음에도

누군가에게는 진심이 담겨있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진심을 담아 선물했는데,

상대방은 내 선물이 싫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선물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선물상자를 열어보는 순간 실망할 수도 있는 것이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선물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내용물을 보고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진심만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실망할 일도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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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선물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자는 시간 8시간에서 9시간을 뺀다면

깨어있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5시간에서 16시간이 남는다.

그 중에서 또 내가 빈둥거리는 시간들을 빼면

정작 나에게 남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이라는

하루를 사람들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나는 월, 화, 수 일주일에 3일은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한다.

하루에 5시간 수업을 하고 버스타고 왔다갔다 하는 시간

거진 2시간 하루에 7시간을 밖에서 할애한다.

공부하는 시간을 빼면 하루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8시간에서 9시간이 남는다.

 

집에 와서 씻고 먹고 하는 시간을 뺀다면

적어도 한 시간이란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사용하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방으로 올라와서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해도 진득하니 앉아서

오롯이 공부에 집중을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뒤로 미루고

드라마나 내가 보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을

몇 시간을 보면서 또 시간 낭비를 하게 된다.

 

나는 방에 있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방에 있으면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거의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방에서 나는 할 일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할 일들이 마구 떠오르기도 한다.

일단, 노트북을 켜고 SNS를 훑어보다가

글이 쓰고 싶어지면 이렇게 글을 쓰며 앉아있고,

매일매일 쓰는 일기도 빼놓지 않고 쓴다.

나는 글쓰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글을 쓰지 않고서는

하루도 못 견디겠는 사람이기도 하다.

할 일이 없으면 그냥 멍하게 있는 시간보다는

책을 읽고 한줄이라도 글을 써야 마음이 편한 사람.

 

하지만 아직까지 결과는?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집에서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름대로 바쁘게 산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나를 보는 사람들은 그저 이것저것 끼적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이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오늘 하루 참 잘 살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24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서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 나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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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여행은 선물!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곳에 늘 만족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은,

지금 내 인생에 아주 큰 불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안드나요?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이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약속을 잡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면서

불만들만 늘어놓고 집에 가면

하루가 얼마나 허무한 지 다들 한번쯤은

아니 여러번 느껴보았을 것입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으니까요.

물론 여행은 떠난다는 설레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설레임만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들을 다 털어버릴 수 있을까요?

 

여행을 떠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것이 아닙니다.

여행을 떠나 그곳의 문화를 안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그저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진다는 것 뿐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저 여행은 우리들의 마음에 잠깐의 쉼을 주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지금 생활에 만족하길 바랍니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면 불만들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불만들을 크게 부풀려 말하지도 않게 됩니다.

일상생활이 무료하다고 해서

지금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작정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행은 우리들의 삶에 좀 더 풍요로움을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여행은 우리에게 아주 큰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할 줄 안다면 분명,

여행이라는 선물도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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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질문

02. 유명세

* 이글의 소재가 되는 마법의 질문은 실제로 1997년 아서 아론 박사의 실험 자료입니다.

단, 글의 내용은 저의 창작물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저기 사방으로 허리를 굽히며 꾸벅- 인사를 하고, 매니저 형을 따라 차에 올라타면 몸은 이미 알아서 늘어져버린다.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힘없이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불타오르는 금요일을 외치며 즐거운 얼굴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또래다.

 

“좋겠다.”

 

무심결에 나온 중얼거림에 매니저 형이 쓰게 웃는다. 그래. 나도 안다. 배부른 소리라는 걸. 하지만 진심이다. 원 없이 사랑받고, 원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저들이 부럽다. 고개를 돌려 머리를 뒤로 기대고 눈을 감아버렸다.

 

나직한 자동차 소음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게나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그렇게나 원하던 일이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아니. 왜 점점 행복해지지 못할까? 왜 점점 더 힘들고, 점점 더 외롭고, 점점 더 후회가 될까?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었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행복하지 못 할까?

 

“신후야. 다 왔다.”

 

어깨를 흔드는 기척에 눈을 뜨고 차에서 내렸다. 형은 차 뒤로 돌아가 트렁크를 열었다. 가득 찬 쇼핑백 5~6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이서 양손에 나눠들고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고 들고 온 쇼핑백을 내려놓은 형은 조금 걱정스레 한번 훑어보았다.

 

“뜯을 때 조심하고, 푹 쉬어라.”

 

“네. 형도 조심해서 가요.”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집은 고요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옷을 벗어두고 적당히 따듯한 물에 몸을 담갔다. 피식- 우스웠다. 쇼핑백 안에 든 건 전부 팬레터와 선물인데. 뜯을 때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야 하다니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웃음이 난다.

 

“하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고,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사람이란, 인간이란, 누군가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만큼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것임에도 난 날이 갈수록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필시, 저 중에도 선물 아닌 선물이 섞여 있겠지.’

 

악플과 소문과 안티와 스토커에게 시달려야하는, 적어도 내가 바란 건 이런 생활은 아니었다. 난 그저 같이 서고 싶었고, 같이 하고 싶었는데, 왜 나만 남았을까? 넌 어디로 가버리고 나만 남았을까?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너 하나였는데, 넌 왜 내 옆에 없는 걸까?

 

멍하니 욕조에 늘어져 하얀 타일이 가득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 똑. 똑.

 

샤워기에서 하나 둘 물방울이 떨어졌다. 규칙적인 물방울 소리와 옅게 퍼져나가는 동심원, 천장의 새하얀 타일들, 그대로 있다가는 욕조에서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머리를 흔들어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 욕실을 나왔다. 대충 물기를 닦고 침실로 가려는 걸음을 멈췄다.

 

- 툭.

 

현관에 놓아둔 쇼핑백 하나가 쓰러졌다. 한숨을 쉬고 걸음을 돌렸다. 쓰러진 쇼핑백을 세우고, 방바닥으로 쏟아진 자잘한 선물상자와 편지봉투를 주워 담았다. 손에 뭉쳐 잡은 봉투 중에 하나가 미끄러져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명한 보라색 봉투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뭐야?”

 

발신자는 비어있고, 수신자에는 주소도 없이 내 이름만 적혀있다. 딱 봐도 수상하다. 분명히 또 이상한 혈서나, 욕지거리나, 괴상한 그런 게 들어있겠지. 그런 생각과 달리, 풀칠도 안 된 봉투 안에서 나온 건 새하얀 종이였다.

 

마법의 질문

유명해지고 싶은가요? 어떤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은가요?

 

“행운의 편지도 아니고, 이게 뭐야?”

 

이건 또 무슨 신종 장난인가 싶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 약 올리는 건가? 목을 타고 울컥하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은 내 상황에서는 너무나 유치하고 악질적인 장난이었다. 점점 늘어가는 헛소문에, 안티에, 악플에, 있던 팬마저 잃어가고 있는 나한테는 말이다.

 

“유명해지고 싶으냐고?”

 

괜히 그 사람하고 얽히는 게 아니었다. 무반응이 답이라며 입 다무는 게 아니었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처음으로 터진 스캔들에 그동안 쌓아온 게 이리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허무하게 말이야.’

 

그래서 더 보고 싶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날 믿어줄 네가 너무도 보고 싶다.

 

“주소가 없다는 건 직접 갖다 넣은 거겠지?”

 

봉투와 종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펜을 꺼냈다. 내가 적은 답을 보면, 이걸 보낸 사람은 뭐라고 생각할까? 쓴웃음이 나온다. 내가 이걸 왜 적고 있나 싶으면서도, 적어도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싶다. 억울한 헛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선가 내 소식을 듣고 있을 너만은 알아주면 좋겠다.

 

* * *

 

“내려가고 있어요. 이제 1층이에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통화를 종료했다. 문을 나서기 전, 잠깐 걸음을 멈추고 우편함에 봉투를 넣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가져갈 것이다. 어제와 같은 곳, 내 스케줄을 알고 있다면, 어디선가 날 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반응이 궁금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겠지. 아쉽네.’

 

문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 * *

 

어두운 밤. 건물의 모든 불이 꺼지고, 문이 잠기고, 셔터가 내려갔다.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푸른 어둠속에 한줄기 보랏빛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실려 우편함 밖으로 빠져나온 봉투가 열리고, 새하얀 종이가 환하게 빛을 낸다. 질문 아래 적힌 답이 어둠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 네. 거짓된 모습이 아닌 진실된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

 

종이가 봉투 안으로 들어가고, 한줄기 푸르스름한 보랏빛이 봉투를 휘감는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 훗. 답변 접수. 확인했습니다. -

 

보랏빛 봉투는 어둠속에서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2016년 6월 26일. 신문과 잡지, 온라인이 온통 하나의 기사로 화제가 되고 있다.

 

<< K양과 S군의 진실 게임 >>

 

어제 오후 S군은 작년 연말부터 계속해서 열애설과 결별설이 오가며 구설수에 오르던 K양과 스캔들에 관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S군은 K양과의 열애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며, 서로 사적인 친분도 없는 사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스캔들을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양측 소속사의 제재 아래, 두 당사자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게 된 거라며, S군 자신은 물론이고 K양도 피해자라고 밝혔다. 이에 S군의 입장표명에 소속사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반면, K양측의 소속사는 아직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S군은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오늘 이후, 휴식기를 가진 뒤 홀로서기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S군의 진실 고백에 팬들은 차라리 잘됐다고 홀가분하게 벗어나라는 응원이 대다수이며, 안티들의 경우는 이것도 짜고 치는 거 아니냐며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소속사와 좋지 않게 끝낸 S군의 향후 행방이 걱정되는 가운데...[하략].

 

* * *

 

그 한번의 인터뷰에서 모든 걸 털어놓고, 다음날 바로 가방을 챙겨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숨 돌릴 틈도 없었던 생활에서 벗어나, 가보고 싶었던 곳,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혼자서 바람처럼, 쿡-. 그래. 유치하지만, 바람처럼 그렇게 떠돌았다. 이국적인 거리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길을 걸었다.

 

일상적인 거리와 일상적인 풍경과 그 속에서 일상적으로 오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목적지 없이 돌아다녔다. 가끔은 너와 함께 왔다면, 내 옆에 네가 있다면, 네가 그리워지는 만큼,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걸 들었다. 그렇게 1년을 떠돌며, 소문에서, 안티에서, 악플에서 벗어나 5년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공항에 네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 많은 인파속에서 단번에 널 찾을 수 있었다.

 

그대로 달려가 널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

 

네 손이 내 등을 토닥인다. 네가 울먹이며 미소한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네가 다시 내게 와주었다. 이제는 절대 놓지 않아. 너와 멀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다. 네 옆에서, 네 손을 잡고, 너와 함께 걸으며, 너와 함께 할 테다. 다른 그 누구보다 너만 날 알아주고, 날 믿어주고, 날 바라봐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세상 모두보다 너 하나면 충분하니까.

 

* * *

 

창밖에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창가에서는 네가 건반을 치며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네 눈은 그때처럼 반짝였고, 너의 허밍[humming]은 여전히 간지럽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가 든 컵을 들고 옆에 앉았다.

 

“어때?”

 

양손으로 머그컵을 받아들며, 생긋- 웃는다.

 

“좋아. 봄날에 내리는 눈송이 같은 느낌?”

 

“그래서. 가사는 떠오르십니까?”

 

“흠...좀 기다려 주시죠?”

 

결국 서로 마주보며 웃고 만다. 내가 만든 멜로디에 네가 가사를 붙이고, 그걸 함께 부르고, 나와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일상. 비록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더 이상 거짓된 내 모습에 시달리지 않고, 우리가 함께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만으로 나에게는 이미 충분하다.

 

세상 모두가 아닌, 너 하나면 돼.

 

마법의 질문

유명해지고 싶은가요? 어떤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은가요?